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뒤늦은 신년사를 대신하여] 진실을 밝혀 알리지 않고, 과학에 의거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

― 최근 정세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채만수 | 소장

 

 

으레 그렇고 그렇긴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정초부터 으스산하다.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염두에라도 둔 듯이 새해 첫날 꼭두새벽부터[1]오승훈 기자, “안산 골판지 공장서 40대 노동자 끼임 사고로 숨져…경찰 조사 중”, ≪한겨레≫(인터넷판), 2022. 1. 1. … Continue reading 산재 사망 사고가 나더니, 계속 잇따르고 있다.

자본은 코로나 역병이라는 사태를 ‘과잉노동력’을 이런저런 형태로 정리하는 기회로 삼고 있고, 경찰을 위시한 국가 권력은 ‘방역 준칙’을 내세워 노동자들의 집회ㆍ시위를 금지ㆍ억압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무력화를 노리고 있다. 수십ㆍ수백 명을 무질서한 밀집 대형으로 몰고 다니는 대선 후보들의 거동에는 그 ‘방역 준칙’을 전혀 들이대지 않으면서 말이다.

계속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 역병으로 인한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제한 등의 방역 대책으로 파산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 특히 영세 접객업자들은 ‘못 살겠다’며 들고일어나고 있다.

정치권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치 거물들이 이 당 저 당을 예사롭게 순회하는 것이 이 대한미국 정치의 전통이다시피 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몇 차례의 ‘정권 교체’를 통해서 이미 역력히 경험한 것처럼, 정권을 다투고 있는 자들 중의 어느 자가 대통령이 된들, 혹은 어느 자가 미제의 현지인 총독이 된들 노동자ㆍ인민에게는 분명 그자가 그자일 터이다.[2]구차하지만, 예컨대, 다음 기사도 제목부터 흥미롭지 않은가? 전현진 기자, ““국힘 이재명? 민주 윤석열? 그래도 똑같은” 이상한 대선”, … Continue reading 그런데도 온갖 기만과 헛소리도 모자라 이제 후보와 그 가족의 온갖 추문과 범죄까지 들추며 대중을 우롱해 대는 역겨운 어릿광대들의 뜨거운 대선 흥행몰이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금권ㆍ과두 지배라는 정치 현실에서 누가 보나 그중의 하나가 대통령이 될 게 분명한 자들이 갈수록 더 우측으로 우측으로 달려가는 것이야, 본래 그런 계급성을 지닌 자들인지라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당선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분명 그 곁다리에 불과한 ‘진보’ 후보, “노동의 희망”[3]‘노동’에 무슨 희망이 있고 말고 하겠는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랬으니, “노동자의 희망”으로 읽자.ㆍ“시민의 꿈”ㆍ“정의로운 복지국가”를 간판으로 내건 정당의 후보까지 재벌 총수를 만나, 자신은, 따라서 자신의 당은 결코 ‘반기업’이 아니라 ‘친기업’이니 오해 마시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 등의 거동은, 그렇게 우측으로 우측으로 달려가는 것은 도대체 무슨 연유에서일까? 설마 그렇게 달려가다 보면, 아직 년부력강(年富力強)하니, 극우 이데올로기가 만연한 이 대한미국에서 언젠가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 아니면, 다른 어떤 음흉한 계산?

게다가 유서 깊은 극우 언론들과, 국가 권력의 방치 혹은 사실상의 비호하에 특히 최근 10여 년래에 급격히 그 세를 불린 성조ㆍ태극기 부대들은 갈수록 더욱 광분하면서, 새삼 지난 40년대 말-50년대 초의 저 끔찍했던 학살 정국을 생각나게 하고 있다.

이들 으스산한 사태들 가운데 두어 가지만 간단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속출하는 산재 사망ㆍ사고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에 들어갔지만, 그것이 산재 사망ㆍ사고를 예방ㆍ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무엇보다도 그 법률 자체가, 전적으로 노동자계급으로부터의 압력에 못 이겨 억지 춘향 격으로 제정된 것이어서, 사실상 산업 재해를 예방ㆍ근절하려는 것이기보다는 분명 면피용ㆍ생색내기용이기 때문이다.

만일 면피용ㆍ생색내기용이 아니라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따위의 헐값 목숨의 처벌 수위는 물론이려니와, 어떻게 “상시 근로자가 5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의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을 그 법의 적용에서 영구히 배제(법 제3조)할 수 있으며, 그 “법 시행 당시 개인사업자”(?) “또는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포 후 3년이 경과”할 때까지, 그러니까 2024년 1월 26일까지 법 적용을 유예(부칙 제1조)할 수 있겠는가? 제조업ㆍ건설업을 막론하고, 외주라는 이름의 하청과 재하청이 관행인 것도 큰 몫을 하여서, 산업 재해의 절대 대부분이 영세ㆍ중소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상시 근로자”가 몇 명 미만인 사업(장)?! ― 이것은 그야말로, ‘정규직 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법률의 적용을 피해 가라’는 말씀이지 않은가?! 온갖 재주를 부려서 형식상 혹은 ‘법률적으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라는 교시이지 않은가?[4]예컨대,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기사를 보라. ― 강석영 기자, “직원 800명ㆍ연 매출 300억인데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권리찾기유니온, … Continue reading

이러한 면피용ㆍ생색내기용의 ‘중대재해처벌법’, 아니, 기실 그 내용에서 중대재해처벌회피법이, 우리 사회의 언론에서는 ‘진보ㆍ좌파’로 분류되고, 비판적 정치의식이 높지 않은 노동자ㆍ민중 사이에서도 꽤나 인기가 있는 민주당 정권하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히 그 제정 과정에서는 그 민주당을 대표하여 서울시장에 출마할 만큼 민주당의 총아 중의 한 사람인 박영선 장관의 중소벤처기업부가 ‘상시 근로자’ 5명 미만 사업ㆍ사업장의 적용 배제나 50명 미만 사업장의 2년 유예에 만족하지 못하고, 50명 미만 사업ㆍ사업장은 4년 유예, 300명 미만 사업ㆍ사업장은 2년 유예를 주장하며 앙앙불락했다는 사실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골적인 파쑈 집단, 노골적인 파씨스트들과 대비되는 덕분에 순진한 사람들 사이에 ‘민주적’이라고 꽤나 인기가 있는 저들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한 징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빈발하는 산업 재해 사망ㆍ사고나 그에 대한 대책으로서의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지적과 비판이 여기에 그친다면, 그것은 문제를, 그 진실을 결코 근본적으로, 즉 뿌리로부터 파악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없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 그 물질적인 힘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힘이 대중으로부터 나올 수 있기 위해서는 대중이 그 문제, 그 진실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맑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비판의 무기는 물론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고,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서 전복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하지만 이론 또한 그것이 대중을 사로잡자마자 물질적 힘으로 된다. 이론은 그것이 사람들에게 입증되자마자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으며, 이론은 그것이 근본적(radikal)으로 되자마자 사람들에게 입증된다. 근본적이란 사물을 뿌리에서 파악하는 것이다.[5]칼 맑스,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 MEW, Bd. 1, S. 385.; 최인호 역,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1권, 박종철 출판사, p. 9.

 

이른바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서, 혹은 그것을 보다 강화하거나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산업 재해를 예방ㆍ근절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고에 근거하고 있을 것이다.

