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특집: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104주년] 쓰라린 패배를 거울삼아 영웅적 투쟁의 승리로 나아가자!(상)

―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를 읽고

 

김용화 | 편집위원

 

* 바만 아자드,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사회주의 국가 쏘련을 해체시킨 요인들≫(제3판), 채만수 역, 노사과연, 2009.

 

 

들어가며

 

“가난은 나라(임금)도 구하지 못한다”는 ‘옛’말 같지 않은 옛말이 있다. 왜 그런가. 피억압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저들의 나라, 즉 지배계급의 국가이고, 지배계급에게만 봉사하는 기생충과 다르지 않으며, 그 시대마다의 지배계급은 타인의 노동(노동력)을 착취해서 대다수의 인민을 이윤의 부속품으로 전제하지 않고서는 부자로 살 수 없다. 그러므로 빼앗기고 억압당할 수밖에 없는 피착취계급은 ‘늘’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말은 지금도 여전히 부자로 살고 있는 지배계급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음과 동시에 근로 인민을 속이기에는 유효한 말이기도 하다. 이 말에는, 가난은 어느 누구도 구하지 못하니 주면 주는 대로 목숨이나 겨우 연명하고 그냥저냥 살라는 일종의 파렴치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내포되어 있다.

 

원시공산제 사회가 붕괴된 이후로, 각각의 시대의 지배계급이 그 사회의 주요한 물질적 생산 수단뿐만 아니라 정신적 생산 수단까지도 지배해 왔기에, 그 각각의 시대의 지배적 사상 또한 저들에게 종속되어 왔으며, 물질적 생산의 상부 구조로서의 국가 역시 지배계급의 것이었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이 모든 주요 생산 수단 및 시설들을 사적으로, 즉 독점적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이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은 자본가계급의 사상이며, 국가 역시 저들 자본가 지배계급의 국가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 노동자계급은 맑스-레닌주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그에 따른 실천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폐지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 기술에 의한 최첨단의 시대, 21세기 현재에도 상대적이든 절대적이든 가난에서 구해지지 못하고, 그것이 해결될 수도 없다는 것을 계급적으로 의식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생산 및 재생산 과정 전반의 무인화와 인공지능에까지 이른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실업자는 증대하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더 커져서, 근로 인민의 생활의 질의 퇴보는 물론이고 보다 광범하고 깊어진 생존 위협의 길을 맞고 있는 정세 또한 직시해야 한다.

 

이는 곧 넓게는 노동자계급과 근로 인민, 좁게는 이웃ㆍ가족 등등의 사이를 비루하게 만드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 실업, 빈곤, 억압과 착취 그리고 임금노예, 이 모든 쇠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가열찬 투쟁으로써 그 쇠사슬을 직접 끊어 버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를 종결시켜야만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또한 지배계급만을 위한 생산 수단 및 시설의 사적 소유가 아니라, 노동자계급ㆍ근로 인민을 위한 사회화가 답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사적 소유 간의 모순이 극대화된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적 소유의 철폐와 더불어 생산 수단 및 시설을 사회화하는 것은, 생산력을 더 증대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므로, 노동자계급의 생활의 물질적 향상과 더불어 정신적 교양 또한 더욱더 풍부하게 만들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 중에는 사적, 즉 독점적 배타적 소유가 전제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 법과 질서를 지키는 테두리 내에서도, 열심히 싸우다 보면 잘 살아질 거라고 믿고, 모든 법과 제도는 시민,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호도하며 떠들어 대는 부르주아 꼭두각시 지식인, 언론인 등등도 있다. 하지만 이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의 존재조차 모르는 듯한, 또는 더욱더 은폐하려는 수작,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반동일 뿐이다.

 

대다수의 인민에 대한 착취가 전제된 임노동의 사회인 자본주의를 폐지하는 길은, 당연지사, 각국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만국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혁명으로써 폐지하고 우선 각국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부를 건설하는 것 말고는 또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보여 주었듯, 영원한 사회 체제란 없다(맑스와 엥엘스는 유물론적 역사 파악을 통해, 이러한 인류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반영한 계급 투쟁이라는 것을 밝혔다). 자본주의 또한 그 사회의 내부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예제, 봉건제가 저절로 알아서 변화되지는 않았던 것처럼, 사회주의 세상 또한 저절로 알아서 성취되지는 않을 것이다. 각각의 시대의 단계마다 혁명의 주체가 존재했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사회 자체의 본질로 인해 노동자가 용도 폐기되는 순간 혁명의 순간 또한 도래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혁명의 주체는 노동자계급일 수밖에 없고, 또 이여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또한 그 사회의 내부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명제를 넘어서 지난한 현실들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유의 사회인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세상까지 가려면, 20세기 전반에 걸쳐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지 않는 사회를 건설했고,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로 향하는 도정에 있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을, 지금의 우리 노동자계급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도대체 그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70여 년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명확히 알아야, 지금의 우리 노동자계급이 다시 한번 영웅적 투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에 찬란하게 존재했던 사회주의 사회들, 특히 쏘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쏘련)의 인류사적 성과들과 한계들을, 맑스ㆍ엥엘스ㆍ레닌의 사상을 전제로, 사적 유물론의 과학적 관점으로, 완전히는 아니지만 충분히 밝혀 주고 있다.

 

서평이란 통상적으로 한 번에 끝내야 하는데, 필자의 역부족 탓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임을 양해 바란다. 아래는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발췌 요약한 것이며, 모든 강조는 본문을 발췌 요약한 필자의 것이다.

