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세분석 방법론의 재정립을 위하여

문영찬 │ 연구위원장

 

 

1. 정세와 정세분석

2021년 현재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가승을 부리는 가운데 경제공황 국면을 지나고 있다. 또한 경제공황 국면 속에서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를 둘러싼 대립이 격화하고 있는데, 이는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이라는 점에서 세계적 차원에서 변혁운동이 재형성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은 아직까지 20세기 사회주의 진영 붕괴의 영향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대중들의 산발적인 투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변혁의 전망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의식적인 투쟁, 전위적인 투쟁은 매우 드물거나 미약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전위적 운동, 목적의식적 운동을 재건하는 것은 현재의 세계사적 반동기가 극복될 수 있는 주요한 조건의 하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의식성은 객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목적성 또한 객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할 때 과학적 전망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즉, 노동자계급의 목적의식적 운동은 객관적 실제에서 출발해야 하며, 또한 그러한 실제를 정확히 분석, 종합하여 운동의 목표, 전망, 근거, 동력, 방법론을 산출해야 한다.

변혁적 운동, 목적의식적 운동을 위한 객관적 실제의 파악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첫째는 한국 자본주의가 어느 단계를 경과하고 있는가, 그 단계에서 계급적 지형, 계급대립구도는 어떠한가가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노동자계급의 변혁 전략이 성립할 수 있다. 둘째는 이와 같은 전략을 염두에 두면서도, 지금의 정세를 변화시켜나가는 전술을 구사함을 통하여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정치를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계급의 정치행위로서 전술이 구사되고 그 성과가 축적될 때만, 노동자계급은 경제적 의미의 계급, 즉자적 계급을 넘어서서, 대자적 계급, 정치적 의미의 계급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정치의 출발점은 객관적 실제, 즉,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쏘련 붕괴 뒤에 변혁적 운동이 퇴조하고 개량주의적 흐름, 사회민주주의적 흐름, 의회주의적 흐름이 득세하여 운동에서 과학이 실종되면서, 정세분석에서도 과학적인 모습은 찾기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각 정치 세력의 입장을 나열하는 것, 타성적인 동향분석이 과학적인 정세분석을 대체하였다. 의회주의적 활동을 위해서는 이러한 동향분석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계급투쟁의 무기로서 정세분석,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전술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 정세분석을 위하여, 지금 시기에 맞는 과학적인 정세분석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세는 흔히 계급역관계라 불린다. 즉, 정세는 대립하는 계급 중에서 어느 계급이 힘에 있어서 우위에 있는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세의 현상을 가리키기는 하지만, 정세는 이와 같이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이는 정세가 과연 무엇인가, 정세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하여 먼저 정세가 무엇인가에 대한 레닌의 인식을 살펴보자. “프롤레타리아 전술의 근본적 과제는, 맑스에 의해 그의 유물론적-변증법적인 세계관의 모든 원리에 부합되게 정의되었다. 주어진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모든 계급들 간의 관계들의 총합에 대한 객관적 고려만이,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사회가 도달한 발전의 객관적인 단계와 그 사회와 다른 사회들 간의 관계들에 대한 고려만이 선진적 계급의 올바른 전술을 위한 기초로서 봉사할 수 있다.”[1]Lenin, Karl Marx, ≪Selected Works in Three Volumes 1≫, Progress Publishers, Moscow, p. 40. 맑스주의의 기본 원리를 정리한 이 글에서, 레닌은 노동자계급의 전술은 일정한 사회의 “모든 계급들 간의 관계들의 총합”에 기초해아만 한다고 했다. 이는 전술의 기초가 되는 정세의 본질이 그 사회의 모든 계급들의 상호관계의 총합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즉, 정세는 단순히 어느 계급이 힘에 있어서 우위에 있는가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국가를 포함하여 모든 계급들의 상호관계, 그 내적인 연관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정세에 대한 규정은 단순한 동향분석 혹은 각 정치세력들의 입장의 나열과는 대비되는 것이다. 동향분석에는 각 세력에 대한 분석은 들어 있지만 각 계급세력들의 상호관계, 그 내적인 연관성에 대한 분석은 결여되어 있거나 전면적으로 분석되지 못한다. 단순한 동향분석, 각 정치세력의 상태와 입장의 나열과 계급세력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분석은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즉 각 계급세력들의 상호 관계의 총체에 대한 분석, 그 내적인 연관에 대한 분석은 정세에 대한 현상적 접근을 넘어서서 정세의 본질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며, 정세분석의 수준을 변증법적 고찰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1980년대 정세분석 논쟁에서 <혁명의 불꽃> 그룹은 정세분석의 틀을 다음과 같이 제기했었다. “일반적으로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이라는 경제적 동인만으로 사회의 제반 모든 운동을 설명하려고 하는 시도를 우리는 경제결정론이라 부르며, …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정세분석에 있어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경제적 동인에 대한 고찰 이외에 계급투쟁의 양 진영에 대한 분석이 필요해지는 것이다.”[2]조희연 편, ≪한국사회구성체논쟁(II)≫, 죽산, p. 587. <혁명의 불꽃>은 이러한 인식 하에 “객관적 정세 파악의 무기로서 ① 재생산구조와 그 동향과 민중의 빈곤화 심화정도, ② 지배통치체제의 안정화 여부, ③ 민중의 행동성 정도라는 세 가지 분석틀을 제시”[3]앞의 책, p. 540.했다. <혁명의 불꽃>이 이러한 정세분석틀을 제기한 것은 매우 도식적인 것이다. 당시 이 분석 틀은 정세분석 논쟁 과정에서, 레닌이 제기한 혁명적 정세를 파악하는 지표를 일반적 정세분석 틀로 잘못 제기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혁명의 불꽃>의 위 정세분석 틀은, 동향분석으로는 유용할 수 있지만, 각 계급세력의 상호 관계, 그 내적인 연관이라는 정세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즉, <혁명의 불꽃>은 사적 유물론에 따라 토대의 위기 분석 혹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분석하고서는, 지배계급과 민중이라는 계급투쟁의 양 진영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으로 머물고, 그 계급세력들의 상호 관계에는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각 계급세력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 계급세력의 상호 관계가 정세에서 어떠한 쟁점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각 쟁점들의 상호 관계는 무엇인가, 여러 쟁점 중에서 핵심 고리는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수준에 이를 때만 과학적인 정세분석에 접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혁명의 불꽃>의 정세분석 틀의 오류는, 정세를 객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유물론적인 접근을 했지만, 그 객관성 내부의 상호 관계라는 변증법적 인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아예 정세를 객관적인 실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주체 역량을 중심으로 정세를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NL진영의 한 논자는 1980년대 정세분석 논쟁에서 “주체 역량을 중심으로 정세분석을 하여야 정확할 수 있다. … 정세분석의 기본은 주체 역량에 대한 평가”[4]앞의 책, pp. 522-525.라고 파악한 바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단지 1980년대 정세분석 논쟁에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며, 지금도 NL진영 상당수가 공유하고 있는 정세인식 틀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정세를 수세기-대치기-공세기(러시아 혁명 분석의 경우)로 파악하거나 준비기-결정적 시기(민족해방운동의 경우)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정세를 객관 정세와 주체 정세로 나누고 있는데, 객관 정세의 경우 동향분석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각 계급세력, 정체세력의 입장의 나열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정세가 무엇인지에 대한 유물론적 인식의 결여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에 따라 정세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정세는 각 계급세력의 의지와 무관하게 관철되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인식, 유물론적인 인식이 없고, 정세는 단지 주체에 의해 추동될 수 있다는 주관주의적인 인식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 맑스주의 운동은 정세에 대해 이러한 주관주의적 인식을 넘어서서 정세는 객관적인 것임을 확립해 왔었다. 먼저 엥겔스의 언급부터 들어보자. “공산주의자들은 혁명들이 의도적으로 또 자의적으로 일으켜지는 것이 아니며, 혁명들이란 언제 어디서나 개별적인 당파들이나 계급 전체의 의지 및 지도에는 전혀 의존하지 않는 정세의 필연적인 결과들이었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5]엥겔스, 공산주의의 원칙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 박종철 출판사, 1994, p. 331. 레닌은 “개별 그룹이나 정당뿐만 아니라 개별 계급의 의지와도 상관없는 이러한 객관적인 변화가 없다면 혁명은 불가능하다.”[6]레닌, 조희연 편, ≪한국사회구성체논쟁(II)≫, 죽산, p. 561.에서 재인용고 하였다. 위의 엥겔스의 언급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세는 “개별적인 당파들이나 계급 전체의 의지 및 지도에는 전혀 의존하지 않는” 객관적인 것이며 자연 필연성으로 관철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레닌의 언급 또한 정세는 “개별 그룹이나 정당뿐만 아니라 개별 계급의 의지와도 상관없는” 객관적인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정세가 이렇게 주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필연성으로 관철되는 객관적 실재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정세 분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정세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주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면, 단지 주체 역량의 준비 정도만 타산하면 될 것이지만, 그럴 경우 주체는 맹동주의적 실천을 벗어날 수 없고 그러한 실천은 참담한 실패로 귀결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주체는 객관을 변혁하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주체는 객관에 의해 규정된다는 유물론적 인식이 결여된 것이다. 그리하여 적과 아 측의 상호 관계, 그리고 그 상호 관계를 규정하는 사적 유물론적인 접근, 경제적 토대의 위기 여부 등의 문제가 이들 주관주의적 정세분석에서는 사실상 사상된다. 그런 점에서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정세분석은 유물론이 아니며, 단지 주관적 관념론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과학적인 정세분석,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정세분석이 필요한 것은, 노동자계급의 변혁적인 전술은 정세에 조응할 때만 성공 가능성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즉, 주체의 실천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실천은 객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할 때만 현실의 실제적인 변화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객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 정세분석은 과학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 과학성의 근본 전제는 정세를 주체, 주관의 의지와는 독립된 객관적 실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2. 당면 변혁의 성격과 정세분석

