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특집: 아프가니스탄의 과거와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사회주의 시기―미 제국주의가 절멸한 전도유망했던 미래

 

매럴린 벡텔(Marilyn Bechtel)

번역: 노준엽(회원)

 

* 이 글의 원제(原題)는 “Afghanistan’s socialist years: the promising future killed off by US imperialism”입니다. 원문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www.peoplesworld.org/article/afghanistans-socialist-years-the-promising-future-killed-off-by-u-s-imperialism/>

 

 

≪인민의 세상(Peoples World )≫의 특파원인 매럴린 벡텔은 1970년대 중반과 80년대 초에 격월간지 ≪신세계 평론(New World Review)≫의 편집자였다. 그녀는 1980년과 1981년에 두 번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다. 아래 기사가 “아프가니스탄: 간과한 역사”라는 표제로 처음 우리 지면(≪인민의 세상≫)에 실린 것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쟁을 시작하기 전날인 2001년 10월 6일이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든 군대를 철수시키고 있는 지금, 우리는, 미국의 이 최장기 전쟁의 뿌리는, 9/11 테러 공격을 넘어, 멀리 반공주의 냉전에까지 뻗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이 기사를 게재한다.

 

9월 11일의 끔찍한 사건 이래로, 신정주의적(神政主義的)이고 독재적인 탈레반의 발굽 밑에서 으깨진 아프간 인민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그리고 이제는 그 지역에 대한 워싱턴의 계획에서 중요한 북부동맹(Northern Alliance) 및 기타 탈레반 반대자들의 역할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어 왔다.

 

1986년 10월 19일에 당시 아프간 대통령 마호메드 나지불라(Mohammed Najibullah)가 카불에서 붉은 군대를 만나 웃고 있다.

 

1978년에서부터 1989년까지의 쏘련의 역할에 대한, 대부분 그 역할을 왜곡한, 이야기가 있어 왔다. 탈레반을 포함하여, 무자헤딘 세력들을 육성하는 데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대부분 그 역할을 축소한, 이야기가 있어 왔다.

그러나 끊임없이 전쟁을 일삼는 부족들이라는, 그리고 봉건적 영지(領地)들이라는 유산을 없애고 근대적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아프간 인민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의 노력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1978년 이전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역자] 쏘련의 역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약간의 배경은 현재의 위기를 조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제국 건설자들에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이어서, 짜르 러시아도 영국 제국도 [이를 두고] 서로 다투던 곳이었다.

1921년[1][역자 주] “1919년”의 착오. 1919년 8월 말에 제3차 영-아프간 전쟁(Third Anglo-Afghan War)의 결과로 아프가니스탄은 피보호국의 지위를 벗어나 독자적인 … Continue reading에, 때로는 아프가니스탄의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2][역자 주]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8). 제1차 대전에서의 오스만 제국의 패배 후 독립 전쟁을 통해서 터키공화국을 건설한 터키의 … Continue reading라고도 불리는 아마눌라 칸(Amanullah Khan)[3][역자 주] 아마눌라 칸(Amanullah Khan, 1892-1960). 아프가니스탄의 군주(1919-1929). 아프가니스탄을 근대화하려 하였으나 그에 저항하는 반동 세력들의 반란과 … Continue reading이 권력을 잡았을 때, 그는 그의 조국의 주권을 재천명하면서 나라를 근대화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일부로, 그는 모쓰끄바의 새로운 혁명 정권과 접촉했고, 그에 응답하여 모쓰끄바의 혁명 정권은 아프가니스탄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1차 아프간-쏘련 우호조약을 체결했다.

1921년에서부터 1929년까지, 영국의 원조를 받는 반동분자들이 아마눌라에게 퇴위하라고 강제했을 때, 쏘련은, 발전소・수자원・운송・통신과 같은 경제적 기반시설 사업들을 착수하도록 원조했다. 수천 명의 아프간 학생들이 쏘련의 기술학교들과 대학들에 다녔다.

아마눌라의 강제 퇴진 후에 그 사업들은 흐지부지 되었으나, 쏘련과 아프간의 관계는 나중에 부활한다.

1960년대에는 아프간-쏘련 공동사업들이 부활되었고, 그 사업들 중에는 카불 과학기술대학(Kabul Polytechnic Institute)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기술자・지질학자 및 기타 전문가들을 배양하기 위한 그 나라의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역시 지난 세기에 개발도상국들의 특징이었던 정치적・사회적 소요(騷擾)를 면할 수 없었다. 1920대부터, 많은 진보적 투쟁 조류들은, 과거 러시아 제국의 땅에서 등장하고 있던 새롭고, 보다 더 공정한 사회인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경험들을 주목했다. 아프가니스탄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0년대 중반이 되면, 민족적・민주적・혁명적 조류들은 이미 하나로 뭉쳐서 인민민주당(PDP)을 형성했다.

1973년에는 토착 부르주아 세력들이, 인민민주당의 일부 부류의 지원을 받아, 모하마드 자히르 샤(Mohammad Zahir Shah)―86살인 그를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단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미국의 우익 공화당이 현재 홍보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의 40년간의 통치를 타도했다.