 

 

1. 머리말

 

사회주의의 역사적 업적에 매혹된 나머지 나는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발전 도정에 존재했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애로를 볼 수 없었다. 그 주제를 여러 해 연구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결코 쉬운 과제도, 단기간의 투쟁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쏘련에 존재했던 것은, 완전한 사회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수세기에 걸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과학적 발전을 통해서 만들어 낸 최상의 것이었기는 하지만, 많은 단점과 결함을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사회 체제, 즉 내적 및 외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는 이행기의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존 사회주의 체제가 방어되어야 하는 것은, 그것들이 완전무결한 이상적인 체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적 성과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점과 과거에도 지금도 평화롭고 유복한 미래를 향한 인류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가 진보적인 인민, 특히 공산주의자들에게 준 거대한 정서적 타격을 고려할 때, 일부가 이미 빠져 있는 과거에 대한 부정적 사고나 거부주의라고 하는 함정에 빠지는 것을 피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으로 시작된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는 전체 세계, 100개가 넘는 공산당 및 노동자당이 관련되어 있었다. 이들 모든 당과 국민의 경험, 특히 쏘련 공산당과 쏘련 인민의 경험들을 취합ㆍ분석하여 그 분석 속에 통합시키지 않고는 그 역사적 성과와 실패에 대한 평가를 포괄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그러한 거대한 과제는 방대한 양의 자원을 요구하고 있고, 짧은 기간에, 적어도 단 한 세대의 생애 동안에는 성취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성급한 판단이나 직접적인 경험에만 근거한 몰역사적인 일반화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어려운 작업을 하면서도 노동자계급의 이해라고 하는 관점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 제시된 대부분의 역사적 자료는 1970년대 및 1980년대의 나의 연구에 기초해 있다.

 

 

2. 서론: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승리 이후 80년

 

1) 10월 사회주의 대혁명과 사회주의의 성과

1917년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에 의해서 세계 최초의 노동자 국가가 수립되었다. 사회주의 사상은 세계에 광범하게 확산되었다.

 

– 생산 수단의 사회화, 여성 해방

생산 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를 확립함으로써 쏘련과 기타 사회주의 국가들의 인민은 전례 없이 많은 권리와 자유를 획득하였다. 근로의 권리, 주거와 주택의 권리, 무상의 의료와 교육의 권리, 사회 보장의 권리, 사회주의 사회가 보장하는 다양한 문화적 예술적인 써비스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권리.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상상도 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받았다. 또한 헌법과 법률을 통해 곧바로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전면적으로 승인하였다. 여성에게 직장에서의 보육, 충분한 임신ㆍ출산 휴가, 육아 여성노동자의 노동일 및 노동주의 단축, 유아 보육 기간 동안의 재택 노동 알선 등의 써비스를 체계적으로 제공하였다. 20세기 초의 러시아 사회의 후진성 때문에 여성의 상태가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그것과는 좀 먼 것이었을지 몰라도 여성 해방이라는 분야에서의 사회주의의 역사적 성과가 전례 없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음은 확신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다.

 

– 민족 분쟁의 조건 제거

사회주의 국가가 모든 민족의 동등한 권리를 승인함으로써 쏘비에트연방에는, 나중에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모든 민족들이 우호적이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조건들이 창출되었다. 그들의 모든 문화적, 사회적 차이나 그들 일부 사이의 과거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국제적으로 서로 이웃하고 살았다. 민족 분쟁을 일으키는 물질적 조건을 제거하고 그들 모두의 복지를 보장함으로써, 사회주의는 민족 간의 증오나 분쟁은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빈곤과 저개발 때문에, 그리고 자원을 둘러싼 경쟁으로부터 기인하는 경제적, 사회적 경쟁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된 후 이들 국가에서 재발하고 있는 전쟁과 민족 분쟁은 이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다.

 

– 찬란한 실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만 보더라도 쏘련과 기타 사회주의 국가들은 세계에 대해서 160번 이상이나 군축 및 핵 실험 금지, 심지어 일방적인 핵무기 삭감을 제안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서 무시되었다. 국가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초래될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1985년에 쏘련이 일방적으로 핵무기 감축에 나섰던 일이나, 2000년까지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제안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평화를 지키고 국제 관계에서 긴장을 제거하려고 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노력의 찬란한 실례이다. 이러한 노력 덕에 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사회주의에 대한 커다란 신뢰와 존경이 생겨났던 것이다.

 

– 사회주의의 권위, 우월성

세계 속에서의 사회주의의 물질적, 정신적 권위의 끊임없는 증대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적ㆍ정치적ㆍ사회적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노동자들의 투쟁과 사회주의의 성과가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노동자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과 공산주의 운동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근로 인민에게 최대한의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세계 전체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 인정되었다.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 운동은 대부분의 경우 사회주의의 국제적인 힘에 뒷받침되어 새롭게 고양되었고, 자본주의적 질서에 심대한 경제적, 사회적 개혁을 강제했다. 미국에서 노동 운동은 공산당원의 도움으로 사회 보장 제도와 실업 보상 제도를 강제하는 데 성공하고, 서유럽에서 노동 운동은 사회민주주의 형태로 직접 정치의 영역으로 진출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정치적 상부 구조에 심대한 변화를 강제했다. 또한 사회주의가 지구적 규모에서 달성한 가장 중요하고도 역전시킬 수 없는 성과의 하나는, 근로, 주택, 의료, 교육 등의 경제적 권리와, 모든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평화와 사회 정의라고 하는 원칙까지도 포함하도록 기본적 인권의 개념을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압도적인 다수 인민으로부터의 환영을 받아 온 인권 개념의 이러한 확대는 사회주의 사회의 실제의 성과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과는 양립할 수 없는 요구이다.

 

10월 혁명 및 사회주의 체제의 출현은 인류 사회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는데, 그 전체적인 영향은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다. 다양한 객관적, 주체적 요인 때문에, 현존 사회주의 국가들이 직면한 모든 곤란에도 불구하고 의문의 여지없이 사회주의는 자본의 체제에 대한 그 우월성뿐만 아니라 그 필연성을 바야흐로 증명하고 있다.

 

2) 사회주의 진영 해체의 세계적 귀결

쏘련 및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에 의해서 야기된 역사적 좌절은, 그들 국가의 공산주의자와 노동자계급, 인민의 재앙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재앙이었다.

 

– 사회주의 진영의 좌절, 새로운 세계 질서

이들 국가의 근로 인민은, 수십 년에 걸친 자기희생 끝에, 자신들의 생활 수준과 경제적ㆍ정치적ㆍ사회적 생활의 질이 향상되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자기들 나라의 사회주의적 질서의 결함을 시정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들에게 빈곤ㆍ기아ㆍ인플레이션ㆍ실업ㆍ주택 상실ㆍ매춘ㆍ부정부패ㆍ조직범죄ㆍ민족 분쟁ㆍ내전ㆍ조국의 분할ㆍ정치 군사적 쿠데타, 무엇보다 최악으로는 제국주의 정부와 그들의 국제적 기관에 의한 사회의 경제적ㆍ정치적ㆍ사회적ㆍ군사적 지배라는 파도가 들이닥쳤다. 이 좌절은,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와 일탈, 제국주의 국가들이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해서 일관해서 행해 온 음모와 간섭, 파괴 공작, 최종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들의 많은 당, 정부 지도자와 관료들에 의한 사회주의의 배반을 포함한 수많은 객관적, 주체적 요인이 상호 작용한 결과였다.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해체는 일시적으로 계급적 힘의 균형을, 세계적으로도 개별 국가 내에서도, 제국주의적 반동계급과 그 세력에 유리하게 그리고 피착취피억압계급 및 민주주의적애국적 운동에 불리하게 바꾸어 버렸다.

