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윤석열 정권의 등장과 노동자계급의 과제 ― 2022 대선을 평가하며

 

문영찬 │ 연구위원장

 

 

1. 대선 평가의 목적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선거 결과는 민주당에서 국민의 힘으로 정권 교체를 나타낸다. 진보민중진영은 참담한 선거 성적표로 인해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다. 진보민중진영의 선거 전술에서 드러난 한계와 오류, 즉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제시하고 사회주의를 공세적으로 선전, 선동하지 못했다 점으로 인해, 자본가계급에 맞서는 변혁적 전술을 구사하지 못하고 선거를 통한 변화라는 개량주의적 틀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으로 인해, 일정한 혼란이 지배적인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선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선거 과정에서 자본가계급은 정치공학적인 전술을 압도적으로 구사했는데, 진보민중진영이 이러한 정치공학을 분쇄하고 극복하는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여 선거 평가에 있어서도 일정하게 그 영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각 정당이 얻은 득표수를 계산하는 것이 선거 평가의 본령인 양 하는 경향이 존재하기조차 하다. 이는 진보민중진영의 전술이 변혁의 전망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부르주아 선거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주체의 전술과 성과, 혹은 성적표를 분석하기에 앞서 선거로 인한 객관 현실의 변화, 정세의 변화를 우선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선거 평가의 1차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선으로 인한 정세의 객관적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 주요한 것이며, 이를 기초로 선거과정에서 주체의 전술과 실천을 분석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노동자계급의 선거 평가의 1차적 목적은 선거로 인한 정세의 변화를 분석하여 새로운 정세에 의해 규정되는 노동자계급의 과제를 도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2차적 목적은 선거 과정에 대한 평가를 통해 향후 노동자계급의 선거 투쟁에 있어서의 교훈을 이끌어 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2. 대통령 선거로 인한 정세의 변화에 대하여

 

1) 민주당에서 국민의 힘으로 정권 교체의 의미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즈음하여 세계정세에서 일정한 변화가 발생하고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표상된다. 쏘련 붕괴 후에 성립한 미국 중심의 단일한 세계체제가 붕괴되고 세계 질서가 두 개로 분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더해 코로나 역병을 전후하여 전개되고 있는 경제에 있어서 침체와 어려움, 공황 국면의 전개가 한국 정치권력의 교체 배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 속에서 민주당에서 국민의 힘으로 정권교체는 자본가계급이 정세에 대한 대응에서, 즉 자본가계급의 전술에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민주당이나 국민의 힘은 동일한 전략적 목표를 가진 정치세력이다. 즉 이들은 모두 자본주의의 수호라는 점에서 동일한 전략적 목표를 가진다. 이재명은 선거 과정에서 인류가 발명한 가장 좋은 제도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고 말한 바가 있었다. 이는 자본주의로 인해 고통 받는 노동자와 민중이 겪는 어려움의 근원에 대해 외면하는 것이었으며, 이재명이 민주주의를 강조할 때 그것의 목표는 자본주의의 수호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민의 힘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기득권의 수호, 자본주의의 수호를 외치는 세력이다. 윤석열이 강조한 자유민주주의는, 사실 파시즘적 색채가 농후한 것으로서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세력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가운데 자본가계급의 독재를 수호해 나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이재명과 윤석열은 선거 과정에서 한-미 동맹을 금과옥조로 떠받들었는데, 이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 질서의 한 축인 미제국주의의 신식민지적 지배를 떠받드는 것으로서 미제국주의의 신식민지적 지배로 인해 이익을 얻는 자본가계급, 특히 독점자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또한 민주당과 국민의 힘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10만 명의 폐지 청원에 대해 그에 대한 심사를 다음 국회로 넘겼다. 이는 사실상 청원에 대한 심사를 거부한 것이었으며, 한국 사회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하고 얄팍한 것인지,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이 얼마나 반동적인 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양 당의 이러한 태도는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상을 억압하고, 자본주의를 변혁할 정치세력의 등장을 억누르겠다는 점에 있어서 민주당이나 국민의 힘 모두 동일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민주당이나 국민의 힘은 모두 전략적 차원에서는 자본주의의 수호에 있어서 동일하다. 또한 미제국주의의 한국 사회에 대한 신식민지적 지배와 억압에 대해 지지하고 있으며, 그들 스스로가 그러한 신식민지적 지배를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관철시키는 수단, 매개가 되고 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즉 민주당이나 국민의 힘 모두 전략적 차원에서 자본가계급과 미제국주의의 계급적 이익을 배타적으로 관철시키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세력이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국민의 힘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계급대립의 심화를 핵심으로 하는 정세의 변화에 대해 자본가계급이 취하는 전술의 차이를 양 당이 보여준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및 민중 간의 계급 대립의 심화에 대해 일정한 개량의 정책, 전술을 구사하여 계급 대립을 무마하고 자본의 축적을 안정화시키고 가속화시키는 전술을 추구한다. 국민의 힘은 파시즘의 후계자로서 개량보다는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전투적으로 옹호하며, 소위 강성 노조 운운하며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는 전술을 취한다는 차이가 있다. 즉 민주당과 국민의 힘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무계급 사회를 지향하는 노동자계급에게 있어서 전략적 차원에서는 동일한 세력이다. 단지 전술상에서 일정한 차이를 내포하는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의 이재명과 국민의 힘의 윤석열은 겉으로는 격렬하게 대립했지만, 선거 과정 속에서 두 당의 선거 공약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상 동일해졌다. 이 또한 이재명과 윤석열의 차이가 전략적 차원의 대립, 차이가 아니라 단지 전술적 차원의 대립이고 차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국민의 힘으로의 정권 교체에 대해 전술적으로 변화를 주고, 전술을 정교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전술적 실천 속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자신의 변혁전략을 정립하여 자본가계급의 정치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세력으로서 자신을 정립하고 자본가계급에 맞서서 자신의 동맹세력을 확보하고 중간층을 견인하는 헤게모니를 수립해 가야 한다.

