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특집: 뜨로쯔끼주의 비판] ≪뜨로츠끼주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김용화 | 편집위원

 

* 토니 클라크, ≪뜨로츠끼주의란 무엇인가―뜨로츠끼의 주요 이론적 가정들에 대한 비판≫, 문영찬 역, 노사과연, 2009.

 

 

 

들어가며 ―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이 책은 영구 혁명, 일국 사회주의, 쏘비에트 관료주의, 이행기 강령 문제와 관련된 뜨로쯔끼의 주요 이론을 비판하고 있고, 그 이론, 즉 뜨로쯔끼의 추상적 이론과 사이비 좌익주의, 소부르주아적 기회주의 방법론 등에 대한 레닌의 신랄한 비판도 함께 담고 있다. 러시아 혁명을 전후로 맑스-엥엘스 사상을 기초로 현실에 바탕을 둔 레닌의 통철함과 그에 따르는 투쟁 실천이 시원스럽고 흐트러짐 없이 담겨 있다. 또한 변증법적으로 잘못된 문제 제기(예를 들면, 세계 혁명이냐 일국 사회주의냐)로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분열시키려는 뜨로쯔끼의 모든 시도와 싸웠던 쓰딸린의 사상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저자인 토니 클라크의 주옥같은 해설 또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이는 이 책을 번역한 역자의 능력의 덕이기도 할 것이다.

 

레닌은 왜 뜨로쯔끼에게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라고 했을까? 그는 “뜨로쯔끼의 공문구에는 반짝임과 요란함이 있지만, 그것들에는 내용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맑스주의 사상을 정통하게 계승 발전시키면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레닌이 뜨로쯔끼를 비판했을 때에는 사회주의 건설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분명한 그릇된 입장의 내용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 사회주의 건설 전후로 지대한 해악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그리 표현했다는 것은 절대 의심치 않는다. 실제로 뜨로쯔끼주의는 러시아 혁명 운동에서 레닌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아래는 이 책의 주요 내용을 발췌ㆍ요약한 것이다. 또한 모든 강조는 본문을 발췌ㆍ요약한 필자의 것이다.

 

 

1. 서론

 

이 책은, 맑스-레닌주의와 뜨로쯔끼주의 간의 역사적 차이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쟁점들, 혹은 두 개의 사상적 조류 사이에 나타난 모순들에 집중함으로써 이들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뜨로쯔끼주의 측에서는 레닌주의와의 차이를 끊임없이 감추거나 알리지 않으려 하고, 레닌주의의 연속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뜨로쯔끼주의는 오늘날의 맑스주의다”라고 선전하기 위한 목적이다. 뜨로쯔끼주의가 레닌주의라면 왜 뜨로쯔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가.

 

뜨로쯔끼주의자들은 뜨로쯔끼주의라는 용어는 레닌 사후의 쓰딸린과 뜨로쯔끼 사이의 논쟁에서 생겨났다는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 1917년 혁명 이전의 시기에 레닌 자신에 의해서 여러 경우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기록으로 명백하고, 이때가 레닌주의와 뜨로쯔끼주의 간의 차이가 시작된 시기이며, 뜨로쯔끼가 레닌에 반대했기 때문에 그릇되었다는 것은 가정이 아니라 오류는 대개 바로 뜨로쯔끼의 입장이었다. 뜨로쯔끼주의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관찰하려면 그가 어떻게 하여 1917년에 볼쉐비끼 당에 결합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볼쉐비끼가 레닌 지도하에 반자본주의적 혁명 단계로 계속 나아간 것은 뜨로쯔끼의 이론적 고려 때문이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의 발전 때문이었고, 뜨로쯔끼가 볼 때, 이는 실제로 영구 혁명의 실현이었으며, 이를 근거로 그는 볼쉐비끼 대열에 들어갔다. 1917년은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뜨로쯔끼주의가 레닌주의에 가장 근접한 때였다는 것이다. 이 시기 이전 이후도, 볼쉐비즘과 연합하고 있던 시기에도, 적대적 갈등이 지배적인데 레닌주의를 옹호한다는 뜨로쯔끼의 주장은 명백히 엉터리다.

 

레닌주의의 경쟁자로 뜨로쯔끼는 왼쪽에 있었는데도 볼쉐비즘에 반대하는 멘쉐비끼와 합작했다. 레닌이 1917년 이전의 시기에 비판한 것도 그의 사이비 좌익적 입장이 자주 멘쉐비즘의 이익에 봉사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혁명의 문제 및 그에 관해 뜨로쯔끼가 취했던 태도와 관련하여 맑스-레닌주의의 사이비 좌익적 경쟁자로서의 뜨로쯔끼주의라는 견해를 확립할 수 있다. 1917년 이전에 레닌은 기회주의를 의미하기 위해 뜨로쯔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뜨로쯔끼주의자들과 조정자들은 어떤 청산주의보다도 더 유해하다. 신념이 있는 청산주의자들은 그들의 견해를 솔직하게 진술하고 있어, 노동자들이 그들이 어디가 잘못인지 간파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반면에 뜨로쯔끼 일파는 노동자들을 기만하고 있고, 해악을 은폐하고 있어, 그 해악을 폭로하고 치유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레닌, ≪전집≫ 제17권, pp. 242-244, 1911년 9월.)

 

뜨로쯔끼주의라는 용어의 내적인 의미는 레닌에게 있어서는 명백히 기회주의자의 하나였다. 청산주의자들을 엄호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혁명적 수사를 뇌까리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었다. 뜨로쯔끼 자신에 의해 고안된 전설처럼 후일의 쓰딸린-뜨로쯔끼 논쟁에서 발명된 것이 아니었다.

 

 

2. 뜨로쯔끼의 영구 혁명

 

농민층 역할의 과소평가

뜨로쯔끼주의는 이념적으로 그의 영구 혁명 이론으로부터 시작된다. 영구 혁명은 뜨로쯔끼주의의 지적인 출발점이다. 노동계급이 러시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이끌어야만 하고, 국가 권력의 소유라는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 단계, 최소 강령에 멈춰서는 안 되며, 사회주의 단계로까지 혁명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 혁명의 중심 문제, 즉 어느 계급이 혁명을 이끌 것인가를 답했다. 레닌과 뜨로쯔끼는 노동계급이 혁명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부르주아지의 지도력하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을 지지한 멘쉐비끼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러나 뜨로쯔끼는 자신의 영구 혁명 이론에서 농민의 역할을 과소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만이 권력을 획득할 유일한 대상이고, 그러므로 현실의 구체적 상황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사회주의 혁명 단계로 곧바로 나아갈 것이라 했다. 이와는 반대로 맑스-레닌주의는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혁명의 짐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 위에 있다고 가르쳤다.

