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론] 파씨즘국가와 통일전선(2)―혁명 전술(방법)로서의 통일전선

 

권정기 | 편집위원

 

 

필자는 지난 ≪정세와 노동≫ 제187호(2023년 1월)에서 “파씨즘국가”에 대해 다루었다. 이번 호에는 “반파씨즘 통일전선”에 대해 다룬다.

 

 

1. 전술로서의 통일전선

 

일반적으로 통일전선은 여러 계급들, 혹은 그 계급의 분파들이,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조직의 독자성을 유지한 채, 연합하여 공동의 적에 맞서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대표적인 것은 춘추전국 시대 말기에 “합종연횡”이 있다. 강대한 진나라에 맞서기 위해서, 여러 소국가들이 힘을 합치고(“합종”), 진나라도 역시 타국과 연합(“연횡”)하여 이에 맞섰다. 최근 부르주아 선거, 민주노총 선거 등에서도 여러 집단ㆍ계파들이 이합집산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모두 일종의 통일전선 전술이다. 정치란 “계급들 간의 관계”[1]지배계급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억압관계, 지배계급 내부 분파들의 경쟁관계들을 생각해 보면 된다.(레닌)이므로 통일전선이란 정치의 본질적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통일전선 전술이라고 부른다. 통일전선은 전술[2]전술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의회 전술과 비의회 전술(거리 투쟁, 폭동, 무장봉기), 합법-반(半)합법-비합법 전술, 퇴조기 전술, 고양기 전술 등등.의 하나라는 의미이다. 전략과 전술의 의미를 살펴보자.

먼저 전략과 전술을 운용할 주체가 존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물론 노동자계급과 그 지도부로서의 혁명적 당이다. 이것이 없는 전술은 공허하고 막연하다.[3]혁명적 당이 없는 한국에서, 혁명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논하는 것은 그만큼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에서 봉건제(짜르 황제 체제)를 타도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이루기 위한, “1905년 혁명” 중에, 레닌은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두 전술≫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사회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당에 있어서의 완전한 계급적 독자성의 필요성을 직언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공산주의자: 인용자][4]이하 인용문에서 [ ]는 필자가 추가한 것이다.가 “인민”을 “계급”들로 구분하는 것은, 선진적인 [노동자]계급이 그 자신의 내부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스스로를 협소한 한계 내로 제한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며, 세계의 경제적 지배자들이 물러날까 두려워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중간계급들의 동요, 소심, 우유부단으로 고통당하지 않는 선진적인 계급이 전체 인민의 선두에 서서, 전체 인민의 대의를 위해 더욱더 커다란 에너지와 열정으로 투쟁하기 위해서이다.[5]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전술≫(≪레닌 저작집≫ 제3-2권), 김탁 역, 전진 출판사, 1990, p. 242.

 

1905년 당시의 러시아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고, 부르주아지(입헌민주당), 농민(사회혁명당), 노동자계급(볼쉐비끼와 멘쉐비끼)이 봉건적 황제 체제와 싸우고 있었다. 노동자계급과 당은 “완전한 계급적 독자성”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자신의 내부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스스로를 협소한 한계 내로 제한시켜서”, 가령 정치 문제는 부르주아지에게 맡기고, 경제적 실리(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를 챙기는 데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또한 당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노동자계급이 주도하게 되면, “세계의 경제적 지배자들”, 즉 자본가계급이 당면의 부르주아 혁명에서 “물러날까 두려워해서도 아니다.” 바로 “선진적인 계급”으로서 노동자계급이 “전체 인민의 선두에 서서, 전체 인민의 대의를 위해 더욱더 커다란 에너지와 열정으로 투쟁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전체 인민의 선두에 서서, 그들을 투쟁으로 이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전략적으로 계급동맹이고, 전술적으로 통일전선이다. 당의 지도하에 독자적으로 조직된 노동계급이 없는 상태에서, 혁명적 전략ㆍ전술을 논하는 것은, 주력 부대도 없이 전쟁을 하겠다는 것과 같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략을 살펴보자. 다음은 쓰딸린의 ≪레닌주의의 기본에 대하여≫에서의 서술이다.

 

혁명의 단계들과 전략. 전략은 혁명의 소여 단계의 토대 위에서 노동계급이 가할 주되는 타격 방향을 규정하는 것이며, 혁명 역량(주되는 예비군과 부차적 예비군[6]여기서 예비군은 혁명에 나설 수 있는 세력을 의미하고, 1군은 노동자, 2군은 농민 등으로 이해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을 배치할 적절한 계획을 작성하는 것이며, 혁명의 전 기간에 걸쳐서 그 계획을 실시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우리 혁명은 두 단계를 거쳤고…

첫째 단계[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1903년-1917년 2월. 목적은 황제 제도를 전복하고 중세기적 유물을 완전히 청산하는 것이었다. 혁명의 기본 역량은 노동계급이었다. 가장 가까운 예비군은 농민이었다. 주요한 타격 방향은, 농민을 전취하려고 하며, 황제 제도와의 타협에 의하여 혁명을 청산하려고 하는 자유주의적-군주주의적 부르주아지를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역량 배치 계획은 노동계급이 농민과 동맹하는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는 폭력으로 전제 제도의 반항을 분쇄하며, 부르주아지의 불견실성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농민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서, 민주주의적 변혁을 끝까지 수행하여야 한다.” (레닌, 제8권, 96페이지를 보라.)

