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우리 당의 사회민주주의 경향에 대하여(3)

― 쏘련 공산당(볼) 제15차 전 연방 대표자회에서의 보고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1. 반대파 블록의 여러 발전 단계

  1) 첫 번째 단계

  2) 두 번째 단계

  3) 세 번째 단계

  4) 네 번째 단계

  5) 레닌과 당내 블록 문제

  6) 반대파 블록의 분해 과정

  7) 반대파 블록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2. 반대파 블록의 주요 오류

  1) 서론

  2) 레닌주의인가 뜨로쯔끼주의인가?

  3) 러시아 공산당(볼) 제14차 대표자회의 결의

  4) “신반대파”의 뜨로쯔끼주의의 전화

  5) 뜨로쯔끼의 발뺌, 쓰밀가(Smilga), 라데크(Radek)

  6) 우리나라 건설 사업 전망 문제의 결정적 의의

  7) 반대파 블록의 정치적 전망

3. 반대파 블록의 정치적ㆍ조직적 오류

4. 몇 가지 결론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4) “신반대파”의 뜨로쯔끼주의로의 전화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건설 문제에 있어 “신반대파”의 현 지도자인 까메네프, 지노비예프와 우리 당 중앙위원회 사이의 의견 차이는 제14차 대표자회 전날부터 공개적으로 표명되었습니다. 대표자회 전날의 정치국 회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회의에서 까메네프와 지노비예프는 이 문제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옹호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 관점은 당 노선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기본적으로 모두 쑤하노프의 노선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7개월 후인 1925년 12월, 러시아 공산당(볼)의 모쓰끄바 위원회는 전 레닌그라드 최고 지도부의 성명에 대한 답변으로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얼마 전 까메네프와 지노비예프는 정치국에서 국제적인 혁명이 우리를 구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술과 경제가 낙후하기 때문에 우리 내부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견해를 지지했다. 그러나 우리는 대다수의 중앙위원회 위원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술적 낙후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고, 건설하고 있으며, 반드시 성공적으로 건설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건설 사업이 세계 혁명이 승리한 조건에서 진행되는 것보다 늦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진하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또한 까메네프와 지노비예프의 견해가 우리 노동계급과 우리 노동계급을 따르는 농민 대중의 내부 역량에 대한 불신을 보여 주며, 레닌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답신” 참조.)

 

동지들, 나는 까메네프와 지노비예프가 제14차 당 대회 첫 회기 동안 ≪쁘라브다≫에 발표된 모쓰끄바 위원회의 이 성명을 논박하려 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는 모쓰끄바 위원회가 그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내용이 사실과 일치함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제14차 대표자회에서 까메네프와 지노비예프는 우리나라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당 노선이 옳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까메네프와 지노비예프의 견해가 중앙위원회 위원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미 말했듯이 지노비예프는 제14차 대표자회 결의안을 지지하는 특별 보고를 제14차 대표자회에 제출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결의안은 우리 당 노선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사건들에서 지노비예프와 까메네프는 공식적으로나 표면상으로만 제14차 대표자회에서 당 노선을 지지했으며 실제로는 여전히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1925년 9월 지노비예프의 저서 ≪레닌주의≫의 출판은 제14차 대표자회에서 당 노선을 지지했던 지노비예프와 당 노선에서 벗어난 지노비예프 사이의 경계를 가르는 사건이었습니다. 지노비예프는 레닌주의에서 뜨로쯔끼주의로 자신의 사상적 입장을 전환했습니다. 다음은 지노비예프가 자신의 책에서 쓴 내용입니다.

 

사회주의의 최종 승리는 적어도 1) 계급의 폐지, 따라서 2) 계급 독재의 폐지, 이 경우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폐지로 이해되어야 한다. …

 

지노비예프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1925년 쏘련의 문제가 무엇인지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한다. 1) 사회주의 건설을 수행할 수 있는 확실한 가능성 ― 그러한 가능성은 누가 봐도 한 나라의 한계 내에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2) 사회주의의 최종적 건설과 공고화, 즉 사회주의 제도, 사회주의 사회의 실현이다. (지노비예프의 ≪레닌주의≫, pp. 291, 293 참조.)

 

여기서는, 보시다시피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집혀 있습니다. 지노비예프에 따르면 승리(즉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가 의미하는 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은 있지만 완성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건설을 완성할 수 없다고 확신하면서 건설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노비예프가 말하는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인 것 같습니다. (웃음.) 그는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완성하는 문제와 최후 승리의 문제를 혼동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한 문제 전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경제 건설은 완성할 수 없다고 하면서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참여하는 것, 이것이 지노비예프가 빠진 수렁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입장은 사회주의 건설 문제에 관한 레닌주의의 근본 노선과 완전히 상충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입장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뜨로쯔끼주의의 사상적 입장을 지지하고 직접 닮아 가는 것입니다.

 

1925년 12월 제14차 당 대회에서 지노비예프가 한 발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야꼬블레프(Yakovlev)를 비판하면서 한 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야꼬블레프 동지가 지난 꾸르쓰크 구베르니야(Kursk Gubernia) 당 대표자회에서 한 헛소리를 보자. 그는 ‘사방이 자본주의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조건에서 우리가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완성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대답한다.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에 기초하여 우리는 우리가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분간 우리는 혼자이고, 당분간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한 쏘비에트 국가이자 유일한 쏘비에트 정부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주의 건설을 완성해 낼 것이다.’ (≪꾸르쓰까야 쁘라브다≫, No. 279, 1925년 12월 8일.)