 

2)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난 계급대립의 심화

 

흔히 이번 대선의 결과를 좌우한 것으로서 부동산 문제를 꼽는다. 현상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부동산 문제는 계급 대립이 심화하여 그것이 표출된 쟁점에 지나지 않는다. 현상과 본질!을 구분하지 않고 현상에만 매몰되면, 문제의 성격에 대한 접근은 실패하게 된다.

 

부동산 문제가 불거질 당시 주택가격이 급속히 상승하여 이른바 ‘벼락거지’라는 말이 출현했다. 주택가격의 상승은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번에는 코로나를 전후하여 발생한 공황으로 인해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이 돈 풀기에 나서고 한국 또한 이러한 흐름을 같이 한 결과, 그 자금들이 부동산으로 몰려 주택가격이 2배 가까이 빠른 시간 동안 상승하였고, 이에 대해 내 집 마련을 꿈꾸던 많은 서민들은 그 꿈이 좌절되자 자신들이 벼락거지가 되었다고 한탄했던 것이며, 이에 대해 문재인 정권을 원망하며 그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번 대선 결과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서울 지역의 대선 결과는, 이른바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던 한강 벨트의 지역이 국민의 힘 지지로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부동산 문제가 직접적으로 대선 결과를 좌우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부동산 문제가 선거의 결과를 좌우하게 하는 정치 지형, 정책의 수행의 문제이며 나아가 계급적 지형의 문제이다. 꼭 자기 집을 가지지 않아도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또 부동산 문제에서 드러난 경제적 빈부격차의 확대가 적절이 제어되는 정책이 실행되었다면, 부동산 문제가 이번 대선에서처럼 폭발적 역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 문제는 이 사회,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분열과 계급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표출된 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민주당은 이른바 소득 주도의 성장을 내세웠지만, 그것은 최저임금의 문제에서 드러나듯이 단지 조삼모사,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에 지나지 않았다. 자본주의에서 불가피한 빈부격차의 확대, 계급 대립의 심화에 대해 민주당이 피상적인 처방 이외에는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민주당은 자본주의의 모순 자체에 대한 접근법을 갖고 있지 못한 부르주아 정당이며, 따라서 단지 모순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한 임시적, 피상적, 즉자적 대응 이외에는 다른 대응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선에서 부동산 문제와 더불어 쟁점이 되었던 청년 문제는 한국 자본주의에 미래가 있는가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대선 과정에서 청년들의 상당수가 삶의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소득과 주거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청년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것은 대다수 청년들에게 난망한 일이 되고 있으며, 청년들 상당수는 알바 노동자 혹은 단기적, 초단기적 노동자로 전전하고 있다는 것이 폭로되었다. 청년들은 기존의 체제, 기성집단들에 불만을 갖고 있으며, 이 점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 철회로 나타났던 것이다. 운동의 세례, 이념의 세례, 사회주의의 세례를 받지 못한 상당수의 청년들은 한국 자본주의에서 전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가운데 극우적 사고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쇠퇴가 가져온 비극 중의 하나이다. 이는 한편으로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운동이 재건되고, 다른 한편으로 청년 대중들이 자신의 정치적 경험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갖게 될 때,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청년 문제에서 분명한 것은 한국 자본주의가 과연 미래가 있는가의 문제가 청년 문제의 본질이라는 점이다. 이재명은 청년 문제에 대해 경제성장을 회복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기회의 총량을 확대하여 청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부르주아적 처방을 제시하였다. 문제는 경제성장 자체가 빈부격차를 확대하고 자본의 힘을 강화시켜 청년에 대한 소외와 억압을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수십 년 동안 이재명 식의 논리가 관철되어 온 결과가 바로 지금의 청년 문제의 폭발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한편으로 청년 스스로의 정치적 경험의 축적을 기다리면서, 다른 한편으로 사회주의 이념과 운동의 재건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때 비로소 실업의 소멸과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진다는 점을 청년들에게 제기해야 한다.

