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포기하지 말자 다짐하며

― 10/15 국보법 폐지 도보행진 참가 후기

전찬범 | 회원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좋은 책을 읽으면 잡아가는 법이 있는 시대에 집에서 책만 읽을 수는 없는 일이다. 뜻있고 양심 있는 사람들만 잡아가는 악법을 하루라도 더 빨리 폐지시키기 위해, 10월 5일 제주도에서 출발해 10월 15일 서울에 도착하는 전국 대행진이 기획되었다. 필자는 모든 일정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마지막 서울 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당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동지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최 측으로부터 조끼와 얼굴 가리개를 받아야 했지만 수가 부족해서 받지 못했는데 조남수 동지께서 본인이 써야 할 것을 나눠 주셨다. 노사과연 동지들과 단체 사진을 찍은 뒤, 예정된 출발 시간이 이미 지났으니 곧 출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경찰이 방역을 이유로 1명씩 떨어져서 간격을 유지하며 출발할 것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마다 지하철이 사람들로 가득 차는 것은 괜찮고 수십 명 정도가 거리에서 행진하는 것은 위험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고, 그것도 10명이나 5명 단위로 나누는 것도 아닌 1명이라니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경찰의 방해로 출발은 계속해서 지연되었고, 예정된 시간으로부터 1시간이 지난 후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시위대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들이미는 경찰의 이중잣대에서 이 나라가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행진은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호응해 주는 사람도,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사람도, 짜증을 내거나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관심을 끌기엔 대오가 너무 분열되어 있어서인지, 아니면 행진에 관심을 가지기엔 일상이 너무 바빠서인지, 몇몇 나이 지긋한 분들이 흘겨본 것을 제외하면 누구도 필자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여럿이서 걸으면 관심을 가지고 보는 사람이라도 조금 생기지 않을까 싶어 걷는 속도를 조절하며 앞뒤의 동지들과 같이 가려고도 해 보았는데, 곳곳에 배치된 경찰이 다시 떼어 놓았다. 행진의 선두와 거리가 너무 벌어지고 제시간에 국회에 도착하기 어렵게 되자, 동작역에서 여의도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결국 행진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아쉬웠다.

국회에는 이미 대부분의 동지들이 도착해 있었다.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행사가 시작되었다. 여러 시민단체에서 오신 분들이 국보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연설하셨다. 몇몇 분들은 많은 분들이 폐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국보법이 머지않아 폐지될 것이라고 했다. 잠시 너무 낙관적인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건 나보다 수십 년간 국보법 폐지를 위해 투쟁하신 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노동계급이 겪은 패배와 좌절은 필자에게는 그저 역사와 텍스트에 불과했지만, 그분들에게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국보법이 오랜 투쟁에도 폐지되지 않고 살아남아 아직까지도 이 땅의 모든 진보 세력을 탄압하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라도 좌절하고 포기를 고민하겠지만,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투쟁하시는 모습을 보니 존경스러웠다. 앞으로도 노동 운동에 참여하면서 패배와 좌절을 많이 경험하겠지만,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