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윤석열 정권의 성격에 대하여

문영찬 │ 연구위원장

 

 

머리말

 

지난 5월에 출범한 윤석열 정권은 불과 5개월여가 지났지만 한(조선)반도 정세, 의회의 영역,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 이데올로기 등 사회의 전 영역에서 한국 사회를 후퇴시키면서 전 방위적인 반동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금 박근혜 당시의 촛불시위를 기대하며 민주주의 투쟁에 집중하자는 견해도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470억이라는 손해배상 청구는 지금 자본가계급과 정권이 노동자 투쟁에 대해 (시)민법이라는 자본주의 원리 자체를 무기로 공세를 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정확한 정세분석이 필요하며, 윤석열 정권의 계급적, 정치적 성격을 밝히면서 정치적 쟁점과 전선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형성되어 갈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긴요하다. 그리하여 현 정세에 대해 노동자계급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투쟁 방향을 세워야 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윤석열 정권의 계급적, 정치적 성격을 밝히기에 앞서서 먼저 한국의 정세를 규정짓는 세계정세와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개괄해 보자.

 

 

1. 세계정세의 격동과 한(조선)반도 정세

 

1)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에서 NATO라는 제국주의적 전쟁 기구의 확장에 대한 러시아 측의 대응이라는 본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포함하는 동유럽에 대한 NATO의 확장 혹은 확장 의도가 없었더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러한 미국과 유럽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대해 러시아 측은 똑같이 제국주의적 방식으로 대응했다는 점이다. 즉,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전통적인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으로 간주하면서, 대러시아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무력 침공이라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극우 민족주의(푸틴의 표현을 빌면 나찌즘)에 입각하여 동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인들을 탄압했다는 것을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지만, 이것은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찌즘은 금융자본의 논리에 입각하여 타국에 대한 무력 침략을 하였지만,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는 타국을 침략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러시아 민족주의에 대한 일종의 반발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물론 우크라이나가 제국주의적 전쟁 기구인 NATO 가입을 추진한 것은 오류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푸틴이 제국주의적 침략을 선택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러시아의 침략 이후 NATO는 재강화되고 있는데, 이는 미국과 유럽이 NATO를 강화할 명분을 푸틴이 제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유럽에서는 미국, 유럽 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가 충돌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은 핵전쟁의 위협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푸틴은 미국 주도의 단일한 세계체제가 종식되었다고 천명하면서 러시아의 침략을 마치 반제국주의 투쟁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으나, 러시아의 지금의 침략은 세계 인민의 평화의 염원에 배치되는 것으로서 러시아의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쏘련 붕괴 이후 성립한 미국 중심의 단일한 세계 체제는 잠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단계에서 자본주의 나라들의 발전은 불균등한 성장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중심의 단일한 세계 체제의 붕괴는 역사의 필연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지금 제국주의 세력과 제국주의 세력의 충돌로 나타나면서 핵전쟁의 위협을 포함하는 세계 평화의 파괴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미국 중심의 단일한 세계 체제의 붕괴는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운동의 발전을 촉진하는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이지만, 세계 평화의 파괴는 전 세계 노동운동을 억압하고 질식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계급은 미국 중심의 단일한 세계 체제의 붕괴를 주시하면서도, 제국주의적 대결과 침략을 규탄하면서, 평화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2)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투쟁에 대하여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투쟁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불균등한 발전의 산물이다. 중국은 이미 무역규모에서 미국을 훨씬 앞지르고 있으며,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세계 제조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발전은 동남아시아의 발전의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인도 또한 중국과 대결하면서도 중국의 발전을 조건으로 발전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남미 또한 일정한 자본주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서 미 제국주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 또한 이들 지역과 중국의 협력을 하나의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고 중국의 영향력을 봉쇄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기술 산업에서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 블록을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블록화의 경향은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균등한 발전은,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의도와 무관하게 관철되는 제국주의 시대의 필연적인 법칙이다. 그리하여 중국은 경제적 측면에서, 정치적 영향력의 측면에서 비약을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투쟁은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변혁적 진영은 세계정세의 이러한 변동을 주시하면서도 이러한 변동이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한국의 노동자계급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발전은 사회주의적 발전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발전이다. 중국의 비약적 발전은 중국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의 강화, 중국의 농민 계급에 대한 수탈의 강화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시진핑이 강조하는 ‘중화민족의 부흥’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실은 중국 민족 자본가계급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이 초래하는 미 제국주의의 헤게모니의 상대적 쇠퇴(때로는 지금과 같이 한(조선)반도에서 정치적, 군사적 대결의 강화 같은 반작용을 포함하여)를 주목하면서도,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수정주의 이데올로기가 노동자계급에게 미치는 해악을 차단하고 비판하면서 한국 사회의 사회주의 변혁의 전망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3) 한(조선)반도의 정세 악화에 대하여

윤석열 정권의 등장 이후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빠른 속도로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수 야당인 민주당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기도 하다.

