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론] 국가보안법 철폐 없이 노동해방은 없다

조명제 │ 부산지회장

 

 

 

1. 국가보안법의 모체 치안유지법의 제정과 식민지 조선에서의 적용

 

1925년 제정된 일본 치안유지법은 제1조에 “국체(國體)를 변혁하고 또는 사유재산 제도를 부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결사를 조직하거나 또는 그 정(情)을 알고서 이에 가입한 자는 십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함.”1)이라고 명시하며 이 악법 본래의 목적이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세력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와 이들과 결탁한 국내 봉건 지배계급의 인민에 대한 착취, 수탈이 이루어지던 사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외 지배계급에 맞서 싸우는 반제반봉건 투쟁의 주도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세력이 담당하게 되었다. 쏘련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이들을 보다 추동하는 요인이 되었다. 일제는 사회주의 운동가와 독립 운동가들을 치안유지법 1조에 따라 엄격하게 그 처벌 대상으로 했다.2) 그러나 1920년대 후반부터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세력에 대해서도 치안유지법을 적용하게 된다.3)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지지도가 77%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시기까지 노동자 인민 속에 뿌리내린 체제 변혁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실례이다.

 

 

2. 국가보안법의 탄생과 노동자 인민 탄압

 

1945년 10월 9일 미군정 법령 제11호에 의해 치안유지법은 폐지되었고 일본에서는 10월 15일 폐지되었다. 그러나 미군정 통치시기에 일제 통치하의 신문지법, 보안법 등이 미 점령군의 군포고, 군정청 법령과 함께 한국의 인민을 탄압하는 악법으로 ‘계승’되었고, 특히 1948년 12월 1일 공포, 시행된 국가보안법은 치안유지법을 계승하였다. 1950년 전쟁 발발 전까지 국가보안법으로 검거 또는 입건된 인원을 보면, 시행부터 약 1년 동안 11만 8,621명으로 치안유지법 20년의 운영에서 검거, 수리(修理)된 인원의 3배 이상이 되는 수치라고 한다.4)

이 시기와 박정희 정권 초기, 특히 한국(조선) 전쟁을 전후하여, 무법천지의 국가폭력이 자행되고 국가보안법과 파쇼악법을 동원한 노동자 인민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졌다. 변혁세력에 대한 ‘인적청산’ 작업은 이후 30년간 이남에서 변혁운동의 씨를 말리는 역할을 하였다.5)

제정 이후 75년 동안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지금의 윤석열 검찰 파쇼정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정권을 바꿔가며 노동자 인민에 대한 폭력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런 국가보안법이 가지는 ‘반민주’, ‘반통일’, ‘반노동’의 성격에 대해 다시 한번 되짚어 보자.

 

 

3. 국가보안법의 성격

 

1) ‘반민주’ 국가보안법

 

노동조합법 2조, 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여 이후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6) 노조법 2조, 3조는 헌법 제33조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무력화시키는 악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은 헌법 제21조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봉쇄한다. 인민에 대한 탄압을 위해서라면 하위법이 상위법 위에 군림하며 자신들의 법 체계도 무시하는 행태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또한 근대 형법의 기본 원칙인 행위주의를 부정하고 있는데, 밖으로 표현된 인간의 행위 중 사회적―지배계급으로서의 사회적이지만―으로 유해한 행위만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함에도 ‘결사, 가입’뿐 아니라 ‘목적 수행’에 관하여 ‘협의’한 자조차도 처벌하고, 목적 수행을 위해 ‘예비’, ‘음모’한 자까지도 처벌하는 것으로서 행위주의 원칙에 모순되는 악법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이거나 소부르주아적인 사람만의 권리가 아니다. 노동자계급에게 민주주의는 더없이 소중한 무기이다. 사상의 자유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은 변혁을 지향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반통일’ 국가보안법

 

