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전쟁과 노동계급의 임무에 대해서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 연합

번역: 편집부

 

* 2022년 6월 27일 solidnet.org에 러시아어로 처음 발표되었으며, 여기에서는 Srećko ‘Felix’ Vojvodić에 의한 영역본<http://www.idcommunism.com/2022/07/union-of-communists-of-ukraine-on-war-and-the-tasks-of-the-working-class.html?m=1>에서 중역한다.(모든 각주는 역주다.)

 

**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 연합(Union of Communists of Ukraine). 1992년에 결성된 우크라이나의 맑스-레닌주의 조직. 2015년 이래 탈공산화법(decommunization laws)에 의해, 우크라이나 공산당(쏘비에트 시절의 우크라이나 공산당을 계승하여 1993년에 창당)과 함께 불법화되어, 현재 다양한 탄압에 직면해 있다.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시된 전쟁의 본질에 대한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 연합의 전반적인 평가는,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 연합이 지지하는 공산주의자와 노동자 정당들[1]Initiative of Communist and Workers’ Parties. 그리스 공산당의 주도로 2013년에 결성되어 현재 30개 정당이 가입된, 유럽 공산주의 정당 협의회. 그리스 아테네에 … Continue reading이 2022년 2월 24일에 발표한 성명[2]공산당ㆍ노동자당 공동성명 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한다!”, ≪정세와 노동≫ 2022년 4/5월호, pp. 12-17 참조.의 입장과 일치한다.

이 전쟁에서는, 미국과 나토가 이끄는 국가들의 국제 자본주의 동맹과 러시아 국가독점 자본이 이끄는 국가들의 국제 자본주의 동맹이라는, 세계 자본의 두 제국주의 집단이 충돌하였다. 중국과 인도 등 다수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전개 중인 분쟁에 아직 직접적으로 끼어들진 않았지만, 분쟁의 전개에 대한 전망을 저울질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 군사적 충돌의 기원이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반혁명적 파괴와 그 후의 자본주의 복고에 있다는 결론에 동의한다.

 

우크라이나의 부르주아지는, 러시아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3]1917년부터 1991년까지 존속했던 쏘련의 구성국.의 경제적 자원을 약탈하고 인구의 압도적 다수로부터 재산을 몰수하여 성장했으며, 그들은 이 재산을 소수의 과두적 집단들(oligarchic groups)[4]oligarchy(과두제)와 연관된 단어로서, 쏘비에트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국유 재산을 싼값에 불하받아 막대한 부를 축적한, 옛 쏘련 지역에 존재하는 … Continue reading의 수중에 분파적 독점자본의 수준으로까지 급속히 집중시켰고, 국가 경제를 장악한 후에는, 국가 권력을 ‘사유화했다’. 이들 과두적 집단들의 모순된 입장은, 그들이 그 나라에서의 사유재산의 집중에 러시아와 서방(Western) 자본의 참여를 최대한 제한하려 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와 동시에, 대(大) 부르주아지는, 러시아 에너지 자원에 충분히 저렴한 가격으로 접근함으로써 높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서 경제 문제에 있어서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려 하였으며, 그 이윤들이 서방의 은행들에 보관되어 있었고 사유재산이 서방 국가들에 있었기 때문에 서방의 국제적 자본과 시시덕거리려고 했다. “동방” 및 “서방”과의 상대적 거리두기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우크라이나의 과두적 부르주아지는 급진적 부르주아 민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고, 이것은 반러시아적 성향 때문에 (특히 서방 국가에 의해 조직된 2004년 오렌지 혁명[5]야누코비치와 유셴코가 맞붙은 2004년 우크라이나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 이후) 서방 국가의 이익에도 부합했다. 반데라(Stefan Bandera; 1909-59)[6]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우크라이나 독립운동가. 나치 부역자.와 슈케비치(Roman Shukhevych; 1907-50)[7]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나치에 의해 조직된 우크라이나인 부대의 지휘관.가 우크라이나 대중의 의식 속에 영웅으로 칭송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우크라이나의 노동자 계급과 도시와 시골의 광범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에게 있어서 자본주의의 복구는 국가의 탈산업화 과정에서의 그들의 권리에 대한 엄청난 제약과 제한을 초래했다. 그러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혼미라는 조건 하에서 노동자 계급과 노동조합, 좌파 정당들은 단지 승산 없는 싸움들밖에는 할 수 없었다. 부르주아의 선전에 의해 사회주의의 평판이 실추된 나머지 우크라이나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그 투쟁을 경제적인 과제들로만 축소하게 되었고, 가장 재능이 있는 계층들은 더 나은 보수를 찾아 해외로 이주했다.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 연합은 90년대와 2000년대의 이들 계급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국제적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계급투쟁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분투했으며, 우크라이나에서 노동자 계급의 퇴보로부터 성장한, 공산주의와 좌파 운동에서의 정치적 기회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8년의 세계적인 금융, 무역, 그리고 산업상의 위기와 그 결과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나토 국가 간에 증대하는 대립의 직접적인 선결 조건이었다. 세계 경제의 장기 불황과 이 위기의 결과를 노동자 계급과 광범위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그리고 종속 자본주의 국가들에 전가하기 위한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모든 노력은 자본주의 내에서는 이 위기를 탈출할 경제적 방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색깔 혁명”을 통한 일련의 쿠데타와 “민주화”를 가장한 국지전 등을 촉발함으로써, 일부 국가들에 대한 직접적인 강탈로 전환했다. 이에 국제적 갈등이 대대적으로 악화되어 제국주의 동맹들이 재편성되기 시작했고, 나치와 파쇼적 현상으로의 급진적 민족주의를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의 그 대립을 포함한, 제국주의 동맹들 간의 대립을 악화시켰다.