 

이 새로운 세계 질서의 기본적 성격은, 타국의 내정 문제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공격과 간섭 수준의 전반적인 증대, 방어력이 없는 제3세계 인민에 대한 다국적 독점자본의 무제한적 착취의 자유의 확대,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국제기관들을 제국주의에 의한 전 세계적 억압과 착취의 보조 기관으로 더욱 변질시켰다. 사회주의 진영, 특히 쏘련이 해체됨으로써 제3세계의 근로, 피억압 인민은 그들의 반제 투쟁에서 가장 견고한 국제적 지원자를 잃었다. 제국주의 국가들, 특히 미 제국주의는 수십 년에 걸쳐 이 세계에서 사회주의 파괴를 추구하면서 자국의 인민에게 방대한 비용과 고통을 강요해 왔다. 다수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전례 없는 수준의 빈곤과 질병ㆍ기아ㆍ영양 불량ㆍ실업ㆍ인플레이션ㆍ인민의 생활 수준의 악화는 사회주의 국가들이나 세계적인 인민 해방 투쟁, 공산주의, 노동자계급 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적 대결, 핵무기 확장 경쟁, 냉전 선전, 스파이 및 파괴 공작 등에 그 물적, 인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낭비해 온 직접적인 결과이다.

 

3) 과거의 오류에 대한 정확한 평가의 필요성

사회주의 국가들의 해체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고, 그 결과가 초래한 재앙의 규모도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계급이나 인민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도 커다란 혼란이 초래되었다.

 

– 당의 분열로 귀결, 노동자계급의 당파성

이러한 역사적 좌절의 주요 원인을 찾으려는 성급한 시도가 곧바로 시작되었다. 제국주의는 자신의 선전 장치를 동원하여 공산주의의 죽음이나 사회주의의 종언, 자본주의의 최종적 승리라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의 이념에 대한 온갖 종류의 그릇된 비판의 길을 열었다. 비난과 왜곡, 중상모략이 책임 있는 과학적 분석을 대신했다. 이 중대한 역사적 좌절은 융단 폭격처럼 퍼붓는 제국주의의 반공 선전이나 그렇게 분출되는 피상적인 분석과 맞물려 공산주의자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공산주의 운동 내부에 심각한 이론적 그리고 비이론적 의견의 차이를 낳았다. 좌절에 환멸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투쟁으로부터 떠나갔다. 일부 공산당이나 노동자당도 포함하여, 어떤 사람들은 노선을 변경하여, 맑스-레닌주의와 계급 투쟁을 부정하면서, 사회주의 및 개량주의 정당의 대열에 가담하였다. 맑스-레닌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당들도 역시 그러한 갈등을 면치는 못했다. 일부 지도자는 과거 사회주의의 역사 및 공산주의 운동의 방침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풍조 속에 일부는 자기 당의 지도부를 쓰딸린주의적 범죄의 공범자라고 비난하면서 기회주의적으로 등을 돌리기도 하였다. 주로 과거의 오류와 관련해 다른 사람을 비난하면서 자신을 면책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이러한 방식은 레닌주의적 원칙인 ‘자기비판’을 기회주의적인 처사인 타인비판으로 대체했다. 많은 경우 이러한 방식은 당 지도자들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분파 활동,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당의 분열로 귀결되었다.

 

공산주의 운동 및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예전의 힘을 되찾고,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역사적 좌절의 원인 및 요인에 대한 포괄적이고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시할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소수의 개인이나 몇몇 당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미리 정해진 예정표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닌, 장기간에 걸친 사업이다. 노동자계급의 당파성이라는 관점을 잃지 않으면서, 과학적인 방법을 엄밀히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3. 제1부: 약간의 방법론적 이론적 고찰

 

1) 방법 문제에 관하여

– 계급적 위치ㆍ처지

사회주의 과거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책임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전제와 가정을 명확히 정의ㆍ선언하여 그 편향을 공개적으로 밝혀서 과학적으로 성실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주의 과거를 둘러싼 논쟁은 자칫 공허한 논쟁이나 주관적인 수사에 빠져 버릴 것이다. 인류 역사와 사회를 연구할 때에는 맑스의 변증법을 엄밀하게 견지할 필요가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원칙들은 그의 “경제학비판서설” 속에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이론적인 방법에서도, 주체, 즉 사회는 이해의 전제로서 언제나 표상에 떠올라 있지 않으면 안 된다.[1]“경제학비판서설”, NEW, Bd. 13, S. 633. (김호균 역,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중원문화, 1989, p. 223.; 최인호 역,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 Continue reading

 

맑스가 의미하는 바는, 사회 현상을 연구할 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의 성격이 자신의 사고와 논리에 각인시켜 온 편향의 특징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사회 속에서의 자신의 이데올로기적계급적 위치를 인식하고 그 현상을 연구하고 있는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는, 우리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계급인 노동자계급과 그 가장 전위적인 정치 조직의 세계관에 기초할 때에만 과학적이다. 그러한 세계관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본질과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적 단계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이러한 총체성 속에서 각 현상의 역할과 위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소부르주아적 선정주의나 낭만주의, 완벽주의자 이상론,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주지주의에 기초해서는 사회주의 과거의 발자취를 과학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이 원칙의 중요성이 있다. 오히려 국제적인 노동자계급 및 그것을 지도하는 정당의 유물론적이고 계급적인 관점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과 직접 결합하고 투쟁 과정 속에서 계속적, 비판적으로 그 진로를 수정하는 것이야말로 과거를 과학적으로 평가하고 현재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유일하게 올바른 방법이다.

