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가 사회혁명으로 귀결된다고 하는 것은, 중장기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물론 필연적이지만, 당장의 현실에서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자본의 지배는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편에서는 국가라고 하는 엄청난 폭력기구에 의해서 보증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민중의 자기 정체성, 계급의식의 형성을 가로막고 혼란시키는 문화적⋅이데올로기적 수단⋅기구들에 의해서 지탱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1]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 노사과연, 2022년 제6판 4쇄, p. 495-496
노동자민중의 자기정체성, 계급의식의 형성이 왜 중요한지 다시 되새겨 봅시다.
<권두시> “청소년은 없다”와 “청소년은 없다 2”는 1948년 10월 19일에 여순인민항쟁이 시작되었고, “순천의 여러 학교 학생들이 봉기군과 함께 인민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진압 이후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고 있습니다.
<정세> “한국경제 동향: 공황의 재격화 그리고 신용경색”에서는 2020년부터 올해 2022년 10월 최근까지의 한국경제의 동향을 살펴보며, 위기의 폭발인 공황의 피할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정세> “2022 이딸리아 정세: 부상하는 파씨즘”에서는 이탈리아 파씨즘의 역사와 현재를 밝히고, 이와 연결되어있는 최근의 이탈리아 경제 정세, 그 위기와 그것의 정치 위기로의 전화 등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파씨즘의 확산을 막기 위한 선진분자들의 올바른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과 관련하여서도 함께 토론해보면 좋겠습니다. 몇 문장을 옮겨봅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이란 정부가 국민의 돈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코로나 경기부양책’ 따위의 놀음은, 사실상 안 그래도 얇은 우리의 지갑에서 돈을 더 빼가고, 인민대중을 수탈해 독점자본에게 퍼주는 범죄다.” “우리는 동화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피 튀기고 살점 베여나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부르주아 국가가 ‘경기부양’을 하기 위해 그 아무리 날뛴다고 해도, ‘경기부양’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황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아래서는 필연적이며, 그 필연성은 절대적이다. … 온갖 ‘경제전문가’들과 학자들, 국가와 막대한 자금이 경제 위기를 막는데 투입된다고 해도 공황이라는 불청객은 우리의 자본가들을 반드시 재방문한다. 단, 지난번보다는 더 격화되고 흉악한 형태로 말이다”
<현장> 소성리 사드저지투쟁 소식 “날마다 짓밟히는 세상에서 가장 아픈 곳”과 함민희 사무국장이 쓴 “세종호텔 투쟁 연대기”는 울면서 읽는 노동자민중들의 너무 성실하고 고통스러운 삶과 투쟁의 이야기입니다. “굴절된, 왜곡된 오랜 세월을 타파하고 사드와 미군없는 세상”과 자본이 없는 세상을 쟁취했을 때, 그때야 비로소 노동자인민은 “우리나라”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론> “현대제국주의(신제국주의)의 본질과 특성”에서는 신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신제국주의의 특성과 모순을 밝히고 그 쇠퇴와 신이행기로의 진입, 그리고 이행기에는 전쟁 또는 혁명의 길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번역>에는 모두 6편의 글을 실었습니다.
“보고서 ≪우리 당의 사회민주주의 경향에 대하여≫에 관한 토론의 결론(3)”에서는 “일국사회주의” 논쟁의 진실의 일면 등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러시아의 ‘공인’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하여 “어느 러시아 공산주의 조직들도 명확한 맑스-레닌주의적 입장을 제공하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정세와 노동> 180호(4ㆍ5월호) 우크라이나 특집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하여 그리스 공산당과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당 간의 격렬한 논쟁을 언급하며, 추후에 논쟁의 내용을 소개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이 글에서 그 논쟁의 내용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엔, 3억4천5백만 명이 기아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고하다”와 “쿠바, UN에서 “팬더믹은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불평등한 국제질서의 진정한 본질을 폭로했다”고 주장하다” 에서는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기아와 불평등의 현실과 그 극복을 호소합니다.
“왜 모든 것이 이토록 비싸지는가” 와 “브라질: 사민주의는 인민을 위한 해결책인가” 는 결국 “인민을 위한 진정한 출구는, “좌파” 정부들이라는 낡고 빛바랜 동화들에 있지 않고, 오직 착취체제, 즉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조직된 계급투쟁의 강화에 있을 뿐”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회원마당> “이달의 언론, 그 속의 화제” 의 마지막 부분을 옮깁니다. “너희가 ‘손해’봤다고 왜장치는 그 이윤의 정체는 뭐냐? 너희가 만든 거라고 믿고 있니? 그것은 너희가 우리 노동자들에게서 착취한 잉여노동이란다! 그것도 모르는 이 무식쟁이들, 탐욕의 화신들아! ‘손해’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너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착취당한 노동을 되찾을 권리가 우리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며, 머잖아 노동자들은 분명 그 권리를 행사할 것이니 그리 아시게나!”
<자료>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105주년을 맞아, 일본의 노동자동지들에게” 는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105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개최하는 기념집회에 보내는 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연대사입니다.
References
↑1 | 채만수, <노동자교양경제학>, 노사과연, 2022년 제6판 4쇄, p. 495-4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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