 

2010년 친러시아 부르주아지로 알려진 야누코비치(Victor Yanukovich)[8]2010년에서 2014년 사이에 재임한 우크라이나 4대 대통령.가 이끄는 독점적 과두 집단들의 집권으로 한편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독점자본들 사이의 협력이 증가했는데, 그러나 그것은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로 하여금 국내의 경제와 재산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범위 내에서였다. 다른 한편에서 야누코비치는, 매너포트(Paul Manafort)[9]미국의 로비스트이자 정치인. 워싱턴 정계에서 오랫동안 로비스트로 활동하였고,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컨설턴트로 일한 바가 있다.와 같이 미국과 영국에서 온 선거기술 전문가들을, ‘사회학적 조사’를 바탕으로 그에게 조언하는 정치적 고문으로 삼아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을 벌여, 결선투표에서 나치 정당 스보보다(Svoboda)[10]전 우크라이나 연합 “자유”. 흔히 자유당으로 번역된다.—사회국민당(Social Nationalist Party)에서 개명—의 지도자 탸흐니보크(Oleh Yaroslavovych Tyahnybok)를 자신의 상대로 만들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나치 집단들을 주변부 집단에서 정당들로 성장할 수 있게 한 것은, ‘친러시아적’이라고 추정되는 올리가르히들의 돈이었던 것이다. 그들 나치 정당들에게는 서부 지역의 지방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여 그들의 대표를 우크라이나 의회로 보낼 기회가 주어졌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야누코비치는 그의 전임자 유셴코(Victor Yushchenko)[11]오렌지 혁명의 결과로 2005년 대통령 선거 재투표에서 야누코비치를 누르고 우크라이나 3대 대통령이 되었음.가 반데라와 슈케비치에게 “우크라이나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던 결정조차 취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야누코비치의 “고문들”은 그의 등 뒤에서 다른 짓을 벌였다. 그들의 지도 하에, 미국과 EU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은 친서방 올리가르히 집단들이 2014년에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들의 지원을 받은 친파쇼ㆍ나치 조직들은, 이 쿠데타의 타격 부대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올리가르히 권력에 의해 무장되어 준군사적 “의용군”이라는 형태의 타격 부대가 되었다.