 

뜨로쯔끼가 혁명에서 농민층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혁명에서 농민층의 역할에 대한 부정확한 전술적인 이해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은, 아래와 같은 뜨로쯔끼의 주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 [권력을 장악한 노동계급은] 그 역할의 아주 초기 단계들에서 봉건적 소유만이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 역시 깊이 침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혁명 투쟁의 첫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지지했던 모든 부르주아 집단들과만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 수단이 되었던 농민층과 광범한 대중들과도 적대적으로 충돌하게 될 것이다. 후진국의 노동자 정부의 입장에서의 압도적 다수의 농민들과의 모순들은 단지 국제적 규모에서만,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장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뜨로쯔끼, ≪1905년(The Year 1905)≫의 서문, 하르팔 브라르, ≪뜨로쯔끼주의인가, 레닌주의인가?(Trotskyism or Leninism? )≫, p. 117에서 재인용.)

 

이는 뜨로쯔끼가 국내의 구체적 조건-상황을 전제로 투쟁을 진전시키면서 일국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이것이 세계 혁명과도 상호 보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까지도 알지 못했다는 것을 미리 짐작케 하는 주장이다.

 

농민층 역할의 중요성

뜨로쯔끼주의가 농민층의 역할을 과소평가했다는 맑스-레닌주의의 주장은 또 다른 뜨로쯔끼의 글에 의해 예증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에 부르주아 혁명의 모든 짐을 지게 하는 우리의 사회-역사적 관계들의 본성은, 노동자의 정부에 대하여 거대한 어려움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또한 어쨌든 그 정부의 초기에 그 정부에 헤아릴 수 없는 이점들을 줄 것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뜨로쯔끼, “결과와 전망들(Results and Prospects)”(1906), ≪영구 혁명(The Permanent Revolution)≫, New Park Publications, 1962, p. 203.)

 

아래는 뜨로쯔끼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자로서 농민층의 중요성에 대한 레닌주의적 이해를 완전히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명확하게 보여 준다. 뜨로쯔끼는 인쇄된 글에서 다음과 같이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쓰딸린주의와 뜨로쯔끼주의 간의 계속되는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맑스주의적 전통과 완전히 일치되게 레닌은 결코 농민층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주의적 동맹자로 간주한 적이 없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와는 반대로, 레닌으로 하여금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 것은 농민층의 압도적 우세였다. (뜨로쯔끼, ≪영구 혁명이란 무엇인가―러시아 혁명의 세 가지 개념들(What ls Permanent RevolutionThree concepts of The Russian Revolution)≫, 1970년 스파르타쿠스주의자 발간, 페이지 표기 없음.)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동맹은 민주주의 혁명을 위한 절대적 조건이었으며, 한편 중농 및 빈농층과의 동맹은 사회주의적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떠받치는 전제 조건이었다. 따라서 위와 같은 뜨로쯔끼의 주장은, 레닌주의의 파렴치한 부정이며 레닌주의를 뜨로쯔끼주의로 대체하는 것이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력과 더불어 수백만의 소농들과 동맹으로 결합하여, 협동조합의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모든 대규모의 생산 수단에 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한, “이것이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아닌가? 이것은 아직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은 이러한 건설을 위해 필요하고 충분한 모든 것”(레닌, ≪전집≫ 제27권, p. 392.)이라고 하였다.

 

농민층과 사회주의에 관한 레닌의 관점을 더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는 의심의 여지없이 단지 경과적이고 일시적인 사회주의적 목표이지만, 민주주의 혁명의 시기에 이 목표를 무시하는 것은 명백히 반동적일 것이다. (레닌, 같은 책, p. 83.)

 

레닌이 볼 때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민주주의적 독재를 수립할 터였다. 이것 자체가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의 모든 짐을 지며, 유일한 혁명적 계급이라고 주장하는 뜨로쯔끼의 주장과 차이가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독재는 최소 강령, 즉 부르주아 혁명의 요구들을 행하는 것이었다. 혁명의 부르주아 단계는 사회주의 단계와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최소 강령, 부르주아 혁명과 최대 강령, 사회주의는 서로 무관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혁명의 과속화

뜨로쯔끼는 ≪영구 혁명≫에서, 권력을 장악한 후에 노동계급은 최소강령을 수행하고, 계속하여 사회주의로, 즉 최대 강령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의 이러한 발전은 러시아가 1914-1918년의 제국주의 전쟁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그토록 단기간에 민주주의 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환시킬 수 있게 했던 상황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차 제국주의 전쟁에 의한 조성된 조건들이 없었다면, 전체적으로 농민층은 사회주의로 즉각적인 이행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는 계급 세력의 균형이 멘쉐비끼와 부르주아지에게 유리했을 것임을 의미한다. 제국주의 전쟁은 뜨로쯔끼 지지자들이 영구 혁명이라는 사이비 좌익적 본성을 감출 수 있게 했다. 전쟁에 의해 조성된 조건이 없이 뜨로쯔끼의 영구 혁명론을 시도하거나 옹호했다면, 노동자계급의 확실한 패배를 초래했을 것이다. 뜨로쯔끼주의자들은 바로 이 점을 무시하고 있다.

 

볼세비끼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부르주아 혁명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것과 레닌이 사회주의 단계로 이행을 주장한 것은, 뜨로쯔끼의 이론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전시 상황이 혁명 과정을 가속시켰고, 그리하여 혁명의 민주주의 단계와 사회주의 단계 사이의 거리를 좁혀 민주주의 단계로부터 사회주의 단계로의 전환을 가능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레닌의 전제가 제국주의 전쟁에 의해 조성된 구체적 상황이었음에 반해서, 뜨로쯔끼에게 있어서는 그 전제가 영구 혁명이라는 추상이었다. 그들 사이의 방법론적 대립이 레닌주의와 뜨로쯔끼 간의 인식상의 상이의 본질인 것이다.

