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세] 러우전쟁과 미국의 신냉전 전략의 파탄 ― 러우전쟁의 배경과 세계질서에 미치는 영향

 

신재길 | 교육위원장

 

 

1. 러우전쟁, 그 배경과 세계질서

 

1) 세계질서 변화의 핵심은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

 

러우전쟁이 세계질서에 대해 미치는 영향을 살피려면, 먼저 현재 세계질서를 대략적으로 조망해 보아야 한다.

 

세계질서의 토대는 물론 국가 간의 경제적 관계이다. 국가 간 경제적 관계는, 시쳇말로 하자면, 이른바 글로벌 밸류체인(GVC)1)으로 나타난다. 글로벌 밸류체인 1단계는 어떤 관계도 없는 완전 자급자족적 관계이다. 글로벌 밸류체인 2단계는 두 나라 간에 각국의 생산물을 교류하는 것이다. 이는 각국의 완제품을 장소만 이동해서 소비하는 관계이다. 글로벌 밸류체인 3단계는 교역품이 소비재가 아니라 중간재라는 점에 2단계와 차이가 있다. 즉 호주의 철광석을 한국이 수입해서 철을 생산하여 소비하는 것이다. 글로벌 밸류체인 4단계는 많은 나라들에 걸쳐 하나의 상품이 생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폰 같은 경우 많은 나라의 중간재가 중국에 들어와 조립되어 애플이 전 세계에 판매하는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4단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소위 세계화이다. 이 4단계의 글로벌 밸류체인을 보면 밸류체인에는 허브국가가 존재한다.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어느 한 나라를 중심으로 생산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다. 2000년에는 유럽의 독일, 북미의 미국, 아시아의 일본이 허브 국가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2017년 글로벌 밸류체인 조사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보였다. 유럽과 북미는 별 변화가 없는데 아시아에서 허브국가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이러한 4단계 글로벌 밸류체인에 새롭게 진입하여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생산 네트워크로 발전하였다.

 

더욱이 미국보다는 중국과 무역을 더 많이 하는 국가가 2018년에는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그리고 세계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에서도 중국은 미국을 앞서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이 대부분의 나라들은 경제적 헤게모니 국가를 미국이 아니라 중국으로 인정한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미국의 정치ㆍ군사ㆍ문화적 헤게모니도 중국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하게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과 독일이 하위 체계로 위계화된 기존의 세계질서와는 전혀 다른 세계질서가 탄생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은 미국이 아직 중국에 대해서 우위에 있을 때 중국의 성장을 꺾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그 핵심에 글로벌 밸류체인의 조정이 놓여 있다.

 

 

2) 미국의 세계질서 재편 방향은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것.

 

미국의 대 중국 전략의 변화는 오바마의 ‘아시아 중시(Pivot-to-Asia)’ 전략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의 관심을 유럽과 중동에서 아시아로 이동시키는 것이었고, 그 핵심은 중국 중심의 글로벌 밸류체인을 재편하는 것이었다. 그 방안으로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였으나, 이에 반대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실패하게 된다. 트럼프도 중국을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배제한다는 목표는 동일하나 그 방법에서 오바마의 다자주의가 아니라 일방주의를 내세웠다. 일방주의란 다자간 협의를 통해 상호이익을 조율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 중심의 밸류체인에 들어올 것을 개별나라들에 강제하는 방식이다. 즉 오바마의 다자주의가 다자의 협의체를 만들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방식이라면, 트럼프의 일방주의는 개별나라와 일대일 협상을 통해 굴복시키는 방식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면서 다시 다자주의로 돌아갔다. 즉 바이든의 이른바 ‘가치동맹’이다.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세계적 대세로 되는 상황에서 안보동맹이나 경제동맹을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기 힘들어지자 ‘포괄적 동맹’이라는 명분 아래 ‘가치동맹’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민주의의와 권위주의를 대립시키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가치동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고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동맹’은 시장경제를 인정하는 경우라도 권위주의 세력은 배제한다는 배타적 동맹이다. 그 대상은 물론 중국이다. 이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로 구체화 되고 있다.

