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왜 사회민주당은 사회혁명당에 단호하고 가차 없는 투쟁을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V. I. 레닌(В. И. Ленин)

번역: 채만수(소장)

 

* [역주] W. I. Lenin Werke, Band 6, Berlin: Dietz Verlag, 1975, S. 164-167을 대본으로 번역하되, Lenin Collected Works, Vol. 6, Moscow: Progress Publishers, 1977, pp. 170-173.; ≪レ-ニン全集≫ 第6卷, 東京: 大月書店, 1972, pp. 171-174.; 김탁 옮김, ≪레닌저작집≫ 2-1, 전진, 1988, pp. 159-162를 참조하였다. 참고로, 이 글이 집필될 당시의 사회민주주의 혹은 사회민주당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에 즈음하여 독점자본가계급의 좌익으로 전락한 오늘날의 그것이 아니라, 그 전의 그것, 즉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사상과 혁명적 정치 조직이었다.

 

 

1. 왜냐하면, 우리의 사회사상에서 “사회혁명당”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조류(潮流)는, 실제로는, 오늘날 존재하는 유일한 국제적인 혁명적 사회주의 이론, 즉 맑스주의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이미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민주주의가 기회주의적 (혹은 “베른쉬타인적”) 진영과 혁명적 진영으로 크게 분열될 때에 이 조류는 두 진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완전히 애매모호하고, 용납할 수 없이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해 왔다. 이 조류는, 맑스주의에 대한 전적으로 부르주아적ㆍ기회주의적 비판에 근거하여, 맑스주의가 “동요”되었다고 선언하며(≪붸쓰뜨닉 루쓰꼬이 뤠볼루치≫, 제2호, p. 62), 자신들이 맑스주의를 새롭게 그리고 자기 나름으로 “수정”하겠다고 예고했지만, 이 위협적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2. 왜냐하면, 사회혁명당적 조류는, 자유주의적 인민주의 사상[=나로드니끼주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되는, 러시아의 사회적ㆍ정치적 사상의 지배적 조류에 속수무책으로 굴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의 의지(나로드나야 볼가)”[1][Werke 편집부 후주] “인민의 의지(나로드나야 볼가)” ― 민중 조직 “제믈야 이 볼야(토지와 자유)”가 분열한 결과 1879년 8월에 생겨나, 그 … Continue reading의, 그리고 러시아의 모든 낡은 사회주의 일반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사회혁명당은 이 경향이 얼마나 완전히 썩었고 내적으로 모순투성이인가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혁명사상에 대한 자신들의 독자적인 기여를 자유주의적 인민주의의 현인(賢人)의 낡은 유언장에 단순히 혁명적 상투어를 첨가하는 것에 한정하고 있다. 러시아 맑스주의가 최초로 자유주의적 인민주의 경향의 이론적 초석을 흔들었고, 그 부르주아적이고 소부르주아적인 계급적 내용을 폭로했으며, 그에 대한 전쟁을 벌여 왔고, 비판적(=기회주의적) 맑스주의자들 무리 전체가 적의 진영으로 넘어가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아직도 계속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전쟁 전체 속에서의 사회혁명당의 자세는 (기껏해야) 적대적으로 중립적인 것이었고, 또한 그러한 것이지만, 다시금 그들은 ―러시아 맑스주의(이로부터 그들은 미숙한 파편들만을 차용했을 뿐이다)와 사이비 사회주의적인 자유주의적 인민주의 경향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앉아 있다.