 

맑스에 의해서 제시된 또 다른 방법론상의 원칙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가장 추상적인 범주들조차도, 그것이 ―실로 그 추상성 때문에― 모든 시대에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추상이라는 규정성 자체에 있어서는 역시 역사적 관계들의 산물이며, 단지 이러한 역사적 관계들에 대해서만, 그리고 단지 이러한 역사적 관계들 속에서만 완전한 타당성을 갖는다.[2]같은 책, S. 636. (김호균 역, 같은 책, p. 227.; 최인호 역, 같은 책, p. 466.)

 

이는 사회 현상이나 자연 현상은 고정된 특성들의 정적이고 독립적인 집합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적ㆍ자연적 관계들이 역사적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취하는 총체적이고 역동적인 계기들로서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회 현상이나 자연 현상의 본질과 특성은 변화하며, 각 역사 단계의 모순들에 대한 직접적인 관계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현상도 그 존재론적인 기초나, 그것을 발생하게 한 역사적 상황 및 모순으로부터 분리된 채로는 과학적으로 분석될 수 없다. 어떤 현상을 과학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국지적이고 부분적인 자명한 사실들을 편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을 에워싸고 있는 객관적 현실의 가장 보편적인 모순들을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사회주의 모델에 대한 비판을 쓰딸린주의와 같은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 ‘쓰딸린주의’와 같은 현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내에서의 일련의 경위를 이해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다시 당과 노동자계급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를 위해서는 각 단계의 사회주의를 형성하는 내부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다시 사회주의 체제의 현실적인 사회적, 역사적 모순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또다시 세계적 규모에서의 보다 보편적인 모순을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맑스주의적 방법론은 이러한 절차를 역순으로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 현존 사회주의에 대한 과학적 비판의 이론적 기초

– 착취와 억압ㆍ인류 해방의 유효한 수단

오늘날 과거의 이론들의 무효성을 전제로 사회주의의 과거에 대한 비판을 시작하는 것이 다양한 방면에서 유행으로 되어 있고, 반공주의적, 비공산주의적 문헌에서만이 아니라 맑스주의 사상가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이론들이란 맑스-레닌주의를 의미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과거의 이론들이 그 유효성을 상실했는지, 혹은 그렇게 유효성을 상실한 징후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명백하지 않다. 만일 사회주의 국가들에 위기가 발생한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면, 과제는 그 위기의 역사적인 뿌리를 조사하는 것이고, 책임이 있는 주체적, 객관적 요인들을 준별하는 것일 것이며, 그리하여 이론에 기초한 주관적 요소들 가운데에서 그 위기의 등장에 책임이 있는 요인들을 분리ㆍ검토하는 것일 것이다. 과거의 이론들의 무효성을 전면적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맑스레닌주의적 세계관을 구성하는 수백 가지의 이론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과 같다. 맑스-레닌주의라는 과거의 이론들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철저히 무시하는 그러한 일반화는 어떤 의미에서도 과학적인 논의로 간주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과학적 이론들의 통일체로서의 맑스-레닌주의의 유효성의 상실도 그것이 새로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날 때에 입증될 수 있다. 지금까지 어느 한 사람도 그러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고, 보다 새롭고 과학적인 이론을 제시하지 않은 채 맑스레닌주의의 무효성을 선언하는 자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오직 하나의 목적, 즉 맑스주의 이전의 낡은 이론을 부활시키고 그러한 이론에 기초한 구질서를 정당화하는 데에 복무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발생한 최근의 상황이 과거의 일부 개념이나 경험의 재평가를 불가피하게 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세계관으로서의, 이데올로기로서의, 그리고 과학적 관점으로서의 맑스-레닌주의의 무효성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객관적인 현실임과 동시에 변증법적인 역사 과정의 불가결한 일부분으로서의 계급 투쟁은 우리의 주관적인 심리 상태와는 무관하게 계속되고 있으며, 공산주의 사회가 확립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투쟁 속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과학적인 세계관으로서의 맑스레닌주의는 계속해서 과거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그리고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될 것이다.

 

3) 모델 문제에 관해서

– 공상적 이상에서 과학적 이론으로

추상적인 일반화에 기초해서는, 어떤 모델의 성공을 책임감 있게 단정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오히려 그 모델이 실행되어 온 사회의 역사적ㆍ사회적ㆍ경제적ㆍ정치적ㆍ문화적 특징에 관한 가능한 한 상세한 조사와 이해가 필요한 것이고 기타 모든 외부적 요인의 영향과 상관없이, 그 자체의 내적 모순 때문에 실패하였고,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음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 모델의 실패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보다 좋은 모델을 탐구할 수 있는 것이다.

 

80년간의 사회주의 모델과 관련하여 그러한 판단은, 우리가 아는 한,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심지어 세계 공산주의 운동은 이러한 방향을 향한 발걸음을 한 걸음도 내딛고 있지 않으며, 실패를 주장하는 유일한 근거는 일부 사회주의 국가에서 발생한 현재의 역사적 좌절의 결과 생겨난 전반적인 환멸인 것으로 보인다. 80년간의 사회주의의 모델의 실패를 성급히 주장하는 것은, 보다 좋고 보다 과학적인 세계관과 사회경제적 모델이 발견될 때까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포기하도록 노동자계급에게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는 맑스와 엥엘스에 의해서 공상적 이상으로부터 과학적 이론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바로 그들이 사적 유물론과 계급 투쟁이라는 운동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현실에서의 그 존재의 가능성과 불가피성을 입증하였을 때였다. 이렇게 해서 사회주의는 공상으로부터 과학으로 바뀌었다.

 

1917년의 10월 혁명과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의 창설에 의해서 사회주의는, 전 세계 수백만 인민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현대 인류사 ―인류의 객관적인 역사― 전체에 되돌릴 수 없는 위업의 자취를 남기는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그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80년 동안 사회주의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적어도, 사회주의 이론과 실천이 일정하게 부합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80년 동안 존재해 온 현실을 단순한 이론으로 환원하는 것은 역사에서 한 걸음이 아닌 두 걸음의 후퇴를 의미한다. 80년이라는 현실적인 사회주의의 역사를 거친 오늘날, 사회주의 이론을 그 실천으로부터 분리하려고 하는 시도는 어느 것이나 모두 현존 사회주의가 기초해 왔던 이론 그 자체를 부정하도록 되어 있다. 즉 ‘공상적’ 사회주의로 역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과학적 사회주의

80년간의 사회주의 모델의 실패라는 명제를 열렬히 신봉하는 계급적 적들은 환멸에 빠진 공상가들과는 달리 현실을 아주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고, 과거에 사회주의가 존재했음을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 사회주의가 미래에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을 저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사회주의가 과거에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근로 인민이 믿고, 현실에서의 그 존재 자체가 사회주의의 피할 수 없는 고유한 결함을 증명해 왔다고 믿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다. 사회주의의 이론적 거부가 아니라 그에 대한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인 공격,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파괴를 노릴 뿐 아니라 이론이나 심지어 이상으로서의 사회주의의 파괴까지도 노리는 공격임은 극히 명료하다.

