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현장] 사드 배치 5년, 또다시 투쟁을 결의하며

― 제12차 범국민평화행동 후기

 

박한솔 | 회원, 민주노총 제주본부 선전홍보부장

 

* 이 글은, 지난 4월 23일(토)에 있었던, ‘불법 사드 배치 5년! 제12차 범국민평화행동’ 현장을 담은 것입니다.

 

 

성주 소성리 사드 반입 저지 투쟁에 처음 연대했던 건 작년이었다. 대구, 그것도 달서구에서 대학을 다녔던 내게 성주는, 교통이 불편하다는 점을 빼면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사드 반입 저지 투쟁이 가장 격렬하게 이뤄지고, 또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적 탄압이 자행되던 2017년에는 좀처럼 발길이 닿지 않았다. 동아리 활동이니, 시험 공부니, 과제니 하는 뻔한 핑계들을 댈 수 있겠지만, ‘정말 일각의 주장처럼 사드가 한국에 독이 되는가’ 하는 의문이 앞섰던 게 당시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반제 관점이 없었던 탓이다. 미군에 의해 한국 땅에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가 설치된다면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닌가, 미군은 자타공인 세계 최강의 군대이고, 한국은 미국의 우방이며, 어차피 산골짜기 깊은 곳에 배치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권의 탄핵과 더불어 이른바 ‘적폐 청산’ 열풍이 불어닥치자 (당시 사드에 대한 내 사견과는 무관하게) 이제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다. 당시 문재인은 소성리 주민들이 만든 ‘사드 철회’ 현수막 앞에서 활짝 웃으며 기념 촬영을 하고 기자들 앞에서 누누이 사드를 철거할 것처럼 발언하기도 했다. 더 이상 소성리 할머니들이 밤잠을 설치며 공권력과 충돌할 일도 없을 것이고, 사드는 철거될 것이고, 한동안 혼란스러웠던 정국도 별안간 안정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근거 없는 희망 사항을 안고서 이 나라 정부와 대통령의 의지를 신뢰하던 한때의 ‘선량한 시민’은 이젠 없다. 내게 있어 대학 캠퍼스가 ‘족벌사학’이라는 미시 권력이 어떻게 학문을 상품화하고 학문 공동체를 해체하였는지 보여 준 장소였다면, 소성리는 자본의 독재가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고 그에 대한 저항을 어떻게 억누르는지 체감토록 해 준 곳이었다. 소성리에서 목격한 공권력은 시쳇말로 떠드는 ‘민중의 지팡이’ 따위가 아니었다. 평범한 이들의 삶을 무참히 파괴하고, 주민과 주민 사이를 이간질하며, 평화롭게 도로를 점거한 한 무리의 시민들을 삽시간에 범죄자로 만드는 지배계급의 도깨비 방망이었다.

 

성주군민, 소성리 주민, 그리고 전국의 모든 진보적 인민들은 사드 철거를 요구했음에도 국가는 요지부동이었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국민’이라는 개념이 실상 부르주아지를 지칭함이 물론이지만).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경찰력이 ‘평화’를 외치는 수십 명 남짓의 사람들을 둘러싸고, 하나둘씩 밖으로 끌어내는 모습은 눈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야만적인 광경이었다. 사드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작은 산골 마을이 졸지에 노동자 민중과 자본ㆍ국가 사이의 국지전이 펼쳐지는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열 차례도 되지 않는 짧은 연대 투쟁은 국가의 본질(=지배계급의 폭력 기구)에 대한 그 어떤 이론이나 분석보다도 구체적인 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 폭력을 지탱하는 힘이 실로 공포스러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배계급의 폭력에 정면으로 충돌하여 사정없이 튕겨 나오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 의로운 청년 학생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으며, 몇몇 집회 책임자들에게는 소환장이 날아들었다. 그럼에도 소성리 할머니, 연대자들, 진보적 시민들은 또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새벽부터 마을회관 앞 도로에 삼삼오오 모여 그 지리한 투쟁을 이어나갔다. 과거에 비해 대중과 언론의 주목도가 낮아졌지만 여전히 그 자그마한 산골 마을에서는 매일같이 치열하고 집요한 반제, 반전, 평화 투쟁이 두 번의 정권 교체 속에서도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23일, 아침 일찍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대구공항을 거쳐 몇 달 만에 소성리를 찾았다. 이번엔 사드 장비 반입을 저지하는 투쟁이 아니라 올해에도 계속될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자리였기 때문에 기존의 긴장감은 약간이나마 덜어 놓을 수 있었다.