 

… “한해 900여 명에 이르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건설업 떨어짐 사고와 제조업 끼임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관건”… “철저한 감독ㆍ점검과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기술ㆍ재정지원이 필요하다”….[6]김학태, “떨어짐ㆍ끼임 사고만 막아도 산재 사망사고 확 줄인다―한해 사고사망 절반 차지…건설업ㆍ제조업ㆍ서비스업에서 주로 발생”, … Continue reading

 

즉, “철저한 감독ㆍ점검과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기술ㆍ재정지원”이 있으면, 산재 사망 사고를 예방ㆍ근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리(一理)는 있는 말이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제4조)를 규정하고 있고, “정부의 사업주 등에 대한 지원”(제16조) 등을 규정하고 있는 것도 필시 그러한 사고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법률은, 한편에서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행한 경우에는 제3자의 종사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제4조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다만,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한정한다”(이상, 법률 제5조)고 규정하고 있다. 대자본에게는 사실상 면책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을 결코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미 본 것처럼, 예의 법률은 그 적용 유예 기간도 규정하고 있고, 특히 영구 배제 규정도 두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그것은, “철저한 감독ㆍ점검과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기술ㆍ재정지원”이 있으면, 산재 사망 사고를 예방ㆍ근절할 수 있다고 내세우면서도, 사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즉, 이 자본주의적 생산을 전제하고서는 산재의 예방근절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저들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저 ‘중대재해처벌법’이란 것은 사실은 다분히 그러한 진실을 가리기 위한 장치, 면피용 장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본주의적 생산을 전제하고서는, 아무리 “철저한 감독ㆍ점검과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기술ㆍ재정지원”을 떠들어 봐도, 그리고 처벌을 떠들어 봐도, 그러한 법률의 시행을 통해서 산재 사망ㆍ사고의 수를 다소 줄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근절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무엇보다도 잉여노동=잉여가치=이윤을 위한 생산이며, 거기에서는 크고 작은 자본=자본가에게 경쟁이 외적 강제법칙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7]이에 대한 맑스와 엥엘스의 수많은 지적 중에서 하나만을 여기에 인용하자면 이렇다. ― “자본은, 사회에 의해서 강제되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 Continue reading

따라서 선진적 노동자들의 임무는, 저들이 은폐하고자 하는 진실을 노동자 대중에게 명시적으로 밝혀 알리는 것이다. 잉여노동=이윤에 대한 탐욕과 경쟁이라는 강제법칙이 지배하는 이 자본주의적 생산을 전제하고서는 산업 재해의 근절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노동자 대중에게 명시적으로 밝혀 알려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주의적 생산을 전제하고서는 산업 재해의 예방ㆍ근절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은 정초 1월 11일에 발생하여 6명을 사망케 한, 광주 서구 화정동의 39층 초고층 아파트의 신축 중 붕괴 사고도 여실히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이 아파트의 시공사는 다름 아닌 불과 6개월여 전인 지난해 6월 9일에 역시 광주(동구 학동)에서 철거 중의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 통칭 ‘학동 참사’를 일으켜 17명의 사상자(9명 사망, 8명 부상)를 낸 바로 그 자본인 HDC현대산업개발, “2021년 국내 건설사 시공능력평가에서 9위에 오를 정도인 국내 굴지 건설사[8]강현석 기자, “‘무법’ 현대산업개발…붕괴 현장서만 행정처분 14번ㆍ민원 324건”, ≪경향신문≫(인터넷판), 2022. 1. 12. … Continue reading인 현대산업개발인데, 자본의 이익을 전투적으로 옹호하는 대표적인 언론인 ≪조선일보≫조차 당시 사고의 원인을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 “경찰 수사 결과 건물은 해체계획서를 따르지 않은 철거로 인해 불안해진 구조가, 속도와 비용 절감에 중점을 둔 공사 방식을 버티지 못해 무너진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참사는 하도급 업체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은 최종 책임을 피하지 못했고 현재 소속 관계자 등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9]문지연 기자, “작년 ‘광주 붕괴참사’ 그 건설사였다…시민들 “또 부실이냐” 패닉”, ≪조선일보≫(인터넷판), 2022. 1. 11. … Continue reading 결국, 이윤, 그것도 최대한의 이윤에 눈이 어두워, “속도와 비용 절감에 중점을 둔 공사 방식”, 바로 그것이 ‘참사’의 원인이었던 것이고, “HDC현대산업개발은 … 책임을 피하지 못했고 현재 소속 관계자 등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언론의 보도들에 의하더라도, 나흘 혹은 대엿새마다 한 층씩 쌓아 올렸다는 “속도와 비용 절감에 중점을 둔 공사 방식”뿐 아니라 헐값의 온갖 불량 자재들을 사용하고, 그것들마저 아낀 것 등[10]예컨대,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도 “유형이 다르기는 하지만, 붕괴사고가 7개월 만에 두 번씩이나 발생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시공사가 … Continue reading이, 즉 이윤에 대한 자본의 제어할 수 없는 탐욕이 사고의 원인이었음은 물론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잉여노동=이윤에 대한 탐욕과 경쟁이라는 강제법칙이 지배하는 이 자본주의적 생산을 전제하고서는 산업 재해의 예방ㆍ근절은 결코 불가능하다. 따라서 선진 노동자들은 그러한 진실을 노동자 대중에게 분명하게 밝혀 알려야 하고, 그것이 대중적 의식으로 각인될 때까지, 그리하여 대중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철폐라는 근본적 해결책을 위해 떨쳐나설 때까지 거듭거듭 밝히고 알려야 하는 것이다.

 

 

역병과 방역 정책, 그리고 자본주의

 

코로나-19 대역병이 장기간 창궐하면서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특히 거리두기, 영업시간 제한 등의 방역 수칙의 영향으로 폐업ㆍ파산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수십만 ‘자영업자들’의 저항, 방역 수칙을 완화하고, 방역 정책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라는 저항ㆍ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우선,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COVID-19)라는 대역병은, 따라서 그에 대응하는 백신 접종도, 모두 모종의 음모여서 그 사망자 수와 백신의 효과를 엄청나게 과장하고 있으며, 백신의 부작용에 의한 사망자 수는 축소ㆍ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 심지어는 전문가를 자처하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방역 수칙들 역시 부당하기 그지없는 모종의 음모의 발현일 것이다.

세상에 어떤 무한한 힘을 가진 존재가 있어서, 정치적ㆍ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로 심각하게 대립ㆍ갈등하고 있는, 이 시대의 사실상 모든 국가ㆍ정부들을 그러한 음모의 그물 속에 몰아넣을 수 있는지 그들에게 해명을 요구해 본들 합리적 대답을 들을 수 없다. 그러니, 국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숨은 권력 집단이라는 소위 딥스테이트(deep state)를 넘어, 보이지 않게 숨어서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말하자면, 딥글로브(deep globe)라도 있는가 보다라고 치부해 둘 수밖에 없다.

그건 그런데 ‘못 살겠다’고 아우성치며 들고일어나고 있는 저 ‘자영업자들’이 딥글로브의 음모와 그 피해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한 고상한 동기로부터 그러는 것이 아님은 누구의 눈에나 명백하다. 그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은 방역 수칙의 영향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 생존의 위협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우선, 코로나-19라는 역병의 기세에 비추어, 지금까지의 그리고 현재도 실행되고 있는 거리두기나 인원ㆍ영업시간 제한 등의 방역 수칙들이 과연 과도한 것들인가 하는 것일 것이다.