둘째 단계[사회주의 혁명]. 1917년 3월-1917년 10월. 목적은 러시아의 제국주의를 전복하고, 제국주의 전쟁에서 벗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혁명의 기본 역량은 노동계급이었다. 가장 가까운 예비군은 빈농이었다. … 주요 타격 방향은 근로 농민 대중을 전취하려고 하며, 제국주의와 타협하여 혁명을 끝장내려고 하는 소부르주아 민주파(멘쉐비끼, 사회혁명당)를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역량 배치 계획은 노동계급이 빈농과 동맹하는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는 폭력으로 부르주아지의 반항을 격파하며 농민과 소부르주아지의 불견실성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주민 중의 반(半)프롤레타리아적 분자[7]반(半)프롤레타리아적 분자: 농민을 포함한 소부르주아지 중에서, 소득이 부족하여 노동자 생활까지 부분적으로 하는 사람들. 최근에 자영업자가 … Continue reading들의 대중을 자기편에 끌어들이면서 사회주의적 변혁을 수행하여야 한다.” (같은 곳을 보라.)[8]쓰딸린, ≪쓰딸린 선집≫ 제1권, 조선 로동당 출판사, pp. 335-336. (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

 

1차 혁명에서 “노동계급이 농민과 동맹”, 2차 혁명에서 “노동계급이 빈농과 동맹”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각각의 혁명의 전 기간에 걸쳐서, 즉 전략적 수준에서 노동계급과 농민, 노동계급과 빈농은 한편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계급들 간의 연합은 계급동맹이라고 규정한다.

다음으로 전술을 보자.

 

운동의 고조 및 퇴조와 전술. 전술은 운동의 고조와 퇴조, 혁명의 앙양과 쇠퇴의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노동계급의 행동 방침을 결정하는 것이며, 투쟁과 조직의 낡은 형태를 새 형태로 바꾸며, 낡은 구호를 새 구호로 바꾸며, 또 그 형태들을 결합하는 등으로 그 방침을 수행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 전술은 전략의 일부분이며 전략에 종속되며 전략에 복무한다.[9]같은 책, p. 336.

 

전술은 시시각각 변하는 정세에 조응하여 투쟁 방침을 결정하는 것, 즉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노동계급의 행동 방침을 결정”하는 것이다.

1920년 당시에, 영국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레닌의 권고에서 통일전선 전술을 살펴보자. 영국에서는 소규모 정치 조직들(영국 사회당, 사회주의 노동당, 남웨일즈 사회주의협회, 노동자 사회주의 연맹)이 공산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의회에 참여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충돌했다.

당시의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당면 과제를 레닌은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중요한 일 …, 곧 노동계급의 전위를 끌어들여 의회주의에 맞서 쏘비에트 권력 쪽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쪽으로 넘어가도록 하는 일은 이미 이루어졌다. 이제는 모든 노력과 모든 주의를 다음 단계에 집중시켜야 하는데… 그 단계란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의 이행이나 접근 형태를 모색하는 것이다. …

프롤레타리아 전위는 이념적으로 획득되었다. 이것은 중요하다. 이것 없이는 승리를 향한 첫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다. 그러나 … 전위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

의식 있는 국제 노동 운동의 전위, 곧 공산주의 당, 집단, 경향의 당면 과제는 광범한 대중…을 자신들의 이 새로운 위치로 이끌 수 있게 되는 것, 더 정확하게 말해서 자신의 당뿐만 아니라, 새로운 위치로 접근하고 나아가는 이런 대중들까지 지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첫 번째의 역사적 과제(의식 있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위를 쏘비에트 권력과 노동계급 독재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가 기회주의와 사회배외주의에 맞선 이념적이며 정치적인 완전한 승리 없이 성취될 수 없었다면, 혁명에서 전위의 승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위치로까지 대중들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는 오늘날 당면하게 된 두 번째 과제, 곧 이 당면 과제는 좌익 교조주의의 청산 없이는, 그 오류를 완전히 제거함이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10]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김남섭 역, 돌베개, 1995, pp. 103-105.

 

러시아 혁명과 제2 인터내셔널에 대한 제3 인터내셔널의 승리로, 세계적 차원에서 전위가 획득되었다. 다음 단계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의 이행이나 접근 형태를 모색하는 것이”며, 그 핵심적 과제는 유연하고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여 대중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레닌은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영국 공산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영국 공산주의자들은 제3 인터내셔널의 원칙[쏘비에트 국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과 의회 참여의 불가피성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들의 네 정당과 집단을 … 공산당으로 통합시켜야만 한다. 공산당은 헨더슨파[11]헨더슨(1863-1935): 노동당 및 영국 노동조합 운동의 지도자.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사회배외주의 입장을 취함.와 스노우든파[12]스노우든(1864-1937): 노동당의 분파인 독립 노동당의 당수. 당내 우파.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중앙파적 입장을 취함. 부르주아지와의 통합을 지지하고, … Continue reading에게 다음과 같은 ‘타협’, 곧 선거협약을 제안해야만 한다. 로이드 조지[자유당]와 보수당원들의 연합에 맞서 함께하자. 노동자들에게서 노동당이나 공산당이 얻은 투표수에 따라 … 의석수를 배분하자. 선전, 선동, 정치 활동의 완전한 자유를 갖자. 물론 이 맨 나중의 조건 없이는 우리는 이 연합에 들어갈 수 없는데, 이는 그런 연합은 배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영국의 공산주의자들은 헨더슨파와 스노우든파를 폭로할 완전한 자유를 고수하여만 하고, 앞으로도 고수해야 할 것이다.[13]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pp. 95-96.

