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알튀세르의 반(反)맑스주의 사조에 대한 비판

 

 

한동백 │ 회원

 

 

1. 알튀세르 재생산 이론의 반동성

2.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이 갖는 반(反)유물론의 성격과 비과학성

3. 알튀세르의 ‘동일시’와 정신분석학과의 관계, 그리고 그 비과학성

4. 알튀세르의 구조 이론이 갖는 반(反)역사주의

5. 과잉 결정, 최종 심급에서의 경제, 그리고 <쏘련국가자본주의론> 결론

 

알튀세르(1918~1990)는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이다. 1948년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며,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헤겔 철학을 전공한 후 그곳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후 당내에서 ‘맑스주의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명성을 떨쳤고, 1965년에는 맑스주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담은 ≪마르크스를 위하여≫(Pour Marx)를 저술했다.

그는 당시 프랑스 공산당의 미온성을 비판했으며, 동시에 쏘련의 맑스주의 해석을 비판했다. 나아가서, 인본주의 경향의 ‘인간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항하는 여러 소저작을 저술했다.

68운동 당시 서유럽 신좌익은 알튀세르가 인본주의를 비판하고 새로운 철학적 수행을 방해한다고 평가했지만, 이후 그의 독자적인 해석은 서유럽 신좌익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알튀세르 사상의 핵심은 부르주아 철학인 구조주의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이다. 그는 수정주의 경향에 빠진 프랑스 공산당을 비판했지만, 이러한 비판의 수행을 담당한 스스로의 철학 자체가 부르주아 철학 요소에 경도되었기에 매우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이론도 프랑스 공산당의 수정주의 경향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으며, 특히, 여러 수정주의 경향 가운데에서도 주관적 관념론에 경도된 입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70년 그는 철학 에세이인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Idéologie et appareils idéologiques d’État)를 통해 자신의 관념론적 해석을 확장하여 독자적인 ‘이데올로기론’을 수립하였다.

1978년 프랑스 범좌파 진영이 총선에서 패배함에 따라 그의 우울증 증세는 심해졌다. 2년 후 그는 자신의 아내를 교살하였으며, 정신병력에 의한 금치산자 판정을 받아서 법적 책임을 면하게 되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인해 1981년 그는 고등사범학교 교수직에서 해임된다. 이후 각종 서신과 소책자를 통해 스스로의 견해를 밝혔으며, 공식적인 장소에서 토론을 행하지 않았다.

그의 주저인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이후 쓰여진 철학 에세이인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는 그의 중심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건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는 그가 이전에 표한 견해의 ‘가장 간단한 집대성’이라는 점에서 그 이론의 집약성을 강하게 내포하는 바, 그의 사상을 전방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건이 된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이외의 다양한 문건을 기초로 그의 ‘맑스주의 이론’이 어떠한 몰각에 의해 전개되는 이론인지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이론 전반을 맑스의 원전과 비교하면, 그것이 실은 반맑스주의 사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문서는 바로 이 내용을 드러냄으로써 독자에게 반맑스주의로서 알튀세르 사상의 오류를 전달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1. 알튀세르 재생산 이론의 반동성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서 토대에 대해, 맑스가 그랬던 것처럼,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의해 형성된 생산양식의 총체라고 언급하고 있다.1) 이러한 점에서 그의 토대에 대한 입장은 맑스의 입장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재생산 이론>에서 그의 특유 주관적 관념론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알튀세르는 특정한 단계에 이른 사회구성체에서 착취의 조건을 결정짓는 주된 요소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다양한 제 관계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상부 구조의 독자적인 재생산 과정에 따라 고착화된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알튀세르는 그 재생산 과정은 주관적인 요소(개인-개인 사이의 소소한 관계들, 여러 잡다한 경험들)에 따라 형성된 구조를 형성하는 매개이고, 그 매개를 통해 형성된 구조가 토대를 규정한다고 한다. 알튀세르의 재생산 이론은 이 전반 과정을 포괄한다.

맑스의 정치경제학 문헌 그리고 엥엘스의 여러 서신은 상부구조가 토대에 근거하고 있으며, 상부구조는 토대의 자기 유지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는 점에서 상부구조가 토대에 대해 갖는 성격에 관한 알튀세르의 주장은 문제점이 없으나,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대립 관계가 토대 내 모순으로서, 착취 사회의 양대 계급의 대립에서 갖는 일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알튀세르의 해석에 커다란 문제점이 드러난다.

알튀세르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형성한 이후, 내적 모순을 지닌 토대가 그 자체로서 착취의 재생산(이 표현은 알튀세르가 노동력의 재생산-자본의 재생산 전반을 통칭하는 의미에서 사용한다)을 이어나갈 동력을 상실한다고 본다. 이후, 상부구조는 착취의 재생산으로서 토대의 역할을 계승하고, 상부구조는 독자적인 영역을 확대하며 착취의 재생산을 전적으로 담당하게 된다.2)

그러나 이는 토대-상부구조에 대한 몰이해이다. 맑스는 ≪자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기존 상태의 토대에 대한 끊임없는 재생산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규율화하고 질서가 잡힌 형태를 취하게 되면 이런 사태는 저절로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규율과 질서는 그 자체, 사회적인 안정이나 독립성이 단순한 우연이나 자의(姿意)[초연한 운동]적 형태를 띠는 모든 생산양식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한 요소이다. 이 규율과 질서는 각 생산양식의 사회적으로 안정된 형태이며, 따라서 각 생산양식이 단순한 자의나 우연으로부터 상대적으로 해방된 형태이기도 하다. 모든 생산양식은 생산과정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관계가 정체되어 있을 때 그 자신의 단순한 반복적 재생산에 의해 이 형태에 도달한다.”3)

 

알튀세르의 주장과 달리, 맑스는 토대가 갖는 내적 모순의 일정한 성격(대립의 관계로부터 나타나는 모순)이 상부구조가 갖는 특성을 정의하며, 그 이후가 되었든, 이전이 되었든, 상부구조가 완전히 독자적인 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였다. 다시 말하여, 상부구조가 토대 유지에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상부구조를 형성하는 생산양식의 고유성, 즉 그것이 갖는 상부구조에 대한 파생(성)이 항시 전제되는 것이다. 오로지 이러한 전제 위에서만 상부구조는 토대를 견인할 수 있다. 반대로, 토대가 그 일차성을 잃고, 상부구조만 공중 위에 떠 있다면, 상부 구조는 그 자체로서 토대를 전혀 견인할 수 없다. 착취 상부구조를 뒷받침하는 착취적인 토대가 변혁을 통해 발전으로 이행하면, 착취 상부구조는 독자적인 자기 운동을 통해 그 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 이로써 맑스의 재생산 이론은 상부구조가 이미 토대의 그것과 대등할 수 있는 수준의 착취의 재생산성을 갖고 있다면 곧 그러한 상부구조의 기반이 되는 토대에 이미 그에 상응할 수 있는 착취의 재생산성을 갖춘다고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착취의 재생산을 논하기 전에 면밀히 따져야 할 것은 소외된 노동의 성격이며, 그것이 착취 계급으로의 잉여가치 전유(자본가에게 귀속되는 이윤)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냐를 따져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잉여가치를 자본가에게 전유하게 하는 소외된 노동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노동자는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자아 실현으로서의 노동으로부터 소외,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 인간 자체로부터의 소외라는 네 가지 소외를 겪게 된다. 한편, 자본가는 다양한 방식으로서 노동자의 노동을 평가절하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에서 이점을 취하려는 자본가의 행동은 자의적이지 않은데, 그것은 경쟁에 의해 강제된다. 그리고 결국 생산과 소비의 관계와 생산 부문 간의 관계의 불균형으로 인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자본가는 이윤율의 저하 경향의 늪에 빠지게 된다.4)

 

맑스는 ≪임금, 가격, 이윤≫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다른 모든 사정이 같다면, 잉여 가치율은 노동일 가운데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분과 자본가를 위해 수행되는 잉여 시간 또는 잉여 노동 사이의 비율에 좌우될 것이다. 따라서, 잉여 가치율은 노동자가 자기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요컨대 자기 임금을 보전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노동 정도를 초과해서 노동일이 연장되는 비율에 좌우될 것이다.”5)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은 잉여가치를 자본가에게 전유하는, 소외된 노동으로 연명한다. 소외된 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서 가장 첨예화한 영역이다. 노동량 산출 정도(재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의 정도)에 기반한 착취 즉, 임금 노예제라는 경제 환경에서 추상적 노동을 하는 노동자계급은 그 생산 현장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모순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계급투쟁의 기폭제가 된다.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임금 투쟁, 그 구체적인 수단으로서 자잘한 노동운동으로서 나타난다. 노동자계급이 착취 사회에서 계급의식을 고양받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착취 계급이 이윤을 얻어내는 최전방 지대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바로, 착취의 재생산이 직접적으로 자행되는 영역에서, 자본주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영역에서 생산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역에서 진행되는 피착취 계급의 투쟁에 대응하는 수단으로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그에 걸맞는 법, 문화 등 기타 의식 형태를 산출하고 그것의 견인을 받는다. 이러한 요소들은 피착취 계급의 투쟁이 더욱 강렬해질 때 매우 노골적인 폭력을 실시하는 파쑈적 성격을 갖게 된다. 파쑈 통치는 계급 운동을 타격하는 데 집중하며, 그 외, 의식 형태로서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수단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보조한다.

이렇듯, 상부구조가 갖는 억압적 기능은 착취 사회의 생산양식을 구성하는 생산력, 즉,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는 영역, 즉, 임노동이 가열차게 진행되는 영역에서의 투쟁 양상에 따라, 그것이 그 생산양식을 안정적으로 견인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선에서 의식적으로 조절된다.

여기서 착취의 재생산성은, 부르주아 계급이 착취에 기반한 이윤을 지속적으로 얻는다는 의미에서, 부르주아 계급이 행하는 노동 착취가 이윤율의 저하 경향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윤을 보장해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안정성’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한편으로, 그것은 부르주아가 자본의 회전에서 착취를 통한 이윤량의 증가 수준, 그것의 지속성을 가늠하는 척도로도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경쟁이 그들에게 강제하는 것이다. 이렇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 또한 소외된 인간에 불과하다). 나아가서, 이러한 고삐를 늦출 경우 자본의 회전에 따른 자기 자본의 붕괴에 직면한다는 것을 자본가는 알고 있다.

즉, 착취의 재생산은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한 생산양식으로부터 추동된다. 착취의 재생산의 주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소외된 노동의 재생산에 있으며, 그것의 구체적인 실현 방법, 양상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활동, 더 구체적으로는 그러한 생산양식에서의 생산 활동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부구조가 그것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남한 사회에서 흔히 언급되는 ‘노동개악’은 바로 이것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생산양식에서 생겨난 직접적인 관계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즉, 착취의 재생산 기반은 토대로부터 추출해내야 한다.