 

 

3) 중국의 대미 전략

 

미ㆍ중 수교 이후 오랫동안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미국과 협력적 기조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왔다. 덩샤오핑이 “재능을 숨기고 실력을 길러야 한다(韜光養晦)”면서 미국과의 전면적인 대립과 갈등을 피할 것을 언급한 이후 최근까지 이러한 정책 기조는 유지되어 왔다. 2012년 시진핑 지도부의 등장 이후, 특히 2018년 미ㆍ중 무역통상 갈등이 본격화되고 2019년과 2020년을 거치며 미ㆍ중 전략경쟁이 가속화되는 과정에서도 중국은 미국과의 전면적인 충돌은 가급적 피하고자 노력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이 경제력ㆍ군사력을 포함한 ‘종합국력’ 차원에서 여전히 미국과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전략에 대해 중국은 장기전으로 임하고 있다. 당분간 “안정적이고 독자적이며 지속가능한” 대내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미국과 분리된 독자적 기술 개발을 강조하고, 내수를 강조하는 ‘쌍순환 전략’을 통해 미국의 밸류체인 배제 전략에 대처하며, 역내 국가들을 자국의 세력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헤게모니 경쟁 등으로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글로벌 밸류체인의 허브국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즉 미국의 밸류체인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전략에 중국은 세계 3분지계(三分之計)로 맞서는 것이다. 독일 중심의 유럽, 중국 중심의 아시아. 미국 중심의 아메리카로의 3분지계이다. 사실 미국의 일극 질서의 특징은 독일과 일본을 정치ㆍ군사적으로 미국에 종속시킨다는 데 있다. 따라서 유럽과 아시아의 허브 국가인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하위 질서에 위치하는 관계이다. 그에 반해서, 중국의 세계 3분지계는 유럽을 독립적 세력으로 미국과 동등하게 위치시킨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위상은 3분의 1로 축소되는 것이나 다름없고, 중국의 3분지계는 결국 대륙으로 이어져 있는 유라시아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성하고자 하는 것이 된다.

 

 

4) 러시아의 반발

 

러시아는 현재의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항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로의 전환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쏘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에 밀렸다. 급기야는 우크라이나마저 친서방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고, 크림반도에 있는 흑해함대의 모항인 세바스토폴 사용을 허용하지 않을 조짐을 보이자,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하게 된다. 세바스토폴은 지중해와 유럽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러시아로서는 사활이 걸린 요충지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이번 러우전쟁에서도 러시아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의 해안지대를 장악하는 것일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여 이 지역에 미국의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러시아로서는 목에 칼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 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SPIEF) 연설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 세계질서의 종식을 선언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러우전쟁의 성격은, 러시아가 단지 서유럽의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미국 단극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세계전략은, 러시아가 글로벌 밸류체인의 허브국가가 되어 패권을 행사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이는 지정학적으로나 정치ㆍ경제적 규모나 인구수로 보아 가능하지 않다. 구쏘련 시절에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와 더불어 냉전의 한 축으로서의 위치를 점할 수 있었지만, 쏘련이 해체된 이후로는 그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러시아는 밸류체인의 허브국가로서가 아니라 밸류체인의 중심 층위 중 하나를 장악하는 것으로 세계질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에너지 패권이다. 러시아는 원유 수출 세계 2위, 천연가스 수출 세계 1위의 에너지 대국이다. 중동에 영향력을 투사하여 세계 에너지를 지배하게 된다면, 유럽과 중국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의 이런 전략은 중동에서 미국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게 하였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 적극 개입하여 일정 정도 성과를 내고, 중동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상당 정도 대체해 갔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셰일가스 생산으로 당장은 원유가 풍부한데다 앞으로는 그린 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동은 중요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이에 미국은 중동에서 러시아와 헤게모니 싸움을 하기보다는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켜 러시아의 흑해함대를 무력화시키려는 전략을 추구해왔다. 흑해함대는 유럽과 지중해에 러시아가 그 군사력을 전개하는 중심체이기 때문에 흑해함대를 무력화시키면 중동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일정 정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중동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대체하는 일정한 성과에 기초하여, 미국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에 전면적으로 반격한 것이 이번 러우전쟁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동에서의 러시아의 영향력은 러우전쟁을 계기로 한 미국의 원유 증산 요구에 중동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나서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미국과 서방의 그린 에너지 정책이라는 산업ㆍ생태 정책의 대전환에 대한 반발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ㆍ생태 정책을 그린 에너지 중심의 산업ㆍ생태 정책으로 전환하여 미래 산업을 지배하는 산업ㆍ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과 서유럽의 전략에 대한 산유국과 에너지 거대 기업들의 반발이 그 기초에 있다.