 

소결

뜨로쯔끼주의는 시작부터 노동자 운동에서 혁명적 분자들과 기회주의적 분자들 사이의 모순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들을 화해시키려 했다. 뜨로쯔끼의 이론적 기원은 그의 버전의 영구 혁명이다. 내적 및 외적 요인들과 무관하게 최소 강령으로부터 최대 강령으로 전진을 자명한 것으로 가정했다. 맑스-레닌주의와 상이한 이러한 가정은 농민에 대한 과소평가 때문만이 아니라, 더욱더 방법론적 수준에서의 문제이기도 했다. 민주주의 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전진은 1914-18년의 제1차 제국주의 전쟁에 의해 발생된 특수한 환경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거나 매우 가망성이 적었을 것이다. 레닌이, 농민층을 과소평가하는 것과 관련하여 뜨로쯔끼의 이론을 터무니없이 좌익적이라고 규정한 것은 매우 정당하고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3. 뜨로쯔끼와 일국 사회주의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와 세계 혁명은 상호 보완적

맑스주의, 공산주의 투쟁은, 인류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1917년의 10월 혁명에서 최초로 철저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세계 혁명 혹은 적어도 유럽 혁명의 퇴각은, 쏘비에트 혁명가들로 하여금, 혁명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견디고 사수하면서,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을 의미했다. 많은 희생을 치루며 내전에 승리했고 착취의 지지자들을 패배시켰지만, 혁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진적이고 반(半)봉건적인 자본주의 국가였던 곳에서 자본주의 세계의 포위와 직면해야만 했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한 후에 쏘비에트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력에 대한 두 지도적 경쟁자로 떠오른 것은 쓰딸린과 뜨로쯔끼였다. 쓰딸린은, ‘일국 사회주의인가, 아니면 세계 혁명인가’라는 뜨로쯔끼주의자의 노선에 따라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분열시키려는 모든 시도와 싸웠다. 쏘련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세계 혁명의 과정에 이바지하는 것이었다. 일국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세계 혁명에 봉사하고 있었고, 따라서 국제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봉사하고 있었다. 쓰딸린 및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건설 가능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반대하는 투쟁은 실제적으로, 객관적으로는, 세계 노동계급의 이해에 반대하는 투쟁이었다. 뜨로쯔끼의 ‘일국 사회주의인가, 아니면 세계 혁명인가’를 선택하라는 것은 레닌 사후에 뜨로쯔끼주의의 본질이 되었다. 뜨로쯔끼의 다음의 주장을 보자.

 

영구 혁명인가 일국 사회주의인가 ― 이 양자택일은 동시에 쏘련의 내부적 문제들과, 동양에서의 혁명의 전망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전체의 운명을 포괄하고 있다. (뜨로쯔끼, ≪영구 혁명(The Permanent Revolution)≫, New Park Publications, 1962, p. 11.)

 

쓰딸린은,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와 세계 혁명은 대립적이지 않으며, 상호 보완적이기 때문에, 한편은 다른 한편을 이바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의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레닌과 볼쉐비끼는 유럽적 규모의 혁명의 전망을 갖고 있었지만, 1918-19년의 독일 혁명의 패배는 러시아 혁명을 고립시키는 데 기여했다. 볼쉐비끼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제 버티면서 국제 혁명의 부활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제국주의의 책동으로부터 쏘련을 방어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잠시 동안 볼쉐비끼는 세계 혁명이 빠르게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이론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정세에 비춰 새로운 전망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세계 혁명을 지원하면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건설 가능성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소부르주아적 기회주의

1915년 레닌은 유럽합중국이라는 슬로건을 먼저 세계합중국과 관련된 또 다른 슬로건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 뜨로쯔끼가 지지한 유럽합중국의 슬로건을 반대했다.

 

유럽만이 아닌 세계합중국은, 공산주의의 완전한 민주주의의 국가를 포함한 국가의 총체적 소멸을 가져올 때까지, 사회주의에 결합하는 민족들의 통일과 자유의 국가 형태이다. 그러나 분리된 슬로건으로서의 세계합중국이라는 슬로건은 거의 올바른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회주의와 융합할 것이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것이 ‘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는 불가능하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될지도 모르며, 또한 다른 나라들에 대한 이러한 나라의 관계에 관한 오해를 유발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레닌, ≪전집≫ 제21권.; ≪맑스, 엥엘스, 맑스주의≫, Foreign Languages Press, pp. 334, 339.)

 

명백히 레닌주의는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승인하고 있으며, 뜨로쯔끼가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추구했던 일국 사회주의인가, 아니면 세계 혁명인가 하는 부당한 선택과 관련하여 뜨로쯔끼주의란 레닌주의의 변조임을 폭로하고 있다. 1915년의 바로 그 동일한 문건에서 레닌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관찰하고 있다.

 

불균등한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발전은 자본주의의 절대적 법칙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의 승리는 처음에는 몇몇 혹은 심지어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단독으로 성취될 수 있다. (레닌, 같은 책.)

 

뜨로쯔끼가 노골적으로 레닌을 반대하면서 동시에 레닌을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뜨로쯔끼의 소부르주아적 기회주의를 폭로하는 것이고, 소부르주아지와 연결된 절충주의를 폭로하는 것이다. 볼쉐비끼가 권력을 잡은 후 뜨로쯔끼는 공산당 내에서 레닌주의의 숨은 반대자가 되었다.

 

레닌의 이론적 유산 변조

뜨로쯔끼주의자들은 계속하여, 부르주아 교수들처럼, 쓰딸린이 혁명의 연대기를 위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레닌의 이론적 유산을 변조하고 있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및 세계 혁명에 관계된 문제는 뜨로쯔끼주의의 변조의 고전적 사례다. 상품 생산, 즉 자본주의 발전의 불균등성이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창출하고 있는 레닌의 주장을 보자.

 

자본주의 발전은 다양한 국가에서 극히 불균등하게 진행된다. 상품 생산하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가 없다. 이로부터, 사회주의는 모든 나라에서 동시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반박의 여지없이 도출된다. 그것은 처음에는 한 나라 속에서 승리를 획득할 것이고, 다른 나라들은 당분간 여전히 부르주아적 혹은 전 부르주아적인 채 남아 있을 것이다. (≪맑스, 엥엘스, 맑스주의≫, p. 385.)

 

1924년 이후 레닌주의와 뜨로쯔끼주의 간의 주요한 모순은, 쓰딸린과 뜨로쯔끼주의 간의 모순으로 되었다. 쓰딸린은 일국 사회주의가 세계 혁명 과정의 이해에, 옹호되어야만 하는 노동계급의 이해에 봉사한다고 주장했고, 뜨로쯔끼주의는, 일국 사회주의는 비레닌주의적이고, 불가능하며, 국제 혁명에 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레닌이 세계 혁명의 과정의 일부로서 일국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옹호했기 때문에, 쓰딸린이 레닌을 옹호하는 것이 비레닌주의적이고 수정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산주의 운동에서 뜨로쯔끼주의자들의 교활성과 기회주의를 드러내는 가장 비열한 사례였다.