이에 대해 논쟁적인 문건은 바로 엥엘스가 1890년 10월 27일에 슈미트에게 보낸 서한과 1984년 1월 25일 보르기우스에게 보낸 서한일 것이다. 엥엘스는 이 서한에서 상부구조가 토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그것은 토대의 ‘작용’(상부구조로)의 성격이 거세된 상태에서, 완전한 독자성을 획득한 상부구조의 ‘작용’(토대로의)은 아니다. 오히려 엥엘스는 일관되게 그것을 ‘반작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반작용이란 표현은, 그것이 갖는 작용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즉 작용으로서 대상이 없을 경우 성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작용의 추동은 경제적 필연성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알튀세르의 해석은 잘못된 해석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경제적 운동은 전체적으로는 자신을 관철해 가지만, 또한 자신이 만들어 낸 상대적 자립성을 갖고 있는 정치적 운동의 반작용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략) 경제적 관계들이 법 원리로서 반영될 적에도 이 반영은 필연적으로 머리로 선 반영입니다: 이 반영은 행위자의 의식에 들어가지 않고 이루어집니다. 법률가는 선험적 명제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명제는 경제적 반사일 뿐입니다.”6)

 

“독일에서나 프랑스에서나 그 시대의 일반적 문예 번영과 마찬가지로 철학도 경제적 도약의 결과였습니다. 이 영역들에 대해서도 경제적 발전이 종국적 우위에 있다는 것은 제게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7)

 

“정치, 법, 철학, 종교, 문학, 예술 등등의 발전은 경제적 발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것들은 서로에 대해, 그리고 경제적 토대에 대해 반작용을 가합니다. 경제적 상태가 유일하게 능동적인 원인이고 다른 모든 것은 단지 수동적인 결과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8) 그것이 아니라, 종국적으로 언제나 관철되는 경제적 필연성에 기초한 상호 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인간들은 오늘날까지 하나의 일정한 경계 안의 주어진 사회 내에서조차 전체적 계획 아래 전체의 의지로 역사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노력들은 서로 교차하며,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모든 사회에서의 우연을 그 보충물과 현상 형태로 가지는 필연이 지배합니다. 여기서 온갖 우연을 통해 관철되는 필연은 역시 경제적 필연입니다.”9)(강조자는 엥엘스)

 

결국 알튀세르의 <토대가 갖는 착취의 재생산 성격이 거세된 것을 전제로 한, 독자적인 의미에서 상부구조의 착취의 재생산>은 맑스나 엥엘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결론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맑스의 자본에 관한 이론과는 상반된 입장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서 착취의 재생산에 대해 상부구조가 그 본질적인 기반이라고 하는 전도된 관점에 기초하여 그 과정을 더욱 세밀하게 논하면서 경제적 필연성에 기초한 유물론적 역사관을 폐기하고, 이데올로기 망(장) 내에서의 복잡한 이데올로기적 관계에 따른 관념론 역사관을 주장하게 된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서 자본주의 국가가 갖고 있는 다층적인 구조 속에 포함된 이데올로기 층위의 국가가 독자성을 갖게 되며, 이데올로기 층위의 국가가 착취의 재생산을 결정짓고, 그것이 되려 토대를 속박하여, 그러한 국가의 일방적인 성격에 의해 재규정된 토대가 다시 착취의 재생산을 ‘명령’받는다고 주장하였다.10) 그리하여, 생산 활동의 지반, 착취의 지반으로서, 더 나아가 물질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지점으로서 생산양식이 갖는 일차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토대는 이데올로기 국가의 부름을 받는, 그리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의 재생산성을 갖게 되는 부차적인 요소로 되어버린다. 즉, 알튀세르는 토대가 상부구조에게 착취의 재생산을 이전한 후,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착취의 재생산, 그 물적 토대로서의 상부구조에 대한 고유한 성격이 사라지고, 상부 구조는 토대와 독립하여 그것이 갖는 ‘반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어서, 알튀세르는 착취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국가 기구로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ISA)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11)

알튀세르는 맑스와 엥엘스가 언급했단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에 대해 그 역(逆)의 견해를 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논리가 성립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서 상세히 논한다. 그는 특히 재생산의 구성 요소에 집중하여 자신의 논리는 전개한다.

일단 재생산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재생산이란 물적 부의 생산에서 단일, 고립적인 행위가 아닌, 연속적이면서 반복되는 과정이 동반되는 측면에서 생산 활동을 의미한다. 재생산은 크게 단순 재생산과 확대 재생산이 있다. 단순 재생산이란 잉여가치 전체가 착취자의 개인 소비를 위해 쓰여져 생산 활동의 규모가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 반면, 확대 재생산은 생산수단 추가 구매, 노동력의 추가 구매, 추가될 노동력에 따라 증대되어야 할 생산수단의 추가 구매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따라서, 확대 재생산은 이전보다 훨씬 큰 규모의 생산 활동을 불러온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이윤량의 증가란 바로 이러한 확대 재생산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확대 재생산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노동력과 관련된 자본의 확대 재생산 방식을 다룰 때, 이를 노동력의 재생산이라 한다.

재생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 계급의 최종 목적으로 인계하는 성격을 갖는데, 이러한 성격에서 재생산을 논할 때, 자본의 재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 계급은 노동력의 재생산을 직접적으로, 구체적으로 다룸으로써 자본의 재생산을 실현한다. 이를 통해 노동력의 재생산-자본의 재생산의 관계를 정식화할 수 있다.

알튀세르는 확대 재생산의 관점에서 자본이 노동력에 대해 자본을 투하할 때, 노동력의 기능적 차원이 질적으로 상승하는 방향으로도 투하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노동시간과 관련해서 자본가계급이 경제적 이점(한 상품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노동시간 크기의 감소와 관계해서)을 얻기 위한 것이므로,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알튀세르는 자본의 투하로 인해 노동력 산출의 성격이 점차 고도의 지적 성격을 갖추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는 이를 <현 단계의 생산력의 구성 수준에 따른 서로 다른 직위들과 직무들로의 노동의 사회-기술적 분할>이라고 하였다.12)

<현 단계의 생산력의 구성 수준에 따른 서로 다른 직위들과 직무들로의 노동의 사회-기술적 분할>이 노동력 재생산에서 갖는 특수한 지위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에게 착취 사회를 유지시키는 강한 권한을 부여하게 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 차원,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국가가 순수하게 담당하는 교육의 차원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토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알튀세르는 전자에 관해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데, 이는 그의 이데올로기 이론에서 상세히 다뤄진다.13) 이어서 그의 재생산 과정에서 노동력의 성격을 이데올로기 망과 무리하게 연결하는 시도는 지극히 주의주의적인 시도로서, 그의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론을 비판하는 부분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알튀세르의 논리는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 ≪임금, 가격, 이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분석했던 내용과는 완전히 상반된 입장에서, 더 나아가서 맑스의 분석을 완전히 반박하는 입장에 기댄 논리이다. 이미 그는 착취의 재생산을 논함에 있어 심대한 오류를 저질렀고, 그 오류에 기초한 논리를 계속 잇는 모습을 보여준다.

알튀세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은 국가의 여러 층위에서 중층적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중층적으로 이어진다고 보며 상부구조가 갖는 대립적 성격이 토대가 갖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정(正)반영의 관계를 그 역으로 전도한다. 따라서 알튀세르에 따르면 사회구성체가 내재하고 있는 모순의 본질적 내용에서 토대를 따질 때, 그것과 같은 수준에서, 더 나아가서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모순을 낳는 상부구조를 전제할 수 있다. 그리고 상부구조가 갖는 모순과 그에 따른 양태는 그의 주체 이론14)에 따라 중층적 구조를 갖게 된다. 그는 이를 모순의 중층 결정 또는 과잉 결정(surdetermi

-nation, overdetermination)이라고 하였다.15) 이 과잉 결정에 대한 것에 대한 비판은 그의 이데올로기 이론이 갖는 반(反)유물론 성격을 비판한 후에 다루기로 하겠다.

 

 

2.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이 갖는 반(反)유물론의

성격과 비과학성

 

맑스주의는 과학적 세계관으로써, 착취 사회의 모순을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고, 모순의 운동의 필연성을 인식하면서, 모순의 발전 과정에서 그 모순을 지양할 수 있도록 노동자계급의 계급 의식을 고양한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다룸에서 과학적 세계관과 지배 이데올로기의 적대적 대립에 대한 체계적 사고를 하는 대신, 그 모순을 이해하는 단초로 오히려 착취 사회의 허위의식, 착취 계급의 이데올로기에 그 기반을 둔다.

알튀세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각자 고유한 실천에서 그들이 인식하는, ‘생산양식의 모순에 관한 의식’에 불일치가 있음을 포착했다. 물론, 이는 올바른 사유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 의식에 기초하여, 모순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사회주의 변혁에로의 길에 나서는 이가 있는 반면, 그 반대로 모순 인식에서 일정 정도에 접근하지 못 한 부류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각 개인은 적어도 동질의 토대로 묶어지는 지역, 영향권 속에서 함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알튀세르는 이 다소 ‘모순적인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방식으로서 착취 계급의 이데올로기 망(網)에 기초한 독자적인 모순 인식에 대한 견해를 내보였다. 그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 그 국가 기구를 떠받치는 착취 계급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착취 계급의 이데올로기 일반의 존재 양식으로서 독자적인 인식론을 구축하였다.

그의 이데올로기 개념은 동질의 토대 속에서 모순 정도의 인식에 관한 다양한 견해, 조망을 갖고 있는 각 개인을 연결하는 매개이다. 그리하여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역사에 대한 관계를 포함한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체험적 관계’는 이데올로기를 통과하며, 게다가 이데올로기 자체인 것이다.”16)

 

“이데올로기 안에서 인간은 사실 인간이 자신의 존재조건과 맺는 관계가 아니라, 인간이 그 관계를 체험하는 방식을 표현한다. (중략) 이데올로기 안에서 현실관계는 상상적 관계 속에, 즉 하나의 (보수주의적, 순응주의적, 개량주의적 혹은 혁명적) 의지 이상을, 게다가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 희망이나 향수를 표현하는 관계 속에 어쩔 수 없이 둘러싸인다.”17)

 

알튀세르는 <현 단계의 생산력의 구성 수준에 따른 서로 다른 직위들과 직무들로의 노동의 사회-기술적 분할>의 특수한 성격을 재해석한다. 그는 착취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이 재생산 과정에서 이데올로기 망의 위상에 부유할 수 있는 의식적 차원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확대 재생산 과정에서 자본 투하로 <질적으로 상승한 노동력 산출>이 갖는 기능적 성격이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의식의 층위와 같은 지점을 공유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고도의 지적’인 소외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그 노동(력)을 함으로써 이데올로기 망과 같은 층위를 공유하게 된다. 즉, ‘고도의 지적’인 소외된 노동이 그 자체의 지적인 성격에 따라 의식으로 전화되고, 전화된 의식이 이데올로기 층위를 구성하는 의식과 맞물려서 두 의식적 내용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투쟁의 내용도 의식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 된다.18)19)

그러나, 이는 맑스와 엥엘스가 ≪신성 가족≫에서 이미 비판한 바 있는 국민 경제학의 관념론인 해석을 다시 끄집어낸 것에 불과하다.

 

“사적 소유의 관계들을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관계들로 간주하는 국민 경제학은 자기의 기본 전제인 사적 소유와의 끊임없는 모순 속에서 운동하는데, 이 모순은 종교적 관념들을 항상 인간적으로 해석하며 바로 그 때문에 자기의 기본 전제인 종교의 초인간성과 언제나 충돌하게 되는 신학자의 모순과 유사하다.”20)

 

알튀세르의 확대 재생산에 관한 해석은 맑스와 엥엘스의 위와 같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토대의 반영인 의식 자체에 실재성을 부여하고, 그러한 실재성으로서의 의식이 추상적(의식적) 공간 속에서 의식 자체로, 다른 의식과 관계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유물론에 기반한 인식이 아니라 관념론에 기반한 인식(그것도 객관적 관념론이 아닌, 주관적 관념론)이다. 물론 이데올로기 투쟁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소외된 노동에서 특수하게 나타나는, 이데올로기 망이라는 위상에 부유할 수 있는 관념적 성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데올로기 투쟁은 노동대중의 의식적 행위에 영향을 주는 착취 계급의 허위의식을 구축(驅逐)하는 것인데, 이것은 맑스-레닌주의 세계관을 노동대중에게 이해시키는 구체적인 과정으로부터 시작되며, 과학적 세계관을 통해 착취 계급의 비과학에 대응하는 현실적이고도 직접적인 투쟁으로 실현된다.

알튀세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제(諸) 조건에 대한 관념론적 해석을 바탕으로 해방의 전망을 논한다. 그는 스스로의 ‘관념론적 해방관’을 아래와 같은 문장을 통해 종합한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이데올로기적 표현 자체가 다음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각 ‘주체’가 자신의 ‘의식’을 형성함에서, 그것(이데올로기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의 ‘관념’을 자유롭게 믿게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함’을 인식하도록 한다는 것.”21)

 

이러한 사슬로부터 헤어나오게 할 수 있는 그 근거로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 자체가 갖는 취약성에 대해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이하 ISA)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계급 투쟁은 실제 계급 투쟁의 한 측면이며, 때로는 중요한 양상을 보인다. 18세기 반종교 투쟁, 오늘날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교육 등이 그것이다. (중략) 착취 사회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는 실제 ISA로부터 ‘실현’되지만, 그것은 실로 그것을 뛰어넘는 상위의 (착취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것이다. (중략) 바로 이 출발점에서 ISA의 지배 이데올로기 실현을 설명할 수 있다. 한편으로 ISA를 근거하는 상위의 이데올로기를 파악함으로써 ISA의 영역에서 계급적 대결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22)

 

그런데 그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를 상위에서 떠받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원형은 앞선 알튀세르의 언급을 통해, 그 지배 이데올로기의 구성물인 의식에 능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 그런데 그런 자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교육으로부터 <고도의 소외된 노동>을 하는 자이다.

