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우리 당의 사회민주주의 경향에 대하여(2)

― 쏘련 공산당(볼) 제15차 전 연방 대표자회에서의 보고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1. 반대파 블록의 여러 발전 단계

1) 첫 번째 단계

2) 두 번째 단계

3) 세 번째 단계

4) 네 번째 단계

5) 레닌과 당내 블록 문제

6) 반대파 블록의 분해 과정

7) 반대파 블록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2. 반대파 블록의 주요 오류

1) 서론

2) 레닌주의인가 뜨로쯔끼주의인가?

3) 러시아 공산당(볼) 제14차 대표자회의 결의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4) “신반대파”의 뜨로쯔끼주의의 전화

5) 뜨로쯔끼의 발뺌, 쓰밀가(Smilga), 라데크(Radek)

6) 우리나라 건설 사업 전망 문제의 결정적 의의

7) 반대파 블록의 정치적 전망

3. 반대파 블록의 정치적ㆍ조직적 오류

4. 몇 가지 결론

 

 

2. 반대파 블록의 주요 오류

 

동지들,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 혁명의 성격과 전망이라는 기본 문제에 대한 반대파 블록의 주요 오류입니다.

 

당과 반대파 블록을 가르는 기본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 가능성 문제, 즉 우리 혁명의 성격과 전망의 문제입니다.

 

이는 새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1925년 4월 제14차 대표자회(Conference)에서 어쨌든 다소 철저하게 논의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상황에 처해 이 문제가 다시 갑자기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면밀히 고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 열린 중앙위원회와 중앙감찰위원회 연석전원회의에서, 뜨로쯔끼와 까메네프는 반대파 블록에 대한 테제가 자신들의 견해를 잘못 기술했다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반대파 블록에 대한 테제의 기본 논지를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보고서에 여러 문서와 인용문을 추가해야 했습니다. 동지들 미리 양해 바랍니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1)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유일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입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다른 나라에서 여전히 승리하지 못하고 있고, 세계 혁명의 속도는 느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가 가능할 것인가?

2) 이런 승리가 가능하다면, 완전한 승리, 최후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3) 이 승리가 최후의 승리라고 할 수 없다면, 이 승리가 최후의 승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이 세 가지 질문은 한 나라, 즉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 가능성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에 결합되어 있습니다.

 

1) 서론

지난날 맑스주의자들은 이 문제에 어떻게 답했겠습니까? 당시는 지난 세기의 40년대나 5-60년대, 요컨대 독점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으로 자본주의의 불균등 법칙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발견될 수도 없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이때는 개별 국가에서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한 문제는 그 이후의 관점과는 달랐습니다. 당시 맑스와 엥엘스를 위시한 모든 맑스주의자들은 일국 사회주의의 승리는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즉 사회주의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여러 나라에서 혁명이 동시에 일어나야 하며 적어도 가장 선진화되고 문명화된 나라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것이 옳았습니다. 이런 관점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엥엘스의 “공산주의의 원리” 초고에서 특징적인 구절을 인용해야겠습니다. 이 초고는 문제를 가장 명료한 형태로 제기하고 있으며, 나중에 ≪공산당 선언≫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1847년에 작성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출판된 이 초고에서 엥엘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런 종류의 혁명(즉, 프롤레타리아 혁명 ― 쓰딸린의 주석)이 한 나라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가?

답변: 아니다. 대규모 산업이 세계 시장을 형성했고 바로 이 사실로 인해 세계 모든 국가, 특히 문명국가들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각국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또한 대규모 산업은 모든 문명국가의 사회 발전을 일치시켰다. 따라서 이들 모두에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의 두 가지 결정적인 계급이 되었다. 이들 사이의 투쟁이 우리 시대의 주요 투쟁이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혁명은 단지 한 나라의 혁명이 아니라 모든 문명국, 즉 적어도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에서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이들 각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은 이들 각각의 나라가 산업이 더 발전했는지, 부를 더 축적했는지, 생산력이 더 높은지에 따라 더 빨리 또는 더 느리게 발전할 것이다. 따라서 독일에서 가장 느리고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고, 영국에서는 가장 빠르고 쉬울 것이다. 또한 공산주의 혁명은 세계의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쳐, 그들의 이전 발전 경로를 완전히 바꾸고 매우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인 혁명이며, 따라서 전 세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엥엘스, “공산주의의 원리”, ≪공산당 선언≫, 국가출판사, 1923, p. 317. 참조.)