 

‘2014년 마이단’ 쿠데타의 국내 정치적 의의는, 우크라이나 인민으로 하여금 쏘비에트 사회주의 국가라는 형태로 최초의 민족국가를 가지게끔 했던 위대한 10월 사회주의 혁명의 결과의 반혁명적 파괴를 완성한 것이었다. 포스트-마이단 정부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혁명적 노동자들 및 공산주의 운동의 승리와 관련된, 그리고 쏘비에트 권력의 수립과 관계된 모든 것을 특별한 적개심을 가지고 파괴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 정부는 페틀류라(Symon Petliura; 1879-1926)[12]우크라이나의 정치가이자 기자. 볼셰비키 정부를 전복하려는 폴란드 군대에 가담했었다.와 스코로파즈키(Pavlo Skoropadskyi, 1873-1945)[13]우크라이나의 귀족이자 군인. 1차 대전 중에 독일제국의 괴뢰국가인 우크라이나국의 수립을 주도했다.로부터 반데라, 슈케비치, 그리고 기타 쏘비에트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의 적들에 이르기까지 혁명과 내전 기간에 패배하여 추방당한 사람들을 찬양했다.

이 쿠데타를 계기로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민족주의 정부에 대한 지지자들과 그 반대자들 사이의 내전이 시작되었던바, 그로 말미암아 크림반도가 주민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되어 러시아로 합병되었고, 루간스크 인민공화국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이 형성되었는데, 이들 공화국은 키예프의 정부와 오랜 군사적 대결 상황에 놓여 있다. 비록 이 대결의 참여자들조차 그 대결의 계급적 성격을 의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종족 간의 대결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올리가르히 집단이 그들의 의회 대표단을 통해 포스트 마이단 정부를 지지하면서 이 정부에 정통성의 외관을 부여해주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나아가, 심지어 야누코비치 집단의 단 하나의 올리가르히도, 내전 중에 생겨난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나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편으로 이탈하지 않았다.

그 사회적 구성, 특히 그 군사 조직의 중추를 보면, 돈바스(Donbass)[14]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역 공화국들은 본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적이었다. 그러나 그 정치적 형태에서, 그것들은 부르주아 공화국이었고, 포스트-마이단 정부의 급진적 반러시아 민족주의와 및 그 친서방 노선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양자의 이해를 대표했다.

루간스크 인민공화국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 연합은, 그 공화국들의 내부 모순을 고려하면서, 이 공화국들의 노동자들과 공산주의자 조직들이 계급적인 이념적 태도를 형성하도록 조력해 왔다.

 

러시아 부르주아지는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및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관련하여 모순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돈바스의 공화국들에 군사적ㆍ경제적 지원을 제공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공화들을 정치적으로 승인하지 않고, 크림반도와 달리 러시아 연방에 편입시키지 않으면서, 친파쇼 투르치노프(Oleksandr Turchynov)[15]야누코비치가 탄핵당하면서 임시 대통령을 지낸 인물.-프로셴코(Petro Proshenko)[16]2014년부터 2019년까지 재임한 우크라이나 5대 대통령.-젤렌스키 꼭두각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했으며, 이 정권과 민스크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은 루간스크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에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았고, 8년 동안 위태로운 잠재적 전쟁상태에 있게끔 했으며, 그리하여 우크라이나 정부로 하여금 루간스크와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에게만이 아니라 러시아 자체에도 위협이 되는 강력한 친나치적인 군대를 만들 수 있게 하였다.

