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특집: 쏘련 사회주의에 대하여] 러시아에는 계획이 있다

― 장상환 교수가 “번역에서 제외”한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의 제21장

 

리오 휴버먼(Leo Huberman)

번역: 임장표(회원)

 

* 이 글은,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장상환 역, 책벌레, 2000에서 누락된 제21장 “RUSSIA HAS A PLAN”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책의 초판은 1936년 Monthly Review Press에서 출판되었는데, 여기서는, 1945년 영국 Victor Gollancz Ltd에서 출판한 것을 대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Leo Huberman, Mans Worldly GoodsThe Story of The Wealth of Nations, London: Victor Gollancz Ltd, 1945.

 

 

19세기가 끝나기 17년 전, 맑스는 별세했다. 20세기가 시작하고 17년 후, 맑스는 다시 살아났다. 맑스의 이론은 그의 제자들―레닌과 러시아 볼쉐비끼―에 의해 실천으로, 1917년 권력 장악으로 이어졌다. 1917년 전, 맑스의 가르침은 오직 소규모의 추종자들에게만 친숙했지만, 1917년 후에는 맑스의 가르침이 전 세계의 각광을 받게 되었다. 1917년 전,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새롭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것을 약속만 할 수 있었지만, 1917년 후, 공산주의자들은 이제 지구 면적 1/6을 가리키면서 “여기 있어. 한번 봐봐. 제대로 굴러가잖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볼쉐비끼는 애당초 어떻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어떤 조건들이 마련되었기에 혁명이 가능했을까? 우리가 알 수 있는 확실한 하나의 사실은 바로 혁명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며, 아무나, 어디에서나, 어느 때나 할 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혁명은 기술이고, 볼쉐비끼의 지도자인 레닌은 그 중요한 진리를 강조했다.

 

“봉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음모나 당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계급에 의거해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요점이다. [역자: 봉기는 인민의 혁명적 고조에 의거해야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요점이다.] 봉기는 인민대중의 선진 대오의 활동이 고지에 다다르고, 적들의 대오의 동요가, 또 미약하고, 미지근하며, 불철저한 혁명의 벗들이, 가장 강력할 때인 성숙되어 가는 혁명의 역사의 전환점에 의거해야 한다. 이것이 세 번째 요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건들이 이미 존재한다면, 봉기를 기술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맑스주의와 혁명을 배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 내용은 볼쉐비끼가 권력을 장악하기 한 달 전에 쓰였다. 레닌의 지지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레닌이 명시했던 혁명이 성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들에 동의했지만, 정확히 언제 그러한 필수 조건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레닌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바로 이 부분이 레닌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레닌은 언제 조건들이 충분히 성숙했는지, 언제 행동이 성공으로 이어질지, 언제 지연이 패배로 이어질지 체감했다.

 

권력 장악의 전야에 레닌은 적들을 칠 시기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지지자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모든 정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는 10월 7일부터 10월 14일까지 여기저기서 혁명적 행동에 반대하는 각이한 주장들을 분석하는 글인 “볼쉐비끼는 국가 권력을 유지할 것인가?”를 완성했다. 그가 쓴 반대 입장에 대한 답변 중 하나를 보자: “다섯 번째 주장은 바로 정세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볼쉐비끼가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대단하신 현인들! 이들은 아마도 혁명을 견딜 준비는 되어 있지만, ‘매우 복잡한 정세가’ 없는 혁명에 한에서 그러하다. 그러한 혁명은 절대 일어나지 않으며, 그러한 혁명에 대한 갈망 속에는 부르주아 인텔리들의 반동적인 한탄밖에 없다. 설령 정세가 복잡해 보이지 않는 혁명이 시작한다 하더라도, 혁명 자체가 그 발전 과정에서 언제나 매우 복잡한 정세를 출현시킬 것이다. 혁명은, 진정하고 깊은, 맑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민의 혁명’은, 낡은 것이 죽어 가고 새로운 사회 질서가 탄생하는, 수천만의 삶이 뒤바뀌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한 과정이다. 혁명은 가장 첨예하고, 강렬하며, 절박한 계급 투쟁이며 내전이다. 역사상 단 하나의 대혁명도 내전을 피할 수 없었으며, 껍데기 안에 살지 않는 그 누구라도 내전이 ‘매우 복잡한 정세’ 없이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매우 복잡한 정세가 없다면, 혁명 또한 없을 것이다. 늑대가 두렵다면, 숲속으로 들어가지 말라.”

 

이것이야말로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알고 있고 비용까지 계산했으나 두려워하지 않는 혁명주의자의 글, 노동자계급에 의해, 또 노동자계급을 위해 통제되는 사회주의 국가의 목표가 커다란 비용을 지불할 만큼의 값어치가 있다고 믿은 혁명주의자의 글이다. 레닌은 혁명의 기술을 알았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존 리드 같은 훌륭한 기자가 공산주의자들이 새로운 문명이라 일컫는 그것을 불러일으킨 사건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는 데 감사해야 한다. ≪세계를 뒤흔든 열흘≫에서 리드는 러시아의 격변기에 대한 잊지 못할 묘사들을 제공한다. 1917년 11월, 뻬뜨로그라드 쏘비에트 대회의 한 회의에 대한 리드의 묘사를 한번 보자. “이제 레닌은, 책상의 끄트머리를 움켜쥐고, 깜박이는 눈으로 기나긴 연설에 무관심한 군중을 살피며 기다리고 있었다. 연설이 끝났을 때 그는 간결하게 ‘우리는 이제 사회주의 질서 건설을 진행할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이게 1917년에 있었던 일이다. 레닌이 장엄하게 “사회주의 질서”의 건설의 시작을 선포하고 15년이 지난 후, ≪뉴욕 타임스≫ 특파원인 월터 듀란티는 그 질서의 틀이 갖추어졌다고 적었다. “1932년은 혁명의 목표였던 사회주의 질서의 틀이 완성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건축물 자체는 완성에서 거리가 멀지만, 동쪽 하늘을 바라보면 완성된 사회주의의 축조물을 지탱할 철골 구조가 선명히 보인다. 금융, 산업, 교통, 보건, 오락, 미술과 과학, 상업, 농업 ― 국민 생활의 모든 분야가 개인의 이윤을 위한 개인의 노력이 아닌 집단의 이익을 위한 집단의 노력의 임의적인 패턴에 맞도록 변천되었다.”

