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보고서 ≪우리 당의 사회민주주의 경향에 대하여≫에 관한 토론의 결론(5)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1. 몇 가지 일반적 문제

   1) 맑스주의는 교조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다

   2)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레닌의 몇 가지 의견

   3)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전의 불균등성

2. 까메네프는 뜨로쯔끼의 길을 닦아 주고 있다

3. 믿기 어려운 혼란, 또는 혁명성과 국제주의에 대한 지노비예프의 견해

4. 뜨로쯔끼는 레닌을 왜곡하고 있다.

   1) 뜨로쯔끼의 요술, 즉 “영구 혁명” 문제

   2) 인용문에 의한 말장난, 즉 레닌주의에 대한 뜨로쯔끼의 왜곡

   3) “사소한 일”과 기묘한 일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5. 반대파의 실천 강령. 당의 요구

6. 결론

 

 

2) 인용문에 의한 말장난, 즉 레닌주의에 대한 뜨로쯔끼의 왜곡

동지 여러분, 뜨로쯔끼의 모든 연설에는 레닌의 글에서 인용한 다양한 인용구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까? 그런데 레닌의 여러 논문에서 잘라 낸 이 인용문을 읽어도 뜨로쯔끼의 주된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즉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레닌 동지의 “모순”을 “들추어내기”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뜨로쯔끼는 레닌의 저서에서 무력 개입의 위협은 여러 나라에서 혁명이 승리해야 이겨 낼 수 있다는 한 묶음의 인용문을 발췌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을 “폭로”하려고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뜨로쯔끼는 이러한 인용문이 당의 입장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입장을 옹호하고 뜨로쯔끼의 입장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은 대외 위험의 적절한 중요성을 레닌의 노선과 동일하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뜨로쯔끼는 몇몇 나라에서 혁명이 승리하지 않고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또 다른 인용문을 인용하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이 인용문을 왜곡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뜨로쯔끼는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무력개입을 면할 수 있는 보장)와 사회주의의 일반적 승리(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완성)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뜨로쯔끼는 이러한 인용문이 당의 입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입장을 옹호하고 오히려 뜨로쯔끼의 입장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뜨로쯔끼는 문제와 관련 없는 무수한 인용문을 인용하면서도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 가능성에 관한 레닌의 기본 논문(1915)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뜨로쯔끼는 아마도 까메네프의 연설이 이 논문으로부터 자신을 구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지금 까메네프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이 확실히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레닌 동지의 글은 여전히 유력합니다.

 

나아가 뜨로쯔끼는 당면 정책 분야인 농민 문제에서 자신과 레닌 사이에 의견 차이가 없다는 레닌 동지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뜨로쯔끼는 레닌의 이 글에서 우리나라에서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가능성과 관련한 농민 문제에 대해 뜨로쯔끼와 레닌 사이의 차이는 해결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것이 뜨로쯔끼의 인용문을 이용한 술책이 공허한 사기술이 된 이유입니다.

 

뜨로쯔끼는 우리나라 혁명이 내적 역량에 기초하여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완수할 수 있다는 문제에서 레닌의 입장과 자신의 입장이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레닌의 “사회주의의 승리는 우선 소수 또는 심지어 개별적인 하나의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가능하다”[1]레닌, ≪전집≫ 제21권(러시아어 제4판), p. 311.는 테제와 뜨로쯔끼의 “예를 들어 혁명적 러시아가 보수적 유럽에 맞서 버틸 수 있다는 … 희망은 없다”는 테제가 어떻게 일치할 수 있습니까?

 

나아가 레닌의 “이러한 나라[하나의 나라: 쓰딸린]에서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를 수탈하고 자국에 사회주의 생산을 조직하여 나머지 자본주의 세계에 대항할 것이다”[2]레닌, 같은 곳.지원 없이는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권력을 유지할 수 없으며 일시적 지배를 장기적 사회주의 독재로 전환할 수 없다”는 테제가 어떻게 일치할 수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레닌의 “다른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농민과 연합해야만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을 구할 수 있다”[3]레닌, 앞의 책, p. 192.는 테제와 뜨로쯔끼의 “농민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후진국에서 노동자 정부가 처한 모순은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무대인 국제적 규모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테제가 어떻게 일치할 수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주의 승리 문제에 대한 뜨로쯔끼의 입장과 멘쉐비끼 오. 바우어의 입장에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바우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는 국민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 대다수인 농민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을 만큼 문화적으로 성숙해지면 불가피하게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공업화된 서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잡아야만 비로소” 러시아에서 “공업화된 사회주의가 장기간 유지될 수 있다.”

 

뜨로쯔끼는 레닌보다 바우어에 더 가깝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뜨로쯔끼의 입장이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이라는 것, 사실상 뜨로쯔끼는 우리 혁명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진실 아닙니까?

