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기본소득 논쟁과 ≪21세기 자본≫ – ≪21세기 자본≫을 읽고

이병진 │ 편집위원

 

내가 ≪21세기 자본≫을 읽은 것은 2014년 겨울이었다. 당시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이 책은 프랑스에 사는 토마 피케티가 2013년에 썼고 2014년에 영어판을 번역하여 한국에 소개된 책이다. 이 책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기도 전에 화제가 되었고 당시 박근혜정권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줄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당시 책을 읽고 난 소감은 ‘빈 깡통이 소리가 요란하다’는 속담처럼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는 광고와 달리, 이런저런 통계자료를 근거로 횡설수설 떠들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불평등을 지적했다는 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이 책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고 서재 깊숙하게 처박아 두었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해결을 위해서 서유럽에서는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흐름도 나타났고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적 흐름도 있었다. 나는 그 당시 그 책을 읽으면서 왜 갑자기 한국에서 ≪21세기 자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이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나는 ≪21세기 자본≫에 대해서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의 발생으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서 “재난지원금” 의제가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기본소득”논쟁으로 발전하였고, “참여소득”, “일자리보장제” 등등 우리사회의 현실적인 정치의제로 다가오면서 서재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21세기 자본≫을 다시 꺼내서 보았다. 나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집위원이면서 4.27시대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4.27시대연구원에서 “기본소득”이 진보진영의 정책적 대안이 될 수 있는지 토론을 하면서 ≪21세기 자본≫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의 논지와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논자들의 논지와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 논쟁을 고찰하면서 ≪21세기 자본≫을 다시 읽었던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비롯된 사회경제적 상황이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들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소부르주아들의 관점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 ≪21세기 자본≫을 읽었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7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 방대한 분량이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도무지 이 책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책의 대부분이 통계자료들을 근거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다는 현상을 서술하고 있을 뿐,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과 분석이 없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역사적인 통계자료들을 근거로 경제성장 속도가 높은 시기에는 비교적 사회적 양극화가 억제되지만, 소위 ‘자본소득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지면, 부의 축적은 자본에 더 유리해지면서 경제성장률이 떨어져 결과적으로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된다고 주장한다(피케티, 2014년, p. 39.).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피케티는 복지제도의 강화, 누진적 소득세 및 글로벌 자본세를 제안한다. 결국 피케티는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복지제도의 강화를 대안으로 제출하고 있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란 무엇인가?

피케티는 책 제목을 ≪21세기 자본≫으로 붙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저자가 생각하는 “자본”이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고 책을 서술해야 한다. 그런데 피케티는 자본을 “개인 혹은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소유하고, 시장에서 영구적으로 양도와 거래가 가능한 모든 형태의 부”(피케티, 62쪽)라고 아주 간단하게 정의한다. 왜 그렇게 정의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피케티는 사적 소유권이 인정되는 모든 형태의 부를 자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인적 자본(노동력)은 “다른 사람이 소유하거나 시장에서 거래될 수 없다”(피케티, 61쪽)는 이유로 자본에서 제외한다. 피케티는 이렇게 자본과 노동을 편의적으로 가른 다음, “기업과 국가 또는 전 세계 경제의 계정 그 어느 것을 살펴보더라도 이와 연관된 생산과 소득은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총액으로 나눠질 수 있다”(피케티, p. 61.)고 주장한다.

나는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께서 말한 자본은 “인적자본을 제외한 양도와 거래가 가능한 모든 형태의 부”라는 정의에 대해 반박할 수 없다. 더군다나 세계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피케티의 주장을 반박할 만한 능력도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이 있다. 피케티 선생은 그 스스로 “자본이란 무엇인가? 그것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자본의 성격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그것의 구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바뀌었는가? 이 연구의 핵심인 이런 질문들은 이후 장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피케티, p. 61.)고 독자들에게 약속하였지만, 책의 어느 구석에도 자본에 대한 피케티의 분석적 설명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니면 내가 무지하거나 바보라서 세계적 석학을 사기꾼 취급하는 오류를 범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이 직접 확인해 보면 좋겠다. 나로서는 세계적 석학 선생의 깊고 심오한 뜻을 이해할 길이 없다.

이렇게 자본에 대한 정의와 개념부터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세계적 석학인 피케티 선생의 화려하고 세련된 설명들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문맹자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의 관점에서 피케피가 말하는 것을 음미해 본다면, “자본”과 “인적자본”을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말로 바꾸고 역사적으로 자본가들은 점점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점점 가난해졌다고 해석하는 것이 쉽게 와 닿는다.

 

자본이란? 왜 세상은 불공평한가?

자본주의체제는 상품경제가 고도로 발전되어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다. 그리고 화폐가 자본으로 전화됨으로써 “화폐가 자본으로서의 정체를 드러”낸다.(≪자본론≫, 채만수 역, 제1권 제2분책, p. 260.)