 

듀란티 박사는 마지막 문장에서 쏘비에트 강령의 본질적 부분을 짚었다. 핵심은 “개인” 대신 “집단”이다. 아마 당신도 칼 맑스의 추종자들이 사회주의 질서를 건설하는 데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생산 수단의 사유 철폐일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당신도 예상했던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 쏘련에서는 토지, 공장, 광산, 제분소, 기계, 은행, 철도 등이 더 이상 개인의 사유 재산이 아니었다. 사실상 이 모든 생산 및 유통 수단이 정부의 손에 집중되어 정부 기관과 정부의 역할을 대임하고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단체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와의 대조를 통해 이러한 변화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러시아인들에 따르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A는 B의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얻을 수 없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노동자들의 등 위에 올라타 화폐 축적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없다. 자동차 제조업자들도 더 이상 신문에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일을 얻을 수 있다고 광고하고 바로 그 다음 날 공장을 폐쇄해 75,000명의 노동자들을 실업으로 몰아넣을 수 없다. 이제 공장은 자동차 제조업자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인민대중 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말하길, 계급 분열 또한 청산되었음을 의미한다 ― 주인과 노동자, 자본가와 무산자, 부자와 빈자의 양극 모두 없어진 것이다. 바로 “수탈자들이 수탈”되었음을 의미한다.

 

1936년 4월 22일, ≪뉴욕 타임스≫ 모쓰끄바 특파원 해럴드 데니는 특전(特電)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이러한 자부심에 찬 자랑을 보도했다.

 

러시아인들이 사회 계급의 종말을 선포하다

 

쏘비에트의 첫 번째 목표가 전반적으로 달성되었음을

안드레예프가 공산주의 청년 동맹에 알리다

 

생산 목표 달성에 다다르다

사적 산업은 올해 연방의 총생산물의 1.5%만 만들 것

 

해럴드 데니

≪뉴욕 타임스≫로 보내는 특전

 

모쓰끄바, 4월 21일 ― 쏘련은 공산주의를 향한 진군에서 첫 번째 목표를 대부분 달성했다.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안드레이 안드레예프는 공산주의 청년 동맹에게 나라의 생산 수단은 대부분 사회화되었으며 계급 분열은 청산되었다고 강조했다.

안드레예프 씨는 올해 쏘련의 총생산물 중 98.5%는 국가가 생산할 것이며, 나머지 1.5%만이 재봉사, 모자 제조자, 제화공 등 사회화되지 않은 소상공인들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안드레예프 씨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소상공인들도 새로 적용되는 금지세로 인해 장사를 접고 있다.

안드레예프 씨는 산업의 사회화와 완전에 가까운 농업 집단화로 사회에는 오직 노동자계급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포했다.

 

쏘련 내 사회화되지 않은 산업이 오직 1.5%! 덧붙여 말하자면 이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자본주의적 산업이 아니다. 여기서는 생산자들이 직접 일을 하기 때문에, 일을 시키기 위해 타인을 고용하지 않는다. 그 외 나라의 모든 생산 기구들은 집단적으로 소유되며, 정부에 의해 관리된다.

 

이제 생산 수단의 소유자로서 쏘련 정부에게 나서는 가장 큰 경제적 문제는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생산될 것이며 누가 생산된 것을 가질 것인지이다. 이는 나라 전체를 위해 결정되어야 하는 문제들이다.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자본가 각자가 자본을 투자하기 전 비슷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디다 투자해야 할까? 자동차 공장에? 철도 건설에? 의류 제작에? 그리고 얼마나 제작하고, 일꾼들에게는 얼마 정도를 줘야 할까? 이러한 백만, 천만번의 사소한 결정이 모여 생산의 총체를 형성한다. 하지만 개별적인 부분들이 모두 들어맞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고, 우리 모두 경험을 통해 몇 년마다 한 번씩 부분들이 들어맞지 않아 붕괴가 일어난다는 것을 안다.

 

사회주의 국가의 정부는 자본가의 위치에 있지만 그 힘은 자본가의 그것에 천배를 곱한 것과 같다 ― 이는 정부가 유일한 자본의 소유자이며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함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정부는 모든 각이한 부분들을, 수많은 복잡하고 다양한 경제 활동들을 하나로 묶어 다른 부분들과 조화를 이루며 맞아떨어지게 해 그 모든 것이 순조롭게 굴러가도록 한다. 이것을 잘하기 위해

 

러시아에게는 계획이 있다.