루간스크 인민공화국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그리고 포스트-마이단 정부와 관련한 러시아 부르주아 국가의 입장의 내적 비일관성은, 러시아의 경제적 이해가 서방 자본과도, 우크라이나의 올리가르히 자본과도 모두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러시아 정치인들은 ‘마이단 당국들’을 비난했지만,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은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들과 함께 파이프라인 사용(톨리야티에서 오데사 항만 공장까지의 암모니아 파이프라인은 2022년 2월 24일에야 가동이 중단되었다), “로테르담 플러스”[17]2016년 5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우크라이나에 적용된, 화력발전소용 석탄 가격 결정 공식. 계획에 따른 돈바스 석탄의 우크라이나로의 재판매, 야금 및 기타 상품의 재판매 등으로부터 이익을 챙겼다.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들은, 자신들의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서는 “러시아 침략자”를 비난했지만, 계속 함께 이익을 챙겼다. 러시아 부르주아지의 경제적 이익이야말로,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들이 소유한 기업들을 국유화하라는 돈바스 노동자들의 요구에 루간스크 인민공화국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이 왜 그토록 적극적으로 반대했는지를,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친 파쇼 괴뢰 정권에 대한 군사 작전이 왜 지연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 지연은, 단지 부차적으로만 러시아군이 재무장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별 군사 작전의 진짜 이유는, 세계 금융ㆍ경제 위기의 결과들을 경제적으로는 극복할 수 없을 것임을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부르주아지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러시아 부르주아지가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 및 서방 자본과의 협력에서 얻는 작은 이익을 희생시키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던 것은, 러시아 영토를 장악하여 러시아의 원료 자원들에 접근하려는 미국 주도의 나토 국가들의 증대하는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의 영향권을 재분배하여 그들의 상품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이 전쟁은 “러시아인들”을 위한 것도,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의 보호”를 위한 것도, 또는 우크라이나 국가의 “탈(脫) 나치화”을 위한 것도 아니며, 바로 위험을 감지하고 또한 자기들 자본의 이익과 성장을 위해 추가적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적 조건을 조성해야 할 필요를 감지한 러시아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러시아인이나 타타르인, 추봐시인, 야쿠트 노동자들의 어떤 이익도, 러시아 연방의 모든 다른 민족 노동자들의 어떤 이익도 이 전쟁은 구현하거나 보호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의 괴뢰 정권이 이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들의 이익을 위해서인데, 이들 올리가르히는 완전히 나토와 서방의 대자본에 의존해왔고, 서방과 나토는 우크라이나군을 서구 부르주아지의 진격 부대로 만들어 왔다. 전쟁은 “우크라이나 국가”와 관련된 것도 아니고, “우크라이나 언어와 문화”와 관련된 것도 아니며, 심지어 “유럽적 가치”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 부르주아지의 경제적ㆍ정치적 힘을 파괴하려는 열망에서 일치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국제 부르주아지의 공동의 이익을 위한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의 어떤 이익이나 권리도 이 전쟁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다. 이 전쟁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노동자들도 러시아의 노동자들도, 세계 부르주아지의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무찌르고 자국과 패전국들 모두에서 노동자들을 억압할 더 많은 독점권을 얻도록, 오직 전선으로 가서 죽을 권리와 의무만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내적 충돌 및 내전으로 시작된 군사적 충돌은, 특별 군사 작전의 개시와 더불어 제국주의적 충돌로 확대되고 있고, 그리하여 세계적인 제국주의 전쟁의 출발로 되고 있다. 특별 군사 작전의 개시와 함께, 한편에서는 러시아 부르주아 국가가,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무기와 탄약, 정보, 군사 “고문들”의 참여를 통한 군사 작전 계획, 군사 훈련, 정보 선전, 사이버 지원 등을 제공하면서 우크라이나 군대의 손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나토 블록이 충돌의 실제 당사자들로 되고 있다.

 

둘째로는, 전쟁의 목표들이 바뀌고 있다. 내전적 충돌의 첫 단계에서는 우크라이나 정권이 국가의 통제를 상실한 우크라니아 영토에 대한 그 통제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그 후 두 번째 단계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존립 조건으로서 러시아를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러시아 부르주아 정권은 제1단계에서는 단지 키예프 정권과의 분쟁에서 루간스크 인민공화국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선언했지만, 제2단계에서는 러시아의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국제적 여건을 확보하고, 이를 위해 나토의 반대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맥락에서만이 러시아 국가가 선언한 “탈나치화”와 “비군사화”라는 목표가 실제의 의미를 얻게 된다. 우크라이나의 “탈 나치화” 요구는 점차 발트해, 폴란드, 유럽 그리고 서방 세계 전체의 “탈 나치화” 요구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 모두가 서구의 나치즘에 감염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군사화” 요구도, 군사적 충돌이 전개됨에 따라서, 같은 방향으로 확대될 것이다. 사실, 이 두 요구는 모두 전쟁의 진정한 제국주의적 목적을 은폐하기 위한 위장일 뿐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적 충돌의 전개는, 한편에는 러시아와 그 동맹국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나토라는 두 제국주의 집단 사이의 공공연한 충돌로 전쟁이 악화되는 것이 그 주된 경향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핵전쟁으로의 전쟁의 악화와 인류 절멸의 실질적 위협의 등장을 의미한다. 핵전쟁의 위험이 증대됨에 따라 분쟁의 적대자들이 타협할 가능성도 분명 있다. 어쨌든, 그 타협은 한쪽 당사자에게 유리한 일시적인 타협일 것이며, 그것은 잠시 멈춤에 불과해서 전투와 군사 행동은 재개될 것이다.