위와 같은 정세분석에 있어서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접근, 철학적 접근은 정세와 정세분석이 과연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정세분석에 있어서 또 하나의 대전제는 지금 시기 당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변혁의 성격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당면 변혁의 성격이 정세분석의 대전제가 되는 이유는, 변혁의 성격이 어떠한가에 따라 한국 사회의 계급대립구도가 달라지며, 그에 따라 계급들의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기준과 지표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 1980년대 한국 사회는 미제국주의를 축출하고 파시즘 권력을 타도하는 민족민주변혁을 당면 변혁으로 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정세분석의 핵심적 지표는 대중들이 파시즘 권력의 지배로부터 이탈하고 그에 저항하는 대중의 행동의 증대 여부였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사적 유물론적 차원에서 경제적 재생산과정의 위기 여부와, 그에 따른 대중들의 경제적 고통 및 경제 투쟁의 증대 여부가 정치적 대립 투쟁의 기초로서 파악되었다. 여기서 파시즘에 대한 대중들의 이탈과 저항이라는 기준은 21세기 지금의 현실에서는 적절성을 상실했는데, 왜냐하면 지금의 국가권력은 군사파시즘이 아니며, 자유민주주의적인 부르주아 정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21세기 지금의 한국 사회의 계급대립구도가 1980년대와 달라졌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따라서 정세분석의 기본적 지표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 힘이라는 반동적 세력과 민주당이라는 자유주의 세력이 연합한 보수대연합 질서 속에서 양 당이 번갈아가면서 집권하고 있는 지금의 정치 구도는 지금 상황에 맞는 정세분석틀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1980년대 민족민주변혁이 좌절되고 군사파시즘 권력이 자유민주주의적 개조를 거친 결과, 그리고 이후 30여년에 걸쳐 한국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결과, 당면 변혁의 성격은 민주주의적 과제를 포함하는 사회주의 변혁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한국 사회 내부의 계급대립구도는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다. 1980년대의 계급대립구도는, 한편으로 군사파시즘 세력이 지배세력으로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 권력을 혁명적으로 타도하려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세력이 대립하고 있었고, 그 중간에 군사파시즘과 대립하면서도 권력의 분점을 요구하면서 군사파시즘과 타협하려는 자유주의 세력이 존재하는 3정립의 구도였다.