 

레닌은, 공산당은 개량주의 정당인 노동당(“헨더슨파와 스노우든파”)과 의회 선거에서 연합(통일전선)하라고 한다. 그래서 자유당과 보수당의 연합(“로이드 조지와 보수당원들의 연합”)에 맞서라고 한다. 그 주요 근거로, 노동당을 지지하는 “대중은 쏘비에트를 선호하고 있”고, 노동자 대중은 또한 “로이드 조지와 보수당원들의 연합에 맞선 모든 노동자들의 통합에 공감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대중들 앞에서 우리는 당장 이득을 볼 것”[14]같은 책, p. 97.임을 제시한다. 즉, 당시에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노동 대중이 좌경화ㆍ혁명화하고, 통합을 바라는 정세에 부응하여, 양당이 연합하여 의회를 활용하여 대중적으로 선전ㆍ선동하여야 한다고, 레닌은 판단하고 있다. 이것이 신생 소규모 공산당이 대중을 획득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요한 통일전선 전술의 원칙의 하나가 제시되고 있다. “영국의 공산주의자들은 헨더슨파와 스노우든파를 폭로할 완전한 자유를 고수하여만” 한다는 것이다. 공동의 적에 맞서 공동으로 대응하되, 이념적ㆍ정치적 독자성을 고수해야 한다. 개량주의적인 “헨더슨파에 가차 없이 그리고 숨김없이” 공산주의적 비판을, 대중 선전을 통해 수행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을 공산주의적으로 교양하고, 획득할 수 있다.

 

 

2. 반파씨즘(국가) 통일전선 전술

 

2.1. 노동자 통일전선과 인민전선

반파씨즘(국가) 통일전선 전술이 도출되었던 정세를, 히틀러 집권 당시의 독일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다음은 자크 파월의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에서의 서술이다.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집권하자마자 혁명적 사회주의의 요새였던 공산당을 파괴하여 혁명을 일으킬 실재의 또는 가상의 위협 요소를 제거했다. … [1933년 2월 27일 제국의회 의사당 화재의] 방화범으로 공산당 당원들이 즉시 지목되었고, 이를 구실 삼아 대략 4,000명의 공산당 당직자와 당원이 체포되었다. … 공산당원들은 대부분 암살되거나 투옥되었다. 당시 나치가 새로 마련한 첫 번째 강제 수용소에 갇힌 인원들도 이들이었다. 일반 감옥은 공산당원뿐 아니라 사민당, 자유주의자, 심지어 보수주의자들까지 포함하여 나치의 적들로 넘쳐났던 것이다. … 1933년 3월부터 11월까지 2,000명이 넘는 공산당 활동가가 암살되었고, 최소한 6,000명이 수감되었다. … 공산당은 지하에서 겨우 살아남은 비밀 조직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

1933년 6월 22일에 사회민주당의 정당 활동은 금지되었다. …

히틀러는 자신을 비롯해 독일 기업가와 은행가가 그토록 싫어했던 노동조합을 해산해 버렸다. 그 방식도 매우 냉소적으로 조롱하는 식이었다. 히틀러는 1933년 5월 1일을 ‘노동절’로 선포하고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가졌는데 …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돌격대원들이 독일 노동조합 건물을 강제로 점거했다. 조합 지도부는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고, 조합의 자산은 … 몰수되었다. 이후 히틀러의 독일에서 노동조합 활동은 불법으로 금지되었다. 그 자리는 [히틀러의 당인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의 하부 조직인] ‘독일 노동전선’으로 대체되었다. … 히틀러는 … 자신의 당에서도 [실업자나 하층 중산계급에서 모집된 나치의 돌격대인 ‘갈색 셔츠단’과 같은 당내 좌파를] 없애 버렸다.[15]자크 파월,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박영록 역, 오월의봄, 2019, pp. 69-73.

 

이 인용문은 한국의 정세와 유사하다. 윤 정권은 민주노총, 소부르주아 진영(진보당, “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 민주당에 대해 총체적 공세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힘’ 당 내부에서 비윤파를 제거하는 것까지도 히틀러식이다. “돌격대원들이 독일 노동조합 건물을 강제로 점거했다”는 구절은 국정원ㆍ경찰 수백 명이 민주노총 건물을 포위하고 침탈했던 최근의 상황과 겹쳐진다. 히틀러처럼, 윤 정권의 공세는 노동자ㆍ민중 운동 진영을 괴멸시킬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히틀러의 광기를 예견이라도 한 듯이, 일찍이 레닌은 1920년에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부르주아지가 몸부림치고, 미친 듯이 원한을 품고, 도를 지나치고,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미리 볼쉐비끼에 복수를 하고, (인도, 헝가리, 독일 등에서) 어제와 오늘의 볼쉐비끼 수백, 수천, 수십만 명 이상을 죽이기 위해 애쓰도록 내버려 두자.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부르주아지는 역사적으로 운이 다한 계급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미래는 자신의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르주아지의 이 미친 듯한 몸부림을 아주 냉철하고 침착하게 평가하는 일에, 위대한 혁명 투쟁에서의 엄청난 열정을 쏟을 수 있을 것이다(쏟아야만 한다.)[16]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pp. 113-114.

 

레닌의 표현처럼, 윤 정권의 행태를 포함하여, “우리는 역사적으로 운이 다한, 부르주아지의 미친 듯한 몸부림을 아주 냉철하고 침착하게 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다. 다음은 디미트로프의 “1935년 8월 2일,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제7차 대회에서의 보고”에서의 서술이다.

 

일련의 국가들, 특히 독일에서 이 제국주의자 일당은 대중이 혁명의 방향으로 결정적으로 전환하기 전에, 프롤레타리아트를 압살하고 파씨스트 독재를 수립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파씨즘의 승리의 특징은, 이 승리가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지와의 계급 협조라는 사회민주주의자의 분열주의적 정책으로 인해 그 대열을 해체당하고 마비 상태에 빠져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위약함을 증명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부르주아지가 노동자계급 투쟁의 통일이 실현되는 것에 두려움을 품고, 혁명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의회주의라는 낡은 방법으로는 대중에 대한 그들의 독재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부르주아지의 자체의 위약함의 표현이라는 점에 있다.[17] 디미트로프, ≪통일전선 연구≫, 김대건 편역, 거름, 1987, p. 81.