 

아직 독점자본주의가 등장하지 않은 1840년대에 쓴 글입니다. 여기에서 러시아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당시 러시아에는 혁명 세력으로서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없었고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이 인용문에 나오는 말들이 엥엘스가 이를 썼던 시기인 전(前) 독점자본주의의 조건에서 옳았습니까? 네, 옳았습니다.

이제 독점자본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라는 새로운 조건에서 이 주장이 옳습니까? 아니요, 더 이상 옳지 않습니다.

구시대, 즉 독점자본주의 이전 시대, 제국주의 이전 시대에는 세계가 아직 금융 그룹으로 분할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분할된 세계를 폭력적으로 재분할하는 문제도 아직 자본주의의 생사가 걸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경제의 불균등 발전은 뚜렷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이는 나중에야 첨예화되었습니다. 자본주의 모순은 번영하는 자본주의에서 죽어 가는 자본주의로 전환되어 개별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전 시대에는 엥엘스의 정식이 논쟁의 여지없이 정확합니다. 새 시대, 즉 제국주의가 발달한 시대에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불균등 발전이 제국주의 발전의 결정적 동력이 되었습니다. 제국주의자들 사이의 피할 수 없는 갈등과 전쟁은 제국주의 전선을 약화시키고 개별 국가에서 이 전선을 무너뜨리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레닌이 발견한 불균등 발전의 법칙은 개별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한다는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엥엘스의 옛 정식은 정확하지 않게 되어 다른 정식, 즉 한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정식으로 불가피하게 대체되어야 합니다.

 

맑스와 엥엘스의 후계자로서의 레닌의 위대함은 그가 결코 맑스주의 자구의 노예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레닌은 자신의 연구 작업에서 맑스가 반복적으로 말한 맑스주의는 교리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라는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레닌은 이것을 숙지하고 맑스의 말과 본질을 엄밀히 구별하였습니다. 그는 맑스주의를 교리로 간주하지 않고 자본주의 발전의 새로운 상황에 맑스주의를 근본적인 방법으로서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레닌의 위대함은 그가 개별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 가능성에 관한 새로운 정식의 필요성 문제를 공개적으로, 정직하게, 그리고 주저 없이 제기했다는 사실에서 정확히 나타납니다. 레닌은 모든 나라의 기회주의자들이 옛 정식에 집착하며 자신의 기회주의적 활동을 은폐하기 위해 맑스와 엥엘스의 이름을 필사적으로 사용하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맑스와 엥엘스가 아무리 뛰어난 사상가라 할지라도 독점자본주의가 도래하기 50-60년 전에 독점자본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 시대에서 출현하는 계급 투쟁의 모든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이상한 것입니다.

 

그리고 레닌이 맑스주의 말에 얽매이지 않고 맑스의 방법에 입각하여 맑스와 엥엘스의 과업을 계승한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또 다른 유사한 사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낡은 국가 기구를 파괴하고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는 대륙 국가들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그런데 맑스는 영국과 미국을 예외로 간주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두 나라가 군국주의와 관료주의의 발달이 약하거나 전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회주의로의 다른 길, 즉 “평화로운” 길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70년대에 아주 정확했습니다. (랴자노프: “그때도 옳지 않았다.”) 나는 영국과 미국에서 군국주의가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던 70년대에는 이 주장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레닌 동지의 ≪현물세≫[1]레닌의 ≪현물세≫에서 관련 장은 “러시아의 현재 경제”이다(V. I. Lenin, Works (4th Russ. ed.), Vol. 32, pp. 308-19. 참조).에서 관련 부분을 보면 이 주장이 옳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레닌은 70년대에 영국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합의를 통해 사회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수이고 부르주아지는 타협에 익숙하며 군국주의와 관료주의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명제는 지난 세기의 70년대에는 옳았지만, 19세기가 지난 이후, 제국주의 시대에는 이미 옳지 않은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때 영국은 대륙의 그 어떤 나라만큼이나 관료적이고 군국주의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레닌 동지는 그의 저서 ≪국가와 혁명≫에서 대륙에 제한적이라는 맑스의 말은 이제 무효[2]V. I. Lenin, Works (4th Russ. ed.), Vol. 25, p. 387. 참조.가 되었으며, 새로운 조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영국을 예외로 삼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레닌의 위대함은 맑스주의의 자구에 얽매이지 않고 맑스주의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에 있으며, 이 본질에서 출발하여 맑스와 엥엘스의 가르침을 더욱 발전시켰다는 점에 있습니다.