그러나 21세기 지금의 계급대립구도는 과거와 판이하다. 먼저 파시즘의 후계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은 번갈아 집권하면서 예속독점자본의 좌익과 우익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들 세력 간의 대립과 투쟁은 지배세력 내의 대립과 투쟁에 불과하다. 이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질서를 극복할 때만 해방될 수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단결은 계급을 폐지하는 사회주의 변혁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간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간계급의 수와 비중은 과거에 비해 현격히 줄어들었는데, 소부르주아 하층과 반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자계급과의 동맹을 통해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실현하려 하며, 소부르주아 상층은 자본가계급과의 동맹을 통해 자신들의 계급적 전망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의 계급대립구도는 과거의 3정립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대립 중심의 2정립으로 이행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발전의 지체, 그리고 과거 정치질서의 유산으로 인해, 소부르주아 세력은 정치적 동요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노동자계급 내부에 도입하고 노동자계급을 교란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마치 또 하나의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소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발전 자체에 의해 그 존립 기반이 사라지고 있고, 또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대오의 발전에 의해 점차 정치적으로도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 사회 내부의 계급대립의 외적 조건으로서 미제국주의에 의한 신식민지 지배가 관철되고 있는데, 이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미제로부터의 민족적 해방, 분단의 극복과 민족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면 변혁의 성격이 과거의 민족민주변혁에서 민족민주적 과제를 포함한 사회주의 변혁으로 전환되었다는 현실은, 정세분석의 전제가 되는 계급적 구도를 변경시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자본과 노동의 모순은 기본 모순일 뿐만 아니라 주요 모순으로 발전했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여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격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자본가계급의 양대 분파가 자본과 노동의 모순의 격화에 대응하여 보수대연합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소상인 등 중간계급의 분해가 격심해지고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세분석의 초점은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노동자 대중의 반자본주의 의식으로 발전하고 있는가, 자본가 정권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대립 투쟁이 발전하고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대중의 의식이, 그들의 투쟁이, 자본주의 체제 내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다면, 노동자들의 투쟁이 자본가 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상승하고 있지 않다면, 자본가계급의 지배질서는 안정되어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또한 전략적으로 노동자계급의 동맹군으로 편제되는 중소농과 소상인 등 소부르주아 하층과 반프롤레타리아트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고통스럽게 몰락하고 있는 계급인데, 이들의 투쟁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으며, 또 이들이 노동자계급의 입장으로 어느 정도 다가오는가도 정세분석의 주요 항목으로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동맹의 설정은 전략의 문제이지만, 동맹의 현실화는 전술의 영역, 정세분석의 영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당면 변혁은 단순한 사회주의 변혁이 아니라 민족민주적 과제를 포함한 사회주의 변혁이다. 그에 따라 대중들의 민족민주적 과제를 위한 투쟁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가도 2차적이지만 정세분석의 주요 항목이 된다. 미군 철수, 한반도 평화, 분단의 극복과 민족통일, 국가보안법 폐지 등 민족민주적 과제에는 사회주의 변혁에는 동의하지 않는 세력들도 참여할 수 있다. 소부르주아 상층을 포함하여 양심적 세력 등이 민족민주적 투쟁에 참여할 수 있으며, 노동자계급은 이들의 투쟁을 추동하고 이들과 전략적 동맹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당면 변혁이 중층적 과제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계급은 동맹의 문제에 있어서도 중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 그 중에서 주요한 동맹은 사회주의 변혁에 동의하는 동맹세력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정세분석의 초점이 변화하고 또 정세분석의 대상이 중층화되는 것은 당면 변혁의 성격이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정세분석틀 중에서 정치적 투쟁, 정치적 전선의 발전의 영역에서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1980년대는 단순히 파시즘 권력에 대한 대중의 투쟁이 얼마나 발전하는가가 정세분석의 초점이었다면, 지금은 정치적 대립 투쟁의 발전에 대한 분석에서 초점이 이동하고 대상이 중층화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런데 1980년대의 정세분석 틀 중에서 지금도 변화하지 않는 것은, 사적 유물론에 따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문제, 경제적 재생산과정의 위기 여부와, 그에 기초한 대중의 경제적 고통과 경제적 대립 투쟁의 발전 여부이다. 이 두 가지 항목은 1980년대와 지금의 한국 자본주의가 모두 자본주의 사회로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취득의 사적 성격간의 모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관철되는 사회구성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에 따른 대중의 경제적 고통과 경제 투쟁은 대중의 활동성을 제고시키고 자본가 정권에 맞서는 정치 투쟁의 기초로서 작용한다는 점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당면 변혁의 성격의 변화라는 전략의 변화에 의해 정세분석의 기준이 변화하는 것은, 전술은 전략에 종속되어야 하며 또 전술은 정세에 조응해야 하고, 정세는 전술 수립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정세는 계급들의 상호 관계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인데, 그 상호 관계의 구도 자체는 전략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면 변혁이 사회주의 변혁을 주된 과제로 하면서도 민족민주적 과제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당면 변혁의 중층적 성격은 정세분석의 틀 또한 이전과 달리 중층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즉, 당면 변혁의 중층적 성격은 계급대립구도와 계급투쟁에 의해 성립, 발전하는 전선 또한 중층적으로 성립,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 두 가지 전선의 상호 관계가 무엇인가가 지금의 정세분석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3. 전선의 중층적 성격과 정세분석