 

“쏘비에트 공산주의의 모든 경향 중 가장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은 국가의 생산, 분배, 교환에 대한 의도적인 계획이다. 그 계획은 소수를 위한 이윤을 위한 것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소비를 증대하기 위한 것이다…

 

사적 소유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 시장 경쟁 내 생산과 함께, 버려지게 되면 무엇을 어디에서 만들 것인지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집단주의 국가에서는 일정한 기본 계획이 필수적인 것으로 된다.”

 

아마 당신도 러시아의 5개년 계획에 대해 자주 들어 봤을 것이다. 그들은 첫 번째 5개년 계획을 완수한 후, 두 번째 5개년 계획을 시작했다. 러시아가 사회화된 상태로 남아 있는 한, 영원히 그런 식으로 굴러갈 것이다. 시드니와 비어트리스 웹이 위 인용문에서 지적했듯이 집단주의 국가는 계획을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 경제는 필연적으로 계획 경제이다.

 

세상에서 오직 러시아만이 계획 경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계획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면 우리는 러시아 모델을 분석해야만 한다.

 

계획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가 계획을 짜려면, 아니 그 누가 계획을 짜려고 하든지 간에, 두 가지가 필요하다 ― 목적과 방법, 목표와 수단이다. 목표는 계획의 한 부분이고 달성할 방도가 나머지 한 부분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회주의 계획에도 해당된다. 사회주의 계획도 마찬가지로 목표와 수단이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계획의 목표가 자본주의 나라들이 추구하는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웹 부부도 쏘련에 대한 탁월한 연구인 ≪쏘비에트 공산주의: 새로운 문명인가?≫에서 이를 명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장 큰 사기업의 목적도 소유자들이나 주주들을 위한 금전적 이윤이다. …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 쏘련에서는, 계획의 목표가 큰 차이를 보인다. 만족시켜야 하는 소유자들과 주주들은 존재하지 않고 금전적 이윤도 고려되지 않는다. 유일한 목표는 최대한의 안전과 안녕이며,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전체 공동체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것이 전반적인 목표다. 이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요구되는 목표에 맞는 구체적인 정책들이 도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책에는 실현 가능성이 담보돼야 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나라에 대한 정확한 전체적인 그림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이것이 국가계획위원회(Gosplan)의 업무이다.

 

그들의 첫 번째 과제는 쏘련 내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노동 인구는 어느 정도 되는가? 집단 공장의 상태는 어떤가? 천연자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무엇을 했으며,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이용할 수 있나? 무엇이 필요한가?

 

사실. 수치. 통계. 이 모든 것이 산더미만큼 필요하다.

 

쏘비에트 연방의 광활한 영토 내 모든 기관부터, 모든 공장, 농장, 제분소, 광산, 병원, 학교, 연구기관, 노동조합, 협동조합, 극단까지: 이 모든 곳으로부터, 넓고도 넓은 땅의 곳곳으로부터, 작년에는 무엇을 했는가? 금년에는 무엇을 하는가? 내년에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어떤 지원을 필요로 하는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등 수백에 달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나온다.

 

이 모든 정보는 국가계획위원회의 사무실로 쏟아져 들어와 전문가들에 의해 정리되고, 분류되며, 해석된다. “쏘련 국가계획위원회의 모든 직원들은 몇 천 명 가까이 되는 전문 통계학자들과 다양한 분야의 과학 기술자들, 또 수많은 사무 보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가장 잘 구비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통계학적 연구 기계이다.

 

이들 전문가들이 수집된 데이터에 대한 분류, 정리, 확인 업무를 완료하고 나면, 현재 상황에 대한 그림이 그려진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업무 중 한 부분일 뿐이다. 이제 그들은 미래 상황에 대한 문제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계획자들은 정부의 수뇌들과 만나야 한다. “국가계획위원회의 결론과 기획은 정부의 승인의 대상이고, 계획의 역할은 지도의 역할과 분리되어 있으며, 후자는 전자에 복속되지 않는다.”

계획은 당연히 계획이 실행해야 하는 정책 결정에 대한 필요성을 없애지 않는다. 정책은 정부의 수뇌들에 의해 결정되며, 계획자들의 업무는 그들이 파악해 놓은 것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결정된 정책들을 실행할 것이냐이다. 국가계획위원회와 지도자들의 상의를 통해 완성된 계획의 초안이 완성된다.

 

하지만 오직 초안만이 완성되었을 뿐이다. 이는 아직 완성된 계획이 아니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에서는 전문가들의 계획보다 더 많은 것이 요구된다. 그 계획은 전체 인민에게 제출되어야 한다. 주영 러시아 대사인 I. 마이쓰끼는 계획의 준비를 위한 이 두 번째 단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통제 수치’가 중공업, 경공업, 상업, 교통, 무역 인민위원회 등 여러 인민위원회들과 국가 경제 관련 중앙 기구들에 제출된다. 모든 중앙 권력 단위는 전체 계획의 부분들을 그 아래 단위에 보내서, 결국 계획의 알맞는 부분이 각개 공장과 농장에 도달하게 한다. 이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통제 수치’는 철저한 검토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 ‘통제 수치’가 국가계획위원회로부터 시작한 그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을 때, 열성적인 모든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토의와 검토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각종 제안과 제의를 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통제 수치’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 고쳐지거나 보충된 형태로 국가계획위원회로 돌아오게 된다.”