수많은 진보적 인사들은, 역대 정권들이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이북에 관한 정보를 통제, 왜곡하고 악마화하며 ‘민족적’ 통일운동을 억눌러 왔다고 말하곤 한다. 실제 미제의 지시에 따라 역대 정권에서 벌이는 대북 경제제재와 이제는 일본까지 가세해 벌이는 한-미-일 연합 군사훈련과 같은 군사력을 동원한 대북 압박 정책, 시시때때로 국가보안법이라는 무기를 휘두르며 ‘이북의 지령에 의한’ 간첩사건을 조작하는 만행을 볼 때, 미제와 집권세력이 통일을 저지하고 ‘분단의 고착화’를 목표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독점자본의 왼쪽 정권이든 오른쪽 극우정권이든, 그들 정권의 안중에 통일은 철저히 배격의 대상인가? 이승만 독재정권은 전쟁이 휴전국면으로 흘러가자 앙앙불락(怏怏不樂) 수시로 ‘북진통일’을 외치지 않았던가? 물론 극악한 인민 살해와 탄압으로 정권의 위기가 오자 든든한 미제의 뒷배를 믿어서 한 짓이었겠지만 말이다. 박근혜의 ‘통일은 대박’7)은 그냥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염원을 담은 표현일 것이다. 왼쪽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은, 오른쪽 박근혜의 ‘대박’을 노리는 것과 내용상 본질적 차이가 없다. 또 다른 행태이지만, 국내정권이 미국과 결탁해 벌이는 경제제재와 때에 따라서 과감하게 내뱉는 ‘이북정권의 몰락’은 그 이후 통일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독점자본의 지배와 미제의 원격통치가 작동하는 통일 말이다.

19세기 말을 거쳐 20세기에 들어서면 자본도 자유경쟁 자본주의 단계에서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에 따라 자본의 활동 영역도 보다 ‘세계화’될 수밖에 없다. 주로 ‘자본수출’이라는 방식을 통한 독점자본의 원료 공급처와 시장의 영역 확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독점자본의 사활적 활동이다. 그런 독점자본과 제국주의 세력이 한반도에서 노리는 것은 지금의 자본의 세상에 대한 저항의 무력화이고, 노동자 인민을 착취하는 독점자본이 주인 되는 통일일 것이다.

이렇게 통일의 문제에 있어서도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계급관계의 논리가 철저히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국가보안법은 독점자본과 제국주의 세력을 위해 그 이데올로기적 법적 ‘심리적’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국가보안법의 ‘반통일성’을 말한다면 그것은 노동자적, 인민적 통일을 가로막는 반통일성을 얘기하는 것이고 몰 계급적 ‘민족적’ 통일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3) ‘반노동’ 국가보안법

 

해방 직후 미 점령군의 여론조사를 통해 인민이 지향하는 사회가 확인되었지만, 지금 여론조사를 실시한다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하다. 자본가계급은 ‘물질적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써 ‘정신적 생산수단도 장악’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고8) ‘정신적 생산수단’을 통해 끊임없이 노동자계급의 의식을 그들의 이데올로기로 물들이려 한다.

그런데 그런 ‘정신적 지배’가 아예 정치적 권리를 박탈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만든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자신의 처지를 모른 채 뜨거운 물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를 연상하게 하는 반응들도 있다. 노동자 인민에게 정치의식 고양을 봉쇄하고 ‘자신들이 정치적 무권리 상태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정치적으로 무의식ㆍ무기력한 존재로 전락’9)시키고, 활동가에게는 자기검열을 통해 의식과 활동에 족쇄를 채우고 각자의 사고에 내면화시켜, 법 적용 이전에 이미 본래의 목적을 이루고 있는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고.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 전복되어야’ 하지만, 그러나 ‘이론 또한 대중을 사로잡자마자 물질적 힘으로’10) 되고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운동 없’11)음이 이미 러시아 혁명을 통해서도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이와 같은 변혁적 궤도에 국가보안법이라는 커다란 장벽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계급적 속성 혹은 인식의 부재로 인해 국가보안법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가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4. 국가보안법과 그 철폐 투쟁에 대한 시각들

 

제도권 ‘진보’ 정당들은 그들의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의사가 없거나 혹은 엄두도 못 낸다. 위세에 눌려서 그렇고 그들의 훌륭한 무기이기에 그러하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에서도 폐지하지 않았듯이 지금의 제도권 정당들이 자발적으로 폐지할 리 없다. 정의당 심상정은 2013년 이른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 때 국가보안법에 굴복해 이석기의 유죄에 힘을 실은 적도 있다.12) 이런 상황에서는 대중적 폐지 여론을 고양시켜 법 폐지를 강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변혁을 표방하는 활동가들 간에도 시각 차이 또는 경향적 차이가 있다. 소위 ‘민족적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 중에는 국가보안법의 반통일적 성격에 집착해, 노동자 인민을 위한 통일이냐 자본주의적 통일이냐의 질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감성적인 통일사회에 대한 열망은 이북에 대한 사상적, 운동적 의탁을 낳기도 한다. 알다시피 이남은 고도로 발달한 독점자본주의 체제로 북의 체제와 본질적으로 다른 체제다. 따라서 그 모순의 해결 없이 진정한 노동자 인민의 통일과 해방은 기대할 수 없음에도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이북에 대한 열렬한 믿음으로 그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부는 사상과 언론, 결사의 자유가 봉쇄된 지금의 상황하에서, 반혁명적 이론13)과 이북에 대한 왜곡된 정보에 물들게 되어, 결론적으로 지배계급의 반공주의에 일익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우파’에 대한 뿌리 깊은 정서적 반감과 결합해 국가보안법의 반노동자성을 간과하거나, 그 투쟁에 적극성을 띠지 않는 경향을 낳았던 것이다.