당면 변혁의 성격이 변화하고 계급대립구도가 변화한 결과, 현 정세에서 전선은 중층적 성격을 가진다. 즉, 한편으로는 과거 정치질서의 유산으로서 민족민주적 과제를 수행하는 민족민주전선과, 다른 한편으로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현상하는 반자본주의전선이 현 정세에서 중층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전위 부대의 부재로 인해 그러한 성격의 전선의 형성이 미약하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자체가 민족민주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의 형성을 추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두 개의 전선으로 나타나는 한국 사회의 운동에서, 두 전선 상호 간의 관계에 대해 정확히 성격 규정되지 못한다면, 운동의 발전이 아니라 운동의 교란, 후퇴가 조장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민족민주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의 상호 관계에 대한 규명이 정세분석 방법론 차원에서 필요하게 된다.

한국 사회의 민족민주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의 관계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양 전선의 통일성의 문제이다. 그런데 민족민주과제는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해결 가능한 과제임에 반해, 반자본주의전선은 자본주의를 규탄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것인데, 어떻게 두 과제, 두 전선이 통일되어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 논리적 모순처럼 보이는 이 현상은 실제로는 물질적 토대를 갖고 있다. 즉,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이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을 조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 자체에서 민족민주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의 통일성이 주어진다.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이 미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성을 조건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조건에서 미제국주의에 대한 반대, 반제국주의전선의 형성과 발전은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타격이 되며, 한국의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반대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역으로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반대 투쟁은 제국주의 질서를 흔들고 균열시키는 것으로 작용한다.

그러면 민주적 과제, 민주주의전선은 어떠한가? 파쇼적인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민주주의 투쟁 전선의 형성과 발전은 한국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활동 공간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한국 자본주의 질서를 균열시키고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고무한다. 또 역으로 한국의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 자본주의 질서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동 대중의 반자본주의 의식의 성장, 사회주의 세력의 성장은 파쇼적인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키고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의 반동성을 극복하고 민주주의의 양적, 질적인 확장을 이루어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이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성을 조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 자체가 민족민주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의 통일성을 기초지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민족민주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의 통일성을 기초로 두 전선의 상호 작용의 측면을 살펴보자. 한국 사회는 분단질서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사상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부정되고 있는 사회이다. 이북에 대해 실상을 알려고 접근하는 것 자체가 봉쇄되어 있고 사회주의 사상과 이론을 학습했다는 것 자체가 언제라도 범죄가 되는 것이 가능한 사회이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세력의 정치적 정립과 발전은 현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이미 기본 모순일 뿐만 아니라 주요 모순이 될 정도로 자본주의 모순이 고도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표현하는 사회주의 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 등 민주주의적 과제의 수행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을 고무하고 노동자계급의 전위 세력의 성립과 발전을 촉진함을 통하여 노동자 대중의 반자본주의 의식의 성장을 초래할 것이다. 역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에 있어서 민주주의 일반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또 반통일악법이라는 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극복, 노동자계급의 해방, 사회주의 세력의 정치적 자유라는 점에서 접근할 때, 즉, 민주주의적 과제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낼 때, 민주주의전선은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미제국주의에 맞서는 반제국주의전선의 발전은 한국의 자본가계급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반자본주의전선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그런데 반제국주의전선의 발전은, 미제국주의의 신식민지적 지배가 한국 사회 내의 계급대립구조를 통해 관철된다는 것을 드러낼 때에만 힘을 얻을 수 있다. 즉, 미제국주의의 신식민지적 지배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낼 때, 신식민지 질서에 대해 민족주의적 접근을 넘어서서 사회주의적으로 해석하고 계급적으로 접근할 때, 반제국주의전선은 일취월장할 것이다. 또한 이는 역으로 노동자 대중의 정치의식을 제고함을 통하여, 사회주의 변혁을 수행할 토대가 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역량을 발전하게 할 것이다.

정세분석에 있어서 1980년대와 달리 지금은 민족민주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 간의 상호작용을 정밀하게 추적할 때만 그 과학성이 담보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자본가계급은 이미 보수화되고 반동화되어 국가보안법의 폐지 등 민주주의적 과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 이는 더 이상의 민주주의의 발전은 오직 노동자계급과 민중 주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본가계급의 반동성이 민주주의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민족적 과제를 보면, 미군철수, 한반도 평화, 분단의 극복과 민족의 통일 등에 대해 자본가계급이 손을 놓고 있거나 반대한다는 점에서, 민족적 과제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즉, 한국 자본가계급의 반동성으로 인해 반제국주의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의 거리가 매우 좁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민족민주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는 것은 두 전선의 통일성과 긴밀한 상호연관, 내적인 연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두 전선이 이렇게 통일되어 있지만, 두 전선 중 어느 전선이 일차적인가가 규명되지 않는다면 투쟁에서 많은 혼란이 불가피하다. 이 점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초하는 당면 변혁의 성격에서 단서가 주어진다. 즉, 한국 사회의 당면 변혁이 민족민주적 과제를 포함하는 사회주의 변혁이라는 점에서, 또한 한국 자본주의 발전이 고도화한 결과,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기본 모순일 뿐만 아니라 이미 주요 모순으로 전화하고 있다는 현실 자체가 두 전선 중 반자본주의전선이 일차적 전선임을 가리킨다.