결국 알튀세르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은 의식화된 노동자계급 일반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중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의 의중에 따라 자본 투하를 통해, 스스로가 가진 노동력의 성격이 <고도의 지적인 소외된 노동>이 된, 노동자 내부의 특수한 계층이 수행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 관계의 가장 깊은 심원에 접근할 수 있는 집단이 <고도의 지적인 소외 노동>을 갖춘 노동자계급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하 계급투쟁 일반은 노동자계급 중 인텔리와 자본가 사이의 투쟁이 된다. 이는 엘리트주의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대립이 현실에서 의식화된 노동자계급 일반과 자본가계급 일반 사이로 드러난다는 것을 심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게다가 구체적인 현실에서 추상으로, 추상에서 구체적인 현실에로의 접근, 그러한 접근의 과정, 운동이라는 변증법적 방법론 대신에 알튀세르는 추상 속에서 의식과 의식 사이의 대립이라는 다소 주의주의적인 구상(관념상에서 이어지는 형식논리학의 형태)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헤겔의 실천에 관한 규명으로서 변증법을 왜곡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알튀세르는 이성의 계기로서 현실, 그 현실로서 세계영혼(anima mundi)의 실질을 파악하는 이성의 정합으로서 변증법 전통(헤겔로부터 이어진)을 완전히 말소23)하고 변증법을 추상 공간의 의식체와 의식체 사이의 관계, 얽혀짐, 능동적인 의식의 이동 등으로 대체한다. 이러한 오류를 계속 떠안고 가는 알튀세르는 낡은 착취 생산양식을 지양하는 노동자계급의 실천을 왜곡한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데올로기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살아진 관계에 해당한다. (중략) 이데올로기 안에서 인간들은 실상 그들이 그들의 실존조건과 맺는 관계가 아니라 그들이 그 관계를 사는 방식을 표현한다. 이것은 실제의 관계와 상상적인 살아진 관계 둘 다를 전제한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란 인간들과 그들의 세계 사이의 관계의 표현, 즉 인간들과 그들의 실재 실존조건들 사이의 실재 관계와 상상적 관계의 중층적 통일이다.”24)

 

“이데올로기의 저자의 특유한 차별성이 무엇인지를, 즉 하나의 새로운 의미가 출현하는지 여부를 결정해 줄 수 있는 것은, 개인적 사고의 고유한 문제설정을 이데올로기적 망에 속하는 사고들의 고유한 문제 설정들에 관련시키는 것이다.”25)

 

‘이데올로기적 망에 속하는 사고들의 고유한 문제 설정’은 구조화된 중층결정으로서 기본 모순‘들’을 말한다. 이로써, 알튀세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근본적인 기본 모순은 하나로 통일된다는 모순의 기본 법칙을 내던지고, ‘망에 속하는 사고들의 고유한 문제’ 즉, 구조적으로 분리된 근본 모순들을 상정한다. 그런데, 이 모순들은 노동자의 집단행동이 아니라 파편화된, 분해된 대중의 소시민적 사고가 갖는 지극히 외적인, 그리고 비적대적인 모순에 불과하다.

맑스는 공산주의자의 목적의식적인 투쟁에 대해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공산주의 조직은 본질적으로 경제적이며, 이러한 연합의 조건들은 물질적 창출이다 ; 공산주의 조직은 기존의 조건들을 연합의 조건들로 만든다. 공산주의가 창출하는 현실은 바로 개인들로부터 독립된 어떤 현실도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현실적 토대인데, 단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이 개인들 자체의 지금까지의 교류의 산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한에서 그렇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지금까지의 생산 및 교류에 의해서 산출된 조건들을 비유기적 조건들로서 실천적으로 취급하지만, 그들에게 재료를 제공해 준 것이 종전 세대들의 계획이나 사명이었다고 상상하는 일이 없다.”26)

 

한 사회에서 인간은 그들을 둘러싼 실존조건과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알튀세르는 이것을 ‘어떠한 상상적 관계’라고 대체하여 관념론적 설명을 넘어선, 관념론적 입장에 들어선다. ‘실존조건과 직접적으로 관계함’이 ‘상상적 관계’로 전환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는 것도 알튀세르와 같은 속류적인 수준의 발로일 것이지만, 이 두 관계는 이원적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며, 전자는 후자를 규정하는 관계로, 그것의 본질을 따질 때는 전자로서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두 관계를 이원화한다. 그의 바람과 달리, 맑스는 인간을 계급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자본주의 사회는 제 노동자계급과 제 자본가계급으로 나눠질 것이고, 양 계급의 주체성은 그 토대의 내부 운동을 반영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착취 관계의 폐절은 착취 사회의 모순(토대 모순)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근거하는 것이며, 그 방식의 성격 또한 토대와 그 토대의 모순을 가능하게 하는 물적 성격과 다르지 않다. 맑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으로 제압하여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위와 같은 인식의 간단한 표현이다. 계급투쟁은 ‘우연히 영감을 의식에 부여하는 사고 일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마오쩌둥은 ≪모순에 관한 이론≫을 통해 감각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을 구분하고 후자를 모순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기초한 인식이라고 했으며, 이것을 계급 의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계급 의식은 착취적인 생산양식 속에서 피착취자가 그것의 생산관계의 최전방, 즉, 소외된 노동을 하고, 그러한 현실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계기로 모순을 인식하는 과정으로부터 자각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맑스는 (계급)의식화된 노동자계급이 곧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방식이라고 하였다. 맑스는 이를 유적 존재(類的存在, gattungswesen)라 하였다. 맑스는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에서 유적 존재로서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인간은 하나의 유적 존재인 바, 이는 그가 실천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유를, 다른 사물의 유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유도 자신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그가 현재의, 살아 있는 유로서 자기 자신과 관계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따라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기 자신과 관계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27)

 

그리고 어떻게 유적 존재로서 인간이 성립할 수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동물뿐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어서 유적 생활은 육체적으로는 첫 번째로 인간이 비유기적 자연에 의해 생활한다는 점에서 그 본질을 두고 있는 바, 인간은 동물보다 더 보편적이며, 그가 그것에 의해 생활하는 비유기적 자연의 범위도 동물보다 더 보편적이다. (중략) 그것들은 실천적으로도 인간 생활과 인간 활동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자연 생산물이 식료품, 난방, 의복, 주거 등등의 어느 형식으로서 나타나든 간에, 인간이 육체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은 오직 이러한 자연 생산물들에 의해서이다. 자연 전체가 인간의 생활 활동의 대상/재료 및 도구인 한에 있어서 자연 전체를 자신의 비유기적 신체로 만드는 바로 그러한 보편성 속에서 인간의 보편성은 나타난다.”28) (강조는 인용자가 하였으며, 이후 특별한 언급이 없는 모든 경우는 인용자에 의한 강조이다)

 

피착취자가 계급 의식을 갖출 수 있는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본래 인간의 유적 생활의 열화/소외된 형태로서의 착취 노동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착취 사회에서 피착취계급으로서의 소외된 노동은 그것이 비유기적인 자연과 관계된 사회적 생활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의 사회적인 성격(노동의 사회적 성격)이 그 대립쌍(노동생산물에 대한 사적 전유)과 갖는 모순으로부터, 피착취계급에게 착취 사회의 모순을 바로 인식할 가능성이 상시 (제 현실에 관한 변증법적 통찰로부터) 주어진다. 이 조건으로부터 합법칙성으로서의 모순을 바로 인식하고 투쟁하게 해 주는 합목적성, 다시 말하여, ‘합법칙성-합목적성 관계’를 규정할 수 있다.29)

변혁은 이 계급 의식에 기초하여 진행하는 것이지, ‘부유하는 의식에 임의적으로 작용하는 사고’가 아니다. 위와 같은 주장을 통해 알튀세르가 얼마나 관념론적 세계관에 도취되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맑스는 허위의식(≪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그의 특수한 표현으로 <자기 실행의 족쇄들>이라 하였는데, 이는 상부 구조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포함하는 것이다)과의 조응에 따른 교류 형태가 존재할 수 있음을 논하였지만, 그러한 교류 형태의 본질은 생산력에 상응하는 관계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자기 실행의 조건들로서 그리고 이후에는 자기 실행의 족쇄들로서 나타나는 이러한 다양한 조건들은 전체 역사 발전 속에서 연관을 맺는 일련의 교류 형태들을 형성하는 바, 이 교류 형태들의 연관의 본질은 족쇄로 변화된 이전의 교류 형태가 하나의 새로운 생산력들에 상응하는 그리고 그 생산력들과 함께 진보한 개인들의 자기 실행의 방식에 상응하는 교류 형태로 대체되며, 이 새로운 교류 형태 역시 자기 편에서 족쇄로 변화하여 또 다른 교류 형태에 의하여 대체된다는 점에 있다. 각 단계의 이러한 조건들은 동일 시기의 생산력들의 발전에 조응하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들의 역사는 동시에, 발전되어 나가면서 각각의 새로운 시대로 넘겨지는 생산력들의 역사이며, 이와 더불어 또한 개인들 자체의 능력들의 발전의 역사이다.”30)

 

노동 해방은 올바른 현실 인식에 기초한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편, 실천은 그것 자체가 일정 주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기에 참된 인식의 객관성을 모두 반영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하여, 실천에는 오류가 뒤따르는데, 이러한 오류에 대해 치밀한 검증을 수반함으로써 다시 객관(변증법적 사유를 통한 구체적인 사유로 나아감으로써)에 접근하고, 그 객관을 통해 다시 객관적 실현으로서 실천(그러나 현실적 제약에 따라 주관적이기도 한)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에 관한 주장과 이 주장을 정초할 수 있는 그 시원적인 개념들을 맑스에게서 추출할 수 없다는 사실이고, 더 나아가서 알튀세르 견해의 성격을 면밀히 따졌을 때, 그는 충분히 반맑스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맑스는 착취 계급의 이데올로기의 관념 속에서 모순에 대한 그 어떠한 정확한 인식을 가질 수 있는, (착취 계급의)이데올로기와 규준이 동질이라는 주장, 그리고 그것과 관계하는 관념상의 경로를 통해 사회 변혁을 논하는 것을 관념론적 시도라 하였다. 맑스는 착취적인 토대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해방이 열린다고 하였다.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우리의 ‘현명한 철학자’들이 철학, 신학, 실체 및 온갖 오물들을 ‘자기 의식’ 속으로 해소함으로써, 그들이 ‘인간’을 이 공문구들의 지배-인간은 이 공문구들의 지배 아래에 예속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인간’의 ‘해방’이 단 한걸음도 진전을 이룬 것이 없다는 것; 현실적 해방은 현실적 세계 속에서가 아니면 그리고 현실적 수단들을 가지지 않고서는 관철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인간은 증기 기관과 뮬 방적기와 제니 방적기 없이는 노예제를 폐지할 수 없으며 개량된 농경이 없이는 농노제를 폐지할 수 없다는 것, (중략) ‘해방’은 하나의 역사적 행위이지 사상 속의 행위가 결코 아니다.”31)

 

맑스는 해방의 가능성을 언급할 때, 지배 계급의 허위의식과 같은 층위를 공유하는 의식 일반이 주도하는 투쟁을 공허한 헛소리로 치부하였다. 맑스가 말한 ‘역사적 행위’는 인간 생산 활동의 역사에서 생산양식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계급 사이의 분쟁(투쟁)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이 투쟁에서 피착취 계급의 승리는, ‘지배 계급의 사상’, ‘착취 사회의 허위 의식’으로서 학문이 아닌, 계급 의식적 자각에 따른 과학적 세계관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올바르게 인식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과학적 세계관은 공중누각식의 공담이 아니라, 인류의 생산 활동, 그로부터 형성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즉 물적 토대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말한다. 그리하여, 소외로부터의 해방은 어떠한 관념적인 인식 속에서 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철폐함으로써, 즉 인간 생활과 직결된 물적 토대를 대상으로 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맑스의 분석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의 비교를 통해, 알튀세르가 갖는 ‘이데올로기 이론’의 관점은 부르주아 사회의 허위의식에 기초한 잘못된 관점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지배 계급의 허위의식, 그리고 그 파생적인 의식이라 한 맑스의 입장과 달리,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모순 정도에 대한 인식이 각기 다른 개인 사이의 관계가 표상화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연결되는 과정으로서, 개인에게 작용하는 것을 호명(interpellation 呼名)이라고 칭하였다. 알튀세르는 호명의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만약에 우리가 상정한 이론적 장면이 길거리에서 일어난다고 가정한다면, 호명된 개인은 뒤돌아 볼 것이다. 이 단순한 물리적 선회에 의해 그는 주체가 된다. (중략) 왜냐하면, 호명이 ‘바로’ 그에게 행해졌으며, ‘호명된 자가 바로 그’(다른 자가 아니라)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략) 호명이 실제로 그의 대상을 놓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로 부르거나 호각을 불어서 호명된 자는 항상 호명한 대상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중략) 이데올로기의 존재와 개인의 주체로서의 호명은 하나의 동일한 사건이다.”32)(강조는 알튀세르)

 

알튀세르는 호명과 주체 형성의 연관을 통해 다원적인 이데올로기적 관계에서 자라나는 구조가 곧 주체를 결정하며, 그에 따라 하나의 사회적 역사적 단계에 놓인 인간집단은, 그 개개마다 다양한 주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주체는 일정 단계에 놓인 사회적 역사적 조건에 존재하는 생산양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이데올로기적 관계가 독자적으로 형성한 구조에서 배타적으로 난립되는 것이 아니다. 맑스주의를 현실과 이론에 올바르게 적용하고자 한다면, 알튀세르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호명된 피착취 계급’은 착취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분해된 대중으로밖에 되지 않는다. 그의 해석의 결론으로서, 노동자계급은 그것이 무산자라는 하나의 주체를 통해 억압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마다 ‘다른 주체’를 갖게 될 것이다. 호명으로 확립된 ‘주체’가 착취 사회에서 갖는 사회적-역사적 맥락으로서 주체일 리는 없다. 왜냐하면 호명의 주체는 자각된 노동자계급의 의식이나 실천력이 아니라 그저 소소한 소시민적 허위의식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견해를 종합해보자. 그에 따르면, 착취 사회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데올로기는 더이상 지배 계급의 허위의식으로만 취급할 수 없다. 그것은 계급 의식에 기초한 투쟁에 선도에 선 사회적 존재로서 보편적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더 나아가서 착취 사이에서 매개되는 총체적 관념이 된다. 그리고 지배 계급의 허위의식과 같은 차원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개별 영역을 포섭한 영역, 즉, 구조를 구성하는 의식>이 투쟁의 주요한 영역이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맑스와 엥엘스의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착취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허위의식이면서도, 그 사회가 갖는 생산양식의 모순을 가리기 위한 의식 형태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의식으로서 노동자계급이 투쟁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하며, 노동자계급이 갖는 의식상, 실천상의 부분적인 오류의 원인이 된다.