3. 왜냐하면, 사회혁명당은, 국제 사회주의 및 러시아 사회주의의 문제들에서의 그들의 위에 언급한 완전한 무원칙 때문에, 계급 투쟁의 유일한, 실제로 혁명적인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를, 발전하고 있는 러시아 자본주의가 갈수록 강력하게 갈수록 거대한 규모로 불러일으키고 있는 러시아 노동자계급 운동과 융합시키는 정당만이 실제로 혁명적일 수 있고 참으로 사회주의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노동자계급 운동에 대한 사회혁명당의 태도는 언제나 방관자적ㆍ호사가적인 것이었고, 예컨대, 이 운동이 (놀랍도록 급속한 성장 때문에) “경제주의”라는 병에 걸렸을 때, 사회혁명당은, 한편에서는 노동자 대중을 일깨운다고 하는 새롭고 힘든 작업을 하던 사람들의 오류를 고소해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 경제주의와 투쟁하여 승리를 거두고 있던 혁명적 맑스주의에 훼방을 놓았다. 노동자계급 운동에 대한 우유부단한 태도는 불가피하게 노동자계급 운동으로부터의 사실상의 고립(Isolierung)을 초래하고 있고, 이 고립 때문에 사회혁명당은 어떤 사회적 기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어떤 단 하나의 사회 계급에도 의거(依據)하고 있지 않은바, 왜냐하면 자신들의 모호함과 무원칙을 “아량”이라고 말하는 동요하는 지식인 집단을 계급이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4. 왜냐하면,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경시하며, 지식인ㆍ프롤레타리아트ㆍ농민에 동시에 그리고 같은 정도로 의거하고자 하는 사회혁명당은,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가피하게 러시아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의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예속화의 길을 닦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의 경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피적이고 동요하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이롭게 한다. 러시아 지식인과 러시아 농민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대치(對峙)되는 사회 계층들로서는, 단지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의 지주(支柱)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단지 우리의 학설 전체로부터 필연적으로 밝혀지는 판단(Erwägung)만은 아니다(우리의 학설 전체에 의하면, 예컨대, 소생산자는 그가 상품경제 사회 및 자본주의 사회와 결정적으로 관계를 끊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에 서는 한에서만 혁명적이다). ― 그렇지 않고, 그것은 또한 지금 이미 입증되기 시작한 엄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치적 변혁의 순간에는 그리고 그 변혁의 다음 날에는 이 사실이 필연적으로 훨씬 더 힘차게 입증될 것이다. 사회혁명주의란 저 소부르주아적인 이데올로기의 동요의, 그리고 사회주의의 소부르주아적인 천박화의 현상 형태의 하나인바, 사회민주당은 그것과 언제나 단호한 투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벌일 것이다.

5. 왜냐하면, 이러한 경향의 무원칙성이 얼마나 엄청난 해악을 삶에 야기하고 있는가를, 사회혁명당이 이미 ―내세웠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모해 온 실천적ㆍ강령적 요구들이 벌써 아주 명백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뤠볼루치오나야 로씨야(혁명적 러시아)≫[2][Collected Works 편집부 후주] ≪뤠볼루치오나야 로씨야(혁명적 러시아)≫ ― 사회혁명당의 비합법 신문. 사회혁명가동맹에 의해서 1900년 말부터 … Continue reading 제8호에 기안(起案)되어 있는 (‘우리 인민주의[Volkstümerrichtung; Narodism]의 진부한 명제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하지 않을까?) 최소 농업 강령은, 첫째로, 농민에게는 토지의 사회화라는 “최소한”을 약속하고, 노동자계급에게는 농민 운동의 실제의 성격에 관한 완전히 그릇된 심상(心想)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농민도 노동자계급도 모두 오도하고 있다. 그렇게 경박한 약속들은 단지 혁명 정당 일반을, 그리고 특히 우리의 궁극적 목표로서의 모든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과학적 사회주의의 교의를 웃음거리로 만들 뿐이다. 둘째로, 사회혁명당은, 그들의 최소 강령 속에 협동조합의 지원과 발전을 포함시킴으로써, 혁명 투쟁의 기반을 완전히 포기하고, 그들의 이른바 사회주의를 전적으로 평범한 소부르주아적 개량주의라는 저급한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셋째로, 사회혁명당은, 우리의 촌락 공동체를 속박하고, 농민을 그의 분할지에 긴박(緊縛)하며, 그로부터 거주ㆍ이전의 자유를 빼앗아, 필연적으로 그의 신분적 굴욕을 야기하는 모든 중세적 질곡을 제거하려는 사회민주당의 요구를 반대함으로써, 그들은 러시아 인민주의의 반동적 교의 앞에서 자기 자신들조차 지킬 줄 몰랐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