이북의 경우 핵무기 법제화를 했으며 전술 핵무기를 빠른 속도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러한 대치 상태의 강화는 이북의 핵 실험에 이르러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이며, 그에 따라 지금의 대결의 강화는 전쟁위기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한(조선) 반도의 정세의 악화는 미 제국주의와 한국과 일본의 반공주의에 입각한 대결 정책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한(조선) 반도의 평화의 전망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접근 자체가 없으며, 이북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의 지반을 강화하고 한국 사회에서 극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윤석열 정권의 이러한 행보는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투쟁에 대해 미국의 진영에 가담하고 있는 것을 기초로 하는데, 이러한 행보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해 역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윤석열 정권의 행보는 중장기적으로 스스로의 입지를 축소하는 것이며, 정세에 있어서 일정한 계기가 주어진다면, 윤석열 정권의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조선)반도의 정세의 전개에 대해,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한(조선)반도의 평화를 기치로 전쟁위기를 반대하고 평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해 가야 한다. 이북이 핵 무력을 공고화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전쟁 위기는 핵전쟁의 위기를 포함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제국주의적이고 반동적인 한미일 군사동맹의 반대, 남북 간 민족적 화해, 한(조선) 반도의 평화 정책을 요구하면서 반전 평화 투쟁을 전개해 가야 한다.

만약 전쟁위기가 고조되어 군사적 담론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면,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자유와 권리는 심대하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쟁 반대, 평화 쟁취는 민주주의 투쟁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서 광범한 민중이 결집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윤석열 정권이 이러한 민중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전쟁위기를 강화시켜 간다면, 그것은 윤석열 정권에 대한 부메랑이 될 것이다.

 

4) 세계경제 위기에 대하여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전 세계는 경제적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2007년 금융위기에 대해 양적 완화라는 돈 풀기에 나서고, 나아가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 막대한 돈을 풀었던 세계 각국은 인플레이션 국면을 경과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이자율 인상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자율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경제적 근거가 박약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플레이션은 불환지폐 체제 하에서 재난 지원금 등으로 지폐가 시중에 많이 풀린 상태에서 금에 대한 지폐의 가치가 저하하여 상품 가격이 명목적으로 인상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자율의 인상은 시중의 지폐를 일정하게 은행으로 거두어들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자율은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 중에서 산업 자본가와 은행 자본가가 이윤과 이자로 나누어 먹는 비율을 정하는 것으로서 이자율의 인상 자체는 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한 이자율의 결정은 상품 가격의 명목적 인상, 인플레이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화폐에 대한 수요와 공급 중에서 어느 것이 강한가에 따라 이자율이 결정된다. 화폐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면 이자율이 상승하고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면 이자율이 하락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명분으로 이자율의 인상을 하는 것은 사실상 자본가계급이 상품 가격을 인상시켜 노동자와 민중들을 수탈하고 또 이자율을 인상하여 채무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와 민중들을 이중으로 수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실질적으로 저지되는 것은 경제가 실제적으로 침체되어 상품의 공급에 비해 상품에 대한 수요가 저하되었을 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인플레이션의 극복은 이자율의 인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가 망가져서 공황과 경기 침체를 경과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이자율이 급격하게 인상된다는 것은 미국에서 화폐에 대한 수요가 격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이미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는데, 화폐에 대한 수요의 격증은 미국이 공황 국면을 경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공황 국면 이후에는 장기간의 경기 침체가 이어질 것이다.

영국과 유럽 또한 인플레이션 하에서 경기 침체를 겪고 있으며, 중국은 코로나 방역과 부동산 경기 침체의 상황 하에서 저성장의 탈출에 몸부림치고 있다. 그리하여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어 가고 있는 지금, 전 세계는 공황과 경기 침체 국면을 경과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어서 각국 노동자의 경제적 투쟁이 고양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지금의 공황과 경기 침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투쟁에 대해서도 일정하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데, 먼저 성공적으로 경기 침체를 극복하는 측이 헤게모니 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2. 윤석열 정권의 계급적, 정치적 성격

