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세] 전반적 위기의 세계정세와 투쟁의 침로

– 소망적 정세읽기는 노동자민중을 오도한다

 

채만수 | 소장

 

* [필자 주] 이 글은 사월혁명회의 ≪사월혁명회보≫ 제136호 (2022년 8월)의 특집, “미·중 패권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중의 한 꼭지로 게재된 글이다. 여러 면에서 크게 부족한 글이나, 딱 한 가지, 서두른 나머지 주 9)에서 범했던 2개의 계산 착오를 바로잡은 것 외에는 본래의 글 그대로 여기 싣는다.

 

 

1975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국무원 총리가 당시의 세계정세를 “천하대란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해서, 극히 폐쇄적이었던 이 사회에서까지 널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작금의 위기의 세계정세는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천하대란의 시대’임을 웅변하고 있다. 국내·외의 많은 (진보적) 인사들이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해체나 ‘일극체제의 해체’, ‘다극체제로의 이행’ 등과 같은 언설을 쏟아내는 것도, 그리고 비근하게는 ≪사월혁명회보≫가 지난 제135호에서는 “전지구적 제국의 쇠퇴와 반미자주노선의 성장과 부상”, 이번 호에서는,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아직 가제(假題)이겠지만) “미국은 끝나가고 있다 / 제국 이후, (혁명적) 대전환 / 제국의 종말과 신세계”라고, 사실상 동일한 문제의식의 특집을 연거푸 기획한 것도 분명 그러한 정세의 반영일 터이다.

 

그런데 이 천하대란적인 정세를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해체’나 ‘일극체제의 해체’, ‘제국의 종말과 신세계’ 등으로 총괄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나는 지난번 호에서 그 기획의 일환으로 나에게 주어진 주제인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와 그 극복”(pp. 110-117)을 간단히 논하면서, 먼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를 ‘미제의 패전’으로 해석하면서 촉발된 것으로 보이는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 체제의 쇠퇴 혹은 해체라는 문제의식이 조금 새삼스러울 뿐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지적했다. 즉 그러한 논의는 늦어도 1971년 8월 15일 미 대통령 닉슨의 특별성명, 즉 미국은 더 이상 외국 정부와 통화당국의 달러-금 교환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성명으로 본래적 IMF 체제였던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된 때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월남에서의 미제의 패배, 1980년대 말-90년대 초의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를 거치며 부침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의 철수를 ‘미제의 패배’라며 환호작약하는 것은, “물론 반제(反帝)라는 선의의, 그러나 몰계급적인 국가주의적·국민(Nation)주의적 소망을 현실로 착각한 것일 뿐”이고, “아프가니스탄은, 아니, 아프간 인민은 결코 해방된 게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아니, 아프간 인민은 결코 해방된 게 아니다. 아프간 인민은 여전히 해방을 위한 혁명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아니, 탈레반은 분명 자신들이 미제로부터 아프간을 해방했다고 선전할 것이고, 그 인민들 중에도 그러한 몰계급적·국가주의적·국민주의적 선전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만은 않을 터이므로 아프간 인민은 사실은 과거보다도 더 어려운 혁명의 과제를 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현실이다.(p. 113.)

 

그리고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신식민지 지배의 절대적 조건의 하나인, 식민지·신식민지 내에서의 현지 지배계급의 제국주의와의 협력·동맹 등을, 그리고 노동자 국제주의의 절대적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을 끝맺었다.

 

… 식민지·신식민지 노동자·인민의, ‘반제’ 국가주의·국민주의·애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동맹한 토착 지배계급과의 치열한 계급투쟁은 미국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을 활성화하는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계급투쟁의 활성화는 다시 분명 식민지·신식민지 노동자·인민의 해방의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반미-자주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극복, 그것은 오로지 계급투쟁의 강화·보편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p. 117.)

 

이번 호 특집에서 나에게 배당된 주제는 “(가) 세계 경제위기와 제국의 몰락”이다. 추측되는 기획 의도대로라면, 당연히 현시기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하고, 또한 그것이 논의의 중심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정세를 “미국은 끝나가고 있다”거나 “제국의 몰락·종말” 등등으로 직결시키면서, 거기에서 “(혁명적) 대전환” 혹은 “신세계”를 보는 정세관이야말로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되어, 임의로 글의 제목을 바꾸었고, 지난번 글에서 표명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감히 몇 마디를 하고자 한다.

 

먼저, 우크라이나 전쟁.

지난 호의 특집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에 자극받은 것으로 추측된다면, 이번 호의 특집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극받은 것이 누구의 눈에나 분명할 것이다. 기획된 10개의 글 중에서 무려 5개 글의 제목이, 물론 가제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사태 …”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 그 원인과 성격을 규명하고 그 귀추를 주목하며, 노동자·인민으로서 필요한 대응·투쟁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발발한 지 5개월여가 지났지만 아직 종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제국주의 시대에 인류의 명줄을 쥐고 있는 주요 열강이 사실상 모두 직·간접적으로 참전·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획된 특집의 가제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 전쟁에서 “제국의 종언”이나 그 “종말”·“몰락”의 징후나 그 직접적 가능성을 보면서, “미국은 끝나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게 과연 타당할까? 혹은 그 전쟁이 소위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쇠퇴나 그 해체, 혹은 미제국의 종언을 가속화하고 있는가?