 

대선에서 부동산 문제, 청년 문제와 더불어 주요한 쟁점이 되었던 것이 여성 문제이다. 윤석열은 여성 문제에 대해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망언을 하면서, 심지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악선동적인 정책을 내세웠다. 청년들 사이에 존재하는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의 대립을 활용하여 극우적 갈라치기를 시도하여 남성 청년들의 표를 상당수 끌어 모으겠다는 전략이었고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대해 이재명은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기하여 표를 모으지는 않겠다고 하여 최소한의 양식을 보여주었다.

 

사실 여성 문제는 인류의 역사에서 사적 소유가 발생하여 여성이 남성의 지배에 종속된 이후 지속되어 온 문제이다. 사적 소유 체제에서 남성은 가부장적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는 자본주의에서 사적 소유가 전면화 된 가운데 강화되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은 곧 자본주의 모순의 발전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은 노동운동의 발전에 기초하여 여성해방을 구호로 내세우며, 여성운동을 발전시켜왔다. 20세기의 역사에서 여성운동은 부르주아적 여성운동, 소부르주아적 여성운동, 프롤레타리아적 여성운동 등의 여러 갈래로 발전해왔으며, 프롤레타리아적 여성운동은 노동운동과의 연합을 통한 해방의 길을 추구했다. 이는 여성해방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철폐할 때만 가능하다는 점, 즉 여성해방의 물질적 기초가 확보될 때만 양성 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일한 과학적 길이었다. 그러나 여타의 여성운동은 다양한 갈래의 페미니즘, 여성주의의 길을 걸어왔으며, 특히 20세기 말 쏘련의 해체 뒤에 노동운동과의 연합이 아닌 저항의 길을 걸어왔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청년 대중들 가운데 여성 청년과 남성 청년들의 대립은, 기득권 세력이 그러한 대립을 악용하고 조장한다는 점을 논외로 하면, 페미니즘 운동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즉 여성 문제가 해방의 문제, 새로운 사회 건설의 문제, 변혁의 문제가 되지 못하고 자본주의의 한계 속에서 여성의 해방을 꿈꾼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와 오류가 불가피하다. 그런 이유로 인해 사적 소유 체제 하에서의 여성 해방은 남성과의 대립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점은 여성운동이 변혁운동으로 발전할 때만, 여성 운동이 노동운동과의 연합으로 나아갈 때만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여성 문제, 페미니즘에 대해 표를 끌어 모으는 영역으로만 간주하며 여성 문제에 대한 참다운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민의 힘은 아예 억압받는 여성의 처지를 외면하고 남성 청년과 여성 청년을 갈라치기하여 표를 모으는 저열한 정책을 폈다. 이 또한 여성이 피억압의 대상에서 해방의 주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성 운동이 자본가계급과 절연하고 노동자계급과의 연합을 통해 여성해방의 길을 개척해가야 한다는 점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노동 문제가 철저히 외면되고, 노동자계급이 배제된 가운데 선거가 치러졌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권은 소득 주도 성장을 내세우고 또 노동 존중을 기치로 출범했으나 그 이후의 과정은 철저히 노동자를 기만하는 과정이었다. 노동 존중을 내세운 것은 다름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협조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노동자계급의 계급 협조가 민주노총에서 부결된 이후 문재인 정권은 줄곧 자본 우선, 노동 배제의 길을 걸어왔다. 이러한 노동 배제의 흐름은 윤석열의 집권으로 인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철저히 노동 관련 쟁점이 사라지고 심지어 윤석열에 의해서는 주 120시간 노동, 노동법의 개악, 이른바 강성 노조에 대한 억압 등이 천명된 것은 문재인 정권의 노동 정책이 사실은 노동운동을 무력화하는 것이었고 노동을 배제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는 자유주의 정권인 문재인 정권의 5년이 한국 사회에서 반동 부르주아지의 복귀, 재집권을 위한 길 닦기의 기간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등 문재인 정권이 요구한 노사협조주의, 계급협조주의를 거부한 결과 최소한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나름의 독자적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계급협조주의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의 파괴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은 계급협조를 거부하고 계급적 단결을 추구하는 길을 가야만 했던 것이다.

