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보고서 ≪우리 당의 사회민주주의 경향에 대하여≫에 관한 토론의 결론(2)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1. 몇 가지 일반적 문제

  1) 맑스주의는 교조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다.

  2)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레닌의 몇 가지 의견

  3)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전의 불균등성

2. 까메네프는 뜨로쯔끼의 길을 닦아 주고 있다.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3. 믿기 어려운 혼란, 또는 혁명성과 국제주의에 대한 지노비예프의 견해

4. 뜨로쯔끼는 레닌주의를 왜곡하고 있다.

  1) 뜨로쯔끼의 요술, 즉 “영구 혁명” 문제

  2) 인용문에 의한 말장난, 즉 레닌주의에 대한 뜨로쯔끼의 왜곡

  3) “사소한 일”과 기묘한 일

5. 반대파의 실천 강령. 당의 요구

6. 결론

 

 

2. 까메네프는 뜨로쯔끼의 길을 닦아 주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까메네프 연설의 주요 목적은 무엇입니까? 까메네프의 얼마간 사소한 점과 상투적인 외교적 수사를 무시하면, 그의 목적은 뜨로쯔끼가 자신의 입장을 옹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 가능성에 관한 기본 문제에서 뜨로쯔끼가 레닌주의에 대항해 싸우는데 조력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까메네프는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 가능성에 관한 레닌의 주요 논문(1905)이 러시아와 아무 관련이 없음을 증명하는 “책무”를 스스로 맡아 나섰습니다. 레닌이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 가능성을 말할 때 염두에 둔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다른 자본주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까메네프가 뜨로쯔끼의 길을 닦아 주기 위해 이러한 수상쩍은 “책무”를 스스로 맡아 나섰지만, 뜨로쯔끼의 “도식”은 1915년 쓴 레닌의 논문에 의해 완전히 논박되었고 논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까메네프는 뜨로쯔끼의 마부 역할을 맡아(웃음), 뜨로쯔끼를 위해 길을 깨끗이 청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레닌 연구소 소장이 뜨로쯔끼의 마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기란 슬픈 일입니다. 이는 마부의 일이 천하다는 것이 아니라, 까메네프는 매우 유능한 사람이기에 그가 좀 더 유능한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웃음) 그러나 그는 이 역할을 자진해서 맡았습니다. 물론 그는 그렇게 할 충분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제 까메네프가 어떻게 이 기괴망측한 책무를 수행하였는지 봅시다.

 

까메네프는 연설에서 레닌이 1915년 논문에서 제기한 기본 명제, 즉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 가능성을 긍정한 명제인 우리 혁명과 우리 건설의 모든 방침을 규정한 명제는 러시아와 관련이 없으며 관련될 수도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레닌이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 가능성을 말한 것은 러시아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오직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황당하고 기괴한 수작입니다. 이것은 레닌 동지에 대한 노골적인 허위선전입니다. 그러나 보아하니 까메네프는 레닌에 대한 이러한 왜곡에 당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거의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뜨로쯔끼에게 어떻게든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그는 이 기괴한 주장을 어떻게 입증하려고 합니까?

 

그는 말합니다. 레닌 동지가 이 논문을 쓴 지 2주 후에 당면한 러시아 혁명의 성격에 관한 유명한 테제[1]이는 레닌의 논문 “몇 가지 테제”를 말한다.(Works, 4th Russ. ed., Vol. 21, pp. 366-68 참조).를 발표하였는데, 이 테제에서 맑스주의자의 임무는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확보하는데 국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닌이 이렇게 말한 것은 러시아 혁명이 부르주아 단계에 머물러야 하며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 발전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의 가능성에 관한 레닌의 논문은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레닌이 이 논문에서 러시아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까메네프는 레닌을 러시아 혁명의 범위에서 좌익 부르주아 혁명가들이나 사회민주당 유형의 개량주의자들처럼 이해합니다. 이들은 부르주아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해서는 안 되고, 부르주아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 사이에는 오랜 역사적 기간, 장기간의 단절, 그리고 적어도 수십 년의 간격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기간 동안에 자본주의는 번성하고 프롤레타리아트는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레닌은 1915년에 자신의 논문을 썼을 때 부르주아 혁명의 승리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즉각적인 이행을 생각지도, 바라지도, 노력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황당무계하고 기괴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까메네프의 이 주장은 실제 황당무계하고 기괴한 것입니다. 그러나 까메네프는 이 정도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까메네프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레닌 동지를 난폭하게 왜곡하고 있는 몇 가지 문건을 인용하겠습니다.

 

다음은 레닌 동지가 일찍이 1905년에 러시아 혁명의 성격에 관해 쓴 내용입니다. 그 당시에는 혁명의 전망이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로 1917년 2월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렇게 강력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강력할 수도 없었습니다.