 

내 아둔한 눈으로 볼 때는,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그리고 누군가 거기에서 그러한 것을 본다면, 그것은, 미제 몰락이라는 소망이 강한 나머지, 헛것을 보는 것이다.

소위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 혹은 미제국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 전쟁이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 쇠퇴나 해체·종언 등이 아니다. 거꾸로 그 강화다. 예를 들자면, 실제로 이 전쟁은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근간 중의 근간인 NATO, 그 가맹국들이 여전히 미제국을 중심으로 그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그동안 적어도 형식적·공식적으로는 NATO와 거리를 두면서 ‘중립’을 유지해왔던 퓔란드나 스웨덴마저 NATO에 가입하(려 들)고 있지 않은가? 즉,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가 확대·강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최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제국 주도로 이런저런 경제적·준군사적 국제기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건재·강화를 의미하지 않는가?

‘그래도 러시아나 중국이 미제국의 적대국가들로 당당히 나서고 있지 않은가? 즉, 미제 일극체제가 해체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러시아나 중국 등은 소위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에 포섭된 적이 없었다. 이들 두 나라는 과거에도 이른바 ‘일극체제’ 외부에서 미제와 경쟁·대립해왔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제의 경쟁·적대 국가들로 성장·강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제는 여전히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건재할 뿐 아니라, 강화되고 있다.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 미제국의 지배력이 얼마나 강한가는 그 지배 하에 있는 국가들에서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언론 동향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국내의 언론을 예로 들자면, 소위 진보언론이라는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포함해서 사실상 제도언론의 주류 전체가 우크라니아는, 따라서 그 배후의 미제국이나 NATO, 그 가맹국들은, ‘좋은 나라’이고, 러시아는 ‘나쁜 나라’라고 선전하고 있지 않은가?

 

오직 소수 비판적 지식인들과 선진 노동자들만이 그러한 시각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데, 이 소수 중의 다수는 그 반대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즉, 그들은 이 전쟁을 제국주의 진영 간의 대립·전쟁으로 보는 대신에, 미제국이나 NATO, 그 가맹국들, 그리고 그들의 대리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젤렌스키 정권)는 ‘나쁜 나라’이고, 러시아나 그 동맹국들은 ‘좋은 나라’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나쁜 나라’는 아니라고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러시아는 결코 옛 쏘련이 아니며, 전형적인 제국주의 국가임을 간과하고 있거나, 애써 그에 눈을 감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본성을 부정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Rosstat(러시아연방 국가통계국)이 제공한 1999년부터 2019년 사이의 정보만 보더라도, 어떤 과정을 통해 자본이 집중되고, 은행과 산업자본이 어떻게 결합되었으며, 금융과두제가 어떻게 창출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 다른 열강에서만큼 발전되지 않았다거나, 러시아 경제가 부분적으로 원자재 수출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서, 러시아 독점자본들이 해외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1]2022년 7월 8일 아테네에서 열린, 그리스 공산당(KKE), 스페인 노동자 공산당(PCTE), 멕시코 공산당(PCM), 터키 공산당(TKP) 4자 회의에서의 스페인 노동자 … Continue reading

 

그리고,

 

이 전쟁은 “러시아인들”을 위한 것도,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의 보호”를 위한 것도, 또는 우크라이나 국가의 “탈(脫) 나치화”를 위한 것도 아니며, 바로 위험을 감지하고 또한 자기들 자본의 이익과 성장을 위해 추가적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적 조건을 조성해야 할 필요를 감지한 러시아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러시아인이나 타타르인, 추봐시인, 야쿠트 노동자들의 어떤 이익도, 러시아 연방의 모든 다른 민족 노동자들의 어떤 이익도 이 전쟁은 구현하거나 보호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의 괴뢰 정권이 이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들의 이익을 위해서인데, 이들 올리가르히는 완전히 나토와 서방의 대자본에 의존해왔고, 서방과 나토는 우크라이나군을 서구 부르주아지의 진격 부대로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인용자.][2]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 연합, 편집주 역, “전쟁과 노동자계급의 임무에 대해서”, 같은 책, p. 114.

 

우크라이나 전쟁은, 결코 ‘좋은 나라(들)’과 ‘나쁜 나라(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서로 이해를 다투는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 즉 제국주의 전쟁인 것이다.

 

여기에서 참고로 간단히만 언급하자면, 갈수록 증대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도, ‘일극체제의 해체-다극체제로의 이행’ 따위의, 착취·억압체제로서의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사실상 무비판적인 시각[3]… 많은 공산당들과 노동당들은 러시아를 제국주의라고 규정하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일부는 심지어 러시아도 중국도, 그들이 모두 미국과 … Continue reading 대신에,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즉, 등소평 체제 이후 급속히 자본주의·제국주의화한 중국과 미제국 간의 이해 다툼, 즉,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미국과 중국 간의 위험한 패권 경쟁”[4]미 하원의장 낸씨 펠로씨(Nancy Pelosi)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에 대한, 그리스 공산당의 성명, “On the tension between … Continue reading임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이 패권 경쟁이 만일 전쟁으로까지 발전한다면, 그것은 자칫 제3차 세계대전으로, 그리하여 2,500만 정도의 인간을 도륙한 제1차 세계대전이나, 5,000만 명 정도를 도륙한 제2차 세계대전이 문제가 아니라, 자칫 인류의 절멸을 초래할 핵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감히 단언하지만, 제국주의 국가·진영 간의 경쟁·대립·전쟁 그 자체에 의해서는 미제국의 종말은 결코 없다. 거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인류의 절멸뿐이다. 최근의 위기적·‘천하대란적’ 정세 속에서 사실상 곧바로 ‘팍스 아메리카 체제’의 쇠퇴·해체니, 제국의 종말이니 하는 것을 전망하는 것은, 그러한 소망적 정세읽기독점자본과 그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그 국가주의(nationalism)·애국주의가, 인민대중만이 아니라, 실은 ‘체제-비판적’ 지식인들마저도 얼마나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소망적 정세읽기는 당연히 인민대중을 오도한다.[5]지난번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미제와 그 동맹국들은 중국의 반발·‘분노’를 무릅쓰고, 오커스 결성의 경우에는 심지어 오랜 … Continue reading 제국의 종말은, 국가주의·애국주의를 청산한, 노동자계급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다음엔, 인플레이션.