동지들, 이것이 제국주의 이전, 독점자본주의 이전 시기 자본주의에서 한 나라가 사회주의 혁명을 승리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2) 레닌주의인가 뜨로쯔끼주의인가?

레닌은 자본주의의 새롭고 마지막 단계인 제국주의를 확실히 맑스주의적으로 분석하고, 개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승리 가능성에 대한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하고 해결한 최초의 맑스주의자였습니다. 나는 레닌의 책 ≪제국주의, 자본주의 최고 단계≫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1915년에 출판된 “유럽 합중국 슬로건에 대하여”라는 글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유럽 합중국이나 전 세계 합중국이라는 슬로건을 놓고 뜨로쯔끼와 레닌이 벌인 논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논쟁에서 레닌은 처음으로 사회주의가 한 나라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다음은 레닌이 그 글에서 쓴 내용입니다.

 

그러나 세계 합중국(United States of the World) 슬로건을 독립된 슬로건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첫째로 그것은 사회주의와 구분이 안 되고, 둘째로 사회주의가 한 나라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의미의 잘못된 해석과 이 나라와 나머지 나라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와 정치의 불균등 발전은 자본주의의 절대 법칙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승리는 소수 또는 심지어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단독으로 가능하다.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들을 수탈하고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여 나머지 세계, 즉 자본주의 세계에 대항하여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 피억압계급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그 나라에서 자본가에 대한 봉기를 일으키며, 필요하다면 무력으로라도 착취계급과 그들 나라에 대항할 것이다. … 사회주의 국가들의 자유로운 연합은 사회주의 공화국이 상당한 기간 동안 뒤쳐진 나라들에 대한 완고한 투쟁을 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 (Vol. 18, pp. 232-33을 보라.)

 

이는 레닌이 1915년에 쓴 글입니다.

제국주의의 조건하에 있는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승리할 수 있게 하는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 법칙은 무엇입니까?

레닌은 이 법칙을 설명하는 출발점으로 독점 이전의 낡은 자본주의가 이미 제국주의로 발전했다는 점을 듭니다. 세계 경제는 영토, 시장, 원자재 등을 차지하기 위해 제국주의 주요 집단들이 광란의 투쟁을 벌이는 조건하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세계는 여러 제국주의 블록의 영향권으로 분할이 이미 완료되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의 발전은 균등하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뒤따라가거나 나란히 발전하는 방식이 아니라, 앞서가던 나라는 뒤로 밀려나고 신흥국이 앞으로 치고나가는 단속적 방식으로 발전합니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이러한 발전 방식은 필연적으로 이미 분할된 세계를 재분할하기 위한 자본주의 열강들 간의 갈등과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갈등과 전쟁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킵니다. 이 때문에 개별 국가에서 세계 제국주의 전선을 쉽게 돌파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개별 국가에서 사회주의 승리가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이 다른 모든 제국주의 국가보다 앞서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후 독일이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했고, 다른 나라, 우선 영국에게 “양지 바른 땅(place in the sun)”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국주의 전쟁(1914-18년)은 바로 이러한 상황의 결과입니다. 이제 제국주의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영국과 다른 유럽 열강을 모두 제치고 앞서 내달려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새로운 충돌과 전쟁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는 제국주의 전쟁의 결과 러시아에서 제국주의 전선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발전 조건에서 제국주의 전선의 사슬이 끊어지는 곳은 공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아니라 사슬이 상대적으로 약한 곳입니다. 약한 고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제국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러시아의 경우처럼 농민과 같은 중요한 동맹을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미래에 제국주의 전선이 끊어질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인도입니다. 왜냐하면 인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중요한 동맹으로서 강력한 혁명적 해방 운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레닌이 일국에서 사회주의 승리 가능성을 주장할 때 알다시피 먼저 뜨로쯔끼와 논쟁을 하였고, 사회민주당과도 논쟁을 하였습니다.

