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일원론적 역사관의 발전(1)

 

게오르기 쁠레하노프(Георгий Плеханов)

번역ㆍ해제: 한동백(회원)

 

* 이 글은, 영국 공산당(CPGB) 출판부인 <Lawrence & Wishart>가 1947년에 출판한 G. V. 쁠레하노프의 ≪일원론적 역사관의 발전(The Development of the Monist View of History)≫(1895. 1.)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marxists.org/archive/plekhanov/1895/monist/index.htm>

≪일원론적 역사관의 발전≫은 니꼴라이 미하일로프쓰끼의 기계론 및 인민주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하여 당시 유럽 각국에 걸쳐 있던 관념론적 역사주의자의 학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물론에 대한 변증법적 이해를 재차 확인하며, 맑스주의 유물론을 면밀히 해석하고 있습니다.

 

** G. V. 쁠레하노프는 19세기 말부터 러시아에서 활동한 혁명가이자 이론가입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구체적 형성에 관한 논쟁에서 레닌과 대립되는 입장을 갖고 있었으며, 후일 멘쉐비끼 내 조국방위파의 주도적인 구성원으로 활동했지만, 헤겔 철학의 창조적 발전이자 피착취계급의 해방을 위한 과학적 이데올로기인 맑스주의 철학을 해석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습니다. 유심 철학의 역사관과 속류 유물론으로부터 맑스주의 역사관의 고수가 갖는 이 긍정성은 베라 자쑬리치(Vera Zasulich)에게 보낸 프리드리히 엥엘스의 서신(1895. 1. 30.)과 쁠레하노프에게 보낸 서신(1895. 2. 8.)에서 드러나는 ≪일원론적 역사관의 발전≫ 출판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차례]

제1장. 18세기의 프랑스 유물론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제2장. 반동기의 프랑스 역사가들

제3장. 공상적 사회주의자들

제4장. 독일 관념론 철학

제5장. 현대 유물론

현대 유물론(제2부)

현대 유물론(제3부)

현대 유몰론(제4부)

결론

부록 I: 또다시 반복되는 미하일로프쓰끼 씨의 “삼위일체론”

부록 II: 우리의 반대자들을 위한 몇 마디

 

 

제1장에 대한 해제

 