1970년대 이후 40여 년 만에 인플레이션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며 아우성들이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비명·언설은 낭자하지만, 인플레이션 그것이 무엇인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거짓만 난무하고 있다. 방금 지적한, 독점자본과 그 국가에 의한 이데올로기 지배 때문이다. 즉 (부르주아) 경제학자·경제학 교수라는 사람들도, 소위 경제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사실상 모두가 부르주아 경제비과학·몰과학의 희생자(?)가 됨으로써 인플레이션의 정체와 원인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저들에 의하면, 인플레이션은 그저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물가상승 일반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예컨대, 지금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어떤 사태·사정에 의한 주요 원자재의 공급 부족에 따른 그 가격 상승이거나 무언가의 사정에 의한 수요의 증대[6]사실은 동어반복에 불과해서 극히 과학적인 소위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cost push inflation)과 이른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demand pull inflation). ― … Continue reading이고, 혹은 최근에 발발한 코로나-19에 의한 대역병, 현대 진서(眞書)로는 팬데믹(pamdemic) 등과 같은 사정으로 인한, 예컨대, ‘재난지원금’ 같은 재정지출의 증대, 그에 따른 중앙은행에 의한 ‘화폐’의 증발 등등, 말하자면, 무언가 우연적인 사건들이다! 게다가 심지어는 이른바 ‘물가-임금 악순환론’이라는 것까지, 즉 물가가 오르면 임금이 오르고, 임금이 오르면 다시 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말씀까지 지껄여댄다.[7]나는 최근에 현대사상연구소의 무크지 ≪현대사상≫ 제27호 ≪자본≫(2022. 7.)에 기고하고, 후에 다시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기관지 ≪정세와 노동≫ … Continue reading

언뜻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역겹기 그지없는 소리들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인플레이션은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물가상승 일반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물가의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상승이되, 그 일반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에 자본주의 체제의 전반적 위기가 격화된 가운데 부르주아 국가에 의해서 연출되는 특수한 상승이다.

부르주아 경제비과학·몰과학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오늘날에는 별의별 것을 다 화폐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직 금만이 화폐다.[8]이론적·역사적으로는 금과 은이라는 귀금속이 화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맑스의 ≪자본론≫ 제1권, 제1편 “상품과 화폐”에 완벽하게 설명되어 … Continue reading 왜 그러한가를 여기에서 설명할 여유는 당연히 없으나, 딱 하나의 질문만으로도 인플레이션은 물가상승 일반이라는 저들의 말씀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곧바로 짐작할 수 있다.

다름 아니라, 금태환제 하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존재했는가? 혹은 존재할 수 있는가?

금태환제 하에서는, 즉 금태환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한, 인플레이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금태환제 하에서는, 은행권의 가치는 그 권면에 인쇄된 화폐의 가치, 즉 금의 가치와 같고, 상품의 가격은 이런저런 독점에 의해서,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서 그 가치로부터 괴리되긴 하지만, 그 사회 전체적·평균적으로 보면 그 가치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즉 상품의 가격이 그것들을 생산하는 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과 동일한 노동시간에 생산되는 금량으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묻고 싶을 것이다. ― ‘그렇다고 해서 금태환제 하에서는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물가상승이 없었고, 또 없단 말인가?’

바로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그 질문자가 저 부르주아 경제비과학·몰과학의 희생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란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물가상승’이라는 저 부르주아 경제비과학·몰과학의 희생자!

어떤 특별한 사정에 의해서 화폐인 금 혹은 역사적으로는 은의 생산에 있어서의 노동생산력의 증대로 그것을 생산하는 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기타 상품들을 생산하는 데에서의 노동시간보다 더 빨리 감소한다면, 물가 일반은 전반적·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그러한 시대가 있어서, 예컨대, 경제사에서 ‘가격혁명’의 시대로 알려진 16세기 유럽의 물가가 그러했다. 당시 유럽에는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으로부터 대량의 금·은이 유입됨으로써, 아니 사실은 대량의 금·은을 약탈해 옴으로써, 즉 적은 시간에 금·은을 획득함으로써 한 세기 동안에 물가가 4배, 그러니까 400%나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세기 동안에 물가가 무려 4배, 그러니까 400%나 올랐다! 이 얼마나 엄청난(!) 전반적이고 지속적인 물가 폭등인가![9]한 세기 동안에 무려 400%라는 엄청난(!) 물가상승! ―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라! 그래 보았자 년 평균 상승률은 1.4%에도 채 미치지 못하니까! 한 동안 … Continue reading 가히 ‘가격혁명’의 시대였다!