 

공장의 노동자들과 농장의 농민들은 계획의 장단점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한다. 러시아인들은 바로 이러한 그림에 긍지를 가지는 것이다.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자주 계획에서 제시된 자신들의 사업장과 관련된 통제 수치에 이견을 제시한다. 그들은 오히려 기대 생산량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수치가 명시된 대응책을 제시한다. 수백만 명의 쏘련 시민들이 각지에서 참여하는 이러한 계획 초안에 대한 토론과 논쟁 안에서 러시아 사람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보는 것이다.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달성해야 하는 목표에 대한 계획은 상부에서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과 농민들도 발언권이 있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들의 의견이 반영되느냐고 묻는다면, 러시아에 정통한 한 관찰자는 이렇게 답해 줄 것이다: “러시아 어디에 가든, 적어도 내가 가서 본 지역에서는, ‘이곳은 우리의 공장이고, 이곳은 우리의 병원이며, 이곳은 우리의 숙소입니다’라고 말하는 노동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이 개인적으로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고 생산한다는 뜻이며, 그들은 이를 자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그것들이 제대로 굴러가는지 확인할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 또한 자각하고 있다.”

 

계획의 세 번째 단계는 돌아온 수치들에 대한 최종 검토이다. 국가계획위원회와 정부의 수뇌들이 제안들과 수정안들을 검토하고 필요한 부분들을 수정한 뒤에야 비로소 계획이 준비된다. 계획의 최종 형태는 각지의 노동자들과 농민들에게 다시 보내지며, 온 나라는 업무를 완수하는 데 모든 정력을 쏟아붓는다. 집단의 이익을 위한 집단의 행동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집단의 이익인가? 정부의 수뇌들은 어떤 정책들이 제일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가? 몇 가지 목표들은 곧바로 완수의 시급함을 드러냈다. 쏘비에트 연방 거주자 대다수는 문맹에다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고 보편적 교육 프로그램이 계획에 들어가야 했다. 모두를 위한 무상 교육―대학생 생계비까지 무상인 교육―이 제공되었다. 대부분의 쏘비에트 연방 거주자들은 건강과 위생에 대한 지식 또한 전무했다. 이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과 캠페인의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병원, 보육소, 유치원 등 유능한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로 채워진 시설들을 세우는 것이 계획에 들어가야 했다. 노동자들을 위한 숙소와 공원, 박물관과 휴게소나 이와 유사한 서비스 또한 계획에 들어가야 했다. 이것들을 포함한 다른 수많은 것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당연히 필요해, 계획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아래 질문에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1. 사람들이 당장 먹고 입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의 생산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정책인가? 아니면 당장 사람들이 더 적게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미래에 더 많이 가지는 것을 허용하는 공장과 발전소, 철도 등의 시설 건설을 중시할 것인가? 소비재에 투자하는 것은 오늘날의 윤택함을 의미하고, 생산재에 투자하는 것은 미래의 행복을 의미한다. 어느 것이 더 나은가?

 

2. 잘 생산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잘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수입하는 것이 더 나은 정책인가? 아니면 자국 영토 내에서 공급을 보장하는 것이 더 합당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쏘련의 대답은 확고했다. 이는 상당 부분 그들이 사회주의 나라였으며 자본주의 세계로부터 공격을 받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는 단순히 비관적인 추측이 아니고, 진짜로 일어났던 일이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미국을 포함한 6개국의 자본주의 나라들은 볼쉐비끼를 무력으로 전복하려 시도했다. 러시아인들은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 믿었고, 특히 사회주의 건설에 성공했을 때 더더욱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러시아가 사회주의 건설에 성공한다면 각지의 자본가들은 자국의 노동자계급이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모범을 따라 그들을 권좌에서 쫓아낼 것을 더더욱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와 다른 여러 이유들 ―예를 들어, 농촌 공동체는 산업화된 것만큼의 생활 수준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산업화의 과업에 착수했다.

 

이는 절대 쉽지 않았다. 이 결정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안락함을 희생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자원의 거대한 부분을 당장 사람들의 의식주로 이어지지 않는 자본재에 투입하는 것을 의미했다. 한 나라는 일 년 동안 정해진 양의 노동과 자본이 있다. 나라는 모든 노동자들을 벽돌을 만들고 집을 짓는 데, 밀을 키우고 빵을 굽는 데, 면화를 재배하고 옷을 제작하는 데 투입할 수 있고, 이렇게 한다면 모두를 위해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많이 얻을 수는 없다. 만일 더 많이 얻자면 노동자들 중 일부를 기계를 만들고 철도를 놓고 공장을 짓는 등 생산재 설비를 만드는 데 투입해야 한다. 이는 내년이나 차후 몇 년 후 더 많은 빵과 옷과 집을 만들어 내는 것을 허용할 것이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비율은 현재 입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의 양을 결정한다. 러시아는 집을 따듯하게 하기 위한 석탄을 더 많이 확보하거나, 또는 제철소에서 철을 더 많이 생산해 자동 베틀을 만들어 내는 기계를 만들어 옷을 더 많이 빠르게 찍어 내는 데 쓸 석탄을 더 많이 확보할 수도 있지만, 둘 다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생산재는 소비재를 희생해 발전되었다. 이 길이 산업화의 길이었다. 이는 결코 쉽지 않았다.

 

1936년 3월 1일, 스크립스-하워드 언론사의 로이 하워드에 허락한 인터뷰에서 이오씨프 쓰딸린은 비록 산업화의 길은 어려웠지만 쏘비에트의 목표에 부합되었다고 말했다. “집을 지으려면 경제적이어야 하고 희생도 해야 한다. 이는 새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는 더욱더 맞다. 우리는 잠시 우리의 요구를 일부분 억제하고 필수적인 자원을 축적하는 것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가장 좋은 의미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만들어 가는 구체적인 목표를 위해 이러한 희생을 감수했다.”