 

파씨스트국가는 두 측면을 가진다. 첫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위약함이다. 파쑈의 습격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 부르주아지의 자체의 위약함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개량, 그리고 사회 복지와 임금, 노동 조건 등에서의 경제적 개량으로 노동계급을 체제에 안주하게 하고,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연한 테러 독재로, 지배계급의 폭력 기구로서의 국가의 본질이 폭로된다. 삶의 조건이 악화되는 인민은, 개량이 불가능해짐을 깨닫고 혁명 투쟁에 나서게 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위약함이라는 첫째 측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다음은 독일 노동자계급의 분열에 대한 디미트로프의 설명이다.

 

독일에서의 파씨즘의 승리는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독일의 노동자계급은 그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반파씨즘 프롤레타리아 통일전선을 결성하여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에게 공산주의자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고, 파씨즘에 반대하는 행동의 통일에 관한 공산당의 여러 번에 걸친 제안[18]독일에서 나치의 집권 전에 독일 공산당이 사회민주당에게 10여 차례나 나치의 집권을 막기 위한 반파씨즘 총파업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김성윤 … Continue reading을 수락케 하지 않으며 안 되었던 것이다.

파씨즘이 공세에 나서고 부르주아지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자유를 차례차례 폐지해 갈 때, 노동자계급은 사회민주당의 말뿐인 결의에 만족해하는 것이 아니라, 독일 부르주아지의 파씨즘화 계획의 실현을 곤란하게 하는 참된 대중 투쟁을 통하여, 이에 맞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브라운ㆍ제베링 정부[19][원역자 주] 1920년부터 1932년까지 계속된, 사회민주당 우파의 오토 브라운과 칼 제베링이 이끌던 프로이센 정부. 공산당과 근로 대중에 대한 탄압 … Continue reading의 적색전선 전사동맹[20][원역자 주] 독일 공산당계의 반파씨즘 자위 조직. 1924년 처음으로 텔만의 지도하에 결성되었다. 1929년에 금지됨.의 금지에 반대하고, 이 동맹과 거의 100만 명을 헤아리는 독일 국기단[21][원역자 주] 1924년 독일 사회민주당이 만든 자위 조직. 사이에 투쟁 협정을 체결하여, 파씨스트 강도 집단을 반격ㆍ분쇄하기 위해, 브라운과 제베링에 맞서 이 두 단체를 무장시켜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프로이센 정부를 이끌고 있던 사회민주당의 영수들에게, 파씨즘에 대한 방위 조치를 강구하고, 파씨스트의 두목들을 체포하고, 이들의 신문을 금지하며, 이들의 자금과 파씨즘 운동을 원조하고 있던 자본가의 자금을 몰수하고, 파씨스트 조직을 해체시키며, 그 무기를 빼앗는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했다.[22]디미트로프, 앞의 책, p. 93.

 

사회민주당의 배신적 행위, 그리고 이를 제어하고 이들을 반파씨즘 투쟁에로 강제할 수 없었던 공산당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둘째로 부르주아지의 자체의 위약함이다. 파씨즘은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고, 투쟁을 촉발시킨다. 파씨즘은 자본주의의 몰락을 재촉하는 것이다.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의 반파씨즘 노동자 통일전선을 제안하면서, 디미트로프는 사회민주당이 히틀러의 파씨즘에 습격당한 이후, 변화한 것을 주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우 많은 나라에서, 부르주아 국가 내의 사회민주당의 지위와 부르주아지에 대한 사회민주당의 태도가 변화하였거나 혹은 변화하고 있음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첫째로, 공황[1930년대 대공황]은 노동자계급 내에서 생활이 가장 안정된 층, 소위 노동귀족―잘 알다시피 사회민주당이 주요한 기반으로 삼고 있는 층―의 지위까지도 흔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이 층도 부르주아지와의 계급 협조 정책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던 종래의 사고방식을 점차 재검토하려 하게 되었다.

둘째로, … 일련의 나라에서 부르주아지 자신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버리고 부르주아 독재의 테러 형태를 취하게 됨으로써, 사회민주당이 금융자본의 국가 체계 내에서 지금까지 누려 온 지위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어떤 조건 아래서는 그 합법성까지 빼앗고, 사회민주당에 박해를 가하며, 심하면 괴멸시키기까지 하고 있다.

셋째로,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노동자의 패배―사회민주당의 부르주아지와의 계급 협조 정책의 결과로 생겨난 패배―의 교훈에 영향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볼쉐비끼적 정책과 혁명적 맑스주의의 볼쉐비끼적 적용의 결과로 얻어진 쏘비에트 연방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공업화와 농업 집산화]에 영향을 받아, 사회민주당계의 노동자가 혁명화하고 부르주아지에 대한 계급 투쟁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23]같은 책, p. 171.

 

사민당과 그 대중은 더 이상은 개량과 계급 협조에 기대할 것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공산당과 연합하여, 노동자 통일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더 나아가 파씨즘은 근로 인민 전체를 공격하고, 빈궁에 빠뜨린다. 이것은 인민전선을 형성하도록 몰아간다. 즉 공산당과 사민당이 연합하여 노동자 통일전선이 형성되면, 강력해진 노동자계급은 그 힘으로 전체 인민을 결집시키게 된다. 디미트로프는 “승리한 파씨즘은 무엇을 가져오는가?”라고 질문하며, 인민 전체의 파국적 상황을 서술한다.