쁠레하노프는 당대 인민주의 사상가인 미하일로프쓰끼가 갖고 있는 유물론에 대한 견해를 비판하면서 프랑스 유물론에 관한 본격적인 해석에 들어간다. 당시 미하일로프쓰끼가 ‘일반적인 철학적 의미에서의 유물론’이라고 칭한 것, 정확히는 뷔흐너와 몰레쇼트의 유물론은 속류 유물론, 즉 기계론에 불과했다. 쁠레하노프는 이러한 경향을 일반적인 유물론이라 취급하는 미하일로프쓰끼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그가 들고 있는 ‘일반적인 철학적 의미에서의 유물론’이 이미 18세기 이후에 등장한, 그리고 사상된 프랑스 유물론의 낡은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19세기까지 이어진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은 당시에 만연했던 신학적 관점과 전제에 관한 강렬한 충격이었으며, 과학의 발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디드로, 엘베시우스, 홀바흐 등은 이러한 프랑스 유물론의 선구자들이었으며, 반동적인 신학자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들은 인간의 실천과 행동의 근거를 환경적인 작용에 따른, 외부 사물에 의한 수동적인 작용에서만 찾으려고 하였다. 다시 말해, 그것의 근거를 경험 세계 일반에서만 찾으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영국 경험론 철학으로부터 비롯된 관점이었지만,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이것을 사회와 과학의 진보의 한 계기로 삼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프랑스 유물론자들의 학설은 어떻게 사회 진보로 향할 수 있었는가? ― “확실히, 사람이 그가 처한 환경에 의존하고, 환경에 자신의 성품의 모든 특성을 빚지고 있다면, 그 스스로의 결점도 환경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쁠레하노프의 설명처럼, 그들은 사회 진보를 위해 ‘천성적인 게으름’과 ‘천성적인 부지런함’ 따위는 없으며, 결과적으로 사회의 부조리는 그 개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산물이라는 점을 들어 사회 진보를 추동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는 당대 프랑스 사상의 진보적인 성격을 극렬히 드러내는 서술이다. 하지만, 프랑스 유물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본질적인 취약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프랑스 유물론자들이 모든 것을 환경적 작용으로 환원한 결과로, 그 ‘사회적 진보’를 추동하는 사상마저 환경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 결과, 그 한 시대에서 진보성을 대표했던 사상은 그저 환경의 복잡성에 따른, ‘그저 다양한 것 중에 하나’라는 지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쁠레하노프는 이러한, 프랑스 유물론자들이 겪은 모순을 예시적 상황을 통한, 정립과 반정립의 논리로 그것을 올바르게 설명하였다. “일단 여기에서 인간의 사상이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단 한 사람도 자신의 모든 사상과 모순되는 사회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들은 사회 질서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이상에 따라 사회를 재구축할 것이다. 따라서 사상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참인 두 명제가 어떤 면에서 서로 모순될 수 있는가? 설명은 매우 간단하다. 이는 단지 우리가 잘못된 전제를 삼고 이를 바라보았기에 서로 모순이 되는 것으로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잘못된 전제에서 볼 때는 저 두 관계는 필연적으로 모순된 것으로 보여야 한다. 즉 정립이 옳다면, 그 반대는 틀린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라는 쁠레하노프의 설명은 프랑스 유물론자들이 극복하지 못한 모순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쁠레하노프의 해법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단순히 환경의 작용, 그에 따른 작용으로서 인간 사고의 반작용이라는 <상호 작용>의 관점에만 천착하는 것을 넘어서자는 것이었다. 즉 그러한 작용을 총괄하는, 즉 그러한 작용의 성격을 더욱 상위에서 규정하는 역사적인 법칙이 있으며, 한편으로는 그러한 역사적인 법칙의 참된 인식은 단순히 피상적인 의미에서 ‘환경적인 작용’의 결과로 도출된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걸 설명한다. 한편 이것은 “또 다른 한편으로 상호 작용의 관점을 넘어서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인식을 탐구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사회 환경의 발전과 사상의 발전을 결정하는 요인을 파악해야 한다”라는 쁠레하노프의 설명처럼, 단순히 한 개인이 갖는 주관적인 성격(게으름, 부지런함 등)을 뛰어넘는, 즉 그것을 포괄하면서도 단순히 그것으로서만 설명할 수 없는 법칙이다. 이렇게 쁠레하노프는 헤겔 이후에 이어진, 그리고 맑스에 의해 종합화된 변혁에로의 첨단 사고의 방식을 설명하는 초입을 연 것이다.

 

 

제1장. 18세기의 프랑스 유물론

 

미하일로프쓰끼 씨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요즘 불필요하게 서두르면서 자신에 대해 ‘유물론자’라고 칭하는 한 젊은이를 당신이 만나게 된다면, 이 ‘유물론자’는 과거 우리가 존경했던 뷔흐너[Ludwig Buchner]나 몰레쇼트[Jacob Moleschott] 류의, 일반적인 철학적 의미에서의 유물론자가 아니다. 당신과 함께 얘기하고 있는 그 사람들은 흔히(very often) 유물론의 형이상학적 또는 과학적 측면에 관해 조금도 관심이 없으며, 심지어 그것에 대해 매우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스스로가 특정한, 그리고 조건적인 의미에서 경제적 유물론의 추종자라는 것이다.”[1]Russkoye Bogatstvo, January 1894, Section II, p. 98.

 

우린 미하일로프쓰끼 씨가 어떠한 젊은이를 만났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언급은 ‘경제적 유물론’을 대표하는 자들의 가르침이 ‘일반적인 철학적 의미에서의’ 유물론과 관련이 있다는 인상을 일깨우는 것 같다. 이것은 사실인가? 미하일로프쓰끼가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경제적 유물론’은 실제로 빈약한 내용을 담고 있는가?