인민민주당이 1978년에 권력을 잡았을 때, 그들은 경제적・사회적 자원들의 보다 더 공평한 분배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의 목표들 중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부족의 속박으로부터의 여성과 소녀들의 계속적인 해방(자히르 샤 하에서 시작된 과정), 국가에서 가장 억압받는 집단인 하자라(Hazara)[4][역자 주] 하자라(Hazara). 아프가니스탄 중부의 산악 지대인 하자라자트(Hazarajat)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며, 페르시아어의 방언인 하자라어를 사용하는 … Continue reading를 포함한 소수 민족들의 평등한 권리, 그리고 평범한 인민이 교육・의료・쓸 만한 주거 및 위생시설을 누리는 것을 확대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1970년대 후반에 카불에서 여성들이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1980과 1981년에 두 번 방문하는 동안, 나는 진보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으로 자신들의 노동에 대해 꽤 훌륭하게 지불받을 수 있었고, 자신들이 번 돈을 관리할 수 있었던, 수공업 협동조합들에서 함께 노동하는 여성들. 읽는 법을 배우는 남녀 성인들. 전문직 종사자들로 일하고 있는, 그리고 교육부 장관을 포함하여 정부 고위직을 점하고 있는 여성들. 의사의 진료를 받을 여유가 있고, 아이들―소녀들과 소년들―을 학교에 보낼 여유가 있는 가난한 노동자 가족들. 소농 부채의 탕감과 토지개혁의 개시. 갓 태어난 소농 협동농장들. 일부 기본적 식품들의 가격 통제와 가격 인하. 정착 생활을 원하는 유목인들에 대한 지원.

 

1979년 카불의 거리 풍경.

 

나는 또한 현재 북부동맹을 구성하고 있는 동일한 집단들인 무자헤딘의 공격의 잔혹한 결과들도 보았는데, 당시 그들은 특히 시골의 학교들과 교사들을 노렸다.

1978년 이후의 발전들 역시, 경제적・사회적 사업들에 대한, 새로운 아프간-쏘련 우호조약에 따른 쏘련의 훨씬 더 대규모의 원조와 기반시설・자원탐사 그리고 광업・의료・교육 및 농업 시범사업들을 포함한 다양한 새로운 사업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1978년[5][역자 주] 1979년의 착오. 12월 이후 그 역할은 쏘련 군대의 진입도 포함하게 되었는데, 이 군의 진입은, 미국과 파키스탄에 의해 조직되고 그들의 지원을 받는, 축출되었던 봉건적・부족적 군벌들에 의해 갈수록 더 시달림을 당하던 인민민주당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나머지는, 그들이 얘기하듯이, 이제는 주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나 1989년에 쏘련 군대가 철수한 후, 인민민주당 정부가, 갈수록 더 사면초가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3년 동안이나 더 계속 기능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찢기고 피투성이인 아프가니스탄의 폐허 밑 어딘가에는, 가장 비참한 세월이지만 인류를 위한 보다 나은 미래가 있음을 알고 있는 인민의 심장들 속에 남아 있는 씨앗들이 있다. 보복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세계에서 그 씨앗들이 다시 싹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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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References
1 [역자 주] “1919년”의 착오. 1919년 8월 말에 제3차 영-아프간 전쟁(Third Anglo-Afghan War)의 결과로 아프가니스탄은 피보호국의 지위를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2 [역자 주]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8). 제1차 대전에서의 오스만 제국의 패배 후 독립 전쟁을 통해서 터키공화국을 건설한 터키의 혁명적 정치가. 1923년부터 1938년 사망 시까지 터키의 초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전면적인 개혁을 통해 터키를 세속주의적이고 산업화된 근대 국가로 만들었다. 과거 한국에서는 대개 케말 파샤(Kemal Pasha)로 알려져 있었고, 아타튀르크(Atatürk)는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3 [역자 주] 아마눌라 칸(Amanullah Khan, 1892-1960). 아프가니스탄의 군주(1919-1929). 아프가니스탄을 근대화하려 하였으나 그에 저항하는 반동 세력들의 반란과 그에 이은 내란으로 1929년 1월 14일에 퇴위하고 해외로 망명했다.
4 [역자 주] 하자라(Hazara). 아프가니스탄 중부의 산악 지대인 하자라자트(Hazarajat)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며, 페르시아어의 방언인 하자라어를 사용하는 민족.
5 [역자 주] 1979년의 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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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2개의 댓글

  • 소련과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옹호하지 마시죠 그들은 아프가니스탄 경제를 파멸로 이끈 장본인이며 모하메드 나지불라는 소련의 꼭두각시일 뿐입니다. 탈레반이야말로 아프가니스탄의 정신적인 그리고 정통성있는 정부이자 소련과 미국부터 끊임없이 투쟁을 지속해온 민족단체입니다. 미국에게 죽음을!! 소련에게 죽음을!! 탈레반에게 승리를!! 아프간에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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