 

파씨즘은 노동자에게 공정한 임금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한층 낮은, 거지와 같은 생활 수준을 가져왔다. 파씨즘은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한층 격심한 기아와 고통, 노예적인 강제 노동을 초래하였다. 파씨즘은 실제로는 노동자와 실업자를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무권리한 천민으로 변화시키며, 그들의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그들로부터 파업의 권리와 노동자신문을 빼앗고, 그들을 억지로 파씨스트 조직에 몰아넣으며, 그들의 사회 보험 기금을 약탈하고, 공장을 자본가의 방자한 전횡이 지배하는 병영으로 변화시킨다.

파씨즘은 근로 청년에게 빛나는 미래의 큰길을 닦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업에서의 청년의 대량 해고와 노동 수용소, 그리고 침략 전쟁을 위한 끊임없는 군사 교련을 가져왔다.

파씨즘은 직원, 하급 관리, 인텔리겐차에게 생활을 보장하며, 트러스트의 전능과 은행자본의 투기를 없애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에게 한층 심각한 희망의 상실과 내일에 대한 불안을 초래하였으며, 자신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인 신관료층에게 이들을 종속시켰고, 참을 수 없는 트러스트 독재를 창출하였으며, 일찍이 그 유례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적인 부패와 타락을 확산시키고 있다.

파씨즘은 몰락하고 빈곤화한 농민들에게 채무 노예적 상태의 해소, 차지료의 폐지를 약속하고, 또한 토지를 갖지 못한 몰락해 가는 농민을 위해, 지주의 토지를 무상 몰수할 것까지 약속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트러스트와 파씨스트 국가 기구에 대한 근로 농민의 유례없는 예속 상태를 만들어 내었으며, 농민의 기본적인 대중에 대한 대농업 경영 지주, 은행, 고리대의 착취를 극한으로까지 진척시키고 있다.

“독일은 농민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독일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히틀러는 거들먹거리며 선언하였다. 그러나 히틀러 치하에서 독일 농민은 무엇을 얻었는가? 모라토리움[24]공황 등 비상시에 국가가 법령으로, 채무자의 채무 상환을 일정 기간 유예하는 것.인가? 그러한 것은 이미 철회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세습 농장법인가? 그것은 수백만 농가의 자녀를 농촌에서 내쫓아 빈민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농업 노동자는 이전의 자유라는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된 반(半)농노가 되고 있다. 근로 농민은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을 시장에서 판매할 가능성을 빼앗기고 있다.[25]디미트로프, 앞의 책, pp. 86-87.

 

농민 등 중간층, 직원, 하급 관리, 인텔리겐차, 청년 등등이 파씨즘의 거짓 약속에 기만당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대공황과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의 직접적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이것이 인민전선의 토대이다.

한편, 파씨즘은 점증하는 인민들의 불만과 투쟁에 대응하여, 폭력적 억압의 강도를 점점 더 높여야 한다. 전쟁은 그 돌파구가 된다. 전쟁과 그에 수반되는 일종의 계엄 상태를 통해 지배를 유지하고자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그 결과이다. 또한 윤 정권도 이북과의 긴장을 한없이 고조시키며, 전쟁 직전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인민을 억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2.2. 반파씨즘 노동자 통일전선-인민전선과 사회주의 혁명

반파씨즘 노동자 통일전선-인민전선 전술은 사회주의 혁명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가.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 결의문 “파씨즘의 공세와 파씨즘에 반대하고 노동자계급의 통일을 지향하는 투쟁에서 코민테른의 임무(결의)”를 보자.

 

노동자계급의 통일전선의 수립 ― 이것은 다가올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제2라운드의 위대한 전투에 대비해 근로자를 준비시키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고리이다. 프롤레타리아트를 단일한 대중적인 정치적 군대로 단결시키는 경우에만, 파씨즘과 자본의 권력에 반대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쏘비에트 권력을 목표로 하는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승리가 보장될 것이다.[26]편집부 편, ≪코민테른 자료선집≫ 제3권, 동녘, 1989, p. 150.

 

공산당과 사회당은 첫째, 반파씨즘 투쟁에서 “행동의 통일”을 달성한다. 둘째, 투쟁의 발전 과정에서 “단일한 대중적인 정치적 군대로 단결”, 즉 조직적으로 하나로 통합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계급 전체를 통일ㆍ단결시키고, 그 힘으로 소부르주아를 포함한 근로 인민 전체를 지도한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즉 혁명의 결정적 전술로서 승인하고 있다.

인민전선 전술의 구체적 모습을 살펴보자. 1936년 “프랑스 인민전선 강령”은 공산당, 사회당, 급진사회당(중간층과 농민에 기반), 2개의 노동총동맹, 반파씨즘 지식인 감시위원회, 그 외 약 50여 개의 단체가 참가해서 작성되었다. 요약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프랑스 인민전선 강령 요약[27]같은 책, pp. 171-174를 요약한 것이다.

 

1. 정치적 요구

• 자유의 옹호: 전반적 대사면.

• 파씨스트 제 단체에 반대하여: 파씨스트의 준군사 단체를 무장해제하고 해산.

• 출판: 언론 자유 보장.

• 노동조합의 자유.

• 평화 옹호: 군축 추진, 군수 산업 국유화.

 

2. 경제적 요구

• 공황으로 인해 감퇴된 구매력 회복: 국가 실업기금 제정, 연금 제도 제정, 주당 노동 시간 단축, 대규모 공공사업 추진, 농업 협동조합에 대한 원조.

• 저축에 대한 약탈 반대와 금융 제도 개선: 은행업 규제, 민간 은행인 프랑스 은행을 프랑스 국영 은행으로 할 것.

 

3. 재계의 정화

• 독점체의 이윤에 대한 실질적 과세, 누진제 적용.