 

 

2. 미국의 ‘신냉전’ 구축 전략의 파탄

 

냉전은 국지전, 경제지원, 이데올로기 공세로 형성된다. 구 냉전에서는 한국전쟁, 중국의 국공내전, 그리스와 터키에서의 내전 등이 있었고, 유럽에 대한 마샬플랜이라는 미국의 경제지원도 토대로 작용했다. 그리고 메카시즘으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 공세가 있었다. 이러한 세 가지 측면에서의 냉전은 장소와 형태를 달리하면서 쏘련이 해체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미국의 ‘신냉전’ 구축 전략에도 국지전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패권에 도전하는 러시아와 중국이다. 미국은 대만과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도발을 계속해 왔으며, 드디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황을 볼 때 미국의 ‘신냉전’ 구상은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몇 가지 큰 계산 착오를 한 듯하다.

 

우선 러시아를 너무 얕보았다. 미국은 러시아를 ‘핵을 가진 주유소’라고 비하하며 러시아의 재래식 전력을 무시했다. 러시아는 경제력으로 볼 때 한국 정도이고, 국방비도 옛 쏘련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따라서 미국은 2014년 이후 8여 년 동안 훈련시키고 전력을 보강하여, 러시아를 제외하면, 유럽 최강이 된 25만의 우크라이나 군이 러시아군을 제압하지는 못할지라도 엄청난 손실을 입혀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고갈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러시아의 끝없는 물량 공세와 효율적 군사작전에 직면하여, 우크라이나군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고 있다.

 

두 번째 착오는 지금 자본주의 경제를 엄습하고 있는 세계적 물가상승 혹은 인플레이션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은, 40여 년 만에 최고율의 물가 상승을 기록하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의 역풍을 맞고 있다. 그렇잖아도 ‘양적 완화’니 뭐니 하면서 그 동안에 남발해온 불환통화 때문에 고율의 악성 인플레이션이 엄습하고 있는데, 유발한 전쟁과 경제제재의 여파로 식량ㆍ원유ㆍ천연가스를 비롯한 여러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 꼴이 된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에 제재를 단행하면 곧 전쟁 자금이 고갈되어 러시아의 전쟁수행 능력을 마비시킬 것으로 예상했던 듯하다. 나아가 러시아 내부 반전 분위기가 고양될 것이고, 이를 반푸틴 시위로 발전시켜 푸틴정권을 무너트린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원유의 가격상승을 불러일으켰고, 러시아는 높아진 원유가격을 루블화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루블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자 루블화의 가치는 전쟁 전에 비해 유로 대비 약 30%, 달러 대비 10% 정도 상승하였다. 이는 러시아의 원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 여러 나라의 경우 유로나 달러로 구매할 때보다 더 비싼 가격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유럽이 대주는 꼴이 된 것이다. 결국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가 초래할 경제상황을 잘못 예측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소위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립’이라는 전선 형성에 실패했다. 구 냉전에서는 이데올로기가, 즉 자본주의 체제 대 사회주의 체제의 대립이 경제체제와 일치하여 경제제재가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극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경제체제가 사실상 자본주의로 단일화되어, 자본주의 혹은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대립과 갈등이 국제사회에서의 대립의 주요 측면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모두가 시장경제를, 즉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토대로 하면서도 정치제도는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어, 사우디 같은 절대 왕정에서부터 중국과 같은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까지 그 폭이 매우 넓다. 따라서 소위 ‘가치’는 경제적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버리거나 달리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러우전쟁에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서유럽과 한국, 일본 정도만 동참하고, 대다수 나라들은 중립을 지키거나 반대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결국 군사력으로 압도하던가, 아니면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가치동맹’으로 끌어들여야 했지만, 러우전쟁에서 보듯이 군사적으로도 압도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많은 이익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신냉전’ 구축은 시작부터 파탄의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인도의 예와 러시아의 달러 결제 씨스템(SWIFT)에서의 배제를 보자.

