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헌법 초안에 대하여(1)

― 전 연방 쏘비에트 제8차 임시 대회에서 한 보고(1936년 11월 25일)

 

 

이오씨프 쓰딸린(Иосиф Сталин)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I. 헌법위원회의 성립과 그 임무

II. 1924년부터 1936년까지 쏘련의 생활에서 나타난 변화들

III. 헌법 초안의 주요 특징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IV. 헌법 초안에 대한 부르주아의 비판

V. 헌법 초안에 대한 수정안과 추가안

VI.새로운 쏘련 헌법의 의의

 

 

(쓰딸린 동지가 연단에 오르자 청중들은 오랫동안 환호했다. 모두가 일어났고, 회의장 여기저기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쓰딸린 동지 후라!” “쓰딸린 동지 만세!” “위대한 쓰딸린 만세!” “위대한 천재 쓰딸린 동지 후라!” “만세!” “적색 전선!” “쓰딸린 동지에게 영광을!”)

 

 

I. 헌법위원회의 성립과 그 임무

 

동지들!

아시다시피 심의를 위해 본 대회에 헌법 초안을 제출한 헌법위원회는 쏘련 제7차 쏘비에트 대회의 특별 결의에 따라 설립되었다. 이 결정은 1935년 2월 6일에 채택되었다. 결정은 다음과 같다.

 

1.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헌법을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개정한다.

(1) 선거 제도의 민주화 ― 완전하지 못한 평등 선거권을 완전한 평등 선거권으로 대체하고, 간접 선거를 직접 선거로 대체하며, 공개 투표를 비밀 투표로 대체한다.

(2) 헌법의 사회 경제적 기초의 보다 정확한 규정 ― 헌법을 현재 쏘련의 계급 역량 관계에 맞춘다(새로운 사회주의 공업의 성립, 부농의 해체, 집단 농장 체제의 승리, 쏘비에트 사회의 기초로서의 사회주의적 소유의 확립 등등).

2. 위임에 따라 쏘련 중앙 집행위원회는 헌법위원회를 선출하고, 헌법위원회는 제1항의 원칙에 따라 헌법 개정안 초안을 중앙 집행위원회에 제출하도록 지시받았다.

3. 쏘련에서 정부 기관의 다음 정기 선거는 새로운 선거 제도에 기초하여 실시한다.

 

이것은 1935년 2월 6일의 일이다. 이 결정이 채택된 다음 날, 즉 1935년 2월 7일에 쏘련 중앙 집행위원회 제1차 회의가 소집되었으며, 쏘련 제7차 쏘비에트 대회의 결정을 집행하기 위해 31명으로 구성된 헌법위원회가 성립되었다. 회의는 쏘련 헌법 개정안을 준비하도록 헌법위원회에 위임했다.

 

이러한 쏘련 최고 기관의 공식적 근거와 지침에 기초해서 헌법위원회는 자신의 사업을 진행하였다.

 

따라서 헌법위원회는 1924년에 채택된 현행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1924년부터 현재까지 쏘련의 생활에서 나타난 사회주의적 변혁을 고려해야 했다.

 

 

II. 1924년부터 1936년까지 쏘련의 생활에서 나타난 변화들

 

헌법위원회가 헌법 초안에 반영해야 할 1924년에서 1936년까지 쏘련의 생활에서 나타난 변화들은 무엇인가?

 

이러한 변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1924년 상황은 어떠하였는가?

 

당시는 신경제 정책의 첫 시기였다. 쏘비에트 정권은 사회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하는 조건에서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도록 허용했다. 쏘비에트 정권은 두 경제 체제, 즉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 사이의 경쟁에서 사회주의 체제의 우위를 확보할 계획이었다. 당시의 과제는 이 경쟁 속에서 사회주의의 지위를 강화하여 자본주의적 요소를 청산하고 국민 경제의 기본 체제인 사회주의 체제의 승리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의 산업 특히 중공업은 매우 열악했다. 생산량은 천천히 회복되고는 있었지만 사실 전쟁 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공업은 후진적이고 조악한 낡은 기술에 기초하고 있었다. 물론 공업은 사회주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공업에서 사회주의 부문이 전체의 80%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부문이 여전히 공업의 20% 이상을 통제하고 있었다.

