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특집 1] 대의 민주주의 자유 위임제의 한계

 

신재길 | 교육위원장

 

* 이 글은, 지난 5월 15일 개최된 ‘2021년 노동당 정책 당 대회’에서 발표했던 내용을 수정ㆍ보완한 것입니다.

 

1. 민주주의의 위기

 

야스차 뭉크는 ≪위험한 민주주의≫[1]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 함규진 역, 와이즈베리, 2018.에서 지금이 한 세대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가 유례없이 극심한 시기이며, 자유민주주의의 생존 자체에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는 서구 전반에 걸쳐 특히 영국의 보리스 존슨,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프랑스의 르펜 부녀 등 서구의 중심국에서 포퓰리즘적 인물들이 등장하는 현상을 지적한 진단이다. 뭉크는 세계적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최초의 반격으로 한국의 ‘촛불혁명’을 꼽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촛불혁명’은 민주주의의 승리이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는가를 표현하는 징표일 뿐이다.

 

뭉크는 민주주의가 전례 없는 근본적 위기에 처한 근거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구조적으로 갈라지고 있는 데서 찾고 있다.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없는 자유주의” 현상이다.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는 세계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는 극우 포퓰리즘을 말하는 것이고, 민주주의 없는 자유주의는 현대 민주주의가 소수 엘리트 정치인, 관료, 자본, 사법 권력, 국제기구 등에 장악되어 인민의 의사와 이익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을 말한다.

 

이러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분리 현상은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뭉크의 진단이다.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현상의 원인으로 뭉크는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소셜 미디어의 영향이다. 불안을 조성하려는 포퓰리스트들은 매우 손쉽게 극단적인 가짜 뉴스를 엄청난 속도로 퍼뜨릴 수 있게 되어, 이를 통해 대중을 동원하고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저성장에 들어선 경제이다.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가 승승장구한 가장 큰 원인은 시민들 대부분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제 성장을 기초로 인민은 선출직 정치인들에 신뢰를 갖고 삶의 질도 좋아질 것이라고 낙관했으나, 오늘날 그런 신뢰와 낙관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셋째는 정체성이다. 이전에는 시민들 간 차이가 매우 적었는데, 오늘날은 세계화를 통해 이루어진 대규모 이민과 사회 운동 때문에 많은 것이 변화했다고 한다. 세계화가 낳은 불평등에 지친 사람들은 자신의 불만을 이민자들의 탓으로 전가한다. 적대성의 정치를 통해 그런 불만을 동원하려는 포퓰리스트의 말은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그들이 마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란 강렬한 기대를 품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뭉크의 대안은 첫째 불평등 해소, 둘째 포용적 민족주의로의 전환, 셋째 시민 교육의 강화이다.

 

 

2. 뭉크의 민주주의 위기론의 한계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뭉크의 대안은 결국 이전에 잘 작동했던 복지 국가로 돌아가자는 것에 그친다. 복지 정책을 잘 조율하여 불평등을 해소하고, 민족과 인종에 대한 차별 정책을 없애고, 시민 교육을 강화하여 가짜 뉴스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정도이다. 엄청난 통계 자료와 엄밀한 진단으로 민주주의가 위기 상황이라 진단하고 있지만 처방은 힘 빠지는 자유민주주의의 신념을 위해 싸우자는 것 정도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한국식 반공 독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봉건주의를 전복한 자유주의와 노동자 인민의 참정권 운동의 결실인 민주주의를 기만적으로 결합한 것을 말한다.

 

뭉크는 현재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를 ‘포퓰리스트 모멘트’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위기의 더욱 근원적인 뿌리는 ‘민주주의 없는 자유주의’, 즉 소수 엘리트 간의 경쟁적 과두 체제로 전락해 온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가 장기 지속하는 데에 있다. 우파 포퓰리즘은 그에 대한 반사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리버럴 진영인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하고 우파 포퓰리스트인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데는 힐러리 후보 자신이 특권계급이라는 데 있었다.

 

그리고 뭉크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현상의 원인을 소셜 미디어의 확산, 경제의 저성장, 정체성의 이질화에서 구하는데, 그것이 양면적이라는 데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그런 요인들은 민주주의 위기의 배경이 되는 것들이지 민주주의 위기의 내적 요소는 아니다. 소셜 미디어의 확산, 경제의 저성장, 정체성의 이질화 등은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민주주의의 확장과 강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는 자본의 언론 독점을 해체하는 민주주의에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경제적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반대로 권위주의 정권을 위기에 몰아넣기도 한다. 그리고 정체성 운동도 부정적 측면과 함께 긍정적 측면도 가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 이민자들의 세금을 이민 정책에 할당하여 이민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민주적 다양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정체성 운동은 이민족에 대한 정체성 운동이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이라는 여성 운동으로 나타났다. 페미니즘 운동이 여러 가지 부정적 요소를 갖고 있지만 여성 해방에 기여하고 있는 측면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3. 민주주의의 근본적 특징

 

먼저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부터 보자. 민주주의는 인민의 지배이다. 고대에는 가난한 자들의 지배나 하층계급에 의한 지배로 인식되었다. 민주주의의 원형은 알다시피 아테네이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보통 직접 민주주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마넹은 ≪선거는 민주적인가≫[2]버나드 마넹, ≪선거는 민주적인가≫, 곽준혁 역, 후마니타스, 2004.에서 달리 분석한다. 이 부분은 직접 인용해 보자.