그러나 ‘가격혁명’이라는 이 엄청난 전반적·지속적 물가상승은, 결코 인플레이션이 아니었다! 물가의 실질적인 상승이었기 때문이다.

물가의 실질적인 상승?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인플레이션이란, 소위 ‘전반적·지속적 물가상승’ 일반이 아니라, 불환통화=국가지폐의 남발로 인한 가격의 도량표준의 사실상의 변경에 의한 물가의 명목적 상승일 뿐이어서, 위와 같은 물가의 실질적 상승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니? 이건 또 도대체 무슨 소리? ― 이런 의문이 든다면, 그것은 현대 부르주아 경제비과학·몰과학의 희생자임을 의미한다.

우리의 주요 관심사인 미제국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해보자.

1929년 가을에 폭발한 대공황이 한창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집권한, 저 유명한 루즈뷀트(Franklin D. Roosevelt)가 집권하자마자 1933년 4월에 금태환을 중지, 아니 사실은 금태환제를 폐지하기 전까지, 미국의 달러 가치는 ‘$1 = 1/20.67온스의 금’이었다. 즉 $20.67달러당 금1온스의 비율로 금태환이 이루어졌다는 뜻인데, 이는 국가가 1/20.67온스의 금에 $1라는 화폐명을 부여했다는 뜻, 즉 그렇게 가격의 도량표준(度量標準)을 확정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율로 금태환이 이루어지는 한, 즉 그러한 가격의 도량표준에 변동이 없는 한, 달러로 표시되는 물가의 상승과 하락은 그만큼의 금량의 증대와 감소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금량의 변화를 수반하는 물가의 변동은 물가의 ‘실질적 변동’이다.

그런데, 역사에는 없었던 가상적인 숫자이지만, 예컨대, 국가가 화폐법을 개정하여 1/20.67온스의 금 대신에 1/41.34온스의 금에 $1라는 화폐명을 부여하면,[10]루즈뷀트 정권은 1933년 4월 금태환 정지와 동시에 제정한 ‘금 준비법(Gold Reserve Act)’에서 ‘금 1온스 = $35’라고 규정했지만, 즉 형식상 그렇게 … Continue reading 그렇게 가격의 도량표준을 변경하면, 그러고도 계속 금태환이 이루어지면, 어떻게 될까?

이전에는 $1가 1/20.67온스의 금을 대표했는데, 이제는 $1가 1/41.34온스의 금을 대표하기 때문에, 예컨대, 이전에 가격이 $1달러였던 상품은 이제는 $2달러로, $10달러였던 것은 이제는 $20로 … 등등으로 물가가 일제히 상승할 것임은 불언가지다. 이는 법률로 가격의 도량표준을 변경했기 때문에 생긴 물가의 상승인데, 그러나 이 상승은 금량의 어떤 증대도 수반하지 않는 그저 ‘명목적’인 상승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인플레이션과는 다른 명목적 상승이다.

그런데 금태환을 중지 혹은 폐지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까?

아니, 그 전에, 국가는 왜, 무엇을 위해서 금태환을 중지 혹은 폐지하는 것일까?

막대한 전쟁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든, 공황 국면에서 대대적으로 파산의 위기에 처한 대자본들을 구제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든, 어떤 이유에서든 금태환의 의무를 지지 않는 불환통화를 대규모로 발행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한 사회의 일정한 시기에는 그 사회 그 시기에 상품이 유통되고 기타 지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화폐의, 즉 금의 유통량이란 게 있다. 순전히 가상의 숫자를 들어 설명하자면, 국가가 금 1g에 1원이라는 화폐명을 부여했는데, 혹은 그렇게 가격의 도량표준을 확정했는데, 어느 날 그 사회에서 유통되어야 할 상품의 가격 총액과 지불되어야 할 부채의 총합이 100,000원이라고 하자. 그런데 그날 1원짜리 화폐가, 금화든, 그것을 대리하는 지권(紙券)이든, 상품의 매매와 부채의 지불에 평균 5번 회전한다고 하자. 즉 ‘화폐의 유통속도’가 5라고 하자. 그러면 그날 그 사회에는 20,000원(100,000원 ÷ 5)이 있으면, 모든 거래와 지불이 원만히 이루어진다. 이 20,000원이 바로 그날의 유통필요화폐량, 즉 유통필요금량이다. 그리고 이 금액은 그것이 금화로 존재하든, 태환은행권이라는 지권으로 존재하든 상관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 시기 그 사회에, 예컨대, 금 200,000g이나 그 이상이 있어도 상관이 없고, 은행권이 그렇게 있어도, 태환이 이루어지는 한,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유통필요화폐량을 넘는 금액은 유통영역 외부로 나와 축장되고, 유통에서는 의연히 1원 = 금 1g의 가치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태환을 정지 혹은 폐기하면 사태가 달라진다. 국가가 태환을 정지 혹은 폐지하고, 금태환의 의무를 지지 않는 불환통화를 대규모로 발행하여 유통영역에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 이상의 불환통화, 즉 지폐를 투입하면, 그 불환통화, 즉 지폐는 유통영역에 그대로 머물러 가격의 명목적 상승을 유발한다. 우리의 가상적 예에서는 가격의 도량표준은 1원 = 금 1g이었고, 금태환이 이루어지고 국가가 법률에 의해서 그 표준을 변경하지 않는 한 지권 1원은 언제나 금 1g의 가치로 유통했다. 그런데 태환이 정지 혹은 폐기된 상황에서, 유통필요화폐량이 20,000원, 즉 20,000g의 금인데, 국가가 40,000원의 불환통화, 즉 지폐를 발행해버리면, 이제 40,000원은 금 40,000g을 대표하는 대신에 20,000g의 금밖에 대표하지 않게 되고, 법률이 아무리 1원 = 금 1g이라고 규정을 해도 실제로는 1원은 금 0.5g을 대표하게 된다. 즉 가격의 도량표준이 사실상 금 0.5g = 1원으로 변경되게 되고, 따라서 물가는 2배로 상승한다. 지폐유통의 특유의 법칙[11]이에 대해서는 ≪자본론≫ 제1권, 제1편, 제3장, 제2절, c) “주화, 가치표장”(MEW, Bd. 23, S. 138-143; 채만수 역, ≪자본론≫ 제1권, 제1분책, pp. 209-219) 참조.이 관철되기 때문인데, 이에 따른 가격의 도량표준의 사실상의 변경에 의한 물가의 명목상의 상승, 그것이 곧 인플레이션이다.