 

오직 객관적인 현실주의에 기초해야만 우리는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역사적인 과제를 성공리에 수행할 수 있고, 엄격주의나 공상주의를 배제할 수 있다. 과제는 과거의 결함 많은 사회주의를 버리고 미래를 위한 결함 없는 사회주의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실로 1917년 이래 계속 존재해 왔고 오늘날도 계속 존속하고 있는 바로 그 현실적인 현존 사회주의의 성과도 결함도 모두 포함해서 유일무이한 사회주의의 미래를 개량하고 발전시키고, 보증해 가는 것이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자신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공산주의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조성되어야 할 어떤 상태나, 현실이 순응해야 할 어떤 이상이 아니다. 우리가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현재의 상태를 폐지하는 현실적인 운동이다.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는 전제로부터 생긴다.[3]Karl Marxㆍ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ldeologie, MEW, Bd. 3, S. 35. (최인호 역, ≪독일 이데올로기≫(≪저작선집≫ 제1권), p. 215.)

 

○ 사회주의 모델에 관한 역사적 연구 방법
– 모델의 실패라는 명제의 주요한 결함

75년간의 쏘련 역사에는 단일한 사회주의 모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내ㆍ외의 정세의 전개에 부응하여 상이한 사회경제적 목표들을 달성해야 할 필요에 따라서 각 역사 단계마다 고안된 몇 개의 연속적인 모델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론적으로 개념화된 것으로의 사회주의 모델들을 다루어 온 것이 아니며, 오히려 쏘비에트 지도부나 다양한 헌법이 증언하고 있듯이 완전히 성숙한 사회주의로 이행 중이던 다양한 모델들을 다루어 왔다. 이것들은 고유한 역사적 성격을 가진 발달한 사회주의 단계로의 이행을 위한 특정한 사회의 모델이었다.

 

80년간의 사회주의 모델의 실패라는 명제의 주요한 결함은 사회주의 국가의 사회경제적 모델들의 문제에 대한 비역사적 연구 방법에 있다. 그러한 연구 방법은 맑스주의의 과학적인 방법론의 기본 원칙에 명백히 어긋나는 것이다. 비역사적 일반화가 얼마나 우리 앞의 기본적인 의문들을 명확히 하기보다는 오히려 모호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얼마나 그들 문제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위한 진정한 과정을 방해하는지를 아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비과학적인 연구 방법은 이를 단호히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되고 맑스에 의해서 제안된 것과 같은 진실로 역사적인 연구 방법에서 사회의 각 발전 단계를 올바른 역사적 맥락과 거기에서 의도된 목적들과의 관련 속에서 검증하는 연구 방법을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어떤 특정 모델의 성공이나 실패의 정도,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에 대한 충실도, 그리고 결국은 사회주의 사회의 양적ㆍ질적 발전에 대한 역사적 공헌도를 확정할 수 있다. 그러한 연구 방법을 통해서 우리는 사회주의 체제를 궁극적으로 붕괴시킨 문제들의 논리적ㆍ역사적 원인을 구조적으로 그리고 연대순으로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요인의 진정한 원인과 상호의 논리적ㆍ역사적 관계를 정확히 발견해야 하는 것은 방대하고, 피할 수도 없는 과제이다. 무엇보다 끈기와 노고, 진지한 책임감과 과학적인 원칙들에 철저하고 충실할 것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4) 이론적 관점에서 본 사회주의

과거 사회주의 모델의 결함을 진지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의 이론적인 개념과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역사적 예측은 가장 진지한 맑스주의 사회주의의 이론적 개념과 이러한 논의에서 우리의 지침이 되는 원칙들을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 새로운 사회 형태로서의 사회주의
– 모든 생산 양식의 특징, 새로운 생산관계

역사적으로 보면, 모든 생산 양식에는 생산력의 양적 성장이 지배적인 생산관계에 의해서 규정되는 한계를 넘어 이들 관계에 변화를 필요로 하는 때에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격화는 사회 혁명으로, 그리고 사회적 생산력의 새로운 발전 수준에 조응하는 새로운 생산관계의 수립으로 귀결된다. 새로운 생산관계가 낡은 생산관계를 대체하고, 그 생산관계의 틀 속에서 생산력의 성장ㆍ발전 과정이 계속된다. 이 역사적 발전 과정은 사회주의를 포함한 모든 생산 양식의 특징이다.

 

계급 사회에서는 스스로의 계급적 이해에 기초해 기존의 생산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착취계급의 존재 때문에, 새로운 생산관계에 의한 낡은 생산관계의 이러한 대체 과정은 특별한 복잡함과 반대에 부딪힌다. 지배계급과 그들에 의해 구축된 정치 조직들, 특히 국가가 생산관계의 쇄신 과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하는 과정은 언제나 지배계급과 그 국가에 의한 저항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 혁명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전의 모든 계급 사회와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맑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자계급은, 모든 형태의 계급적 착취와 모든 착취계급을 일소함으로써,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하는 자연적 경로에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사회적 생산력의 계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보장한다. 착취계급이 일소되면 현상 유지를 위한 주요 동력도 역시 사회로부터 사라지고, 생산관계는 끊임없이 성격을 바꾸면서 유연하게 변화해 갈 수 있게 된다. 바로 그 때문에 맑스는 공산주의를 어떤 특정한 생산 양식이나 인류 사회의 역사적 발전에서의 어떤 특정한 상태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폐지하는 끊임없는 과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 공산주의의 초기 단계의 그 발전 동학

공산주의 사회의 초기 단계에 대해 기술하면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그 자체의 토대 위에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정반대로 지금 겨우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갓 태어난 공산주의 사회, 그리하여 모든 관계에서,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것이 태어나온 모체인 구 사회의 모반(母斑)이 아직 남아 있는 공산주의 사회이다.[4]Karl Marx, “Kritik des Gothaer progamms”, MEW, Bd. 19, S. 20. (이수흔 역, “고타 강령 초안 비판”, ≪저작선집≫ 제4권, p. 375.)