뜨로쯔끼는 일국에서 사회주의 승리가 가능하다는 레닌의 글과 테제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다음은 뜨로쯔끼가 레닌의 글에 대한 답변으로 당시(1915년)에 쓴 내용입니다.

 

유럽 합중국 슬로건에 반대하며 진전을 보인 어느 정도 구체적이며 역사적인 유일한 주장은 스위스에서 출판된 ≪사회민주당≫(당시 볼쉐비끼의 중앙 기관지, 위에서 언급한 레닌의 글은 이 신문에 게재되었다. ― 쓰딸린)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다. ‘불균등한 경제 정치적 발전은 자본주의의 절대 법칙이다.’ ≪사회민주당≫은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사회주의는 한 국가에서 승리할 수 있으므로 개별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유럽 합중국의 설립을 전제로 할 필요가 없다. 서로 다른 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이 불균등하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전혀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불균등 자체가 극도로 불균등하다.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의 자본주의 수준은 같지 않다. 그러나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비하면 이 나라들은 모두 사회 혁명이 무르익은 자본주의 “유럽”이다. 어느 나라도 투쟁에서 다른 나라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초보적 이치이다. 이 이치를 반복하는 것은 국제적인 동시적 행동의 사상이 국제적인 수동적 대기의 사상으로 대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유용하고 필요하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기다리지 않고 본국에서 투쟁을 시작하고 계속해 나갈 것이다. 우리의 선도성이 다른 나라의 투쟁을 촉진시킬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역사적 경험과 이론적 추론이 증명하듯이, 예를 들어 혁명적 러시아가 보수적인 유럽에 맞서 버틸 수 있다거나 사회주의 독일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3]강조는 쓰딸린. (Trotsky’s Works, Vol. 3, Part 1, pp. 89-90. 참조.)

 

이것은 뜨로쯔끼가 1915년 빠리에서 출판한 신문 ≪우리의 약속(Nashe Slovo)≫[4]Nashe Slovo (우리의 약속)≫. 1915년 4월부터 1916년 9월까지 빠리에서 발행된 멘쉐비끼-뜨로쯔끼주의 신문.에 쓴 글입니다. 이 논문은 1917년 8월에 처음 출판된 ≪평화 강령≫이라는 뜨로쯔끼 문집으로 러시아에서 재인쇄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레닌과 뜨로쯔끼를 인용한 두 글에는 두 개의 서로 완전히 다른 주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레닌은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승리가 가능하며,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후에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가를 몰수하고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여 자본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뜨로쯔끼는 한 나라에서 승리한 혁명이 짧은 시간 안에 다른 나라에서 혁명이 승리하지 않는다면, 승리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뜨로쯔끼는 러시아의 혁명 정부가 보수적인 유럽에 맞서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관점, 완전히 다른 두 개의 노선입니다. 레닌에 따르면 집권한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도의 자주성을 지닌 가장 주동적인 세력입니다. 집권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고 더 나아가 다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지원할 것입니다. 반면에 뜨로쯔끼에 따르면 집권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어느 정도 수동적이 됩니다. 이런 수동적인 프롤레타리아트는 다른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즉각적인 승리라는 직접적인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이를테면 임시 야영지에서 곧 권력을 상실하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 혁명이 즉시 승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멈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소리친다: “그리고 도망친다.”) 예, 그러고는 도망쳐 버립니다. 정확합니다. (웃음.)

 

레닌과 뜨로쯔끼의 이러한 차이는 과거의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후에 운동 과정에서 최소화되고 완전히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차이가 최소화되고 심지어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상황은 모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이러한 차이는 레닌 동지가 사망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보듯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는 레닌과 뜨로쯔끼의 이러한 차이가 사라지지 않고 반대로 이런 차이로 인한 논쟁이 줄곧 계속되었다고 단언합니다. 이 주제에 관한 레닌과 뜨로쯔끼의 글들이 잇따라 발표됐고,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채 논쟁은 계속되었습니다.

다음은 관련된 몇 가지 사실입니다.

