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현장: 소성리 소식] 우리에게 투쟁 말고 뭐가 있나!

 

은영지 | 회원

 

* 이 글은, 지난 1월 26일(목)에 있었던, ‘2021년에 이어 262번째, 불법 사드 기지 완성 작업과 육로 병참선 확보 저지 투쟁’ 현장을 담은 것입니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한파가 들이닥쳤지만 소성리엔 예외 없이 군경 작전이 펼쳐졌다. 연휴 바로 다음 날 사드 기지 정상화 작업한다고 공사 차량이 들어왔고 사드 운용을 위한 유류 차량들이 줄지어 진입, 이를 막으려는 할매들을 경찰들이 고착시키고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다. 유류 차량의 뒤를 따라 교대 근무하는 미군을 실은 대형 버스가 들어와 더욱 화나게 했다. 힘없고 여린 할매들의 외침과 울부짖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 앞길을 지나 유유히 불법 사드 기지로 들어가는 미군 버스를 지켜보는 일은 최악이었다. 유류 차량과 미군 수송 작전은 연대자들의 발길이 끊기고 할매들만 계신 낮 시간을 이용해 들어오는 기만성과 치밀함을 보였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주민의 반대를 묵살한 채 가짜 주민을 내세워 밀실에서 졸속으로 처리한 사드 기지 환경 영향 평가 초안도 지난 12일 완성 단계에 들어갔다. 입만 벌리면 법치니 공정이니 떠벌리지만 몰역사 인식에다 몰염치, 민주주의 기본도 모르는 법 기술자 집단인 윤석열 정권의 행태에 노동자ㆍ민중의 삶은 그야말로 지옥이었고 8년째 사드 철거 투쟁을 하고 있는 소성리ㆍ김천 주민들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26일 새벽에도 소성리 주민들은 매서운 추위와 윤석열이 보낸 경찰의 횡포에 맞서며 ‘올해는 반드시 사드 뽑는다’는 각오로 평화 행동을 했다.

성주대책위 이종희 공동위원장이 모두에게 기운을 불어넣는 힘찬 발언으로 포문을 열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어요. ‘우리 소성리 주민들을 도대체 누가 진짜 거리로 내몰았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태원 10ㆍ29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해 주더라고요. ‘김산하’라는 고인이 된 젊은이의 엄마가 49재 때 자식을 보내면서 영전 앞에서 읽은 조사가 정말 공감이 됐어요.

 

“산하야!! 네가 간 그 세상에서는 짓밟히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고 보고 싶은 거 보고 좋은 거 보고 부디 재미있게 건강하게 살아라. 미안해!”

 

그러고 분노하면서 그랬습니다. 총리가 국가가 일대일 맞춤형 돌봄이를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자기 딸을 찾으려 하니 전화도 받지 않아 스스로 뉴스 보고 올라가서 온 병원 다 뒤져 딸을 찾게 만들고, 유족들 간 소통을 하려고 해도 국가가 엉터리 같은 사생활 보호라는 미명하에 언론을 차단시켰다고 합니다. 책임은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변명, 거짓말로 일관한 이 국가에 대해서 분노한 나머지 그 엄마는 투사가 됐다고 합니다. (ㅠㅠ)

 

