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현장] ‘국가보안법 철폐’는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 국가보안법 폐지 대행진 참여기

 

임장표 | 회원

 

 

미국 교과 과정을 이수하는 학교를 다녔던 필자는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에서 온 교사들을 보아 왔다. 그중 한 분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있어서는 금기의 구역인 이북에 다녀왔고, 학생들을 위해 기념품들을 챙겨 왔다.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에게는 선전물과 책자, 배지 등을 나눠 주면서도 ‘한국’ 국적이었던 나에게는 선생님이 나라의 법을 어기게 할 수는 없다며 기념품을 주기를 거부하셨고, 이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무슨 법이길래 같은 민족의 것을 접하는 것을 막는가. 어디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이 다 있는가. 이후 학습을 통해 국가보안법의 기본 내용이 무엇인지, 법의 불합리성과 폐지의 당위성에 대해도 배웠지만, 완전히 체득하지는 못했다고 해야 할까. 머리로만 아는 것이 가슴으로는 와닿지 못했다. 조금 더 잘 배우기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 대행진 참여를 결정했다.

 

10월 15일, 필자는 국가보안법 폐지 대행진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서울 행진에 참가했다. 행진의 시작점이었던 사당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행진 참가자들의 조끼와 풍선의 집합이 만들어 낸 보라색 물결, 그리고 경찰들의 길게 늘어선 행렬이었다. ‘민중의 지팡이’라고 자처하는 집단인 경찰은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시대 잔재에 대한 민중의 정당한 항거에 방해와 냉대로 일관했고, 행진을 감시하기 위해 나온 공무원도 예상치 못한 업무량 증가 때문일까, 굉장히 불만에 가득 찬 눈빛으로 참가자들을 응시했다. 참가자들이 역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행진은 1인 시위 형태여야 한다는 경찰의 지침에 따라 참가자들은 출발을 못 한 채 비를 맞으며 앞사람과의 거리가 (저들의 기준으로) 충분히 확보될 때까지 기다렸다. 1시간이 조금 넘어, 드디어 필자도 행진 대오에 참여했다.

 

국가와 시민의 대립,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대립은 추상적인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 일면을 드러내는 실질적인 관계이다. 지배계급의 통치 수단인 국가는, 그 반동적 성격을 우리가 잊을 때마다 직접 상기시켜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진은 참으로 국가의 참가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행진이었다. 우리의 투쟁 대상이 무엇인지, 행진의 목표는 무엇인지 까먹기라도 할까 봐 국가는 경찰 병력을 행진 경로 전체에 골고루 배치했다. 줄줄이 늘어선 경찰들을 보며 참 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위에 경찰이 안 보인다면 그게 어디 제대로 된 시위이겠는가. 국가의 적대는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일반 시민들의 무관심까지 예상했다면 거짓말이겠다. 행진의 기본적인 의의는 다름이 아닌 시민들에게 국가보안법 폐지의 필요성을 호소하기 위함인데 예상외로 시민들은 행진 참가자들에게 별다른 눈길을 주지 않았고, 비까지 와 처지는 분위기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행진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을 알기라도 한 건지, 행진 도중 거리두기를 지키라고 쏘아붙이던 경찰관 한 명은 “기본적인 것들은 지켜 주셔야 사람들도 호응을 한다”며 비아냥댔다. 그렇게 우리의 행진은 저들의 법의 테두리 안에,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철저히 봉쇄된 채 진행되었다.

 

지루한 걸음의 연속 끝에, 드디어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신나는 곡조의 민중가요와 참가자들의 보라색 물결이 우리 일행을 반겼고, 아니나 다를까 경찰 병력도 행진이 국회의사당까지 다다르는 것을 막아섰다.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대부분이 종착지에 도달했을 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마무리 집회가 시작되었다. 음율 하나하나에 노동자 민중의 피가 어려 있을, 아직 어린 필자가 이해를 못할 무게가 담긴 노래가 흐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경찰들이 우리 행진 참가자들을 냉대했듯이, 국회의사당에 앉아 있을 저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구슬프고도 힘찬 노랫소리에,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 중의 악법을 폐지하기 위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이 세상을 떠난 수많은 선열들의 절규에, 일본 제국주의와 파쑈 정권의 잔재를 청산하라는 역사의 부름에 침묵으로 응했다. 이후 행진 주최자들과 전체 일정 참여자들의 발언이 있었고, 국가보안법 폐지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마치 국회의사당 건물 안에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의원들은 바깥에서 무슨 퍼포먼스를 하든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저들은 우리의 존재를 알기라도 하는 걸까. 가능하다면 경찰들을 뚫고 국회의사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전변된다고는 하지만, 이번 행진은 거창한 목표에 비해, 우리의 투쟁 대상의 강고함에 비해 상당히 초라했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행진 내내 외쳤던 구호는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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