 

오늘날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를 구별하면서, 보통 후자의 경우 민회가 모든 중요한 정치권력을 행사했다고 상상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사용된 제도를 면밀히 분석해 보면 이러한 상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정관을 제쳐놓고도, 민회가 아닌 다른 세 가지의 제도, 즉 평의회, 법정, 그리고 노모테타이(입법 위원회)가 중요한 정치적 기능들을 수행했다. 시민 법정과 평의회는 특히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이 두 기관은 아테네 민주정의 역사를 통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법정의 어떤 권력은 소위 국가의 최고 권력에 해당하는 것으로, 바로 민회의 결정 사항을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다.[3]같은 책, p. 41.

 

이렇게 볼 때 아테네 민주정도 근본적으로 대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마넹은 아테네 민주정의 특징을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에 있다고 한다. 즉 아테네 민주정은 행정관을 선거에 의해서가 아니라 추첨에 의해 선출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추첨은 민주적이고 선거는 과두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아테네 민주정의 특징으로 추첨제를 든다. 하지만 마넹이 논증했듯이 추첨이 물론 민주적 성격이 선거보다 강하다고 하더라도 아테네에서는 추첨뿐만 아니라 선거로도 공직자를 뽑았다. 최고위직 장군은 1년이라는 임기 제한도 없었으며, 추첨이 아닌 선거를 통해 뽑았다. 45년 동안이나 장군직을 수행한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아테네 민주정의 민주주의적 특성은 직접 민주주의적인 것도 아니고 추첨이라는 민주적 방식도 아니다.

 

그렇다면 아테네 민주정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 번 더 마넹의 책을 인용해 보자.

 

행정관은 언제나 민회와 시민 법정의 감시를 받았다. 임기가 끝나면 결산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으며, 임기 중에도 시민들이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고 직무 정지를 요구할 수 있었다. 행정관에 대한 신임을 묻는 것은 최고 회의의 필수 안건이었다. 시민이면 누구나 (추첨으로 임명되었건 선거를 통해 임명되었건 상관없이) 행정관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제안할 수 있었다.[4]같은 책, p. 28.

 

일반적으로 (선거로 선출되었건 추첨을 통해 뽑혔건) 행정관은 주요한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관리자이고 집행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들이 민회의 의제를 준비하고, 소송에 앞서 예비심사를 하고, 법정을 소집하고 주관하며, 민회와 법정에서 내려진 결정을 시행했다 하더라도, 행정관에게는 결정적인 권력이 없었다. 그들은 중요한 정치적 선택을 내리지 않았다. 중요한 정치적 선택을 내리는 권한은 민회와 법정에 속한 것이었다. 이 점에서 볼 때 근대 정치적 대표와의 차이는 현저하다.[5]같은 책, p. 31.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아테네 민주정의 근본적인 특징은 대표의 성격에 있었다. 즉 대의적 성격을 갖고 있더라도 그 성격이 자유 위임이 아니라 기속 위임 또는 명령적 위임이다. 맑스식으로 표현하면 언제나 즉각적으로 소환 가능한 대표이다. 다시 말해서 선출 공직자가 재량적 대표라기보다는 선출자가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민의 대행인에 가까운 대의 제도이다.

 

 

4. 민주주의의 자유주의와의 결합과 선거 제도로의 축소

 

근대에 들어와 민주주의가 부활하지만, 이는 자유주의와의 결합과 타협의 과정이었다. 자유주의의 자유와 권리는 사유 재산권을 말한다. 근대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민주주의자라 평가받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기까지 했다. 봉건제와 절대 왕정을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한 자유주의 정부는 일반적으로 참정권을 제한했다. 영국은 소수의 인구만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제헌 의회 역시 활동적인 시민과 수동적인 시민을 구분했는데, 투표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활동적인 시민만이 가지고 있었다. 미국 헌법은 이러한 결정을 각각의 주에서 내리도록 했다. 선출된 대표는 선출하는 사람과는 사회적으로 다른, 탁월한 시민이며 또 그런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분명한 의식 속에서 근대 정부는 제도화되었다. 이 탁월한 시민은 재산, 재능, 덕성이 기준이었는데 이는 결국 재산을 소유한 시민, 즉 부르주아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재산이 있어야 재능과 덕성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를 거치면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노동 운동의 성장과 노동자들의 참정권 운동의 발흥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묘수는 자유 위임[6]자유 위임이란 대표자가 어느 누구에도 기속되지 않는다는 원리를 말한다. 즉 대표자는 국민 전체, 선거인 집단, 선거구 그리고 정당과 교섭 단체 … Continue reading에서 나왔다. 사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원리상 결합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사유 재산의 권리를 무제한 보장하는 논리이고 민주주의는 노동자와 인민의 이익을 대행하는 원리이다. 따라서 이 둘은 모순적이다. 그런데 20세 초에 들어 이 둘이 결합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성립하게 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은 자유주의의 내용과 민주주의 형식의 결합이다. 즉, 나(자유주의)는 실질적 통제권을 갖고, 네(민주주의)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매개하는 것이 자유 위임 대의제이다.