우선, 이 대역병 코로나-19의 발생 초기에, 예컨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아니 여기 대구 지역에서 단기간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죽어 나가던 끔찍함을 상기해 보자. 그러한 상황 속에서 철저한 거리두기, 격리, 그 일환으로서의 접객업소의 인원ㆍ영업시간 제한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다른 것도 아니고, 공기를 통해서, 호흡기를 통해서 전파되는 치명적인 전염병인데?

코로나-19와 같은, 공기ㆍ호흡기로 전파되는 치명적 전염병에 대한 방역 대책으로서 마스크 쓰기는 물론, 철저한 거리두기, 격리, 그 일환으로서의 접객업소의 인원ㆍ영업시간 제한 등은, 비전문가의 판단으로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광범한 백신 접종을 핑계로, 그리고 지배종이 된 오미크론 변종이 전파력은 강하지만 중증화율ㆍ치명률은 다소 낮아졌다는 구실로, 최근 들어 방역 수칙을 폐기하면서 이른바 ‘일상으로의 회귀’를 선언하고 나서는 나라들이 등장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유사한 조치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과연 의학적 관점에서 올바른 조치일까?

분명 아닐 것이다. 치명률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전파력이 아주 강해서 엄청난 수의 환자가 발생하면서 사망자의 절대 수가 결코 감소하고 있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한국 시간 2월 16일 현재에도, 보고되고 있는 숫자[11]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만으로도, 세계적으로 매일 2백만 명 내외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여 1만 명 내외가 죽어 나가고 있으며, 누적 확진자 수는 4억 1,633만 명을, 누적 사망자 수는 585만 명을 훌쩍 넘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방역 조치의 해제, 완화는 분명 의학적 관점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거리두기 등의 방역 조치들이 장기화함에 따라 격화되고 있는 사회적ㆍ정치적 갈등을 완화ㆍ미봉하려는 관점에서의 조치일 것이다. 그런데 그 정치적ㆍ사회적 갈등의 대부분은 다름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감히 말하지만, 코로나-19에 의한 전염병이 현재와 같은 세계적 대역병으로 되어 엄청난 희생자를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 그 생산ㆍ사회관계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야말로 어느 부르주아 국가ㆍ정부도, 어느 부르주아 언론도 결코 털어놓지 않는, 대역병화(化)의 주요 원인이요, 그에 대한 침묵은 그들 간의 계급 본능적ㆍ무언의 음모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폭로하고 타파해야 할 음모는 대역병의 사회적 원인에 대한 침묵이라는 저들 부르주아지의 계급 본능적ㆍ무언의 음모이지, 코로나-19 대역병은 사실이 아니고 감기와 유사한 것에 불과한 것이며 현재의 백신은 효과는 없고 해롭기만 한 것인데 모종의 음모에 의해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따위의 망상에 기초한 음모, 말하자면, ‘딥글로브’의 음모가 아니다.

대역병화의 주요 원인이 자본주의적 사회 체제, 그 생산ㆍ사회관계에 있다는 데에 대해서 좀 더 논의해 보자.

우선, 코로나 바이러스를 포함해서 전염병의 원인균인 여러 바이러스나 세균의 발생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에 따른 자연 파괴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물론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들에서도 그러한 바이러스나 세균과 그로 인한 대역병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난 후의 보다 고도의 사회,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그러한 바이러스ㆍ세균의 발생이나 그로 인한 전염병의 발생을 전적으로 봉쇄할 수는 필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바이러스나 세균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어떤 전염병이 발생하더라도, 그 병이 대역병, 현대 진서(眞書)로 말해서, 팬데믹(pandemic)으로 발전하는 것은 역사적ㆍ사회적이다.

예컨대, 코로나-19에 의한 현재의 역병처럼 주로 공기를 통해서, 즉 호흡기를 통해 전염되는 병은, 사회 전체적으로 일정 기간 철저하게 격리ㆍ거리두기를 하면, 그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임은 당연하다.

그런데 중세나 그 이전에는 과학 일반과 의학의 미발달로 전염병의 원인ㆍ성격과 그 전파 경로ㆍ원인을 알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전염병이 발생하면 그것이 대역병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무지 위에 번성하는 미신, 즉 종교가 주요한 역할을 했다. 백신도 없었고 유효한 치료제도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철저한 격리, 철저한 거리두기로도 역부족인 상황에서, 순전히 무지 때문에, 그것도 종교 집단들에 의해서 대대적으로 조장되는 무지ㆍ미신 때문에, 종교가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던 특히 중세 유럽에서처럼, 집단적으로 모여서 존재하지도 않는 귀신에게 목숨을 구걸한 것이 전염병 확산의, 즉 대역병의 주요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현대에는 과학 일반과 함께 의학도 발달할 대로 발달해 있어서, 어떤 전염병이 발생하면, 그 전염병의 원인과 성격이 사실상 즉각 파악되고, 따라서 그 확산을 방지할 방법ㆍ대책도 즉각 밝혀진다. 과학이 명하는 대로 하면, 어떤 전염병도 별다른 희생 없이 그 발원 초기에 충분히 차단하고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코로나-19에 의한 전염병이 대역병으로 발전하여 수억 명의 확진자와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내면서, 발생 후 2년이 훨씬 지난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는 데에는, 한편에서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이번 대역병의 발생 초기에 ‘신천지 사태’ 등에서 여실히 경험한 것처럼, 이 대명천지에도 여전히 그 완강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는 종교, 특히 하 씨 종교가 조장하는 무지가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본주의적 경제ㆍ사회관계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의료 체계가 대부분 사적 이윤을 위한 그것인데다가,[12]세계 최대ㆍ최고의 부와 첨단 과학, 첨단 의료 기술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 사태, 즉 코로나-19에 의한 대역병 발생 불과 … Continue reading 다름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본주의적 경제ㆍ사회관계 자체가 철저하고 효과적인 거리두기, 방역을 불가능하게끔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늘날 폐업ㆍ파산의 위기로 몰리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이 조건 속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손님을 받아 가능한 한 밤늦게까지 영업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적 무지가 완강하게 유지ㆍ조장되는 것도, 여러 교회나 종교 단체가 집단 발병의 근거지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은 모두 바로 돈,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해진 바로 그 ‘웬수의 돈’ 때문이지 않은가!)

게다가, 특히 유럽이나 아메리카, 그리고 기타 지역의 몇몇 국가들이나 도시들에서는 고상하게도 개인의 자유ㆍ선택권 등을 내세우면서 백신 접종이나 방역 수칙 강제에 저항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곤 한다.

개인의 자유! 개인의 선택권! ― 좋은 말이다! 그러나 그 나라, 그 도시들에서 하루에도 수십ㆍ수백 명이, 많게는 수천 명이 이 대역병으로 죽어 나가고 있는 마당에, 그 ‘개인’의 자유, ‘개인’의 선택권을 우선시ㆍ절대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철저하게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 그렇게 움직이도록 강제되는 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보다 고도의 사회,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그렇게 반사회적이고 오직 개인주의적인 ‘자유’, ‘선택권’을 들고 나설까? 혹은 치명적인 전염병 자체를 부정하고 백신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음모의 소산이라고 주장하는 일종의 사회적 정신병이 과연 그러한 사회에서도 발생하고 일정한 힘을 얻을 수 있을까?