이를 우리 소성리와 비교해 봤습니다. 이 빌어먹을 정치인 새끼들은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어요. 사드 들여올 때 황교안 새끼가 성주 군청에 와서 주민들이 반대하면 사드 배치 않겠다고 약속을 했지 않습니까. 국민들한테 권력자가 지껄이는 그 입은 못 배워서도 아니고 평생 권력만 쫓아다녀요. 특히 검사 새끼들은 권력만 찾아다니니 정의라곤 없어. 지금 윤석열이 하는 꼬라지 보면 딱 그래. 이번에는 중동 가서 엉터리 같은 얘기해 놓고 국민들한테 바짝 엎드려 미안해하거나 자기는 이런 뜻으로 얘기하려고 했는데 어쨌든 입이 째져가 그리 나왔다 하면 될 것인데 국민들이 자기를 폄하한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딸을 여읜 그 엄마는 평생 주부로서 TV 뉴스에서 데모나 시위하는 거 보면 채널을 돌린 사람이었는데 정부가 하는 짓을 보고 거리의 투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소성리 주민들, 우리 동지들도 안 그렇습니까. 주민들이 반대하면 사드 배치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었고 소규모 환경 영향 평가를 할 때도 그러했습니다. 소규모 환경 영향 평가가 빚어낸 잘못을 하나씩 하나씩 주민과 소통하면서 일반 환경 영향 평가를 하겠다고 문재인 정부가 약속을 해 놓고 주민을 배신했죠.

씨발 놈들! 지금이라도 전부 다 찾아가 아가빠리[입]를 벌리가[벌려서] 자갈을 쑤셔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죠. 사람이기를 포기한 놈들!!

 

제가 속이 상합니다. 눈앞에 닥쳐 있는 현안을 당장 회피하기 위해서 국민을 팔고 거짓말하고 언제까지 이 악순환을 계속 반복할지… (ㅠ)

우리가 한번 그 쇠사슬을 끊어 봅시다. 계속 이어져 온 70년 넘은 해묵은 국가 권력의 이 민낯을 우리 소성리가 선봉에 서서 본때를 보여 줍시다. 국가가 잘못하면 권력을 휘두른 새끼는 물론이고 거기에 복무한 새끼들도 모조리 참형당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비로소 나라 같은 나라, 국가가 국민을 섬기는 반듯한 나라가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또 하나 말씀드릴 건, 어제 손석희 아나운서가 우크라이나 현장에 가서 특파원 형식으로 보도하는 걸 봤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 있더라고요. 독일이 통일될 때 미국과 러시아[당시 쏘련]가 약속한 게 있어요. 베를린 장벽을 단 1cm라도 동진하지 않겠다, 물리지 않겠다, 러시아 쪽으로 1cm도 다가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미국이 러시아한테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미국의 극비 문서에 게재되어 있고 지금은 타계한 고르바초프가 실제 대통령 권좌에서 물러나고 나서 “미국을 믿었던 게 잘못이다”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이름이 생각 안 나는 한 인류학자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범을 러시아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결국 나토의 팽창 정책이다.” 이래 정의하고 있습니다. 저도 상당히 공감하는 부분이었어요.

 

러시아는 두려웠기 때문에, 자기 문 앞에 미사일이 와 있는 거 용인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경고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푸틴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즉 힘의 균형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데 전범 국가인 독일을 두 동가리[도막] 내서 전쟁을 막고자 한 그 당시의 합의를 깨고 다시 미국이 “절대로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깸으로 해서 많은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고 러시아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형국이 되니 균형이 깨진 것을 만회하기 위한 하나의 행동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2만 명 이상이나 죽었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죽어야 할지 모릅니다. 2만 명이라는 생명은 엄청난 숫자이고 안타까운 그 죽음은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이 될 수도 있습니다. (ㅠㅠ)

 

이걸 놔두고 평화니 경제니 혁신이니 하는 건 다 가증스러운 얘기입니다. 저는 윤석열 정부가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고 미국의 군비를 한반도에 계속 갖다 놓는 참사를 저지르지 말고 지금이라도 북한 지도자를 만나서 두 손 맞잡고 전쟁의 기운을 없애고 미래 후손들을 위해서 남북 평화와 따뜻한 한반도를 만드는 일을 궁리하는 그런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진정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이 더 문제입니다. 늘 그래 왔습니다. 늘 북한을 팔아서 자기 집권의 정당성을 외치는 저 어리석은, 실체도 없고, 정체성도 없는 그런 정당이 지금 한나라당[국민의힘] 인간들이에요. 언론도 불의한 정권의 입노릇만 하지 대그빠리[머리]도 없고 영혼도 없어요. 그 언론도 우리가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야 합니다.