 

그 교리의 역사에 관한 간략한 개괄이 답을 줄 것이다.

 

‘일반적인 철학적 의미에서의 유물론’이란 무엇인가?

 

유물론관념론의 정반대이다. 관념론은 자연의 모든 현상, 물질의 모든 성질(qualities)에 대해, 그것들이 갖는 정신적인 성질, 또는 정신이 갖는 성질을 통해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유물론은 이것의 정반대이다. 유물론은 저 현상과 성질에 대해 인간의 조직 또는 더 일반적인 용어로는 동물의 신체 조직에 의한 심리적 현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현상과 성질, 더 나아가 정신적 성질의: 역자] 주요 요인을 물질이라고 간주하는 자는 모두 유물론의 진영에 속한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를 정신으로 간주하는 자는 모두 관념론자이다.

 

이것이 [특정한] 한 시대의 유물론과 다른 한 시대의 유물론이 갖는, 서로 상당히 다른 양상을 부여한 상부 구조의 근본 원리에 따른 [사회] 구축 이래 일반적인 유물론에 대해, 즉 ‘일반적인 철학적 의미에서의 유물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의 전부이다.

 

유물론과 관념론은 철학적 사고의 가장 중요한 경향들을 샅샅이 다룬다. 사실, 정신과 물질을 독립된 실체로 인식하는 일종의 이원론적 체계는 항상 존재해 왔다. 이원론은 서로 분리된 두 실체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만족스러운 해답을 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가장 완고하고도 심오한 입장을 견지한 사상가는 항상 일원론(monism), 즉 하나의 주요 원리(그리스어로 “monos”는 ‘하나’를 의미함)의 도움을 통해 제 현상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모든 완고한 관념론자는 모든 완고한 유물론자와 동일한 정도의 일원론을 고수한다. 이 점에서 예를 들자면, 버클리[George Berkeley]와 홀바흐[Paul Heinrich Dietrich Holbach]는 차이가 없다. 하나는 완고한 관념론자였고, 다른 하나는 그에 못지않은 완고한 유물론자였지만, 둘 다 일원론적이었으며, 둘 다 오늘날까지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이원론의 무가치함을 똑같이 잘 이해하고 있었다.

 