 

러시아인들이 당장의 소비를 위한 생산을 줄이고 자본재 생산을 늘리는 데에 따르는 “희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먼저, 현재를 위한 물건들을 충분히 생산할 만한 노동과 자본이 없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모든 소비재의 심각한 부족이 있었고, 당신도 알다시피 쏘련에 비우호적인 방문객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찻주전자보다 트랙터가, 이불보다 철도 침목이 더 구하기 쉬웠다. 불행하게도, 러시아인들은 차를 트랙터로 만들 수 없었고, 철도 침목으로 자신들을 감쌀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트랙터와 공장과 기관차와 발전소 건설의 모든 비용을 내기 위해 ―어떤 경우에는 아직도 너무 헐렁했지만―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하지만 이제는, 1936년 3월 27일 자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좋은 앞날이 쏘비에트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가 있다. “올해, 혁명 이후 처음으로, 사회주의 경제 건설 초기 최우선적으로 나섰던 생산 수단의 생산보다 소비재 생산이 상대적으로 더 강조되고 있다. 올해 계획은 소비재의 23% 증가와 생산 수단의 22% 증가를 명시한다.”

 

하나는 확실히 해 두자. 이전에 소비재보다 생산재에 집중했던 현상은 국가 계획에 내재하는 현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사회적인 국가 계획을 실행하려 했을 때에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생산재에 대한 집중이 쏘비에트 계획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던 것은 쏘련의 특수한 조건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미 자본재가 풍부해서 많은 희생을 동반한 빠른 속도의 건설은 계획의 일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철도도 없고, 공장이나 모든 종류의 시설들이 부족했다. 세계 대전 전 조금 가지고 있던 시설들은 세계 대전과 내전, 간섭 [전쟁] 시기를 거친 이후에 모두 파괴되었다. 그래서 혁명 후의 러시아는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영국, 독일, 미국은 고사하고 이탈리아, 스웨덴, 호주와 같은 나라들을 따라잡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너무 멀어서, 그들이 이 나라들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러시아가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물론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각지의 중립적인 관찰자들은 러시아가 그 궤도에 올라섰다는 데 동의한다. 이는 또한 케임브리지의 탁월한 경제학자의 견해이다. 그는 1932년(러시아가 발전하고 있는 속도를 고려하면 이는 먼 옛날이다)에 이렇게 말했다: “그 나라가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는 너무나도 원대하여 자본주의 세계 전체의 조롱과 웃음을 샀다. 자본주의 세계의 달성 기준으로는 그 나라의 목표는 당연히 미친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보였다. 전쟁 전 영국과 같은 부자 나라는 국민 소득의 14%를 새 자본에 투자했다. 5개년 계획하 쏘비에트 러시아는 (5년 기간 연간 평균) 국민 소득의 30% 가까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게는 엄청난 양의 소득을― 자본재 생산에 투자했다. 자본주의 산업에서 ‘일반적’이라고 통용되는 세계 생산의 연간 증대는 3% 정도로 예상되었다. 1907년부터 1913년 사이 6년간 영국의 연간 증가율은 1.5%도 안 됐다. 1925-1929년 4년의 호황기 동안 폴란드나 프랑스 같은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들마저도 연간 생산 증가율은 9%가 채 안 되었고, 미국과 영국에서는 4% 이하였다. 5개년 계획은, 대규모 국가 산업의 연간 생산 증가율은 20%를 넘었고, 대규모 산업과 중소 산업을 포함한 전반의 생산 증가율은 17%에서 18% 가까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다른 나라들에게서 차관을 정상적으로 얻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 때 더욱 대단하게 보인다. 다른 모든 나라들은 산업화의 길에서 강철, 기계 등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설비들을 마련하는 동안 해외 자본의 도움을 받아 그것들을 수입해 왔다. 미국의 산업화에서는 영국 자본이 큰 역할을 놀았다. 남미에서는 영국, 독일, 미국 차관이 들어왔다. 과잉자본은 우리가 19장에서 봤듯이 투자할 곳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 이는,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곳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자본가들은 사악한 볼쉐비끼를 필요로 하지도 않고, 그들에게는 줄 돈도 없었다. 러시아인들이 드디어 보이콧을 뚫고 필요했던 차관을 얻게 되었을 때, 조건은 매우 엄격했다!

 

그렇다면 필수적인 해외 물자들에 대한 대가는 어떻게 지불되었는가? 쏘비에트 연방 내 산업 건설을 위한 자본 집적의 근원은 무엇이었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고, 중요한 해답이 있다.

 

돈의 일부는 쏘비에트 산업 자체에서 나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적의 주체는 개인인 데 반해(여기서 “개인”은 단체를 포함한다 ― 은행, 기업의 예비 자금 등), 사회주의 사회에서 집적은 생산과 같이 사회적이다. 모든 산업에서 총생산량의 일정 부분은 중앙 금융 기관으로 이전되어, 확장을 위한 자원들에 대한 하나의 통일적인 조절 통제를 보장했다. 쏘비에트 연방의 계획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친근한 채권 소유자―산업 이윤에 의해 유지되는 불로 소득자―를 위한 자리는 없다. 쏘련에서는 국가 자체가 경제 활동의 이윤을 모아 계획에 따라 자금을 가장 유용하게 쓰일 공간들에 투입한다.

 

“각 산업의 발전의 일부분은 자동적이고 각 산업 자체의 이윤에 의해 보장된다. 하지만 각 산업의 이윤의 나머지는 동원되어 전체적인 생산 및 분배 체계의 의식적인 발전에 (중앙으로 집적된 다른 자금과 함께) 사용될 수 있다. 경제 발전에 대한 이러한 조절 통제는 중앙 계획 기구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이다.”