자본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맑스에 따르면 “자본의 역사적 존재조건들은 상품유통 및 화폐유통과 함께 거기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본은 단지 생산수단 및 생활수단의 소유자가 자신의 노동력의 판매자로서의 자유로운 노동자를 시장에서 발견하는 때에만 생성(生成)되는 것이며, 이러한 역사적 조건은 하나의 세계사를 포괄하고 있다.”(≪자본론≫, 채만수 역, 제1권 제 2분책, p. 283.) 생산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한 자본이 임금 노동의 형태로 존재하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비로소 화폐는 자본으로 전환될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화폐에서 자본으로 전환된 자본은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결합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과정을 조직한다. 그리고 자본은 그 생산과정에서 노동자가 만들어낸 가치 중 잉여가치를 수탈함으로서 증식된다. 이 생산과정에서 자본은 끊임없이 더 많은 잉여가치를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하고 결과적으로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이라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다.

 

다시 “기본소득” 논쟁으로

내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으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격다짐 식으로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으니 복지국가를 만들고 누진세를 적용하여 양극화를 줄여야 한다는 억지 주장에서 느꼈던 것처럼, “기본소득” 논쟁은 그 출발점부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은폐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의 모자를 씌워 근본적인 모순을 은폐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기본소득”이 소득재분배의 대안으로 관심 받는 이유는 기존의 복지국가의 개념과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자본주의체제는 변화가 불가피하고, 그런 21세기 자본주의 흐름의 변화와 맞물려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논리적 근거는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1-1809)에서 시작된다. 그의 팸플릿 ≪토지정의≫(1796)에서 “토지는 인류 전체의 공동 자산이므로 거기에서 나오는 가치는 비록 그 대부분이 개인에게 속한다고 해도, 일부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동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p. 11.)고 주장하였다. 그는 토지를 ‘공유재산’으로 보았다. 한편, 영국의 토머스 스펜스(Thomas Spence)도 ≪영아들의 권리≫(1797)에서 “모든 토지는 성・연령과 관계없이 모든 거주자들을 주주로 하는 주식회사 형태로 교구에서 소유해야 한다.”(김공회, 2020년, p. 21.)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토지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공공재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모두가 똑같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 기본소득의 논리적 근거이다.

토지 공개념에서 비롯된 기본소득 논쟁은 4차 산업혁명으로 특징지어지는 21세기 자본주의가 도래하면서 좌파에서부터 우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표출되고 있다. 그 가운데 “국제기본소득네크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BIEN)”를 조직하여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UBI)’개념을 만든 필리프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의 개념에 따르면, 기본소득이란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인 자유를(Real Freedom For All)’를 모토로 한다고 할 수 있다.(홍기빈, 2020. p. 8.) 그에 따르면, 기본소득의 특징으로 ① 현금지급, ② 개인에게 직접 지급, ③ 무조건적인 지급, ④ 수혜자의 재산이나 소득 상태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지급한다고 본다.(홍기빈, 2020. pp. 8-9.) 기본소득의 이런 특징 때문에 기본소득은 기존의 복지정책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냉혹한 현실은, 기본소득 정도 가지고는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미국에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기초로 천문학적으로 찍어내는 달러는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지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소자본가들과 소상품생산자들까지도 파산의 위기에 놓여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각 국가들은 자국의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세계적 경제공황은 심화되고 있다. 인공지능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무산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계급적 관점에서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채만수는 기본소득과 같은 개량주의 정책이 “고도로 발달한 자동화・무인화 생산이라는 생산력과 그 생산력의 질곡으로 변해버린 협소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간의 이 거대한 충돌을 녹여 없애버릴 수 있을까요?”(채만수, 2020. p. 48.)라고 질문하면서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국가에 기본소득제를 간청한다면, 결국 그것은 영원한 임금노예의 삶을 간청하는 것”(채만수, 2020. p. 53.)이라고 주장한다. 채만수는 기본소득만으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체제 모순을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은 진보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일부 진보적 활동가들과 지식인들은 기본소득이 소부르주아적 대안과 그로 인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당장에 먹고 살기 힘든 인민들에게 유익하다는 점에서 진보정치의 내용으로 담아내려는 노력도 있다. 기본소득이 소득의 재분배에 일정 정도 순기능을 하고 그런 사회 정치적 성과를 토대로 사회변혁의 동력을 강화해 나갈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는 공감이 된다. 하지만 급격하게 고조되고 있는 혁명적 변혁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그런 개혁적인 처방만으로 오늘날의 이 거대한 변혁의 요구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소극적인 방법과 대안이 인민들의 행복한 삶을 담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근본적이고 대담한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해 보인다.

 

노사과연

 

참고자료

김공회, “기본소득 논의로 보는 국가의 역할”, 홍기빈, 김공회, 윤형중, 안병진, 백희원, ≪기본소득 시대≫, arte, 2020, pp. 16-26.

채만수, “자본주의 체제 모순의 심화와 소부르주아적 대안들”, ≪자본주의 위기격화와 노동자계급의 정치≫(≪노동사회과학≫ 제13호), 노사과연, 2020, pp. 16-54.

홍기빈, “21세기 자본주의의 흐름과 기본소득의 탄생”, 홍기빈, 김공회, 윤형중, 안병진, 백희원, ≪기본소득 시대≫, arte, 2020, pp. 5-15.

  1. 맑스, 채만수 역, ≪자본론≫ 제1권 제2분책, 2018.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 글항아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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