반면, 알튀세르는 스스로가 구상한 이데올로기 개념에 근거하고,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총체 속에서 개인이 점하고 있는 위치가 곧 해당 개인의 주체성을 결정짓는다고 본다. 즉, 주체는 자신이 관계하고 있는 이데올로기 영역이 갖는 성격에 따라 규정된다. 그러므로 알튀세르가 말한 “역사는 주체 없는 과정이다.”라는 말은, 그 글 자체로 ‘주체는 없다.’라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 정확히는 “역사는 주체와 목적이 없는 과정이다.”라는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주체는 구조에 따라 규정될 뿐이다. 그리고 구조는 이미 무의식의 기저에서 취사 선택된(호명) 것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목적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맑스에게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필연성을 인식함에서 자유를 갖는다.”라는 사고를 버린 것이라 볼 수 있는 대목인데, 왜냐하면, 착취 사회에서 피착취 계급의 주체를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착취 사회에서 착취 사회의 제 모순을 파악할 수 있는 피착취 계급의 지위를 없애고 그것을 ‘호명되어서 형성된 주체’로 대체한다면, 알튀세르가 언급한 성질에 따라 그러한 주체는 착취 사회에서 착취적인 토대의 내적 모순을 이해하는, 즉 필연성을 인식할 수 있는 성격의 주체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더 나아가서 알튀세르는 각 개인이 위와 같은 이데올로기 망(網)에서 주체성을 갖게 될 때, 그러한 주체로서 인간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지점에서 헤겔부터 이어진 맑스주의 인식 이론에 정면으로 대립한다. 그는 위와 같은 과정이 무의식적으로 편입되는 과정이라고 언급한다.

 

“이데올로기는 반영된 형태로 나타날 때조차 완전히 무의식적이다.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재현의 체계로 나타나지만, 대부분 이러한 재현된 것들은 ‘의식’과 하등 관계가 없다. 이데올로기의 표상은 대개 이미지인 경우이며, 가끔은 개념의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표상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일차적으로는 구조로서 부여되는 것이며, ‘의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33)

 

여기서 무의식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무의식 개념과 동일하다. 즉, 인간은 태생적으로 억압된 본능(한편으로, 이는 매우 자연스럽게 억압된 것), 그러하면서도 모두가 심연의 저편에 내재하고 있는 무의식의 내용에 따라 이데올로기 망의 내용을 취사선택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하여 무의식의 내용에 따라 규정되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그에 따르면, ‘주체가 형성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에 있으면서도, 그것은 인간 무의식의 내용에 따라 각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이를 상상적 관계(imaginary relationship)라고 칭하였다.

이렇듯, 알튀세르는 두 학자(프로이트, 라캉)가 다룬 무의식에 관한 개념을 인식을 다루는 이론에 전면으로 도입한다. 그런데, 프로이트와 라캉의 무의식에 관한 이론은 헤겔부터 이어져 온 맑스 인식 이론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무의식 개념을 살펴보자.

프로이트의 경우 무의식의 본질을 규정하는 요소를 리비도(성적 충동)라고 하였다. 그의 저서 ≪무의식에 관하여≫에 따르면, 리비도가 유아 시기에 무의식으로 전화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무의식적 기억 내용은 <자연스러운 억압>의 과정34)에 따라 무의식의 영역 저편에 계속 머물게 된다. 한편으로, 무의식적 기억 내용에 의한 대리 표상이 각성 상태에서의 의식 내용을 규정하는 핵심으로 되면서, 자아를 형성한다고 하였다. 무의식적 기억 내용에 의한 대리 표상이 갖는 구체적 내용은 그것을 내보내는 표상의 내용에 따르며, 표상의 내용은 리비도가 무의식으로 전화되었을 때의 구체적인 상황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의식적 기억 내용>은 표상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며, 그것을 이해하는 틀도 대리 표상이라는 틀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즉, 무의식적 기억 내용은 개념 기반의 사고로서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35) 한편,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기억 내용의 단면으로서 가장 대표적인 요소로 ‘꿈’을 주장하는데, 그는 ≪꿈의 해석≫에서 꿈이 무의식적 기억 내용이 갖는 표상을 개념의 형태로 매개하는 창구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적 충동은 인간의 생물학적 요소 중 하나이며, 인간 성격의 일면을 규정할 수 있지만, 전체 자아의 형성으로서 독보적인 근거가 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대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꿈은 신경 인지의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꿈의 내용은 그저 의식적인 것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은 최소한 부르주아의 과학성으로부터도 ‘증명’된 바도 없으며,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한 과학관은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공존할 수 없는 근본적인 대립 관계를 갖고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형성에 관한 전개에서 과학적인 수사를 동원하였지만 그것은 오늘날 사이비 과학으로서 취급되는 것일 뿐이다.

프로이트가 리비도에 대해 막연히 ‘본성’이라고 규정한 것과 반대로, 라캉은 태아 시기, 뇌가 발달하는 시기(5개월 ~ 6개월 이후부터 18개월 사이)부터 태내의 모종의 자기 인식 과정을 통해 무의식이 형성된다고 주장하였다. 자기 인식은 태아의 뇌가 발달하는 시기에 태내 속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어머니의 바람으로 인식한다. 그것에 대한 동일시로서 내면화를 한 태아는 그러한 내면화를 재인식하고, 그러한 재인식에 대한 인식을 다시 재인식한다. 이렇게 거울처럼 반사되는 과정을 통해 태아는 자아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를 자아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행동, 내적 감정의 상태를 규정하는 근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역시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충분한 근거 없이 태아가 태내에서 진행되는 모종의 환경 자극을 통해 어머니의 바람을 파악하고, 그것을 자기 인식으로서 내면화한다는 주관적인 설명에 의존하는 라캉 정신분석학은 최소한의 과학성마저 없는 것이다.

이후의 서술에서 논의하겠지만, 알튀세르는 이 비과학의 심리학을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의 대중 지배의 메커니즘으로 파악한다. 즉,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 망의 동질적 층위에서 형성된 주체가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바라는 바에 따라 자신을 내맡기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동일시를 도입한 것이다.

알튀세르는 다른 학자와 공저한 저서 ≪자본을 읽자≫(Lire le Capital)에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계승한 라캉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시각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가 수행할 수 있었던 무의식의 담론 체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수년 동안의 자크 라캉의 명석하고 뛰어난 이론적 노력 덕분이다. 이것은 프로이트를 읽는 우리의 방식을 혁신적으로 변모시켰다. 라캉이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혁신적인 이론을 제공해 주고, 우리 모두가 나름대로 이용해 이득을 보는 시기에 나는 그의 이 모범적인 읽기 교훈에 대해 우리가 빚을 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싶다. 그리고 그 교훈의 영향은 우리가 알 수 있듯이 그 원래 대상을 상당히 넘어서서 미친다.”36)

 

더 나아가 알튀세르는 각 인간이 갖는 무의식은 그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엔 영원하며, 인간 존재의 상시성을 생각한다면, 이데올로기는 영원한 것이 된다고 언급한다.

 

“영원하다는 것이 모든 역사의 순간에서 초월한 상태로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편재해있고, 초역사적이라서 전체 역사에서 변하지 않는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할 경우, 프로이트의 표현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무의식과 똑같이 이데올로기는 영원하다고 할 것이다.”37)

 

의식을 다룸에서, 헤겔이 말한 인식의 변증법, 그리고 맑스 이후 이어진 엥엘스와 레닌의 주관적 변증법(변증법적 사유)은 프로이트와 라캉식의 <무의식>과 공존할 수 없다. 프로이트나 라캉식의 리비도(성적 충동에 불과한)에 기초한 무의식이 자아 일체를 규정한다는 식의 논리는 주관적 관념론으로 나아갈 소지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개별 인간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연 세계의 운동이 자연사적 과정에서 일차적인 것이라는 유물론 관점을, 협소한 인간 욕구, 그것도 관념적으로 신비화된 무의식의 공간으로 옮겨놓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사적 과정과 인간의 존재 양식의 일체성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헤겔은 자아의 일반성에 관해 ≪철학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자아는 그 자체가 한갓 형식적 동일성으로 있기 때문에, 개념의 변증법적 운동, 의식의 진행 규정은 자아편에서는 자아 자신의 활동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있으며 객관의 변증법적 변화이다. (중략) 자아 곧 의식의 주체는 사유이다. 객관 규정의 논리적 진행은 주관 및 객관에 있어서의 동일한 것, 주관과 객관의 절대 관계이며, 객관을 주관 자신으로 삼는 것이다.”38)

 

즉, 자아는 사유가 갖는 각 대립자의 통일성 파악 과정(변증법적 운동)에서 일정 정도에 이르렀을 때의 동태적(상태에 놓인) 의식이다. 자아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규정하는 상위의 규정성으로서, 의식적으로 수행되는 변증법적 운동의 제 관계, 제 내용에 따라 변한다. 그리고 각 대립자의 통일성 파악 과정, 즉, 변증법적 운동은 이성에 의한 것이다. 즉, 자아는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의 전화, 객관과 주관의 통일 양상, 그 구체적인 사유와 실천의 활동에 따라 변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아는 한편으로 자연을 대하는 인류의 이성적인 사유, 실천 활동에 의해 일차적인 규정을 받는다. 한갓 리비도와 같은 낮은 차원에서의 인간 본능이 무의식의 내용을 규정하고 그것이 자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한편, 토대의 성격, 그 성격을 이해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성격을 규명하는 맑스에, 자연적 본성의 일면일 뿐인 성적 충동의 <자연스러운 억압>을 통해 형성된 무의식이 자아 형성의 일체를 담당한다는 주장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이것이 지배 이데올로기 자체든, 그 지배 이데올로기의 망에서 다양한 관계로 얽혀진 구조적 이데올로기이든)의 영원성에 관해서는 이미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그것이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고 그것이 독자적인 자립성을 가질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인간들의 뇌 속의 환영들 또한 인간들의 물질적인, 경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그리고 물질적 전제들에 연결된 생활 과정의 필연적 승화물들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도덕, 종교, 형이상학 및 그 밖의 이데올로기와 그에 상응하는 의식 형태들은 더이상 자립성의 가상을 지니지 않는다.”39)

 

결과적으로, 알튀세르가 갖는 <상상적 관계>의 내용은, 사유가 모순을 통일적 관점으로서 이해한다는, 그리고 변증법적 운동으로서는 불변인 특성을 지닌다는 헤겔의 변증법에 상충되며, 맑스가 주장하는 인식에 관한 관점에도 상충된다. 맑스에 따르면, 인식의 자유는 오로지 모순 정도, 정확히는, 그 제 모순 관계(필연성)를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틀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계급이 목적의식적인 투쟁에 나서면서 인식 지평을 확장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단계로서의 모순을 바로 인식하고, 그러한 모순을 참되게 인식하는 바탕 위에서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함으로써 외부 대상에 대한 능동성(자유)이 발현되는 것이다. 맑스가 공산제 사회를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고 설명한 것도 이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 망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자기 무의식에 따라 자유롭게 그것들을 취사선택하고 그것이 곧 주체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40) 이 과정은 인간이 그 이데올로기 망이 고유하게 갖는 모순을 이해하는 것과는 당연히 무관하다.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에 대한 왜곡으로서 비과학적인 자유의지론을 설파하고 있다.