 

이 제국주의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노동자 계급에게 가장 비극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전쟁은, “대포 밥”으로서의 역할과 전투에서 피할 수 없는 죽음, 대규모의 빈곤 및 실업, 우크라이나의 대부르주아지, 즉 올리가르히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그리고 러시아를 파괴하고 약탈하여 그 자연 자원들을 장악하는 데에서의 서구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와 자유의 완전한 제약을 노동자 계급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산업 및 천연자원의 파괴와 장악을 수반할 것이고, 러시아가 승리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소부르주아지의 대다수에게도 동일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르주아지는, 그들의 자본을 빼돌렸듯이, 이미 자신들의 자녀들을 전쟁에서 빼돌려 해외로 보냈다. 그러나 그것이 요점은 아니다. 거대 부르주아지는 포로셴코 정권 하에서 이득을 챙겼듯이, 젤렌스키 정권 하의 전쟁에서도, 재정을 훔치면서, 무기를 재판매하여 돈을 벌면서, 군대에 군복, 식량, 수리 작업, 인도적 지원 등을 공급하면서 이득을 챙기고 있다. 전쟁에서 부르주아지는 수십억 달러를 벌고 있는 반면에, 동원된 인민은 친척이나 친구,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 분명 충분치 못하게 ― 의복을 차려입고 먹을 것을 공급받지 않으면 안 된다. 평화시와 마찬가지로, 하지만 더욱더 뻔뻔하게,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의 등골을 빼먹으며 부유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제국주의 전쟁의 영향은 러시아와 러시아 동맹국의 노동자 계급에게도 똑같이 가혹할 것이다. 그 영향은 전 세계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 대중들에게 파국적이다. 세계적 전쟁은 세계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서, 기아와 빈곤, 실업, 임금 하락이 이미 지구상에 서성거리고 있다. 그러나 전쟁은 많은 나라의 군대들을 서로 적대하게 하여, 그들 국가의 노동자들을 또한 “대포 밥”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는, 전지구적인 금융ㆍ경제 위기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그것의 재앙적인 심화일 것이고, 이는 다시 (과거에 이미 그랬듯이) 모순이 극도로 악화될 많은 국가에서 혁명적 상황의 출현으로 이어질 것이다. 국제적인 경제적ㆍ정치적 통합이라는 맥락에서는 혁명적 상황이 발전하면, 그것은 연쇄적인 혁명적 봉기로 이어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 연합이 보는 바로는, 노동계급에게 있어 제국주의 전쟁으로부터의 탈출로는 (기껏해야 전쟁 당사자들에게 더 격렬한 충돌을 위한 무력을 준비할 유예기간을 제공할 뿐인) 평화와 군축을 추상적으로 요구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며, 자본의 경쟁이 필연적으로 위기와 전쟁을 가져오는 기생적이고 파괴적인 사회 체제로서 자본주의를 제거할 필요에 있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자본가 권력에 대한 투쟁으로서의 전쟁 반대 투쟁에서, 우리는 참전 각국의 자본가들에 대한 투쟁이라는 과제를 제기한다.

우리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우크라이나 괴뢰 정권을 반드시 패배하게끔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정권에 의해 무장된 노동자들에게 호소합니다: 무기를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의 권력에 겨누어,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을 자본주의 지배의 파괴를 위한, 부르주아지에 대한 노동계급의 내전으로, 공산주의 혁명으로 바꾸라고.

우리는 전쟁의 모든 짐을 어깨에 짊어진 채, 빈곤과 실업, 그리고 기본권과 자유의 박탈로 고통받고 있는 러시아 노동자들에게 형제 계급으로서 호소합니다: 러시아 부르주아 권력의 패배를 추구하고, 러시아 올리가르히들과 그들의 정치적 복무자들에게 무기를 돌리십시오.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을 자본가 권력에 대항하는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계급전쟁으로 바꾸기 위해 당신들과 함께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나토에 소속한 국가들의 노동자들에게 호소합니다: 제국주의 전쟁의 핵 충돌에 의한 인류 파멸이라는 위협을 멈추는 것은, 추상적인 평화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이들 전쟁을 수행하면서 거기에서 이득을 얻고 있는 국가들의 부르주아지 권력을 전복하기 위한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이 전쟁에서 부르주아 정부들과 나토 동맹국의 패배를 위해 노력하고, 국가 간의 전쟁을 계급 간의 전쟁으로 바꾼다는 과제를 제기하고, 노동자들의 손으로 생산한 무기들을,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에게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나라의 자본가들에게, 그들의 권력에 돌리십시오.