1921년 우리가 신경제 정책을 도입했을 때, 레닌은 다시 사회주의 승리 가능성 문제를 제시했습니다. 이번에는 신경제 정책 노선에서 우리 경제의 사회주의적 토대를 건설할 가능성의 보다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했습니다. 1921년 신경제 정책이 도입되었을 때, 우리 당의 일부, 특히 “노동자 반대파”가 신경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사회주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레닌을 비판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레닌은 당시 연설과 글에서 확실히 대답했습니다. 레닌은 우리가 신경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우리의 진로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건하에서 “노동자계급의 지도 아래” “농민과 함께” “우리 경제의 사회주의적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라고 반복해서 밝혔습니다. (레닌의 ≪현물세≫ 및 신경제 정책에 관한 기타 글 참조.)

 

이에 답하듯 뜨로쯔끼는 1922년 1월 ≪1905년≫의 “서문”을 발표했습니다. 뜨로쯔끼는 이 서문에서 우리나라에서 농민과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했습니다. 왜냐하면 서구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생활은 노동계급과 농민 사이에 적대적 충돌이 연속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뜨로쯔끼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혁명의 첫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지지한 모든 부르주아 그룹과 적대적 충돌[5]강조는 쓰딸린.에 부딪힐 뿐만 아니라, 권력 획득을 지원한 광범위한 농민 대중과도 적대적 충돌을 일으킬 것이다. 농민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후진국에서 노동자 정부가 처한 모순은 오직 국제적 규모,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 혁명의 단계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 (1922년에 쓴 뜨로쯔끼의 책 ≪1905년≫의 “서문”에서.)

 

여기서도 보시다시피 두 개의 다른 주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레닌은 노동자계급의 영도하에 농민과 함께 우리 경제의 사회주의적 토대를 건설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반면에 뜨로쯔끼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농민을 영도하여 농민과 함께 사회주의적 토대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국내 정치 활동은 노동자 정부와 대다수 농민 간의 적대적 충돌로 가득 찰 것이고, 이 충돌은 오직 세계 혁명의 단계에서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더욱이 레닌은 일 년 후인 1922년 모쓰끄바 쏘비에트 총회 연설에서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건설 문제를 다시 제기하였습니다.

레닌은 말했습니다.

 

사회주의는 더 이상 먼 미래도, 추상적인 환영도, 일종의 우상도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상에 대해 매우 나쁘게 생각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왔고, 여기서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한다. 사회주의는 현재의 과제,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확신을 가지고 마무리하겠다. 사회주의 과업이 아무리 어려워도, 과거의 과업과 비교하여 낯설더라도, 아무리 많은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우리는 우리 모두가 함께하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수년이 걸려도 러시아에서 신경제 정책을 완료하고 사회주의 러시아를 건설해 낼 것이다. (Vol. 27, p. 366. 참조.)

 

뜨로쯔끼는 이에 대한 대답인 듯, 혹은 위에서 인용한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인 듯 1922년에 ≪평화 강령≫에 대한 “후기”를 출판했습니다. 뜨로쯔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평화 강령≫에서 여러 차례 반복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는 한 나라 범위 안에서 완수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어떤 독자들에게는 이미 우리 쏘비에트 공화국의 거의 5년에 걸친 경험으로 반박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근거가 없다. 노동자 국가가 한 나라에서 그리고 후진국으로서 전 세계를 상대로 버텼다는 사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엄청난 위력을 증명한다. 이러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위력은 선진적이고 문명화된 나라에서는 참된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 군사적으로는 국가로서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는 도달하지 못했고 심지어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 부르주아지가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한, 우리는 경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 자본주의 세계와 협정에 도달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러한 협정은 기껏해야 우리가 경제적 어려움을 치유하고 어떻게든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러시아 사회주의 경제의 진정한 진전은 주요 유럽 국가 중 한 국가에서라도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한 후에나[6]강조는 쓰딸린.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Trotsky’s Works, Vol. 3, Part 1, pp. 92-93. 참조.)

