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보고서 ≪우리 당의 사회민주주의 경향에 대하여≫에 관한 토론의 결론(4)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1. 몇 가지 일반적 문제

  1) 맑스주의는 교조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다.

  2)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레닌의 몇 가지 의견

  3)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전의 불균등성

2. 까메네프는 뜨로쯔끼의 길을 닦아 주고 있다.

3. 믿기 어려운 혼란, 또는 혁명성과 국제주의에 대한 지노비예프의 견해

4. 뜨로쯔끼는 레닌주의를 왜곡하고 있다.

  1) 뜨로쯔끼의 요술, 즉 “영구 혁명”문제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2) 인용문에 의한 말장난, 즉 레닌주의에 대한 뜨로쯔끼의 왜곡

  3) “사소한 일”과 기묘한 일

5. 반대파의 실천 강령. 당의 요구

6. 결론

 

 

4. 뜨로쯔끼는 레닌주의를 왜곡하고 있다.

 

1) 뜨로쯔끼의 요술, 즉 “영구혁명” 문제

 

이제 뜨로쯔끼의 연설로 넘어갑시다.

 

뜨로쯔끼는 영구혁명론이 현재 논의 중에 있는 문제, 즉 우리 혁명의 성격 및 전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영구혁명론은 혁명의 동력에 관한 이론이 아닙니까? 영구혁명론은 주로 우리 혁명의 동력을 다루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아니, 우리 혁명의 동력 문제가 우리 혁명의 성격 및 전망에 관한 문제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입니까? 어떻게 영구혁명론이 현재 논의 중인 문제와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동지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마술 같은 속임수입니다. 자신의 흔적을 숨기고 문제를 회피하려는 시도입니다. 헛수고입니다! 문제를 회피하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성공하지 못합니다.

 

뜨로쯔끼는 연설의 다른 부분에서 자신이 영구혁명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는 “암시”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까메네프는 자신의 연설에서 뜨로쯔끼가 영구혁명론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아마 영구혁명론을 포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시사했습니다”

기적 같은 일입니다!

 

자, 문제를 살펴봅시다. 영구혁명론이 현재 우리가 논의하는 문제와 무관한 것이 맞습니까? 만약 무관하지 않다면 뜨로쯔끼가 영구혁명론을 중요시하지 않고 거의 포기했다는 까메네프의 말을 믿을 수 있습니까?

 

문건을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우선 1921년 12월 오민스끼 동지에게 보낸 뜨로쯔끼의 편지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1925년 신문에 실렸습니다. 뜨로쯔끼는 편지의 관점을 부인하려고 한 적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직간접적으로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편지의 관점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자 봅시다.

 

“나는 볼셰비끼와의 견해 차이에서 내가 전적으로 잘못이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나의 잘못, 근본적인 잘못은 멘셰비끼에 대한 평가였다. 나는 멘셰비끼의 혁명적 잠재력을 과대평가했고 멘셰비끼의 우익을 고립시키고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그러나 이 근본적인 잘못은 내가 볼셰비끼와 멘셰비끼 두 분파를 영구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런데 당시 볼셰비끼와 멘세비끼 모두 부르주아 혁명과 민주 공화국의 관점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두 진영의 의견 차이가 원칙적으로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1905년에 실제로 부분적으로 일어난 것처럼 혁명의 과정 자체가 두 분파를 영구혁명과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으로 이끌기를 기대(그리고 나는 이 기대를 편지와 연설에서 반복적으로 표현했다.)하고 있었다. (러시아 혁명의 동력에 대한 카우츠키의 논문에 대한 레닌 동지의 서문과 신문 ≪나찰로≫의 총노선)

 

혁명의 동력에 대한 나의 판단은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두 파벌에 대해 끌어낸 결론은 확실히 잘못이었다. 볼셰비끼만이 자신의 비타협적 노선으로 구 지식인과 노동계급의 선진층 중에서 참으로 혁명적 부류를 자신의 대오에 모았다. 볼셰비즘이 이러한 혁명적으로 결합된 조직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혁명적 민주주의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입장으로 그렇게 빨리 전환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나는 멘셰비끼와 볼셰비끼에 대한 나의 논쟁적인 글을 두 가지로 쉽게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혁명의 내부 역량을 분석하고 그 전망에 대해 쓴 것이고(로자 룩셈부르크의 폴란드 이론지 ≪새 시대≫에 발표한 것), 다른 하나는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분파들에 대한 평가와 그들의 투쟁 등에 관한 글이다. 첫 번째 부류의 글은 당장이라도 수정 없이 다시 출판할 수 있다. 1917년 이래 우리 당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류의 글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다시 출판할 가치가 없다.”(≪레닌의 뜨로쯔끼론≫, 오민스끼 동지가 서문을 쓴 1925년 판 참조)

 

이 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뜨로쯔끼는 조직 문제에서는 오류를 범하였으나, 우리나라 혁명에 대한 평가 문제와 영구혁명 문제에서는 옳았고 여전히 옳다는 것입니다.