 

자본주의는 부르주아지에 의한 지배와 노동자 억압의 국제적 체제로서 두 세기 동안 존재해 왔다. 이 세계적인 착취 체제, 위기와 전쟁의 근원에 종지부를 찍는 유일한 길은, 노동자들의 투쟁 노력을 일련의 혁명적 상황으로부터 성장하는 국제 공산주의 혁명으로 국제적으로 결집하는 것이다. 인민들을 전쟁에서 서로 싸우게 하는 부르주아 민족주의(그리고 그 형태들인 국수주의 및 파시즘)에 우리가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이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부르주아 정권 측의 탄압을 초래하는 이들 과제의 복잡성과 위험성을 알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러한 과제들을 설정하고 실행하기 위해서 노동자 조직들과 공산주의 조직들은 합법적인 형태의 계급투쟁들과 함께 비합법적인 형태의 계급투쟁을 전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 연합은 2014년 이래 비합법적인 형태로 그 과제를 수행하도록 강요받아 왔다.

많은 노동자 조직들과 공산주의 조직들은, 그들의 조직의 취약성과 노동자 계급에 대한 영향력의 부족 때문에 이러한 반전 과업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과제들—일시적인 과제들이 아니라 진정한 과제들—을 정확하고 솔직하게 정식화하면,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혁명적 상황이 격화됨에 따라 쟁취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파괴한다는 과제는 국제적인 과제이기 때문에, 이 전쟁을 반대하는 국제적 투쟁을 결집하기 위해 21세기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하는 투쟁을 위한 과제들을 공동으로 정교화하는 것을 포함하여, 사회의 공산주의적 재조직화와 세계 평화를 위한 노동자와 공산주의자 정당들의 활동의 국제적 공조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Initiative of Communist and Workers’ Parties. 그리스 공산당의 주도로 2013년에 결성되어 현재 30개 정당이 가입된, 유럽 공산주의 정당 협의회. 그리스 아테네에 본부를 두고 있다.
2 공산당ㆍ노동자당 공동성명 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한다!”, ≪정세와 노동≫ 2022년 4/5월호, pp. 12-17 참조.
3 1917년부터 1991년까지 존속했던 쏘련의 구성국.
4 oligarchy(과두제)와 연관된 단어로서, 쏘비에트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국유 재산을 싼값에 불하받아 막대한 부를 축적한, 옛 쏘련 지역에 존재하는 집단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정치권력을 지지하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하면서 서로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채로 그들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5 야누코비치와 유셴코가 맞붙은 2004년 우크라이나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
6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우크라이나 독립운동가. 나치 부역자.
7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나치에 의해 조직된 우크라이나인 부대의 지휘관.
8 2010년에서 2014년 사이에 재임한 우크라이나 4대 대통령.
9 미국의 로비스트이자 정치인. 워싱턴 정계에서 오랫동안 로비스트로 활동하였고,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컨설턴트로 일한 바가 있다.
10 전 우크라이나 연합 “자유”. 흔히 자유당으로 번역된다.
11 오렌지 혁명의 결과로 2005년 대통령 선거 재투표에서 야누코비치를 누르고 우크라이나 3대 대통령이 되었음.
12 우크라이나의 정치가이자 기자. 볼셰비키 정부를 전복하려는 폴란드 군대에 가담했었다.
13 우크라이나의 귀족이자 군인. 1차 대전 중에 독일제국의 괴뢰국가인 우크라이나국의 수립을 주도했다.
14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를 지칭하는 말이다.
15 야누코비치가 탄핵당하면서 임시 대통령을 지낸 인물.
16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재임한 우크라이나 5대 대통령.
17 2016년 5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우크라이나에 적용된, 화력발전소용 석탄 가격 결정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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