그런데 현대 부르주아 경제비과학·몰과학은, 이에 대해서 침묵한다. 필시 이해조차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이 말로는 애덤 스미쓰나 리카도를 ‘경제학의 아버지’ 어쩌고 하면서 떠받드는 척하지만, 그 고전파 경제학의 노동가치론이 맑스에 의해서 비판적으로 계승되어 완성됨으로써 자본의 이윤이란 착취한 잉여노동임이 폭로되자 그 노동가치론을 외면·타기했기 때문이고, 또한 자신들이 이른바 ‘관리통화제’라고 부르는 현대 불환은행권제도가 사실은 1930년대 이래의 자본주의 체제의 전면적 위기에 의해서, 그 격화에 의해서 강제된 것이어서, 그러한 사정을 은폐하기 위해 사실을 외면해온 탓이다.

전면적 위기가 항상화되어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인플레이션은 항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저들 부르주아 경제비과학자·몰과학자들이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부르주아 국가의 통계가 ‘물가상승률 0%’라고 떠들어대도, 사실은 고율의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12]이에 대해서는, 채만수, ≪노동자 교양경제학≫(제6판), pp. 191-195 참조. 그런데 최근에 저들이 ‘인플레이션’이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은, 문제의 전면적 위기가 더욱 격화되어 초고율의 악성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하여 반드시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그것이 각 계급에 미치는 이해관계이다. 앞에서 가격의 도량표준의 법률적 변경에 의한 물가의 명목적 상승이나 하락은 그 도량표준의 변경과 동시에 일제히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 도량표준의 사실상의 변화에 의한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은 그 양태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그 물가는 증발되는 불환통화가 투입되는 곳에서부터, 즉 국가가 그 상품이나 용역을 구매하는 독점자본, 대자본의 상품 가격부터 상승하기 시작하여, 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에 그 물결이 퍼져나가듯이 파상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차례로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맨 마지막에 오르게 된다. 그것도 희생이 따르는 힘든 투쟁을 통해서!

따라서 초고율의 악성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게 되면, 노동자들은 더욱 빈곤해지게 되고, 그리하여 생존조차 위태로워지면, 그들의 저항이 격렬해지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자본과 국가는,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의 저항을 공권력이라는 폭력으로 억압하게 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인플레이션 관리에 나서게 된다. 현대 부르주아 경제비과학자들이 현대 불환통화제를 ‘관리통화제’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악성 인플레이션 하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그것도 희생을 수반한 투쟁을 통해서야, 최후에 상승하고, 그 때문에 노동자들은 한층 더 빈곤상태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금년의 ‘2023년 최저임금’ 결정도, 그 내용과 방식에서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 노동자의 절규를 들어보자.

 

제국주의 전쟁과 과잉생산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독점자본을 구제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인플레이션(정책)으로 노동자·인민은 지금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2023년 최저임금이, 올해에 비해 고작 460원, 그러니까 5% 오른 시급 9,620원으로 결정되었다. 정부 통계에 의하더라도 물가는 전년도에 비해 6% 이상 올랐고, 앞으로도 더욱 오를 것이라는 게 이의가 없는 예측인데, 고작 5%, 고작 460원의 인상! 명백히 현재의 저임금에 더한 실질임금의 하락이다!

한편, 이번 최저임금 결정과정을 보면, 공익위원들의 의도적이고 기만적인 행태가 뻔히 보여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13]조명제, “물가폭등과 2023년 최저임금”, ≪정세와 노동≫ 제182호, 2022. 7·8월, p. 12.