 

“민주주의 혁명으로부터 우리는 바로 우리의 역량, 계급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힘만큼 즉시[2]강조는 쓰딸린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하기 시작할 것이다.”(전집, 제8권, p.186를 보라)

 

이 구절은 1905년 9월에 발표된 레닌의 논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까메네프는 이 논문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요? 레닌 연구소 소장이라면 이 논문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논문에 의하면 레닌은 부르주아 혁명의 승리를 프롤레타리아트 투쟁과 혁명 일반의 끝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의 첫 단계나 과도기적 단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레닌이 후에 러시아 혁명의 성격과 전망에 대하여 자기의 견해를 바꾼 것은 아닐까요? 다른 문건을 봅시다. 내가 참조하고자 하는 논문은 1915년 11월에 발표된 레닌의 논문입니다. 이 논문이 발표된 시기는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의 가능성에 관한 레닌의 기본 논문이 발표된지 3개월 후입니다. 레닌은 거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 장악을 향해 투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헌신적으로 투쟁할 것이다. 이는 공화국을 위한 것이고, 토지 몰수를 위한, 즉 농민의 참여를 얻기 위한, 농민의 혁명적 역량을 최대한 흡수하기 위한 것이고, 군사 봉건적 제국주의(짜리즘)로부터 부르주아 러시아의 해방 운동으로 비프롤레타리아 인민 대중을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는 짜르로부터, 지주의 토지 권력으로부터 해방된 부르주아 러시아의 이점을 즉시 이용할 것이다. 이는 농업 노동자에 대항해 투쟁하는 부농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와 동맹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기 위해서이다.”(전집, 제18권, P.318를 보라)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여기서 이전 인용문과 마찬가지로, 1905년이나 1915년이나 같습니다. 레닌은 러시아의 부르주아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 발전해야 하며, 러시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는 러시아 혁명의 제1단계이며, 이는 즉시 제2단계인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면 까메네프가 연설에서 언급한 러시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에 관한 레닌의 1915년 테제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이 테제는 부르주아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 발전한다는 사상과 모순되지 않습니까? 물론 모순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 테제의 기초는 부르주아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 발전한다는 사상이며, 러시아 혁명의 제1단계가 제2단계로 전화한다는 사상입니다. 첫째로, 레닌은 이 테제에서 러시아 혁명의 전망과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의 임무는 짜르와 지주를 타도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에 국한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레닌은 이 테제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과업을 설명하는 것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혁명의 제1단계이고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의 당면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레닌은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이 자기 임무를 제2단계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뜨로쯔끼가 “짜르 없는 노동자 정부”라는 정식으로 제안한 바 있는 것과 같은)이 아니라 제1단계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부르주아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 발전한다는 사상과 그 어떤 모순이, 심지어 모순의 그림자라도 있습니까? 당연히 없습니다.

 

따라서 까메네프는 레닌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까메네프에 반대되는 증거로, 레닌의 문서 형태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한 증인이 있습니다. 예컨대 뜨로쯔끼, 당 제14차 대표자회, 마지막으로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까메네프와 지노비에프 자신들이 그러한 증인들입니다.

 

우리는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 가능성에 관한 논문이 1915년에 발표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당시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에 관해 레닌 동지와 논쟁하고 있던 뜨로쯔끼가 즉시, 즉 같은 해인 1915년에 이 논문에 답하는 특별 비판문을 썼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뜨로쯔끼는 1915년에 그의 비판문에서 어떻게 말했습니까? 그는 레닌 동지의 논문을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그는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를 말할 때 레닌이 러시아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한 것일까, 아니면 달리 지금 우리 모두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해한 것일까? 여기에 뜨로쯔끼 논문의 한 구절이 있습니다.

 

“유럽 합중국이라는 슬로건에 반대하는 다소나마 구체적이고 유일한 역사적인 논증은 스위스 <사회-민주주의자>(당시 볼셰비끼의 중앙 기관지로 레닌의 위 논문이 여기에 게재되었었다- 쓰딸린)에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정식화되었다. ‘경제 정치적 불균등 발전은 자본주의의 절대 법칙이다.’ 이로부터 <사회-민주주의자>는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가 가능하며, 따라서 개별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유럽 합중국 수립을 전제로 할 이유가 없다. … 어떤 나라도 자신의 투쟁에 있어 다른 나라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초보적인 사상이다. 동시적인 국제적 활동이라는 개념이 국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대체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반복하는 것이 유용하고 필요하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주동적으로 다른 나라의 투쟁에 자극을 준다는 충분한 신념을 가지고 한 나라에서 투쟁을 시작했고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역사적 경험과 이론적 고찰이 증명하고 있듯이, 예를 들어 혁명적 러시아가 보수적 유럽에 맞서 버틸 수 있다거나 사회주의 독일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고립된 상태에서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뜨로쯔끼 저작집, 제3권, 제1부, pp 89-90를 보라)