 

이에 지노비예프는 묻습니다.

 

이것이 문제를 제시하는 레닌주의적 방법인가? 여기에 민족적 편협함의 냄새가 나지 않는가?[1]강조는 쓰딸린. (지노비예프, “제14차 당 대회 토론에 대한 응답”.)

 

이처럼 기본적으로 당과 레닌주의 노선을 지지한 이유로 야꼬블레프는 민족적 편협성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제14차 대표자회 결의안으로 공식화한 당 노선을 견지하는 것이 민족적 편협성에 빠진 것이라 합니다. 이 얼마나 엉망진창입니까! 여기에 지노비예프가 쓰는 모든 속임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레닌주의로부터 자신의 이탈을 은폐하기 위해 레닌주의자들에게 민족적 편협성이라는 터무니없는 비난을 겨누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대파 블록에 관한 테제는 정확한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반대파”는 우리나라 사회주의의 승리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나 (사실상 똑같은) 우리 혁명의 성격과 전망에 대한 문제에 대해 뜨로쯔끼주의로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까메네프는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다소 특이한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까메네프는 지노비예프와 달리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건설 문제에 대한 당 노선을 제14차 대표자회와 제14차 당 대회에서 공개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당 14차 대표자회는 까메네프의 성명을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의 말을 믿지 않았으며, 중앙위원회 보고서의 결의에서는 그를 레닌주의에서 이탈한 무리에 포함시켰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까메네프는 당 노선과의 연대 성명을 행동으로 뒷받침하기를 거부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그의 말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당 노선을 반대하는 자들과 결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내에 말로는 당과의 연대를 선언하면서 동시에 반당 분자들과 정치적 우호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레닌은 이런 경우에 당 노선의 이런 “지지자들”이 반대자들보다 더 나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 기간에 뜨로쯔끼가 국제주의 원칙에 대한 연대와 충성을 반복적으로 공언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당시 레닌은 그를 사회 애국주의자들(social-chauvinists)의 교사자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뜨로쯔끼는 국제주의를 표방하면서 동시에 카우츠키와 마르또프(Martov), 뽀뜨레쏘프(Potresov)와 츠헤이제(Chkheidze)와의 결별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레닌이 옳았습니다. 여러분의 진술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행동으로 자신의 발언을 뒷받침하고 당 노선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정치적 친분을 끊어야 합니다.

 

이것이 까메네프가 사회주의 건설 문제에 대한 당 노선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는 행동으로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는 것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뜨로쯔끼주의자들과 하나의 블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5) 뜨로쯔끼의 발뺌, 쓰밀가(Smilga), 라데크(Radek)

이 모든 것이 다 좋고 옳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파 지도자들이 사민주의적 일탈에서 기꺼이 레닌주의로 돌아오려 한다는 근거나 문서가 있습니까? 예를 들어 뜨로쯔끼의 책 ≪사회주의로 갈 것인가, 자본주의로 갈 것인가?≫를 봅시다. 이 책은 뜨로쯔끼가 자신의 근본적 오류를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징표가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이 책에서 뜨로쯔끼가 실제로 그의 근본적 오류를 포기했거나 포기하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죄인은 이 점에 대해 전혀 믿음이 없는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웃음.) 그리고 불행히도 그러한 추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뜨로쯔끼의 ≪사회주의로 갈 것인가, 자본주의로 갈 것인가?≫에서 가장 두드러진 구절을 봅시다.

 

국가 계획 위원회(Gosplan)는 1925-26년 쏘련 국가 경제 ‘통제’ 수치에 대한 개괄적인 통계표를 발표했다. 이 모든 것은 매우 무미건조하고 말하자면 관료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 메마른 통계표와 그에 대한 거의 똑같이 건조하고 간단한 설명에서 우리는 성장하는 사회주의의 장엄한 역사적 음악을 듣는다. (뜨로쯔끼, ≪사회주의로 갈 것인가, 자본주의로 갈 것인가?≫, Planovoye Khozyaistvo Publishing House, 1925, p. 1.)

 

이 “사회주의의 장엄한 역사적 음악”은 무엇입니까? 이 “장엄한”이란 문구에 적어도 어떤 의미가 있다면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기에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가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어떤 해답이나 설령 해답에 대한 암시라도 있습니까? 누군가는 부르주아를 타도했던 1917년과 무장간섭주의자들을 우리나라에서 몰아낸 1920년을 성장하는 사회주의의 역사적 음악이라고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1917년에 우리가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하고 무장간섭주의자들까지 몰아낸 것은 우리나라 사회주의가 성장하는 역량과 위세의 장엄한 증거를 온 세상에 보여 준 것이고 진정 사회주의 성장의 장엄한 역사적 음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나라가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건설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까? 뜨로쯔끼는 우리가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회주의에 이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동지들, 음악과 다른 부분에 대한 뜨로쯔끼의 “화려한” 문구는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라 법률가적 속임수이자 문제에 대한 “음악적” 회피입니다. (청중들의 함성: “맞다!”)

 

나는 뜨로쯔끼의 이러한 화려한 음악적 변주와 뜨로쯔끼가 레닌주의를 평가하는 소책자 ≪새로운 진로≫에서 했던 회피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을 들어 봅시다.