 

우리의 농업은 더욱 보잘것없었다. 사실 지주계급은 이미 청산되었지만 그 대신 농업 자본가계급, 즉 부농계급이 여전히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당시 농업은 후진적 봉건 기술로 운영하는 소규모 개인농들의 광활한 바다처럼 보였다. 이 바다에서 고립된 작은 점이나 섬처럼 집단 농장과 국영 농장이 존재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국민 경제에 큰 의미가 없었다. 집단 농장과 국영 농장은 약했지만 부농은 여전히 강력했다. 당시 우리는 부농의 청산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국내 상품 유통도 마찬가지였다. 상품 유통에서 사회주의 부문은 대략 50-60%였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나머지 부분은 대상인, 투기꾼 및 기타 개인 상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이 1924년 우리 경제의 모습이다.

 

1936년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1924년은 신경제 정책의 첫 시기, 신경제 정책의 출발,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활성화된 시기였다면 지금은 신경제 정책의 마지막 시기, 신경제 정책의 마무리, 국민 경제 모든 부문에서 자본주의가 완전히 청산되는 시기이다.

 

우선 우리나라 공업에 대해 살펴보자. 이 기간에 공업은 거대한 역량으로 발전했다. 이제 더 이상 미약하고 기술적 장비가 부족한 공업이라 할 수 없다. 반대로 지금 우리 공업은 풍부한 현대적 신기술에 기반하고 있으며 더욱 발전된 중공업과 기계 제작 공업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우리 공업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은 사회주의 생산 방식이 전적으로 지배하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주의 공업이 생산량에서 전쟁 전보다 7배가 넘는다는 사실은 자질구레한 세부 사항일 수 없다.

 

농업 분야도 이제 더 이상 기술적으로 후진적이고 부농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 있던 소규모 개인농들의 바다가 아니다. 생산은 기계화되었고, 세계 어느 곳보다도 큰 규모이며, 최신 기술 장비를 갖추고 있다. 즉, 집단 농장과 국영 농장이 포괄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다. 알다시피 농업에서 부농은 청산되었고, 낙후한 중세적 기술의 소규모 개인농은 이제 보잘것없는 비율로 되었다. 작물 수확 지역의 2-3%에 불과하다.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현재 집단 농장이 총 570만 마력의 트랙터 31만 6천 대를, 국영 농장이 758만 마력의 40만 대 이상의 트랙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상품 유통에 대해 말하자면 대상인과 투기꾼은 완전히 축출되었다. 모든 상업 유통은 이제 국가, 협동조합, 그리고 집단 농장의 수중에 있다. 새로운 쏘비에트 상업―투기꾼 없는 상업, 자본가 없는 상업―이 생겨나 발전하였다.

 

이와 같이 국민 경제 모든 영역에서 사회주의 체제의 완전한 승리는 이제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폐지 소멸되고 생산 도구 및 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가 쏘비에트 사회의 확고부동한 기초로 확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박수.)

 

쏘련 국민 경제의 이러한 변화로 인해 우리는 이제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를 갖게 되었다. 이 경제에는 공황과 실업이 없고, 빈곤과 파산도 없다. 시민들은 풍요롭고 문화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것이 1924년부터 1936년까지 우리 경제에서 일어난 대체적인 변화이다.

 

쏘련 경제의 이러한 변화에 따라 우리 사회의 계급 구조도 달라졌다.

 

아시다시피 지주계급은 내전에서 승리한 결과 이미 청산되었다. 그 밖의 착취계급들도 지주계급과 운명을 같이하였다. 공업 부문에서 자본가계급은 없어졌다. 농업 부문에서는 부농계급이 없어졌다. 상업 부문에서는 대상인과 투기꾼이 없어졌다. 이와 같이 모든 착취계급이 청산되었다.

 

노동계급이 남아 있다.

 

농민계급이 남아 있다.

 

인쩰리겐찌야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집단들에 어떤 변화도 없다고, 즉 자본주의 시기와 같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를 들어 쏘련의 노동계급을 보자. 관습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부른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트란 무엇인가? 프롤레타리아트란 생산 도구와 생산 수단을 빼앗기고, 자본가계급이 생산 도구와 생산 수단을 장악한 경제 체제하에서 착취당하는 계급이다. 프롤레타리아트란 곧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계급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시다시피 이미 자본가계급은 청산되었고, 생산 도구와 생산 수단은 자본가에게서 빼앗아 노동계급이 주도 세력이 된 국가에 이전되었다. 따라서 노동계급을 착취할 자본가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우리 노동계급은 생산 도구와 생산 수단을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전체 인민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노동계급이 생산 도구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고 자본가계급이 청산된 이상 노동계급이 착취당할 모든 가능성은 제거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노동계급을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해방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계급을 분쇄하고 자본가들에게서 생산 도구와 생산 수단을 빼앗아 프롤레타리아트를 낳는 생산 조건을 철폐해야 한다고 했다. 쏘련의 노동계급은 이러한 해방의 조건을 실현하였다고 할 수 있는가?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고 말해야만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쏘련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전혀 새로운 계급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계급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청산하고 생산 도구와 생산 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를 확립하여 쏘비에트 사회를 공산주의로 인도하는 노동계급이다.

