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료] 고 정우형을 기리며

 

권영국

| 삼성전자서비스 고 정우형 열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어려운 싸움이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고 정우형 노동자(고인)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실감이 났습니다.

춥고 외롭고 긴 싸움…

 

지난 2월 24일 고인은 자결한 지 289일 만에야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역에 묻혔습니다.

 

고인은 ‘삼성노조파괴 공작의 희생자’로서 피해 회복을 요구하다, 지난해 5월 12일 원직복직이 새겨진 삼성전자서비스 해복투 조끼를 입은 채 “투쟁, 결사투쟁”으로 맺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습니다.

 

289일 동안의 장례 투쟁은 내가 겪은 것 중 최장의 장례 투쟁입니다.

무려 4계절이 바뀌었습니다. 봄에 시작된 싸움이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오는 문턱에서야 끝이 났​습니다.

 

고인의 죽음은 자신들과 관계없다는 견고한 삼성의 모르쇠와 무도함 앞에서 그 긴 시간 유족이 견뎌야 했을 암담함은 어떠했을까? 순간순간 몰려드는 절망을 어떻게 견뎠을까?

 

노조와 동료들이 등을 돌린 상태에서 고인의 배우자와 2인의 삼성전자서비스 해고자들이 삼성이라는 초국적 기업을 상대로 한 투쟁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미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게다가 고인이 유언으로 남긴 삼성노조파괴 공작(일명 ‘그린화 작업’)에 대한 피해 회복 주장이 타당한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는 해고된 것이 아니며 억대 금품을 받고 퇴사를 한 것이라는 풍문이 파다히 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몇 해 전 앞서 있었던 다른 삼성 계열사 해고노동자의 고공농성 투쟁과, 돈으로 엿 바꿔 먹은 이전투구의 결말, 그로 인해 삼성 투쟁에 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느낀 배신감이 삼성 싸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인의 부인과 고인과 함께했던 삼성전자서비스 해복투 해고노동자들은 고인의 퇴사는 당시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노조활동으로)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있던 그를 회사로부터 분리시키려고 한 회사의 그린화 공작에 따른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정우형 노동자의 열사 투쟁에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고인이 자결한 당시 나는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 노동자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해결촉구 투쟁에 유족 대리인으로 참여하고 있었기에 고 정우형 님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다녀온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난해 6월 동국제강 산재사망에 대한 회사의 공개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이 담긴 합의를 하고 장례를 치른 후 정우형 열사 대책위로부터 참여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고인의 배우자는 고인이 몸담았던 관련 노조와 여러 단체들을 방문해 남편의 죽음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한 투쟁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시원하게 답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나 또한 고인의 억대 금품설과 퇴사 풍문 때문에 머뭇거렸습니다.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은 최소한 인도적인 차원에서 유족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대책을 세우자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주변에 의견을 구하니 대부분 관여하지 말라는 충고였습니다.

 

그러나 고인이 남긴 “투쟁, 결사투쟁”은 생전에 풀 수 없었던 한을 담은 것임이 분명한데 외면하는 것이 인도적인 것인가? 최소한 유족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모두 외면한다면 유족은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고민스러웠습니다. 일단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소속 수리기사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과 불법파견 소송을 시작하고 지원했던 나는 사건의 전후사정을 확인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하고 대책회의에 참여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먼저 의문을 풀어야 했습니다. 유족을 만나 억대 금품설의 진위를 가릴 수 있도록 고인의 협력업체 퇴사 당시 합의서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유족은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합의서를 내개 공개해 주었습니다. 합의서는 2016년 1월 고인의 부인과 고인이 속해 있던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협력업체 사장의 이름으로 서명되어 있었고, 내용은 위로금을 받고 퇴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위로금은 협력업체 퇴사에 따른 퇴직금 수준의 금액이었습니다. 억대 금품설은 뜬소문이었고 허구였습니다. 고인의 부인은 (2015년 5월 남편이 천안센터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맞서 음독을 시도한 후) 남편의 상태가 매우 위험해 보여 그곳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합의에 임했다고 당시 심경을 고백했습니다.