 

대선 기간에서 노동이 배제되었다는 점, 윤석열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과 억압을 공언하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5년이 노동자계급에게 시련의 기간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생산의 주역이며, 스스로의 단결을 이룬다면 역사의 주체일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계급 대립의 심화는 향후 5년이 자본과 노동 간의 모순의 첨예화의 기간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과 노동의 모순의 첨예화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자체가 필연적으로 산출하는 것이다. 노동의 자본에 대한 종속을 가일층 강화해야만 노동자로부터의 잉여가치 착취가 가능하고 자본의 축적이 가능하다는 점, 정세 자체가 자본가계급의 개량의 여지를 축소하고 있다는 점, 미제국주의 중심의 세계 단일체제가 붕괴하고 세계 질서가 두 개로 분열하여 모순이 중첩된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노동자계급 또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며 싸워야만 생존이 가능하다는 점, 한국 사회의 계급 대립 구도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중심의 2정립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 등등, 노동자계급은 향후 5년간 자본가계급에 맞서 투쟁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즉자적 계급, 경제적 의미의 계급에서 정치적 의미의 계급, 대자적 계급으로 발전시키게 될 것이다.

 

3) 정세변화에 있어서 세 가지 측면

 

대통령 선거 결과는 직접적으로 정치권력의 교체를 가져왔다. 윤석열 정권의 등장으로 인해 촛불 시위로 쫓겨났던 반동 부르주아 계급은 정권의 담당자로 복귀하였고, 한국 사회는 진보의 전망이 질식되고 사회적 역전, 후퇴를 겪게 되었다.

 

윤석열은 20년 넘게 검사로 생활하였고 그리하여 이른바 시스템에 의한 정치를 추구한다. 심지어 군대 또한 검찰과 유사한 조직으로 파악하면서 시스템적인 국가 운영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앞으로 정세의 전개에 의해 명백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자본가계급이 사회의 운영, 자본의 축적, 대내외적 정책에서 전술적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변화의 방향은 기득권을 공고히 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을 분열시키고 자본가계급의 독재를 강화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윤석열은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아니라 소위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일반적인 민주주의라는 용어에서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가능하지만, 헌법 교과서에 등장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서 사회주의라는 개념은 배제된다. 또한 민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개념에서 배제된다.

 

즉 자유민주주의 개념은 사회의 새로운 질서로의 이행과 진보보다는 기존 질서의 유지, 강화를 의미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한국 자본주의가 내적 모순을 앓고 있는 이상, 한국 사회는 고정된 사회일 수 없으며, 스스로 운동하고 발전하고 끝내 모순의 운동에 의해 스스로를 지양하는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은 전두환이 정치를 잘 했다고 평가했으며, 그에 대해 반발이 일자 이른바 ‘개 사과’를 하였다. 윤석열이 보기에 전두환의 파시즘적 통치가 정상적인 통치, 합리적인 통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윤석열이 검찰 총장의 위치에서 법무부 장관, 대통령의 지휘를 거부하면서 그 반대진영에 섰던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식일 것이다.