한편,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렇지 않아도 과잉생산에 따른 장기간의 불황에 시달리던 경기가 대역병의 발발로 더욱 타격을 받자 그것을 기화로, 자본의 구제에는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으면서도, 그 때문에 파산에 내몰리고 있는 자영업자들이나 해고ㆍ실업 등 더욱더 빈곤에 시달리는 노동자ㆍ인민을 지원ㆍ구제하는 데에는 심히 인색하게 굴고 있다. 극도로 심화되는 빈곤, 파산 위기에 대한 저항이 자칫 대대적인 폭동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우리도 절실히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재난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생색을 내며 찔끔찔끔 돈을 뿌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경우, 대선을 앞두고 매표를 위해서 여야 정치가들이 ‘추경 편성’ㆍ‘추경 확대’ 운운은 하지만, 책임감에 투철한 정부의 고위 관리 나리들도, 사회 정의의 파수꾼인 자본의 언론도, “과도한 적자예산으로 미래 세대에 과도한 빚을 넘겨줄 수 없다”면서, 지극히 인색하게 굴고 있지 않은가!

“과도한 적자예산으로 미래 세대에 과도한 빚을 넘겨줄 수 없다”? ― 참으로 책임감 있는 자세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그리하여, 파산으로 내몰리는 자영업자들, 더욱더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빈곤한 노동자ㆍ인민의 고통에 가슴이 아파 재정 지출의 확대를 통한 구제를 주장하는 ‘진보적인’ 논객들조차 “미래 세대에 과도한 빚” 운운하는 주장에, “다른 선진국들의 재정적자 비율, 그 규모에 비추어볼 때” 운운하면서 반론을 펴고 계시는 게 고작이다. “과도한 적자재정으로 미래 세대에 과도한 빚을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는 근본 전제(前提)를 저들 자본, 자본의 대리인들과 공유하면서 그렇게 옹색하게 대응ㆍ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도한 적자재정으로 미래 세대에 과도한 빚을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는 따위의 그럴듯한 주장은 사실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그에 따른 자본주의적 부기(簿記)를 전제할 때에만 그렇게 그럴듯하게 보인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의 신성불가침성이라는 전제를 공유한 그러한 ‘진보적인’ 대응과 주장은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에게, 그들 글품팔이들ㆍ말품팔이들에게 맡겨 두면 충분하다. 선진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신성불가침성이라는 전제를 버리는 순간 “미래 세대에 과도한 빚” 따위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헛소리인가를 폭로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생산력이면, 사회 체제만 바꾸면, 어떻게 그리고 왜 “미래 세대에 과도한 빚” 따위의 황당한 걱정 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지, 아니, 영위하게 되는지를 밝혀야 한다.

이 문제는, 이번 대선에서, 적어도 이 사회의 제도 언론에 의해서는, 이 시대 이 사회 진보 진영의 대표 주자로 대접받고 계시는 한 후보께서, 어느 후보도 ‘연금개혁’이라는 말만 할 뿐 선뜻 제시하지 못하는 ‘연금개혁안’을 자신과 자신의 당이 제시했다고 자랑하는 그 ‘연금개혁안’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고찰하면서 함께 언급하기로 하자.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해 미래세대 부담 줄이겠다”?

―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무리 대선 정국이라고 하지만, 이 사회의 누구나 다 아는, 이재명ㆍ윤석열ㆍ안철수라는 그렇고 그런 보수 혹은 극우 후보들, 그런 정치 거물들의 언동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언급하는 것은 부질없을 뿐 아니라 역겨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언동에 대해서는 자본가계급의 민주주의를 위한 상업적 언론들이 대대적ㆍ선정적으로 보도하고 있고, 소부르주아 언론ㆍ논객들이 자못 진지하고 비판적으로 보도ㆍ분석하고도 있으니, 역시 그들에게 맡겨 두면 충분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우리 사회의 ‘진보’ 후보, 즉 “노동의 희망”ㆍ“시민의 꿈”ㆍ“정의로운 복지국가”를 간판으로 내건 진보 정당의 후보가 볏을 꼿꼿이 세우며 자랑하는 ‘연금개혁’ 구상의 성격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자.

논평이 구상 당사자가 듣기에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근거 없는, 부당한 정보에 기초한 비난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 논조로 보아 그와 그의 구상에 결코 비판적이지 않은, 아니 호의적으로까지 보이는 한 보도를 우선 인용해 두자.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7일 “비록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국민 여러분께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연금개혁’ 공약을 대선후보들 중 처음으로 발표한 것이다.

심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90년대생이 묻다, 우리 연금 받을 수 있나요?’ 간담회를 열고 “사실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떤 방향의 개혁이냐이다”라며 “이번 ‘개혁 합의’가 대선후보의 면피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실질적 논의를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부터 연금개혁의 방향을 제안하겠다”며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을 골자로 한 연금개혁 공약을 발표했다.

심 후보는 연금개혁의 핵심 논점으로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 높은 노인빈곤에 대응하는 노후소득보장 강화, 그리고 연금 간 형평성을 위한 연금통합”을 꼽았다.

이를 바탕으로 심 후보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인상해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여가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때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 없이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노후에 받는 연금액의 비율)을 올리겠다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심 후보는 “현행 국민연금 제도는 받는 급여에 비해 내는 기여가 낮아 수지불균형이 무척 크다. 게다가 인구는 빠르게 줄어들고 고령화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지금 상태를 그대로 두면 미래세대는 수지불균형 문제와 초고령화 부담을 함께 지게 된다”고 짚었다.

이어 “현재 보험료율 9%는 직장가입자의 경우 1998년 수준 그대로이다. 그 사이 소득대체율을 인하하는 재정안정화가 진행되긴 했지만 그래도 급여 수준에 비하면 보험료율은 매우 낮다. 연금 선진국들은 비슷한 급여를 적용받으며 우리보다 2배 안팎의 보험료를 내고 있다”며 “이러한 수지불균형이 사실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하향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 후보는 “2023년이면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발표된다. 2055년에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된다는 국회예산정책처의 전망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더 이상 보험료율 인상을 미룰 수 없다.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우리 세대의 책임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13]최지현 기자, “심상정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해 미래세대 부담 줄이겠다”―‘90년대생이 묻다, 우리 연금 받을 수 있나요?’ 질문에 답하다”, … Continue reading (강조는 인용자.)

 

우선, “90년대생이 묻다, 우리 연금 받을 수 있나요?”라는 간담회? 그러고는 우리 세대, 미래 세대 타령! ― 심 후보께서도, 그러니까 정의당도 요즘 MZ세대 운운하며 유행하는 이른바 세대론, 사실은 분할지배의 전략에 따라 자본과 그 이데올로그들이 음흉하면서도 조직적으로 조장, 확산시키고 있는 세대 간 이해 충돌론에 편승했음을 알 수 있다. 이 편승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자알~ 논다!”라는 말 이외에.

아무튼 그리하여, 무척 길게 인용했지만, 그가 혹은 그 당이 지향하는 ‘연금개혁’의 중요하다는 방향 혹은 그 골자는, “지금 상태를 그대로 두면 미래세대는 수지불균형 문제와 초고령화 부담을 함께 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보험료율 인상을 미룰 수 없으며,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우리 세대의 책임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름 아니라, 빈곤에 시달리는 노동자ㆍ인민을 지원ㆍ구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당장 코로나-19에 의한 대역병의 여파로 폐업ㆍ파산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자영업자 등을 지원ㆍ구제하기 위해서 재정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가 주장이 나올 때마다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 강한 정부나 극우 언론들이 내세우는 논거와 하나도 다름이 없는, 미래 세대에 아주 책임감 강한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 우리의 얘기를 하기 전에 이러한 연금개혁 구상에 대해 제출된 흥미로운 ‘비판’ 하나를 소개해 보자.