 

미국은 올해 들어 총기 사고로 벌써 20명인가 죽었대. 총기 규제에 대해서 아무리 입법 발의해도 총 만드는 새끼들과 로비스트들이 반대해서 아직도 총을 소지하고 있는 걸 법으로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런 나라가 ‘세계 경찰’이라고 자처하며 전 세계를 다니며 온갖 분탕질을 일삼고 있어요. 저 미국 놈들 제정신이 들도록 할 수 있는 것도 깨어 있는 우리 민초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기 어려운 이 겨울 한파에도 뜨거운 열기로 싸우면서 저들을 규탄하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굴하지 않고 이길 때까지 싸우면 반드시 사드 뽑고 평화를 이루는 소성리, 한반도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투쟁!

 

이 위원장의 명연설로 바닥까지 내려갔던 자신감이 솟구쳤다. 이어 강현욱 교무가 이끄는 원불교 기도회에서 이 땅의 평화를 빌었고, 백창욱 목사가 주관하는 개신교 기도회에서 그 간절함이 고조되었다. 백 목사의 발언이다.

 

 

오늘 우리 사회가 왜 이 모양일까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에 저는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구한말 조선 왕조가 망한 이후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인 한국 근대사에 관심이 많아요.

 

일제 식민지 시절 우리의 독립운동에는 세 가지 방향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이승만의 외교 독립론이고, 두 번째는 안창호가 대표하는 실력 양성론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가 된 건 실력이 없기 때문이니 지금부터라도 실력을 키우자 하며 안창호는 독립 투쟁 방향으로 실력 양성론을 외쳤습니다. 세 번째 독립론은 무장 투쟁 독립론이 있습니다. 이걸 대표하는 사람이 리동휘라는 분입니다. 연해주와 북간도에서 활동한 독립운동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이 분의 사진을 보면 코에 카이젤 수염을 기른 멋진 풍채를 가진 우람한 분입니다.

 

실제로는 어떻게 됐습니까? 세 가지가 다 안 됐습니다. 결론적으로 대세를 이룬 게 뭐냐면 이승만의 외교 독립론이었습니다. 이승만은 상해 임시 정부나 구미 대표부에 나가 나중에 혼자 독고다이로 활동했지만 끝없이 우리가 외교로 독립을 얻어야 한다는 논조가 주류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전혀 된 게 없습니다. 이승만의 외교 독립은 성과를 이룬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해방 이후에 딱 한 번 이승만의 외교가 성공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단독 정부론은 해방 이후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제 갈 길을 가자 하는 거잖아요. 미쏘 공동위원회 결렬 후 이승만이 전북 정읍에서 한 시국 발언에서 우리도 단독 정부로 가야 된다는 말을 했어요. 그 뒤 이승만이 미국에 가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단독 정부 요청을 했는데 그게 처음으로 미국의 승인을 받았어요. 그러니 미국 놈들이 한국을 대하는 입장이 어떤지 잘 알 수 있죠.

 

왜냐하면 상해 임시 정부 때 김구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한테 끊임없이 상해 임시 정부를 유일한 정부로 승인해 달라, 우리에게 무기를 달라, 이 두 가지를 요청했는데 루즈벨트가 그걸 끝끝내 거절했어요. 그러고 나서 우리가 해방을 맞이했거든요. 우리는 국제 사회의 정부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일본에 편입돼 있는 상태에서 패전국이 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해 임시 정부와 김구, 미국에 있는 이승만이 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정부가 없기 때문에 비극을 겪었지만 이승만이 단독 정부론을 미국에 요청했을 땐 그거 하나는 유일하게 승인을 받은 거죠.

 

미국의 침략 야욕과 검은 속내를 잘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었다. 발언은 이어졌다.