 

 

3. 알튀세르의 ‘동일시’와 정신분석학과의 관계, 그리고 그 비과학성

 

알튀세르는 호명에 의한 주체 형성에 따른 지배 계급의 대중 지배를 논하기 위해 동일시(identification) 개념을 빌려온다.

동일시는 주체가 외부의 특성을 수용하여 스스로의 인격을 형성해내는 것, 그 과정을 의미한다. 동일시 개념은 프로이트와 라캉 둘 다 사용하는 개념이다.

프로이트의 경우 일차적 동일시를 자아를 형성하는 가장 빠른 동일시라고 결론을 내리고, 이 동일시의 내용을 세 가지 양상을 나눈다. 첫 번째는 인식의 대상과 감정적인 유대를 갖는 형태이다. 두 번째는 대상을 내투사시키는 것인데, 여기서 내투사란 무의식 형성의 기반이 되는 리비도의 내용을 동일시의 대상으로 대체시키는 것이다. 가령, 성적 충동의 구체적 내용에 따라 무의식이 형성되고, 성적 충동의 구체적 내용은 그러한 무의식의 형성 기저로서 파악할 수 있을 때, 대상에 대한 내투사가 개입할 경우 무의식 형성의 근저에 있는 리비도의 내용은 그 대상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는 복잡한 내용으로 승화한다. 세 번째는 자아이상을 형성하는 양상으로서의 동일시이다. 자아이상은 무의식 형성에서 리비도의 작동 원리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이 이상화하는 대상의 권위를 자아에 내투사시킨 것을 말한다.

라캉의 경우 프로이트와 달리 동일시의 세 가지 양상이 수평적 차원에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수직적 차원에서 나열된다. 그리고 그 기본 내용은 용어만 다를 뿐 같다고 할 수 있다. 라캉은 거울 단계 이론라고 하여, 태아 시기 뇌가 발달되는 지점부터 18개월까지 상상적 동일시가 형성되고, 억압이 완료된 후의 동일시로서 상징적 동일시가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질이 강화되면 이차적 동일시가 형성된다고 하였는데, 이 개념은 프로이트가 언급한, 자아이상을 수립하는 동일시와 비슷한 개념이다.

알튀세르의 동일시 개념은 이전 원(原) 개념의 ‘다양한 양상’이 제거된 형태이다. 하지만, 무의식과 연계된다는 차원에서, 그리고 직접적으로 정신분석학과의 관계를 고백한다는 점에서 두 학자의 동일시에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알튀세르는 국가의 지배력 행사의 여러 관념, 관습을 주체가 받아들일 때, 주체가 이데올로기 망에서 자기 무의식에 따른 상상적 관계를 통해 취사선택을 한 것과는 달리, 이 과정에선 선택성이 사라진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 국가가 갖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은 확고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과학적 세계관으로서 맑스주의와 공존할 수 없는 설명이다.

부르주아 국가의 이데올로기는 알튀세르가 지적한 것처럼 지배 계급의 공고함을 유지하기 위해 선전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 상태에서 유지되는 토대 속으로부터 생겨난 허위의식이며, 토대에 기초하는 지배 계급의 의식이다. 더 나아가서, 피착취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맑스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인간으로부터의 소외>에 기초한 것이다. 즉, 인간이 자기들의 생활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해 생산한 생산물이 거꾸로 인간 스스로를 특정한 착취 관계에 옭아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생산양식의 한 단계에서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경제적 토대로서 설명할 수 있다. 허위의식의 영향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피착취자의 소외에 의존하고 있다.41)

종합하자면, 맑스는 부르주아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노동자계급이 포섭되는 현상을 토대의 관점에서 해석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그 어떤 ‘동일시’와 같은 개념이 사용되지 않으며, 이와 유사한 논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알튀세르는 이러한 토대의 성격으로부터 부르주아의 허위의식이 영향력을 갖는다는 논증 대신, 동일시에 기초한 주관적 관념론의 해석을 통해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피착취자가 허위의식에 매몰되는 것 역시 토대의 기초에서 설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가 사이비 과학으로 치부되는 동일시 논리에 자기 논리의 주춧돌을 얹었다는 점은 그 스스로가 사이비 과학에 기초한 관념론자라는 것을 폭로했다고도 할 수 있다.

 

 

4. 알튀세르의 구조 이론이 갖는 반(反)역사주의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데올로기 망에 의한 각 개인의 주체 형성에 따라, 사회는 개인으로 하여금 다양한 중층 구조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구조의 산개는 자연스럽게 그 구조에 대해서 작용하는 독자적인 ‘다수의’ 기본 모순을 갖게 될 것이다. 알튀세르는 착취 사회의 토대 자체에서 모순을 찾는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 망에서 중층 결정화된 모순을 의식으로서 각개격파해야 함을 다시 강조한다. 그리고 각자 다른 모순의 내용을 갖고 있는 다양한 구조는 그 구조마다 다시 독자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가 스스로를 구조주의자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조주의자라고 해석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구조는 제1장에 쓰인 대로, 착취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이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착취의 재생산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상부구조의 최초 추동이 토대에 기인했다는 알튀세르의 초기의 언급과 합치될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알튀세르의 이후 이론 전개 양상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에 의한 착취의 재생산은, 이데올로기가 토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토대-상부구조에 관한 알튀세르의 인식은, 맑스의 토대-상부구조의 인식과 훨씬 더 멀어지게 된다. 알튀세르의 토대-상부구조는, 맑스가 그에 관해 언급한 ‘종적 관계’와는 달리, ‘정반대로서 종적 관계’로 표현된다.

한편, 토대에 ‘명령’을 하는 이데올로기 관계는 각 개인의 의식과 허위의식 사이의 관계에 따라 수많은 구조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토대는 이데올로기 관계의 중층 결정, 즉, 이데올로기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생겨나는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혁명은 낡은 생산양식을 뒤엎는 경제 영역에서의 첨예한 투쟁으로 추동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망의 중층적 구조를 끊어낼 수 있는 ‘혁명적’ 관념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는 ≪위상≫에서 착취의 재생산에 대한 주장을 이어나가면서 아래와 같이 언급하였다.

 

“자본가들의 투쟁이 생산의 영역에서 노동자계급의 투쟁 조건들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관계들은 그 속박 자체에 의해서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와 의식을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은 실제로 부르주아적 관계들 속에서, 그리고 부르주아 계급투쟁 자체를 통해서 정치적으로 교육되기 때문이다.”42)

 

하지만 앞서 알튀세르의 반(反)유물론적 경향을 비판하는 요지에서 인용했던 ≪독일 이데올로기≫의 내용43)은 법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관계에 대한 알튀세르의 입장과는 상당히 상반된 것이다.

맑스는 ≪정치 경제학의 비판을 위해서≫에서 착취 사회의 토대가 착취 사회로 인해 형성된 적대를 해결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창출한다고 하였다. 맑스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통한, 토대가 내재한 모순에 따른 적대의 극복에 중점을 두었다. 맑스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속박에 따른, 그리고 그 속박으로부터 생성되는 ‘신비로운 의식’의 능동적인 ‘기본 모순 창조’를 통한 적대의 극복을 언급한 바가 없다. 그리고 앞서 분석한 것처럼,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속박 내에서의 관념적 관계로서 투쟁이나 내용 전개를 부르주아 국민경제학의 잔재라고 하였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크게 개괄해 보면 아시아적, 고대적, 봉건적, 그리고 현대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들은 사회적 생산 과정의 마지막 적대적 형태인데, 여기서 적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개인적 적대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개인들의 사회적 생활 조건들로부터 싹터 온 적대라는 의미에서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의 태내에서 발전하는 생산력들은 동시에 이러한 적대의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들을 창출한다.”44)

 

착취 사회가 그 착취 관계의 붕괴를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이유는, 그러한 착취 관계, 즉 착취적인 생산양식 자체가 계급 적대를 불러일으킬 물질적 조건을 본래 갖고 있으며, 착취가 그것을 계속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위기의 가속화는 토대로부터 독립한(알튀세르의 주장에 따르면, 토대를 규정하기까지 하는) 이데올로기 관계의 중층 결정, 그것의 구조가 독자적인 법칙에 의해 의식의 재배열을 추동한 다음, 계급의 적대를 토대에 앞서서 직접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전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나아감은, 착취 사회 이데올로기와 그에 대항하는, 과학적 세계관(토대의 기본 모순을 명확히 밝히는)으로 무장한 이성적 인식 사이의 적대를 통해서 추동된다. 그 의식적인 내용은 착취적인 생산양식이 만들어내는 계급 적대의 반영으로서 확립되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의식의 모순이 토대가 갖는 모순의 반영으로서가 아닌, 의식 관계 자체가 만들어낸, 그러하면서 토대의 모순을 뛰어넘는 각 다양한 구조의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 모순 운동을 내포하고 있는 물질의 존재 양식이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으로 집약된다는 것, 그리고 의식의 모순도 이를 반영한다는 사실 이외의 영역에서, 다양한 구조 속에서 구축되는 모순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상에서의 투쟁은 다중적(multiple)이고 별개(distinct)이며, ‘상대적으로 자율적’(relatively autonomous)인 형태, 자본가의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 그리고 그것들의 종속적인 계급투쟁 사이에서의 충돌 효과를 제한적이고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것들을 모순이 갖는 객관적인 분야로서 정당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45)

 

다중적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이데올로기 관계의 중층 결정으로서 구조가 다양하다는 것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다. 별개라는 것은 모순 내용이 갖는 토대로부터의 독립성을 말하며, 동시에 구조에 따라 독자적으로 생성된 기본 모순이 서로에 대해 갖는 상대적인 독립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적으로 자율적인’의 경우 추가적인 설명이 없었으나, 기존 맑스주의에서 쓰이고 있는 상대적 독자성의 내용과 알튀세르가 제공하는 모순 내용의 맥락을 볼 때, 이데올로기 망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다양한 인간적 관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46) 알튀세르가 말하는 모순은 이미 토대로부터의 독립성을 전제하는 것이며, ‘다중적’과 ‘별개’ 역시 그가 언급한 각개 구조에서 완전히 독자적인 뿌리를 갖고 생겨나는 개별적인 모순이기 때문에, 그가 언급하는 ‘상대적으로 자율(독자)적’이라는 것은 토대가 갖는 모순의 본래적인 성격으로부터 반영된 모순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존재하는, 공중누각식의 모순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알튀세르의 위와 같은 입장은 다음의 언급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주체=대상이라는 관계가 어떤 이데올로기, 어떤 이데올로기적 구성체든 그것의 구조에 전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략) 반영이라는 범주는 객관적 지식의 이론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필시 이데올로기적인 것의 구조에 관련된 것이다. (중략) 이 동형성[인용자: 이데올로기 구조]은 그 자체 사회적 현실의 수준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곧 이데올로기적인 것의 구조의 우세 하에 그 수준들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은 차이를 차이의 부인 하에, 비-차이(非差異) 하에, 강제하는 기능을 갖는다.”47)(강조는 인용자)

 