전반기 우리 세기의 철학은 관념론적 일원론이 지배했다. 후반기에 들면서 철학은 과학 분야와 융합을 거듭하며 유물론적 일원론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 비록 일관되고 노골적이었던 일원론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우리는 여기서 유물론의 모든 역사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선 지난 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발전을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홀바흐나 엘베시우스[Claude Adrien Helvetius] 및 그들의 지지자들의 유물론 경향 중 주된 흐름―사실은, 가장 중요한―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홀바흐나 엘베시우스와 같은 경향의 유물론자들은, 당시 데카르트의 권위에 호소하면서 인간에게는 특정한 선천적인 관념[본유관념], 즉 자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특정한 선천적 관념이 있다고 주장하는 당시의 주류적 사상가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이 경향에 반대하는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본래 17세기 말에 이미 “내재적인 원리는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던 로크[John Locke]의 가르침을 제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그의 학설을 설명하면서 로크가 다루려고 하지 않았던 자아 문제[사람의 동일성 문제와 자아의 동일성 문제에 관한 문제]에 대해 회피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예절 바른’ 영국 자유주의자보다 훨씬 일관된 태도를 취하였다.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거침이 없는 감각주의자였고, 전체적으로 이러한 입장으로서 일관됨을 가졌었다. 즉 그들은 인간의 모든 정신적 기능을 변형된 감각들로 간주했다. 오늘날 과학의 관점에서 그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까지 만족스러운지는 여기에서 분석하는 것이 무의미할 것이다. 현재 모든 학생에게 알려진 많은 것들에 대해 프랑스 유물론자들이 무지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비록 홀바흐가 그가 살았던 시기의 기준으로 자연 과학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현재로서 그의 화학과 물리학에 대한 견해를 상기한다면, 이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유물론자들에 관한, 논쟁의 여지가 없는 그 업적은 그들이 그 시대에서의 과학의 관점을 일관되게 고수했다는 것에 있다. ― 그리고 이것은 사상가에게 반드시 갖춰져야 하는 자질이다. 우리 시대의 과학이 지난 세기 프랑스 유물론자들의 기여를 기반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프랑스 유물론자에 대적하는 자들이 그 시대의 과학과 관련해서도 후진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철학사가들이 칸트를 지식 부족으로 책망하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 낯설겠지만, 사실, 그들은 대개 프랑스 유물론자들의 견해에 대한 칸트의 시각에 반대한다. 물론 이러한 대조는 매우 부당하며, 칸트와 프랑스 유물론자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견해를 취했지만[2][영역자 주] “칸트와 프랑스 유물론자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견해를 취한다”는 쁠레하노프의 진술은 잘못된 것이다. 칸트의 불가지론과 주관적 … Continue reading, 그들의 삶과 생각의 영향의 아래에서 사회적 관계의 다른 특징들이 지속되었기에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다룬 결과로서, 다른 결론을 이끌어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린 이 견해가 철학사가들의 모든 말을 믿는 데 익숙한 자들에 의해 불합리하다고 여겨질 것이란 걸 안다. 여기서 정황적인 논증으로 그것을 증명할 기회가 없지만, 우리는 반대자들이 요구한다면 논증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유물론자들이 인간의 모든 정신적 활동을 변형된 감각(감각들의 변형)으로 간주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신 활동을 고려한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관습적 사고(notions), 모든 신념(conceptions) 및 기분(feelings)이 환경이 그에 미치는 영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바로 이 견해를 채택한 것이다. 그들은 관점 그리고 감정을 갖는 인간의 그러한 [심리적] 요소들이 그 인간이 처한 환경, 즉 첫 번째로 자연이, 두 번째로 사회가 구성하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매우 열렬하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L’homme est tout education(인간은 전적으로 교육에 의존한다)”, 엘베시우스의 이러한 확언은 사회적 영향력의 총체로서 교육이라는 단어를 의미한다. 인간을 환경의 과실로 보는 이러한 견해는 프랑스 유물론자들의 진보적 요구에 대한 주요 이론적 토대였다. 확실히, 사람이 그가 처한 환경에 의존하고, 환경에 자신의 성품의 모든 특성을 빚지고 있다면, 그 스스로의 결점도 환경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견해에 따르면,] 자연이 인간을 약하지도, 선하지도 않게 만들었기에 결과적으로는 그 스스로의 결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가 처한 환경, 특히 그의 사회적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인간에 대해 합리적인 사회적 관계에 떨어뜨려 놓으면, 즉 각자의 자기 보존 본능이 나머지 사람들과 투쟁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건에 둘 경우: 개인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것으로서. ― 돌멩이가 지지력을 잃었을 때 저절로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미덕은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이에 따르면,] 미덕은 설교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합리적인 배열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세기 보수주의자와 반동주의자의 명량한(light-hearted) 평론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프랑스 유물론자들의 도덕에 관한 이론은 이기적인 도덕(egotistical morality)으로 간주된다. 그들[보수주의자와 반동주의자]은 그 도덕에 관한 이론이 전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들 스스로가 프랑스 유물론에 대해 더 정확한 정의를 내렸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처한 환경의 과실로서 대표되는 것이 정신세계라는 교리는, 드물지 않게 프랑스 유물론자들을 그들이 스스로 예상하지 못한 결론으로 이끌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때때로 사람의 사상[관점]이 그 사람의 행동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따라서 사회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퍼진다고 해도 그 뒤의 [환경을 통해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였다. 다음의 논의에서 우리는 그러한 견해가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를 보여 줄 것이지만, 이 단계에서 우리는 프랑스 유물론자들 견해의 이면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자.