 

혁명적 행동 체계로서의 레닌주의는 사상과 경험에 의해 길러진 혁명적 감각이다. 사회 영역에서의 이러한 감각은 육체노동에서의 근육 감각과 같다. (뜨로쯔끼, ≪새로운 진로≫, Krasnaya Nov Publishing House, 1924, p. 47.)

 

“육체노동에서의 근육 감각”으로서의 레닌주의. 신선하고 독특하며 매우 심오하지 않습니까? 뭐가 뭔지 알 수 있습니까? (웃음.) 모든 것이 매우 아름답고 음악적이며, 뭐랄까 심지어 화려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작은 것”이 조금 부족할 뿐입니다. 레닌주의에 대한 간결하고 이해되기 쉬운 정의만이 부족할 뿐입니다.

 

이는 뜨로쯔끼가 음악적 문구에 특히 집착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로서 레닌이 뜨로쯔끼에 대해 쓰라리지만 진실된 말을 할 때 염두에 두었던 것입니다.

 

빛나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뜨로쯔끼의 말은 화려하고 음률이 있지만 내용이 없다. (Vol. 17, p. 383 참조.)

 

1925년에 출판된 뜨로쯔끼의 ≪사회주의로 갈 것인가, 자본주의로 갈 것인가?≫가 이러한 경우입니다.

 

좀 더 최근인 1926년으로 말하자면, 예를 들어, 우리는 1926년 9월 뜨로쯔끼가 서명한 문서가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뜨로쯔끼가 당이 거부한 견해를 계속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의심의 여지없이 보여 줍니다. 반대파에 보낸 뜨로쯔끼의 서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레닌그라드 반대파는 농촌 분화를 소홀히 하는 것에 지체 없이 경보를 울렸다. 부농이 증가하면서 경제의 자연 발생적 진행뿐만 아니라 쏘비에트 정부의 정책에도 영향을 증가시키고 있다. 우리 당내에서 부하린이 후원하는 한 이론 분파가 생겨났고 이는 우리 경제에서 자연 발생적 소부르주아 세력의 압력을 반영한 것이 분명하다. 레닌그라드 반대파는 민족적 편협성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일국 사회주의 이론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2]강조는 쓰딸린. (당내 상황 문제에 관한 1926년 10월 8일과 11일 쏘련 공산당(볼)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 속기록 부록에서.)

 

뜨로쯔끼가 서명한 이 문서에는 모든 것이 나와 있습니다. “신반대파”의 지도자들이 레닌주의에서 뜨로쯔끼주의로 전향했다는 사실과 뜨로쯔끼가 우리 당에서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인 자신의 옛 입장을 전적으로 그리고 조금도 거리낌 없이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급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쓰밀가(Smilga)나 라데크(Radek)과 같은 반대파 블록의 다른 지도자들은 어떻습니까? 내 생각에 이들도 반대파의 지도자입니다. 쓰밀가와 라데크가 어찌 지도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건설 문제에 대한 당과 레닌주의적 입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예를 들어 쓰밀가는 1926년 9월 공산주의 아카데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단언컨대 그[부하린: 쓰딸린]는 복구 사상의 완전한 포로가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낙후성이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제도 건설을 완성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 우리가 사회주의 건설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확실히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의문이 생긴다. 복구 시기에 기술 후진국에서 사회주의가 불가능하다는 맑스주의와 레닌주의의 중심 원리를 시험하고 수정할 근거가 제공됐는가?[3]강조는 쓰딸린. (1926년 9월 26일 통제 수치에 관한 공산당 아카데미에서 쓰밀가 연설.)

 

보시다시피, 이도 또한 우리 혁명의 성격과 전망의 근본적인 문제에서 쑤하노프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쓰밀가의 입장이 내가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이라고 정당하게 명명하고 불러 온 뜨로쯔끼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함성: “맞다!”)

 

쓰밀가의 이와 같은 연설에 대해 반대파 블록이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고 해야 합니다. 반대파 블록이 쓰밀가와 선을 긋기 위한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반대로, 반대파 블록은 공산주의 아카데미에서 한 연설에 대해 쓰밀가를 가능한 한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도자 라데크는 쓰밀가와 함께 공산주의 아카데미에서 연설을 하고 우리를 “먼지와 재”로 격하시켰습니다. (웃음.) 라데크가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는 이론을 비웃고 조롱하는 문서가 있습니다. 그는 한 동네에서 또는 심지어 한 거리에서 사회주의 건설 이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청중 속의 동지들이 이 이론은 “레닌의 사상”이라고 말하자 라데크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당신은 레닌을 자세히 읽지 않았다. 블라지미르 일리치(Vladimir Ilyich)가 오늘날 살아 있었다면 그것을 쉐드린(Shchedrin) 사상이라고 했을 것이다. 쉐드린(Shchedrin)의 ≪뽕빠두르 열전(The Pompadours)≫에는 한 동네에서 자유주의를 건설하려는 사상을 가진 독특한 뽕빠두르가 있다. (공산주의 아카데미에서 라데크의 연설.)