이같은 편향과 오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 즉 제국주의 시대의 모순에 대한 몰이해에서도 비롯되는데, 한반도에서의 ‘분단과 통일’의 문제가 노자간의 모순의 ‘현상형태’로서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본질과 현상의 변증법적 인식을 통해 파악하고 있지 못함에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 채만수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의 글을 일부 빌리자.

 

“실제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모순, 제국주의와 식민지 인민 간의 모순, 제국주의 상호 간의 모순, 그리고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모순이라는 이른바 ‘전반적 위기 시대의 4대 모순’은 전반적 위기 시대의 주요 모순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것으로서, 사실은 모두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모순의 현상 형태들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제국주의와 식민지 인민 간의 모순이나 제국주의 상호 간의 모순, 그리고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모순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모순이 국제적으로 외화(外化)된 형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14)

 

국가보안법은 운동의 역사와 실상에 대해 거짓 선전을 주입하는 역할과 함께 올바른 인식과 사고를 왜곡하여 운동권 내부의 분열을 야기하는 짓도 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이유 중의 하나이다.

국가보안법 역시 수많은 지배계급 이데올로기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 폐지 투쟁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을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왜 관건적 투쟁인지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많은 투쟁 중에도 운동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투쟁이 있다. 지배계급이 75년간 고수하고 있는 이유, 즉 노동자를 정치적 무권리, 무기력 상태에 빠뜨려 체제에 대한 저항의지를 버리기를 바라는 지배계급의 목적을 깨부수지 않고 운동은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박근혜 퇴진투쟁 시 일부의 “퇴진시켜봐야 똑같은 자본의 정권이 등장할 뿐이다”라는 방관자적 냉소적 태도와 비슷한 생각 방식 아닐까? 희망사항이지만 당시 엄청난 대중의 진출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머리에 국가보안법 철폐의 절실함이 각인될 수 있었다면 우리의 발걸음이 훨씬 가벼웠을 것이다.

 

 

5. 윤석열 정권의 노동자 탄압과 국가보안법

 

윤석열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그 파쇼적 본능을 발휘하며 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개시했다. 노동자의 생존권적 투쟁조차도 공권력으로 굴복시키고15), 한편에서는 친자본 반노동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16) 급기야는 노동자투쟁에 대한 파쇼적 대응의 단계를 넘어 ‘선제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 700명의 경찰을 대동해 ‘음지에서 양지로’ 당당하게 제복을 입고 등장한 국가정보원은 국가보안법의 칼을 빼들고 민주노총을 급습하는 유례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와 함께 건설노조를 파렴치한 범죄 조직으로 매도하며 탄압하고, 화물연대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에게까지 빨갱이 공세를 펼치는 등 노동자계급에 대한 보다 가혹한 착취와 탄압, 무력화를 위해 전 방위적으로 좌충우돌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특히 건설노조를 준비된 목표물로 하여 작년부터 광범위한 ‘사전조사’를 벌임과 동시에 원희룡의 입을 통해 건설노조를 ‘경제에 기생하는 독’, ‘조폭’이라 매도하는 사악한 발언을 하고 ‘없는 법을 만들어서라도’ 건설노조를 척결하겠다며 노동자 탄압의 의지를 다졌다. 이윽고 올해 1월 18일 민주노총에 대한 공격을 시작으로 건설노조에 대한 압수수색이 전국적으로 수도 없이 벌어져 정권과의 한판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노동자 탄압의 무기로 기존의 노동악법과 더불어 국가보안법을 빼들고 ‘공안몰이’,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17) 윤석열 정권은 집권 초부터 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조직적 준비를 마쳤다. 감옥에 갔어야 마땅할 ‘유우성 간첩 조작사건’의 검사 이시원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앉히고, 행정안전부 내부에 경찰국을 신설하여 산하 외청(外廳)인 경찰청에 대한 인사권과 중요 정책 사항을 관장하도록 했다.18) 국가정보원 2인자인 기조실장에는 검사 출신을 잇달아 발령하며 ‘친윤세력’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준비를 마친 정권은 곧바로 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국정원과 경찰은 작년 11월 9일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인 제주의 진보 인사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 수색한 이래 창원, 진주, 충청, 전라 등 전국 곳곳으로 사건을 확대하며 구속과 수사를 이어가고 있어 조만간 간첩단 사건이 언론을 채울 분위기다.19) 윤석열 정권이 이렇게 막가파식 공안탄압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6. 공안탄압의 배경과 독점자본의 위기