 

 

쏘련 사회의 구체적 상황

쏘련은 경제적 봉쇄를 견디어 낸 후에는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타협하지 않고도 자본주의 국가들과 어느 정도 무역할 수 있었다. 혹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문제는 결코 추상적으로 제기될 수 없고, 특히 쏘련의 상황 속에서 레닌이 이해한 사회주의의 본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다음을 보자.

 

모든 대규모 생산 수단에 대한 국가 권력,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중에 있는 국가 권력, 프롤레타리아트와 수백만의 소농 및 빈농들의 동맹,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농민층의 보증된 지도력 등, 이것이 이전에는 행상인으로 경멸되었고, 신경제 정책(NEP)하에서 어느 정도는 우리가 지금 그렇게 경멸할 권리가 있는 협동조합들로부터, 협동조합들만으로부터,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아닌가? 이것은 아직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러한 건설을 위해 필요하고 충분한 모든 것이다. (레닌, ≪전집≫ 제27권, p. 329.)

 

뜨로쯔끼 자신이 사회주의를 협동조합이라는 관점에서 규정한 내용은 다음에서 알 수 있다.

 

대규모의 협동조합적 생산인 사회주의는 생산력의 발전이, 대기업이 소규모 기업보다 더 생산적인 단계에 도달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뜨로쯔끼, ≪영구혁명≫, p. 220.)

 

그러나 쓰딸린에 대한 투쟁에서 그는 사회주의, 즉 생산의 협동조합적 조직이 일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뜨로쯔끼가 이러한 개념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 사회의 초기 단계와 그 후기 단계의 차이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문제를 순수하게 추상적인 방식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란 자본주의와 보다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이의 이행기적 사회임을 뜨로쯔끼주의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 나라에서는 협동조합적 생산과 노동계급의 정치권력이 불가능하다라고 추상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사이비 좌익적 헛소리이다.

 

소결

뜨로쯔끼는 일국 사회주의와 세계 혁명이 모순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임을 보지 못하고, 그 양자 사이의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분열시키려 했다. 변증법에 대한 무지와 악의 그리고 분파적 고려에 의해 유발된 이러한 분열적 행동은 제국주의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4. 뜨로쯔끼와 쏘비에트 관료주의

 

관료주의와의 투쟁은 장기적 임무

쏘련의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의 기원은 부분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하에서의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한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레닌은 관료주의의 해악에 반대하는 투쟁의 장기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강령은 관료주의의 해악과 싸우는 임무를 극히 장기적인 임무로 공식화하고 있다”라고 했다. 관료주의는 러시아의, 쏘비에트 혁명의 아킬레스건이었으며,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고,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것이었다. 맑스-레닌주의가 관료주의와의 투쟁을 장기적으로 접근함에 반해서 뜨로쯔끼주의는 사이비 좌익적인, 단기적 전망, 즉 정치적 혁명이라는 전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뜨로쯔끼가 정치적 전망을 떠받치기 위해, 뜨로쯔끼와 그 추종자들은 관료들과 노동계급 사이의 모순을 순전히 적대적인 것으로 제기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사회주의하에서의 노동계급과 관료주의와의 모순은, 생산 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 등을 고려하면, 또한 올바른 맑스레닌주의적 지도력을 고려하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새로운 사회는 모든 측면에서 낡은 사회의 모반을 지니고 있다

뜨로쯔끼는 쏘련이 쓰딸린 하에서 관료주의적 타락의 과정을 거쳤다고 일련의 허위논법을 제기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시작했다. 타락한다는 것은 쏘련이, 타락의 시기가 정착되기 전에, 이전의 우수했던 혹은 우수함에 가까웠던 시기를 누렸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알려진 사실들과 전혀 다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관료주의적 태도, 관료의 편의주의적 요구에 대한 개인의 종속, 상투성, 그리고 강박 관념은 러시아 역사에서 항상적인 주제였고, 러시아의 보통의 인민들에게 항상적인 시련이었다. 쏘비에트 시기에도 이 관료주의는 그것을 제거하려는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다. (웨스트우드, ≪인내와 노력―러시아사 1812-1986(Endurance and EndeavourRussian History)≫(제3판), pp. 48-49.)

 

레닌은 관료주의의 문제가 관련되는 곳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고 주장하면서, 1919년의 러시아 공산당(볼) 강령을 칭찬했다.

 

그 해악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드러내고 폭로하고 웃음거리로 만들기를 바라야 하고 그것과 싸울 수 있는 사고, 의지, 정력 그리고 행동을 자극해야 한다. (레닌, ≪전집≫ 제32권, p. 351, 1921년 4월 21일.)

 

현실은 낡은 러시아의 관료주의적 문화가 새로운 시대로 이월된 것이고, 새로운 사회는 모든 측면에서 낡은 사회의 모반을 지니고 있다는 맑스의 견해를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을 보자.

 

우리가 여기서 다루어야만 하는 공산주의 사회는, 그 자신의 토대 위에서 발전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반대로 자본주의로부터 갓 출현한 것으로서의 그것이다. 그것은 따라서 모든 측면에서, 경제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여전히 그 자궁으로부터 그것이 출현한 낡은 사회의 모반들이 찍혀 있다.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새로운 사회가 낡은 사회의 모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상호 작용, 계급 사회가 소멸하기 시작할 때까지 지속되는 그 투쟁과 관련되는 복잡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타락이라는 단순한 범주를 단조로운 방식으로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측면에서 혁명은 낡은 것과 새로 것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투쟁의 과정은 변증법적이다. 관료주의적 타락이라는 뜨로쯔끼의 일면적인 개념은 혁명이 상속받은 후진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장기간의 어려운 과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투쟁을 배제하고 있다. 레닌은,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을 고려할 때 장기적인 전망을 견지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반관료주의 강령을 채택함으로써 하룻밤에 관료주의적 관행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멋진 말을 좋아하는 사기꾼(quack)일 뿐이다. 그러나 관료주의적인 지나침은 즉각 시정되어야 한다. (레닌, ≪전집≫ 제29권, p. 183.)