 

한 나라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사상에 대한 라데크의 저속하고 자유주의적인 조롱이 레닌주의와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라데크의 비열하고 저속한 행동에 반대파 블록이 책임이 있습니까? 확실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반대파는 이런 저속한 행동과 절연하지 않습니까? 반대파 블록이 레닌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입장을 버릴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6) 우리나라 건설 사업 전망 문제의 결정적 의의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혁명의 성격과 전망에 대한 이 모든 논쟁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미래에 일어날 일이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논쟁하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이 모든 논쟁을 제쳐 두고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동지들,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야 할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시작하여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 없이는, 전망 없이는 건설을 할 수 없습니다. 명확한 전망과 목표가 없으면 당이 건설을 지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베른쉬타인의 “운동이 전부이고 목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처방에 따라 살 수 없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혁명가로서 전진해야 하며 우리의 실천적 사업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건설적 사업의 기본적 계급 목표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확실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기회주의의 수렁에 빠질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나라 건설의 전망이 뚜렷하지 않고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노동 대중이 의식적으로 건설에 참여할 수 없으며 농민을 의식적으로 지도할 수도 없습니다.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사회주의 건설 의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누가 기꺼이 건설에 나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전망의 부재는 그러한 건설에 참여하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지를 필연적으로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약화시킬 것입니다.

더욱이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지가 약해지면 우리 경제의 자본주의적 요소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경제의 자본주의적 요소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회주의 건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노동계급의 비관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정서는 자본주의적 부류들의 구질서를 회복하려는 희망에 불을 붙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건설 사업에 대한 사회주의적 전망의 결정적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우리 경제의 자본주의적 부류에게 조수 노릇을 하게 되고 투항주의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경제의 자본주의적 부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 의지가 약화되어 우리의 사회주의 건설 사업을 방해하게 된다면 모든 나라에서 국제 혁명의 발전을 지연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우리가 이 투쟁에서 승리하고 사회주의를 완전히 건설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 전선에서 우리의 경제 건설 사업과 성과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서방에서 온 수많은 노동자 대표단이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건설의 구석구석을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이는 건설 전선에서 우리의 투쟁이 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국제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건설 사업에 대한 사회주의적 전망을 없애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희망을 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꺾으려는 사람은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의 기본적 요구 사항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레닌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매우 정확합니다.

 

현재 우리는 주로 경제 정책을 사용하여 국제 혁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모든 노동자들은 예외도 과장도 없이 쏘비에트 러시아 공화국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이 세계적 규모에서 변화된 투쟁의 현장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우리는 국제적 규모에서 확실하고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경제 건설 문제는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 전선에서 우리는 천천히 점진적인 방식으로 승리해야 한다. 조급하면 안 된다. 그러나 계속 상승하고 전진해야만 한다.[4]강조는 쓰딸린. (Vol. 26, pp. 410-411 참조.)

 

이것이 내가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논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업 전망, 계급적 목표, 당면 기간의 기본 노선 등에 대한 문제가 모두 이 논쟁에서 해결되고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건설 사업에서 사회주의적 전망에 대한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7) 반대파 블록의 정치적 전망

반대파 블록의 정치적 전망은 우리 혁명의 성격과 전망에 관한 그들의 기본적인 오류에서 비롯됩니다.

국제 혁명이 지연되고 있는데 반대파는 우리 혁명의 내부 역량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반대파는 다음 두 가지 전망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는 당과 국가 기관이 타락하였고, 정권으로부터 공산주의의 “우수 분자들”(즉, 반대파)이 사실상 이탈하였기 때문에, 관료적이고 “순수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트 당에 반대하는 입장의 새로운 “순수한 프롤레타리아트” 정당을 결성하자는 것입니다(오쏘프쓰끼(Ossovsky)의 전망).

 

다른 하나는 자신의 조바심을 현실인 양 속이려 하고 자본주의의 부분적 안정화를 부정하면서, “초인적으로” 그리고 “영웅적으로” 도약하여 국내 정책(초공업화)과 외교 정책 둘 다를 향해 돌격하자는 것입니다(“극좌파” 문구와 제스처).

나는 모든 반대파 중에서 오쏘프쓰끼가 가장 대담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대파 블록이 용감하고 일관적이라면 오쏘프쓰끼의 노선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일관성과 용기가 모두 부족한 반대파는 두 번째 전망, 즉 “초인적인” 도약의 경로와 사건의 객관적인 과정을 향해 “영웅적인” 돌격의 경로를 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반대파는 자본주의의 부분적 안정화를 부정하고, 서방의 노동조합에 대해 거리를 두거나 심지어는 탈퇴하고, 영-러 위원회는 해체하며, 불과 6개월 안에 우리나라를 공업화해야 한다는 등등을 요구합니다.

결국 반대파 블록의 모험주의 정책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반대파 블록의 이론(즉, 뜨로쯔끼주의 이론)이 특히 중요합니다. 이 이론은 우리나라의 공업화에서는 농민을 도외시하고, 서구에서는 특히 영국의 파업과 관련하여 노동조합의 반동적 성격을 간과합니다.