 

물론 개인 저축금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저축금이 이윤에서 나오고, 개인적 차원에서의 이윤은 없기 때문에, 쏘련에서의 저축은 공동체의 기능이며, 자본가들의 올가미가 아니다.

 

이는 자본 집적의 근원 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의 중요한 방식은 무역을 통해 필요한 산업 물자를 위한 돈을 얻는 것이다.

 

러시아가 자급자족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자동차, 트랙터, 기관차, 기계들을 만들기 위한 기계들은 러시아산 밀, 석유, 광물, 목재, 모피와의 교환을 통해 해외에서 얻어 왔다. 집약적인 산업화는 러시아인들이 밀을 키우거나 석유와 광물을 얻기 위해 땅을 파거나, 나무를 베거나, 모피가 있는 동물들을 포획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활동들은 더욱더 확대되고, 커다란 개선이 이루어졌다. 비효율적인 19세기 방식은 신식의 20세기 기법으로 대체됐다. 산업에 도입된 기계화와 과학적인 방식은 농업과 광업에도 도입되었다. 생산을 늘리는 데 각지의 정력이 쏟아부어졌다. 바로 러시아의 “천연” 생산물을 수출함으로써 필수적인 공산품을 수입하는 것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이는 당연히 해외 무역이 전체 계획에 의해 조절 통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국가계획위원회는 외국에서부터 쏘련 내로 무엇이 들어오는지, 또 무엇이 외국으로 나가는지 절대적이고 전적으로 결정한다. 만약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집단 농장이 농업 기계를 미국에서 구입하고, 전기 산업이 설비를 독일에서 구하고, 면직 공장이 방추를 영국에서 가져온다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되어 버릴 것이다. 국가계획위원회는 생산 계획이 있고, 해외 무역은 그 계획의 중요 부분이다. 이는 국가 경제와 관계없이 각자 필요한 대로 사고파는 식으로 될 수 없으며, 개별적 집단에게 맡겨질 수 없다. 결국, 계획에 나와 있는 대로 은행과 철도 등, 생산 수단 일반에 대해서 조절 통제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무역도 국가가 독점한다.

 

바뵈프가 프랑스 혁명 시기 공산주의 국가를 위한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무역의 국가 독점의 필요성도 본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외국과의 모든 사적 무역은 금지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나라에 들어오는 상품은 국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몰수될 것이다. … 공화국은 자신의 잉여생산물을… 다른 나라의 그것과 거래해 국가 공동체를 위한 필요한 물품들을 확보할 것이다.”

 

하지만, 대외 무역에 대한 독점이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중요 부분이더라도 쏘비에트 연방 정부는 수입품과 수출품의 양과 종류를 온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그들이 무계획적인 경제 씨스템을 가지고 있는 외국과 무역을 하는 한,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통제할 수 있지만, 나머지 세계에서 돌아가는 일들은 통제할 수 없다. 5개년 계획을 수행하는 동안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국가계획위원회는 기계들을 해외에서 일부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해당 시기 가격을 기준으로 주문을 했으며, 기계를 사들이기 위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생산의 일부분을 수출로 돌렸다.

 

좋고 좋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던 것을 위해 계약서에 싸인했고 지불 수단도 마련했다.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보였다.

 

하지만 ― 계약이 유지되는 동안, 세계의 자본주의 나라들에게 1929년의 위기가 찾아왔고, 이는 러시아가 수출하던 물품의 가격이 폭락함을 의미했다. 국가계획위원회가 주문한 기계를 위해 $10,000,000를 지불하는 것으로 계약했다고 가정하자. 만일 국가계획위원회가 교환될 수출품을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면

 

2,000,000부쉘의 밀 @ 1부셀당 $1.000 …… $2,000,000

1,000,000개의 모피 @ 1개당 $3.000 …… $3,000,000

2,500,000배럴의 석유 @ 1배럴당 $2.00 …… $5,000,000

총 …… $10,000,000

 

이제는 위기 때문에 밀의 가격이 50센트로 떨어지고 사람들은 공짜로 나눠 주지 않는 이상 모피를 사지 않게 되며, 석유는 전대미문의 낮은 가격으로까지 떨어진다.

 

쏘비에트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정부는 기계를 필요로 했고 수출을 통해 기계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만일 기존의 높은 가격으로의 계약이 없었더라도, [수입해야 할] 공산품의 가격은 러시아가 팔아야 했던 물품의 가격에 비해 빨리,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기존 계획보다 두 배 더 수출해야 했다. 러시아인들에게 정부는: “당신들은 허리띠를 더욱더 졸라매야 하게 생겼습니다. 저 자본가들은 상황을 개판으로 만들어 세계 시장 가격이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폭락하게 만들었고, 우리 밀의 기존 값어치의 반밖에 쳐주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두 배 더 수출해야 합니다.”