 

자신의 입으로부터 벌어진 갖가지 ‘외교참사’, 검찰독재 정권에 대한 반발과 에너지 대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인민의 분노가 갈수록 높아지자, 그 관심을 돌리고 추락한 지지율을 회복하고자 노골적으로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을 동원한 것이 공안몰이의 배경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거기다 내년부터 예정된, 경찰로의 대공수사권 이전을 막기 위한 계산도 국정원이 설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위기를 노동자 인민에 대한 탄압과 착취의 강화라는 방식으로 벗어나려고 하는 파쇼정권과 결탁한 재벌, 독점자본의 이해가 주된 배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29년 과잉생산으로 인한 공황이 세계대공황의 모습을 띄며 독점자본의 ‘전반적 위기’가 도래했다. 기존의 ‘야경’ 수준의 국가는 물러나고 독점자본의 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가 자본의 재생산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시기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자본이 스스로 과잉생산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로 인한 국가의 개입은 항상적이고 필수적이게 된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채만수 소장의 글을 보자.

 

 “ 자본주의 체제의 전반적 위기란, 거대 독점자본과 금융과두제의 지배에까지 이른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이 전면적으로 심화 혹은 격화되고, 그에 따라 정치적·사회적 위기 역시 더없이 격화됨으로써, 국가가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을 이른바 자유주의 시대의 그것, 즉 기본적으로 경제적 재생산과정의 외부에 머물며 범죄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그것의 안정을 보장한다는 것에 한정할 수 없게 된 상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20)

 

윤석열 정권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의 집행부인 것이다.

2007년 말 발발한 세계대공황 이후 장기간의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고, 거기에 ‘코로나 팬데믹’의 일격을 맞은 세계의 자본이 위기 돌파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만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국제경제 기구들은 올해 암울한 경기침체 전망을 예고한 바 있고, 국내 경기 역시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예측했다.21) 회복되지 않는 장기간의 경기침체는 (독점)자본이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이윤확보마저 어렵게 하고 그럴수록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강화될 뿐이다. 고통에 저항하는 노동자 인민의 투쟁도 격심해질 수밖에 없기에,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국가를 동원한 파쇼적 탄압과 공안몰이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과 한 몸인 윤석열 정권의 본 모습이다.

 

 

7. 무엇을 할 것인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사상적 자유는 체제 극복을 위한 자본과의 전쟁에서 필수적인 무기이다. 정치·사상의 자유,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는, 평등세상을 향한 정치의식의 고양과 더불어 현 시기 노동자계급의 우선적 과제이고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과제인 정치적 참모부의 건설을 앞당길 것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과 소부르주아들에게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목표일 수 있지만 노동자에게 그것은 노동자 인민의 권력쟁취를 위한 수단이 된다.

자본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노동자 인민에게 그 위기를 전가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모순이기에 체제의 극복이 없다면 고통의 끝도 없을 뿐이다. 더구나 노동자가 체제에 저항하고 그 극복을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면 ‘당근’은 사라지고 ‘채찍’을 휘두르는 자본의 공격은 더욱 가혹해진다. 자본의 위기가 갈수록 깊어짐에 따라 ‘당근’의 여유조차도 가질 수 없게 된 독점자본은 오로지 착취에만 매달리게 된다. 사회주의 쏘련의 몰락 이후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함께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수탈의 역사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무인생산 단계에 이를 정도로 발달한 생산력은 그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이기에 노동자 인민에게 풍요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생존권을 경각으로 내모는 역할을 할 뿐이다.