반대파 블록은 당이 올바른 노선을 마련하기만 하면 당은 지체 없이 즉각 대중 정당이 되며, 당은 지체 없이 즉각 대중을 결전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파 블록은 대중을 지도하는 문제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레닌주의적 관점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1917년 봄에 발표된 쏘비에트 혁명에 관한 레닌의 “4월 테제”가 맞습니까?[5]V. I. Lenin, Works (4th Russ. ed.), Vol. 24, pp. 1-7 참조. 예, 맞습니다. 그렇다면 왜 레닌은 당시 께렌쓰끼 정부의 즉각적인 전복을 촉구하지 않았습니까? 왜 임시 정부의 즉각 전복 구호를 내세운 우리 당의 “극좌파” 집단과 싸웠습니까? 레닌은 혁명을 수행하기 위해 올바른 당 노선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닌은 혁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상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노동자의 광범위한 대중이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당의 노선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결국 시간이 필요하고, 인민대중 속에서 당의 지칠 줄 모르는 사업, 당 노선이 옳다는 것을 인민대중에게 확신시키는 지칠 줄 모르는 사업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혁명적인 “4월 테제”를 발표함과 동시에, 레닌은 테제의 올바름을 대중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대중들 사이에서 인내심 있게 선전할 슬로건을 제시했습니다. 이 인내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데 8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혁명적인 8개월이었고, 적어도 일상적 “헌정” 기간의 몇 년에 해당했습니다. 우리가 10월 혁명에서 승리한 것은 당 노선이 올바르다는 것과 대중이 이 노선의 올바름을 인식하는 것을 구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초인적으로” 도약하려는 반대파 영웅들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고도 않습니다.

영국 파업 당시 영국 공산당의 입장이 옳았습니까? 예, 기본적으로 옳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영국 공산당은 대다수 영국 노동자들이 즉시 따르도록 이끌지 못했습니까? 왜냐하면 대중에게 노선의 올바름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었기에 성공하지 못했고, 성공할 수도 없었습니다. 당의 올바른 노선을 정하는 것과 대다수 대중이 이 노선을 따르는 것 사이에는 다소 긴 시간 간격이 있습니다. 이 기간은 당이 대중에게 당 정책의 올바름을 끈질기게 설득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이 간격은 건너뛸 수 없습니다. 건너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간격은 대중 정치 교육을 끈기 있게 해야만 단축하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인민대중에 대한 레닌주의 지도력의 이러한 기본적인 진리를 반대파 블록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반대파가 정치적 오류에 빠지는 근원 중 하나입니다.

다음은 뜨로쯔끼의 “초인적” 도약과 막나가는 위세를 부린 수많은 정책 중 하나입니다. 뜨로쯔끼는 말합니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만약 우리나라 부르주아 혁명 정세에서 일시적인 위기의 결과로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면, 전 세계 반동 세력의 조직적 적대 행위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적 지원 결의에 마주할 것이다. 자신의 역량에만 의지한다면, 러시아 노동계급은 농민이 돌아서는 순간 반혁명 세력에 의해 짓밟힐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정치적 지배의 운명, 즉 전체 러시아 혁명의 운명을 유럽의 사회주의 혁명의 운명과 연결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 부르주아 혁명 정세의 일시적인 위기에 의해 주어진 거대한 국가적 정치적 권력은 전체 자본주의 세계 계급 투쟁의 운명에 좌우될 것이다. 국가 권력을 손에 쥐고, 배후에서는 반혁명 세력에 맞서, 최전선에서는 유럽 반동 세력에 맞서, 전 세계의 형제들에게 오래된 전투 구호를 외칠 것이다. 이번에는 마지막 공격 외침이 될 것이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뜨로쯔끼, ≪회고와 전망≫, p. 80.)

 

어떻습니까? 프롤레타리아는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아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권력을 잡고 나면 농민과 싸우고, 농민과 싸우고 나면 배후의 반혁명 세력과 최전선의 유럽 반동 세력을 앞세운 세계 부르주아와의 절망적인 충돌에 내몰릴 것입니다.

뜨로쯔끼의 이 “계획”에는 “음악적”, “초인적” 및 “웅장하기 짝이 없는” 문구가 꽤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맑스주의적인 것도 혁명적인 것도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혁명에 관한 공허한 연주와 침로에서 빗나간 정치적 모험주의뿐입니다.

그러나 뜨로쯔끼의 이 “계획”이 반대파 블록의 현 정치 전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운동 형태를 “건너뛰는” 뜨로쯔끼 이론의 결과이자 결실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3. 반대파 블록의 정치적ㆍ조직적 오류

 

반대파 블록의 정치적ㆍ조직적 오류는 우리 혁명의 성격과 전망이라는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주요 오류의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반대파의 정치적ㆍ조직적 오류에 대해 말할 때, 나는 경제 건설 사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문제, 공업화 문제, 당 기구 및 당내의 “제도” 와 같은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당의 일반 정책은, 특히 경제 정책은 공업과 농업을 분리할 수 없으며, 사회주의 경제에서 이 두 가지 기본 부문의 발전은 결합, 통합하는 노선을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로부터 우리의 방식, 즉 기본 농민 대중을 포함한 노동 대중의 생활 수준을 지속적으로 개선함으로써 실현되는 국가의 사회주의적 공업화 방식이 공업화 진전의 주요 기반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공업화 방법으로, 자본주의적 공업화 방법과는 반대입니다. 자본주의적 공업화는 인구의 방대한 노동 대중을 궁핍하게 만든 결과입니다.