알튀세르의 모순론을 그의 토대-상부구조 이론과 결합하면, 그가 말하는 모순은 물질의 존재 양식이 본래적으로 갖는 모순 자체와 그 모순의 반영으로서 수직 구도상의 다양한 모순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모순은 이데올로기 망 구조가 독자적으로 생성하는 각 개인 사이의 감정, 기타 소소한 관계에서도 생겨나는 갈등, 피상적인 형태의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소부르주아적 모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알튀세르의 해석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과적으로는 철학적 당파성의 입장에서 관념론이라는 대전제를 그가 받아들였다고 말할 수 있으며, 역사의 운동을 생산양식이 갖는 내적 필연성과 이성적 인식의 조응에 따른 것이 아닌, 각 개인의 주관적인 관념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관적 관념론에 머문다고 할 수 있다. 모순 운동을 내포하고 있는 물질이 존재 양식으로서 현실에 뿌리내릴 때 그것은 필시 인간의 생산 활동과 관계할 수밖에 없는데, 알튀세르는 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생물학, 인류학 성과, 역사학의 발전에 따르면 인류의 생산 활동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이 곧 그 인류가 속한 사회 전반에서 다루는 문제의 핵심이 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관념론적인 인류학자들은 인류 역사에서 특정한 관념이 인류사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 강변하지만, 그들조차 물적 토대를 무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상태이며, 물적 토대의 일차성을 전면으로 부정하려고 하지만, 인류학과 연계된 자연과학과 호환이 되지 않는 설명으로 인해 부르주아 강단 내에서도 상호 대립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원시적인 물질(대표적으로 분자들)에서 고차적인 분자 구조로서 복잡한 구조의 유기 화합물(대표적으로 코아세르베이트, RNA 등)로, 그리고 그러한 고차적인 유기 화합물의 복잡성 증대로서 원시적인 생명체(대표적으로 독립영양세균)의 등장, 이후 계속된 진화를 거듭한 후 등장한 인류에게 있어 물질의 존재 양식이 곧 인간의 생산 활동으로 구체화되는 양상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고차적인 물질로서 인간이 갖는 생리학적 욕구, 사회적인 활동, 정치 행위 등의 근저로서 인간의 생산 활동은 필연적이라는 점에서, 인간 생산 활동은 물질의 근본적인 존재 양식의 가장 첨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알튀세르의 모순은 이미 이러한 인간 생산 활동에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단절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단절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모순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미 관념론자이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다음과 같은 맑스의 언급을 통해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지배 계급의 사상들은 어떠한 시대에도 지배적인 사상들이다. 즉 사회의 지배적인 물질적 힘인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힘이다. 물질적 생산수단을 제 마음대로 처분하는 계급은 이로써 동시에 정신적 생산수단도 제 마음대로 처분하며, 그 결과 정신적 생산수단이 박탈된 계급의 사실들은 이로써 동시에 대체로 지배 계급에 종속된다. 지배적인 사상들이란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들의 관념적 표현, 즉 사상들로서 파악된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들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48)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결국 알튀세르의 논리는 사적 유물론의 역사 법칙 과정에 단절을 줄 수 있는 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알튀세르의 논리를 따라간다면, 자본주의 사회뿐이 아닌, 노예제 사회에서, 또는 봉건 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생겨나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독자적인 의미에서의 주체>의 형성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는 초역사적이거나 초계급적일 수밖에 없다(그리고 “계급사회에서 ‘초역사적인 세계관’이란 그저 지배 이데올로기의 일종에 불과하다.”라는 레닌의 언급에 따르면, 초계급적인 사관이나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착취 계급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알튀세르의 논리를 따른다면 주체가 귀속된 이데올로기 망은 최초의 그 파생이 토대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이미 토대의 성격을 그것이 재규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독자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에 대한 제한치가 없다는 점에서, 초역사적-초계급적인 이데올로기로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노예제 사회에서 사회주의 의식(이것도 결국 관념화된 공상일 뿐이겠지만)을 가질 수도, 발전된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예제의 의식을 가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만의 독자적인 운동으로서 토대와 아주 멀리 떨어질 것이고, 내용의 이질성은 토대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엇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의 인식 이론 구조 아래에서 이데올로기는 토대를 반영하면서도, 종국에는 토대로부터 독립된 영향을 발휘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을 지탱했던 토대가 사라진 후 그것의 영향력도 광범위하게 남아야 한다. 근데 과연 그랬는가?

상업의 발달, 기계화에 따른 대량 생산 체계가 봉건 사회의 토대, 그리고 그 허위 의식을 사방으로 폐기해버렸다는 맑스의 설명처럼, 토대의 변화는 상부 구조의 지양이라는 측면에서 수많은 내용을 변혁하는, 파괴적 변화를 동반했다. 즉, 그가 언급하는 다양한 ‘구조’에서 낡은 것에 대한 광대한 폐기가 동반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양으로서 낡은 사회의 유제가 소멸한 속도는 이전 봉건 사회가 유지되었던 기간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르다.

≪공산당 선언≫은 다음과 같이 생산력의 발전이 갖는 변혁성을 언급하고 있다.

 

“대공업은 아메리카의 발견이 준비해 놓은 세계 시장을 만들어내었다. 세계 시장은 상업, 해운 및 육운 등 헤아리기 어려운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발전이 다시 공업의 신장에 거꾸로 영향을 미쳤으며, 공업, 상업, 해운, 철도가 신장되는 것과 같은 정도로 부르주아는 발전해 갔고, 그들의 자본들을 증식시켰으며, 중세로부터 내려오던 모든 계급들을 뒷전으로 밀어내었다.”49)

 

“부르주아는 백 년도 채 못 되는 그들의 계급 지배 속에서 과거의 모든 세대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들을 창조해냈다. (중략) 이 생산 수단들 및 교류 수단들의 특정 발전 단계에 이르러, 봉건 사회가 그 속에서 생산 활동을 하고 교환 활동을 했던 관계들, 농업 및 제조업의 봉건적 조직, 한마디로 봉건적 소유 관계들은 이미 발전한 생산력들에 더 이상 조응하지 않게 되었다.”50)

 

이데올로기 망에 의한 중층 구조가 독자성을 가지고, 그것이 독자적인 법칙으로서 토대와 횡적 관계(엄밀히 말하면 토대는 더는 기능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으려면, 토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갖는 일정한 성격을 유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실례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과잉 결정, 최종 심급에서의 경제, 그리고 <쏘련국가자본주의론>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의 <경제결정론>이 숙명론으로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장담하였다. 맑스주의를 경제결정론으로 이해하는 것을 포함하여, 이를 숙명론과 결부하여 평가하는 방식은 서구 부르주아 사회의 소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을 다루는 고질적인 방식이다. 이는 사회 발전의 합법칙성과 합목적성을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학습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오류이다. 알튀세르 역시 동시대 부르주아 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오류에 빠져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앞서 확인한 바에 따라, 알튀세르의 모순 이론은 ‘모순의 중층 결정 또는 과잉 결정’의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그의 과잉 결정에 대해 정리해보자.

과잉 결정은 구조적 모순의 종합으로서의 모순, 그에 따른 제 현상을 말한다. 제 현상이란, 이데올로기 망에 따라 형성된 주체, 그 주체가 겪는 그 망 내부의 기본 모순을 통해 생겨나는 ‘구조적 모순’, 그리고 이 구조적 모순들의 난립에 따른 복잡화된 ‘구조적 모순들의 총합으로서 모순’에 근거한 제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알튀세르는 결국 이 과잉 결정이 특정한 생산양식의 경제 토대가 운동하는 원리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그것이 토대의 모순(과잉 결정의 반영으로서)으로서 나타난다고 한다. 그는 이를 ‘최종 심급에서의 경제’(the determination ‘in the last instance’ by the economy)라고 칭한다.51) 즉, 그가 설정한 의식적인 관계망이 토대에 직접적인 성립 조건으로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방식이 “이데올로기 관계의 반영으로서 착취의 재생산”이라고 한다.52)53)

 

““최종심급의 고독한 시간은 오지 않는다.”라는 알튀세르의 이 유명한 언급은 위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상부 구조를 규정하는, 다시 말하여 사회를 형성하는 것의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서 독점적으로 구가하는 ‘경제’(그는 경제가 독점적으로 구가하는 규정성을 ‘고독한 시간’이라고 표현하였다)로 대표되는 최종 심급은 오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이다. 알튀세르에게 최종 심급의 경제에서 ‘경제’는 이데올로기적 관계에 지나지 않기에, 그가 말하는 최종 심급에서 논해지는 ‘경제’는 ‘고독하지(상부 구조에 대한 사실상의 독점적인 규정력을 확보하는 의미에서) 않은 것’이다.”54)

 

그는 오로지 그 착취적인 생산양식의 유지가 착취 사회의 이데올로기, 그 이데올로기가 피착취계급과의 의식상의 대립에서 형성하는 중층적인 의식 구조가 되려 토대의 본질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데서 일차성을 가지며, 오히려 토대가 이 중층적인 의식 구조의 반영으로서 현상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결국 ‘최종 심급에서의 경제’가 작동하더라도, 그것을 끊어내는 활동은 이데올로기 망 내에서의 의식-의식 투쟁이다.

베틀렘을 비롯한 그의 이론적 제자들은 서유럽 맑스주의가 일찍이 주장하고 있던 국가자본주의론을 그대로 흡수하는 한편, 그러한 견해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쏘련의 자본주의화>를 설명하는 정식으로서 ‘과잉 결정에 따른 최종 심급에서의 경제’ 개념을 사용한다.

그의 이론에 따라 국가자본주의론을 정당화한다면, 쏘련 이전, 쏘비에트 로씨야 당시부터 자본주의를 표상하는 이데올로기 망과 구조적 연계를 갖는 의식이 만연했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러한 의식으로서 쏘비에트 로씨야 사회의 구성원은 언급한 이데올로기 망을 통해 형성된 주체를 얻게 될 것이고, 그 주체는 이미 각 구성원 무의식의 기저에 있는 표상 굴절에 따라 이데올로기 망의 구조적 관계를 ‘자유롭게’ 취사한 것이 될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각자 표하는 구조적 관계는 차이(각 개인마다 기본 모순이 다르므로)를 보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관계는 착취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창구가 된다. 쏘련국가자본주의론자들이 알튀세르의 낭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면, 위와 같은 ‘살아있는 착취 이데올로기’의 독자적인 기능이 자본주의 경제 토대를 부활시켰다고 ‘논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쏘비에트 로씨야 시기부터 잠재하고 있던 (알튀세르적) 주체의 <자본주의적 관계>가 쏘련에 이르러 독자성을 갖게 되었고, 그의 논리에 따라 그것이 경제 토대의 조건자로 작용했을 때, 쏘련이 자본주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알튀세르주의자들은 국가자본주의론의 철학적 선봉으로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실제, 알튀세르의 제자를 자처하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알튀세르주의자인 윤소영 교수가 저술한 ≪맑스의 경제학비판과 소련 사회주의≫는 쏘련을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사실 독자적인 해석이 아니며, 알튀세르의 입장에 아주 충실한 결과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살펴본 알튀세르의 해석은 관념론적이며, 심지어 주의주의적이다. 경제 토대는 물질 존재 양식의 가장 첨예한, 현실적 반영으로서 모순의 정도를 측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이다. 의식이 갖는, 물질에 대한 반영은 곧 그 모순 정도에 따른 반영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의식은 물질의 반영으로서 관념이지만, 의식의 순수한 내용으로서 기능할 때 그것은 물질과 이질의 성격을 갖는 것이며, 그것이 각 개인에게 매개될 때에는 의식의 형태가 아닌 물적인 작용으로서 기능한다. 만약 의식이 경제 토대의 조건자로 된다면 그것은 알튀세르가 말한 것처럼, <순수한 의미에서의 의식 형태가 보존된 상태에서 조건자로 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리고 알튀세르는 착취의 재생산이 이데올로기적 관계에 의해 형성된 구조의 복잡성(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의 가장 첨예한 표현은 착취 사회의 ‘교육’이 된다.)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하였지만, 사실 자본주의 경제사를 통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가령, 1929년 대공황 이후 1934년 정화준비법(Gold Reserve Act)을 통해 미국이 금본위제를 실질적으로 폐지(완전한 폐지는 1971년 금태환 금지로 실현되었지만)하고, 불환지폐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의 경제 관리(이른바 정교화된 재정정책을 가능하게 하는)를 천명한 것은 자본주의 경제 토대의 자체적 모순에 따른 붕괴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서, 유효수요 증가책(오늘날 흔한 용어로서 양적완화로 대표되는)을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55) 알튀세르는 이것도 ‘이데올로기적 관계의 중층에 따른 최종 심급의 경제로서 착취의 재생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오로지 공황이 주는 위협에 따른, 자본가 집단이 해낼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서의 착취의 재생산 시도였다. 여기에서 ‘착취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교육에 따른 토대 구성물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러한 정책은 단순히 어떠한 ‘순수한 부르주아 법률’의 문제를 다루다가 등장한 사안도 아니다. 오로지 공황에 직면한 자본가가 경제적인 문제를 다루고, 가장 경제적인 ‘해법’(착취의 재생산을 위한)을 제시하고, 그 과정도 언제나 경제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는 자본주의 토대가 돌아가는 원리와 직접적으로 직결된, 다시 말하여 그리고 그 원리로부터 발생하고, 그 원리에 대한 직접적인 조작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뿐인가? 쏘련 탄생 후 붕괴 이전까지 진행된,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모든 승리한 투쟁은 그 투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핀 그 사회의 토대에 관한 문제가 언제나 있었으며, 그것은 투쟁에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과거 시기 민족해방전쟁은 모두 이 토대의 변혁을 추구하는 과정의 가장 격렬한, 그리고 확대된 형태에 불과하다. 물론, 그 안에서도 이데올로기 투쟁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나 그러한 이데올로기 투쟁이 그 사회 토대의 문제로부터 시발했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다.

