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료] 청년운동에서 맑스-레닌주의의 중요성

 

한동백 | 회원

 

* 이 글은 7월 17일에 있었던 청년위원회 제1회 토론회에서의 발제문이다.

 

 

머리말

 

한국 사회 청년 운동에서 맑스-레닌주의 세계관의 중요성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청년은 과잉경쟁, 빈곤, 실업 등 사회 모순의 한가운데에 서 있기에 한국 사회 모순을 폐부로 느낀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극복할 방법’으로서 ‘개인적 노력과 인내’를 강조하는 반(反)과학적-반동적 이데올로기에 꾸준히 영향을 받아온 결과로, 역설적으로 그 사회 모순의 근저에 작동하는 운동 법칙이 무엇인지 깨닫기 힘든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사회주의 붕괴 후, 한국 사회에 만연하는 사회 모순을 과학적으로 해명해줄 무기인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으로서의 맑스-레닌주의가 청산된 후, 청년 및 학생 운동의 과학성은 상실되었다. 과학성의 부재는 현재까지 이어졌고, 오늘날 청년이 그 자신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사회 모순의 근원을 밝힐 과학적 관점을 갖기 어려워졌다. 과학적 세계관이 뒤로 밀리고, 반동기가 이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청년은 과학적인 관점을 갖기보단, 현 사회 문제에 대한 자조적인 관점으로 입장을 굳히고 있다.

 

우리는 항상 ‘개인의 의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한 개인이 자신의 ‘개인적 노력’을 통해 자신에게 닥친 문제―본질상 사회의 구조적 모순인―를 극복하겠다고 하는 것은, 지구의 공전을 자신의 힘으로 저지해보겠다는 것만큼 막연한 것이다. 몇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의 ‘개인적 노력’을 통해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지만(그것이 무지의 소산이든, 의도적인 사기이든), 그러한 것은 실제로 사회 부조리에 자신을 내맡긴 것에 불과하며, 그러한 사회 모순의 수많은 운동 양상에서 우연적으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개인의 의지’를 강조하는, 이러한 반과학적 견해는 지배계급의 지원에 힘입어, 반동적인 세뇌 공작의 전형으로 되었다.

 

사회 문제를 ‘개인의 의지’ 문제로 치환하는 자들은, 그들이 지배계급이 아닌 이상, 그러한 주장이 종국에는 사회 문제라는 개념을 소멸시켜버릴 것이란 걸 전혀 모른다. 객관과 완전히 분리된 ‘의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들이 부르짖는 어떠한 정치적·사회적 구호 역시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초자연적 ‘의지’ 문제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면 과학적 인식의 기초로서 자연과 인간의 매개라는 관점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청년이 겪는 사회 문제는 그것이 그저 ‘없는 문제’이거나, 있어도 손도 못 댈 문제에 불과한 것이 된다.(있지만, 없는 것처럼 취급할 수밖에 없으며, 그래야 하는 것으로)

 

청년이 그들 스스로를 겨냥하는 사회 모순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그 사회 모순의 객관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그러한 문제가 주관과 연관되어 있다면, 객관과 주관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이 지점에서 객관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과학적 인식과 연결된다. 그것을 주관과 연관하여 이해하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세계관으로 나아가는 것이 된다. 결국, 현시기 청년 운동에서 절실한 것은 과학적 세계관이다. 과학적 세계관이 없으면 청년이 겪는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이해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I.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

 