 

어떠한 특정한 사람의 관념이 그의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면, 인류의 관념은 역사적 발전에서 사회 환경의 발전, 사회적 관계의 역사에 의해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인간 이성의 진보”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그것을 그릴 것인가?”(이성의 역사적 진보는 어떠한 특정 방법으로 일어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왜 그러한 방법으로만 일어났는가?”(왜 그 발전이 이런 방식으로만 일어났고, 다른 방식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는가?)라는 아주 자연스러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면, 우리는 [인간 이성의 진보에 대해 따질 때] 환경의 역사, 사회적 관계 발전의 역사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연구의 중심추는 첫 번째 단계의 모든 사건에서 사회 발전의 법칙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다루려고 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인류의 역사적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마다 그들은 ‘인간’ 일반에 대한 감각주의적 견해를 잊어버렸고, 그 시대의 모든 ‘계몽’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즉, 인류의 사회적 관계들)이 사상[사상, 기타 ‘주의’와 같은 종합적인 견해]에 의해 지배된다(c’est l’opinion qui gouverne le monde)고 단언했다.[3]“내 사상은 한마디로 그 형식으로서, 한 국가에 퍼진 수많은 진실과 오류의 결과, 즉 국가의 판단이자, 존경 또는 경멸, 사랑 또는 증오, 경향성과 … Continue reading 18세기 유물론이 겪은 이러한 경향은, 이 유물론 지지자들의 추론에 따랐을 때, 은행권이 작은 현금으로 교환되는 수준과 같은, 즉 근본적인 모순이 일련의 이차적이고 파생적인 모순으로 분열된 것과도 같은 양상이었다.

 

정립으로서, 모든 인간의 사상은, 그가 처한 환경의 산물이며 주로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다. 이것은 로크의 기본 명제인 “타고난 원리는 없다”에 따라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이에 대한 반정립으로서, 모든 특성을 가진 환경은 사상의 소산이다. 이것은 프랑스 유물론자들의 역사 철학의 근본 명제인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사상이다(c’est l’opinion qui gouverne le monde)”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필연적인 결론이다.

 

이 근본 모순(radical contradiction)으로부터 다음의 예와 같은 파생 모순(derivative contradiction)이 뒤따른다:

 

정립: 인간은 자신에게 유용한 사회적 관계를 좋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는 자신에게 해로운 관계를 나쁜 것으로 간주한다. 사람들의 사상은 그들의 이익에 의해 결정된다(수아[Jean-Baptiste-Antoine Suard]의 언급: L’opinion chez un peuple est toujours determinee par un interet dominant).[4]Suard, tome III, p. 401. 여기서 우리가 가진 것은 로크의 학설에서 나온 결론이 아니며, 단순히 “타고난 것은 없다. … 선과 악은 … 그저 우리에게 쾌락이나 고통이 유발되거나, 쾌락이나 고통을 획득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라는 그의 말을 되풀이한 것이다.[5]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Book I, Ch. 3; Book II, Ch. 20, 21, 28.

 

반정립: 기존의 관계는 이 사안을 다루는 사람들이 사상의 일반적인 체계에 따라 유용하거나 해로운 것으로 취급된다. 이번에도 수아의 말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신이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원하며, 사랑하고, 승인한다(“ne veut, n’aime, n’approuve que ce qu’il croit etre utile”). 결과적으로 최후의 [철학적] 방편으로서 모든 것이 다시 세계를 지배하는 사상으로 축소된다.

 