 

이들 모반이란 무엇인가?

개인적인 탐욕이나 계급 의식의 결여, 사회적인 편견, 오도된 교육과 제한적인 지식 등을 포함한 모든 주관적, 객관적 특징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회적 생산력은 아직 인민의 모든 물질적, 문화적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발전 수준에까지 도달해 있지 못하다. 각자에게 필요에 따라서라고 하는 공산주의 원칙은 이 초기 단계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각 생산자의 능력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발달한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기본적인 특징인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평등이라는 원칙은 그 초기 발전 단계에 있는 사회주의 사회의 목표로서 인정될 수 없다.

 

– 공산주의 사회의 초기 단계

사회주의하에서의 재화와 써비스의 분배 과정을 지배하는 각자에게는 공헌에 따라서라는 원칙은 생산자들 사이의 불평등에 기초할 뿐 아니라, 실제로는 그러한 불평등을 의도적으로 조장한다. 이에는 역사적, 과학적 이유가 있다. 공산주의 사회의 초기 단계에서는 인간 노동의 착취(이는 물론 계급적 착취 형태는 아니다)가 사회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계속될 뿐 아니라, 실로 의식적으로 강화된다. 사회 전체의 대표로서 활동하는 사회주의 국가는, 더 많은 노동과 우수한 성과를 위한 물질적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생산 수준을 증대시키고 전체 사회에 의해 창출되는 잉여가치의 총량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임금의 차별화를 통한 이러한 계획적인 불평등은 사회주의 사회가 그 초기 발전 단계서 노동 생산성을 증대시키고 생산력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유효한 수단이다. 인류 사회의 최첨단의 과학적, 기술적 성과를 의식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이러한 계획적인 과정의 불가결한 요소이다.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의 이러한 계획적인 불평등과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특징짓는 불평등의 질적 차이는 사회주의하에서 창출되는 잉여가치가 공적으로 전유된다는 데에 있다. 이 잉여가치는 국가 행정이나 치안 유지 등 사회적으로 필요한 지출이 공제된 후에 사회적 소비 기금으로 이관되어, 사회 전체의 생활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 그리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그들의 노동의 양이나 질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평등하게 사회적 써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 직접 임금, 사회적 써비스와 수당

사회주의 사회의 각 구성원은 사회의 물질적 자원을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획득한다. 첫째로 각자가 사회를 위해서 수행한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서 받는 직접 임금을 통해서, 그리고 둘째로, 각자가 사회를 위해서 수행한 노동의 양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무상의 사회적 써비스나 수당을 통해서 획득한다. 직접 임금과 그렇게 받는 무상 써비스의 합계액이 사회주의하에서의 각자의 총수입이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생산력이 덜 발달하고, 공산주의적 자각이 아니라 물질적 자극이 노동에 대한 인민의 주요한 동기를 이루는 사회주의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임금이야말로 노동자들의 수입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을 수행하는 주요한 동기가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서 총수입 가운데 노동자가 받는 공산주의적 급부와 써비스의 비율이 직접 임금의 비율보다 상대적으로 증대해 간다. 이렇게 사회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노동자의 총수입 가운데 누구나 무상으로 받는 급부의 비율이 증대함에 따라서 사회는 서서히 ‘각자의 공헌에 따라서’는 원칙에서 멀어져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라는 공산주의 원칙에 접근해 간다.

 

– 사회주의적 생산, 공산주의적인 평등

사회주의적 생산은, 바로 그 본질과 역사적 사명 때문에 임금의 균등화와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사회주의는 실로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임금 차별화 제도를 통해서만 그 장기적인 목적들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을 기계적으로 균등화시키려는 시도는 모두 사회주의하에서의 노동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질적 자극을 약화시키고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사회주의 사회를 지도하는 당과 계획자가 이 중대한 원칙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특히 발달한 공산주의의 원칙을 사회주의 발전의 초기 단계에 조급히 적용한다면, 혹은 맑스의 표현처럼 “성급하게 앞서 나간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적 생산 과정에 해악을 초래할 것이다.

 

사회주의가 발달한 단계에서도 아직 이 원칙은 유효하다. 공산주의적인 평등은, 생산 영역에서 물질적 자극을 제거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직접 받는 임금액이 그들이 사회로부터 무상으로 받는 사회적 급부나 써비스의 가치에 비해서 아주 미미한 것이 되기까지 사회적 소비 기금이 지속적으로 증대되는 결과, 실현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잉여 생산물의 단순한 양적 증대 그 자체를 공산주의를 향한 전진의 척도로 삼을 수는 없다. 그 척도는, 이 잉여 생산물이 어떻게 할당되는가, 즉 어느 정도가 생산적인 용도로 충용되고, 어느 만큼이 생산자 자신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이용되어 왔는가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적, 경제적 계획에서의 계산 착오, 잉여 생산물의 부적절한 관리나 남용, 국가의 관료 기구나 군사 지출ㆍ전쟁ㆍ독직 등과 같은 비생산적인 분야로의 잉여 생산물의 유출 증대 등은 사회주의적 발전 과정을 탈선시키고, 공산주의를 향한 사회의 역사적 발걸음을 방해할 것이다.

 

○ 당과 국가의 관계: 사회주의에서의 주체적 요인의 역할

사회주의하에서 생산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를, 그 이전의 모든 사회와 구별하는 또 하나의 특징의 결과이다. 이 현저한 특징을 맑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공산주의는, 이전의 모든 생산관계와 교통관계의 기초를 변혁하고, 모든 자연 발생적 전제를 최초로 의식적으로 기존의 인간의 산물로 취급, 그 자연 발생성을 박탈하여 그 전제들을 연합한 개인들의 힘에 종속시킴으로써, 지금까지의 모든 운동과 구별된다. 공산주의 제도란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경제적이며, 이러한 연합의 조건들을 물질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 공산주의가 창출하는 상태야말로 개인들로부터 독립적인 상태 일체를, 그 상태가 하지만 개인들 자신의 지금까지의 교통의 산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한,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적인 기초이다.[5]Karl Marxㆍ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ldeologie, MEW, Bd. 3, SS. 70-71. (최인호 역, ≪독일 이데올로기≫(앞의 책), p. 250.)