그러면 여기서 반자본주의전선이 일차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좀 더 고찰해 보자. 반자본주의전선과 민족민주전선의 관계에서 반자본주의전선이 일차적이라는 것은, 민족민주적 과제에 대해 사회주의의 빛을 쪼일 때만, 그 과제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낼 때만, 그 과제를 노동자계급이 주도할 때만, 민족민주전선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반자본주의전선의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그 발전이 지체된다면, 민족민주전선은 소부르주아 세력의 교란과 자본가계급의 비토에 직면하여 힘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선진 부위는 대중적인 반자본주의전선의 형성을 제1의 전술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과거의 정세분석 틀과 중층적 전선의 관계의 문제를 정리해 보자. 민족민주전선과 반자본주의 전선의 관계에 대한 분석은, 과거 정세분석의 틀이었던 경제적 재생산과정에서 위기의 심화 여부, 대중의 경제적 고통과 경제 투쟁의 증대 여부, 정치권력에 대한 정치 투쟁의 증대 여부 중에서 정치 투쟁의 영역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정치 투쟁의 단순한 양적인 증대 여부만 고찰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영역에서 민족민주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이 어떻게 성립, 발전하고 상호작용하는가가 정세분석의 주요한 항목으로 제기되는 것이다. 즉, 정치적 대립 투쟁의 증대라는 양적 성장만이 아니라, 그러한 정치 투쟁의 형성과 발전의 질적 측면, 정치 투쟁 내부의 두 계기, 두 전선의 상호관계라는 측면을 함께 보아야 하며, 따라서 정치 투쟁에 대해 양과 질을 통일시켜 분석할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실 전선의 문제를 정세분석의 주요 항목으로 포함하는 것은, 정세분석이 도식화할 위험을 회피하고 정세의 역동성을 정확히 반영하는 정세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면 변혁의 중층적 성격으로 인한 정세분석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전선 개념, 전선들의 상호 관계라는 범주의 도입으로 인해 정세의 내적 연관을 분명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외에 제국주의 질서의 변화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정세에 대한 분석, 또한 분단 질서를 조건으로 하는 미제국주의의 신식민지 지배가 관철되는 기제에 대한 분석, 그리고 그 결과로서 한(조선)반도 정세, 또한 경제적 토대, 재생산과정의 위기 분석 등이 어떻게 혁신되어야 하는가도 정세분석 방법론의 재정립을 위하여 필요한 항목이다.

 

4. 국제 정세 분석과 일국적 정세분석의 관계

(분단질서와 정세분석)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의 제1의 대원칙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형성과 발전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일국 내의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의 질적 수준을 제고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사적 반동기라는 현재 상황에서 세계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은 미약한 실정이다.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이론적 차원을 넘어서서 정세적으로, 정치적, 실천적으로 일국 내의 노동자계급의 운동에 미치는 영향은 미약하다. 그럼에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이론적 차원을 넘어, 실천적, 정치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조응하는 일국 내의 변혁운동의 발전을 모색하는 것은 21세기 새롭게 재생하는 운동의 발전을 위한 근본적 전제이다.

그런데 국제 정세에 대한 분석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한 접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국제 정세의 다면적 측면 속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그러한 모순의 일국 내 정세에 대한 영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쏘련 등 20세기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진 후 현재의 국제 질서는 제국주의 질서 일변도이다. 극소수의 사회주의 국가가 사회주의의 기치를 고수하고 분투하고 있지만 국제 정세의 기본 축은 제국주의의 압도적 헤게모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 정세를 분석하는 지표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분석에 기초하여 제기되었던 제국주의의 4대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간의 모순, 제국주의 내부의 자본과 노동의 모순, 제국주의와 식민지(지금은 신식민지) 간의 모순,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모순이 그것이다.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모순은 지금 일부 사회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기치를 고수하면서 분투하는 상황에서 제국주의의 압살 책동에 맞서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일정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들 국가의 사회주의 기치의 고수는 21세기를 새롭게 여는 사회주의 혁명의 발발에 일정하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 내의 자본과 노동의 모순은 제국주의의 부패성이 극대화되는 가운데 심화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보이는 노동자와 민중들의 진출은, 제국주의 국가 내의 자본과 노동의 모순이 약화되는 추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일정한 계기가 주어지면 모순의 폭발로까지 나아갈 것이다.