한층 심화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취득의 사적 성격 간의 모순’은 새로운 생산관계를 요구하고 있지만, 독점자본은 생산력을 파괴하여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억지로 꿰맞추려 한다. 독점자본의 모순은 날로 깊어가고 그들과 국가가 결탁한 제국주의 전쟁은 시시때때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법으로 독일의 ‘사회주의 탄압법’22)이 있었다. 독일사회주의노동당(독일사회민주당의 전신)은 이에 굴하지 않고 열정적인 활동을 통해 법을 폐지시키고 조직적으로 급성장했으며 수많은 노동자 인민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23)

윤석열 정권은 임기 내내 공안탄압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유력한 무기로 휘두르려 할 것이다. 이미 노동자 인민의 고통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 분노를 투쟁의 확대로 이어가야 한다. 노동자가 앞장서서 대중의 역동적 분위기를 만들고, 주요한 인민적 요구와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의 슬로건으로 대중을 결집시켜 내자. 지금도 간첩단 조작사건을 획책하며 노동자 인민 탄압의 선두에 서있는 국정원 해체 투쟁에 나서자! 민주주의 사수에 절절한 모든 노동자와 인민이 단결하여 희대의 악법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새 세상을 향해 진일보하자! 노사과연


1) 1925년 제정되었을 때는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의 처벌이던 조항이, 1928년 개정되면서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도록 크게 강화되었고, 해방 후 국가보안법으로 바뀌어서는 100만 명 이상의 인민을 학살하는 법으로 기능했다.

 

2)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 세력에 대해서는 일정한 기준 없이 사안별로 ‘제령 7호’와 혼용해 왔다.

※ 제령 7호;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은 외지(外地)로 분류되어 일본 제국의 법률과 칙령 대부분은 조선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 지역에 시행할 법률이 필요할 경우 조선총독의 명령으로 규정해야 했고, 이를 <제령>이라고 불렀다. 참고로 조선총독부 제령 7호에는 제1조 ‘①정치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여 다수공동으로 안녕 질서를 방해하거나 방해하고자 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국가법령정보센터

 

3) ≪韓日關係史硏究 30집≫ 중 <식민지 조선과 치안유지법의 적용—1926‧27년을 중심으로—(2008년)>,  최종길 논문 참고. 저자는 이 글에서 제령 7조 적용 1건, 치안유지법 적용 14건의 사건 판례를 통해 위와 같이 확인한다.

 

4)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 사건 판례를 통해 본 사상통제의 역사≫, 오기노 후지오 지음, 윤소영 옮김, (2022년). 책에 대한 평글 형식의 <일제강점기 치안유지법 운용의 역사> 전명혁의 글 중에서 발췌한 수치.

 

5) 1946년 9월, 10월 전국적으로 전개된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노동자투쟁에 대해 미군정은 살인적 탄압으로 대응했다. 이후 전위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조합은 사라지고 어용 깡패집단인 대한노총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전쟁 시기를 이용해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은 최대 120만 명의 사망자가 추산(위키백과)되기도 한다. 외압에 의해 가입한 사람도 있으나 공개적으로는 주요한 가입 대상을 ‘좌익’으로 하여 그들을 무고한 인민들과 함께 몰살한 대학살 사건이다.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 사건을 철저히 은폐했고 유가족까지 요시찰 대상으로 만들었다.

 

6) 이 개정안의 내용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못 박은 점은 법적 진전을 이뤄낸 것이라 하겠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노동자의 쟁의를 무력화하는 손해배상이 여전히 자본가들의 무기로 남아있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확정하지 못한 채, 이 역시 자본가들의 소송에 일일이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유지된 내용이다. 민주당 주도로 이뤄진 개정안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국힘, 청와대, 고용노동부, 자본가단체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고 있다.

 

7) 박근혜는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세계적 투기꾼 짐 로저스의 “남북통합이 진행되면 자신의 전 재산을 한반도에 쏟아 붓겠다.”는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8) 맑스 · 엥엘스, <독일이데올로기>,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권, 박종철 출판사, pp. 226-227.

 

9) 채만수, <노동자와 국가보안법>, ≪정세와 노동≫ 157호 (2019년 12월), 노사과연, p. 9.

 

10) 맑스,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권, 박종철 출판사, p. 9.

 

11) 레닌, 제1장 교조주의와 “비판의 자유”, ≪무엇을 할 것인가≫(러시아어판 완역), 박종철 출판사, p. 30.