 
1) 윤석열 정권을 규정하는 한국의 정치지형

1987 체제라 일컬어지는지는 지금의 한국의 정치체제는 국가보안법을 조건으로 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이다. 한국의 정치체제가 민주화 이후에도 전면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을 조건으로 하는 민주주의인 것은, 1987 체제가 파시즘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 간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동자계급과 민중 세력은 투쟁력으로서는 압도적이었지만 정치적 능력 면에서 취약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상의 자유, 정치적 자유를 심대하게 제약하는 파쇼적인 국가보안법이 지금도 온존하고 있는 것이며,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극우세력과 극우 이데올로기를 배양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이 일정하게 이루어지면 자본주의는 그 상부구조로서 자유주의 정치체제를 형성한다. 자본가계급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적 소유, 재산권의 보전인데, 이를 위해 자본가계급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자유주의 정치 질서를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질서가 파시즘적 질서에서 자유주의적 질서로 이행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노동자와 민중들의 민주주의 투쟁에 의한 것이지만, 그 바탕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 질서는 온전하지 못하며, 파쇼적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1987 체제 형성 당시의 자본가계급뿐만 아니라 지금의 자본가계급 또한 더 이상의 민주주의의 진전에 대해 손을 놓고 있거나 가로막고 있어서 더 이상의 민주주의의 발전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하여 현재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표현하는 사회주의 사상은 억압을 받고 있고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사회주의 정당의 건설은 아직까지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사상의 자유와 사회주의 정당의 건설은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의 모순의 발전을 조건으로 계급투쟁을 통해 이루어야할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그 이후의 진보정당들은 사실상 체제내적인 정당으로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보조물이었으며, 그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을 저해하고 노동운동이 무력화의 길을 걸어오게 한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앞으로 전개될 사회주의 정당 건설에 있어서, 그 당이 노동운동을 와해시키고 좀 먹는 무력한 체제내적인 정당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동자계급은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한국 사회의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의 경로를 명확히 하는 변혁 전략을 가져야만 한다.

윤석열 정권은 한편으로 자유주의 정치질서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지만, 그때의 자유주의 정치 질서는 국가보안법을 조건으로 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질서 속에서 한국의 자본가계급은 양대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있는데, 하나는 국민의 힘으로 대표되는 반동 부르주아 세력이며, 다른 하나는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이다. 한국의 반동 부르주아지는 분단 질서를 공고히 하고 또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분단질서를 활용하면서 독점자본가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전투적으로 대표하는 세력이다. 자유주의 정치세력 또한 1987 체제 형성 이후 집권을 거치며 중소자본가를 대표하는 세력에서 독점자본가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변신했으며, 반동 부르주아지가 보수 강경세력으로서 독점자본의 우파를 대표한다면, 자유주의 세력은 온건 보수세력으로서 독점자본의 좌파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힘 혹은 극우 이데올로그들이 민주당 혹은 자유주의 세력을 좌파라고 비난하는 것은 자본가계급 내부의 질서를 마치 노동자계급을 포함하는 전 사회적 질서인 양 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소자본가는 지금은 대부분 독점자본에 하청계열화 되어 있어서 독자적인 정당을 갖는다기보다는 독점자본을 대변하는 국민의 힘 세력과 민주당 세력에 흡수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에 다양한 소부르주아 세력이 있는데, 이들은 소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으로부터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세력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띠고 있다. 그럼에도 크게 보면, 소부르주아 세력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자신의 전망을 거는 상층 소부르주아 세력과, 반대로 자본주의로부터의 이탈을 꿈꾸는 하층 소부르주아 세력으로 나뉜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전면적으로 표현하는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당파가 존재하는 않는 상황에서 다양한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정치세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자본가계급의 지배전략이 강요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의 분열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을 가로막는 최대의 문제이다. 그런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의 분열의 극복은 자본가계급의 지배전략을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의 변혁전략의 정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개량주의, 조합주의, 경제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전략, 변혁전략을 정립하여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의 폭과 깊이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서서히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당파의 형성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2) 윤석열 정권은 파시즘 정권인가? ―가능성과 현실성의 문제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행위는 주요하게 (검찰) 수사를 통한 정치로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검찰 정부 혹은 검찰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붙여지고 있다. 그런데 검찰 수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 축을 형성하는 부르주아 법치주의에 근거하는 것이다. 또한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을 보면,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파업의 경우 강제진압은 피하되 470억 원이라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사실상 노동운동을 질식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은 노동운동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것인데, 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권, 사적 소유 원리라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시)민법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윤석열 정권은 반대파를 압박하고 노동운동을 탄압하면서도 그러한 탄압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수행하고 있다. 즉, 윤석열 정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과 자본가계급이 470억 원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것은 노동권을 매우 제한하고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권은, 노동3권과 노동법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주요 축의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을 활용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이 파시즘 정권인가 여부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권은 극우 이데올로그들을 용산 대통령실에 포진시키고 있고 또 김문수와 같은 극우 인사를 기용하여 극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있어서 파시즘으로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의 정세에서, 특히 윤석열 정권의 성격과 관련하여 주요 모순이 무엇이고 부차적, 2차적인 모순이 무엇인가라는 분석틀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권을 배출한 국민의 힘은 반동 부르주아지의 정당이다. 그러나 반동 부르주아지는 곧 파시즘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상당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이나, 일본의 경우 자민당 또한 반동 부르주아 정당이라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자유주의 정치 질서 자체,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들 미국과 일본의 정당들이 정치 정세의 변화에 따라 파시즘으로 전화할 가능성은 있지만, 우리는 가능성과 현실성을 명확히 구분할 때만 정확한 정세분석을 할 수 있고 올바른 정치적 입장을 수립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 힘은 반동 부르주아 정당으로서 파시즘으로 전화할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틀 내에서 반동적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현재의 정세에 있어서 주요 모순과 부차적 모순을 정리해 보자.