 

“공익위원들의 의도적이고 기만적인 행태”를 지적하며 분노하는 것은, 저렇게 고율의, 너그러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데에 ‘공익위원들’[14]이번에는, 박준식(위원장,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양정열(부위원장, 최저임금위원회 상임위원), 권순원(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 Continue reading께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익’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새삼 일깨워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음엔 극우의 발호 그리고 포퓰리즘.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초에도, 인플레이션의 기초에도, 한편에는 거대한 과잉생산, 다른 한편에는 노동자·인민 대중의 광범한 빈곤·실업이라는 발달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이 있다. 그리고 이 모순, 특히 그에 의한 노동자·인민 대중의 광범한 빈곤·실업은 당연히 그들의 광범한 저항과 투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고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는 특히 더욱더, 이 저항과 투쟁이, 독점자본의 무소불위한 이데올로기 지배로, 대부분의 경우 해고반대·임금인상 투쟁 위주의 경제주의로 왜소화되거나, 정치적으로 일탈·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유럽에서의 그 득세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은 도처에서 발호하고 있고, 우리 사회의 경우 유서 깊은 지배적 현상이요 지배적 정치세력의 한 축이기도 한 극우의 발호도, 노동자·민중 일부의 그러한 일탈·왜곡된 저항·투쟁의 한 형태이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이 고취하는 국가주의(nationalism)·애국주의·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종속·매몰된 나머지 그들의 정치적 도구·노예가 되어 엉뚱하게 벌이는 현상(現狀)에 대한 저항·투쟁의 한 형태인 것이다. 오늘날 여러 국가에서 그것이 새롭게 득세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국가·사회에서 모순이 극히 격화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극우는 선진적 노동자·인민이라면 누구나 경계하며 투쟁하고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들을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오도할 염려는 없다.

계급투쟁이 일탈·왜곡된 또 다른 형태인 포퓰리즘의 경우는 다르다. ‘진보적’이라고도 포장되고, ‘반제자주적’이라고도 포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그것은 과연 진보적 혹은 반제자주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컨대, 오늘날 특히 남미에서 가히 지배적인 경향으로까지 되어 있는 포퓰리즘, 혹은 소망적으로 소위 ‘반미자주국가’·‘반제자주국가’로 규정되고 있는 정치적 경향은 결코 반미자주국가도, 반제자주국가도 아니며, 그로의 길도 결코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인민 대중의 뜨거운 투쟁 열기를 소모적으로 방출하면서 그들을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착취 체제 속에 묶어두는 반동적 소부르주아 정치요, 현대 사민주의의 한 형태일 뿐이다. 그것은, 그 주체들의 주관적 의도야 어떻든, 객관적으로는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지배·착취 체제의 유지·강화에 복무하고 있을 뿐이다.

 

저들 ‘진보적’ 정치세력의 그러한 역할·기능은 당연히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사회 일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 특히 중·남미 국가들과 그리스나 스페인 등지에서는 그들이 지배적 정치세력들로까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바로 때문에 그들은 여러 ‘흥미로운’ 형태와 방식으로 자신들의 그러한 반동적 역할·기능을 입증해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예컨대, 니카라과나 붸네수엘라 같은 경우에는 미제국의 직·간접적 개입과 압력·제재 때문이라는 형태로, 그리스의 시리자나 기타 중·남미 ‘반제자주국가’들은 자발적으로 미제와 함께 하는 형태와 방식으로! ― 그 중에서도 특히 세계적으로 수많은 ‘진보적’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의 기대를 모았던 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 정권의 행적을 다시 비판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룰라의 재집권이 유력시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저 포퓰리즘적 정치선전이 얼마나 노동자·인민 대중을 정치적 몽매 상태에 묶어두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런저런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진보적’ 정치운동·정당들도 마찬가지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즉 노동자·민중을 해방의 전망이 없는 길로, 대표적으로 국가주의적 혹은 사민주의적 길로 오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준으로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거칠게 총괄하자면, 이상의 모든 것은 ― 우크라이나 전쟁도, 초고율의 인플레이션도, 극우나 포퓰리즘의 발호도, 미국과 중국 간에 고조되고 있는 긴장도, 기타 노동자·인민에 대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착취·억압도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재앙의, 빈곤과 실업 그리고 전쟁의 원인임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천하대란의 시대라고나 해야 할 작금의 세계정세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것의 극복과 폐절, 계급투쟁의 절실성을 보는 대신에, 그 정세를 ‘제국의 종말’ 등으로 관조적으로 총괄하는 것은 분명 노동자·인민을 오도하는 것이다.

투쟁의 침로는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 자체를 극복·폐절하기 위한 투쟁,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한 계급투쟁이어야 한다.

 

백수십 년 전, 그러니까, 인류의 존망 자체가 문제가 될 만큼 그 모순이 극한적으로 격화되어 있는 현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과 그 경향이 이미 명확히 드러나 있던, 그리하여 그 발전의 법칙이 명확히 밝혀져 있던 시기의 글의 한 구절을 여기에 옮기는 것으로 심히 부족한 이 글을 끝맺고 싶다.