 

– 노동자계급과 그 정당

공산주의는 인류 사회로부터 계급적 착취를 완전히 폐절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주체적 요소와 객관적 요소의 변증법적인 관계도 역전시킨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류가 사회의 사회적ㆍ경제적 기구를 의식적으로 자신의 힘에 복종시키고, 그것들에 의해서 맹목적으로 휘둘리는 대신에 그것들을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관리하는 사회 체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에 이러한 독특한 특징에 관해 기술하면서, 맑스는 그들 기구가 자각한 인류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사회의 하부 구조, 특히 그 소유 및 생산관계가 주체적ㆍ상부 구조적 요소들의 동향을 결정했던 이전의 계급 사회와는 달리 생산 수단이 사회 전체의 공유 재산으로 되어 있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주체적 요소야말로 하부 구조의 운동 방향을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맑스-레닌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이 주체적 요소란 다름 아니라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부르주아 국가 기구를 대체한 후 사회주의 사회가 의식적으로 개발한 계획에 따라서 공산주의를 향해 나아가도록 지도하는 노동자계급과 그 정당이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당의 전위로서의 역할과 사회주의하에서의 국가의 역할을 혼동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맑스의 분석에 의하면, 사회주의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상황과 생산 양식하에서 국가는 기존의 생산관계를 유지하고 재생산한다고 하는 보편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주의하에서 이 역할은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ㆍ재생산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러한 관계를 끊임없이 정밀히 재검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사회에서 기존의 생산관계를 유지ㆍ재생산하는 임무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고 정적인 임무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아직 무계급 사회가 아니다. 사회주의 사회는 비록 노동자계급의 통제하에 있긴 하지만, 노동자계급과 그 계급적 이해를 배타적으로 대표하지는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는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모든 근로 인민 및 통일된 사회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계급의 이해를 대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가 기존 사회주의 사회의 전체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임무를 지고 있다면 당은 사회의 제 현상을 끊임없이 변형시킴으로써 사회주의 사회를 공산주의 사회를 향해 전진시키는 임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하에서의 생산 수단의 공적 소유는 국가 기구로 하여금 노동자계급 및 근로 인민 대중을 대표하여 사회주의 경제를 관리하는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하에서는 국가 관료 기구가 그 자신의 편협한 정치적ㆍ경제적 이해에 기초하여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 사회주의 경제에 대한 관리권을 남용한다고 하는 내적 위험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관료 기구가 스스로를 근로 인민의 대표자가 아니라 그 고용주로 간주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당은 국가 관료 기구의 편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편에 서서 책임을 져야 한다. 레닌이 강조한 것처럼, 사회주의를 포함한 모든 사회에서 국가 기구는 관료주의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계급의 장기적인 이해와는 양립할 수 없는 자기들 자신의 특정한 이해관계를 발전시킨다. 맑스가 강조하기를, 공산주의 발전의 특징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점진적으로 사멸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명백히 국가 관료 기구 자체에 맡겨질 수 없다. 도리어 그 과정은, 국가 관료 기구로부터 어떠한 저항이 있더라도, 노동자계급의 당에 의해서 의식적으로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방법으로 수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당의 그것과 혼동하는 것, 당의 역사적 임무를 국가에 이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사회주의의 발전 과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당과 국가 기구의 융합은 당 대열 내부에 관료주의와 출세주의, 부패를 증대시키고, 당의 전위로서의 역할을 약화시키며, 당을 그 계급적인 기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종국적으로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뿌리 깊은 위기에 빠뜨릴 것이다.

 

과거의 사회주의 모델들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그리하여 어떠한 경우에나 주어진 사회주의 사회의 각 발전 단계에서의 당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상세한 검토가 포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당과 국가 기구의 융합의 유무만이 아니라 그 사회주의 국가의 사회주의적 원칙과 당의 지도 지침에 대한 충실도가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되고, 나아가 사회주의 발전의 각 단계에서 그 역사적인 요구를 알아채고 공산주의적 목표를 행해서 전진하고 있는 사회를 위해 현실적인 방안을 제안하는 데에서의 당의 능력도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

 

○ 당과 계급의 관계: 사회주의에서의 주체적 요인의 역할
– 공산당의 역사적 임무

프롤레타리아 사이에 사회주의적인 의식이 자발적으로 발달한다고 하는 사고를 부정하고, 그러한 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당에 의해서 외부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에 도입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테제를 발전시킴으로써 레닌은 공산당을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역사 과정의 핵심에 배치했으며, 몇 가지 중요한 임무를 당에 귀속시킴과 동시에 당과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당이 그 역사적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삼았다.

 

당의 첫 번째 임무는 매일매일의 계급 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교육하고, 정치적으로 조직하며, 지도하는 것이라고 레닌은 강조했다. 조직상의 관점에서 당은 모든 프롤레타리아트 세력을 규합하여 반부르주아지 투쟁으로 집중시킬 책임이 있다. 레닌의 말을 빌리면, 당은 “정치 투쟁에 활력과 확고함과 지속성을 보증할 수 있는 혁명가들의 조직”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러한 당이 없다면, 대중은 사회주의 혁명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필요한 의지의 통일을 획득하지 못한다. 이러한 의지의 통일은 노동자들의 대열 속에서만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그 당 사이에서도, 성공적인 혁명 투쟁을 위한 열쇠인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발전의 초기 단계, 즉 노동자계급이 아직 높은 수준의 이데올로기 교육과 계급 의식을 획득하고 있지 못한 때에는 투쟁에 있어서의 당의 의사 결정과 지도적 역할은 어쩔 수 없이 극히 크고 심지어 과도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의 발전이 계속되고,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과학적 교육이 증대됨에 따라서, 당과 노동자계급 전체의 경계선은 점차 사라지고, 당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이 갈수록 커다란 역할을 담당해 간다. 그러한 정치적 의식은 노동자계급이 사회의 모든 계급의 이해와 그들 간의 모순을 완전히 이해함으로써만 획득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에 대해서 노동자계급의 이해만이 아니라 사회의 다른 모든 계급의 이해에 관해서, 그리고 계급 투쟁의 각 특정 단계마다 다른 계급들의 이해가 어떻게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양립 혹은 대립하게 되는가에 관해서도, 당이 교육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이 이데올로기적 투명성을 유지하고, 그것을 비노동자계급적 견해의 영향으로부터 방위하는 것은 당이 이러한 활동에서 성공하는 데에서의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당의 이데올로기적 임무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교육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 역사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 당은 인류 사회의 과학적 성과의 선두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레닌은 엥겔스를 인용하면서 계급 투쟁은 “두 가지 커다란 투쟁 형태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만이 아니라 세 가지”임을 강조하고, “이론 투쟁을 첫 번째 동렬에” 놓았다. 이러한 말들의 중요성은, 인류 사회의 과학 이론의 발전ㆍ발달에 있어서의 노동자계급의 당의 역할을 강조한 데에 있다. 이러한 역할이, 과학이나 기술 분야에서의 인류 사회의 역사적 성과,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그 성과들을 무시함으로써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성과들을 확장하고 그에 기초함으로써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는 멍에로부터 인류의 과학과 기술을 해방하고, 그것들을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자산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당의 역사적 책임인 것이다. 당의 역사적인 역할은 프롤레타리아트 자체의 해방을 훨씬 넘어 확대되어 인류의 과학과 기술의 해방도 포함한다.