 

주요한 요구는 파씨즘에 반대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이다. 파씨스트의 준군사 단체에 대한 무장 해제, 언론 자유, 노동조합 자유, 평화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경제 조치로 대공황으로 인한 실업과 빈곤에 대한 대응과, 이에 필요한 재원을 독점체로부터 거두는 것이다. 사회주의적인 요구는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자본주의 체제 내적 요구도,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다. 인민전선에 참여하고 있는 조직들의 전반적 수준의 반영일 것이다.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는 사회주의 혁명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프랑스의 역사적 경험에서 보았듯이 그 정부는 사회주의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1936년 4월 26일-5월 3일의 총선거에서 인민전선이 승리하였다. 인민전선에 의거하는 블룸(사회당 소속)을 수반으로 하는 사회당-급진사회당 정부가 성립했다. 사회당과 공산당의 의석을 합해도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다. 공산당은 내각에 입각하지 않았다. 여기서 공산당의 정부 참여 문제를 다루어 보자.

“러시아 1905년 부르주아 혁명”에서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혁명 투쟁이 한창일 때, 향후 구성될 수 있는 “임시 혁명 정부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참여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러시아 사회민주당 내에서 찬반 논쟁이 있었다.

멘쉐비끼는 임시 정부에 참여를 반대한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민주주의적 의식을 심화시키고, 또한 당이 막 발생하고 있는 부르주아-국가 체제를 비판할 완전한 자유를 확보하기 위하여, 혁명적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멘쉐비끼] 협의회는 사회민주주의적 임시 정부의 구성과 그러한 정부에 들어가는 것에 반대를 표명하며, 국가 체제의 민주주의화의 실행 가능한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서, 부르주아적 임시 정부에 대해 밖으로부터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장 편의적인 길이라고 생각한다. 협의회는 사회민주주의자들에 의한 임시 정부의 구성 또는 그러한 정부에 들어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 대중들이 사회민주당에 실망하게 되고, 당을 단념하게 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믿는데, 그 이유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권력 장악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포함하여 노동계급의 절박한 필요들을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계급을 혁명으로부터 물러나게 하고, 그래서 그 기세를 감소시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28]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전술≫(앞의 책), p. 227.

 

멘쉐비끼의 협의회는 주장한다; 부르주아 임시 정부에 사회주의자들이 들어가게 되면, 그 정부는 부르주아 혁명으로 출현한 부르주아 정부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건설을 포함하여 노동계급의 절박한 필요들을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대중은 사회민주당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또한 “부르주아 계급을 혁명으로부터 물러나게 하”여, 혁명을 약화시킬 것이다. 그래서 정부 참여를 거부한다.

레닌은 여기에 반대하고, 정부에 참여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은 바로 무정부주의적 사상이 가장 순전한 기회주의와 뒤섞이게 되는 곳이다. …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이유로] 만약 우리가 심지어 부분적이라도, 심지어 한순간이라도 우리의 참여가 부르주아지로 하여금 물러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끌린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순진하게 혁명의 주도권을 부르주아지에게 송두리째 넘겨주게 된다.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 프롤레타리아트를 온건하고 기백 없게 하는 부르주아지의 감독 아래 놓게 된다. … [정부 권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요구하는 정도의 민주주의 성취를 위한 혁명적 투쟁 강령으로부터 부르주아지와 흥정하는 강령으로 완전히 넘어가며[29]같은 책, p. 228.

 

정부 참여를 거부하고, “부르주아적 임시 정부에 대해 밖으로부터 압력을 행사하는 것”에 머물게 된다면, “혁명의 주도권을 부르주아지에게 송두리째 넘겨주게” 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요구하는 정도의 민주주의 성취”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레닌은 왜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전위 투사가 되어야 하는지, 민주주의가 사회주의 혁명을 준비하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한다.

 

부르주아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차지하는 바로 그 지위는 불가피하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그 비일관성으로 귀착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나의 계급으로 차지하는 바로 그 지위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일관되게 민주주의적이게 강제한다.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강화시킬 우려가 있는 민주주의적 전진을 두려워하여 뒤를 쳐다본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잃을 것이라고는 자신의 사슬밖에 없지만, 민주 정치의 도움으로 그들은 쟁취할 전 세계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부르주아 혁명이 그 민주주의적 변혁을 더 일관되게 달성하는 만큼, 그 혁명은 부르주아지에게만 배타적으로 유리할 것들을 넘어서 전진하게 된다.[30]이 문장은 원래 번역본이 난해해서, 필자가 약간 의역하였다.

맑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들에게 부르주아 혁명으로부터 초연해지지 말 것을, 그것에 무관심하지 말 것, 혁명의 지도권을 부르주아지가 떠맡는 것을 허용하지 말 것뿐만 아니라, 반대로 그 혁명에 정력적으로 참여하고 일관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위해, 혁명이 그 종국까지 수행되게 가장 단호하게 투쟁할 것을 가르친다. 우리가 러시아 혁명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경계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 경계를 넓게 확대시킬 수 있으며, 이 경계 안에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즉각적 요구들과, 미래의 완전한 승리[사회주의 혁명]를 위해 그들의 힘을 준비하는 것을 가능케 할 조건들을 위해 투쟁할 수 있고, 또 투쟁해야 한다.[31]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전술≫(앞의 책), p. 187.

 

이러한 기초 지식을 가지고, 프랑스에서 공산당이 인민전선 정부에 불참한 것을 다루어 보자. 정부에 참여 여부에 대한 공산당의 본래의 원칙은 “공산당은 부르주아지와의 연립 정부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우리는 계급 협조의 반대자이다”[32]편집부 편, 앞의 책, pp. 177-178.이다. 일반적인 부르주아 정부하에서는 이 원칙이 올바르다.