 

뜨로쯔끼는 보수적인 유럽 앞에서 프롤레타리아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즉 오늘날 유럽은 보수적이지 않다. 다소 자유주의적이다. 만약 유럽이 정말 보수적이라면 우리나라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뜨로쯔끼가 그야말로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기가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예를 들어 현재 이탈리아, 영국 또는 프랑스는 보수적입니까 아니면 자유주의적입니까? 현재 미국은 보수적입니까 아니면 자유주의적입니까? 그런데 보수적인 유럽과 “자유주의적인” 유럽의 차이에 대한 이 “교묘하고” 가소로운 강조가 우리 공화국을 보전하고 유지하는 데 어떤 의의가 있습니까? 공화제의 프랑스와 민주주의의 미국은 꼴차크와 제니낀 시기에 군주제와 보수주의의 영국만큼 적극적으로 우리나라에 무력 개입을 하지 않았습니까?

 

뜨로쯔끼는 중농 문제에 상당한 주의를 돌렸습니다. 그는 1906년 레닌의 글에서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인용문에서 레닌은 부르주아 혁명이 승리한 후 중농의 일부가 반혁명 편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뜨로쯔끼는 이를 통해 이 인용문이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한 후의 농민 문제에서 자신의 태도와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 듯 보입니다. 여기에서 뜨로쯔끼가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뜨로쯔끼는 중농을 “물자체”로서 영구불변의 그 어떤 것으로 간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볼쉐비끼가 중농을 바라보는 방식이 결코 아닙니다.

 

뜨로쯔끼는 볼쉐비끼가 농민 기본 대중에 대한 세 가지 방침이 있었다는 것을 잊은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방침은 부르주아 혁명 시기에, 두 번째 방침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기에, 세 번째 방침은 쏘비에트 권력의 공고화 이후 시기에 적용되었습니다.

 

첫 번째 시기에 볼쉐비끼는 말했습니다. 모든 농민과 함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를 중립화하고, 짜르와 지주에 대항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수행하자.

 

두 번째 시기에 볼쉐비끼는 말했습니다. 빈농과 함께, 중농을 중립화하고, 부르주아지와 부농에 대항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자. 그런데 중농을 중립화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중농을 신뢰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정치적 감시 아래 두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중농을 우리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시기, 우리가 지금 처한 시기에 볼쉐비끼는 말합니다. 빈농과 함께, 중농과 확고한 동맹을 맺고 도시와 농촌에서 우리 경제의 자본주의적 요소에 대항하여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를 위해 투쟁하자.

 

이 세 가지 방침, 우리 혁명의 세 가지 다른 시기를 반영하는 세 가지 다른 노선을 혼동하는 사람은 볼쉐비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레닌이 부르주아 혁명이 승리한 후에 일부 중농이 반혁명의 편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한 것은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예를 들어 그것은 우파(Ufa) 정부[4]“우파 정부”는 전 러시아 임시 정부(집권 내각)를 자처한 반혁명 조직이다. 1918년 9월 23일 우파에서 백군 “정부”와 멘쉐비끼, 사회혁명당 및 무력 … Continue reading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볼가강 유역의 일부 중농들은 반혁명 편으로, 즉 부농의 편으로 넘어갔으며, 대부분의 중농은 혁명과 반혁명 사이에서 동요하였습니다. 달리 될 수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중농의 본성입니다. 중농이기 때문에 우물쭈물하고 동요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느 편이 이길지 누가 알겠는가?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다.” 국내의 반혁명에 대한 최초의 대승리 후에, 특히 쏘비에트 권력이 공고화된 이후에야 비로소 중농은 쏘비에트 정권 편으로 확실히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중농들은, 어떤 종류의 권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볼쉐비끼 정권이 강력하다, 유일한 출구는 이 정권에 협력하는 것이라고 결정한 듯합니다. 바로 이 시기에 레닌 동지는 다음과 같은 예언적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농촌 사업의 경험에서 검증된 기본 규칙과 지침을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만들어야 할 사회주의 건설 단계에 들어섰다. 이 규칙과 지침을 우리는 중농과의 튼튼한 동맹을 달성하기 위한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제8차 당 대회에서 한 연설”, ≪전집≫ 제24권, p. 114.)

 

이것이 중농 문제와 관련된 사정입니다.

 

뜨로쯔끼의 잘못은 중농 문제를 형이상학적으로 취급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중농을 “물자체”로 간주했습니다. 그 결과 문제를 혼란스럽게 하고 레닌주의를 위조ㆍ왜곡한 것입니다.