자본주의적 공업화 방법의 주요 결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공업화의 이익과 노동 대중의 이익이 상충되고, 국가 내부 모순이 격화되며, 노동자 농민의 방대한 대중을 궁핍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윤을 국내 인민대중의 생활 수준과 문화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 수출과 국내외에서 자본주의적 착취의 기반을 확장하는 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적 공업화 방식의 주된 장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공업화의 이익을 인구 중 노동계급 기본 대중의 이익에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즉 광대한 대중을 궁핍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고, 내적 모순을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화하고 극복하여 내수 시장을 꾸준히 확대하고 내수 시장의 역량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공업화 진전을 위한 견고한 국내 기반을 구축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농민 대중은 사회주의 공업화 방법에 직접적인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일반적으로는 사회주의 건설 전체에서 구체적으로는 국가 공업화에서 농민에 대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도력을 발휘할 가능성과 필요성이 발생합니다.

이로부터 사회주의 공업과 농민 경제 간의 결합이라는 사상(주로 협동조합에서 농민의 대중적 조직화를 통해)과 공업이 농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사상이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조세 정책, 공산품 가격 인하 정책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경제 협력을 유지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동맹을 강화할 필요성을 고려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반대파는 공업과 농업을 대립시키고 공업과 농업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농업의 이익을 무시하거나 침해하면 공업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공업이 국민 경제의 주역이지만 농업은 우리 공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농민 경제를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착취”해야 하는 “식민지”로 보는 견해가 나옵니다(쁘레오브라줸쓰끼(Preobrazhensky)).

이로부터 풍작에 대한 두려움도 생겨납니다(뜨로쯔끼). 풍작이 우리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반대파 블록의 독특한 정책이 나왔고, 이러한 정책은 공업과 농업 간의 내부 모순을 첨예화시키고, 자본주의적 국가 공업화 방식으로 나아갑니다.

예를 들어 반대파 블록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쁘레오브라줸쓰끼의 말을 듣고 싶습니까? 여기 그가 말하는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사회주의 생산 조직으로 이행하고 있는 나라가 경제적으로 후진적이고 소생산적 즉 농민적 성격이 강하면 강할수록 … 이런 나라는 사회주의적 축적을 위해서 사회주의 이전 경제 형태에 대한 착취에 더욱더 의존하게 된다. 반대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한 나라가 경제적 공업적으로 선진적이면 선진적일수록 … 그리고 이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이 나라 생산물과 식민지 생산물의 교환에서 불평등을 줄일 필요성, 즉 식민지에 대한 착취를 줄일 필요성을 인식하면 할수록, 이 나라는 사회주의적 축적을 위해서 사회주의 형태의 생산 기초에, 즉 국내 공업과 국내 농업의 잉여생산에 더욱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쁘레오브라줸쓰끼의 “사회주의 축적의 기본 법칙”, ≪공산주의 과학 아카데미 회보(Vestnik Komakademii)≫, No. 8, 1924.)

 

쁘레오브라줸쓰끼가 우리나라에서 공업의 이익과 농민 경제의 이익을 타협할 수 없는 모순으로 간주하고, 그래서 자본주의적 공업화 방법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거의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쁘레오브라줸쓰끼가 농민 경제를 식민지에 비유하고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 사이의 관계를 착취 형태로 만들려는 시도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회주의 공업화의 모든 가능성을 파괴하고 있거나 파괴하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정책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경제 협력을 공업화의 기반으로 삼는 당 정책과 완전히 상충됨을 단언합니다.

뜨로쯔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거의 동일합니다. 뜨로쯔끼는 “풍작”을 두려워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4월 전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뜨로쯔끼는 현재의 불균형 상태를 언급하고 있음: 쓰딸린], 풍작, 즉 농업 상품 잉여의 잠재적인 증가는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경제 발전 속도를 가속화하는 데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다. 도시와 국가, 그리고 도시 내에서 소비자와 국가 사이의 상호 관계를 악화시킴으로써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현실적으로 말해서, 공산품 공급이 부족한 상태에서 풍작을 거둔다면 곡물을 증류시키는 밀주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고 도시에서는 (곡물 구매를 위한) 더 긴 대기 줄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적 말하면 풍작이란 대외 무역 독점, 즉 사회주의 공업에 대한 농민의 투쟁을 의미할 것이다.[6]강조는 쓰딸린. (중앙위원회 4월 전원회의 속기록, 릐꼬프의 결의안 초안에 대한 뜨로쯔끼의 수정안, p. 164.)

 

뜨로쯔끼 동지의 이 터무니없는 발언과 레닌 동지가 상품 결핍이 가장 심했던 시기에 풍작은 “나라의 구세주”[7]V. I. Lenin, Works (4th Russ. ed.), Vol. 32, p. 204.라고 한 발언을 비교해 보기만 하면 뜨로쯔끼의 발언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뜨로쯔끼는 우리나라 공업화가 농촌 노동 대중의 생활 수준을 점진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테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뜨로쯔끼는 우리나라의 공업화가 이른바 “흉작”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이로부터 공장 출고가는 인상되어야 하고, 농민에게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어야 한다는 구체적 제안이 나왔습니다. 이 제안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 사이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와해시키고, 경제 건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를 위한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공업과 농민 경제 사이의 결합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하는 것입니다.