 

레닌이 정당하게도 투쟁의 경제적, 정치적 측면과 동렬에 놓았던, 계급 투쟁의 이 중요 분야에서의 모든 지연 혹은 지체는 사회주의 사회를 공산주의를 향해 전진시키는 당의 능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수 있고, 그리하여 당과 노동자계급 전체의 관계를 약화시켜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회주의 사회의 과거 행적을 평가할 때에는 이들 원칙들과 관련한 당의 행적의 검증을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국가와 계급의 관계: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오늘날에는 좌익의 일부까지도 포함한 많은 세력들이, 사회주의 국가들이 해체된 것은 옛 사회주의 국가 내부의 민주주의의 부재 때문이었다는 주장을 제출하고 있다. 부르주아 사상가들은 사회주의 국가는 바로 그 본성 때문에 독재적이며, 그 때문에 민주주의나 민주주의적인 자유의 원칙들과는 양립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사회 속에서 생산 수단을 독점적으로 통제하고 있고, 그 때문에 인민 대중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나아가서는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부여받고 있다는 전제에 주로 의거하고 있다. 이 둘 입장은 사회주의 국가를 비판하는 데에서는 전자는 역사적인 비판이고, 후자는 이론적인 비판으로서 그 성질이 다소 다르지만, 양자 모두 국가나 민주주의, 독재라고 하는 개념에 관해 계급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의 근본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사회주의적인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와 노동자계급의 관계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루기 전에 이들 개념의 계급적 성격에 관해서 상세히 서술할 필요가 있다.

 

○ 부르주아 민주주의 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맑스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어떠한 사회에서나 그 국가란 계급 지배의 주요 도구임을 명료하게 논증했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주의 일반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유형의 민주주의, 즉 자본주의적인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인 민주주의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레닌은 이 두 유형의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차이를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미치는 형식적인 권리들…을 선언하는 데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행정상의 실천과 특히 근로 인민의 경제적 노예 상태는 모두 언제나 그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하에서는 권리와 자유를 광범하게 누릴 수 없게 하였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즉 쏘비에트 민주주의는, 권리와 자유를 형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의해 억압되어 있던 실로 그 계급들에게 권리와 자유를 누구보다도 실제로 보장하고 있다. 러시아 공산당의 임무는 더욱더 광범한 근로 인민 대중으로 하여금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게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한 물질적 가능성을 확대하는 것이다.[6]“Draft Third Clause of the General Political Section of the Programme(For the Programme Committee of the Eighth Party Congress)”, March 1919, Lenin, Collected Works, Vol. 36, p. 505.

 

공산주의는 국제적인 운동이며, 그 성과와 실패는 국제적으로 판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계급적인 착취로부터 인류를 해방하기 위한 투쟁에 초점을 맞춘 역동적이고 진보적인 운동이다. 그 과거의 결함들과 실패에 관한 이 책의 평가는 그리하여 이 위대한 운동이 세계의 노동자계급 및 모든 피착취 인민의 최종적인 승리를 달성하도록 돕기 위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고 싶다는 바람을 그 동기로 하고 있다.

 

요컨대, 옛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일어난 일들의 경과에 관한 최종적인 판단은 그들 국가에서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 직접 종사했던 공산주의자와 그 당에 맡겨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극히 보편적인 과정과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그 평가를 한정한다.

 

 

나가며

 

이 책을 보는 동안, ‘영웅적 투쟁’의 노고에 탄성을 질렀고, ‘쓰라린 패배’의 안타까움에 가슴 쓰리며 울컥했다. 그리고 필자를 비롯한 여러 동지들과 전 세계 노동자자계급의 소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더 뚜렷하게 뇌리에 박혔다.

쓰라린 패배를 거울삼아, 프롤레타리아 독재(사회주의적 독재)를 향해, 영웅적 투쟁의 승리로 나아가자!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경제학비판서설”, NEW, Bd. 13, S. 633. (김호균 역,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중원문화, 1989, p. 223.; 최인호 역,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이하 ≪저작선집≫) 제2권, 박종철출판사, 1992, p. 462.)
2 같은 책, S. 636. (김호균 역, 같은 책, p. 227.; 최인호 역, 같은 책, p. 466.)
3 Karl Marxㆍ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ldeologie, MEW, Bd. 3, S. 35. (최인호 역, ≪독일 이데올로기≫(≪저작선집≫ 제1권), p. 215.)
4 Karl Marx, “Kritik des Gothaer progamms”, MEW, Bd. 19, S. 20. (이수흔 역, “고타 강령 초안 비판”, ≪저작선집≫ 제4권, p. 375.)
5 Karl Marxㆍ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ldeologie, MEW, Bd. 3, SS. 70-71. (최인호 역, ≪독일 이데올로기≫(앞의 책), p. 250.)
6 “Draft Third Clause of the General Political Section of the Programme(For the Programme Committee of the Eighth Party Congress)”, March 1919, Lenin, Collected Works, Vol. 36, p.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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