 

보다시피 쏘련의 노동계급은 전혀 새로운 계급이다. 착취에서 해방된 노동계급,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노동계급이다.

 

농민 문제로 넘어가자. 보통 농민은 소생산자계급이라 한다. 이들은 모래알처럼 전국에 분산되어 있고, 낙후된 기술로 겨우 소규모로 경작을 하며 고립되어 있다. 사적 소유의 노예이며 지주, 부농, 상인, 투기꾼, 고리대금업자 등등에 무제한적으로 착취당하는 계급이다. 사실 자본주의 국가의 농민은 그 기본 대중을 놓고 볼 때 정확히 이러한 계급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농민인 쏘비에트 농민 대다수가 이러한 농민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그러한 농민은 더 이상 없다. 우리 쏘비에트 농민은 완전히 새로운 농민이다. 우리나라에는 농민을 착취하는 지주, 부농, 상인과 고리대금업자는 더 이상 없다. 우리 농민은 착취에서 해방된 농민이다. 더욱이 우리 쏘비에트 농민은 압도적 다수가 집단 농장 농민이다. 즉, 쏘비에트 농민은 개인 노동과 낙후한 기술이 아니라 집단적 노동과 최신 기술을 노동과 재산의 기초로 삼고 있다. 결국 우리 농민 경제는 사적 소유가 아니라 집단 노동을 기반으로 성장한 집단적 소유에 기초한다.

 

보시다시피 쏘비에트 농민은 완전히 새로운 농민, 인류 역사가 이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농민이다.

 

끝으로 인쩰리겐찌야 문제, 즉 엔지니어와 기술자, 문화 종사자, 일반 사무원 등등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자. 인쩰리겐찌야도 역시 그동안 많이 변하였다. 자신이 상층계급이 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다수가 지주와 자본가를 섬기는 도량이 좁은 이전의 인쩰리겐찌야가 더 이상 아니다. 우리 쏘비에트 인쩰리겐찌야는 노동자계급과 농민에 혈육으로 연결된 완전히 새로운 인쩰리겐찌야이다. 먼저 인쩰리겐찌야의 구성이 변했다. 우리 쏘비에트 인쩰리겐찌야는 귀족과 부르주아지 출신이 매우 적다. 쏘비에트 인쩰리겐찌야의 80-90%는 노동계급과 농민 및 기타 근로 계층 출신이다. 다음으로 인쩰리겐찌야 활동의 성격 자체가 변하였다. 예전에 인쩰리겐찌야는 부유한 계급을 위해 일했다. 다른 출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인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더 이상 착취계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인쩰리겐찌야는 쏘비에트 사회의 평등한 구성원이 되어 노동자, 농민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새로운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고 있다.

 

보다시피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근로 인쩰리겐찌야로 지구 상 어느 나라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것이 이 기간 동안 쏘비에트 사회의 계급 구조와 관련된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로, 노동계급과 농민 간의 구분과 이 두 계급과 인쩰리겐찌야 간의 구분이 없어져 가고 낡은 계급의 특권이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적 집단 간의 거리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로, 사회적 집단들 간의 경제적 모순이 축소되고 소멸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끝으로, 이 집단들 간의 정치적 모순도 역시 축소되고 소멸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쏘련의 계급 구조와 관련하여 일어난 변화이다.

 