 

오바마 정권 때부터 인도에 공을 들여온 미국은, 인도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의 석유를 대량 구매함으로써 러시아를 간접 지원하는 것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인도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참가하며 글로벌 밸류체인 재조정 과정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제조업 허브국가의 위상을 대체하고자 한다. 미국으로서도 중국의 노동력을 대체할 나라는 인도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이기에 인도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인도는, 러시아 제재에는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를 지원하는 입장을 취했다. 여기에는 인도의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경제적인 실리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 대한 견제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이지만, 인도도 대국으로서 그에 걸맞는 대국의 위상을 갖기를 원한다. 미국이 인도를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다면 인도는 러시아를 이용해 미국을 견제하고자 한다. 인도는 미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여긴다.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미국의 프레임에 들어갈 경우, 미국의 식민지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인도와 대립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핵을 미국이 용인한 일은 인도가 미국을 믿지 못하는 근원적 계기가 되었다. 인도가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한 것은 무슨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해서가 아니다. 인도의 모디 정권은 극우 힌디주의 정권으로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운운하는 나라들이라고 해서 자유민주주의적인 것인 아니지만.) 인도가 미국과 협력하는 것은 중국 견제와 인도의 제조업 발전의 기반을 마련할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미국이 인도의 제조업 발전을 위한 사회기반 시설의 건설ㆍ확장을 획기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면, 인도는 미국과 같이할 하등의 경제적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미국이 과연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가는 별도로 하더라도, 미국은 인도를 정치ㆍ군사적으로 종속시키지 않고도 인도의 제조업 기반을 지원할 의사가 있는 것일까? 통제하지 못하는 인도는 미국에게는 제2의 중국이 될 뿐일 것이기에, 미국으로서는 제2의 중국을 키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인도를 종속적 하위 파트너로 만들지 못하는 한,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배제하는 ‘신냉전’ 전략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인도를 종속적 하위 파트너로 만들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달러 결제 씨스템(SWIFT)에서의 러시아의 배제는 러시아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미국은 계산했을 것이다. 러시아는 러우전쟁 개시 당시 세계 4위에 해당하는 6천310억 달러(한화 약 752조 원)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이렇게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외부의 경제제재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기초 체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 그런데 보유 외환 중 3분의 2에 육박하는 4천억 달러(약 482조 원)는 뉴욕과 런던, 베를린, 파리, 도쿄 등 외국의 금융기관에 보관돼 있다. 그리하여 달러 결제 씨스템(SWIFT)에서 러시아를 배제해 버리자 4천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6월 26일에 기한이 도달한 외화표시 채권 이자가 지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디폴트 선언을 거부했다. 러시아 정부는, 자신들은 이미 국제 예탁결제 회사인 유로클리어에 이자 대금을 보내 상환 의무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원래대로라면 유로클리어가 받은 이자를 채권 투자자에게 지급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대금은 유로클리어에 묶여 있으며, 투자자들은 돈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를 달러 결제 씨스템에서 배제한 탓이다. 미국은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고립시키지도 못한 채 달러 결제 씨스템(SWIFT)에 대한 신뢰 문제만 노정하고 말았다. SWIFT는 회원사 간의 자금 이동과 결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만든 금융회사의 협동조합 형태의 비영리 기관이다. 미국의 정치적 목적에 SWIFT가 이용되면서 순수 자금 이동과 결제 업무를 위한 비영리 기관이라는 신뢰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미국을 제외한 어떤 나라도 이러한 미국의 횡포와 그로 인한 폐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하여 이번 러시아의 디폴트 아닌 디폴트 사태를 보면서 비서방 국가들은 다른 대체 방안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6월 23일 화상으로 열린 제14차 브릭스 정상회의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브릭스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이다. 이에 이란과 아르헨티나가 가입을 희망하였고, 13개 국가 정상이 이번 회의에 참가했다. 러시아는 브릭스를 통해 독자적인 국제 금융 씨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 이는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독자적인 결제 씨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으며, 인도 역시 이미 루피-루블 결제 씨스템을 구축해 러시아와 무역을 하고 있다. 달러 결제 씨스템에서 러시아를 배제한 것은 당장은 러시아에 고통을 주겠지만, 반대로 달러에 대한 신뢰 상실이라는 이에 비할 바 없는 피해를 가져왔다. 미국 패권의 한 축인 달러 패권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를 제2의 아프카니스탄이라는 수렁에 빠뜨리려던 미국의 ‘신냉전’ 전략은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미국은 러우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없다. 무엇보다도 세계적 차원에서 고조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러우전쟁은 인플레이션 고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고, 그 피해는 주로 서유럽과 미국 등등이 입고 있다. 민주당은 오는 11월의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것으로 예상되고, 바이든의 차기 대선 출마는 불가능해 보이며,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에 지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면, 바이든이 추진하는 ‘신냉전’ 전략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바이든은 다급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를 국제사회에서 ‘왕따’시키겠다고 공언했던 바이든이 돌연 사우디를 방문하기로 하고, 중국에 부과했던 관세를 철폐하는 것도 검토하기로 하였다. 그린 에너지나 자유인권 등의 ‘가치’를 스스로 파기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인플레이션과 거기에 기름을 부은 러우전쟁 및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서 비롯되었다.