 

윤석열은 4ㆍ3 항쟁 기념식에 참석하였고 또 5ㆍ18 기념식에도 참석한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노총을 방문하여 협조를 당부할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가 ‘개 사과’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면 그러한 행보의 효과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에 대한 태도, 권력에 대한 접근 방식과 방법, 권력의 성격에 의해 규정되는 것인데, 윤석열의 진면목은 바로 이러한 점들에서 드러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정세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이고 노동자계급에 있어서 투쟁 조건의 중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정세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상호 관계, 여타 계급과의 상호 관계를 의미하며, 그것은 국가권력, 정치권력의 작용과 그 권력의 모든 계급과의 상호 관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정치권력의 교체는 그 자체로 정세의 변화를 의미하며, 따라서 정치권력의 교체로 인한 정세의 변화는 정세 분석이 초점이 되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이른바 강성 노조에 대한 억압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조건에서 중대한 변화이다. 문재인 정권이 노동 존중이라는 사탕발림을 내세우면서 계급 협조를 통한 노동운동의 무력화를 시도했다면, 윤석열은 계급 협조가 아닌 계급적 억압을 공공연히 추구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는 노동자의 단결을 자본의 축적에 대한 걸림돌로 파악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전투적으로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본질적으로 노동자의 단결의 파괴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분열을 도모하는 일정한 개량의 정책을 수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억압이든, 사탕발림의 개량이든 그것의 목표는 노동자의 단결의 파괴라는 점은 분명하며, 이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역으로 단결의 수준을 조합(주의)적 단결에서 정치적, 계급적 단결로 상승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을 대응전략으로 가져야 한다.

 

한편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한(조선)반도의 정세와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부르주아 평론가들은 세계화가 종말을 고했다고 평가한다. 이는 쏘련 붕괴 뒤에 밀물처럼 전 세계를 휩쓸었던 신자유주의의 세계화가 종말을 고하고, 그러한 세계화의 구심이었던 미국 중심의 단일체제가 붕괴하고 세계체제가 두 개로 분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항공모함을 동해로 진입시키는 등 동아시아와 한(조선)반도에서 약화되는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은 한-미 동맹이 문재인 정권 기간에 약화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한-미 동맹의 재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 자본가계급의 입장에서는 쇠퇴하는 미제국주의와 부상하는 중국 사이에서 이른바 모호성의 정책, 혹은 등거리 정책을 펴는 것이 이익이 될 것이지만, 전투적인 한-미 동맹론자인 윤석열은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사고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모양이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한(조선)반도 정세가 악화되고 전쟁위기기 재발하는 것이다. 전쟁위기가 격화되고 군사적 담론이 사회를 압도하게 된다면, 파시즘적 이데올로기와 정책은 자연스레 강화되고, 노동자, 민중의 자유와 권리는 심대하게 제약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사회의 진보의 전망, 변혁의 전망 또한 질식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다면, 노동자계급은 전쟁 위기에 맞서 반전 운동, 반제국주의 운동을 강화하면서 전쟁 위기에 대해 변혁의 길을 제시하고 가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한국 사회에서 역전, 진보의 후퇴, 기득권의 강화, 노동자와 민중의 처지의 악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는 한 마디로 반동의 심화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반동의 심화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에서 NATO라는 제국주의 세력과 러시아 제국주의의 대립으로 인한 전쟁은, 세계적 차원에서 반동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쏘련 붕괴 뒤에 있었던 사회주의 세력의 몰락으로 인한 대대적인 반동의 심화에 이어, 지금 미국 중심의 단일 체제의 붕괴가 세계적 차원에서 반동의 심화로 현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은 가까워 오는 법이다. 이미 스리랑카 등 약한 고리에서는 대중들의 거센 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약한 고리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상대적인 것으로서, 정세의 변화에 의해 강한 고리가 약한 고리로 전화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며, 정세의 변화와 발전은 그 약한 고리의 파열을 불러 올 것이다.