엥엘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사회에서의 생산의 무정부성 때문에, 근대적 기계가 갖는 극도로 높아진 개량 가능성이 각 산업자본가에게는 끊임없이 자신의 기계를 개량하고, 끊임없이 기계의 생산력을 높여가지 않으면 안 되는 강제명령으로 전화된다. 이제 자신의 생산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고 하는 단순한 사실상의 가능성도 각 산업자본가에게는 똑같은 강제명령으로 전화된다. 대공업의 거대한 팽창력은, 그것에 비하면 기체의 팽창력 등은 정말 애들의 장난과 같을 정도인데, 이제 그것이 어떠한 저항도 조롱하는, 질적·량적 팽창(膨脹)으로서 우리의 목전에 나타난다. 그러한 저항은 대공업의 생산물에 대한 소비, 판로, 시장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런데 시장의 팽창력은, 외연적으로도 내포적으로도, 전적으로 상이한, 훨씬 미약한 힘으로 작용하는 법칙에 의해서 지배된다. 시장의 팽창은 생산의 팽창과 보조를 맞출 수가 없다.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되고, 그 충돌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체를 폭파하지 않는 한, 어떤 해결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하나의 ‘악순환’을 창출한다.[15]『반뒤링론』, MEW, Bd. 20, SS. 256-257.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2022년 7월 8일 아테네에서 열린, 그리스 공산당(KKE), 스페인 노동자 공산당(PCTE), 멕시코 공산당(PCM), 터키 공산당(TKP) 4자 회의에서의 스페인 노동자 공산당(PCTE) 총비서 아스토르 가르시아(Ástor García)의 연설, 편집부 역, “오늘날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본성을 부정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 ≪정세와 노동≫ 제182호, 2022년 7·8월호, pp. 126-127.
2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 연합, 편집주 역, “전쟁과 노동자계급의 임무에 대해서”, 같은 책, p. 114.
3 … 많은 공산당들과 노동당들은 러시아를 제국주의라고 규정하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일부는 심지어 러시아도 중국도, 그들이 모두 미국과 유럽연합, NATO와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반제국주의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이들은 다극체제론을 옹호하는 바로 그 사람들인데, 그들은, 그러한 논의가, 상이한 열강에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들은 아무튼 그대로 둔 채, ‘일극체제는 서구 열강에게 이득을 주는 반면에 다극체제는 서구 열강의 이익을 희생시켜 다른 열강의 이익을 보장할 것이라는 명제에 기반한, 제국주의 간 충돌 및 자본주의 발전 모델에 관한 논의라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이는 현실적으로는 쿠바와 베트남, 라오스 같은 나라들이 그들 경제에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의 도입과정을 더욱 가속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습니다.”(강조는 인용자)(위에서 인용한, 아스토르 가르시아의 연설 중에서. ≪정세와 노동≫ 제182호, 2022년 7·8월호, p. 127.)
4 미 하원의장 낸씨 펠로씨(Nancy Pelosi)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에 대한, 그리스 공산당의 성명, “On the tension between the USA and China”, (http://www.idcommunism.com/2022/08/ kke-on-tension-between-usa-and-china.html.)
5 지난번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미제와 그 동맹국들은 중국의 반발·‘분노’를 무릅쓰고, 오커스 결성의 경우에는 심지어 오랜 ‘동맹국’ 프랑스의 반발·분노까지를 무릅쓰고, 그러한 정책·전략을 강행하며 특히 중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 도대체 무엇을 노리고 그러는 것일까? / 다름 아니라 바로 중국과의 국가 간의 긴장, 국민 간의 그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럼으로써, 한편으로는 오늘날 군산복합체로 불리는 군수 독점자본을 위한 판로를 조성하고, 더 중요하게는 노동자·인민을 애국주의·국가주의·국민주의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것이고, 그리하여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착취·억압 관계를 은폐하며 독점자본(의 국가)에 대한 노동자·인민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다. /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즉 독점자본은 노동자·인민을 애국주의·국가주의·국민주의적으로 동원하고,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착취·억압 관계를 은폐하며, 독점자본(의 국가)에 대한 노동자·인민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는 점이야말로 반미·자주화의 투쟁역량과 그 성과를 강화하고자 할 때, 그리고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극복을 꾀할 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이다. 더구나 현대 제국주의 세계체제로서의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는 동시에 신식민지 지배체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사월혁명회보≫ 제135호, 2021. 12., p. 115; ≪정세와 노동≫ 제177호, 2022. 01. pp. 20-21.)
6 사실은 동어반복에 불과해서 극히 과학적인 소위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cost push inflation)과 이른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demand pull inflation). ―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이라는 점을 말씀드렸는데요. 가격이 올라가는 이유는 결국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수요가 늘어나거나, 공급이 줄어드는 경우에 가격은 상승합니다. 먼저 수요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demand pull inflation)은 경기가 좋을 때 나타납니다. 본질적으로 좋은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 /경제의 공급 메커니즘에 문제가 생겨 물가가 상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cost push inflation)이라고도 부르는데, 수요 측면에서의 인플레이션보다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는 건 우리의 경제적 직관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술은 진보하고, 생산은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그래서 공산품보다는 통제하기 힘든 원자재 시장의 교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농산물이 대표적입니다. 기후에 많이 좌우되는 농산물의 작황은 인간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분야입니다. 요즘의 공급 측면 인플레이션은 더 복합적입니다. 전쟁이 공급을 제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주요 농산물 생산지역의 작황을 망치고 있고, 천연가스도 러시아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몇 해 전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했을 때, 일본이 주요 전략물자의 대한(對韓) 수출을 통제한 바 있습니다. 미·중 무역 분쟁도 정치 논리가 경제에 타격을 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인플레이션 그것이 알고 싶다”, (≪시사IN≫ 제772호, 2022. 7. 5., p. 36.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824). 인플레이션이란 무엇이고, 왜 발생하는 것이며, 그 효과가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아니 그것들에 대해서 저들 부르주아 경제학자님들이나 경제전문가님들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진보적’ 주간지 ≪시사IN≫ 제772호, pp. 33-36에 게재된 이 글을 일독할 것을 권장하고 싶다. 짧은 글이지만, 저들의 ‘과학적인’ 주장·사고의 요체들을 모두 담고 있다!