6. 왜냐하면, 사회혁명당은, 그들의 강령 속에 테러를 포함시키고 현대적 형태의 그것을 정치 투쟁의 수단으로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럼으로써 사회주의적 활동과 혁명적 계급 대중 사이의 확고부동한 결합을 파괴하고, 그리하여 운동에 극히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장황한 확언과 맹세도 의심할 나위 없이 엄연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반증할 수 없다. 즉, 오늘날 사회혁명당이 실행하며 선전하고 있는 테러는, 대중 속에서, 대중을 위하여, 그리고 대중과 더불어 하는 활동과는 결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것, 당이 테러 행위들을 조직하는 것은, 수적으로 대단히 적은 우리의 조직력을, 혁명적 노동자당을 조직한다고 하는, 그들의 어렵고 아직 현저히 완수되지 못한 임무로부터 딴 데로 돌린다는 것, 사회혁명당의 테러는 실제로는 역사적 경험이 완전히 배척한 결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심지어 외국의 사회주의자들조차 지금 우리의 사회혁명당이 전개하고 있는 호객상인적인 테러 선전에 대해 불안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노동자 대중 속에 이 선전은, 테러는 “사람들로 하여금 심지어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정치적으로 사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뤠볼루치오나야 로씨야≫ 제7호, p. 4)는 식의, 테러는 “수개월에 걸친 구두선전(口頭宣傳)보다도 더 확실하게, 혁명가들과 그들의 활동의 의미(!!)에 대한 수천 명의 사람들의 … 견해를 바꿀 수 있다”는 식의, 테러는 “동요하는 사람들, 낙담한 사람들, 수많은 시위의 참담한 결말에 의해서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같은 곳) 수 있을 것이라는 등등의 식의, 아주 해로운 환상을 심고 있다. 이러한 해로운 환상들은 성급한 환멸을 초래할 수 있을 뿐이고, 대중이 전제(專制)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는 것을 약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1902년 6월 말-7월에 집필

1923년에 잡지 ≪쁘로줵또르(탐조등)≫ 제14호에

최초로 발표

원고에 따라서 인쇄

노사과연

 

뾰뜨르 꼰쓰딴찌노비치 바씰리예프, ≪레닌≫

 

References

References
1 [Werke 편집부 후주] “인민의 의지(나로드나야 볼가)” ― 민중 조직 “제믈야 이 볼야(토지와 자유)”가 분열한 결과 1879년 8월에 생겨나, 그 구성원들이 개인적 테러 전술을 지지했던 정치적 비밀 조직.

“나로드나야 볼가”의 구성원에 의한 짜르 알렉싼드르 2세의 암살(1881년 3월 1일[13일: 신력]) 직후 이 조직은 짜르 정부에 의해서 섬멸되었다. 레닌은 이들의 그릇된, 유토피아적 강령과 개인적 테러 전술은 비판했지만, “노로드나야 볼가” 구성원들이 짜르의 전제 정치에 대항하여 벌였던 헌신적 투쟁은 높이 평가했다. 그들의 은밀한 수완과 그들의 엄격하게 중앙 집중적인 조직에 거대한 가치를 부여했다.

2 [Collected Works 편집부 후주] ≪뤠볼루치오나야 로씨야(혁명적 러시아)≫ ― 사회혁명당의 비합법 신문. 사회혁명가동맹에 의해서 1900년 말부터 (1900년으로 기재되어 있는 제1호는 실제로는 1901년 1월에 발간되었다) 러시아에서 발행되었고, 1902년 1월부터 1905년 12월까지는 사회혁명당의 공식 기관지로서 해외(제네바)에서 발행되었다.

채만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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