만약 윤석열 정권을 파시즘으로 규정할 경우 민주-반민주 구도가 주요 모순이 된다. 그리고 자본과 노동의 모순은 부차적 모순, 2차적 모순으로서 뒤로 밀리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의 정세,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이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최대의 현실은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파업에 대한 470억 손배소와 같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 축인 노동권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이다. 이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윤석열 정권을 반민주로 규정하여 투쟁하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투쟁을 할 수 없다. 즉,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은 노동권을 무력화하는 윤석열 정권에 맞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하면서, 그것을 극대치로 밀어붙이고 자본가계급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는 것을 초점으로 투쟁해야 한다. 민주주의 투쟁을 넘어서서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과 맞서는 투쟁을 할 때 노동권 또한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의 강화, 노동운동의 재생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지금의 정세에서 주요한 모순은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고 민주-반민주 구도는 2차적, 부차적 모순이고 구도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계급은 여전히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하면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방어하고 획득하는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윤석열 정권의 성격을 규정할 때 파시즘적 성격은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윤석열 정권의 현실적 모습과 정치 행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틀 내에 머물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실질을 제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권은 파시즘으로 전화할 가능성을 지닌 보수 강경 정권이라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윤석열 정권이 파시즘적 성격을 확고히 한다면 그때는 민주-반민주 구도가 2차적 모순이 아니라 주요 모순이 되며 반파쇼 민주주의 투쟁이 노동자계급의 일차적 과제가 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경우 노동자와 민중의 광범한 촛불시위로 인해 탄핵되었는데, 그것은 박근혜 정권이 진보정당인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고 민주노총을 침탈하는 등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파쇼적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이렇게 파쇼적 성격의 정권이었기에 반파쇼 민주주의 투쟁은 정확한 정치 방침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반파쇼 민주주의 투쟁은 광범한 대중을 동참시킬 수 있었고 박근혜를 퇴진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권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하여 노동권 등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제한한다면, 노동자계급은 한편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을 수행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고 계급적 이익을 수호하고 획득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주요모순이고 일차적 모순이라는 지금의 현실에 조응하는 투쟁이다. 즉, 지금은 자본과 노동의 전선이 일차적인 전선이며, 따라서 자본주의 원리 자체, (시)민법을 활용하는 억압 자체에 맞서는 것이 주요한 과제이며, 민주주의 투쟁 전선은 2차적 전선으로서 자본가계급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복무하는 것이어야 한다.

 

 

3. 현 정세의 주요한 정치적 쟁점들

 

1) 전쟁과 평화의 문제

윤석열 정권 초기 한(조선) 반도의 정세가 악화되면서 전쟁위기의 문제, 전쟁과 평화의 문제가 주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서 정확히 할 점은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악화되는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윤석열 정권과 미일 제국주의는 이북의 핵무기가 정세 악화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그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군사동맹을 발전시키고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도 핵무기를 갖고 있지만 미국의 핵무기 자체가 세계정세를 악화시키는 원인이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는 핵무기라는 물질적 수단 자체가 정세 악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치세력의 정치 행위가 정세 악화를 가져오는 원인임을 말하는 것이다.