 

행사는 ‘제12차 범국민평화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오후 2시 진밭교 앞에서 진행됐다. 2017년 4월 26일은 소성리에 사드가 처음으로 반입된 날이다. 그로부터 꼭 5년이 흘러서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사드뽑고 평화심자”를 외치고 있었다. 극우 정권에서 민주당 보수 정권으로, 그리고 다시 극우 정권으로 회귀한 지난 5년의 시간 동안 소성리에서의 투쟁은 정권의 성향을 불문하고 계속되었다. 5년 전 4월 26일 소성리에 최초로 경찰력이 투입되었을 때, 그 규모가 최소 8천 명에서 1만 2천 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성주군 초전면의 인구가 4천 400명 정도였으니 이 고장 인구의 곱절은 되는 공권력을 소성리로 보냈던 셈이다. 지배계급에게 있어 사드 배치가 갖는 의미가 남달랐던 것일까. 문득 5ㆍ18 민중 항쟁 당시 계엄군이 광주에서 발사한 탄환이 50만 발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1980년 광주 인구가 80만이었으니 최소한 광주 시민 과반을 학살할 작정이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국가 권력의 폭력 수단이 총칼에서 방패로 바뀌었을지언정 그 본질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날 소성리에는 노사과연을 비롯한 민주노총, 평통사, 노동전선, 대진련, 범민련, 진보당 등 진보 진영 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히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의 발언이 기억에 남아 몇 자 적어 보고자 한다. 김재연 상임대표는 “박근혜 정권이 문재인 정권으로, 그리고 윤석열 정권으로 탈바꿈하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은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그들이 비뚤어진 한미 관계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한 이곳 성주와 국민들의 평화와 주권은 결코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드 배치가 거론된 지 8년째에 접어들었고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순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한미 동맹에 기초한 부르주아 정권의 성격은 변하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어 김재연 상임대표는 미국과의 동맹에 매달리는 보수 정치 세력을 거세게 비판했다. 김 상임대표는 “우크라이나에서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그들의 동맹인 서방과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서 “결국 미국에 의해 전쟁터가 되고 나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냐”고 반문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진실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의해 침공을 당했음에도 소극적인 조치만 할 뿐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고 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은 자신들의 군대로 그 땅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줄행랑을 쳐, 아프간 민중의 삶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일촉즉발의 한반도 정세에 미루어 보아, 한국이라고 전쟁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는 것이다. 한미의 사드 배치, 전쟁 연습으로 인해 높아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언제든 전쟁이라는 비극을 다시 이 땅에 불러올지도 모른다.

 

한편 이날 한국진보연대 김재하 상임대표는 수년간의 사드 투쟁의 의의와 그 주체들을 격려하면서 특히 힘든 상황에서도 투쟁의 고삐를 놓지 않은 소성리 할머니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재하 상임대표는 “지난 5년을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투쟁 속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다”면서도,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소성리 할머니들을 지탱한 것은 먼 곳에서도 새벽밥을 먹고 아침 일찍 소성리로 찾아온 무수한 연대자들의 존재”였다고 말했다. 이 땅에서 자주와 평화를 외치는 셀 수 없이 많은 투쟁들이 있었지만 소성리에서의 싸움만큼 강력하고 또 오래 유지되는 싸움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5년은 많은 동지들의 지지와 연대로 쌓아온 투쟁의 나날이었다. ‘사드뽑고 평화심자’는 구호가 5년째 같은 자리에서 끊임없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연대의 손길을 내민 소중한 동지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윤석열 극우 정권의 탄압은 이전 정부보다 한층 강해질 것이지만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고 사드 저지 투쟁에 나설 시간이다. 소성리에서 사드의 완전한 철거와 소성리 주민들의 평범한 삶이 머잖아 회복되기를 기원한다. 나아가 한국이 제국주의적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질 그날을 향해 힘찬 투쟁을 결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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