생산력과 생산 관계로 대표되는 경제 토대에서 조건자는 가치를 전유하는 다양한 경제 방법들, 인류의 생산 활동이다. 태초 자아 실현으로서 노동이 갖는, 추상에 대한 고도의 실천, 즉, 생산 활동은 물질의 자기 존재로서 자기 운동이 경제 토대의 조건으로서 될 수 있는 그 본질적 성격을 갖고 있고, 이것이 경제 토대와 직접적으로 관계된다.

알튀세르의 사상에 관한 최종적인 종합으로서, 알튀세르는 위와 같은 인식의 함의를 내던졌거나, 무시했다는 결론을 이끌 수 있다. 경제 토대의 본연을 결정짓는 인류의 생산 활동에 대해, 주체가 근거하는 (이데올로기적) 관계 내용이 충분히 무시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의 결론에 따르면 사회 발전은 인간의 생산 활동, 그에서 제기되는 경제적 모순에 대한 인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관계망 속에 내재된 구체적인 내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된다. 이 관점은 그의 말년의 소저작들(중원문화에서 출판한 ≪맑스주의 철학≫에 수록)에서 드러난 그의 정치 분석에서 크게 활용된다.

 

 

결론

 

1960년대 말, 1970년대 쏘련 수정주의가 가속화됨56)에 따른 서유럽 운동가들의 전망의 상실 속에서 알튀세르 학설은 자란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한 사회에서 알튀세르주의는 쏘련 붕괴 이후 변혁 운동의 파탄 속에서 성장하였다. 변혁 운동에 대한 전망의 상실은 주관적인 관념으로서 현 상황을 극복하려는 절충적 사고, 기존 변혁 이론은 모두 파산되었다는 청산주의라는 두 축이 알튀세르 학설이 성장하는 한 계기로 되었다.

 

알튀세르의 이론은 그 이론이 성립된 초기 시기에는 철학 학계에서 주된 연구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몇몇 제자(대표적으로 에티엔 발리바르)들이 그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1980년대 말, 알튀세르가 사망하기도 전부터 알튀세르의 사상은 프랑스 철학계에서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그 결과로 서구 학계는 알튀세르의 사상을 이른바, ‘교조적인 맑스주의’의 <토대결정론>57)을 반박하는 가장 선두에 선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그것의 내용은 헤겔의 인식론과 맑스의 이론에 심히 위배되며, 프로이트와 라캉과 같은 주관적 관념론에 기대고 있다.

재생산 이론에서 그가 바라보는 재생산 원리는 관념론적인 것이었으며, 착취의 재생산이 이어지는 장(場)으로서 토대의 객관적 성격을 완전히 무시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점에서 그는 과학적 세계관을 통한 모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허위 의식의 망, 즉, 의식 내부에서의 관념적 ‘투쟁’을 주장했다.

의식 일반에 관해서 그는 무의식, 동일시와 같은 반과학, 반유물론, 반합리주의의 개념을 차용했다. 이는 역시 맑스의 인식 이론과 공존할 수 없었다.

현실 운동의 차원에서 그의 이론은 노동자계급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게 아니라, 쏘련을 자본주의 사회로 바라보는, 청산주의 경향을 지원하는 이론이 되었다.

그 이론의 성격,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서 실제 운동으로 된 것에서부터 알튀세르의 사상은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된다.

결론적으로, 알튀세르의 이론은 맑스주의를 참칭하는 반맑스주의 사조이며,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올바른 인식의 형성을 방해하는 사조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쏘련 붕괴 이후 급속히 성장한 ‘자칭 맑스주의자’ 신좌익은 알튀세르를 신봉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맑스주의에 충실한 사회 운동가를 자처하지만, 정작 맑스의 정치경제 해석과 알튀세르의 관념론적 해석은 서로 전혀 호환이 될 수 없을 정도의 이질의 것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사상은 과학적 이데올로기로서 맑스주의가 아니다.

노동자계급은 전망의 상실에서 생겨나고 유행화 된 속류 유물론, 소부르주아 좌익 학설을 올바르게 취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참된 인식은 오로지 맑스-레닌주의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그것을 꾸준히 실천을 통해 검증하고 다시 학습을 지속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노사과연


 

1) Louis Althusser,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Andy Blunden 역 (1971), Monthly Review Press, 1970, p. 7.

 

2) 위와 같은 책, pp. 11-12.

 

3) 칼 마르크스, ≪자본 III-2≫, 강신준 옮김, 길, pp. 1058-1059.

 

4) 칼 맑스,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pp. 75-76.

 

5) 칼 맑스, “임금, 가격, 이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3≫, 박종철출판사, p. 98.

 

6) 프리드리히 엥겔스, “엥겔스가 베를린의 콘라트 슈미트에게”,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6≫, 박종철출판사, pp. 514-515.

 

7) 같은 책, p. 517.

 

8) 토대의 반영으로서 상부구조의 상대적 독자성, 다른 말로 상대적인 능동성은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부 구조의 능동성은 내적 모순에 의한 토대의 동태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9) 프리드리히 엥겔스, “엥겔스가 브레슬라우의 W. 보르기우스에게”,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6≫, 박종철출판사, pp. 563-564.

 

10) Louis Althusser,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Andy Blunden 역 (1971), Monthly Review Press, 1970, pp. 13-14, 17-19.

 

11) 위와 같은 출처.

 

12) 같은 책. pp. 19-21.

 

13) 위와 같은 출처.

 

14) 알튀세르 주체 이론에 관한 내용은 이후 이어지는 글에서 설명할 것이다. 그는 역사를 “주체와 목적이 없는 과정”이라고 서술한다. 그런데 그는 주체 자체가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주체 위에 구조가 있다고 본 것이다.

 

15) 위와 같은 출처.

 

16) 루이 알뛰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이종영 옮김, 백의, p. 240.

 

17) 같은 책. p. 265.

 

18) Louis Althusser,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Andy Blunden 역 (1971), Monthly Review Press, 1970, pp. 19-21.

 

19) 이러한 관점에 기반한 ‘계급 투쟁’은 필연적으로 지적 엘리트주의를 불러온다. 국내에서 알튀세르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윤소영 교수가 지적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엘리트주의를 포기하지 못 하는 이유는 이와 관련된 것이라 볼 수 있다.

 

20)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신성 가족 혹은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p. 98.

 

21) Louis Althusser,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Andy Blunden 역 (1971), Monthly Review Press, 1970, pp. 34-35.

 

22) 같은 책. p. 49.

 

23) 맑스는 이것을 철저한 유물론의 견해에서 재정립하였다. 한편, 헤겔부터 이어진 ‘실천을 해석하는 첨단으로서의 변증법’이란 성격을 맑스는 그대로 계승한다.

 

24) 루이 알뛰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이종영 옮김, 백의, p. 233.

 

25) Louis Althusser,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Andy Blunden 역 (1971), Monthly Review Press, 1970, p. 31.

 

26)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p. 250.

 

27) 같은 책, p. 77.

 

28) 위와 같은 출처.

 

29) 비유기적 자연에 의해 생활하는, 즉 생산 활동이 어떻게 합법칙성으로서 합목적성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그 구체적인 내용은 본 문서와 무관한 내용이기에 추가적으로 설명하지 않겠다.

 

30) 같은 책. pp. 250-251.

 

31) 같은 책. pp. 303-304.

 

32) 루이 알뛰세르, ≪아미엥에서의 주장≫, 김동수 옮김, 솔, p. 119.

 

33) 루이 알뛰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이종영 옮김, 백의, p. 253.

 

34) 그는 무의식적 기억 내용이 표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무의식은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무의식적 기억 내용이 각성 상태에서의 개념 기반 사고로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대리 표상을 통해 표상의 내용을 무의식의 저편에 다시 반사시킨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그는 <자연스러운 억압>이라고 했다.

 

35) 지그문트 프로이트, ≪무의식에 관하여≫, 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pp. 9-10, 26-28.

 

36) Louis Althusser, Etienne Balibar, ≪Lire le Capital≫, Petite Collection Maspero, 1971, p. 13.

 

37) Louis Althusser, ≪Lenin and Philosophy and Other Essays≫, Ben Brewster 역 (2001), Monthly Review Press, 1971, p. 161.

 

38) 게오르크 헤겔, ≪철학 강요≫, 서동익 옮김, 을유문화사, p. 375.

 

39)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p. 202.

 

40) ‘역사는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이라는 알튀세르의 말은 바로 이 맥락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41) 칼 맑스,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pp. 75-78.

 

42) Louis Althusser, ≪Positions≫, Edition Sociales, 1976, pp. 181-182.

 

43)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pp. 203-204.

 

44) 칼 맑스, “정치 경제학의 비판을 위하여”,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2≫, 박종철출판사, p. 478.

 

45) Louis Althusser,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Andy Blunden 역 (1971), Monthly Review Press, 1970, p. 19.

 

46) 엥엘스의 1890년대의 여러 서신에서 상대적 독자성이란 용어는, 토대와 상부 구조의 관계에서 상부 구조의 독자적인 일면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번 쓰인다. 알튀세르의 ‘토대에 입각한 상부구조 모순의 상대적 독자성’은 상부구조상의 ‘소소하게 보이는’ 대립 관계와 토대의 모순을 반영한 상부 구조 영역에서의 대립들에 대한 상호 상대적인 독자성을 설명하기 위해 쓰인다. 물론, 토대가 가진 모순에 입각한 상부구조의 모순 내용은 당연히 다양한 인간적 관계를 포함한다. 하지만, 그것은 토대로부터의 반영이 제 현실의 다양한 조건에 따라 복잡해진 경우로 일반화할 수 있다. 앞서 알튀세르의 주장을 비판한 것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이미 토대 기반을 상실한 상태에서 상부구조를 논하고 있다.

 

47) Louis Althusser, ≪The Humanist Controversy and Other Writings≫, G. M. Goshgarian 역 (2003), Verso, 1967, p. 128.

 

48)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p. 226.

 

49)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p. 402.

 

50) 같은 책. p. 405.

 

51) Louis Althusser, ≪Ideology and Ideological State Apparatuses≫, Andy Blunden 역 (1971), Monthly Review Press, 1970, p. 8.

 

52) 같은 책. p. 48.

 

53) 알튀세르는 이러한 개념을 통해 스스로가 맑스주의 원칙에 기초 아래에 서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54) 앞서 언급한 것이지만, 그는 이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대표할 수 있는 토대의 모순이 그 스스로가 갖는 물적인 담보로부터 그것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보았다.

 

55) 물론 ‘재정정책을 통한 경제 위기의 극복’은 실증적으로도 파산한 주장에 불과하다. 소위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군수산업의 성장, 그 성장에 기반한 재생산을 통해 일시적으로 해소된 것이다. 본래 케인즈주의자들이 기대했던 ‘재정정책을 통한 승수효과’ 수준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미미했으며, 이는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중반까지의 미국 경제 여건을 분석하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미미했던 승수효과’는 날이 갈수록 더더욱 미미해졌는데, 결국 70년대 공황으로 인해 재정정책 선호 기조는 통화정책의 선호로 전환되었다.

 

56) 이 시기는 ‘꼬쉬낀 개혁’, 전인민국가론의 등장 등 수많은 수정주의가 자랐던 시기이기도 하다.

 

57) 기존의 맑스주의를 ‘토대결정론’이라고 표현하는 것부터 맑스의 주장을 왜곡하는 것이며, 이러한 표현은 서구 학계에서 유행했고, 현재도 그 영향을 상당히 받은 상태이다.

 

노사과연 회원

17개의 댓글

  • 알튀세르는 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을 말했지, 완전한 독자성이나 자율성 같은 주장을 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자본주의적 토대 내부에서 진행되는 생산과정에서 생산력의 재생산뿐만 아니라, 계급적 분열과 생산관계를 재생산한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다만 그가 추가하고자 하는 점은, 그러한 생산관계가 한층더 그리고 더욱 고착화되고, 유지 재생산될 수 있게 하는 심급을 국가 장치에서 찾은 것이고, 이 국가 장치에는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가 있습니다. 전자는 폭력수단을 독점한 경찰이나 군대 조직을 주로 지칭하고, 후자는 가족, 학교, 교회, 노동조합 등등 을 지칭합니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속에서 개인들은 특정 이데올로기라는 형식을 내면화하여, 한 사회구성체 전체의 유지재생산에 적절히 기능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분히 파슨스식의 구조기능주의적 주장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데, 다른 점은, 구조기능주와 달리, 이데올로기적 제도의 안정성 이면에는 계급투쟁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오히려 안정적 재생산은 투쟁세력 간의 일시적 균형일 뿐이라고 말했다는 점에 있을 겁니다. 말하자면, 투쟁과 모순은 구조적 안정성이나 제도적 재생산에 구성적이며 선차적입니다.