핵문제는 문재인 정권 당시에도 존재했지만 당시는 남북 간의 화해와 대화의 국면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고 윤석열 정권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급속히 발전시키며 한미일이 연합한 무력시위를 전개했고 이북은 그에 맞서 나름의 무력시위를 하였다. 그리하여 군사적 대결이 격화하며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는 이북의 핵실험을 정점으로 전쟁위기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제국주의적이고 반동적인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 전쟁 반대와 평화 쟁취를 요구하면서 반전 평화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관료들 중 주요한 부분인 군부는 군사적 대결을 통한 정치를 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200년 전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과학적 명제를 세운 바 있다. 이 명제에 따르면 전쟁 위기는 반동적인 정치 행위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즉, 군사 문제, 전쟁 위기의 고조의 문제는 군사 기술적인 문제가 본질이 아니라 군사 기술적 문제를 규정하는 계급 간 대립의 문제, 계급적 정치 행위의 문제가 본질적인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권과 미일 제국주의가 이북에 대한 대결을 추구하면서, 한(조선)반도 정세를 악화시키고 전쟁위기를 고조시켜 간다면,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은 자신들의 정치 행위를 통해 전쟁의 가능성을 억제하는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 행위의 슬로건은 전쟁 반대, 평화 쟁취이며, 만약 윤석열 정권이 평화의 길을 외면하고 전쟁의 가능성을 높이는 길을 추구한다면,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의 슬로건은 윤석열 정권 퇴진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 수사를 통한 정치의 문제

윤석열 정권은 촛불에 대한 반동으로 반동 부르주아지가 탄생시킨 정권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일등공신은 검찰 조직이었다. 검찰의 항명과 검찰 조직의 정치적 반란이 문재인 정권을 흔들었으며, 반동 부르주아 계급은 검찰 조직을 활용하여 대선에서 승리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따라 검찰 공화국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되었으며, 윤석열 정권은 자신들의 주요한 정치적 행위를 검찰 수사를 통해 수행하고 있다. 이미 민주당 대표인 이재명에 대한 기소가 이루어졌으며, 감사원의 감사는 검찰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를 통한 이러한 정치 행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주요한 한 축인 부르주아 법치주의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주요한 세력인 의회 내 반대파에 대한 압박과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윤석열 정권의 수사를 통한 정치는 과거 부르주아 정권들에서도 있었던 것이지만, 지금은 수사를 통한 정치가 주요한 정치 행위가 되고 의회적 방식의 정치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검찰을 정치의 전면에 내세우는 지금의 상황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해 어떠한 정치적 판단을 하고 어떤 정치적 입장을 세워야 하는가를 요청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자유주의 정치와 구별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 세력에게 보통선거 투표권을 부여하고 민중들에 의한 선출을 통해 국가권력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정치 자체는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자본가계급의 사적 소유, 재산권의 보전을 위해 국가로부터 시민사회를 분리하고 자본가들에게 사적 소유의 보전을 핵심으로 하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자유주의 정치체제가 성립한 초기에는 노동자계급에게 선거권이 보장되지 않았으며, 노동자계급에게 선거권을 부여된 것은 차티스트 운동 등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자유주의 정치체제와 민주주의의 결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검찰 권력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그리고 지금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윤석열 정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을 활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제한하고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검찰을 중심으로 하는 상층 관료들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후퇴할 것이며, 이것이 일정한 임계점에 이르면 윤석열 정권이 파시즘 정권으로 전화하는 질적 전환의 시기가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민주-반민주 구도가 주요 모순이 되면서, 노동자계급의 일차적 과제는 반파쇼 민주주의 투쟁이 될 것이다.

 

3) 노동탄압을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공격

윤석열은 기업이 정부이고 정부가 기업이라는 점을 공공연히 표방했다. 그에게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윤석열의 이러한 세계관은 물론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며, 검찰을 중심으로 하는 상층 관료들에게 전형적인 것이다. 이들 상층 관료들의 세계관을 잘 드러내준 것은 몇 년 전에 민중은 개, 돼지라고 발언하여 파면되었다가 다시 복직한 한 교육부 고위 관료의 사례가 있다. 이들 상층 관료들은 자신들의 존재와 출세가 독점자본들과 미 제국주의의 이익에 봉사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잘 인식하면서, 자신들이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고 시민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등장 이후 국가는 단지 시민사회로부터 멀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를 공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시민사회의 주요한 구성 부분인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 시민단체들에 대해 보조금에 대한 감사를 활용하는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이들 시민단체의 상당수는 자본주의 체제의 개량과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그람시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 지탱하는 하나의 진지, 보루이지만, 윤석열 정권은 이들 시민단체를 적대시하고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윤석열 정권이 파시즘의 징후를 보이는 것이다. 나찌즘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났던 파시즘은 자유주의 정치체제의 핵심인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가 시민사회를 공격하고 종속시키며, 국가와 시민사회의 통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의 폐지는 대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폐지하는 것으로, 대외적으로는 다른 국가에 대한 침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의 폐지는 자본가계급 스스로 자신의 지반을 허무는 것이었으며,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반파쇼 인민전선, 반파쇼 통일전선에 의해 극복되는 과정을 겪었다.