그런데 변혁의 전망의 문제와 관련하여 제국주의 시대 4대 모순 중에서 지금 가장 화두가 되는 것은 제국주의 간의 대립의 문제이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격심한 헤게모니 경쟁은, 제국주의 질서의 균열이라는 점에서 세계적 차원에서 변혁운동이 새롭게 재형성되고 발전할 수 있는 공간, 여지, 틈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의 중국과 미국 간의 격심한 대립은 1차 대전 당시 제국주의 간의 격렬한 대립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1차 대전 당시 제국주의 국가 간의 모순은 격심해져서 그 모순을 전쟁을 통해 해결하려 했고, 그 결과 러시아 10월 혁명이 발발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국제 정세 분석의 초점은 제국주의 질서의 변동이며, 그중에서도 제국주의 간의 모순의 심화 정도와 양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동아시아 정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한(조선)반도 정세, 한국 내의 정세에 대한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모순은, 21세기 현재 제국주의와 신식민지 민중과의 대립으로 현상하고 있다. 또한 국제적으로 이란, 베네수엘라 등 약소국가, 반제국주의 노선의 국가와 제국주의가 대립하는 양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 모순은 세계적 차원에서 반제국주의전선이 어떻게 형성, 발전하고 있는가를 가리키는 것이며, 반제국주의전선의 발전 문제는 국제 정세 분석의 주요 항목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제국주의와 신식민지 민중간의 모순은 한국의 경우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것이며, 이는 제국주의의 신식민지 지배가 일국 내의 모순, 한국 내의 계급대립구조를 통해 어떻게 관철되는가를 드러내는 문제이다. 여기서 제국주의의 신식민지 지배의 기제를 정식화하고 폭로하여 한국 내의 반미, 반제국주의 전선을 형성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국제 정세 분석과 일국 내의 정세분석이 교차하게 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국의 경우 특수한 문제에 부딪힌다. 일반적인 다른 약소국가, 신식민지 국가의 경우, 위의 분석과 항목으로 국제 정세와 국내 정세의 관계가 해명되지만, 한국의 경우 분단국가라는 점, 한(조선)반도의 분단질서라는 특수한 성격으로 인해 국제 정세가 굴절되어 일국 내 정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조선)반도의 분단 질서는 중국과 미국의 대립,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국가의 대립, 제국주의와 신식민지 민중 간의 대립, 자본주의 국가 내의 자본과 노동이 모순이라는 제국주의 시대의 핵심적 모순과 맞물려 있다. 즉, 한(조선)반도는 세계 다른 어느 곳보다 제국주의 시대의 모순이 중첩되어 있어서 모순이 폭발할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한(조선)반도의 중첩된 여러 모순들은 하나의 모순이 다른 모순에 영향을 주고 또 역의 영향을 받으면서 모순의 상승작용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첩된 모순 중 어느 모순이 현 정세에서 한(조선)반도의 주요 모순인가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정세분석 차원에서 주요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분단질서는 정세분석 차원에서, 국제 정세가 일국 내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일정하게 굴절되는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첫째, 한(조선)반도의 분단질서는 전쟁 위기를 언제라도 격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하다. 한-미 연합훈련은 그 자체가 전쟁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고, 또 그에 맞서는 이북의 대응으로 한(조선)반도 정세는 쉽게 격화되고는 한다. 따라서 한(조선)반도의 평화의 문제는 미제국주의에 맞서는 남북 민중의 절박한 과제가 되고 있으며, 한(조선)반도 평화를 초점으로 하는 반제국주의전선의 형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둘째, 분단질서로 인한 한국 내의 반공주의가 국제 정세에 대한 파악에 있어 색안경 혹은 프리즘으로 작용하여 국제 정세가 굴절되어 한국 내에 반영되게 한다. 국제 정세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관련되는 현상, 반제국주의전선의 형성과 발전과 관련되는 현상은 한국 내에 거의 반영되지 못하고 의도적으로 사상된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를 악마화하거나, 심지어 중국조차 악마화하는 제국주의적 관점의 프리즘을 통과하거나,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희석화하는 여론 조작의 과정을 통과하여, 국제 정세가 한국 내의 정세에 반영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굴절 현상을 바로잡고 국제 정세가 국내 정세에 정확히 반영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분단질서는 한국 내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발전을 촉진하기보다는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조건으로 작용하여 국제 정세의 일국 내에의 영향을 왜곡시키는 측면이 있다. 분단질서는 근대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였던 민족국가의 수립이 한(조선)반도에서 여전히 제국주의에 의해 좌절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반미, 반제국주의 운동이 형성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는 한편으로 반제 역량의 형성을 의미하지만, 그때의 반제국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관점에서의 반제가 아니라 민족주의 관점에서의 반제라는 한계를 지닌다. 이에 대해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분단과 관련된 현상, 한(조선)반도 정세를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익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며, 또 반미, 반제 운동이 민족주의 관점을 넘어서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의 관점에서 수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5. 정세분석의 지표들에 대하여

레닌은 정세를 “모든 계급들 간의 관계들의 총합”이라고 파악했다. 국가를 포함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관계, 그리고 소부르주아 등 중간계급과 다른 계급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사회,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포함하는 계급들의 상호 관계의 총체가 곧 정세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레닌의 분석은 정세분석에 접근함에 있어서 “총체성”을 견지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은 맑스가 정립한 사적 유물론에 의해 주어진다. 다시 말하면 정세분석에 있어서 총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적 유물론을 정세분석 수준으로 변형하여 구체화해야 하는 것이다.