 

 

3. 노동자 계급의 처지와 대응

 

위에서 본 봐와 같이, 자본주의 세계의 기존 질서는 그 힘을 잃었고, 새로운 질서를 위한 열강들의 전쟁ㆍ각축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사실상 이빨 빠진 러시아조차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그리는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재편은 산업의 주요 기반인 에너지원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미국의 태양광 에너지는 이미 화석연료의 생산 단가에 근접하고 있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라는 생태위기에 그린 에너지원의 확보는 다음 단계 에너지 질서를 장악할 근원이 된다. 그리하여 미국은, 이러한 장기적 에너지원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단기적으로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밸류체인 개편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밸류체인의 허브국가인 독일과 일본은 정치ㆍ군사적으로 미국에 종속되어 있고, 금융적으로도 종속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지 않다. 중국을 경제적으로는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 체제에 종속시키고 정치ㆍ군사적으로 굴복시키면 글로벌 밸류체인을 더 이상 재편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중국은 이를 거부했다. 금융시장을 개방하지 않았고, 군사력을 위협적으로 키우고 있다. 이에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린 에너지 전략에는 방대한 미국의 그린 에너지원을 이용해서 기존의 화석연료 중심의 밸류체인을 재편하여 새로운 패권을 구축하려는 전략이 숨어 있다. 이에 반발하는 흐름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산유국들과 거대 에너지기업들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통해 러시아를 무력화 시켜 중국과 러시아 연합의 예봉을 꺽고자 한 미국의 전략은 실패한 듯하다. 미국이 인도를 반중 전선에 끌어들이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인도의 염원인 제조업의 발전은 그린 에너지원으로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중 전선의 형성이 아니라 브릭스를 중심으로 한 반미ㆍ반유럽 전선이 형성되는 분위기이다. 이스라엘과 멕시코마저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러우전쟁은 장기전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현하 세계적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붓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기름 값을 폭등시켰고, 식량가격도 요동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도 제재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이 제재의 파장은 단지 원유와 식량가격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와 같이 자원 부국을 재제하는 것은 기존의 글로벌 밸류체인 일반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나아가 러시아의 원자재와 중국에서 생산되는 중간 제품들을 새롭게 대체하는 것은 당분간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대체 가능하다고 해도 그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얼마 전 한국에서 일어난 요소수 대란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요소수 대란은, 한국이 요소수를 생산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중국산의 생산 단가가 싸기 때문에 전량 중국에서 수입한 데에 기인한 것이었다. 결국 밸류체인에서의 중국의 배제는 물가상승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물가상승은, 인플레이션과 달라, 이른바 유동성을, 즉 살포된 불환통화를 회수한다고 해서 수습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에서 참고로 노동자들의 생활과 직결된, 현시기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그리고 한국경제의 주요 문제의 하나인 물가와 임금에 대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주지하는 것처럼, 지금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리먼부라더스 사태로 대표되는, 2008년에 폭발한 거대한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최근 2-3년 동안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계기로, 각국 정부가 엄청나게 살포한 소위 ‘유동성’, 즉 불환통화 때문에 고율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 유학하여 경제학을 전공하신 추경호 경제부총리께서는 “경쟁적인 가격 및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임금 인상 억제를 주문했다. 동시에 정부는 규제 혁파와 법인세 감면 등으로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의 계급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임금 인상과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말하는 이들은 당연히 임금인상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자신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말씀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이 말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재화에 비해 화폐공급이 많아지면 ―사실은 ‘화폐공급이 많아지면’이 아니라, ‘불환통화의 공급이 많아지면’이지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이른바 ‘양적 완화’라는 돈 풀기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목하 재화가격의 인상과 임금인상은, 사실상, 돈 풀기에 의해 야기된 동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재화의 가격에는 그 돈풀기 효과가 즉각적으로 반영되지만, 임금 인상은 노동자의 전투적 투쟁이 없이는 힘들다. 따라서 임금인상은 후행적으로만 나타난다. 그런데도 저들은 임금 인상이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야기한다고 강변하는데, 이는, 그러한 주장의 과학성 여부 이전에, 선후관계ㆍ인과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뭉뚱그린 기만이다.