어떠한 한 사회 문제를 해결·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길은, 수많은 문제에 대한 일관된, 그리고 과학적인 취급 방식으로서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다. 과학이란 사회와 자연 사물의 운동 및 발전의 기계적·화학적·유기적 계기와 연관을 분석·종합하는 전(全) 체계를 말한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인 객관적인 실재가 있음을, 그리고 모든 사물이 서로에 대해 연관하고 있으며, 매개 관계를 이룬다는 결정론을 승인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에서 입각한 과학은 필연만을 인정하는 기계적 결정론이 아닌, 변증법적 결정론에 기초한다. 변증법적 결정론은 우연의 객관성을 승인하며, 우연이 필연과 통일되어 있음을, 따라서 법칙의 필연적 관철은 한편으로 우연의 가능성을 항상 남겨놓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세계관이란 지식 총체를 일관된 체계에 통일시키는 것, 또는 그러한 도정을 말한다. 과학적 세계관은 과학 사회와 역사의 운동 및 발전 법칙을 과학적으로, 총체적으로 해명한다. 사회 문제의 해결·극복에는 과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과학적 세계관이 아닌 세계관은 널리고 널렸다. 세계를 신의 주재로 보는 유신론, 사회 문제의 근원을 개인적인 주관의 우연적 합산이라 여기며, 개인의 의지가 어떠한 외적 규정도 받지 않는다는 주관주의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세계관’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세계관도 존재한다. 이러한 세계관들은 현재까지 지배적인 세계관으로 되었으나, 사회 모순을 해결할 그 어떠한 단초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세계관들은 의도적으로 비과학적 사고관을 주입하여 청년이 사회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과학적인 길로 나아가는 것을 차단한다.

 

청년이 사회 문제를 해결·극복하기 위해선 그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과학적 세계관을 견지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과학적 세계관은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에 기초해있다.

 

 

II. 노동자계급의 당파성

 

흔히들,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그 어떠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완벽히 중립적인 학적 체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學)의 발전사에서 계급적 이해관계가 결부되지 않은 학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시대의 학문은 그것을 운용하는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학(學)의 발전이 이루어진 그 역사적, 논리적 경로를 추적하고 연구하면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사실이다.

 

우리 사는 시대에서 진정 과학적이라 불릴 수 있는 세계관은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에 입각해 있는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이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은 어떻게 과학적 진리를 보장할 수 있는가?

 

그것은 과학이 인간이 가진 사회생활 및 그로부터 산출되는 욕구와 분리될 수 없다는 매우 당연한 사실로부터 생겨난다. 인간은 과학이라는 체계 그 자체를 위해 과학적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인간이 가진 자연적·사회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과학적 수행을 한다. 과학적 수행에 전제되는 이 성격은 과학이 인간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생활양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학의 체계라는 것을 밝혀준다. 오로지 이를 통해서만 과학은 그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생활 및 그것의 총체로서 생활양식에서 인간이 맞닥뜨리는 제반 문제는 그것 자체가 인간과 자연의 상호 연관을 이루는, 가장 심원에 있는 모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 총체이다. 인간이 자연에서 자기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인간 그 스스로가 이 모순을 어떻게든 다루어야 한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순, 사회 내부 모순의 존재와 이 모순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학적 사고를 추동하고, 객관을 연구할 학의 체계를 구성하게 한다. 이는 사회생활이 전제되지 않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우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현시대 인간의 생활 양식상 가장 근본적인 모순이 노동자계급에게 쏠려 있다. 오늘날 사회 모순이 집중된,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상승한다고 할 수 있는 계급은 노동자계급이다. 자본가계급 역시 그러한 모순의 가장 근본적인 영역까지 와 있지만, 그들은 모순의 극복이 아니라, 모순을 내버려 두는 쪽(기만과 은폐를 동원한)을 택할 수밖에 없다.

 

과거 자유 경쟁 자본주의 시기, 봉건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의 자본가계급은 봉건적 생산양식이 갖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즉 낡은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억압하고 있는 문제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에 진입함으로써, 즉 자본주의의 생산관계가 그 대립물인 생산력을 억압하고 둘 사이의 모순이 수많은 사회적 모순을 폭발적으로 산출하는 상황이 오자 그들에게서 더는 과학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모순의 극복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들이 누리는 안락한 삶을 소멸하게 한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은 모순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조금의 의지도 없는 당파로 된다. 자본가계급에게 제 모순(사회의 모든 객관적 문제들)은 오히려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가계급의 당파는 모두가 모순을 외면해야지만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고, 바로 그렇기에 대중이 사회 모순을 바로 인식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한다. 그 결과 그들은 온갖 유사과학(‘과학’의 이름을 가진 신비주의)과 노골적인 신비주의를 동원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이 극심하게 관철되는 현시대에서 모순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당파는 노동자계급뿐이다. 이것을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이라고 하며, 이 계급의 당파성에 기초한 세계관을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이라고 한다.