사적 유물론은 경제적 토대를 한 사회의 기초로 파악하고 그 위에 국가, 이데올로기 등 상부구조가 서는 하나의 사회구성체로 사회를 파악하는 방법론이다. 따라서 정치적 역관계, 정세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는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과학적 엄밀성을 갖추어 분석하는 것이다. 이는 경제적 재생산과정, 즉, 생산, 유통, 소비, 투자 등의 전 과정을 과학적 엄밀성을 갖고 분석하여 정세를 근거지우는 요소들의 내적 연관, 그 토대를 해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의 정세분석 논쟁을 보면 재생산과정의 위기 여부가 정세분석의 하나의 지표로 정당하게 파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실제 내용을 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즉, 재생산과정의 현상적 지표 몇몇을 논한 다음, 재생산과정의 위기의 폭발이 필연적이다, 임박했다 하는 식의 붕괴론적, 파국론적 접근이 상당했다. 1980년대의 정세분석 논쟁에서 <선봉그룹>은 1987년 말 당시의 재생산과정의 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조만간 이러한 위기유발 요인들이 사라질 전망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전국토를 뒤덮고 있는 선거열기에 따른 선거자금 등의 통화증발, 다가올 올림픽 행사의 부담이 힘겹게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 등까지 포함하여 볼 때, 경제구조의 현황은 이미 정상상태를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예상과 달리, 1988년까지 이어진 3저 호황의 결과 한국 자본주의는 위기를 넘기고, 오히려 경제적 위상에서 한 단계 상승하며 이른바 중진국으로 접어드는 길을 걷게 되었다. 위의 <선봉그룹>의 정세분석 문건은, 1987년 말 대통령 선거에 임박하여 제출된 문건인데, 당시 <선봉그룹>은 정세가 혁명적 정세를 향하여 고양되고 있는 고양기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에서 재생산과정의 위기 여부에 대해 과학적 엄밀성을 갖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 정세의 도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생산과정 상의 위기의 폭발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관적 희망을 객관적 현실로 바꿔치기 한 것으로서 정세분석 상의 치명적 오류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세분석의 주요 지표 가운데 하나인 재생산과정 상의 위기에 대해서는 과학적 엄밀성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한국 자본주의의 운동에 대해 맑스주의 경제학이 전면적으로 적용되어 분석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반적 모순의 심화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영역, 유통의 영역, 금융과 재정의 영역, 대외 경제의 영역, 그리고 이들 영역 간의 상호 작용 등에 대해 과학적 엄밀성을 기준으로 한 접근과 분석이 필요하다.

재생산과정 상의 위기여부에 있어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AI) 등으로 대표되는 생산력의 비약,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의 문제이다. AI의 발전은 생산을 자동화하고 무인화하여, 한편으로 생산력을 고도화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를 격감시킬 것이 예상되고 있다. 이는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취득의 사적 성격 간의 모순이라는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극단적으로 심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생산력의 고도화가 생산관계 상에서 어떠한 변화를 불러오는지, 계급투쟁의 진전에 있어서 어떠한 조건으로 작용하는지가 분석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재생산과정 상의 위기 여부와 함께 정세분석의 또 하나의 지표가 되는 것은 대중의 경제적 고통의 증대와 경제 투쟁의 증대 여부이다. 대중의 경제적 투쟁의 증대 여부는 대중의 행동성의 제고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가 되고, 또 경제 투쟁의 진전은 정치 투쟁의 기초로 작동한다. 그런데 경제 투쟁에 있어서도 정치 투쟁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양적 성장만을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투쟁의 질적 성격 또한 파악되어야 한다. 경제 투쟁은 대부분 임금, 근로조건 등 경제적 요구를 갖고 노동조합 차원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 투쟁이 계급투쟁의 하나가 되는 것은 경제 투쟁이 노동자의 단결에 기초한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계급의식이 제고된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경제 투쟁은 노동조합이라는 한계 속에서 전개되는 투쟁이다. 즉, 노동자의 단결, 투쟁이라는 성격과 노동조합의 틀이라는 한계의 통일이 경제 투쟁의 질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 투쟁이 정세분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경제 투쟁 또한 일정한 조건 하에서 정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경제 투쟁은 노동자의 단결과 계급의식의 제고에 기여하는 만큼 정세에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단결과 계급의식의 제고는 곧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적대의 심화를 의미하며, 이는 사회주의 변혁을 당면 변혁으로 하고 반자본주의전선의 형성을 당면 과제로 하는 현 정세의 진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 투쟁은, 그것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요구가 전 계급적 요구로 결집된다면, 그리하여 경제 투쟁의 요구가 정치 투쟁의 요구와 맞닿고 경제 투쟁의 요구와 정치 투쟁의 요구의 거리가 좁혀진다면, 그러한 경제 투쟁은 직접적으로 정세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를 들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노동자계급 전체의 투쟁은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투쟁의 전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이나 노동법 개정 투쟁의 경우, 그것은 노동자계급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또 법의 개정이라는 정치적 요구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경제 투쟁과 정치투쟁이 교차하는 성격을 지니며, 그러한 노동법 개정 투쟁을 대중투쟁으로 조직해 간다면, 그 투쟁은 정세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투쟁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혁명의 근본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라는 점에서 보면,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이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성격은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보면, 계급적 단결과 계급의식의 진전이라는 점에서 경제 투쟁과 정치 투쟁 모두 정세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정치 투쟁은 권력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점에서 정세에 직접적이고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경제 투쟁은 정세에 대해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한 기초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계급은, 한편으로 경제 투쟁을 진전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경제 투쟁 속에서 계급적 단결과 계급의식을 진전시켜서 그것을 정치 투쟁의 발전으로 전화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계급투쟁의 본령인 정치 투쟁은, 현 단계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 변혁을 위한 반자본주의 투쟁과 과거 정치질서의 유산으로서 민족민주 과제를 위한 투쟁으로 나뉠 수 있다. 그러나 민족민주전선과 반자본주의전선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 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을 조건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통일성이 주어지며, 두 개의 전선은 긴밀히 상호 작용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 투쟁이 살아나고 그 투쟁이 자본가정권을 위협하고 또 혁명적 정세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반자본주의전선이 형성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정치 투쟁의 영역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 계급 대립의 폐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폐지 등이 제기되어야 하고 노동자 대중을 사회주의적 계급의식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노동자 대중을 반자본주의전선의 대오의 중심으로 세우는 것을 기초로, 소부르주아 하층, 반프롤레타리아트 등을 동맹세력으로 견인해 가야 한다. 그리고 반자본주의전선이 형성, 발전되어간다면, 소부르주아 상층, 양심적 세력 등을 견인하여 민족민주전선을 발전시키는 것은 용이해질 것이다.

