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쏘련에서의 농업 정책의 제 문제에 대하여(1)

― 맑스주의적 농업 문제 연구자 회의에서 한 연설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 1929년 12월 20일부터 27일까지 쏘련 중앙집행위원회의 공산주의 아카데미가 소집한 농업 문제에 대한 맑스주의 연구자들의 전 연방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과학 연구 기관, 농업 대학 및 경제 대학, 잡지사 및 신문사 대표 등 302명이 참가하였다. 쓰딸린은 12월 27일 최종 본회의에서 “쏘련에서의 농업 정책의 제 문제에 대하여”를 연설했다.

 

[차례]

1. “균형”론 

2. 사회주의 건설에서의 “자연 발생”론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3. 소농 농업의 “안정성” 이론

4. 도시와 농촌

5. 집단 농장의 본질

6. 계급 변화와 당 정책의 전환

7. 결론

 

 

동지들, 현재 우리의 사회 경제 생활에서 모두의 관심을 끄는 주요 사실은 집단 농장 운동의 거대한 발전입니다.

 

집단 농장 운동의 현재적 특징은 과거처럼 개별 빈농 집단만이 집단 농장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중농도 대중적으로 가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집단 농장 운동이 근로 농민 일부 집단 및 계층의 개별적 운동에서 수백만 농민의 중심적 대중 운동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집단 농장 운동은 강력하게 성장하는 반부농 성격의 거대한 흐름입니다. 이것은 집단 농장 운동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부농의 반항을 쓸어버리면서 부농계급을 분쇄하고 농촌에서 광범위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주의 건설의 실천적 성과는 자랑할 만하지만 일반적으로 경제 분야, 특히 농업 분야에서 우리의 이론적 작업에서는 자랑스럽다 말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론적 사고가 우리의 실천적 성과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실천적 성과와 이론적 사고의 발전 사이에는 일정한 간극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론적 작업은 다만 실천적 작업에 보조를 맞출 뿐만 아니라 실천보다 앞서 나가면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서 실천하는 노동자들을 무장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여기서 이론의 의의에 대해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론의 중요성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참된 이론이라면 실천하는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방향성, 명확한 전망, 사업에 대한 확신, 우리의 대의가 승리한다는 신념을 줍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사회주의 건설 사업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반드시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바로 이 분야, 즉 우리 경제 문제를 이론적으로 밝히는 분야에서 우리가 뒤처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나라에서, 즉 우리의 사회 정치 생활에서 우리 경제 문제에 대한 각종 부르주아, 소부르주아 이론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이론과 사이비 이론이 아직도 적절히 반박되지 않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부르주아 이론과 소부르주아 이론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해독제인 맑스-레닌주의 정치경제학의 많은 기본적인 명제들이 잊히기 시작하고, 대중에 출판물로 보급되지 않고, 어떤 이유인지 전면에 배치되지 않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맑스-레닌주의 이론에 기초해서 부르주아 이론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하지 않고서는 계급적 적들에게 완전히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과연 이해하기 어렵습니까?

 

새로운 실천 경험은 과도기 경제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NEP 문제, 계급 문제, 건설 속도 문제, 농민과의 유대 문제, 당 정책 문제 등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천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연구를 새로운 정세에 맞게 즉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연구하지 않으면 실천하는 노동자의 머리를 부르주아 쓰레기로 채우는 부르주아 이론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연구하지 않으면 완고한 편견에 사로잡힌 부르주아 이론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론 영역에서 부르주아적 편견과 투쟁해야만 맑스-레닌주의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소위 이론이라고 불리는 이 부르주아적 편견 중에서 일부 특징을 알아보고, 우리 건설의 몇 가지 중심 문제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그 편견이 가지는 부당성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1. “균형”론

 

여러분은 물론 우리 인민 경제 부문들에서 소위 “균형”론이 공산당원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 이론은 물론 맑스주의와는 아무런 공통성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경 일탈자 진영에서 다수가 유포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 이론은 먼저 사회주의 부문이라는 말하자면 하나의 구분실 차량이 있고, 이에 더해 비사회주의 또는 원한다면 자본주의 부문이라는 다른 구분실 차량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 두 “차량”는 각기 다른 선로에 있으며 서로 닿지 않고 평화롭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기하학에 따르면 평행선은 만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이론의 저자들은 이 평행선이 결국은 만날 것이고 그때 우리는 사회주의를 이룰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 이론은 소위 “구분실 차량” 뒤에는 계급이 있으며, 이 “차량”의 동력은 치열한 계급 투쟁, 생사를 건 투쟁, “누가 누구를 이길 것인가?”라는 원칙에 따른 투쟁이 있다는 사실을 묵살합니다.

 