 

12) “(이석기 의원에게) 제기되고 있는 혐의는 헌법의 기본정신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차대한 혐의”라며 “국민은 헌법 밖의 진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읊조리며, 결론적으로 무죄로 처리된 내란음모죄에 동조해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심상정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 찬성했다. (찬성 258 반대 14)

 

13) 뜨로츠키주의는 특유의 주관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수많은 분파를 형성하며 주장도 다양하지만,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인민의 국가인 쏘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 또는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하며

 왜곡하는 길에는 함께 하고 있다. 유럽 노동운동의 자본주의 체제내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국내적으로는 후진 자본주의 체제라는 당시의 어려움 속에서도, 러시아 노동자 인민은 볼셰비키 당의 지도아래 혁명을 성공시키고 눈부신 사회주의 발전을 이룩해 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 인민의 혁명을 지원하고 추동하며 종국적이고 세계적인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매진했다. 쏘련의 소중한 역사적 성과를 오히려 비난하고 무용지물로 취급하는 뜨로츠끼주의는 올바른 맑스주의적 운동의 흐름을 방해하는 유해한 종파주의의 대표 격이다. 

 

14) 채만수, ≪노동자 교양경제학≫, 11강 국가독점자본주의 1.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와 국가독점자본주의, 노사과연, pp. 594-595.

 

15) 윤석열 정권은 지난해 6-7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과 화물노동자들의 안전운임제 개악저지 투쟁에 대해 공권력을 앞세워 사실상 무조건 항복을 관철시켰다.

 

16) 대표적으로, 노동시간 유연화정책; 윤석열 정부의 의뢰를 거쳐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발표한 권고안은 최대 주 80.5(6일 근무 시 69시간)시간의 노동시간을 가능하게 하여 현재의 최대 주 52 노동시간제를 무력화한 개악안이다. 임금정책: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및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하락과 노동자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법 유명무실화; [2024년 1월 27일까지 유예된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법 적용을 더 유예할 수 있는 부칙 신설’, ‘최고안전담당자(CSO)가 선임된 경우 경영책임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규정 신설’, ‘형사 처벌 조항을 삭제, 경제벌(과징금)로의 전환’ 등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기재부, 노동부에 전달한 ‘중대재해법·령 개선방향’ 문건 공개…“부칙 개정해 50인미만 사업장 시행유예”>, 2022. 11. 02, 경향신문).]

 

17) 공안정국; 집권세력 내지 정부가 정치적 반대세력 탄압을 위하여 사회질서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발생한 것처럼 과장하여 조성한 보수적 국면의 정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18) 공안 조작 사건에서 프락치 짓을 한 김순호는 초대 경찰국장에 이어 올해 1월 경찰대학장에 임명되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

 

19) ‘북한 지령에 따라 국내 동향을 탐지해 북한에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반정부단체 ‘자주통일민중전위’(약칭 자통)를 수사 중인 공안 당국은 이 지하조직이 창원을 중심으로 전국 단위로 뻗어 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2023.01.11., ≪동아일보≫

 

20) 채만수, ≪노동자 교양경제학≫, 11강 국가독점자본주의 1.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와 국가독점자본주의, 노사과연, pp. 593-594.

 

21) “세계은행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큰 폭으로 낮췄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있던 2009년,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을 제외하면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계은행, 올해 경제성장률 1.7%로 하향…“침체 우려”>,  2023.01.11., ≪한겨레신문≫). 국내 경제성장률도 작년 말 OECD와 KDI(한국개발기구) 공히 1.8%를 전망했다.

 

22) 1878년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을 탄압하고 독일 내 사회주의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제정한 법.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의 당 조직들은 금지되었고, 간행물들은 모두 폐간되었으며 회합과 집회를 여는 것이 금지되었다.

 

23)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은 서슬이 퍼렇던 ‘독일의 국가보안법’의 시기, 맑스주의 원칙을 고수하며 당내 양대 흐름의 한 축이었던 개량주의 ‘라쌀레파’를 근절시키고 맑스, 엥엘스의 영향 하에 국내외적인 활동을 벌여 선전물의 제작 유통과 은밀한 회합, 집회를 성사시켰으며 의회 연단을 활용하여 사회주의를 선전하고 자본가들의 음모를 폭로하였다. 독일사회주의노동당은 탄압을 훌륭히 극복하며 오히려 당세를 확장하였다. 1871년 총선에서 얻은 2명의 의원과 10만의 득표가 1890년 법 폐기 후 총선에서는 35명의 의원과 150만 득표(19.7%)의 성과로 확대 되었다. 1890년 법은 폐지되고 독일의 노동자 인민은 비스마르크를 전복시켰다.―엥엘스 <독일에서의 사회주의>(1891년) 글 내용 발췌.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6권, 박종철 출판사, pp. 355-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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