이제 농민 분화에 대해 간단히 몇 마디 하겠습니다. 알다시피 농민 분화가 성숙하자 반대파는 어쩔 줄 몰라 야단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농촌에서 소자산가의 성장에 반대파만큼 낙담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어떻습니까? 실제 상황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로,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농민 분화가 매우 독특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중농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양극단은 상당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욱이 토지 국유화, 협동조합을 통한 광범위한 조직화, 우리의 조세 정책 등과 같은 요인들로 인해 농민 분화 그 자체에 명확한 범위와 한계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그리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농촌의 소규모 사적 자본의 성장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공업 발전은 이런 농촌의 균형을 결정적으로 압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와 사회주의적 경제 형태를 강화하며, 모든 형태의 사적 자본에 대한 주요한 해독제가 됩니다.

 

“신반대파”는 이 모든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입니다. 이들은 여전히 농촌의 사적 자본에 대해 당황하여 습관적으로 야단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반대파에게 이 문제에 대한 레닌의 말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마도 쓸데없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레닌 동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규모 생산 조건이 향상될 때마다, 몇몇 대공장의 가동이 가능해질 때마다, 그만큼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는 강화한다. 따라서 소부르주아 계급의 자생적 세력이 성장하더라도 두려워할 근거는 전혀 없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소부르주아지와 소자본의 성장이 아니다. 두려운 것은 극심한 굶주림, 결핍, 공산품 부족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며, 동요하고 절망하는 자생적인 소부르주아지 세력에 대항할 수 없게 한다. 이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곡물의 양이 늘어나면 소부르주아지는 아무리 발전해도 큰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부르주아지가 성장하는 만큼 대규모 공업의 발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Vol. 26, p. 256 참조.)

 

농촌의 분화와 사적 자본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 가능성에 대한 불신의 이면이라는 것을 반대파는 언제쯤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이제 당 기관과 당내 “제도”에 반대하는 반대파의 투쟁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 당의 지도 핵심인 당 기관에 대한 반대파의 투쟁이 갖는 실제 목적은 무엇입니까? 증명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당의 지도력을 약화시키고 당을 무장 해제시키려는 시도입니다. 결국 당이 국가 기관을 개선하고 관료주의를 근절하며 국가 기관을 지도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당내 “제도”에 맞서는 반대파의 투쟁은 어떤 결과를 낳겠습니까? 그것은 당내 철의 규율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철의 규율이 없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토대를 흔드는 것입니다.

 

당은 반대파의 정치적ㆍ조직적 오류는 우리 당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공격하는 비프롤레타리아 요소의 반영이라고 단언했고 이는 올바른 것입니다.

 

동지들, 이러한 것들이 반대파의 정치적ㆍ조직적 오류입니다.

 

 

4. 몇 가지 결론

 

최근 뜨로쯔끼는 중앙위원회와 중앙감찰위원회 전원회의[8]1926년 10월 23일과 26일에 열린 쏘련 공산당(볼) 중앙위원회와 중앙감찰위원회 합동 전원회의를 말한다. 본회의에서는 제15차 전 연방 대표자회에 … Continue reading에서 당 대표자회가 반대파에 대한 테제를 채택할 경우 불가피하게 반대파 지도자들에 대한 축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지들, 뜨로쯔끼의 이 진술은 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입니다. 나는 반대파 블록에 대한 테제를 채택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목적만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것은 반대파의 원칙에서 벗어난 오류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반대파의 오류에 맞서 단호한 투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리 당의 제10차 대회는 무정부적 생디칼리스트 경향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9]≪쏘련 공산당 당 대회, 대표자회 및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의 및 결정≫ 제1권, 1953, pp. 530-533 참조. 그런데 무정부적 생디칼리스트의 일탈은 무엇입니까? 아무도 무정부적 생디칼리스트의 일탈이 사회민주주의적 일탈보다 “더 낫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정부적 생디칼리스트의 일탈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는 사실로부터 “노동자 반대파” 당원들을 당에서 축출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린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뜨로쯔끼는 우리 당 제13차 대회에서 뜨로쯔끼주의를 노골적인 소부르주아적 일탈이라고 선언했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그 결의안의 채택으로 당에서 뜨로쯔끼주의 반대파 지도자들을 반드시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습니다.

 

다음은 제13차 당 대회 결의안의 관련 구절입니다.

 

현재의 ‘반대파’는 볼쉐비끼주의를 수정하려는 시도와 레닌주의로부터의 직접적인 이탈일 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소부르주아적 일탈이다.[10]강조는 쓰딸린. 이 ‘반대파’가 프롤레타리아 당의 입장과 정책에 대한 소부르주아지의 공격을 객관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13차 당 대회 결의에서.)

 

소부르주아적 일탈이 사회민주주의적 일탈보다 어떤 면에서 더 나은지는 뜨로쯔끼가 말하게 합시다.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이 소부르주아적 일탈의 변형이라는 것을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우리가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에 대해 말할 때 제13차 당 대회 결의에서 말한 것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우리는 반대파 블록의 지도자들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는 결코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만 반대파 블록이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을 보이고 있고, 이 일탈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경고하고 그렇게 할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1925년 1월의 중앙위원회와 중앙감찰위원회의 뜨로쯔끼주의에 대한 결의안[11]1925년 1월 17일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볼)와 중앙감찰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통과된 결의안을 말한다. 결의안은 뜨로쯔끼의 행동과 관련하여 지방 … Continue reading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뜨로쯔끼주의는 ‘유럽’형 사이비 맑스주의와 유사한 성격, 즉 결국 ‘유럽’ 사회민주주의 성격에 맞게 공산주의를 왜곡한 것이다. (1925년 1월 17일 중앙위원회와 중앙감찰위원회 전원회의 결의에서.)