 

물론 불환통화의 남발에 의한 인플레이션만이 물가상승의 유일한 형태가 아니다. 생산 기술의 혁신이 그 주요한 특징의 하나인 자본주의 경제, 특히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론적ㆍ논리적으로만 말한다면, 만일 어떤 이유, 어떤 원인에 의해서든 화폐인 금 생산을 제외한 다른 부문의 생산에서 노동의 생산력이 전반적으로 저하한다면, 물가는 상승한다. 혹은 금 생산에서의 노동의 생산력이 다른 부문에서의 그것보다 빠르게 상승한다면, 이 경우 역시 물가는 당연히 상승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불환통화 남발로 인한 단지 명목적인 물가상승인 것에 비해서, 노동생산력의 변화에 따른 이러한 물가상승은 실질적인 상승이고, ‘긴축’ 등의 통화정책을 통해서 수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그렇고, 앞에서도 재화의 가격에는 자본가 국가의 돈풀기 효과가 즉각적으로 반영되지만, 임금 인상은 노동자의 전투적 투쟁이 없이는 힘들고, 따라서 임금인상은 후행적으로만 나타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과 같은 고율의 인플레이션은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심각하게 저하시킨다. 즉, 그렇잖아도 빈곤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극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인플레이션에 의해 저하된 실질임금을 인상하는 투쟁을 광범위하게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임금인상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을 폭로하고, 국가 권력을 노동자 민중의 국가 권력으로 바꾸는 투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노동자 계급은 임박한 위기를 극복할 제3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가 권력은 이번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 그들은 오직 노동자 민중의 피를 빨아대는 흡혈귀적 정책으로 미봉하려 들 뿐이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은 자신들의 국가 권력 수립이라는 새로운 길을 제기하고 쟁취해야 한다. 이 길만이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임금문제만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의 문제까지도!

노사과연

 


 

1) 이른바 ‘글로벌 밸류체인(CVC)’이란, 말하자면, ‘국가간 산업연관’이며, 그에 대한 부르주아적 명칭이다.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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