 

 

III.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대한 분석과 종합

 

오늘날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세계관인 맑스-레닌주의는 사회 부조리, 모순의 원인을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내적 모순에 따른 운동에서 찾는다.

 

그렇다면 경제적 사회구성체란 무엇인가? 경제적 사회구성체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자연을 다루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인간의 자연사적 성격에 그 축을 두는 개념이다. 즉,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로서 사회생활을 축으로 하여, 물질적 재화의 생산과 교환 그리고 분배 및 소비과정에 내포되어있는 사람들 사이 관계의 총체를 말한다. 이 총체의 내적 운동에 따라 사회 문제가 생겨나는데, 이 총체 역시 그 내인에 따라 그 규정된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하여 경제적 사회구성체는 크게 다섯 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원시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 공산제가 그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제국주의에 의해 규정받는 예속적인 독점자본에 의해 지배되며, 동시에 독점자본에 대한 국가의 견인이 뒷받침되고 있는, 고도로 발달한 자본제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IV. 사회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명으로서 맑스-레닌주의

 

맑스-레닌주의는 자본제 사회의 운동 법칙을 과학적으로 해명한다. 청년이 받는 터무니가 없을 정도로 낮은 임금, 그로 인한 만성적인 빈곤은 맑스-레닌주의의 경제학 체계로서 자본주의 상품 생산의 운동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상품의 가치는 그것이 생산되기까지 소요된, 재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규정된다는 노동가치론을 기반으로 생산과 소비의 문제에 접근한다. 자본가가 얻는 이윤의 근원은, 그들이 노동자로부터 도둑질해 온, 노동자들의 시간이다. 한 단위의 상품 생산에 필요한 양만큼의 원료는 그것이 가진 가치를 그대로 생산물에 이전하고, 노동수단은 한 단위의 상품이 생산될 때까지의 마모분이 갖는 가치를 생산될 상품에 그대로 이전하지만, 노동력은 자본가의 착취를 통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여기서 지불된 것을 초과하여 산출된 가치가 잉여가치인데, 이 지불되지 않은 노동이야말로 자본가의 이윤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맑스-레닌주의는 이에 근거하여 가격의 근원을 과학적으로 규명한다. 상품의 생산가격은 경쟁을 거친 가치로, 그것의 사회적 가치(경쟁을 통해 균등화된)에 의해 규정되며,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 수준에 따라, 생산가격을 중심으로 국소적으로 변화한다. 총 생산가격은 총 가치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은 총 가치의 실현 과정에서 이윤을 확보하는데, 개별자본은 그 자본에서 생산한 상품의 개별 가치가 그 상품의 사회적 가치보다 낮을 경우, 즉 해당 자본의 생산기술과 노동생산성이 높을 경우, 초과이윤을 얻을 수 있으며, 그 반대는 그렇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하여, 개별자본이 얻는 이윤은 곧 그 개별자본의 유기적 구성과 관련된다. 개별자본이 투하한 자본(노동수단, 원료, 노동력)에 대비하여 잉여가치를 얼마나 뽑아냈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였는지에 따라 이윤율이 결정되는데, 이를 통해 독점체와 중소자본의 관계, 즉 자본제 사회에서 누누이 확인되는 발전의 불균등성의 근원을 알 수 있게 된다. 한편, 개별자본이 상품의 사회적 가치에 대비하여, 생산되는 상품의 개별 가치를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노동력의 비중을 줄여나가고 생산수단의 첨단화에 열을 올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더욱 넓은 범위에서 부문 간 경쟁과 상호작용하며 나타난다. 신용제도의 발달 등을 통해 더 많은 자본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산업 부문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그 결과로 경쟁은 가일층 치열해진다. 일정한 국면에 다다르게 되면 이 부문 역시 유기적 구성이 전보다 훨씬 높아지며, 이윤율이 그만큼 감소하게 된다. 그리고 이 부문의 자본은 다시 유기적 구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다른 부문으로 이동한다. 부문 간 자본의 이동, 즉 부문 간 경쟁을 통한 평균이윤율화 과정을 통해 실업의 증가도 설명된다. 실업의 증가란 곧 경쟁의 과열화이다. 또한 실업이 증가하면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금이 하락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무산계급으로 떨어질 청년이 겪을 만성적 빈곤 문제를 해명하여준다.