정립: “이웃을 사랑하라”와 같은, 계명에 기초한 종교적 도덕이 인류의 도덕적 향상을 부분적으로 이루어 냈다고 생각하는 자는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저러한 계명은 인간에 대해 어떠한 권세를 갖고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사회적 환경과 사회적 관계에 달려 있다.[6]이 원리는 홀바흐의 ≪자연의 체계(Systeme de la Nature)≫에서 재차 반복된다. 엘베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내가 가장 역겨운 결과를 … Continue reading 반정립: 역사의 경험은 “신성한 사상이 인류의 악의 진정한 근원이다”―사상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을 [현실에 미루어 생각했을 때,] 잘못된 사상이 피에 굶주린 폭군처럼 세상을 지배하기에 이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일반적인 철학적 의미에서의 유물론자”가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프랑스 유물론자들의 유사한 모순을 안고 그 모순을 증폭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 이것은 불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모순의 일반적인 성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V. V. 씨[Vasily Vorontsov]는 자신의 저서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운명(Destinies of Capitalism)≫과 ≪러시아 경제 연구의 결론(Conclusions from an Economic Investigation of Russia)≫의 첫 장에서 총체적인 모순을 보여 주며, 논리에 대한 그의 죄악은 단지 “인간의 생활 기록”만으로도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 미래에 있을 러시아 문학의 역사가는 그의 저서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지적한 후 사회심리학적 의미에서의 매우 흥미로운 문답들로 바쁘게 지내야 할 것이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분명하게도 이러한 작업자들은 V. V. 씨 독자들 눈에 띄지 않으며, 직접적인 의미에서 알려진 이 작가의 모순은 불모지의 무화과의 처지와 같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순과 모순을 거듭한다.

 