 

4) 경제위기의 문제

현재 전개되고 있는 경제위기는 전 세계적인 것이다. 한국의 경우 대외적 의존성이 강하여 미국경제가 공황과 경기 침체로 접어들고, 중국의 경제성장이 부진하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적이고 일시적인 문제를 넘어서는 더 중요한 점은 중국경제의 질적인 발전으로 인해 중국에 대해 무역적자를 보이고 있고 경상수지에서 적자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의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전략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한국 경제는 전략적 차원에서 그리고 전술적 차원에서 모두 위기적 징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윤석열 정권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기술 산업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미국의 블록화 정책에 가담하고 있어서 한국 자본주의의 기반을 스스로 좁히고 있다.

이러한 경제위기 상황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경기순환에 따른 실업의 문제 등에 대해 대처하면서도, 더 중요한 점은 자본가계급의 전략이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고, 어떻게 변화해 갈지를 주목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수립해 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응 전략은 자본가계급의 전략의 변화에 따른 수동적인 대응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되며, 자본가계급의 전략을 넘어서는 변혁 전략의 수립으로,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 전략의 수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5) 정세분석에서의 변증법

지금 윤석열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20%대에 머물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되고 있다. 여론조사를 통한 지지율 발표는 지난 대선에서 위력을 발휘하였고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행위였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이 여론조사를 통한 지지율을 정세분석에 있어서 하나의 지표로 채택해야 하는가? 부르주아 정치인들의 발언 하나, 자그마한 실수 하나하나에 의해 요동치는 여론조사에 따른 지지율이 정세분석의 과학적 지표가 될 수 있는가?

사실 여론조사는 그 조사 시기, 질문 항목을 포함하는 조사 방식 등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서 대단히 정치공학적인 것이다. 즉, 여론조사는 민중의 정치의식을 부르주아적으로 가공하여 포장한 하나의 상품이다. 그런 점에서 여론조사는 부르주아들이 정세를 파악하는 하나의 요소이기는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정세분석의 지표가 될 수는 없고 단지 하나의 참고사항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세분석에 있어서 과학적 지표가 되는 것은 객관적으로 형성되는 정치적 쟁점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 검찰 수사를 통한 정치,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 시민단체에 대한 탄압, 경제적 위기 등 각 계급세력, 정치세력의 상호작용 속에서 객관적으로 형성되는 정치적 쟁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정세분석에서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접근은 정세분석에 있어서 유물론적인 접근을 견지하는 것으로서 정세분석을 주관의 소망에 따라 접근하는 비과학적인 태도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객관적인 정치적 쟁점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파악하여 그 중에서 주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은 무엇인지, 수많은 정치적 쟁점들 중에서 핵심 고리, 주요 고리는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정세분석을 심화시켜 가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정치적 쟁점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어떠한 정치적 태도를 수립해야 하는지,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를 정해야 한다. 또한 주요한 핵심 고리에 대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질 것인지를 정립한다면, 정세분석에 있어서 주요한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체 정세에 대한 총체적 입장이 정립되게 되는데, 그러한 총체적인 정치적 입장의 수립은 곧 정세에 조응하는 전술의 수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진영의 정세분석에 있어서 많은 한계와 오류가 있었다. 정세는 계급역관계라는 점에 입각하여 고양기, 퇴조기, 혁명적 정세 등의 판단을 내리면 정세분석이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많은 한계를 내포하는 것이었고 정세분석에 있어서 일정한 도식을 완성하면 정세분석이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세분석은 일정한 도식을 도출하는 과정이 아니다. 레닌은 정세를 국가를 포함하는 각 계급세력의 상호 관계의 총체라고 파악한 바 있었다. 이는 정세에 대한 인식이 하나의 도식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각 계급세력의 상호연관이라는 변증법적 인식으로 구체화되고 상승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복잡한 정치 정세 하에서는 정세 분석에 전선의 문제를 포함하여 일차적 전선이 자본과 노동의 전선인지, 아니면 민주-반민주 구도가 일차적 전선인지를 분석해야 하고, 일차적 전선과 2차적 전선, 부차적 전선의 상호 관계를 정리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NL진영의 경우 정세를 주체 역량에 따라 구분하여 수세기, 공세기, 결정적 공세의 시기 등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정세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그르치는 것이다. 정세는 주체 역량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세는 지배계급만의 의도에 따라 규정되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진영의 의도와 역량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도 아니다. 정세는 각 계급세력의 의도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필연적으로 결정되는 각 계급세력의 상호관계의 총체이다. 그리고 정세는 상호관계의 총체이기 때문에 하나의 도식이 아니라 각 계급세력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것이며, 전술은 그러한 변화하는 정세에 조응하는 것을 본질적 성격으로 갖는 것이다.