 

끝으로 핵심은 프롤레타리아트와 일부 중농 사이에 모순과 갈등이 있을 수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 전혀 아닙니다. 당과 반대파 사이의 의견 차이는 결코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당은 이러한 모순과 있을 수 있는 충돌을 우리 혁명 자체의 힘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뜨로쯔끼와 반대파는 이러한 갈등과 충돌이 “오직 국제적 규모에서만, 즉 프롤레타리아 세계 혁명의 차원에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 있습니다.

 

뜨로쯔끼는 이러한 의견 차이를 감추려고 인용구로 요술을 부립니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우리 당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결론은 마술사가 아니라 변증법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반대파 여러분, 당신들이 레닌 동지의 변증법을 배우고 레닌 동지의 저서를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박수, 웃음.)

 

3) “사소한 일”과 기묘한 일

뜨로쯔끼는 테제 저자인 내가 테제에서 혁명 “그 자체”가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말한 것을 비난했습니다. 뜨로쯔끼는 혁명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형이상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기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습니다.

 

테제에서 혁명을 “그 자체”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 혁명에 대한 평가에서 우리 당의 견해와 반대파의 견해 사이의 전적인 차이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은 우리나라 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자본주의 세계에 반대하여 투쟁할 수 있는 자주적 역량을 대표하는 혁명으로 여기는 반면, 반대파는 우리나라 혁명을 아직 승리하지 못한 미래에 있을 서유럽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무료 증정품으로, 서유럽 미래 혁명의 “부속물”로서 그 자체 자주적인 힘이 없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레닌의 우리나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평가와 반대파 블록이 제시한 평가를 비교하는 것만으로 그들 사이의 광대한 심연을 볼 수 있습니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사회주의 경제를 조직한 후에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를 직접 지원하며 자본주의 세계와의 투쟁으로 나아가는 주도적 세력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반대파는 우리나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보수적 유럽 앞에서” 즉시 권력을 상실할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수동적 세력으로 간주합니다.

 

“형이상학”이라는 말은 반대파가 우리 혁명에 대한 평가에서 자신의 사회민주주의적 결함을 감추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다음으로 뜨로쯔끼는 내가 1924년에 쓴 ≪레닌주의 기초에 대하여≫에서 제시한 일국 사회주의 승리 문제에 대한 부정확하고 잘못된 정식을 다른 더 정확하고 올바른 정식으로 대체했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뜨로쯔끼는 내가 이렇게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왜, 어떤 근거에서 그런지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부정확한 정식을 수정하고 정확한 정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나는 결코 나 자신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동지가 잘못을 저질렀는데 나중에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고친다면 당에 좋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뜨로쯔끼가 이 사실을 강조하여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까? 혹시 그가 좋은 모범을 본받아 마침내 자기의 많은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착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박수, 웃음.) 좋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를 격려하고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박수, 웃음.) 그러나 아무래도 뜨로쯔끼는 어떤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의 시도는 헛수고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뜨로쯔끼는 연설에서 자기는 당의 다수파 대표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공산당원은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뜨로쯔끼는 자기가 우리 사업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인정하였고 계속 인정하고 있다는 것, 우리 국영 공업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 등등의 여러 구절을 자신의 글에서 인용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가 새롭습니까! 뜨로쯔끼가 우리의 사업, 우리의 국영 산업 등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감히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이제 모두가 심지어 뉴욕 증권 거래소도, 심지어 우리나라의 네쁘맨도 그리고 오. 바우어도 두말할 것 없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적이든 친구든 모두가, 우리가 자본가들이 공업을 건설하는 것과는 다르게 공업을 건설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와 공통성이 전혀 없는 새로운 요소를 경제 및 정치 생활의 발전에 도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존경하는 반대파 여러분.

 

지금 문제는 반대파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합니다.

 

지금 문제는 우리나라 산업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운운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전일체로서의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해 내는 데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포위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붕괴를 기다리고 있는 내외의 적들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요점은 우리 당에서 레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소한 일이거나 농담이 아닙니다. 사소한 일과 농담으로 당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당은 이제 반대파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당신들이 용기를 내서 자신의 원칙적 잘못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포기할 수 있느냐 아니면 포기할 수 없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만약 잘못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은 당신들의 입장이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이라고 마땅히 평가할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선택은 반대파 여러분에 달려 있습니다. (목소리: “맞다!” 박수.)

 

1926년 11월 3일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레닌, ≪전집≫ 제21권(러시아어 제4판), p. 311.
2 레닌, 같은 곳.
3 레닌, 앞의 책, p. 192.
4 “우파 정부”는 전 러시아 임시 정부(집권 내각)를 자처한 반혁명 조직이다. 1918년 9월 23일 우파에서 백군 “정부”와 멘쉐비끼, 사회혁명당 및 무력 개입 외국 대표들의 대표자 협의회에서 수립되었다. 1918년 11월 18일까지 존속했다.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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