 

물론 뜨로쯔끼는 레닌이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영구혁명론을 반대하여 싸웠다는 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또한, 이 두 분파 즉 멘셰비끼와 볼셰비끼는 둘 다 영구혁명론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실제로 받아들인 건 볼셰비끼 뿐인데 그것은 볼셰비끼가 노동자와 구 지식인의 혁명적인 단결된 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도 즉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1917년부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영구혁명론은 “1917년부터 우리 당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스스로 판단해 봅시다. 뜨로쯔끼가 영구혁명론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까?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영구혁명론이 정말로 “1917년부터” 당의 입장과 일치한다면, 이로부터 단 하나의 결론이 나옵니다. 즉 뜨로쯔끼는 과거에도 지금도 이 이론이 우리 당 전체에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일치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레닌을 대표로 하는 당은 항상 뜨로쯔끼의 영구혁명론에 반대해왔는데, 이 이론이 어떻게 우리 당의 입장과 일치할 수 있습니까?

 

둘 중 하나입니다. 즉 우리 당은 자기 이론이 없이 사태의 진행에 따라 나중에 뜨로쯔끼의 영구혁명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거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 당은 자기 이론이 있었지만 이 이론이 부지불식간에 “1917년부터” 뜨로쯔끼의 영구혁명론에 밀려난 것으로 됩니다.

 

뜨로쯔끼는 나중에 이러한 “의혹”을 1922년에 쓴 저서 ≪1905년≫의 “서문”에서 해명했습니다. 뜨로쯔끼는 영구혁명론의 본질을 설명하고 이 이론의 관점에서 우리 혁명에 대한 평가를 분석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록 12년 만이지만 이 평가는 완전히 확증되었다.”(뜨로쯔끼, ≪1905년≫, “서문”)

 

다시 말해 뜨로쯔끼가 1905년에 “구상한” 영구혁명론은 12년 후인 1917년에 “완전히 확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론이 어떻게 확증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볼셰비끼들은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진정 볼셰비끼들은 자신의 이론도 없이 혁명에 나섰던 것입니까? 진정 볼셰비끼들에게는 단지 혁명적 지식인과 혁명적 노동자를 단결시키는 능력만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기반과 어떤 원칙에 기초하여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었습니까?

정말로, 볼셰비끼는 어떠한 이론도, 혁명에 대한 어떠한 진단도, 혁명 역량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없었습니까? 진정 우리 당에 영구혁명론 외에 다른 이론은 없었습니까?

 

스스로 판단해 봅시다. 우리 볼셰비끼가 전망도 없이 혁명적 이론도 없이 존재하고 발전했다는 것, 이렇게 우리는 1903년부터 1917년까지 존재했다는 것, 그 후 “1917년부터” 자신도 모르게 영구혁명론을 집어삼켜 일어서게 되었다는 것, 이것은 의심할 것 없이 매우 재미있는 동화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투쟁도 없이 당내 동요도 없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그렇게 단순하게,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레닌과 당은 영구혁명론이 처음 등장한 때부터 이 이론과 투쟁했습니다. 이는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뜨로쯔끼는 이 “의문”을 다른 문헌에서 해명하고 있습니다. 1922년에 쓴 뜨로쯔끼의 “우리의 의견 차이”라는 글의 “주석”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다음은 뜨로쯔끼 글의 관련 구절입니다.

 

“멘셰비끼는 ‘우리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다’라는 추상에서 출발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전술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가 국가 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행동에 순응해야한다는 사상에 도달한다. 볼셰비끼도 ‘사회주의 독재가 아니라 민주주의 독재’라는 공허한 추상에서 출발하여 국가 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자발적으로 자신을 제한해야 한다는 사상에 도달한다. 사실, 이 문제에서 양자의 차이는 매우 크다. 멘셰비즘의 반혁명적 측면이 이미 완전히 드러난 반면, 볼셰비즘의 반혁명적 측면은 혁명이 승리한 경우에 비로소 엄청난 위험이 된다.”(뜨로쯔끼, ≪1905년≫, p.285)

 

결국 멘셰비즘만이 반혁명적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볼셰비즘도 “반혁명적 성격”이 있으며, 이는 “혁명이 승리한 경우에 비로소 엄청난 위험이 된다.”는 것입니다.

볼셰비끼는 나중에 볼셰비즘의 “반혁명적 성격”에서 벗어났습니까? 벗어났다면 어떻게 벗어났습니까?

이러한 “의문‘에 뜨로쯔끼는 ”우리의 의견 차이“의 주석에서 해명하고 있습니다.

 

들어봅시다.