 

당시 뜨로쯔끼는 레닌의 논문을 지금 까메네프가 “이해”하려는 방식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레닌이 이해한 방식으로, 당이 이해한 방식으로,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뜨로쯔끼는 레닌과의 논쟁에서 자신의 입장을 러시아에 근거해서 방어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뜨로쯔끼는 이 대목에서 현재의 동맹자 까메네프에 반대하여 증언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뜨로쯔끼는 왜 이번 대표자회에서는 까메네프를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왜 여기에서 까메네프가 노골적으로 레닌을 왜곡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정직하게 선언하지 않는 것입니까? 뜨로쯔끼는 이 문제에 대한 침묵이 성실한 논쟁의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뜨로쯔끼가 여기서 까메네프를 반대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레닌에 대한 직접적인 중상묘략이라는 꺼림직한 “일”에 끼어들기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추악한 작업을 까메네프에게 맡겨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은, 예컨대 제14차 대표자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 가능성을 다룬 제14차 대표자회 결의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제 정치적 불균등 발전은 자본주의의 절대 법칙이다.’에서 레닌 동지는 마땅히 다음 두 가지 결론을 추론했습니다. 1) ‘소수의 심지어 하나의 자본주의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먼저 승리할’ 가능성과 2) 이 소수의, 심지어 하나의 나라가 반드시 가장 발전한 나라가 아닐 가능성(특히 수하노프에 대한 주석 참조). 러시아 혁명의 경험은 한 나라에서 이와 같은 최초의 승리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일련의 유리한 정세 하에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승리한 이 최초의 나라가(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정한 지원을 받는 다면) 오랫동안 유지되고 그 지위를 강화할 수 있으며, 비록 이 지원이 다른 나라에서 직접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도 그렇다는 것을 증명하였다.”(제14차 대표자회 결정서 “국제 공산당 집행 위원회 확대 전원회의와 관련한 국제 공산당 및 러시아 공산당(볼)의 임무에 관하여”[3]<쏘련 공산당 대표자회, 대표대회 및 중앙전원회의 결의와 결정> 제2부, 1953년, p.48 참조에서)

 

따라서 당 전체는 제14차 대표자회에서 나타난 것처럼 까메네프에 반대하는, 즉 레닌이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에 관한 논문에서 러시아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까메네프의 주장에 반대하는 증언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표자회는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에 관한 레닌의 유명한 논문의 올바름을 “러시아 혁명의 경험이 증명하였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14차 대표자회는 레닌 동지의 논문을 레닌이 이해한 것처럼, 뜨로쯔끼가 이해한 것처럼, 우리 모두가 이해한 것처럼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제14차 대표자회의 이 결의문에 대한 까메네프와 지노비에프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결의문은 지노비에프와 까메네프가 참여한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초안을 작성하고 승인하지 않았습니까? 까메네프는 이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제14차 대표자회의 의장이었고, 이 결의문을 보고한 사람은 지노비에프였지 않습니까? 까메네프와 지노비에프가 이 결의문과 그 모든 조항에 찬성했다는 것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 까메네프는 제14차 대표자회 결의문에 직접 인용된 레닌의 논문을 지금 그가 “이해”하려고 하는 방식과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어느 까메네프가 진실이라고 믿어야 합니까? 제14차 대표자회의 의장이었고 제14차 대표자회 결의문에 찬성한 까메네프를 믿어야 합니까, 아니면 지금 제15차 대표자회에서 뜨로쯔끼의 마부 노릇을 하고 있는 까메네프를 믿어야 합니까?

 

따라서 제14차 대표자회의 까메네프가 제15차 대표자회의 까메네프를 반대 증언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지노비에프는 왜 침묵을 지키며 1915년 레닌의 논문과 제14차 대표자회 결의문을 노골적으로 왜곡하는 까메네프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습니까? 다름 아닌 지노비에프가 제14차 대표자회에서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에 관한 결의문을 옹호하지 않았습니까?

 

그런즉 지노비에프에게는 깨끗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음성: “매우 추잡해!”) 이것을 솔직한 논쟁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로부터 까메네프와 지노비에프는 이제 성실한 논쟁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입니까? 결론은 까메네프가 뜨로쯔끼의 마부 역할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뜨로쯔끼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1926년 11월 3월)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이는 레닌의 논문 “몇 가지 테제”를 말한다.(Works, 4th Russ. ed., Vol. 21, pp. 366-68 참조).
2 강조는 쓰딸린
3 <쏘련 공산당 대표자회, 대표대회 및 중앙전원회의 결의와 결정> 제2부, 1953년, p.48 참조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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