 

 

3. 대통령 선거 과정에 대한 평가

 

1) 선거를 매개로 한 권력투쟁

 

이번 대선은 시작부터 격렬한 권력투쟁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대장동 사건이 쟁점이 되면서 선거가 대중들의 표가 아니라 검찰 수사에 의해 좌우되는 양상이 되었다. 심지어 선거 후 대선 후보들이 구속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선거 과정이 전개되었다.

 

이는 대선 이전에 조국 사건에서 검찰이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의 지휘에 반항하면서 스스로 대선의 구도를 결정하고, 심지어 그러한 과정을 주도한 검찰 총장이 반대파의 대선후보로 결정되면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검찰 조직과 부르주아 언론은 밀착하여 반대파 진영을 형성하였고, 여당 후보가 언론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언론에 의해 배제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이 전개된 근본적 이유는 이번 선거가 촛불 시위로 인해 형성되었던 정치 구도의 연장인가, 아니면 촛불에 대한 반동인가라는 구도로 전개되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부르주아 언론들은 일방적으로 반여당 구도를 형성하였고 ‘검찰의 반란’을 주도한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끌어 올렸다. 거기에 더해 윤석열에 대해 일방적으로 우호적인 보도를 하였다. 대중의 정치적 흐름, 대중의 정치적 견해, 대중의 정치적 행동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의 수사와 검찰 조직의 향배가, 부르주아 언론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양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과거 4.19 혁명 이후 그에 대한 반동은 군사 쿠데타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검찰조직과 부르주아 언론에 의해 촛불에 대한 반동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는 자본가계급이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 국면 속에서 개량인가 반동인가의 쟁점에서 반동을 채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선이 격렬한 권력 투쟁의 양상으로 전개된 것이다.

 

2) 정치 공학이 지배한 선거

 

이번 선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선거 과정이 철저하게 정치 공학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여론조사가 여론의 향배를 좌우하는 양상이 대표적이다. 여론조사는 대중의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여론조사 자체가 민심을 조작하고 선거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양상이 전개된 주요한 조건의 하나는 코로나 역병으로 인하여 대중들이 행동으로 나설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제약되었다는 점이었다. 2020년 초 코로나 역병이 발생한 후 보건 위기에 대하여 방역 당국의 주도로 그에 대한 대응이 이루어졌다. 대중들은 방역 당국을 신뢰하여 보건 위기에 대한 대응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협조하였다. 이는 보건 위기의 문제는 정치적 문제라기보다는 과학의 영역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전개되면서 대중 집회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고, 대중들, 특히 노동자 대중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리고 대선 국면이 전개되면서부터는 대선 후보들의 유세는 집회의 제약이 거의 없었으나 노동자 대중의 집회는 철저히 거부되거나 통제되었다. 심지어 민주노총 위원장이 ‘불법집회’ 개최의 혐의로 구속되기조차 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노동자 대중과 노동자계급의 목소리는 배제되었고, 대선 과정에서 노동 의제가 실종되었으며, 선거 과정에서 자본가계급의 목소리만이 지배적으로 되었다.

 

이러한 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 사회에서, 계급적 영역이 아닌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의 영역조차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계급적 당파성의 각인이 찍힌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코로나 역병이라는 세계적 차원의 보건 위기가 자본가계급과 반동 세력에 의해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코로나 역병이라는 조건 속에서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노동 의제가 실종되면서, 대선 과정은 자본가계급의 일방적 주도 하에 전개되었다. 그리고 자본가계급의 일방적 주도의 선거 과정은, 필연적으로 대중의 정치적 견해와 행동이 아니라 부르주아적인 정치 공학이 선거를 지배하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여론조사를 빙자한 여론 조작이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대선 후보들과 관련된 비리가 폭로되고 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대중의 민주주의는 실종되고, 자본가계급의 의도가 선거 과정에 전면적으로 관철되게 되었던 것이다.

