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자료] 김수억을 가두는 건 용균이를 가두는 것입니다

― 문재인 대통령께 보내는 용균이 엄마의 서신

 

김미숙 | 고 김용균 어머니

 

*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17793.html

 

 

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세요.

저는 2018년 12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의 엄마 김미숙입니다. 하나밖에 없어 더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의 3주기가 어느덧 다가옵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로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감이란 참으로 비참하고 힘겨운 나날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대통령님께 글을 올려야 하는 시급한 사정이 생겼습니다. 저에게 아들과 다를 바 없는 김수억이라는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감옥에 갇힐 위험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3년 전 용균이 사고 때 수많은 시민이 촛불을 들었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청와대에서 만난 대통령님께서는 “스물네 살 꽃다운 나이인 김용균 씨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고 위로하시면서 “앞으로 더 안전한 작업장, 차별 없는 신분보장을 이루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고 직전 용균이가 들었던 손팻말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라는 글귀가 저의 뇌리에 박혔습니다. 이 글은 용균이가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남긴 숙제이자, 가야 할 지표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랬던 것처럼 학교에서 공부만 하던 용균이가 사회의 위험성을 얼마나 알 수 있었을까요. 제대로 된 노동교육도, 비정상적인 사회를 똑바로 볼 수 있는 식견도 배우지 못한 채, 용균이는 암담한 사회에 내던져졌습니다. 서부발전에 출근한 지 3개월도 채 안 된 아이가 위험한 현장에서, 생사의 기로에서 일하며 얼마나 부당하게 느꼈을까요? 저는 우리 아이가 팻말을 든 이유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용균이만이 아니겠지요.

용균이 같은 비정규직을 대표해서 대통령님께 재벌들만 만나지 말고, 우리 비정규직들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시라고 요구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균이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난 김수억과 동료들이었습니다. 저는 김수억을 의지가 곧은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또 다른 면에서는 인정 많고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였습니다. 언제나 예의를 갖추고 상대를 존중해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용균이가 죽고 한 달이 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김수억과 동료들이 청와대 앞에서 진상규명과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석방 탄원서를 썼고, 김수억은 다행히 영장심사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3년 전 청와대 시위를 비롯해 서울고용노동청 점거농성을 벌였다는 이유 등으로 검찰이 김수억에게 징역 5년 6개월을 구형했다는 사실입니다. 알고 보니 불법파견 문제나 용균이 사건처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다 벌인 일 때문이었습니다. 검찰은 비정규직 17명에게 징역 6개월에서 5년 6개월까지, 총 22년 6개월을 구형했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인간 이하의 처우를 바꿔내기 위한 비정규직들의 투쟁은 지극히 합당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고, 언론이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기습시위라도 해서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용균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김수억이 대신했던 것입니다.

5년 6개월을 감옥에 살라니요?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입니까? 너무 부당하고, 너무 가혹합니다. 이재용 씨처럼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이 미약한데, 힘없는 노동자들에겐 왜 이리 혹독하단 말입니까?

대통령님, 용균이를 보내고 3년이 지난 오늘도 용균이의 동료들은 정규직이 되기는커녕 노무비를 착복당하고, 여전히 위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단 김용균법,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정부가 시행령을 만들면서 누더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러 갔다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수억은 제발 일하다 죽지 않게 해 달라고, 차별받지 않게 해 달라고 싸웠습니다. 저는 김수억을 가두는 일은 용균이를 가두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님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2021년 11월 3일

용균이 엄마 김미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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