 

노인빈곤해소와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연금공대위)는 11일 성명을 내고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의 연금개혁 공약에 대해 “보수정당의 하향식 재정안정화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 절하했다.

심 후보는 지난 7일 △국민연금의 보험료 인상 △기초연금 40만 원 인상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국민연금 방식으로 통합 △기초ㆍ국민ㆍ퇴직연금을 종합하는 다층연금체계 구축 등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연금공대위는 “연금통합개혁론을 말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팩트 체크도 하지 않은 개혁론은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 공무원노동기본권을 연금개혁의 교환대상으로 치부했다는 것 자체가 과연 진보정당으로서 얼마나 정의로운지 그들 스스로 성찰해야 하는 상황이 개탄스러울 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정의당에서 말하는 연금통합론은 보수정당에서 주장하는 ‘연금재정 안정화론’과 한 치의 다름도 없는 주장”이라며 “오히려 우리 사회의 빈곤문제 해결과 노후 소득보장 강화는 공적연금의 상향식 개혁임을 주장해야 할 정의당이 세대 갈라치기와 계층 갈라치기를 통한 하향식 연금개혁을 주장하는 꼴이 되었음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공적연금 상향과 노후소득보장 방안 등의 연금개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도록 가입자(수급권자)ㆍ사용자(수급자)ㆍ정부가 모두 참여해 대안을 함께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며 “이것이 청년과 미래세대를 위한 책임 있는 연금개혁”이라고 주장했다. ….[14]이정현 기자, “연금공대위 “심상정 연금개혁 공약, 세대ㆍ계층 갈라치기…보수정당 주장””, ≪뉴스1≫, 2022. 2. 11. … Continue reading

 

국민연금의 보험료 부과 기준 월소득 상한액은 현재 524만 원이어서,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의 그것보다 훨씬 낮은데도 그들 연금을 “국민연금 방식으로 통합”하겠다는 점에 주목하여, “우리 사회의 빈곤문제 해결과 노후 소득보장 강화는 공적연금의 상향식 개혁임을 주장해야 할 정의당이 … 하향식 연금개혁을 주장하는 꼴이 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즉, 체제 내에서의 개혁안으로서도 심상정ㆍ정의당의 연금개혁안이 얼마나 함량 미달인가를 지적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보험료 부과 기준 월소득 상한액이 524만 원이라는 것은, 월소득이 524만 원인 가입자든, 1천만 원이나 2천만 원, 3천만 원, 혹은 그 이상인 가입자든 똑같이 471,600원(5,240,000×9%)의 월보험료를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무리 자본주의 체제 내의 개혁안, 자본주의 체제의 존속을 전제한 개혁안이더라도, 다소라도 진보적이려면 부과 기준 상한액의 철폐를 주장했어야 했고, 보험료 지급 상한액의 설정을 제시ㆍ주장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보다 더 진보적이라면, 보험료 납부의 소득 연계 누진제를 주장했어야 하고, 나아가서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자에 대해서는 고율의 누진제를 주장했어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위 ‘연금공대위’의 비판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선, 비판이랍시고 “세대 갈라치기와 계층 갈라치기를 통한 하향식 연금개혁을 주장하는 꼴이 되었음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운운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 ‘세대 갈라치기’도, ‘계층 갈라치기’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계층 갈라치기’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야말로 이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된, 착취와 억압의 사회라는 것을 은폐하기 위한 부르주아지의 기만적 ‘국민 통합’ 운운에 영혼을 빼앗긴 극히 반동적인 언사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세대 갈라치기”를 한다고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청년과 미래세대를 위한 책임 있는 연금개혁” 운운? 그것은 결국 자신들 역시 자신들이 비판하고자 하는 상대와 동일한 기반, 즉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의식’이라는 동일한, 가상(嘉尙)한 전제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의식’! 그 동기가 가상하긴 하지만, 독일과 영국의 속담처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그런데, 심상정ㆍ정의당의 ‘연금개혁’ 구상이 아무리 엉뚱한 소리, 아무리 “보수정당에서 주장하는 ‘연금재정 안정화론’과 한 치의 다름도 없는 주장”이라고 할지라도, 그 엉뚱한 소리, 그 주장은 결코 저 ‘연금공대위’가 ‘비판’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과연 진보정당으로서 얼마나 정의로운지 그들 스스로 성찰해야 하는 상황이 개탄스러울 뿐”인 게 아니다. 즉, 그것이, “보수정당에서 주장하는 ‘연금재정 안정화론’과 한 치의 다름도 없는 주장”인, 상향식이 아니라, 하향식 ‘연금재정 안정화론’이라서 개탄스러운 게 아니다.

심상정ㆍ정의당의 ‘연금개혁’ 구상이 개탄스러운 것은, 그것이, 상향식이든 하향식이든, 철저히 자본주의 체제 내적인 구상으로서 현대 사민주의 정당의 반동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진한 노동자ㆍ인민의 시야ㆍ사고ㆍ상상력을 자본주의라는 체제 내에 가두어, 이미 웃살아도 한참을 웃산, 착취와 억압의 자본주의 체제를 연명하는 데에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것이 재정 지출 확대, 즉 적자 재정의 문제이든, ‘연금재정 안정화’의 문제이든, 저토록 ‘미래 세대의 부담’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면, 어떨까?

 

―― “가령 노동자ㆍ인민의 생활 안정을 위하여 재정 지출ㆍ적자 재정을 대폭 확대하고, 그리하여 노동자ㆍ인민이 그 소비를 증대할 수 있어 생활 상태가 다소라도 개선된다면, 그 노동자ㆍ인민은 과연 미래 세대가 생산할 재화를 미리 소비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미래 세대는, 선대가 ‘앞당겨 소비한’(!) 것들을 벌충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만큼 더 많은 부담을 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그만큼 더 많이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광인 그것도 정말 요~상한 광인이 아닌 한,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재정 지출ㆍ적자 재정을 확대하더라도, 그리하여 아무리 노동자ㆍ인민의 소비가 증대하고 그 생활 상태가 나아지더라도, 생활 상태의 개선을 위하여 그들 노동자ㆍ인민이 소비하는 것은 당대의 노동자ㆍ인민 자신들이 생산하는 것들이지, 아직 생산되지도 않은 미래 세대의 생산물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방금 질문은 재정 지출의 확대, 따라서 적자 재정의 문제였지만, 이른바 ‘연금기금’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연금지급액의 인상 등으로 ‘연금기금’이 ‘고갈’되면, 국가 재정에서 보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15]이백윤 ‘사회주의’ 후보도 민주노총 주최의 ‘진보정당 대선후보 정책토론회’(2월 10일)에서 특수직연금과 관련, 그것이 “부족하다면 … Continue reading 그리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보충할 수밖에 없고, 보충하고 있다. 연금기금의 문제는, 본질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재정의 문제와 같은 것이어서, 재정으로 통합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아무튼 그런데도 재정 지출의 확대, 적자 재정의 문제만 나오면, ‘미래 세대의 과도한 부담’ 운운하는 광인적 담론이 활개를 친다. 아니, 사실은, 대자본의 공황 구제를 위한 재정 지출의 확대, 적자 재정에 대해서는 “시급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운운하며 아우성치는 언론과 정부 등이, 노동자ㆍ인민 구제를 위한 재정 지출의 확대, 적자 재정의 문제만 나오면, “미래 세대에 과도한 빚”이니, “미래 세대에 과도한 부담”이니 하면서, 가히 광인적 헛소리, 그것도 요~상한 광인적 고결한 헛소리들을 해 댄다. 그리고 앞에서 본 것처럼, 소위 ‘진보적인’ 논객들조차 그러한 광인적 헛소리에 대한 반론이랍시고, “다른 선진국들의 재정적자 비율, 규모에 비추어볼 때” 운운하시며 본질적으로 동일한 헛소리를 해 대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문제를 위의 질문처럼 제기하면 그토록 명확히 답이 보이는데, 도대체 왜 현실의 언론ㆍ담론에서는 그토록 요~상한 광인적 헛소리로 둔갑하는 것일까?