 

노동조합 논쟁

혁명의 시기부터 점차적으로 형성되었던 관료주의의 문제 전체는 레닌이 뜨로쯔끼에 반대하고 나섰던, 유명한 노동조합 논쟁에서 공공연하게 폭발하였다. 뜨로쯔끼 지지자들은 쩨끄뜨란(Tsektran)에 의해 지도되는 철도운수연합노조을 통제하고 있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쩨끄뜨란에는 탁월한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을 임명할 것이고, 그들의 관료주의적 지나침을 교정할 것이다. (레닌, ≪전집≫ 제32권, p. 57.)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의 중앙위원회에 의해 소집된 1921년 3월의 전 러시아 수송노동자 제1차 대회는 쩨끄뜨란의 지도부에서 뜨로쯔끼주의자들을 쫓아냈고 작업의 새로운 방식의 틀을 짰다. (레닌, ≪전집≫ 제32권, p. 530의 주 9번을 보라.)

 

뜨로쯔끼는 조합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에 대한 이들 지지자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반대하고 있었던 것은 뜨로쯔끼와 그 지지자들이 그들 가운데 도입하고 있었던 관료주의적 방식들이었다. 이론적, 정치적으로, 당의 레닌주의적 지도부에 의한, 관료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내전 후에 노동의 군사화를 요구하고 있던 뜨로쯔끼에 반대하는 투쟁으로서 시작되었다. 뜨로쯔끼주의자들은 역사를 자기 마음대로 쓰고 싶어 하고, 관료주의에 반대하는 레닌주의의 투쟁이 쓰딸린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시작되었다고 속이려고 하지만, 그 투쟁은 실제로는 뜨로쯔끼가 임명한 사람들이 쩨끄뜨란에 도입했던 관료주의적 지나침에 반대하여 시작되었다. 레닌이 서거한 후 지도권을 획득하기 위해 투쟁하면서 뜨로쯔끼는 다시금 반관료주의 강령과 관련된 레닌의 견해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레닌은 쏘비에트 관료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극히 장기간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우리의 강령은 관료주의의 해악과 싸우는 임무를 극히 장기간의 것으로 공식화하고 있다. (레닌, “러시아 공산당(볼) 10차 대회(3월 8-16일)”,≪전집≫ 제32권, p. 202.)

 

노동조합 논쟁에서, 맑스-레닌주의적 접근과 사이비 좌익적인 뜨로쯔끼적 접근 사이의 모순이 시작되자 뜨로쯔끼는 암암리에 공산주의자들로 하여금 그의 접근과 레닌의 접근 사이에서 선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이는 레닌이 생각하기에 당에 해를 끼치게 될 입장이었다. ≪노동조합의 역할과 임무≫라는 제목의 뜨로쯔끼의 강령 팜플렛은 레닌이 보기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본질 자체에 관련한 오류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실제로 레닌은 뜨로쯔끼에 대한 입장은, “노동조합주의보다 더 반동적 운동으로 보이고, 관료주의적 입안자”라고 비난했다. 뜨로쯔끼의 팜플렛에 대해 레닌이 반동적 운동이라는 어구를 사용할 때, 그가 사실상 의미하는 것은 바로 파씨즘임을 명확히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레닌은 뜨로쯔끼의 테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당신의 접근은 문제에 대한 맑스주의적 접근이 아니다. 이는 당신이 테제에 수많은 이론적 오류들이 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것은 노동조합의 역할과 임무를 평가함에 있어서의 맑스주의적 접근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의 특수하고 정치적인 측면들을 고려하지 않고 이러한 광범한 주제를 다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닌, 같은 책, p. 32.)

 

뜨로쯔끼가 임명한 사람들이 쩨끄뜨란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쩨끄뜨란은 중앙위원회, 철도와 수운연합노조의 지도부였다. 그들은 노조 내로 뜨로쯔끼의 군사적 접근을 도입했다. 일부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는, 이러한 접근은 내전에 의해 발생한 파괴 후에 수송 체계를 다시 정상화시키기 위해 필요했다. 레닌은 “관료적 형식주의 , 거만함은 최악의 군사적 유형의 경험의 부정적 측면이고,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최선이 아니라 군사적 경험의 최악의 역할”이라고 하며, “정치지도자는 그 자신의 정책만이 아니라 그가 이끄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고 했다. 뜨로쯔끼주의자들의 군사적 스타일의 쩨끄뜨란 지도력은 너무 오래 지속되어 관료주의적 지나침을 초래하고 있었다.

 

뜨로쯔끼파가 통제하고 있는 쩨끄뜨란에 대한 레닌의 비판은 그들이 관료주의적 지나침을 시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였다. 관료주의의 해악을 극복하는 것은, 이미 지적한 것처럼, “관료주의의 투쟁은 장기간에 걸친 광범한 싸움이다”, 즉 수십 년이 걸리겠지만, 이러한 시정은 가능한 것이었다. 레닌의 강령의 기초는 뜨로쯔끼파에 반대하여, “관료주의적 지나침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정”하는 것이었다. 뜨로쯔끼가 고려하지 못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가 획득되었다고 해서 노동조합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 노동조합의 핵심적 역할의 하나는, “쏘비에트 기구 등에 접근하기 어려운 근로인민의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이해를 다양한 방식과 수단으로 보호하면서, 쏘비에트 기구의 관료주의적 왜곡과 싸우는 것, 이것은 사람들이 불운하게도 앞으로 장기간 직면해야만 하는 투쟁이다”라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의 역할이라는 쟁점에 대한 러시아 공산당(볼) 내의 논쟁은, 노동조합이 보조 기관으로서 생산의 증대를 지원하는, 쏘비에트 국가의 단순한 부속물인가 아닌가 하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것은 사실상 뜨로쯔끼의 견해가 도달한 것이었다. 반면, 레닌의 견해는, 노동조합은 공산주의의 학교여야 하고, 당과 근로인민 대중 사이의 전달 장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관료주의의 해악에 대한 투쟁

관료주의 투쟁은 짜리즘의 낡은 행정공무원들과 노동계급의 새로운 대표들 간의 투쟁이었다. 국가와 당 기구 내부에서 진행되는 공개적인 그리고 감춰진 계급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뜨로쯔끼는 쏘련에서의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을 특권에 대한 투쟁과 혼동했다. 두 측면은 이어져 있으나 동일하지는 않다. 공산주의 이행의 첫 번째 단계는 사회주의로 시작된다. 사회주의의 역할은 계급과 특권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수준으로 사회의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다. 관료주의의 해악에 대한 투쟁은 사회주의의 이러한 기본적인 임무와의 관련 속에서 고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에 대비하면서 동시에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쏘비에트의 공산당 지도부가 맞닥뜨려야 하는 두 개의 모순되는 과정이었다. 오로지 반쓰딸린이라는 관점에 서서 현명한 척하는 사이비 좌익들은 보편적으로 이 모순을 무시한다.