    게다가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의 물질성에 대해서 강박적으로 강조합니다.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인 학교를 예로 들면, 학교 건물과 책걸상, 도서관 건물, 도서관 장서 따위는 모두 물질이지요. 이러한 물질적 현존의 선차성이 있고, 그 다음에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내면화가 이루어져, 개인들은 자본주의적 주체로 호명됩니다.

    • “그리고, 자본주의적 토대 내부에서 진행되는 생산과정에서 생산력의 재생산뿐만 아니라, 계급적 분열과 생산관계를 재생산한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다만 그가 추가하고자 하는 점은, 그러한 생산관계가 한층더 그리고 더욱 고착화되고, 유지 재생산될 수 있게 하는 심급을 국가 장치에서 찾은 것이고, 이 국가 장치에는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가 있습니다.”

      본인이 쓴 문장이 앞에서 한말을 뒤에서 반박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나요?

  • 알튀세르가 말하는 중층결정이나 최종심급에서의 경제의 규정적 성격은 전혀 반 맑스주의적이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중층결정은 사회구성체의 여러 모순들이 단독으로 존재하거나 작용하지 않고 상호작용하면서 서로간에 “포개어져” 있다는 얘기인데, 오히려 제2 인터네셔널의 경제주의와 달리 알튀세르는 더욱 변증법적입니다. 유물변증법에서 무어라고 가르칩니까? 그 가르침들 가운데 하나로, 만물의 상호연관성이 있지요? 이에 대해 이 자리에서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더 말하지 않아도 알튀세르가 반 맑스주의자가 아니라는 점만은 입증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알튀세르의 사회학은 사회구성체에서 경제적 심급의 역할을 결코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심급은 어떠한 심급이 특정 사회구성체에서 지배적 기능을 하는 심급이 될 지를 결정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적 경제는 그것 고유의 종별성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을 지배적인 심급으로 규정하는 그러한 심급입니다. 자본제 사회에서는 지배적 심급과 최종심급은 모두 경제이며, 저 둘은 동일합니다.

    사회주의적 사회구성체에서는 경제가 계획적으로 운영되는데, 경제가 이렇게 작동하고 기능을 하자니, 정치가 지배적 심급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정치를 지배적 심급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경제입니다. 경제가 최종적인 규정력을 가지는 것이죠.

    • 이 댓글은 현상적인 서술만 할 뿐 알튀세르의 호명이나 심급 개념, 중층결정화된 모순 개념이 어떤 철학적 기반을 타고 만들어졌는지 전혀 보여주질 않네… “아미엥에서의 주장”을 보면 도저히 이딴 댓글을 써갈길수없지.

      • 《아미엥에서의 주장》이란 글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알튀세르에게 미친 지적 조류는, 당연히 마르크스-레닌주의입니다. 여기에 더해, 바슐라르의 인식론, 프로이트-라캉주의의 정신분석학, 프랑스 구조주의 등이 있겠네요…

  • 알튀세르가 말하는 “이데올로기는 영원하다” 라는 테제의 뜻은, 이데올로기의 구체적인 내용이 역사적 과정과 별도로 떨어져서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는 뜻이 아닙니다. 생산양식이 교체되어도, 옛 이데올로기의 구체적인 내용이 지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형식 그 자체가 영원하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인 각 영역에서 분화된 실천을 하는 구체적인 주체들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동기화되어, 이데올로기라는 형식적 구조에 의해 사고와 행위가 규정됨으로써 성립한 것입니다.

    사회 내부의 지배적인 사고방식, 욕망방식, 행동방식, 규율과 권위에 복종하는 태도 따위가 이데올로기 심급에 의해 규정되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혹자는 알튀세르가 주체의 현실적인 능동적 활동을 무시하고, 오직 추상적인 구조의 자율적 운동에 따라 사회구성체의 변화발전을 묘사한다고 비난하는데, 이 비난도 빗나간 비난입니다. 그는 결코 주체의 능동성, 사회적 행위자의 행위를 부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코 그는 구체적인 사회적 행위자들의 능동적 활동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말하는 구조는 그러한 구체적인 주체의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비가시적인 가능성의 조건입니다. 개인의 주체로의 변환과 이렇게 변환된 개인, 즉 주체의 활동이 가능해지려면 구조가 전제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말해 근대 주체 중심주의 철학에서는 주체를 자족적인 것으로, 그 자체로 이미 성립되어 있으며 그 자신에 근거해 능동적인 사고 활동을 하는 자, 심지어 칸트 같은 경우, 자연의 입법자라고까지 간주했는데, 알튀세르는 그러한 근대적 주체, 자신의 중핵을 자신 안에 갖고 있는 주체는 말이 안되는 거고, 오히려 그것에 외타적인 구조가 그것을 구성하고 가능하게 하는 더욱 근원적인 차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 이는 결코 사적 유물론의 명제,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 는 명제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원리에 충실히 따릅니다.

      이데올로기라는 구조는 개인 외부에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성립되어 있는 객관성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태어 날 때부터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저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있었으며, 저는 그것을 학교 도서관에서 내면화하여,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공산주의형으로 된 것입니다.

      사회적 존재 개념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이라는 개념으로만 협소하게 잡고보기 때문에, 알튀세르에 대해 관념론자라는 비난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체현성(e.g 학교 건물, 팜플렛 책, 전기통신망 등등)과 이데올로기의 의식독립적 선재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결코 관념론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 알튀세르가 갖는 또 하나의 허술함을,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을 스피노자의 연장-사유 대응 관념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회적 의식이 사회적 존재를 반영한다는 설명에서 단순 대응 개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의식이 존재를 반영한다는 것은, 존재의 모순 범주를 과정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과정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푸른 사과”를 보았을 때, “푸른 사과”라는 표상이 떠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푸른 사과”라고 추상화할 수 있는 바로 그 실재적 대상이 지니는 다양한 모순 내용을 실천의 객관적 조건이라는 변항과 관련지어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알튀세르가 최종심급의 결정이 갖는 규정력을, 직접 다른 심급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구조들의 전위 결정에만 한정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러한 주장의 본질이 표현하는 바는 무엇인지요? 결국 그가 다원론자임을 증명하는 요소 아닌지요? 지배소가 전위 결정에서만 그 ‘규정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서로가 표현하는 바의 ‘기본 모순의 직접적 규정력’을, 또는 ‘최종심급으로서의 모순’으로서 기본 모순이 아니라 서로 수평적인 관계에 있는 모순에서 찾는 시도 아닌지요? 위에 다른 분이 언급한 《아미엥에서의 주장》은 과소결정 개념에 다루는데, 이 개념에서 그는 최종적으로 모순의 구조적 계층성에 대한 이념을 포기합니다.

  • 그리고 알튀세르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주의가 아니라는 비난도 조심스럽게 행해져야 합니다. 물론 그가 《자본을 읽는다》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주의가 아니다”라고 명시적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알튀세르가 사회구성체의 역사성 혹은 과정성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는 결론이 유도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 따르면, 역사란, “지배소를 중심으로 항상 이미 구조화된 복합적 전체의 주체 없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부정한 것은 특정 역사주의일 따름입니다.

    • 알튀세르가 억압적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이중작용을 언급하고 그것의 근거를 말했을 때, 그의 특유 중층결정화된 모순론이 작동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이데올로기적 작용을 설명하면서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가 그 자신의 역사를 갖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즉 이데올로기는 역사성을 지니지만, 그 자신이 주체로 되는 역사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역사성은 이데올로기의 산출 근거인 실재의 역사성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이러한 주장에 명시적(이것이 중요합니다)으로 반대합니다. 그는 “이데올로기들은 그 자신의 역사를 갖는다”고 하면서, 마르크스의 테제에 반대합니다.

    •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적 내용에 ‘합치’하는 주장을 간단히 ‘던졌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적인 주장을 보면 결국 관념론입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의 설명도 틀렸습니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상상적 관계들의 ‘표상'”이 아닙니다. 표상으로만 존재해서 이데올로기적 지위를 얻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내면화한 모종의 표상이 어떠한 외적인 형태를 통해 되먹임을 반복하여 그것이 이데올로기적 활동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이데올로기의 운동을 규정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알튀세르는 또한번 관념론적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표상과 같은 관념적 실재가 객관적-외적-실재적 형태로 전환되어 개개의 표상적 내용이 연관을 이룬다는 설명을 채택하는 대신, 그는 프로이트 심리학을 인용하면서, 표상 자체가 단독으로 다른 표상과 연결된다고 하는 주관주의 인식론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 작업의 ‘토대’는 그의 《프로이트와 라캉》에서 매우 짧게 서술됩니다.

    • 그리고 마르크스가 《44년 철학 수고》에서 소외된 표상이라고 언급한 것을 상상적 표상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먼저 소외가 뭔지 알아야 합니다. 대상화나 소외는 주체의 운동과 관련됩니다. 주체(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주체)의 지배적 규정력이 그 스스로가 전개한 질료적 요인을 가현운동의 실현태로 전환시켜, 그 요인을 모조리 가상적 지위로 전화시키는 것이 대상화와 소외의 근저에서 이루는 실제적 작용입니다. 이때 주체는 본질적 지위를 획득합니다. 그런데 ‘가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주관 속에서만 존재하는 규정성이 아니라, 마르크스도 인정하였듯이(마르크스의 이러한 주장은 가상을 주관적 차원만이 아니라 먼저 객관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헤겔의 의도와 일치합니다), 실재 운동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고, 또 그것은 그렇기에 주관적이기 전에 객관적입니다. 소외된 표상은 이것의 반영입니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허위 이데올로기도 실재적 뿌리가 있는 것이고, 또 그 자체의 규정력도 어디까지나 실재적입니다. 다만 그것이 주체적 규정력을 실현하는 실현태로서, 소외를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허위 이데올로기나, 과학적 이데올로기를 모조리 ‘상상’, ‘환상’으로 환원해버리는 것은 오류입니다. 그는 이데올로기가 물질적 외피를 쓰고 어떠한 실천 형태로 등장한다고 하고, 실천의 심급을 이데올로기라고 하는데, 여기서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자율성을 갖고 ‘주체’를 자신을 ‘실천 형태화’하는 것의 재료로서 ‘호명’합니다. 이는 유물론적 인식론이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는 물론 실천의 근거이긴 하지만, 현존하는 사회적 존재가 객관적 규정력을 발현하기 위한 한 매개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알튀세르는 그 ‘뿌리’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의 최종 결론에 따르면 결국 이렇게밖에 해석되질 않습니다)

    • “이데올로기라는 구조는 개인 외부에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성립되어 있는 객관성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태어날 때부터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저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있었으며, 저는 그것을 학교 도서관에서 내면화하여,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공산주의형으로 된 것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이데올로기라는 구조는 객관성이 아니라 주객관적 통일 작용입니다. 이데올로기는 항상 주관성과 결부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 구조가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성립되어 있다고 간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관념론입니다.

      님은 “태어날 때부터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고” 하면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저의 의지”에 무관하게,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형성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도 주객관적 통일 속에서 성립한 것이기에 “이데올로기 구조가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성립되어 있는 객관성”이라고 하는 것은 틀렸습니다.

    • “알튀세르가 사회구성체의 역사성 혹은 과정성 그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는 결론이 유도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 따르면, 역사란, “지배소를 중심으로 항상 이미 구조화된 복합적 전체의 주체 없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부정한 것은 특정 역사주의일 따름입니다.”

      제가 글에서 표현하려던 바가 바로 이 주장의 반동성입니다. 이것은 반마르크스주의적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자본주의의 역사랑 지배소가 되는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의 규정력이 전개하는 가현운동의 외화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외화물이 외재적 자립성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의미에서의 외재성에 국한됩니다. 결론적으로 다양한 모순은 주체 없는 과정이 아니라 주체 있는 과정입니다.

    • 중층결정화된 모순도 더 깊게 다루어야 하겠지만, 간단하게만 말하자면, 알튀세르가 “모순의 수직적 구조”를 명시화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서술 방식은, 모순 범주의 층차적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의 서술에서는 심급의 모순과 표층의 모순이 어떻게 계층화를 이루는지에 대해서, 또 그것이 그가 나열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여러 ‘모순’을 어떻게 전개해내는지 도저히 나오질 않습니다. 오히려 지배소와 복잡하게 다양화되는 모순 구조 간 관계에 대한 서술에서 그는 명백하게 그것을 부정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다원론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게 알튀세르의 체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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