 

이 두 가지 결의안은 모두 기본적으로 지노비예프가 초안을 작성한 것임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당 전체만이 아니라 특히 지노비예프도 뜨로쯔끼주의 반대파 지도자들을 당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굳이 까메네프가 뜨로쯔끼주의를 멘쉐비끼주의와 동일시한 것을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들어 봅시다.

 

뜨로쯔끼주의는 항상 가장 그럴듯하고 가장 치밀하게 위장한 멘쉐비끼주의의 형태로, 혁명적 성향을 가진 노동자를 속이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까메네프의 논문 “당과 뜨로쯔끼주의”, ≪레닌주의를 위하여≫ 심포지엄, p. 51.)

 

이 모든 사실을 뜨로쯔끼는 우리 중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아무도 제13차 당 대회 결의안을 근거로 뜨로쯔끼와 그의 추종자들을 축출하자고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중앙위원회와 중앙감찰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뜨로쯔끼의 발언은 정직하지 못하고 잘못입니다.

 

중앙위원회와 중앙감찰위원회 10월 전원회의는 반대파 블록에 대한 테제를 기본적으로 승인한 바 있는데, 이들이 염두에 둔 것은 억압적인 조치가 아니라 반대파의 원칙적 오류에 대한 사상 투쟁의 필요성이었습니다. 반대파는 아직 원칙적 오류를 포기하지 않고, 이를 방어하려고 하며, 10월 16일 자 성명에서 당규의 틀 내에서 앞으로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하여 중앙위원회와 중앙감찰위원회 전원회의가 취한 출발점은 반대파의 원칙적 오류에 맞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는 것만이 당내에서 참된 단결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반대파 블록에 승리하고 파벌 활동을 포기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당은 당내 통합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확보했습니다. 물론 이 성과는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단결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대파 블록이 원칙적 오류를 포기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공격과 수정으로부터 당과 레닌주의를 방어해야 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결론입니다.

 

당원 대중은 반대파 블록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새로운 분쟁을 도발하려는 시도를 제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은 공허한 말을 할 때가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이것으로부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공리공담을 줄이고, 창조적이고 활동적으로 일하며,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전진하자!

 

이것이 두 번째 결론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결론은 당내 투쟁 과정과 반대파의 당에 대한 공격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당은 우리의 건설 사업에 대한 사회주의적 전망에 기초하여 그 어느 때보다 확고히 단결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결론입니다.

 

우리나라 사회주의 건설 사업의 전망을 기초로 한 당의 단결은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건설을 전진시키기 위하여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렛대입니다.

 

이 지렛대는 반대파 블록과의 투쟁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반대파 블록과의 투쟁은 우리나라 사회주의 건설 사업의 전망에 기초하여 당 중앙위원회를 중심으로 당을 단결시켰습니다. 대표자회는 내가 바라는 대로 중앙위원회가 제출한 테제를 만장일치로 채택함으로써 이 통일성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대표자회가 명예롭게 그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긴 박수 끝에 모든 대표자들이 일어서서 환호했다.)

 

1926년 11월 1일

 

1926년 11월 5일과 6일 자

≪쁘라브다≫ 제256와 제257호에 실려 있다.

노사과연

 

 

표도르 빠블로비치 레쉐뜨니꼬프, ≪위대한 맹세≫, 1949.
(1924년 1월 26일, 제2차 전 연방 쏘비에트 대회에서
쓰딸린이 연설하는 모습이다.)

 

References

References
1, 2, 3, 4, 6, 10 강조는 쓰딸린.
5 V. I. Lenin, Works (4th Russ. ed.), Vol. 24, pp. 1-7 참조.
7 V. I. Lenin, Works (4th Russ. ed.), Vol. 32, p. 204.
8 1926년 10월 23일과 26일에 열린 쏘련 공산당(볼) 중앙위원회와 중앙감찰위원회 합동 전원회의를 말한다. 본회의에서는 제15차 전 연방 대표자회에 상정된 쩨르쥔쓰끼(Dzerzhinsky) 사후 중앙위원회 공석을 메우는 문제, 당 제15차 전 연방 대표자회에서 토론을 위해 제출된 문제들이 논의되었다. 쏘련 공산당(볼) 중앙위원회와 중앙감찰위원회의 7월 합동 전원회의 이후 뜨로쯔끼-지노비예프 반대파 블록의 파벌 활동에 대한 중앙정치국의 10월 4일 결정에 관련한 중앙정치국과 중앙감찰위원회의 보고가 있었고, 쓰딸린의 테제 “공산당(볼)의 반대파 동맹에 관하여”가 논의되었다. 10월 26일 쓰딸린은 본회의에서 이 테제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9 ≪쏘련 공산당 당 대회, 대표자회 및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의 및 결정≫ 제1권, 1953, pp. 530-533 참조.
11 1925년 1월 17일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볼)와 중앙감찰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통과된 결의안을 말한다. 결의안은 뜨로쯔끼의 행동과 관련하여 지방 당 조직의 결의를 근거로 쓰딸린이 보고한 내용에 따라 채택되었다. (≪쏘련 공산당 당 대회, 대표자회 및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의 및 결정≫ 제1권, 1953, pp. 913-921 및 쓰딸린, ≪전집≫ 제7권, pp. 6-10 참조.)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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