 

미국은 1905년 일본과 맺은 카츠라-태프트 밀약 때부터 조선에 대해서 철저하게 자기들 입장으로만 대상화하는 것이 그렇게 지금까지 100년 넘게 이 상태로 오고 있는 거예요. 철저히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을 요리해 왔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교 독립론은 그렇게 우리한테 쓴맛을 남겼고, 실력 양성론은 그냥 그렇다고 치고, 제가 제일 아쉬운 건 무장 투쟁 독립론이 잘 안된 거였어요.

 

정말 리동휘 선생님의 주장대로 독립 무장 투쟁으로만 계속 갔더라면 1919년 3ㆍ1 운동 이후에 상해 임시 정부가 생기고 연해주뿐만 아니라 북간도 등에 여러 임시 정부가 생겼을 그때부터라도 우리가 무장 투쟁에 전력을 다했다면 우리의 해방이 더 빨리 당겨졌을 것이고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예.)

아무 소득 없는 외교에 매달리면서 모든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고 실속 있고 알차게 일제 놈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게 무장 투쟁 말고 뭐가 있겠습니까? (맞아요.) 그때부터 착실하게 준비해 왔으면 우리가 정정당당하게 승전국이 됐을 거고 분단도 안 겪었을 겁니다.

 

일제 때 우리가 무장 투쟁론을 착실하게 키우지 못한 대가가 우리에게 지금까지 이렇게 쓰라리게 안겨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사드 철거 투쟁을 독립 투쟁론과 견주어 봤을 때 우리가 미국과 외교를 잘하면 사드가 철거될까요? (아뇨.) 예~ 개뿔이죠.

그 다음 실력 양성론은 필요한 얘기이지만 실력을 양성할 때까지 우리가 가만히 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투쟁도 하고 실력도 같이 키워야 하는 거죠. 정말로 우리가 필요한 건 일제 때의 무장 독립 투쟁처럼 지금 여기서 소성리를 기반으로 해서 투쟁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됐죠? 투쟁하는 거 말고 사드를 철거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 아무리 생각해도 투쟁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투쟁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외교에만 매달리는 건 공염불입니다. 또한, 가만히 있으면서 실력을 키운다고 공부만 해 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차가운 겨울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우리가 이 자리를 지켜서 투쟁하는 거 아닙니까? 미군 새끼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끝까지 따라붙어 “US 퍼큐”를 외치고 “겟 아웃 양키”를 외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모든 여건과 상황이 돼서 우리의 뜻을 이룰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딱 그거거든요. 헤롯왕이 예수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여기를 피하십시오. 그랬더니 예수가 뭐라고 말을 하냐면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나는 내 길을 가겠다.” 정말 멋지고 딱 맞는 말 아닙니까? (아멘.)

 

“사드 철거 그거 되겠어? 그래서 언제까지 할 건데? 한미 동맹이 신줏단지처럼 있는데…”라는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이가 있지만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우리 길을 갈 뿐입니다. 사드를 철거시키는 그날까지…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묵묵히 갈 때 그 뜻도 가까워지지 않겠습니까? (아멘.)

 

백 목사의 설교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고 마음을 울렸다. 그는 얼마 전 걸린 코로나 후유증으로 간간이 기침을 하면서도 끝까지 열변을 토해 냈다. 그때쯤 길 위에 앉아 있던 대부분의 지킴이들은 길 밖으로 끌려 나갔지만 “사드 빼라, 미군 빼라, 경찰은 부역 행위 그만두고 나가라, 소성리는 주민의 땅이다, 우리가 평화다”라고 참석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기세가 꺾일 줄 모르는 북극 한파로 모두의 몸은 꽁꽁 얼어 있었지만 마음만은 평화와 자주에 대한 열망으로 후끈거렸다. 마을 입구에서 희미하게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아침 속으로 묵묵히 가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맞이할 것이다. 백 목사님 예언대로 투쟁만이 그 길을 열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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