한편으로 여기에는 다른 성격으로서 모순이 존재한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V. V. 씨의 모순은 인간의 사고를 잠들게 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단순히 후자[황무지의 무화과]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며, 이 모순들은 그것의 발전을 늦추지 않고, 그것을 더욱 압박하며, 때로는 강하게 밀어붙여 결과적으로 가장 조화로운 이론보다 더 유익한 것으로 화한다. 이러한 모순에 대해서는 헤겔의 말을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모순은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Der Widerspruch ist das Fortleitende).”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의 모순이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주요 모순(main contradiction)을 살펴보자.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인간의 사상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환경은 동시에 사상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정립반정립만큼이나 타당하다”는 결론에 따라 칸트가 “이율배반”이라고 한 그 내용의 전모에 대해 상세히 말해야 한다. 일단 여기에서 인간의 사상이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단 한 사람도 자신의 모든 사상과 모순되는 사회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들은 사회 질서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이상에 따라 사회를 재구축할 것이다. 따라서 사상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참인 두 명제가 어떤 면에서 서로 모순될 수 있는가? 설명은 매우 간단하다. 이는 단지 우리가 잘못된 전제를 삼고 이를 바라보았기에 서로 모순이 되는 것으로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잘못된 전제에서 볼 때는 저 두 관계는 필연적으로 모순된 것으로 보여야 한다. 즉 정립이 옳다면, 그 반대는 틀린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전제를 발견한다면 이 모순은 사라지고 당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각각의 정립은 새로운 양상을 가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양상은 다른 정립을 보완하거나, 더 정확한 형식으로서 조건화하는 것으로 판명될 것이며, 서로에 대해 배중(排中)하는 정립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정립이 참이 아니라면, 이전에 당신에게 대립되는 것으로 보였던 다른 정립도 똑같이 참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거한 것과 같은 올바른 관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보자. 특히 18세기에는 특정 인구 집단의 내용(constitution)이 그 인구 집단의 형식(manner)에 따라 좌우된다는 말이 자주 인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꽤 타당한 것이었다; 로마인들에게서 옛 공화주의의 형식이 사라지자 이들의 공화국은 군주제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인구 집단에게 주어진 형식이 그 내용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주장은 덜 인용되었다. [그러나] 형식이 내용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 또한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예를 들자면, 실제로 헬리오가발루스(Heliogabalus)와 같은 당시의 로마인들에게 어떻게 공화주의적인 형식이 나타날 수 있었는가? 제국 시대의 로마인들의 형식이 옛 공화주의의 형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무엇인가로 향했음은 명백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내용이 형식에 의해 규정되고, 형식이 내용에 의해 규정된다는 일반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순된 결론이다. 아마 우리는 우리가 세운 정립 중 하나가 오류를 가졌기에 이러한 모순에 직면하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특별하게 발견될 지점이 무엇인가? 당신이 정신을 가다듬는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둘 중 어느 한 정립에서 어떠한 것이 잘못되었는지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주어진 사실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형식이 내용에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의미에서 형식이 내용의 원인이 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형식들은 내용에 의해 규정되고 이러한 의미에서 그 결과를 내기에 둘 다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탈출구는 어디에 있나?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의문에서 사람들은 [양자의] 상호 작용을 발견하는 데 자신을 국한시킨다: 형식은 내용에 영향을 미치고, 내용은 형식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이 대낮처럼 분명해지며, 이러한 것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종류의 명료함에 만족하는 것이, 이에 관한 모든 비난이 갖는 합당한 경향을 일방적으로 배제한다고 볼 것이다. 이것이 현재 거의 모든 지식인이 주장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상호 작용의 관점에서 사회생활을 해석한다. 삶의 각 측면은 다른 모든 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차례대로 그 측면은 다른 모든 자의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 바로 이러한 견해만을 곱씹는 “사회학자”의 가치가 인정되는 반면, 맑스주의자들처럼 더 심오한 이유를 찾거나 사회 발전을 위한 여러 측면을 계속 쫓는 자들은 사회생활의 복잡함의 정도에 대해 단순한 관점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들도 사회생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인 질서로 만들고 자신의 인식을 압도하는 모순을 해결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때, 맑스주의자들의 위와 같은 관점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그러한 것 중 가장 체계적인 사유(여기서 우리는 [당대] 계몽주의 작가들과 공통점이 거의 없었던 루소를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는 더 나아가지 않았다. 바로 그러한 결과로서, 예를 들자면, 몽테스키외가 그의 유명한 저작인 ≪로마인의 흥망성쇠 원인론(Grandeur et Decadence des Romains)≫과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에서 취한 관점이 바로 상호 작용에 대한 기존 관점의 고수였다.[7]홀바흐는 그의 저서인 ≪자연 정치(Politique naturelle)≫에서 형식과 내용 사이에 관한 [전통적인] 상호 작용의 관점을 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 Continue reading 그리고 이것은, 물론 정당한 관점이다. 상호 작용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 사이에 존재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타당한 관점[전제]은 그것이 갖는 간단한 이유[결함] 덕에, 상호 작용하는 힘의 기원에 대한 증거를 사실상 제공하지 않는다. 내용 자체가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전제로 한다면, 그 형식이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분명히 내용 때문이 아니다. 형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그들이 영향을 미치는 내용을 이미 전제하고 있다면, 이것을 만든 것은 그들[형식]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해당 인구 집단의 형식과 그 내용을 생성하고 양자 상호 작용의 그(very) 가능성을 만들어 낸 역사적 요인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가 이와 같은 요소를 발견한다면, 우리가 찾고 있는 올바른 전제를 밝혀내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 모순을 어렵게 않게 극복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 유물론자들의 근본적인 모순에 관한 한 이러한 요인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 유물론자들이 역사에 대한 관습적인 전제에 대항하기 위해 “환경은 모든 것을 의미하기에, 관념에는 의미가 하등 없다”고 했을 때부터 커다란 오류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한 만큼, 주어진 사회 환경의 존재들에 대한 해석에서 이것의 주되고 근본적인 원인에 관해, 역사에 대한 관습적인 전제(“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사상이다”)를 취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이다. 사상과 환경 사이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상호 작용이 있다. 그러나 상호 작용만으로는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에 부족하고, 과학적 탐구는 이러한 상호 작용을 인식하는 선에서만 그칠 수 없다. 인류의 역사에 관한, 즉 현재의 국면에서 인류의 사상에 관한 역사에 관한 이해를 위해선,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반드시 사회관계가 발전하는 데 거쳐 온 사회관계의 역사를 규명해야 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 상호 작용의 관점을 넘어서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인식을] 탐구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사회 환경의 발전과 사상의 발전을 결정하는 요인을 파악해야 한다. 19세기 사회 과학의 문제는 바로 그 요인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사상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이때의 사상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의 변화에는 어떠한 조건이 있는가? 이미 17세기에 라 모트 르 바이에르[Francois de La Mothe Le Vayer]는 “계몽의 확산”이라고 답하였다. 이것은 사상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생각의 가장 추상적이면서 피상적인 표현이다. 18세기의 계몽주의 작가들은 이러한 관점을 확고하게 고수했으며, 불행하게도 [이러한 자들의 주도로] 계몽의 운명은 대개 정녕 신뢰할 수 없는 것에 기반했다는, 우울한 반성을 통한 보충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가 부적절하다는 인식은 그들 중 가장 재능이 있는 자들 사이에서 이미 널리 알려졌다. 엘베시우스는 지식의 발전은 특정 법칙에 종속되며, 결과적으로 그 의존 속에 숨겨지고,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원인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여전히 이에 대한 진정한 가치가 평가되지는 않고 있지만, 그는 인간 스스로가 갖는 물질적 욕구(his material needs)에 따른 사회적 그리고 지적인 발달을 설명하기 위해 [이에 대한 지식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이 시도는 끝났고,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프랑스 유물론자들의 작업을 계승하고자 하는 다음 세기의 사상가들에게 언명(言明)적인 유언으로 남게 되었다.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Russkoye Bogatstvo, January 1894, Section II, p. 98.
2 [영역자 주] “칸트와 프랑스 유물론자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견해를 취한다”는 쁠레하노프의 진술은 잘못된 것이다. 칸트의 불가지론과 주관적 관념론과 달리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외부 세계의 인식 가능성을 믿었다.
3 “내 사상은 한마디로 그 형식으로서, 한 국가에 퍼진 수많은 진실과 오류의 결과, 즉 국가의 판단이자, 존경 또는 경멸, 사랑 또는 증오, 경향성과 관습, 악덕과 미덕을 형성하는 총체를 결정하는 결과를 의미한다.” (Suard, Melanges de Litterature, Paris, An XII, tome III, p. 400.)