프랑스에서의 문제는 특수한 정세하에서의 문제이다. 프랑스의 인민전선 정부는 반파씨즘 인민전선 운동으로 만들어진 정부였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코민테른도 공산당도 부정하지 않는다. 스페인에서는 1936년의 인민전선 정부에 공산당이 입각하였고, 파씨스트 프랑꼬와의 전쟁을 주도적으로 수행하였다. 전쟁 중에 공산당-사회당이 결합을 강화하면서, 사회주의 권력으로 성장ㆍ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불가리아 등 동유럽에서 인민전선 정부는 사회주의 권력으로 발전하였다(인민민주주의 혁명).

당시의 정세에서, 프랑스 공산당이 입각하지 않은 이유를 코민테른(디미트로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그 정당성을 인정한다.

 

우리[프랑스 공산당과 코민테른]가 프랑스 정부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한 첫 번째 이유 ― 그것은 인민전선의 승리가 사회당과 공산당에게 프랑스 의회 내에서 강고한 다수를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인민전선으로부터 생겨나는 정부는 급진당, 기타 집단을 빼고서는 일을 해낼 수 없다. 공산당과 사회당만으로는 정부를 구성할 수 없다. … 우리가 이 정부에 참가해서는 안 되고 사회당과 급진당 등등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원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가 참가하게 되면 그것은 인민전선을 와해시키고 공동 행동을 와해시키게 될 것이다. 요컨대 선거 전에 존재했던 전선을 와해시키게 될 것이다. 프랑스에 있어서 파씨즘과 반동에 대한 투쟁을 장래에 걸쳐서 계속 강화함으로써 얻게 될 이익은, 우리의 정부 참가가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다른 계기가 있다. 우리[공산당]의 참가는 인민전선에 대한, 반파씨즘 투쟁에 대한 [파씨스트들의] 정면 공격의 신호가 될 것이다.[33]같은 책, pp. 178-178.

 

코민테른은, 이 문제는 원칙의 문제―계급 협조 반대―에 의해서 입각을 거부한 것은 아니고, 당면한 구체적인 정세의 문제, 공산당-사회당의 역량 문제에 기인했음을 주장한다.

필자는 이 문제를 깊게 연구하지는 않았으므로, 이 문장만을 가지고 판단해 보자. 첫째는 “우리[공산당]의 참가는 인민전선에 대한, 반파씨즘 투쟁에 대한 [파씨스트들의] 정면 공격의 신호가 될 것”이라는 이유는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공산당의 입각으로, 인민전선 운동체와 정부는 그만큼 강고해질 것이고, 파씨스트의 정면 공격에 맞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파씨스트에게 자비를 기대할 수는 없다. 위에서 레닌이 비판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임시 혁명 정부에 참여하면, “부르주아 계급을 혁명으로부터 물러나게 하고, 그래서 그 [혁명의] 기세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기회주의적ㆍ무정부주의적 견해를 생각나게 한다.

두 번째는 “인민전선으로부터 생겨나는 정부는 급진당, 기타 집단을 빼고서는 일을 해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는 인민전선으로부터 생겨났다. 인민전선은 바로 공산당-사회당의 노동자 통일전선을 기반으로 생겨났다. 두 경우 모두 공산당이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결국 인민전선 정부는 공산당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커다란 지분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했다. 더구나 공산당이 빠지면, 그만큼 정부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스페인 내전에서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를 지원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고립시킨 것에서 드러난다. 1940년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는, 히틀러의 공격에 너무나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코민테른의 주장대로, “인민전선으로부터 생겨나는 정부는 급진당, 기타 집단을 빼고서는 일을 해낼 수 없다”가 진실이었다 해도, “인민전선으로부터 생겨난 정부가 공산당을 빼고서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도 역시, 역사의 진실이 아닌가!

그러나 특수한 정세에 의해, 특수한 전술이 나온다. 전술은 원칙의 문제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의회 참여가 어떤 정세에서는 올바른 전술이지만, 다른 정세에서는 참여 거부가 올바른 전술이 된다. 위의 필자의 견해는 하나의 단편적 견해일 뿐이다.

 

 

3. 마치며: 공상의 나래(?)

 

글을 마치기 전에, 공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 지금 윤 정권은 파쑈적 공세를 전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공세는 민주노총, 노동 정치 조직, 소부르주아 시민운동 등 운동 진영 전체에 걸쳐 있다. 지난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쟁취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전반에 대한 파괴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을 벌기보다 지키기가 힘들다”고 한다. 민주주의적 권리 의식은 하늘 높은 줄 모르지만, 의무 의식은 땅이 깊은지 모른다. 희생을 각오하고 맞서 싸우겠다는 각오와 결의는 희미하다. 후퇴가 예견되는 대목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공황이 진행 중이다. 대중은 실업과 빈곤의 나락으로 더욱 떨어질 것이다.

윤 정권과 대공황은 인민을 폭풍 속으로 떠밀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에게조차도 투쟁을 강요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오른쪽의 윤 정권보다도, 왼쪽의 인민이 더 두려워 투쟁에 동참하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의 하사관인 소부르주아 진영을 투입하여, 민중 투쟁을 적당한 수준에서 억제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투쟁으로 윤 정권과 흥정을 벌일 것이다.