 

여기서도 보다시피 레닌과 뜨로쯔끼의 대조적인 주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레닌은 사회주의가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에 들어왔고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경제 정책의 러시아를 사회주의 러시아로 바꿀 수 있는 충분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뜨로쯔끼는 우리가 현재의 러시아를 사회주의 러시아로 바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승리하지 않는 한 사회주의 경제의 진정한 진전을 이룰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레닌 동지가 죽기 전에 쓴 “협동조합에 대하여”와 “우리의 혁명”(쑤하노프에 대한 반박)이 있습니다. 이는 논문 형태로 쓴 메모로 레닌의 정치적 유언입니다. 이 두 글에서 주목할 점은 레닌이 우리나라 사회주의의 승리 가능성을 다시 한번 제시하며 의심할 어떠한 여지도 없는 명확한 어구로 제시했다는 데 있습니다. 다음은 “우리의 혁명”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 그들(제2 인터내셔널의 영웅들 ― 쓰딸린)이 서유럽 사회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계적으로 암기한 주장은 한없이 진부하다. 즉 우리가 사회주의를 할 정도로 무르익지 않았고, 그들 중 어떤 ‘신사’들이 말했듯이 사회주의의 객관적인 경제적 전제 조건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인민은 어떠한가라는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지 않는다. 인민은 제1차 제국주의 전쟁이 만들어 낸 혁명적 정세와 마주했다. 인민은 어떠했는가? 인민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투쟁에 뛰어들지 않았는가? 인민은 투쟁으로 문명의 전진을 위한 좀처럼 주어지지 않은 조건을 확보하고 적어도 얼마간의 기회를 잡아냈다. …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일정한 문화 수준이 필요하다면(아무도 그 일정한 ‘문화 수준’이 무엇인지 말할 수는 없지만), 혁명적 방식으로 일정한 문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먼저 확보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고 나서, 노동자 농민의 정권과 쏘비에트 제도에 기초하여 다른 나라를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문명화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좋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먼저 지주와 러시아 자본가를 우리나라에서 몰아내는 문명화의 전제 조건을 만들고 나서 사회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어떤 책에서 이러한 관례적 역사적 과정의 변화가 허용되지 않거나 불가능하다고 하였는가? (Vol. 27, pp. 399-401. 참조.)

 

“협동조합에 대하여”에서 레닌이 한 말을 봅시다.

 

사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국가 권력을 통해 모든 주요 생산 수단을 통제하고 있으며, 수백만의 소농 및 영세농과 동맹을 맺고 농민에 대한 확고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부가 아닌가? 우리가 협동조합을 통해, 오직 협동조합을 통해서, 우리가 행상꾼으로 경멸했던 그리고 신경제 정책하의 지금도 어떤 식으로든 멸시할 이유가 있는 협동조합을 통해서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전부가 아닌가? 이것이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전부가 아닌가? 이것은 아직 사회주의 사회를 수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이다.[7]강조는 쓰딸린. (Vol. 27, p. 392. 참조.)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건설할 가능성, 즉 우리 경제에서 자본주의적 구성 요소에 대한 사회주의적 구성 요소의 승리 가능성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에는 두 가지 노선이 있습니다. ― 동지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 가능성은 우리 경제에서 자본주의적 구성 요소에 대한 사회주의적 구성 요소의 승리 가능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 하나는 레닌과 레닌주의 노선이고, 다른 하나는 뜨로쯔끼와 뜨로쯔끼주의 노선입니다. 레닌주의는 이 문제에 대해 긍정합니다. 반대로 뜨로쯔끼주의는 우리나라에서 우리 혁명의 내부 역량에 의거해서 사회주의가 승리할 가능성을 부정합니다. 첫 번째 노선이 우리 당의 노선이라면, 두 번째 노선은 거의 사회민주주의 노선입니다.

 

이것이 반대파 블록에 대한 테제 초안에서 뜨로쯔끼주의가 우리 당의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이라고 명시한 이유입니다.

이로부터 우리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며, 세계 혁명의 신호이자 추동력이고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기초, 즉 필요하고 충분한 기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의 자본주의적 구성 요소를 극복할 수 있고 극복해야만 하며,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승리가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라 할 수 있습니까? 아니,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본가들을 물리칠 수 있고 사회주의 건설을 완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를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하고, 외국의 무장간섭과 그 결과 낡은 제도의 복구 재건 위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섬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포위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건설하여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를 혁명화하고 있는 상황은 자본주의 세계 전체에 증오와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 세계가 경제적 전선에서 우리의 성공, 즉 전 세계 노동계급을 혁명화하고 있는 성공을 무관심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전히 자본주의에 둘러싸여 있는 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최소한 몇몇 국가에서 승리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의 승리를 최종 승리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건설 사업에서 무엇을 성취했든 우리는 외부 위험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가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최후의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본주의적 포위망을 사회주의적 환경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적어도 몇 개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승리로 이끄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승리가 최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나라 사회주의의 승리를 목적 그 자체로 보거나 자급자족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다른 나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승리를 위한 원조, 수단, 통로로 여기고 있습니다.