 

4.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방향에 대하여

 
1) 현 정세에서 주요 모순은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적 모순은 자본과 노동이 모순이며 이는 다른 방식으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취득의 사적 성격 간의 모순이 근본 모순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자본과 노동이 모순이 근본적, 기본적 모순일 뿐만 아니라 주요 모순이기도 하다. 국가보안법을 조건으로 하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견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한국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정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주요 모순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470억 손해배상 청구에 의해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지금 노동자계급은 (시)민법의 원리가 노동자에 대한 탄압의 무기가 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해야 하며,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이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최대의 억압이 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과 자본가계급이 자본주의 원리 자체, (시)민법의 원리 자체를 활용하여 노동자와 민중을 억압하는 현실은 한국 사회의 계급적 구도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대립과 적대를 주요한 대립과 모순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자본주의의 핵심 원리인 사적 소유의 원리, 재산권 보전의 원리가 민주주의 원리와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파업의 권리, 노동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주요한 축인데, 이러한 민주주의 원리가 손해배상이라는 (시)민법의 원리, 사적 소유의 원리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적 소유의 원리와 민주주의 원리가 충돌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노동자의 투쟁은 사적 소유의 원리를 넘어서는 투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적 소유의 원리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노동권 자체가 부정되고 생존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본가계급이 지금과 같이 사적 소유의 원리로써 민주주의 원리와 충돌시킨다면, 노동자의 투쟁은 사적 소유의 원리를 넘어서서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나는 투쟁,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투쟁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의 모순은 기본모순일 뿐만 아니라 주요 모순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투쟁을 시도할 때만 생존이 담보되고 민주주의의 주체로 설 수 있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에서 일차적 전선은 자본과 노동의 전선이다. 그리고 윤석열 정권이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것에 맞서는 민주주의 투쟁은 2차적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며, 노동자계급은 민주주의 투쟁 전선을 자본가계급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투쟁 전선에 종속시켜야 한다.

 

2) 정의당의 사민주의 노선에 대하여

진보정당의 한 축인 정의당은 지난 대선에서 참패하며 다시 대표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사민주의 노선을 공식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원인을 전혀 잘못 짚는 것이다. 정의당이 대선에서 참패한 것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저버리고 민주당의 이중대, 문재인 정권의 이중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계급협조 노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의당은 계급협조 노선 자체를 자기비판하여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민주의 노선을 표방하여 계급협조 노선을 심화시키고 있다.

유럽에서 사민주의 노선은 2차 대전 이후 세계 사회주의 진영의 영향력이 성장하는 상황을 조건으로, 유럽의 노동자계급의 혁명성을 제어하기 위해 자본가계급의 양보를 바탕으로 계급협조 노선을 시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쏘련의 해체 전후하여 유럽에서 사민주의 노선은 쇠퇴를 거듭하였고, 자본가계급은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양보를 철회하였다. 즉, 유럽에서조차 계급협조 노선은 자본가계급에 의해 철회되고 있고 그 지반은 약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정의당은, 자본가계급이 양보를 하기는커녕 노동운동과 노동자계급에 대한 탄압에 골몰하는 지금, 한국의 자본가계급에 대해 사민주의라는 명백한 계급협조 노선을 선물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계급을 자본가계급에 대한 굴종으로 이끄는 것이며, 노동자들을 임금노예의 사슬에 단단히 결박 지우는 역할을 정의당 자신이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계급협조 노선은, 특히 한국의 상황에서는,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따라서 노동자들을 원자화하여 경쟁으로 내몰면서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을 해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에서는 사회적 합의주의와 경사노위 참가를 둘러싸고 격렬한 대립이 있었던 것이며, 그러한 계급협조와 사회적 합의주의를 저지했기에 민주노총이 최소한의 대중적 지반을 유지할 수 있었고 노동운동의 전투력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의당은 자신의 실패의 원인을 자각하고 자기비판 하기는커녕 아예 계급협조 노선을 공식화하고 심화시키겠다는 공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이중대가 아니라 사민주의를 표방하면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이 확보되는 것인가? 민주당의 2중대는 전술적인 차원이었다면, 사민주의의 표방은 전략적 차원에서 계급협조를 표방하는 것이지 않는가? 이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을 뿌리까지 파괴하여 정의당이 살아남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나 정의당에게는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계급협조 노선의 지반은 매우 약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한국 또한 경제위기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어서 자본가계급의 양보의 물적 토대가 약화되고 있다. 또 윤석열 정권은 노동자계급에 대해 양보하기는커녕 노동자의 파업의 권리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자본과 노동의 모순의 심화를 토대로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를 꿈꾸며,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전략의 수립을 자신의 과제로 하고 있고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전면적으로 표현하는 사회주의 당 건설이라는 과제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주의 당의 건설은, 계급협조 기구였던 기존의 진보정당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의 폭을 확대하고 깊이를 심화시키며 한국 사회를 변혁하여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이끄는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의 자기 정립의 과정이 될 것이다.