 

“알다시피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레닌 동지의 지도하에 1917년 봄, 즉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사상적으로 ”재무장“(내부 투쟁이 없지 않았다)했기 때문이다.”(뜨로쯔끼, ≪1905년≫, p.285)

 

이와 같이 볼셰비끼는 영구혁명론에 기초하여 “1917년부터” 스스로를 “재무장”했다는 것, 그 결과 볼셰비끼는 “볼셰비끼의 반혁명적 성격”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구혁명론은 이렇게 “완전히 확증되었다”는 것. 이것이 뜨로쯔끼의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레닌주의, 볼셰비끼 이론, 우리혁명과 그 동력에 대한 볼셰비끼적 평가 등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것들은 “모두 확증된 것이” 아니거나 전혀 “확증되지” 않았으며, 영구혁명론이 당을 “재무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옛날 옛적에 볼셰비끼로 알려진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어떻게든 1903년 “부터” 간신히 당을 “묶었”지만 혁명이론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1903년 “이래” 허둥대며 헤매다가 어찌하여 1917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다가 뜨로쯔끼에게 영구혁명론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 “재무장”하기로 결심하고 “스스로를 재무장했습니다.” 그들은 레닌주의와 레닌의 혁명적 이론의 마지막 잔재마저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영구혁명론과 우리 당의 “입장”이 “완전히 일치”하였습니다.

 

동지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동화입니다. 이것은 뭐랄까, 서커스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속임수 마술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서커스장이 아니라 당 대표자회입니다. 무엇보다 뜨로쯔끼는 서커스 배우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따위 속임수 마술을 부리는 것입니까?

레닌 동지는 뜨로쯔끼의 영구혁명론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다음은 레닌이 영구혁명론에 대해 쓴 글입니다. 여기서 레닌은 영구혁명론을 “독창적”이고 “훌륭한”이론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임박한 혁명에서 계급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것은 혁명 정당의 중대한 문제이다. … 뜨로쯔끼는 나시 슬오보(우리의 약속)[1]역주: 1차대전중에 프랑스에서 발간된 러시아어 사회주의자 신문.에서 이 문제를 잘못 풀고 있다. 여기서 그는 1905년의 ‘독창적’ 이론을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10년 동안 현실이 이 훌륭한 이론을 무시하면서 발전해 온 이유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이 독창적인 뜨로쯔끼의 이론은 볼셰비끼로부터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단호한 혁명적 투쟁과 정치 권력 장악에 대한 호소를 도용하고, 멘셰비끼로부터는 농민의 역할에 대한 “부정”을 도용한다.“… 이리하여 ”사실상 뜨로쯔끼는 농민의 역할에 대한 ‘부정’을 농민을 혁명으로 불러일으키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자유주의적 노동자 정상배들을 도와주는 것이다!“(전집, 제18권, PP.317-318 참조)

 

레닌은 영구혁명론을 러시아 혁명에서 농민의 혁명적 역할을 무시하는 준멘셰비끼 이론으로 보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준멘셰비끼 이론이 어떻게 “1917년부터 시작”하더라도 우리 당의 입장과 “충분하고 완전하게 일치”할 수 있는 지입니다.

그러면 우리 당은 영구혁명론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여기에 이 이론에 대한 제 14차 당 대표자회 결의가 있습니다.

 

“뜨로쯔끼의 영구혁명론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경제의 진정한 전진은 주요 유럽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 이후에만 가능하다’(뜨로쯔끼, 1922)는 주장이다. 이것은 현 시기 쏘련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숙명론적인 소극성에 빠지게 만드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론’에 반대하여 레닌 동지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들이 서유럽 사회민주당이 발전하던 시기의 논거들을 기계적으로 외웠던 것들은 한없이 진부한 것이다. 그 논거들은 우리가 사회주의를 하기에 무르익지 않았으며, 그들 중 어떤 ”학식 있는“ 신사들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사회주의를 위한 객관적인 경제적 선결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수하노프에 대한 참고 사항)(제14차 당 대표자회 결의문)

 

결국 영구혁명론은 레닌 동지가 “우리 혁명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사회민주주의라고 단정한 수하노프주의와 같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론이 어떻게 우리 볼셰비끼 당을 “재무장”시킬 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카메네프는 연설에서 뜨로쯔끼가 영구혁명론을 포기했다고 “시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확증하기 위해 극히 애매한 문구를 인용합니다. 뜨로쯔끼가 1926년 9월에 반대파에게 보낸 최근 편지입니다.

 

“논쟁의 여지없이 경험이 증명했듯이, 우리 중 누구라도 원칙적 문제에 대해 레닌과 의견이 다를 때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메네프는 뜨로쯔끼가 같은 글에서 자신의 말을 뒤집어엎고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레닌그라드 반대파는 일국사회주의 이론이 민족적 편협함을 이론적으로 합리화하는 것으로 강력히 반대했다.”(1926년 9월 뜨로쯔끼의 서한, 1926년 10월 8일과 11일 연방 공산당(볼) 중앙 위원회 정치국 회의 속기록 부록 참조)

 

뜨로쯔끼의 첫 번째 발언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 애매하고 어정쩡한 발언은 두 번째 발언에 의해 무력화됩니다.

 

영구혁명론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레닌의 ‘일국사회주의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레닌의 “일국사회주의론”은 무엇입니까? 이는 뜨로쯔끼의 영구혁명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까메네프가 뜨로쯔끼의 서한에서 첫 번째 구절을 인용하고 두 번째 구절에 침묵하는 것은 우리 당을 오도하고 속이려고 하는 것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당을 속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1926년 11월 3월)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역주: 1차대전중에 프랑스에서 발간된 러시아어 사회주의자 신문.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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