이 이론이 레닌주의와 어떤 공통성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이 이론의 목적은 개인농의 지위를 옹호하고, 집단 농장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부농을 “새로운” 이론적 무기로 무장시키며, 집단 농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이 여전히 우리 출판물 속에 널리 유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론가들이 이 이론에 대해 치명적인 반박은 고사하고 이렇다 할 반박이라도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우리의 이론적 사유에 대한 후진성에서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필요한 모든 것은 맑스주의 보물고에서 재생산 이론을 가져와 재구성하고 부문별 균형 이론을 대치하여 균형 이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맑스주의 재생산 이론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매년 축적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으며, 매년 확대 재생산이 없으면 축적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명확하고 당연합니다. 우리의 대규모 집중화된 사회주의 공업은 맑스주의적 확대 재생산론에 따라 발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매년 그 규모가 커지고 있고, 자체의 축적을 이루고 있으며, 큰 폭으로 전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규모 공업이 우리 인민 경제의 전부는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 경제는 아직도 소농 경제가 우세합니다. 우리 소농 경제가 확대 재생산의 원칙에 따라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소농 경제는 대부분 매년 확대 재생산은 고사하고 단순 재생산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소농의 농업 기반을 가지고 우리의 사회주의 공업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겠습니까? 소농 경제는 확대 재생산을 할 수 없는데 우리 경제의 지배적인 기반입니다. 이런 소농 경제로는 사회주의 공업을 가속화할 수 없습니다. 쏘비에트 권력과 사회주의 건설 사업이 언제까지나 서로 다른 두 가지 토대 위에 놓여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는 가장 규모가 크고 집중화된 사회주의 공업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분산되고 후진적인 소상품 소농 경제라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토대에 의거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 안 가 인민 경제 전체는 완전한 붕괴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탈출구는 무엇입니까? 탈출구는 농업의 대규모화입니다. 그리하여 농업에서 축적과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게 하여 인민 경제의 농업 토대로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농업을 어떻게 대규모화할 것입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본주의 방식입니다. 이는 자본주의를 농업에 이식시켜 대규모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농민을 빈곤하게 하고 농업에서 자본주의적 기업의 발전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쏘비에트 경제와 양립할 수 없는 이러한 방법에 반대합니다.

 

다른 방법은 사회주의 방식입니다. 이는 농업에 집단 농장과 국영 농장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소농 농장을 통합하여 대규모 집단 농장으로 유도하는 것입니다. 집단 농장은 기계와 과학적인 농사 방법을 사용하여 더 발전할 수 있으며 확대 재생산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자본주의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인가의 양자택일입니다. 제3의 길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균형” 이론은 제3의 길을 제시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바로 제3의 (존재하지 않는)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유토피아적이고 반맑스주의적입니다.

 

그러므로 알다시피 필요한 모든 것은 부문별 “균형” 이론을 맑스의 재생산 이론으로 바꾸어 균형 이론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맑스주의 농업 문제 연구자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 겁니까? 어리석은 “균형” 이론이 출판물을 장악하고 있고 맑스주의 재생산 이론은 파묻혀 있는 사실은 누구에게 이익이 되겠습니까?

 

 

2. 사회주의 건설에서의 “자연 발생”론

 

이제 정치경제학의 두 번째 편견, 부르주아 유형의 두 번째 이론을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사회주의 건설의 “자연 발생” 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 이론은 맑스주의와 공통점이 없지만 우리 우파 동지들이 열렬히 옹호하고 있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의 입안자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우리나라에 자본주의가 존재했고,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공업이 발전했고, 농촌이 자본주의 도시를 자연스럽게, 자동적으로 따라가면서 자본주의 도시의 이미지로 변모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일이 자본주의하에서 일어난 일인데, 왜 쏘비에트 경제하에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왜 농촌, 즉 소농 농업이 사회주의 도시를 자동적으로 따라 사회주의 도시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변모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근거에서 이 이론의 입안자들은 농촌이 사회주의 도시를 자동적으로 따라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깁니다. 즉 국영 농장과 집단 농장을 조직하는 데 신경 쓸 의미가 있습니까? 농촌이 어쨌든 사회주의 도시를 따라갈 수 있다면 이것 때문에 논쟁할 의미가 있습니까?

 

바로 이것이 객관적으로 집단 농장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농촌의 자본주의 요소들에게 새로운 무기를 공급하는 또 다른 이론입니다.

 

이 이론의 반맑스주의적 성격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론가들이 우리 집단 농장의 실천하는 노동자들의 머리를 쓰레기로 채우고 있는 이 이상한 이론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소농적 개인주의 농촌에서 사회주의 도시의 주도적 역할이 크고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 농업을 변화시키는 공업의 역할이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요소만으로 사회주의 건설 사업에서 농촌이 자동적으로 도시를 따르는 근거로 충분합니까? 아닙니다. 충분하지 못합니다.

 

자본주의하에서 농촌이 자동적으로 도시를 따라간 것은 도시의 자본주의 경제와 농민의 소상품 경제가 근본적으로 동일한 경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상품 경제는 아직 자본주의 경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소상품 경제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와 동일하게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레닌은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레닌은 부하린의 ≪과도기 경제≫에 대해 논평하면서 “농민의 상품-자본주의 경향”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주의 경향”[1]≪레닌 선집≫ 제11권, p. 368 참고.과 대립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소생산이 끊임없이 매일 매시간 자연 발생적으로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를 대규모로 창출하는”[2]≪레닌 전집≫ 제31권(러시아어 제4판), pp. 7-8 참고.(레닌) 이유입니다.

 

소상품 농민 경제가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적 생산의 도시 경제와 같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맑스주의와 결별하지 않고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레닌은 “우리가 소농 국가에서 살고 있는 한 러시아에는 공산주의보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기반이 더 튼튼하다”[3]≪레닌 전집≫ 제31권(러시아어 제4판), p. 483 참고.와 같이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에서 “자연 발생”론은 쓸모없는 반레닌주의 이론입니다. 사회주의 도시는 소농민의 농촌을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직 집단 농장과 국영 농장을 도입하여 농촌을 사회주의 형태로 변화시킨 이후에나 가능합니다.

 

우리 농업 이론가들이 아직까지 사회주의 건설에서 반맑스주의적 “자연 발생”론을 제대로 격파하지 못한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1929년 12월 27일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레닌 선집≫ 제11권, p. 368 참고.
2 ≪레닌 전집≫ 제31권(러시아어 제4판), pp. 7-8 참고.
3 ≪레닌 전집≫ 제31권(러시아어 제4판), p. 483 참고.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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