 

3) 전략적 방어에 집중하면서 지구전의 전략을 세워나가자!

지금 윤석열 정권은 군부를 동원하여 전쟁 위기를 조장하고 있고 또 검찰을 동원하여 수사를 통한 정치, 사정정국을 이끌고 있고 또 극우 이데올로기의 확산에 주력하고 있는 등 국가 기구를 총동원하여 전방위적인 반동적 공세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반동적 공세의 방식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하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은 파업의 권리 등 노동권이 무력화되어 노동자의 생존권이 짓밟힐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을 파쇼 정권으로 규정하여 반파쇼 민주주의 투쟁을 하는 것으로는 윤석열 정권에 맞설 수 없다. 지금은 그러한 단순한 접근을 넘어서서 복잡한 정세에 대응하는 과학적이고 정교한 전술을 수립하는 길을 가야 한다.

지금 한반도 정세의 악화, 수사를 통한 정치,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 시민사회에 대한 공격 등 주요한 정치적 쟁점은 윤석열 정권이 정권 초기 압도적 힘을 바탕으로 전방위적 공세를 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주요한 전술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방어하고 주요한 역량을 보존하며 주요한 진지를 방어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노동자계급은 전략적 방어에 집중하면서, 윤석열 정권에 대한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준비를 하면서, 정세의 변화를 조건으로 공세로 넘어갈 수 있는 시기를 따져야 한다.

그리고 지금 정세의 복잡성, 그리고 윤석열 정권이 국가 기구를 총동원하여 공세를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싸움은 단기간에 끝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장기적인 지구전적인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모택동은 1930년대 일본의 전면적인 침략이 시작된 후 일본에 맞서는 중국인민의 항전을 이끌면서, 이 전쟁은 지구전적인 전쟁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서 싸워나갔으며, 이러한 지구전 전략은 중국의 객관적 조건, 주체적 조건과 맞아 떨어지면서 중국의 일본에 대한 승리를 이끄는 견인차가 되었다.

물론 지금 21세기 한국의 상황이 20세기 초의 중국과 같지는 않지만, 세계정세의 급격한 변화, 한국을 포함하는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의 확산, 한미일 군사동맹의 발전, 검찰과 군대라는 국가기구의 동원, 자본가계급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힘의 열세, 그럼에도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높은 민주주의 역량,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동자계급의 지향의 발전 등등의 제반의 주객관적인 요소는 지금의 싸움이 단기간의 싸움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지구전적인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지구전은 전략적 방어를 하면서 역량을 보존하고 방어하는 단계와 아 측의 역량이 강화되고 적의 힘이 약화되면서 상호간에 대치하는 단계, 그리고 객관 상황의 변화와 주체역량의 변화에 따라 전략적 공세를 펴는 시기로 나뉠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한국의 상황에서 자본가계급과 윤석열 정권은 많은 진지와 참호를 갖고 있어서 운동전적인 공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전적으로 노동자계급과 민중 세력에 대해 압박하고 공세를 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기적인 지구전에 있어서는 다양한 싸움의 형태가 교차할 것이며, 노동자계급은 진지전과 운동전 모두에서 윤석열 정권과 자본가계급에 맞설 수 있는 준비를 해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술의 수립과 운용에서 노동자계급은 투쟁의 성과가 자유주의 세력에게 귀속되는 것을 저지하고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발전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박근혜 당시의 촛불시위처럼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버는 식으로 투쟁의 성과를 허망하게 유실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 투쟁의 차원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활동의 측면에서, 당 건설을 포함하는 조직적 전망의 측면에서 그 성과들이 노동자계급에게 귀속될 수 있도록 하나하나의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새겨가야 한다. 노사과연

문영찬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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