한편 정세분석 전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의 경향이다. 사적 소유를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의 발전은 세계적 차원에서 그리고 일국적 차원에서, 각 부문 간 불균등 발전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또한 불균등 발전은 경제의 영역만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 사회적 영역에서도 관철된다. 따라서 세계적 차원에서 불균등 발전의 양상과 그 영향, 일국 내에서 불균등 발전의 양상과 그 영향을, 정세의 특수성을 가리키는 지표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불균등 발전의 결과 형성되는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약한 고리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입장을 수립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의 진전을 위해 중요한 점이다.

한편, 국제 정세 분석과 그것의 한국 내 정세에의 영향을 분석하는 지표가 필요하다. 국제 정세의 핵심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진전 여부, 반제국주의전선의 진전 여부, 그리고 제국주의 질서의 변동과 균열 여부 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 정세의 한국 내 정세에의 영향 그리고 제국주의의 신식민지적 지배가 관철되는 기제,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 지배가 관철되는 한국 내의 계급대립구조 등이 지표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이 분단국가이고 한(조선)반도 정세가 한국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국제 정세를 굴절시키는 분단 질서의 특수성이 국제 정세와 일국적 정세의 관계를 보완하는 지표로 파악될 필요가 있다.

 

6.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정치와 정세분석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의 본질을 권력의 문제로 파악한 바가 있고, 또 시민이 무엇인가에 대해 곧 정치적 권리를 가지는 자로 규정한 바가 있었다. 정치의 본질을 권력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은, 지금 시기 부르주아 정치와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정치 또한 마찬가지이다. 노동자계급이 정치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은 권력을 쟁취하여 사회주의 건설을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르주아들이 정치를 하는 이유는 물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지만, 부르주아 정치는 사회의 계급 분열을 유지,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에서 부가 축적되고 다른 한편에서 빈곤과 무권리, 파탄이 재생산되는 계급 분열 체제의 유지, 발전! 이것이 곧 부르주아 정치의 역할이다. 이는 부르주아 정치가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유지를 기본 축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정치는 정반대로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폐지를 통한 계급 대립의 철폐, 계급의 지양을 내용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진보 정치는 1980년대 운동의 성과를 갉아 먹으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의식을 개량주의 의식으로 마비시키고, 노동자계급을 해체하는 역할을 해왔다. 진보정당-민주노총이라는 양 날개는 한국적 상황에 맞게 변용된 사회민주주의 체계에 다름 아니었다. 이 체계 속에서 노동운동은 조합주의와 경제주의에 찌들어 몰락의 길을 걸어왔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금 노동운동의 재생을 꿈꾸고,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꿈꾸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정치를 재건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경제적 의미의 계급, 즉자적 계급을 넘어서서, 대자적 계급, 정치적 의미의 계급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전위당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회주의 전위당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경제적 영역을 넘어, 조합주의적 영역을 넘어 정치적 영역으로 진출해야 하며 노동자계급의 정치행위로서 전술이 구사되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발전은 강령과 조직과 전술을 필요로 한다. 이것들의 발전이 한 순간에 이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발전은 곧 노동자계급이 전술 구사 능력의 발전을 요구한다. 그런데 전술은 전략에 의해 규정되며, 전략의 수립은 한국 자본주의의 현 단계가 어디인지를 밝히고 한국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을 규명하여 변혁의 전망을 밝히는 작업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 계급 대립이 철폐되는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 점은 강령적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투쟁의 기반이 되며, 전략의 수립 이전에라도 전술이 구사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조합주의와 경제주의를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의 발전은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전술의 수립과 운용을 요구하며, 그리고 그 전제로서 과학적인 정세분석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정치의 출발점은 정세분석에 두어져야 하며, 객관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 경제적 토대부터 정치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정세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할 때 노동자계급은 과학적 전술 수립의 튼튼한 기초를 획득하게 된다.

정세는 주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필연성이 관철되는 객관의 영역이다. 왜냐하면 주관, 주체의 의지, 활동, 행위까지 포함하여 사회에 존재하는 전 계급들의 상호 관계의 총체가 정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세분석은 그러한 정세를 단면으로, 정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들의 상호관계의 변화, 계급들의 상호 간의 운동을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정세의 추이를 밝히는 것이 정세분석의 본령이 된다.

운동이 퇴조하면서 지금 현실의 정세분석은 동향분석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드물다. 또한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정세분석이라는 엉터리 정세분석론은 운동에서 과학이 성립되는 것을 저지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과학적인 정세분석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은 운동이 퇴조를 마감하고 새로이 전진하기 위한 근본적인 전제가 된다.

정세분석은 국제 정세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지만, 정세분석의 본령은 일국 차원의 정세분석이다. 왜냐하면 혁명은,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불균등 발전이라는 조건 속에서, 세계 동시 혁명으로서가 아니라 일국적 차원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고, 또 혁명의 근본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라는 점에서, 국가권력을 규정하는 일국적 차원의 계급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분석이 일차적 중요성을 갖기 때문이다.

정세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획득, 그에 기초한 전술의 구사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 역량을 발전시키고 노동자 대중을 훈련하고 조직하는 노력,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지구전적으로 전개하면서 노동자계급의 변혁 전략을 수립하여, 변혁의 전망과 사회주의 건설의 전망을 수립해 가는 것! 이러한 과학적인 실천 속에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다시금 변혁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정립해 갈 것이다.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Lenin, Karl Marx, ≪Selected Works in Three Volumes 1≫, Progress Publishers, Moscow, p. 40.
2 조희연 편, ≪한국사회구성체논쟁(II)≫, 죽산, p. 587.
3 앞의 책, p. 540.
4 앞의 책, pp. 522-525.
5 엥겔스, 공산주의의 원칙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 박종철 출판사, 1994, p. 331.
6 레닌, 조희연 편, ≪한국사회구성체논쟁(II)≫, 죽산, p. 561.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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