레닌 동지가 이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한 국가가 아니라 국가 체제 속에 살고 있기에, 쏘비에트 공화국이 제국주의 국가들과 오랫동안 공존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둘 중 하나는 결국 승리해야 한다. 그 결말이 나기 전까지 쏘비에트 공화국과 부르주아 국가 사이에 일련의 끔찍한 충돌은 불가피할 것이다. 즉 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를 원하고 계속 지배해 나가자면 자신의 군사 조직으로도 그 능력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 (Vol. 24, p. 122. 참조.)

 

이것은 무력 개입의 위험이 존재하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 존재할 것을 보여 줍니다.

자본가들이 바로 지금 쏘비에트 공화국에 대한 심각한 무력 개입을 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두고 볼 일입니다. 여기서 많은 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국가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느냐, 사회주의 대의에 얼마나 헌신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이 자기 나라 자본가에 대한 혁명을 통해 우리 혁명을 지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당분간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전쟁으로 “그들의” 노동자를 불러 세울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노동자의 참여 없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국가와 전쟁을 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의 사회주의 건설 사업을 확인하는 수많은 노동자 대표단을 볼 때 분명합니다. 우리 공화국의 국제적 위상은 이제 이러한 공감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감이 없다면 우리는 이제 많은 새로운 무장 개입의 대상이 되고 건설 사업은 중단되며 “한숨 돌릴” 기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가 지금 당장 우리나라에 무력 개입할 처지가 아니라고 해서 앞으로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어쨌든 자본가들은 잠을 자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 공화국의 국제적 위상을 약화시키고 무력 개입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모든 일을 다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력 개입의 시도나 그 결과 우리나라의 구질서가 복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레닌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옳았습니다.

 

우리 쏘비에트 공화국이 전체 자본주의 세계에서 고립된 변경 지역으로 남아 있는 한, 모든 종류의 위험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망상이자 유토피아적이다. 당연히 이러한 근본적인 적들이 남아 있는 한 위험은 지속될 것이고 우리는 이를 피할 수 없다. (Vol. 26, p. 29. 참조.)

 

그래서 레닌은 이렇게 말합니다.

 

최후의 승리는 세계적 차원에서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노력해야만 달성될 수 있다. (Vol. 26, p. 9. 참조.)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회주의의 승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쟁취하여 사회주의를 완전히 건설하는 것으로 우리 혁명의 내부 힘으로 우리 경제에서 자본주의 구성 요소를 극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회주의의 최후 승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적어도 몇몇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하여 무장 개입과 복구 시도에 대항할 충분한 담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승리 가능성은 한 나라(당연히 우리나라를 의미함)가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내적 모순을 해결할 가능성을 의미하는 반면, 사회주의의 최종 승리 가능성은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외부 모순을 해결할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모순은 여러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결과로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범주의 모순을 혼동하는 사람은 희망 없는 바보이거나 고칠 수 없는 기회주의자입니다.

이것이 우리 당의 기본 노선입니다.

 

3) 러시아 공산당(볼) 제14차 대표자회의 결의

우리 당의 이 노선은 국제 정세, 자본주의의 안정화, 일국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제14차 대표자회의 결의에서 처음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나는 이 결의안이 우리 당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당 문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나라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레닌주의 노선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뜨로쯔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규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결의안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하겠지만 이 결의안은 지노비예프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채택되었다는 점입니다. (대회장이 소란해짐.)

결의안은 일국 사회주의의 승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국 사회주의의 승리(최종 승리의 의미가 아님)는 의심할 여지없이 가능하다.[8]강조는 쓰딸린.[9]≪쏘련 공산당 당 대회, 대표자회 그리고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의 및 결정≫ Part II, 1953, p. 48. 참조.

 

사회주의 최종 승리 문제에 대해 결의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 정반대되는 사회 체제의 존재는 자본주의적 봉쇄, 다른 형태의 경제적 압박, 무장 개입, 복구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을 야기한다. 따라서 사회주의 최종 승리의 유일한 담보이며 복구 저지의 유일한 담보는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하는 것이다.[10]같은 책, p. 49. 참조.