 

3) 진보민중진영의 선거전술에 대한 평가

 

이번 대선에서 진보민중진영은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정의당은 2%를 간신히 넘기는 표를 얻었고 진보당은 3만여 명의 표를 얻었고 노동당은 9천여 표를 얻었다. 이는 진보민중진영이 대중적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었다. 물론 선거에서의 득표 자체는 부르주아적인 것으로서 운동진영의 정치적 힘, 향배, 미래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득표에서 드러난 참담한 성적표는 진보민중진영의 선거 투쟁이 실패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임은 분명하다.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등은 이번 대선에서 부르주아적인 정치 공학을 깨버리는 데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선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심지어 ‘검찰의 반란’에 대해 합법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진보민중진영이 대선을 축으로 한 정세의 전개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고, 또 선거 투쟁의 전략과 전술에서 커다란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민중진영의 선거 전술에서 분기점은 민중경선을 통한 단일후보의 실패였다. 진보민중진영이 부르주아 선거에서 독자성을 갖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서 운동진영이 진보적 대안이 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민중경선을 통한 단일후보전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민중경선 전술은 경선을 위한 구체적 절차에 있어서 정의당 등의 비토로 인해 무산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일정하게 예견된 것이기는 하지만, 운동진영에서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취약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민중경선의 무산은 진보정당들이 운동의 대의,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로를 우선적으로 사고하기 보다는 자신의 당, 자신의 조직의 입지와 세력 확장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민중경선이 무산된 결과 진보정당들은 부르주아 선거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의당은 문재인 정권의 집권 기간 동안 사실상 문재인 정권 및 민주당과 연합하는 노선을 취했다. 민주당과 연합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되자 때늦게 독자적인 모습을 취했으나 그 독자적인 모습은 진보의 전망, 변혁의 전망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적인 정치 구도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위한 것이었다. 정의당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한 한국 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전망을 진정 갖고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이다.

 

진보당은 이번 대선에서 거의 정확히 자신의 조직표를 획득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조직표 이외에는 거의 표를 획득하지 못하여 진보당은 대중적인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는 커다란 결함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진보당이 선전한 진보적 강령은 물론 일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지만, 그러한 선전이 대선 정세에 걸맞게 부르주아적인 정치 공학을 깨버리는 데는 무력했다. 나아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선전, 선동하지 못하여 자신의 독자성을 대중적으로 각인하는 데는 실패했다.

 

노동당은 대선 직전에 변혁당과 조직통합을 하여 선거를 치렀으나 선거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9천여 표를 획득했는데, 이는 노동당 또한 진보당과 마찬가지로 대중적인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는 커다란 결함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었다. 노동당은 진보정당 중에서 유일하게 사회주의 후보를 천명하였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지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노동당이 내세운 구호, 예를 들면 ‘이윤이 아닌 생명을’이라는 구호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보여주었지만,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구호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윤 개념에 대한 비판은 자본주의의 핵을 건드리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대안이 ‘생명’이라는 것은 계급적 관점을 놓치는 것이었다. 즉 ‘이윤이 아닌 생명을’이라는 구호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자본주의에 대한 변혁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자본가계급을 지양하되, 그것을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의 장악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인간 일반으로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윤이 아닌 생명을’은 사실 자본주의 테두리에 머무는 구호였다. 왜냐하면 자본가계급 스스로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자본가의 이윤을 제한하면서 생명의 보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진보정당들의 후보 전술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정세가 요구하는 과제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정세에서 진보정당들의 후보가 대중적으로 독자성을 각인하고 대중적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공격하는 선전ㆍ선동이 필요했다. 계급의 철폐!를 통한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은 가능하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선전ㆍ선동해야 했다. 내용면에서 이렇게 사회주의적 알맹이들을 갖춰가고, 형식면에서 단결을 강화하고 대중적 대표성을 강화하는 후보전술을 구사할 때 진보정당들은 정세가 요구하는 역할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4. 노동자계급의 과제

 

1) 전술적 과제

 