 

쏘련은 우선권을 최단기간 내에 특권을 폐지하는 데 둘 것인지, 방위력을 발전시키는 데 둘 것인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국주의의 위협 때문에 방위를 우선하기로 한 결정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최단기간 내에 쏘련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복무가 필요한 부르주아 전문가들에게 어떤 특권을 할당해야만 했다. 레닌과 쓰딸린의 시대에는 특권에 대한 원칙적인 옹호가 아니라, 어느 정도 불가피한 실용적인 승인이 있었다. 특권의 활용이 장기적으로는 사회주의에 대립하는 것이지만, 사회주의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권층의 결정화는 그 세력이 노동계급의 이익에 대립되는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정도로 강해진다면,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탈선시킬 수도 있었다. 쓰딸린 시대에는 분명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쏘련의 상황에서 특권이 불가피했다면, 공산주의자들의 역할은, 특권과 관료주의적 남용을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그것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게 하는 물질적, 이념적 조건들의 발전을 촉진하면서 특권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는 것이었고, 일정한 한계 속에 제한해 두는 것이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산주의의 첫째 국면은 아직 정의와 평등을 제공할 수 없다. 부의 차이들, 불공평한 차이들이 남아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생산 수단, 공장, 기계, 토지 등을 장악하여 그것들을 사유재산으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레닌, ≪국가와 혁명≫(≪전집≫ 제33권), p. 93.)

 

공산주의의 첫 단계

공산주의의 첫 번째 국면, 즉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권력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다. 쏘련 상황에서는 특히 위험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애초의 경제적 문화적 후진성 때문이었고, 쓰딸린 시대에 대중적인 문맹 퇴치 운동이 치유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그 후진성이었다.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공산주의의 첫 단계에서 부의 불평등과 불공평한 차이들이 어느 정도까지 남아 있다면, 낡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막 출현한 새로운 사회의 결과이지 공산주의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생산력의 앞선 발전, 사회주의의 진보는 사회적 진보를 성취할 수 있게 한다. 현대 관료주의는 산업화의 과정에 따라 증대하는 국가의 책무들을 관리할 필요에 대한 행정적 반응으로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규칙과 규정들, 기성절차에 기초한 행정의 형태들과 관련되어 있다. 뜨로쯔끼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관료주의에 투쟁이 아니라, 쓰딸린주의적 관료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투쟁, 즉 쓰딸린에 의해 정치적으로 임명된 사람들을 의미하거나, 쏘비에트 사회의 상층 통치 계층 전체를 의미할 것이다. 뜨로쯔끼는 관료주의와 노동계급 사이의 모순을 절대적인 것으로, 그리고 쓰딸린과 그의 지지자들을 권력으로부터 제거하는 정치적 혁명이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뜨로쯔끼의 관념 속에서는 쓰딸린은 단지 관료주의의 종복으로서, 관료주의 그것이 분부하는 대로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 날조된 이미지는 물론, 국가 관료주의에 대한 숙청이 시작된 1930년에 깨져버렸다. 뜨로쯔끼주의의 전설은 이들 숙청이 진정한 혁명가들을 향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숙청의 표적은 쏘비에트 기구 내부의 제5열 분자들이었다.

 

맑스와 레닌주의는 노동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다른 어떤 방법도 알고 있지 않다. 공산당 내부의 사태 전개는, 노동계급이 국가의 정치권력을 계속 소유할 것인지의 문제를 결정하는 데에서 결정적이다. 이 문제는 단번에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당내에 어떤 수정주의가 나타날 때마다 끊임없는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쓰딸린과 그의 지지자들이 쏘비에트 공산당을 이끌고 있던 때에는 쏘비에트 관료주의자들에 의한 노동계급으로부터 정치권력의 찬탈은 결코 없었다. 쓰딸린과 뜨로쯔끼의 갈등은 역사적으로 불가피했다. 뜨로쯔끼는 레닌과는 주요한 분파적 차이들이 있었다. 사상 투쟁 속에서 뜨로쯔끼의 본질적인 반레닌주의가 폭로되고 패배한 후, 쓰딸린과 그의 지지자들을 권력으로부터 제거하기 위한 분파적 요구였다. 사상 투쟁에서의 뜨로쯔끼의 패배를, 일부 부르주아 저술가들처럼 당 기구에서의 서기장으로서의 쓰딸린의 지위 탓으로, 임명 권한을 이용한 탓으로 돌리는 것은 피상적인 견해이다.

 

정치적 슬로건들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요인들로부터 고립시켜 추상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객관적인 의미와 목적, 그것들이 현실적으로 어느 계급의 이해에 봉사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데, 레닌이 얘기했듯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누구든지 (특히 그것도 독재의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 당의 강철의 규율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는 자는, 현실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 반대하여 부르주아지를 돕는 것이다. (레닌, ≪전집≫ 제25권, p. 190.)

 

소결

뜨로쯔끼주의는,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은 단순한 정치적 강령으로 축소될 수 없고 그보다는 장기적인 전망에 기초해야 한다는 레닌주의를 거부하였다. 뜨로쯔끼주의는, 사이비 좌익주의와 분파적 고려로부터 맑스-레닌주의에 직접적으로 반대하여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에서 단기간의 전망을 선택한 것이다.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의 이론적 기원은 1920-21년의 노동조합 논쟁 중에 뜨로쯔끼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뜨로쯔끼주의는 숨기고 있다.

 

 

5. 뜨로쯔끼의 이행기 강령

 

최소 강령, 최대 강령

뜨로쯔끼는 1938년에 ≪이행기 강령≫을 썼다. ≪자본주의의 단말마의 고통과 제4 인터내셔널의 임무≫라고 알려진 그것은 친뜨로쯔끼 인터내셔널의 다양한 분파들의 강령적 안내자가 되었다. 뜨로쯔끼가 이 조직에 높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언급 속에 강력하게 표현되어 있다.