7 나는 최근에 현대사상연구소의 무크지 ≪현대사상≫ 제27호 ≪자본≫(2022. 7.)에 기고하고, 후에 다시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기관지 ≪정세와 노동≫ 제181호(2022. 6.)에 게재한, “≪자본론≫: 생생한 진라·자본가계급의 공포”에서, 진보한겨레(2022. 5. 18.)에 “인플레이션 시대의 노동과 노동의 가치”란 제목으로 실린,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님의 글 속에 있는 이러한 물가-임금 악순환론을 간단히 비판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다시 ≪시사IN≫ 제772호의 예의 글 속에 있는 그것을 소개해보자. ―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해악을 주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물가가 적당히 상승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경기가 좋아서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때 물가가 상승하니까요. 적당한 물가상승은 경제의 활력을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 /과도한 물가상승이 나쁜 것은 서민들의 생활을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가가 올라가는 것은 생활비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물가상승은 다른 말로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동일한 월급으로 더 적게 살 수밖에 없으니까요. 물가상승에 맞춰서 월급이 올라가면 문제가 없습니다만, 이것도 간단치 않습니다. 물가가 오른다고 임금이 곧바로 상승하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물가상승을 임금에 반영할 수 있는 교섭력을 가진 노동조합에 속한 이들은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비조직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인플레이션은 약자에게 더 잔인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임금이 올라도 문제입니다. 기업 처지에서 임금은 매우 경직적인 비용입니다. 한번 올려주면 줄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제품 가격을 올려서 마진을 보전하려고 할 겁니다. ‘물가상승임금인상물가상승의 순환구조가 만들어지는데, 임금의 경직성을 감안하면 물가상승분을 임금인상으로 만회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결국 민생고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김학균, 같은 글. 강조는 인용자.) ― 감히 한 마디 여쭙자면, 임금이 올라가면 “당연히 제품 가격을 올려서 마진을 보전”할 힘이 자본가에게 있다면, 그들은 왜 그 힘을 임금이 오를 경우에만 사용하시는 걸까요? 아무 때고 그 힘을 발휘하셔서 ‘마진’을 극대화하시지 않고 말입니다.
8 이론적·역사적으로는 금과 은이라는 귀금속이 화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맑스의 ≪자본론≫ 제1권, 제1편 “상품과 화폐”에 완벽하게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자본론≫ 제1권, 제1편 “상품과 화폐”를 읽고, 그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반론을 펼 수 없다면, ‘왜 금만이 화폐냐?’ 따위의 발언은 해서는 안 되며,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이다!
9 한 세기 동안에 무려 400%라는 엄청난(!) 물가상승!그러나 실망하지 마시라! 그래 보았자 년 평균 상승률은 1.4%에도 채 미치지 못하니까! 한 동안 인플레이션률이 낮자 자본가 국가와 언론은 그것을 2%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 정책과 선전을 펼쳤고, 그리하여 ‘진보’ ≪시사IN≫(제772호)도 이렇게 쓰고 있다. ―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해악을 주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물가가 적당히 상승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 적당한 물가상승은 경제의 활력을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어느 정도의 물가상승이 적당할까요? … 물가 관리를 존립 근거로 하는 중앙은행들은 대체로 2% 정도의 물가상승을 건전한 물가상승률로 보고 있습니다.”(김학균, 같은 글, p. 35.) ― 그런데, 계산기를 두들겨 2%적당한물가상승률을 한 세기, 그러니까 100년간의 그것으로 환산해보니, 겨우겨우 ‘724%’ 남짓이라네!
10 루즈뷀트 정권은 1933년 4월 금태환 정지와 동시에 제정한 ‘금 준비법(Gold Reserve Act)’에서 ‘금 1온스 = $35’라고 규정했지만, 즉 형식상 그렇게 가격의 도량표준을 변경했지만, 그 후 한번도 금태환이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여기에서는 가상의 숫자를 든다. ‘금 1온스 = $35’라는 규정은 1971년 8월 15일까지 브레튼 우즈 체제의 IMF에서 각국의 환을 평가하는 데에만, 그리고 그때까지 각국의 요구에 따라 미국이 ‘달러-금’ 교환에 응하는 데에만 일정하게 의의가 있었다.
11 이에 대해서는 ≪자본론≫ 제1권, 제1편, 제3장, 제2절, c) “주화, 가치표장”(MEW, Bd. 23, S. 138-143; 채만수 역, ≪자본론≫ 제1권, 제1분책, pp. 209-219) 참조.
12 이에 대해서는, 채만수, ≪노동자 교양경제학≫(제6판), pp. 191-195 참조.
13 조명제, “물가폭등과 2023년 최저임금”, ≪정세와 노동≫ 제182호, 2022. 7·8월, p. 12.
14 이번에는, 박준식(위원장,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양정열(부위원장, 최저임금위원회 상임위원), 권순원(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이승열(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오은진(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민선(중소벤처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 전인(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신자은(KDI 국제정책대학원 경제학 교수), 이수연(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15 『반뒤링론』, MEW, Bd. 20, SS. 256-257.

채만수 소장

1개의 댓글

  • 금융약탈도 몬하는 후진국 러시아가 어떻게 제국주의 국가요!!!

    근거랍시고 추가한 문건도 그냥 해외연설문 아니오!!!

    자주적으로 분석해야지… 작태가 사대주의 아니요?!!

    여론이 불리하면 싸워서 바꿀 생각을 해야지 현상황이 불리하니 나쁘다고 해서 될 일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