 

 

5. 자유 위임 대의제의 특징

 

첫째, 정치적 주체의 이원성: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

자유 위임 대의제는 치자(대표하는 자)와 피치자(대표되는 자)의 동일성을 부인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이다. 즉 자기 지배(자치)의 원리가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자유 위임 대의제로 나타나면서 민주주의는 치자의 선출 방식으로 축소된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원리적으로 구현한 정책 결정권과 기관 구성권은 분리되어 유권자는 선거를 통한 기관 구성권만을 제한적으로 갖고 정책 결정권은 선출된 대표에게 주어진다. 이는 인민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대표에 의한 통치이다. 이런 정치적 주체의 이원성은 근대 자유 위임 대의제의 이중적 성격을 나타낸다. 이중적 성격이란 형식적 민주정과 내용적 귀족정 내지 과두정이다. 즉 자유 위임 대의제는 명망가에 의한 통치 또는 지배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말한다.

 

둘째, 선거에 의한 대표자의 선출

선거는 대표자의 행위를 대표되는 자(인민)의 행위로 간주하는 결정적 근거로 작용한다. 하지만 마넹은 선거란 유권자가 (공약 등을 매개로 하여) 선출되는 대표자에게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지시 사항을 전달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다수의 표를 획득하는 대표자의 선출에 관한 동의를 표시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보통 선거와 직선제는 대표자 선출의 민주적 방식, 도구적 민주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의나 민심이 직접 표출되거나 입법과 정치적 결정에 바로 반영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투표는 동의의 표현이지 정치적 의사의 구체적 표현은 아니다. 선거 제도 자체가 대표자가 민주적이라는 것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대표자가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을 때조차도 자유 위임 대의제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통제 수단의 결여

자유 위임 대의제에서는 선거가 대표자를 통제하는 유일한 절차이므로 그 선출에 의해 위임된 대표성이 계속 확보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될 수 없다. 이는 결국 정책 의사 결정에 있어서 인민 통제권의 배제이다. 즉 명령적 위임의 배제이다. 이런 국정에 대한 인민 통제권의 배제는 대표와 인민의 괴리를 더욱 크게 만들며, 인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혐오하는 의식을 만들어 내게 한다.

 

이러한 자유 위임 대의제의 한계가 바로 포퓰리즘 발흥의 원인이며, 우리가 ‘촛불’을 들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다.

 

 

6. 자유 위임을 명령적 위임으로

 

자유 위임 대의제는 자본의 정치 지배 체제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와 함께 자유 위임 대의제도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소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는 2000년경부터 그 구조적 모순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정치적으로도 우익 포퓰리즘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로 노동자 인민은 고통이 날로 심화하는데 정치권은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모두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어 인민의 고통을 멀리했다. 서구에서는 정치권과 인민의 괴리를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파고들었다면, 한국에서는 인민이 직접 광장에 나가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도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로는 국민소환제, 국민발의, 국민투표 등이 있다. 한국 지자체는 형식적이나마 국민소환제가 법제화되어 있지만, 국회의원을 비롯한 중앙 부처는 소환제가 없다. 국회의원 소환제가 발의되기도 하였지만, 형식적 논의에 그치고 있다.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의회 민주주의 자체에 있다.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민주주의의 근본인 인민에 의한 지배가 훼손된 것이 민주주의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근본인 인민에 의한 인민의 지배를 복원해야 한다. 그 길은 명령적 위임제 내지 기속 위임제를 전면적으로 실제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기속 위임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헌법부터 개정 내지 새로이 제정해야 한다. 헌법 개정 내지 제정의 모든 논의는 자유 위임제 폐지와 명령적 위임제의 채택으로 모아져야 한다. 자유 위임의 헌법적 근거는 제46조 2항[7]헌법 제46조 ②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이다. 국회의원은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다고 되어 있다. 국가이익을 판단하는 기준은 국회의원 개인의 양심에 따른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의지나 의사가 아니다. 헌법 제46조 2항은 폐지되어야 하고, 나아가 헌법 자체가 기속 위임제에 기초한 새로운 헌법으로 전면 개정 내지 제정되어야 한다.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 함규진 역, 와이즈베리, 2018.
2 버나드 마넹, ≪선거는 민주적인가≫, 곽준혁 역, 후마니타스, 2004.
3 같은 책, p. 41.
4 같은 책, p. 28.
5 같은 책, p. 31.
6 자유 위임이란 대표자가 어느 누구에도 기속되지 않는다는 원리를 말한다. 즉 대표자는 국민 전체, 선거인 집단, 선거구 그리고 정당과 교섭 단체 등에 대하여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한국은 헌법에 명시돼 있지 않지만 제46조 제2항으로 자유 위임의 헌법적 근거를 삼고 있다.
7 헌법 제46조 ②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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