반파쑈 인민전선, 혹은 반독재 (민족)민주전선을 형성하고, 민주주의와 인민의 생존권을 수호하는 과제가 조만간 전면적으로 떠오를 수 있다. 아마도 그 요구 수준은 위에서 살펴본 “프랑스 인민전선”의 강령 수준과 유사할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쏘비에트 권력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승인하는 전위당이 만들어진다고 하자. “이것 없이는 승리를 향한 첫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다.” 현재 존재하는 노동자 정당과 단체들, 민주노총 등을 견인하여 “반파쑈 민주주의 민중 생존권 쟁취 노동자 통일전선”을 형성한다. 그리고 폭을 더 넓혀서 전농, 시민운동 단체들을 견인하여, 인민전선을 형성한다. 전위당은, 멀게는 “6월 항쟁”, 가까이는 “박근혜 탄핵 투쟁”에서 보았듯이 거대한 투쟁을 주도하여, 윤 정권을 몰아낸다. 부르주아 선거는 거부한다. 인민 투쟁 지도부는 당장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인민 정부를 선포한다. 혁명적 노동자계급이 투쟁 전반을 주도하여야만 이것이 가능하다. 노동자들을 즉각 무장시켜, 정부를 보호하고 쿠데타를 막아낸다. 경찰ㆍ정보기관은 즉각 해산시킨다. 군대는 병사위원회를 구성하여, 군대를 민주화하고 장교의 권한을 축소하여, 인민의 의지에 복종시킨다. 혁명적 민주주의적 조치를 취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지는 않지만, 가장 급진적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단, 국유 기업은 자본주의적 국유 기업에서, 사회주의적 국유 기업으로 자동적으로 성격이 변화할 것이다. 여기까지 혁명적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그러나 이 정부는 혁명 정부도 아니고 혁명도 아니다. 아직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단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결정적이고 거대한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최후의 결정적인 결전은 아직 남아 있다. 독점자본과 미제, 그들의 무력인 군부와 경찰, 고급 국가 관료 등 자본주의 국가의 실질적 권력은 아직 건재하다. 이들을 분쇄해야만 독점자본과 은행의 국유화, 쏘비에트 국가 권력,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사회주의 혁명은 비로소 실현된다.

노사과연

 

 

▲ 코민테른 제7차 대회의 모습 (모쓰끄바, 1935.)

 

References

References
1 지배계급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억압관계, 지배계급 내부 분파들의 경쟁관계들을 생각해 보면 된다.
2 전술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의회 전술과 비의회 전술(거리 투쟁, 폭동, 무장봉기), 합법-반(半)합법-비합법 전술, 퇴조기 전술, 고양기 전술 등등.
3 혁명적 당이 없는 한국에서, 혁명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논하는 것은 그만큼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4 이하 인용문에서 [ ]는 필자가 추가한 것이다.
5 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전술≫(≪레닌 저작집≫ 제3-2권), 김탁 역, 전진 출판사, 1990, p. 242.
6 여기서 예비군은 혁명에 나설 수 있는 세력을 의미하고, 1군은 노동자, 2군은 농민 등으로 이해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7 반(半)프롤레타리아적 분자: 농민을 포함한 소부르주아지 중에서, 소득이 부족하여 노동자 생활까지 부분적으로 하는 사람들. 최근에 자영업자가 “알바”로 파트타임 노동자까지 하는 경우가 예이다.
8 쓰딸린, ≪쓰딸린 선집≫ 제1권, 조선 로동당 출판사, pp. 335-336.
9 같은 책, p. 336.
10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김남섭 역, 돌베개, 1995, pp. 103-105.
11 헨더슨(1863-1935): 노동당 및 영국 노동조합 운동의 지도자.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사회배외주의 입장을 취함.
12 스노우든(1864-1937): 노동당의 분파인 독립 노동당의 당수. 당내 우파.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중앙파적 입장을 취함. 부르주아지와의 통합을 지지하고, 반맑스주의적 입장을 가졌음.
13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pp. 95-96.
14 같은 책, p. 97.
15 자크 파월,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박영록 역, 오월의봄, 2019, pp. 69-73.
16 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pp. 113-114.
17 디미트로프, ≪통일전선 연구≫, 김대건 편역, 거름, 1987, p. 81.
18 독일에서 나치의 집권 전에 독일 공산당이 사회민주당에게 10여 차례나 나치의 집권을 막기 위한 반파씨즘 총파업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김성윤 편, ≪코민테른과 세계혁명≫ 제2권, 거름, 1986, p. 53.) “따라서 파씨즘의 집권의 1차적 책임은 사회민주당에게 있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문영찬, “통일전선 전술의 현재적 의의”, ≪노동사회과학 제2호: 사회주의 20세기와 21세기≫, 노사과연, 2009. 6., p. 196.)
19 [원역자 주] 1920년부터 1932년까지 계속된, 사회민주당 우파의 오토 브라운과 칼 제베링이 이끌던 프로이센 정부. 공산당과 근로 대중에 대한 탄압 정책을 취했다. 1932년, 독일 수상 파펜이 프로이센에서 쿠데타를 일으키자 저항하지 않고 항복했다.
20 [원역자 주] 독일 공산당계의 반파씨즘 자위 조직. 1924년 처음으로 텔만의 지도하에 결성되었다. 1929년에 금지됨.
21 [원역자 주] 1924년 독일 사회민주당이 만든 자위 조직.
22 디미트로프, 앞의 책, p. 93.
23 같은 책, p. 171.
24 공황 등 비상시에 국가가 법령으로, 채무자의 채무 상환을 일정 기간 유예하는 것.
25 디미트로프, 앞의 책, pp. 86-87.
26 편집부 편, ≪코민테른 자료선집≫ 제3권, 동녘, 1989, p. 150.
27 같은 책, pp. 171-174를 요약한 것이다.
28 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전술≫(앞의 책), p. 227.
29 같은 책, p. 228.
30 이 문장은 원래 번역본이 난해해서, 필자가 약간 의역하였다.
31 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두 전술≫(앞의 책), p. 187.
32 편집부 편, 앞의 책, pp. 177-178.
33 같은 책, pp. 178-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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