 

그리고 결의안은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과 뜨로쯔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부터 러시아와 같은 후진국에서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발전된 나라로부터 ‘국가적 지원’(뜨로쯔끼) 없이는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결코 내릴 수 없다. 뜨로쯔끼 영구 혁명론의 불가결한 부분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경제의 진정한 진전은 주요 유럽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한 후에나 가능하다’(뜨로쯔끼, 1922년)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현 시기 쏘련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숙명론적 수동성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에 반대하여 레닌 동지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이 서유럽 사회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계적으로 암기한 주장은 한없이 진부하다. 즉 우리가 사회주의를 할 정도로 무르익지 않았고, 그들 중 어떤 “신사”들이 말했듯이 사회주의의 객관적인 경제적 전제 조건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쑤하노프에 대한 노트).’ (러시아 공산당(볼) 제14차 대표자회의 결의안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확대전원회의 결의에 따른 코민테른과 러시아 공산당(볼)의 임무”[11]같은 곳 참조. 참조.)

 

제14차 대표자회의 결의안의 이러한 기본 요점은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더 명확하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결의안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뜨로쯔끼주의를 쑤하노프주의와 똑같이 평가한 구절입니다. 쑤하노프주의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쑤하노프를 반박한 레닌의 글로부터 쑤하노프주의는 사회민주당과 멘쉐비끼의 변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14차 대표자회에서 이 결의안을 지지했던 지노비예프가 나중에 왜 그 결의를 저버리고 뜨로쯔끼와 맞장구를 치며 동맹을 맺은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특히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결의안은 국제 정세에 비추어 볼 때 당의 기본 노선에서 일탈한 두 경향이 당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의안은 이러한 위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국제 무대의 정세를 감안할 때 현 시기 우리 당을 위협할 수 있는 두 가지 위험이 있다. 1) 소극적 경향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안정화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곳곳에서 나타나는 국제적 혁명의 느린 속도 때문이다. 국제적 혁명의 속도가 느려지는데도 쏘련의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결연하고 체계적으로 임할 열의가 부족한 것이다. 2) 민족적 편협성 경향이다.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의무를 망각하고, 쏘련의 운명이 느리지만 발전하고 있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이는 국제 운동이 세계 최초의 프롤레타리아트 국가의 존재, 안정 및 강화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쏘련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러시아 공산당(볼) 제14차 대표자회의 결의안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확대전원회의 결의에 따른 코민테른과 러시아 공산당(볼)의 임무” 참조.)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제14차 대표자회에서 언급한 첫 번째 경향은 우리나라 사회주의 건설의 승리를 믿지 않는 뜨로쯔끼주의자들 사이에 만연한 경향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회의에서 언급한 두 번째 경향은 외교 정책 분야의 일부 관리들 사이에 어느 정도 만연한 우리 혁명의 국제적 전망을 망각하는 경향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때때로 종속 국가에서 “세력권”을 확립하려는 입장을 취합니다.

당 전체와 당 중앙위원회는 이 두 경향을 규탄함으로써 그들이 초래할 위험에 대한 선전 포고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실입니다.

제14차 대표자회의 결의를 지지하는 특별 보고를 하였던 지노비예프가 이후 어떻게 레닌주의 노선인 이 결의안 노선에서 이탈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지노비예프가 당이 민족적으로 편협하다고 비난하면서 레닌주의에서 이탈하고 이 비난을 레닌주의로부터 이탈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동지들, 나는 이제 이 속임수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926년 11월 1일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레닌의 ≪현물세≫에서 관련 장은 “러시아의 현재 경제”이다(V. I. Lenin, Works (4th Russ. ed.), Vol. 32, pp. 308-19. 참조).
2 V. I. Lenin, Works (4th Russ. ed.), Vol. 25, p. 387. 참조.
3, 5, 6, 7, 8 강조는 쓰딸린.
4 Nashe Slovo (우리의 약속)≫. 1915년 4월부터 1916년 9월까지 빠리에서 발행된 멘쉐비끼-뜨로쯔끼주의 신문.
9 ≪쏘련 공산당 당 대회, 대표자회 그리고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의 및 결정≫ Part II, 1953, p. 48. 참조.
10 같은 책, p. 49. 참조.
11 같은 곳 참조.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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