 

무쏠리니, 히틀러 그리고 그들의 대리인들과 모반자들의 타도는 오직 제4 인터내셔널의 지도력하에서만 일어날 것임을 이미 전 세계 선진 노동자들은 굳게 확신하고 있다. (뜨로쯔끼, ≪이행기 강령: 자본주의의 단말마의 고통과 제4 인터내셔널의 임무(The Transitional programme: The Death Agony of Capitalism and the Task of the Fourth international )≫, New Park Publications, p. 47.)

 

이 단정적인 발언은 뜨로쯔끼의 희망의 표현이었을 뿐 아니라 그가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있었다는 것을 통렬하게 상기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할 수 있는데, 현실로부터 이러한 이탈은 그의 고립과 더불어 더욱 두드러져 감을 그의 이행기 강령 속에서 알 수 있다.

 

인류의 역사적 위기는 혁명적 지도력의 위기로 환원되어 있다. … 역사적 법칙들은 관료주의적 기구보다 강력하다. … 현재의 요구들과 사회주의적 혁명 강령 사이의 가교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 가교는, 오늘날의 조건들과 광범한 층의 노동계급의 오늘날의 의식으로부터 발생하고 또 변함없이 하나의 최종적 결론, 즉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권력의 장악으로 이끄는 이행기적 요구들의 체계를 포함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의 개량주의자들에게는] 최소 강령과 최대 강령 사이에 어떠한 가교도 존재하지 않았다. (뜨로쯔끼, 같은 책, pp. 12, 14-15.)

 

뜨로쯔끼는, 주관적인 수준에서 위기를 보고, 물질적 요인들, 혹은 역사의 법칙들이 종국적으로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가 개량을 혁명으로부터 분리시켰으며, 개량을 절대적인 것으로 상향시켰고, 본질적으로 개량주의자가 되었다고 비난하며, 사회민주주의는 혁명을 배신하였는데, 이는 맑스주의적 강령의 최소 부분과 최대 부분 사이의 분리 때문이었다고 사실상 말하고 있다. 뜨로쯔끼는 하나의 치유책, 강령의 두 부분을 연결하는, 본질적으로 옛 강령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가교를 추구했다. 그러나 최소-최대 강령을 이행기 강령으로 대체함으로써, 뜨로쯔끼는 “혁명적 강령은 계급 투쟁의 변증법에 기초해야만 한다”는 자기 자신의 충고를 무시했다. 변증법이기는커녕, 뜨로쯔끼의 이행기 강령은 최소 요구들과 최대 요구들의 절충주의적 결합이며, 최대 요구적 유형의 요구가 지배적이다. 놀라운 것은, 러시아 혁명에 참가하여 지도적 역할을 한 뜨로쯔끼가, 최소 강령과 최대 강령 사이에는, 혹은 오히려 강령의 최소 부분과 최대 부분 사이에는, 즉 개량과 혁명 사이에는, 어떤 가교도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질적이고 변증법적인 도약, 즉 양적인 상태의 질적인 상태로의 변환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로부터 공산주의로 이행의 시기라는 관념을 강령의 문제와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뜨로쯔끼 추종자들은 기본적으로, 1938년에 제4 인터내셔널을 설립한 이후 줄곧, 비혁명적인 상황에서 혁명적 요구들을 수행할 것을 선동해 오면서, 노동자 운동에서 사이비 좌익적이고, 분파주의적인 조류로서의 그 본질을 유지했다. 추상적인 측면에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요구들과 갈등하고 있는 것은 현실적인 요구들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개량으로부터 혁명으로의 도약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최대 요구들을 이행기의 요구들로서 제기하는 것이다.

 

비혁명적 상황, 혁명적 상황

맑스-레닌주의자들은 비혁명적 상황에서는 최대 강령의 요구들을 선전하지만, 이는 대중을 향하여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그러한 선전이 아니라, 교육적 목적을 위하여 계급의 보다 선진적인 부분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노동계급에게, 그리고 처음에는 그 혁명적 전위에게, 혁명의 완전한 강령을 제시한다. 비혁명적인 상황에서는 혁명적인 최대 요구들이 대중들을 동원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최대 요구들을 통해 대중들을 동원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행기적 요구들로 가장되어 있든 아니든, 분파주의적 집단의 어리석음이다. 뜨로쯔끼가 이행기 강령 속에서 분파주의를 비난할 때, 최고의 아이러니는, “그들의 밑바탕에는, 부분적이고 이행기적인 요구들을 위한 투쟁, 즉 오늘날의 노동 대중들의 초보적인 이해와 필요를 위한 투쟁에 대한 거부가 가로놓여 있다”라고 분파주의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 및 자신이 사산한 제4 인터내셔널을 희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분파주의와 관련된 곳에서 뜨로쯔끼가 경고하고 있다니 말이다. 최소-최대 요구들을 전환기적 요구들, 즉 최소적이지도 않고 최대적이지도 않으며 그리하여 실제의 계급 투쟁과 관련하여 비실천적인 요구들로 대체함으로써 그 자신이 분파주의를 조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뜨로쯔끼는 알지 못했다.

 

맑스주의의 강령은, 계급 투쟁의 수세적 및 공세적 단계들과 연관되어 있고, 최소 요구들과 최대 요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둘은 투쟁의 전술적 측면과 전략적 측면을 대표한다. 뜨로쯔끼주의자들과는 달리 우리는 이것을 이행기 강령으로 대체하지 않고, 오히려 근로인민의 당면의 이익, 즉 최소 혹은 부분적인 요구들을 옹호하는 유연한 강령에 의거하고 있고, 대중들에게 그들의 상황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사회주의로 이끄는 요구들, 즉 최대 요구들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다. 강령은, 대중들의 최소의 부분적인, 상대적인 요구들과 사회주의를 위한 절대적인, 최대의 요구들의 통일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적 요구들로부터 절대적인 요구들로의 변화, 그것들의 현실적인 활성화는 계급 투쟁의 구체적 과정에 의존한다. 다시 말하면, 강령은 노동계급의 당면의 이해를 옹호하기 위한 수세적 투쟁으로부터 권력을 위한 즉각적인 투쟁에 이르는 단계들과 연관되어 있다.