 

맑스-레닌주의는 과잉경쟁, 빈곤, 실업 문제를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의 경쟁과 이와 불가분인 자본의 유기적 구성 문제를 통일적으로 바라봄으로써 과학적인 해명을 제시하고 사회경제적 재앙인 공황의 내인을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운동 법칙을 통해 규명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본주의 사회가 그 스스로의 내적 운동에 따라 필연적으로 독점체에 기반한 자본주의로서, 자본주의의 최후의 단계인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독점자본주의를 견인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비대해지는 경향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출현하는 것이 필연임을 밝힌다. 우리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으로 대표되는 자유 경쟁적인 자본주의에서 이후 독점자본주의로 상승하는 운동 법칙을 통해 왜 이 땅의 중소영업자가 완전한 몰락의 길로, 또는 독점자본 하청의 길이라는 사실상 몰락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행위가 어떠한 동인에 따르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독점자본주의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을 규명함을 통해, 왜 국가가 독점자본을 수호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지, 국채를 발행하거나, 수많은 불환지폐를 찍어 독점자본에 공적자금을 지원하고 그들의 독점 행위를 왜 용인·조장하는지, 그 근원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청년은 맑스-레닌주의 경제학을 통해 가치형태의 최종적인 발전으로서 화폐와, 가치표장으로서의 주화, 불환지폐(화폐표장으로서)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청년은 가치, 화폐, 불환지폐의 성격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우리가 흔히 ‘물가 상승’이라 부르는 인플레이션의 근원을 밝힐 수 있으며, 그러한 인플레이션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국가가 옹위(擁衛)하는 과정에서 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해명할 수 있다.

 

 

결론

 

맑스-레닌주의 세계관은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대안으로서 건설될 새 사회의 경제 구성과 사회의 조직화 및 그것의 재생산 구조의 체계적 청사진을 갖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의 맑스주의로서 맑스-레닌주의 세계관은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내적 운동을 통해 사회를 해석하면 세계를 바라봄에서 더 넓은 관점을, 무엇보다도 과학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국내 및 국외의 사회 문제와 동적인 경제적 사회생활이, 마치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게 되는 것처럼 서로 이어져 있으며, 후자가 전자를 그 필연에 따라 규정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게 된다. 실로 맑스-레닌주의 세계관에서 다루는 내용은 한국 사회에서 청년이 겪는 모든 사회 모순―과잉경쟁, 만성적인 빈곤, 실업, 주택 문제 등―의 근원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있지 아니한가? 청년이 맑스-레닌주의 세계관을 얻게 되면, 난삽하기 짝이 없는 수많은 사회 문제의 근원을 따질 수 있게 되며, 그에 따라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후 건설된 새 사회 구상에서 앞서 나아갈 수 있다. 즉, 청년은 오로지 맑스-레닌주의를 학습함을 통해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청년 운동에서 맑스-레닌주의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노사과연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1개의 댓글

  • 청년들이 맑스주의에 관심 갖지 않고, 개인적 성공이나 출세를 지향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소비주의 향락주의에 빠져 있는 현실이 막막하기도 하고, 화도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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