 

대략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쏘련은 비록 자신들의 나라에서의 위기를 막을 계획을 세웠지만, 자본주의 나라들의 위기의 여파에 시달렸다. 러시아 밖의 위기는 계획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외부적 요인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적 요인들―조절될 수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로 인해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다. 모든 경제 활동에 대한 의도적 계획은 모든 부분이 다른 모든 부분과 들어맞게 되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톱니바퀴에서 톱니 하나가 나가면 필연적으로 다른 모든 톱니바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러시아판 목화 바구미가, 면화 작물의 주요 부분을 파괴해 버린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곧바로 섬유 공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계획이 면화의 수출을 필요로 했다면 무역에도 영향을 줄 것이며, 예상된 만큼의 면화 생산물이 시장에 없으면 임금-가격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쏘비에트 경제학자들은 경험을 통해 배웠다. “국가 경제의 모든 요소들의 밀접한 상호 연관의 결과로, 계획의 한 부분의 위반이나 후퇴는 다른 수많은 부분들에도, 그들 자신이 얼마나 일을 잘하든 간에, 영향을 미친다. 한 곳에서 발생한 계획으로부터의 심각한 이탈은 다른 곳에서도 상응한 조치가 취해지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위험이고 ― 이에 대한 처방이 있다. 계획자들은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비축을 해 놓아야 한다. 그들은 사고를 감안해야 한다. 그들은 이전에 일어난 일들을 낱낱이 보여 주는 통계를 수집해,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예상된 대로 굴러가지 않을 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조율은 이론상으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렵고, 러시아인들은 조율 부족의 대가를 재차 치렀다. 웹 부부는 우리에게 한 예시를 보여 준다: “1932년 5월 1일 (고르끼에서 자동차 생산을 위한) 공장의 개소를 널리 홍보했는데, 회사 전체가 도무지 꼼짝하지 않았다! 디트로이트의 포드 공장을 베낀 거대한 건물들은 비싼 기계들로 채워졌다. 수만 명의 일꾼들 또한 모집돼 급여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컨베이어는… 움직이기를 거부했고… 컨베이어를 지탱했던 기반은, 많은 곳에서, 불안정한 지반으로 말미암아 처졌다. … 그리고 만일 컨베이어를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커다란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면서 하나씩 조립되어야 할 여러 부품들의 재고 또한 부족했다.”

 

이것이야말로 비효율성, 지도와 조율의 부재의 가장 적절한 예시이다. 하지만 이를 국가 계획의 탓으로 돌리는 게 과연 정당한가? 오히려 산업을 처음 다루는 러시아인들의 미숙함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웹 부부는 곧바로 교훈이 얻어졌으며 러시아에서의 새 공장들은 이제 첫날부터 바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만일 국가 계획이 미국에서 이루어진다면, 조율 능력 부재는 없을 것이라고 추정해도 무방하다. 미국이 조율 능력을 전반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것은, U. S. 스틸 소속 단 두 곳의 철강 회사가 “영국과 독일이 1934년에 생산한 것을 합친 것만큼 많은 철강을 만들 수 있다”는 ≪포춘≫ 편집자들의 발언이 증명한다. 당연히 이는 U. S. 스틸에 산업 조직의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감당할 수 있는 조율 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모든 부분들을 같이 조합하는 것은 너무 큰일이기 때문에 국가 계획이 불가능하다고 반론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반론들도 존재한다. 하나는 “사회적 국가 계획”에서 “사회적”이라는 단어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계획”이라는 단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윤의 동기가 부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위험 부담을 안을 물질적 자극이 없어 사회주의가 굴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종국적으로는 경제생활이 침체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러시아인들은 이러한 주장은 헛소리라고 답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윤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하루 종일 임금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일을 한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계를 꾸려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한다. 이는 러시아에서도 그렇고, 자본주의 세계에서도 그렇다. 게다가 러시아에서는 사회적 압력과 뛰어난 노동자들이 받는 사회적 존경과 명예가 노동자가 최선을 다하도록 유도한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자극이 자본주의에서의 자극보다 훨씬 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인들은 무상으로, 자발적으로 경제 전선의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뛰어드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가리키며 타당한 자부심을 가진다. 레닌은 1919년에 이런 활동을 하는 “쑤보뜨니크[субботник, 자발적으로 토요일에 하는 노동]”에 감명받았다: “‘공산주의적 ‘쑤보뜨니크’는 거대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 노동 생산성은, 마지막에는 새 사회 질서의 승리의 가장 선차적이고 중요한 요소다. 자본주의는 농노제에서는 꿈꿀 수 없었던 수준의 노동 생산성을 만들어 냈다. 사회주의가 새롭고 훨씬 더 높은 노동 생산성을 창조할 것이라는 사실로 인해 자본주의는 종국적으로 전복될 수 있고, 전복될 것이다.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 비해 높은 노동 생산성을 의미하며,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발전된 기법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주의적 경쟁”은 노동 생산성을 늘리기 위한 또 다른 방식이다. 노동자들은 팀별로 다른 팀들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한다. 경쟁이 끝난 뒤, 이긴 팀은 다른 어디에서도 이긴 쪽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 ― 그들은 다음에는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보여 주기 위해 패자들을 도와주러 간다. 사람들은 금전적 이윤이 들어오지 않아도 일 할 것이다! 아무튼, 러시아인들이 말하기를, 사회주의 계획 경제에서의 노력이 보너스와 프리미엄, 포상 휴가 등으로 보상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러시아의 경제생활에서 이 모든 것들은 일반적이다.

 

≪맨체스터 가디언≫은 러시아인들이 다른 건 몰라도 사람들을 이윤의 자극 없이 일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믿는다. 1936년 2월 20일, 사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였다: “회의적인 세계는 집단적 소유가 살아남고 있고, 새로운 형태의 애국주의와 노동에 대한 자극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창시자들이나 선구자들의 사회주의가 아닐지는 몰라도, 제대로 굴러간다.”