 

소결

뜨로쯔끼는 이행기적 요구들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최소 및 최대 요구들이라는 개념을 대체하고, 선진 노동자들로 하여금 혁명적 과정에 있어 비혁명적 상황과 혁명적 상황의 차이에 대해서 혼동하게 하고, 이행기라는 개념으로 혁명적 도약의 개념을 대체하고, 노동자계급의 즉각적 이해를 옹호하기 위한 투쟁을 권력을 향한 직접적 투쟁과 혼동하게 한다. 그는 계급 투쟁의 수세적 단계와 공세적 단계 사이의 관계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6. 뜨로쯔끼의 방법론에 대한 레닌의 언급

 

레닌은 그 이전에도 뜨로쯔끼의 방법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그것이 사이비 좌익주의임을 말하고 있지만, 뜨로쯔끼의 방법론의 문제에 본격적으로 접근한 것은 1920년에 일어난 유명한 노동조합 논쟁 때였다. 노동조합 논쟁에서 레닌은 뜨로쯔끼의 강령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모든 것을 무시한, 고답적이고, 추상적이며, ‘공허하고’, 또한 이론적으로 그릇된 일반적 테제들 (레닌, ≪전집≫ 제32권, p. 85.)

 

뜨로쯔끼주의에는, 맑스-레닌주의와는 달리 추상과 구체 사이에 분리가 있다. 최소 강령에서 최대 강령으로의 이행이 순수하게 추상적이며, 어떠한 구체적 결정 요인들로부터도 독립적이다. 뜨로쯔끼는 1928년에 ‘영구 혁명’에 관해서 쓰면서도, 어디에서도 세계를 박살낸 1914-18년의 제국주의 전쟁과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 간의 관계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하고 있지 않다. 반면에 “4월 테제”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리보프와 그 일당의 새로운 정부하에서도 그 정부의 자본주의적 본성 때문에 러시아의 편에서 전쟁은 여전히 의심의 여지없이 약탈적인 제국주의 전쟁이기 때문에, 이 전쟁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서는 혁명적 방위주의에 대한 어떠한 사소한 양보도 허용될 수 없다. (레닌, ≪전집≫ 제24권, pp. 19-20.)

 

그리고 그 전쟁과 그 결과 일어날 사회주의로의 이행 사이의 구체적 연관에 대해, “자본의 권력을 타도하여 국가 권력을 다른 계급 곧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이전하지 않고는, 제국주의 전쟁에서 빠져나와 민주적이고 비강압적인 평화를 획득할 수 없다”(레닌, 같은 책, pp. 55-91.)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연관에 대해, 쓰딸린은 ≪레닌주의의 기초≫에서, “실천적으로 부르주아지를 타도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쟁으로부터 벗어나는 다른 길이 없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레닌은 1917년에,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혁명적민주주의 독재는 이미 실현되었지만, 그러나 매우 색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수많은 극히 중요한 수정을 수반하면서 실현되었다”(레닌, 같은 책, pp. 42-52.)라고 하였지만, 반면에 뜨로쯔끼는 1928년에 그의 ≪영구 혁명―결과와 전망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층의 민주주의적 독재 정권은 결코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레닌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면 뜨로쯔끼는 정반대의 것을 주장하고 있다. 레닌주의와 뜨로쯔끼주의 간의 투쟁은 구체적인 추론 형태와 추상적인 추론 형태 간의 투쟁이다. 레닌의 사고에는 더 많은 내용이 있어서 보다 구체적이고 보다 더 생활과 밀접하게 하는 것이었고, 뜨로쯔끼의 사고에는 알맹이가 없었기에 대상에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뜨로쯔끼의 방법론의 본질을 구성한 것은, 일반적인 것을 절대화하면서, 구체로 내려갈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소결

뜨로쯔끼의 사고 속에서는 추상이 구체보다 우위에 있으며, 구체의 풍부함을 무시하면서 추론을 일반적 수준에서 제한하거나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뜨로쯔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가장 간단하게 사이비 좌익주의라는 것이다.

 

 

나가며

 

21세기인 오늘날 뜨로쯔끼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조직이 얼마나 되는지 개인적으로 조사한 적은 없다. 들리는 소리로는 현재까지도 뜨로쯔끼주의의 추종자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니 암담할 뿐이다.

이 책은, 반맑스-레닌주의, 즉 뜨로쯔끼주의가 노동 운동, 사회주의 건설 투쟁에 얼마만큼 구체적으로 해악이 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반짝임과 요란함’만 있고, 실천에 있어서는 반동적이다.

 

뜨로쯔끼의 추종자들이 공허한 이론을 설파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노동자계급과 근로인민 대중은 현재 자본주의의 필연적 씨스템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 고통이 나날이 더해가고 있다. 경제 상황과 현 정세를 보면 이대로 굴종의 노예가 되어 죽을 것이냐, 단결 투쟁으로써 살아날 것이냐!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 노동자계급이 헛된 사상으로 아깝게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투쟁하기에도 버거운 이 첨예한 현실에서, 지배계급들에게 봉사하고 있는 반동들은 타파되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레닌주의인 양하고 있는 뜨로쯔끼주의자들의 그릇된 노선과 반동적인 해악은 노동 운동 내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이는 반드시 우리 맑스-레닌주의자들에 의해 폭로되어야 한다. 즉, 이러한 노선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행태들을 더욱더 파악, 분석, 연구해야 하는 것과 함께, 이러한 노선을 어떻게 폭로하고 타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천적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보다 더 광범하게 맑스-레닌주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견지한 투쟁 실천을 통해서, 이 자본의 사회를 전복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그것만이 프롤레타리아트와 근로인민 대중이 진정한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길이다. 다만 우리가 이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굳건한 사상으로까지 치달아야 하는 구체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사안들을 하나하나 또는 전면적인 투쟁으로써, 근로인민과 함께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뜨로쯔끼주의에 대한 성공적 투쟁을 위한 결정적 조건은, 맑스-레닌주의 운동 자체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며, 이는 맑스-레닌주의 운동이 진정으로 혁명적인 당과 투쟁 강령을 만들어 내는 것, 대중들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뜨로쯔끼주의에 의해 오도된 성실한 혁명분자들을 뜨로쯔끼주의자들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맑스주의 당을 대중 속으로 확장하고 침투시키는 것이다.

 

뜨로쯔끼주의의 반동적 추종은, 현실의 노동 운동과 앞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향하는 길목 길목에 가장 큰 장애 중에 하나임은 틀림없기에, 맑스-레닌주의 사상으로 이를 바로잡아 나가는 실천의 한 걸음 한 걸음이 곧, 노동자계급과 근로인민 대중의 단결된 실천 투쟁의 힘을 모아 나가는 첫걸음 중 하나일 것이라 확신한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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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1개의 댓글

  • 《뜨로츠끼주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싶게 만드는 글임 / 책에 나오는 내용인진 몰겠으나 작성자가 세세하게 설명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음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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