숨겨진 동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착취ㆍ지배 체제를 유지ㆍ관리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려는 자본가계급의 열망, 즉 더 많은, 최대한의 잉여노동을 축적하려는 자본의 탐욕이다. 자본과 그들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대표자들은, ‘미래 세대에 부담’ 운운하고, ‘국민의 세금 부담 증대’ 운운하지만, 재정 지출의 확대, 적자 재정의 증대로 세금을 더 걷어야 하게 되면, 자신들이 착취ㆍ취득한 잉여가치의 더 많은 부분이 세금으로 징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즉, 직접적이든 노동자들을 경유해서든, 자신들이 취득한 잉여가치의 더 많은 부분이 당장 세금으로 징수되어야 하고, 증대된 재정 지출로 조금이라도 나아진 노동자ㆍ인민의 생활 상태가 새로운 ‘정상적인 것’으로 되면, 그렇게 증대된 세금 역시 ‘정상적인 것’으로 된다는 것을, 그리고 자칫 그러한 상승 과정이 일종의 관례로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주지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의 생산물과 그 가치는 자본가에 의해서 전유(專有)되고, 거기에서 임금이 지불된다. 그런데 세금이 오르면, 그리하여 노동자들이 내야 할 세금이 오르면, 임금 또한 여하튼 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임금이란 노동력의 재생산비여서, 그 크기에 탄력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일정 수준 이하로 그것을 내려 누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가치생산물(=부가가치) 중에서 최대한의 부분을 잉여가치=이윤으로서 착취하려는 자본가계급, 그리고 그들과 잉여가치의 일부를 공유하는 지주계급 등이 그토록 증오하는 ‘임금 인상’, 게다가 전반적인 ‘임금 인상’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빈곤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는 노동자ㆍ빈민을 구제ㆍ지원하기 위한 재정 지출의 확대가 제기될 때마다 ‘미래 세대에 과도한 빚을 넘겨준다’느니, ‘국민의 부담 증대’니 운운하며 아우성치고 나서지만, 그때 그 ‘국민’이란 바로 잉여가치의 착취자들 자신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즉, 직접적으로 재정의 형태를 취하든, 연금기금이라는 간접적인 형태를 취하든, 모두 노동자ㆍ인민에게 견디기 어려운 빈곤을 강요하면서 착취자들 자신의 체제 관리ㆍ유지 비용을 절약하려는 탐욕의 위장된 표현이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노동의 희망” 따위의 깃발을 내걸고 이 시대, 이 사회에서 진보적이기로 호가 난 저 정당, 저 당의 대통령 후보께서는 “연금개혁” 운운하면서 그 음흉한 위장에 더욱 부정직한 형태로, 따라서 그 의미하는 바를 알고 보면 가증스러운 형태로 가담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그러한 위장, 가능한 한 화려한 위장을 통해서 노동자ㆍ인민 대중을 기만하고, 그리하여 그들의 계급 투쟁을 무기력화ㆍ해체하는 역할을 노는 것이 바로 현대 사회민주주의 정당,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떠맡은 사회적 임무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이 재정 적자든, 고갈된다는 연금기금이든, 그 적자ㆍ고갈을 통해서 ‘미래 세대’에게 전가하는 부담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미래 세대가 생산해야 하는 것을 앞 세대가 먹어 치우는 게 결코 아니며, 그렇게 먹어 치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재정 적자 등이 후세대에게 무언가를 전가한다는 환상이 생기는 것은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그에 따른 부기 방식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폐지되면,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부기 방식이 사라지면, 그러한 환상도 사라진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폐지된 사회라면, 그해 그해의 사회적 총생산물은 다음과 같이 처리ㆍ소비된다.

 

[우선: 인용자] 거기에서 다음의 것들이 공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로: 소모된 생산수단들을 대체하기 위한 부분.

둘째로: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추가분.

셋째로: 재해, 자연현상에 의한 교란 등에 대비한 예비기금 혹은 보험기금.

총생산물의 다른 부분은 소비수단으로 이용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인용자] 개인적으로 분배되기 전에, 이것에서 다시 다음의 것들이 제외된다:

첫째로: 직접적으로 생산에 속하지 않는 일반적인 관리비용.

이 부분은, 오늘날의 사회에 비하면,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인용자] 처음부터 극히 현저하게 제한될 것이며, 새로운 사회가 발전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둘째로: 학교, 보건시설 등과 같이, 필요를 공동으로 충족시키도록 되어 있는 것.

이 부분은, 현재의 사회에 비하면, [사회주의ㆍ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인용자] 처음부터 현저하게 증대하며, 새로운 사회가 발전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증대한다.

셋째로: 노동 불능자들 등을 위한 기금, 요컨대, 오늘날 소위 공적 빈민구제에 속하는 것.[16]칼 맑스, “[부록2] 고타 강령 비판”, ≪공산당 선언≫, 채만수 역, 노사과연, 2022, pp. 143-144.

 

그러고서 이후에 남는 것들이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아직 구사회의 모반(母斑)이 남아 있고 생산력이 비교적 낮은 단계에서는 각자의 노동에 따라서,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한 높은 단계에서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분배’된다.[17]같은 글, 같은 책, pp. 144-148 참조.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ㆍ생산 양식만 폐지되면, 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류가 획득한 고도의 생산력에 힘입어 누구나 안락하고 풍족한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오늘날 같으면, 고도의 생산력 덕분에 아주 짧은 시간만 노동하고도, 아니, 이제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위에서는 노동자ㆍ인민의 대량의 해고ㆍ빈곤의 원인인 소위 AI, 인공 지능으로 대표되는 고도의 자동화ㆍ무인 생산 기술 덕분에 일하기 싫은 사람은 일하지 않아도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노동만으로도 누구나 그렇게 안락하고 풍족한 생활을 즐길 수 있다. 문제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ㆍ생산 양식의 폐지, 새로운 사회의 건설, 그것뿐이다.

 

 

기타, ‘사회주의’ 후보 등의 언동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현상은, 다른 한편에서, 현 시기 우리 사회 노동자계급 운동의 높이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이 대반동의 시대에 비단 우리 사회에서의 현상만은 아니겠지만, 그 운동이 얼마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혼란ㆍ자기 부정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선거 운동의 부르주아 아류적 방식ㆍ형태이다.