[역자 주] 이 글을 쓴 장 밥티스트 앙투앙 수아(Jean-Baptiste-Antoine Suard)는 홀바흐의 동료이자, 프랑스 유물론자였다. 쁠레하노프는 프랑스 유물론자의 모순적인 선언을 이 문장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4 Suard, tome III, p. 401.
5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Book I, Ch. 3; Book II, Ch. 20, 21, 28.
6 이 원리는 홀바흐의 ≪자연의 체계(Systeme de la Nature)≫에서 재차 반복된다. 엘베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내가 가장 역겨운 결과를 초래하는 가장 어리석은 사상을 퍼뜨렸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내가 법칙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면, 형식에 관해서도 역시 같을 것이다.” (De lHomme, Section VII, Ch. 4.) 프랑스 유물론자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을 지낸 그림[Friedrich Melchior Grimm]의 ≪문예 통신(Correspondance Litteraire)≫에서도, 프랑스 유물론에 대항한 볼테르에 의해서도, 같은 견해가 자주 등장한다. 형이상학이 아니라 관습들이 그들 활동을 인도한 이래, 그[볼테르]의 ≪무지한 철학자(Philosophe ignorant)≫ 등 수많은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페르네이의 총대주교”[볼테르]는 단 한 명의 철학자도 이웃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다.
7 홀바흐는 그의 저서인 ≪자연 정치(Politique naturelle)≫에서 형식과 내용 사이에 관한 [전통적인] 상호 작용의 관점을 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그가 실천의 문제를 다룰 때, “형식을 개선하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내용을 완성해야 한다. 내용의 개선을 위해서는 형식을 개선해야 한다”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하였다. 홀바흐는 모든 계몽주의 작가들이 원했던 것과 같은, 가상의 선한 군주에 의해 이 순환이 해결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가상의 선한 군주는 신의 계기적 출현(deus ex machina)처럼 나타나 그 모순을 해결하여 형식과 내용을 모두 개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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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레하노프가 원래 글을 쉽게 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철학책 번역 치고 아주 쉽게 읽힌다. / 다음 장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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