 

삼성의 노조파괴 공작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고인의 퇴사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2019. 7. 2.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혐의 공판기록에 따르면, ‘그린화 작업’의 대상으로 정우형의 이름이 등장하고, 삼성전자서비스 상생지원팀 상황실에서 근무한 서 아무개 씨는 검찰에서 “자살 시도한 고위험군 인력 정우형을 퇴사시키도록 상황실에서 개입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고인의 부인과 천안센터 사장의 이름으로 작성한 고인의 협력업체 퇴사 합의는 그린화 전략의 일환으로 삼성전자서비스 상생지원팀이 개입한 결과임이 확인됐습니다.

 

삼성노조파괴 공작의 책임자들은 이재용을 제외하고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총 32명이 처벌을 받았습니다. 2020. 5. 6.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관련 뇌물공여와 횡령 등 혐의로 자신에 대한 사법적 처벌이 임박해 오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임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동안 삼성의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습니다.”

 

하지만 노조활동에 앞장서다 노조파괴 공작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해 어떠한 피해회복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는 경영권 불법승계와 노조파괴 범죄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면책받기 위한 기만적인 사과였습니다.

 

이에 2020년 9월부터 삼성전자서비스 해복투 소속 해고노동자들은 복직을 요구하며 전국 순회투쟁을 전개했고, 고인은 2021년 8월 전국 도보 순회투쟁에 함께 나섰습니다, 2022년 4월, 고인은 삼성 노조파괴 공작의 피해자로서 가해 책임자인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편지를 발송했으나 수취마저 거절당했습니다. 고인은 편지에서 “우리가 노조파괴 공작의 희생자이다”라며 “일감 줄이기로 직장을 떠나게 만들고, 위장폐업으로 거리로 내몰고, 노조 한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자행한 당신들의 범죄, 그 범죄를 만천하에 공표하고, 제대로 사과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고인은 뜻을 이루지 못하자 2022. 5. 12. “내 죽거든 화장하여 동지들에게 한 줌씩 나눠주어 삼성에 뿌릴 수 있게 부탁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습니다. 그리고 유서 끝에 “투쟁, 결사투쟁”이란 여섯 글자를 적었습니다. 고인은 삼성 노조파괴 공작의 피해자로서 삼성자본에 맞서다 스스로 목숨을 던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 조용했고, 사람들은 일상에 바빠 스쳐 지나쳤으며, 한때 알던 이들도 차갑게 외면했습니다.” (허영구 공동대표 조사에서)

 

1주일에 한 번 개최되는 수요문화제에 20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이 바벨탑 같은 삼성서초사옥 빌딩 앞에 모여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투쟁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초라하고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고인의 배우자는 조금만 무리해도 온몸에 통증으로 움직이기 힘든 지병에 매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고통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성서초사옥 앞 분향소를 철거하라는 법원의 가처분결정마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유족과 해고자 2인은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눈물로 각오를 다지고 서로 격려했습니다. 투쟁은 외로웠지만 의지만은 강고했습니다. 연대 동지들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싸움의 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대책위가 연대 단위를 확대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자, 286일째가 되는 지난 2. 21. 마침내 삼성은 유족의 요구를 수용하고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 삼성은 지난해 12월 협상에 임하면서도 장례사항만을 유족과 비공개로 협의하겠다고 고집했으나 유족은 이를 물리쳤습니다. 합의서에 “고인이 생전에 회사에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에 응답하는 과정으로서 합의한다”고 명시했습니다. 고인의 죽음을 자신들과 무관한 것처럼 애써 외면하던 삼성으로 하여금 “우리가 노조파괴 공작의 희생자”라며 원직복직을 요구하던 고인의 메시지에 응답하게 만든 것입니다.

 

합의서에는 고인의 유지에 응답하는 것으로 하여 회사의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 금지와 (해고자 관련) 근로자지위확인소송 상고심 판결 준수, 그리고 유족 위로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유족이 받아낸 합의는 많이 미흡해 보일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고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배우자와 삼성전자서비스 해고자 2인이 굴하지 않고 버텨낸 눈물겨운 성과입니다. 남은 그들이 고인과 그의 죽음을 세상 속으로 끌어올려 당당하게 만들었습니다.

 

고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포기하지 않은 유족과 해고자 두 분께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정우형 노동자여, 열사의 묘역에서 고이 잠드소서!

 

2023. 2. 26.

정우형 삼우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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