으레 ‘선거 (참여) 전술’ 운운하는 데에 이미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노동자계급의 부르주아 선거 참여는 노동자계급 운동의 일환이어서, 그 참여는 노동자계급 운동ㆍ투쟁을 전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내용은 물론이요 그 방식과 형태 또한 그러한 목적에 합당한 것이어야 하고, 당연히 현 시기 노동자계급 대중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상태ㆍ수준을 감안하여 그것들을 발전ㆍ고양시킬 수 있는 독자적인 방식ㆍ형태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보여 주고 있는 것은, 저들 부르주아 정치에서의 이른바 ‘국민 경선’을 모방한 ‘민중 경선’, 저들의 대중 기만인 소위 공약을 모방한 ‘공약(집)’ 등등, 온통 아류적 방식ㆍ형태들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선의의 발로인 것은 알겠지만, 다시 말하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민중 경선! ― 그것은 분명 저들 부르주아 정당이 당의 후보를 결정하기 위해서 벌이는 소위 ‘(국민) 경선’과 ‘후보 단일화’라는 이름의 야합을, 물론 선의에서, 모방하는 것이다. 운동의 ‘통일’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요구’ 혹은 ‘현장으로부터의 요구’가 있어서 그 요구가 다분히 동기가 되었을 터이고, 또 그 요구로서 합리화하겠지만, ‘아래로부터의 요구’ㆍ‘현장으로부터의 요구’라고 해서 그것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타기해 마땅한 대중 추수이지, 책임 있는 지도적 선진 노동자들이 취할 올바른 자세는 분명 아닐 것이다. ‘통일’ㆍ‘단결’이라고 하지만, 사상ㆍ이론적 차이ㆍ대립 때문에 나뉘어 다투고 있는 정치적 경향ㆍ단체들 간의 ‘선거 전술’로서의 ‘통일’ㆍ‘단결’이 노동자계급 운동의 상승ㆍ발전에, 그 사상ㆍ이론의 발전, 정치의식의 발전에 도대체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선거 전술’로서는 모양뿐인 ‘통일’ㆍ‘단결’이 아니라, 선거 국면이라는 선전ㆍ선동의 장을 활용하여 서로 간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내용ㆍ경향의 차이를 노동자ㆍ인민 대중에게 보다 더 명확히, 보다 더 광범하게 드러내고, 그리하여 한편에서는 대중의 정치의식ㆍ이데올로기적 내용을 순화ㆍ고양하고, 한편에서는 대중의 검증을 받는 것이, 튼실하고 종국적인 ‘통일’ㆍ‘단결’로의 길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 엉뚱하게 들릴 게 분명한 질문이지만, 이번 대선에서, 아니, 다음 번, 다다음 번, 다다다…음 번 대선에서 노동자 사회주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만에 하나, 아니 십만ㆍ백만ㆍ천만의 하나라도 있는가? 금융 과두제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그럴 가능성이 있는가?

‘패배주의다!’라며 필봉을 휘두르며 나설 자가 혹시 없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당선될 가능성은 분명 없다.

그렇다면, 노동자ㆍ인민 대중에 대한 선전ㆍ선동의 내용과 방식도 마땅히 그러한 조건과 상황에 상응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즉, 마치 금방이라도 당선될 수 있을 듯이, ‘내가 당선이 되면, 우리가 집권을 하면, 이러저러한 일을 하겠다’는 식의 소위 ‘공약(집)’이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지배가 빚어내는 온갖 참상, 온갖 폐해를 구체적ㆍ포괄적으로 폭로하면서, 그러한 참상ㆍ폐해를 빚어내고 있고 빚어낼 수밖에 없는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타도ㆍ극복하기 위해서 현재의 주ㆍ객관적 조건에서 당장 해 나가야 할, 그리고 궁극적으로 해내야 할 작업ㆍ투쟁과 그 방향을 선전ㆍ선동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는 어떤가?

게다가 그 ‘공약(집)’도 간판은 “체제 전환”이지만, 실제 제시된 내용은 그 대부분이, 말하자면, ‘체제 수선책(修繕策)들’, 좌파 국가자본주의적인 것들이지 않은가?[18]≪민중의 소리≫ 최지현 기자의 “진보정당 대선후보 김재연ㆍ이백윤, ‘체제전환’ 한목소리”(<https://vop.co.kr/A00001608716.html>)라는 기사(2022. 2. … Continue reading

기타 ‘사회주의’ 후보의 언동 두 개만을 간단히 짚어 보자면,

‘사회주의’ 후보께서는 한 인터뷰에서, “… 미국에서 샌더스 같은 민주사회주의자들의 활약도 있었으니까. 이제 더는 사회주의를 북한이나 구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느끼지 못했다”[19]워커스 편집국, “‘사회주의’ 내걸고 출마한 대통령 후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인터뷰] 사회주의 좌파 대통령 후보 이백윤”, ≪참세상≫, … Continue reading며 안도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이 대반동의 시대를 풍미하는 진하디진한 청산주의, 반쏘ㆍ반북 반공주의 ‘경향’에 안도하시는 것 아닌가? 그 반쏘ㆍ반북 반공주의가 그의 ‘사회주의’이지 않은가?

또한, 굳이 출전을 밝힐 필요도 없이 말하자면, 이렇게 말을 돌리고 저렇게 말을 돌리면서 ‘사회주의’ 후보께서도 “한반도 비핵화” 운운하고 있다. 좋은 얘기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제국주의의, 특히 미제의 비핵화를 얘기하는 대신에, 그에 대해서는 악의에서든 선의에서든 침묵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얘기할 때, 그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미제, 제국주의 열강은 핵보유ㆍ핵무장의 권리가 있지만, 그리고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의 원자폭탄 투하처럼 핵무기 사용의 권리가 있지만, 북은 제국주의의 침략ㆍ공격에 대한 방어용 핵무장의 권리도 없다는 것 아닌가? 미 제국주의와 그 동맹ㆍ동조자들은 명백히 그러한 의미ㆍ의도에서 북의 비핵화,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주의’ 후보께서야 물론 절대로 그러한 의도에서야 아니겠지만, 그가 ‘한반도 비핵화’ 운운할 때 그것이 객관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저들 제국주의자들의 그것과 같은 것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제와, 한국군을 포함한 그 동맹군의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등의 침략과 그로 인한 그 지역의 비극적 참상, 혼란을 보면, 북이 보유하고 있는 핵이야말로, 제국주의의 침략과 공격을 사전에 저지하면서, 한반도ㆍ동북아의 평화를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 ‘한반도 비핵화’ 운운은 사실은 제국주의와 극우의 주장을 예쁘게 치장한 것 아닌가?

이 두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더 상세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다음 기회를 엿보기로 하자.

 

 

문재인 정권의 세계적인 위력

 

마지막으로 최근 수년 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부동산’ 문제, ‘집값’ 폭등의 문제에 대해서 한마디 간단히 하면서 글을 끝맺자.

근래 집값,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은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었고, 사실상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 그 대도시 모두에서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는 언론 종사자들, 신문과 방송에 나와 말 꽤나 하는 논객들, 즉 수많은 글품팔이들ㆍ말품팔이들, 그리고 정치가들은 물론이요, 대중들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 ‘문재인 정권의 최대의 정책 실패’라고 규탄한다. 결국 문재인 정권의 정책 실패로 자본주의 전 세계의 집값이 폭등했다는 말씀들이다! 미쳤다고 하면, 펄펄 뛰면서 ‘법적 대응’ 운운하실 분들께서 그렇게 ‘제정신 말짱한 말씀들’을 해 대신다!

더욱 해괴한, 아니, 더욱 무서운 것은 그렇게 규탄받는 문재인 정권 자신도, 그 당의 대통령 후보도 그 가격 폭등이 자기들 정권의 ‘정책 실패 탓’이라며, 머리 깊이 숙여 거듭거듭 사죄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뻔히 자기 책임, 자기들 책임이 아닌 것을 도대체 왜 사실대로 밝히지 못하고, 저리 굴신(屈身)하시는 것일까?

‘내 탓이 아니라, 우리 정권의 정책 실패 탓이 아니라, 사실은 자본주의라는 것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라고 밝혔다간, 다름 아니라, 이 신성불가침한 자본주의에 행여 작은 기스[; きず]라도 날까 봐서 그러는 것이다! ― 그러니 얼마나 무서운가!