 

경쟁이 부재한 상황에서 실험하고, 위험 부담을 안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자극이 없다는 반론에 대해서는 러시아인들은 단순히 “기록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모든 분야에서의 실험에 더 많은 자금과 정력을 쏟아붓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경제생활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나라에서의 경쟁하는 기업들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식들을 도입할 수 있는 여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웹 부부의 종결적인 발언으로 뒷받침된다: “쏘비에트 공산주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한 진취성을 보이지 않고 새 발전에 대한 위험 부담을 거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모든 분야에서 거의 폭발적으로 진취적임을 증명했다. … 쏘비에트 연방을 공부하는 그 어떤 학생도 산업, 과학, 여러 예술 분야와 사회 제도에 대한, 미국에 비해 보아도 간혹 과도하게 보이는, 모험 정신과 변화에 대한 욕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가 계획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론은 결을 달리한다. 그들은 국가 계획이 있는 곳에는 자유 시장이 없고, 자유 시장이 없으면 가격 씨스템이 작동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며, 가격 씨스템의 부재는 합리적인 경제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물품의 수요에 대한 상대적 희소성을 반영하는 가격이 없이는 생산될 물품에 대한 선택 또한 임의적이고 무질서하게, 즉, 비경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 사람들은 그들을 이끌어 줄 가격이 없이는 덜 시급히 필요한 것들에 더 많은 자원을 쏟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시장 가격이 장기적으로 생산의 방향을 통제한다. 어떤 것이 더 필요할 때 가격은 상승하고, 덜 필요할 때는 가격이 하락한다. 이는 물품이 생산되고 안 되고가 사람들의 요구에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가격 씨스템이 없다면 자본을 어떻게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투자할 것이냐고 질문한다. 국가 계획자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한 답으로 먼저 가격 씨스템이 경제학자들의 주장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들이 말하길, 가격은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이 지불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움직인다. 그들은 가격 씨스템의 역할이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을 만족시키기 위함에 다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국가 계획자들의 다음 답변은 ―가장 합리적인 자원 사용이라고 하는― 시장 가격이 자본주의 내에서 높은 관세, 지원금과 독점으로 인한 인공적이고 통제된 가격 때문에 심각하게 교란된다고 말한다. 결국 가격 메커니즘에 따라 모든 것이 부드럽고 완벽하게 작동하는 순수한 자본주의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책 안에서만 존재한다. 만약 자유 시장이 말대로 그렇게 잘 돌아갔다면, 위기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국가 계획자들은 자신들이 공급과 수요를 일치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계획위원회는 나라 방방곡곡에서 월간, 주간, 심지어 일간 보고서를 받고, 이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과 현재 받고 있는 것들 간의 관계를 반영한다. 계획이 신발 이백만 켤레 생산과 오십만 호 신축 주택 건설을 요구한다고 가정하자. 사람들이 새 주택으로 이사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충분한 신발이 없다는 항의가 쏟아져 들어온다고도 가정해 보자. 계획은 “조건부”가 많으며,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과 자본은 집을 만드는 데서 신발 생산으로 돌려질 수 있다 ― 물론 한꺼번에 하지는 못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만큼이나 빠르게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자본주의 비평가들의 질문에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국가계획위원회는 둘 다 도입하기 위한 자본이 불충분할 때 어떤 기준으로 자동 방직기 대신 전기 절탄기 도입을 결정할 것인가? 중앙 정부는 제한된 자원을 경쟁하는 목적에 배분해야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한다. 러시아인들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들은 설령 사회주의 국가 계획과 자유 시장이 양립할 수 없고, 심지어 자유 시장의 가격의 부재가, 가장 경제적인 자원 사용을 불허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많은 것을 제공해 준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그 이윤이 얼마나 크든 간에 소수를 위한 이윤 획득보다는 다수를 위한 안정과 평등, 착취의 부재를 더 중시한다. 그들은 더 평등한 부의 배분이 “두 국민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계획적인 경제의 위기와 호황보다는 안전하고, 합리적이며, 질서 있는 계획 씨스템에서의 삶을 더 선호한다.

 

1929년도의 경제 붕괴는 세계 위기로도 불린다. 우리는 생산의 마비에 따른 실업과 인민대중의 고통이 전 세계 모든 나라로 전염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다. 러시아인들은 이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위기는 단 한 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를 휩쓸었다. 그 위기는 쏘련의 국경까지 들이닥쳤다가 ― 서서히 물러났다. 러시아인들은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제방 뒤에 있었기 때문에 안전했던 것이다.

 

이 장이 쓰이는 동안 쏘비에트 연방의 새 헌법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 헌법은 즉시 시행되지는 않았다. 먼저 토론, 비판, 수정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 전체 쏘련 인민에게 제출되어야 했다. 헌법 초안 중 중요한 조항들을 한번 살펴보자:

 

“제1조: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노동자와 농민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제4조: 쏘비에트 연방의 경제적 기반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청산과 생산 수단과 도구에 대한 사적 소유의 폐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의 폐지로 확립된 생산 수단과 도구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이다.”

“제11조: 쏘비에트 연방의 경제생활은 공동의 부를 늘리고, 노동자들의 물질적, 문화적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이며, 쏘비에트 연방의 국방력과 자주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 경제 계획에 따라 결정되고 지도된다.”

“제118조: 쏘비에트 연방의 시민들은 일할 권리 ― 노동의 양과 질에 따른 보상이 보장된 일자리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일할 권리는 국가 경제의 사회주의적 체계, 쏘비에트 사회의 생산력의 지속적 발전, 경제 위기의 부재와 실업의 폐지에 의해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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