윤석열 정권의 등장은 향후 5년의 기간이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시련의 시간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주체적 대응, 주체의 전술을 논하기 전에 선행과제는 객관 정세의 분석이다. 왜냐하면 주체의 올바른 대응은 객관 정세에 정확히 조응할 때만 성공하고 성취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이 윤석열 정권을 택한 것은 한국 자본주의가 위기 상황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코로나 역병을 전후한 세계 공황이 지금은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인상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본가계급에게 있어서 절체절명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중요한 것으로 중국의 부상과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다.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될수록 한국 자본주의 또한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쏘련 붕괴 뒤 성립한 미국 중심의 단일체제의 붕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한국 자본가계급에게 위기 상황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정세에서 한국의 자본가계급은 촛불에 대한 반동으로 윤석열 정권을 택했다. 이는 앞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가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파상적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 현재의 정세에서, 현재의 계급 역관계에서 자본가계급의 우위는 명백하다. 이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대중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방어하고 조직적으로는 각각의 진지를 방어하는 전술이 가져야 한다. 지금은 전략적 방어의 시기이며, 자본가계급의 공세, 윤석열 정권의 공세에 대해 분명히 전선을 형성하는 동시에 대중의 계급적 이익을 수호하고, 각각의 진지를 지켜내야 한다.

 

이러한 방어전술은 소극적 전술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노동자계급과 진보민중진영의 결함과 취약점을 보완하고 극복하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즉 한편으로는 방어 전술을 취하고 전선을 공고히 하면서, 내적으로는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고 정비하면서, 전략적 반격을 취할 수 있는 준비를 해 가야 한다. 즉 방어-정비-반격을 모멘텀으로 하여 탄력적인 전술 운용을 통해 윤석열 정권의 예봉을 꺾고 주체 역량을 강화해 가야 한다.

 

2) 전략적 과제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운동진영의 모습은 변혁적 전망을 온전히 하지 못하고, 변혁전략이 부재한 상태에서 관성적으로 선거에 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지난 20여 년간 운동진영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의 등장이 예고하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시련은 더 이상 이런 관성적인 모습, 변혁의 전망이 없는 무기력한 모습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일직선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나선형적 발전을 하는 것임이 이번 대선에서도 드러났다. 문재인 정권이 촛불을 배신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해 기만적인 정책을 실시한 과정은 이번 대선으로 인해 그 후과를 입증했다. 진보민중진영 상당수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기대를 갖고 협조적 태도를 보여 왔었다. 한국의 역사에서 파시즘적 정치가 아닌 자유주의 정치는 사실 운동 진영에게 일정한 공간을 열어준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이념을 상실하고 변혁의 전망을 상실한 일부 운동 세력은 자유주의 세력과 연합하여 소위 운동을 내세운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하기조차 했던 것이다. 즉 운동 세력 스스로 자유주의 세력을 부정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된 가운데, 윤석열과 국민의 힘이라는 반동적 세력이 이번 대선에서 자유주의 세력을 부정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과 진보민중진영은 더 이상 자유주의 세력에게 기대는 방식으로 정치적 진로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변혁의 전망을 세우고 자신의 정치적 독자성을 분명히 하면서 자본주의 자체를 변혁하는 길을 가야 한다. 이러한 변혁의 길에서 일차적인 것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독자성을 수립할 때, 관건은 변혁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과 민중 세력이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세력은 되는 것은 변혁전략을 가질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혁전략의 수립 과정은 19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체는 자본주의를 지양할 수 있는 내용과 틀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정치적 전략의 측면에서, 조직적 측면에서, 각각의 내용과 형식에서 전략적 무기를 획득하는 문제이다.

 

이를 위해 한국 사회에 존재하고 운동하는 온갖 모순들을 정식화하고, 모순의 운동 방향을 정리하고 정립해야 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성과를 가져가면서도 자본주의의 역사적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수립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단지 이론적 차원에서 진행될 수는 없으며, 현실의 운동 과정 속에서, 윤석열 정권의 공세에 맞서는 전술적 실천 속에서 서서히 발전해 갈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전략은 전술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전술적 실천 없이 전략의 정립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략의 인도 없는 전술적 실천은 변혁적 역량을 소진시키고 약화시키기 때문에, 주체는 전술의 영역과 전략의 영역에서 적절한 역량 배분을 하면서, 운동의 총체적 발전을 도모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더 이상 용인하기 힘든 상황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계기가 주어지면 정세의 반전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계급적 존재를 계급적 의식으로 상승시키면서, 계급의 철폐를 통한 새로운 사회 건설의 주역이라는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실현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노사과연

문영찬 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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