최근의 동향ㆍ보도로 보면, 부동산 시세 역시, 물론 증권 시장에서 전개될 그것만큼 극적으로는 아니겠지만, 세계적으로 하강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이미 일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처럼, 또 다른 아우성을 질러 댈 것이다.

그 경우, 저들 글품팔이들ㆍ말품팔이들ㆍ정치가들ㆍ신문ㆍ방송 등은 그러한 사태, 그러한 부동산 가격 하락이 무엇 때문이라고 떠들어 대실까?

이 역시 문재인 정권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그 후유증 때문이라고? 새로 들어선 정권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 자못 궁금하다.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오승훈 기자, “안산 골판지 공장서 40대 노동자 끼임 사고로 숨져…경찰 조사 중”, ≪한겨레≫(인터넷판), 2022. 1. 1.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025607.html>
2 구차하지만, 예컨대, 다음 기사도 제목부터 흥미롭지 않은가? 전현진 기자, ““국힘 이재명? 민주 윤석열? 그래도 똑같은” 이상한 대선”, ≪경향신문≫(인터넷판), 2022. 1. 27. <https://m.khan.co.kr/politics/election/article/202201271850001#c2b> 또한 2월 7일 자 “한겨레 그림판”(<https://www.hani.co.kr/arti/cartoon/hanicartoon/1029953.html>)은, 안철수(C)를 두고 민주당(A)과 국민의힘(B)이 서로 단일화를 하자고 하면서도, 즉 “A=C이고 B=C라면, A=B인데”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상대방에게 “꼴통 보수!”니 “공산당!”이니 해 대며 싸우고 있다고 지적, 빈정대고 있다.
3 ‘노동’에 무슨 희망이 있고 말고 하겠는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랬으니, “노동자의 희망”으로 읽자.
4 예컨대,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기사를 보라. ― 강석영 기자, “직원 800명ㆍ연 매출 300억인데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권리찾기유니온, ‘막무가내’ 5인 미만 위장 사업장 공동고발”, ≪민중의 소리≫, 2022. 1. 19. <https://vop.co.kr/A00001607924.html>
5 칼 맑스,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 MEW, Bd. 1, S. 385.; 최인호 역,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1권, 박종철 출판사, p. 9.
6 김학태, “떨어짐ㆍ끼임 사고만 막아도 산재 사망사고 확 줄인다―한해 사고사망 절반 차지…건설업ㆍ제조업ㆍ서비스업에서 주로 발생”, ≪매일노동뉴스≫, 2021. 5. 21.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944>
7 이에 대한 맑스와 엥엘스의 수많은 지적 중에서 하나만을 여기에 인용하자면 이렇다. ― “자본은, 사회에 의해서 강제되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을 배려하지 않는다. 육체적ㆍ정신적 위축, 요절, 과도노동이라는 고문에 관한 한탄에 대해서 자본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 고통이 우리의 즐거움(이윤)을 증대시키는데, 그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고민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것은 또한 개별 자본가의 선의나 악의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 자유경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을 개별 자본가에게 외적 강제법칙으로서 통하게 한다.”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S. 285-286.; 채만수 역, 제1권 제2분책, 노사과연, 2018, pp. 448-449.)
8 강현석 기자, “‘무법’ 현대산업개발…붕괴 현장서만 행정처분 14번ㆍ민원 324건”, ≪경향신문≫(인터넷판), 2022. 1. 12. <https://www.khan.co.kr/local/local-general/article/202201121336001#c2b>
9 문지연 기자, “작년 ‘광주 붕괴참사’ 그 건설사였다…시민들 “또 부실이냐” 패닉”, ≪조선일보≫(인터넷판), 2022. 1. 11. <https://www.chosun.com/national/incident/2022/01/11/PIP3NNXHWNFNTA76G5YDODPQDQ/>
10 예컨대,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도 “유형이 다르기는 하지만, 붕괴사고가 7개월 만에 두 번씩이나 발생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시공사가 공사기일을 맞추기 위해 다소 무리를 하다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도 이날 성명을 내고 “해당 공사장은 4일마다 한 층씩 올라갔는데, 공기 단축을 위해 콘크리트가 양생되기 전에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철근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상호, “7개월 만에 또…허언이 된 정몽규의 재발 방지 약속―현대산업개발의 반복되는 후진국형 사고…전문가들 “콘크리트 양생 제대로 안한 듯””, ≪오마이뉴스≫, 2022. 1. 1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02282>)
11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12 세계 최대ㆍ최고의 부와 첨단 과학, 첨단 의료 기술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 사태, 즉 코로나-19에 의한 대역병 발생 불과 2년여 만인 2022년 2월 중순 현재 보고된 확진자 수가 8천만 명에, 사망자 수가 95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사적 이윤을 위한 자본주의적 의료 체계의 폐해를 극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인구는 3억3천4백여만 명이다.
13 최지현 기자, “심상정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해 미래세대 부담 줄이겠다”―‘90년대생이 묻다, 우리 연금 받을 수 있나요?’ 질문에 답하다”, ≪민중의 소리≫, 2022. 2. 7. <https://vop.co.kr/A00001608556.html>
14 이정현 기자, “연금공대위 “심상정 연금개혁 공약, 세대ㆍ계층 갈라치기…보수정당 주장””, ≪뉴스1≫, 2022. 2. 11. <https://www.news1.kr/articles/?4582157> ‘노인빈곤해소와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연금공대위)’는 “△노인빈곤해소 △공적연금강화 △직역연금 특수성 보장 △소득공백해소 등의 목적으로 공무원ㆍ교사ㆍ우정ㆍ교총ㆍ한공노협(한국노총공공부문노조협의회)ㆍ사학연금공대위 등이 참여한 공적연금개혁 대응단체다.” (같은 기사.)
15 이백윤 ‘사회주의’ 후보도 민주노총 주최의 ‘진보정당 대선후보 정책토론회’(2월 10일)에서 특수직연금과 관련, 그것이 “부족하다면 국가재정으로 충당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최지현 기자, “진보정당 대선후보 김재연ㆍ이백윤, ‘체제전환’ 한목소리―민주노총 주최 진보정당 대선후보 첫 토론회”, ≪민중의 소리≫, 2022. 2. 10. <https://vop.co.kr/A00001608716.html>). 다만, 그렇게 국가 재정에서 충당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발언에서의 ‘국가’의 본질ㆍ기능에 대한 그의 인식과 신앙은 바로 부르주아지의 그것이어서 심히 비과학적이고 반노동자계급적인 것이지만, 그에 대한 논급은 생략하자.
16 칼 맑스, “[부록2] 고타 강령 비판”, ≪공산당 선언≫, 채만수 역, 노사과연, 2022, pp. 143-144.
17 같은 글, 같은 책, pp. 144-148 참조.
18 ≪민중의 소리≫ 최지현 기자의 “진보정당 대선후보 김재연ㆍ이백윤, ‘체제전환’ 한목소리”(<https://vop.co.kr/A00001608716.html>)라는 기사(2022. 2. 10.)에 의하면, 2월 10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진보정당 대선후보 정책토론회’에서 두 후보가 제시한 ‘공약’들도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19 워커스 편집국, “‘사회주의’ 내걸고 출마한 대통령 후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인터뷰] 사회주의 좌파 대통령 후보 이백윤”, ≪참세상≫, 2022. 1. 30. <http://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499>

채만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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