쏘련의 사회생활에 있어 또 하나의 부문에 대한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면 불충분할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쏘련의 민족 관계 부문이다. 쏘련에는 약 60개의 민족과 민족적 집단 및 소수 민족이 있다. 쏘비에트 국가는 다민족 국가이다. 그러므로 쏘련에서 민족 간의 관계 문제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아시다시피 1922년 쏘련 제1차 쏘비에트 대회에서 성립되었다. 쏘련의 각 민족들은 평등하며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원칙에 기초하였다. 1924년 채택된 현행 헌법은 쏘련의 1차 헌법이다. 당시는 민족 간의 관계가 아직 원만하지 못했고 대러시아주의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었으며 원심력이 여전히 지속된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각 민족들을 하나의 연방적 다민족 국가로 통일시킴으로써 민족들 사이에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상호 원조에 기초하는 형제적 협력 관계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했다. 쏘비에트 권력은 이 사업의 어려움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부르주아 나라들에서 다민족 국가 수립에 실패한 경우를 알고 있었다. 구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시도는 실패했었다. 그렇지만 쏘비에트 권력은 다민족 국가를 만들기 위한 실험에 착수했다. 사회주의에 기초한 다민족 국가는 모든 실험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나갔다. 실험을 검증하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그러면 결과는 어떠한가? 이 시기에 사회주의에 기초한 다민족 국가의 건설이라는 실험이 완전히 성공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레닌주의 민족 정책의 확실한 승리이다. (계속된 박수갈채.)

 

어떻게 이러한 승리가 가능했는가?

 

민족 간의 분쟁을 조장하는 착취계급이 없어진 것, 상호 불신을 촉진하며 민족주의적 광신을 자극하는 착취가 없어진 것, 모든 노예 상태에 대한 반대자이며 국제주의 사상의 충실한 구현자인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았다는 것, 경제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민족 상호 간의 원조가 실제로 실현된 것, 끝으로 형식은 민족적이지만 내용은 사회주의적인 민족 문화가 쏘련의 각 민족들에서 화려하게 꽃핀 것 ― 이 모든 것과 이와 유사한 것 때문에 쏘련 내 각 민족들의 태도가 완전히 변하였다. 그들 속에 상호 불신은 사라지고 상호 우애의 감정이 발전하여 민족들 사이의 진정한 형제적 협력이 통일 연방 국가 체제 내에서 확립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모든 시련을 이겨 내고 이제 완전한 다민족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어 냈다. 그 견고성이야말로 세계의 어떤 곳에 있는 어느 민족 국가라도 부러워할 만하다. (우레와 같은 박수.)

 

이것이 이 기간 동안 쏘련의 민족 관계 부문에서 일어난 변화들이다.

 

이것으로 1924년부터 1936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쏘련에서 일어난 경제 및 사회-정치 생활의 변화를 총화하였다.

 

 

III. 헌법 초안의 주요 특징

 

쏘련의 생활에서 일어난 이 모든 변화가 새로운 헌법 초안에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다시 말해 본 대회 심의에 제출된 헌법 초안의 주요 특징은 무엇인가?

 

헌법위원회는 1924년 헌법을 개정하도록 위임받았다. 새로운 헌법 판본, 즉 쏘련의 새로운 헌법 초안은 헌법위원회의 활동 결과이다. 새로운 헌법을 작성하는 데 있어 헌법위원회는 헌법은 강령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였다. 이것은 강령과 헌법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령은 아직 없는 것, 아직 없지만 획득하고 앞으로 쟁취해야 할 것을 표명하지만, 반대로 헌법은 이미 있는 것, 현재 이미 획득했거나 쟁취한 것을 규정한다. 강령은 주로 미래를 다루고, 헌법은 현재를 다룬다.

 

설명을 위해 두 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우리 쏘비에트 사회는 이미 사회주의를 기본적으로 달성하고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했다. 즉, 맑스주의자들이 다른 말로 공산주의의 첫 단계 또는 낮은 단계라고 부르는 것을 실현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가 공산주의의 첫 단계, 즉 사회주의를 기본적으로 실현한 것을 의미한다. (계속된 박수갈채.) 공산주의의 이 첫 단계의 기본 원칙은 아시다시피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한다”라는 정식이다. 우리 헌법은 이러한 사실, 즉 사회주의를 성취한 사실을 반영해야 하는가?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가? 의문의 여지없이 그래야 한다. 쏘련은 이미 사회주의를 달성하고 쟁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쏘비에트 사회는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이 단계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원칙이 지배하는 단계로 우리가 미래에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그러면 우리의 헌법이 아직은 없고, 장차 쟁취해야 할 공산주의 높은 단계에 기초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높은 단계는 쏘련에서 아직 실현되지 못하였고 미래에 실현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이 강령이나 미래의 성공에 대한 선언이 되지 않으려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현 역사적 시기에 있어서 우리 헌법의 한계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헌법 초안은 지나온 길의 총화이며 이미 달성한 성취의 총화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이미 성취했고 실제로 쟁취한 것의 기록이자 법적 구현이다.

 

이것이 쏘련의 새로운 헌법 초안의 첫 번째 특징이다.

 

다음으로, 부르주아 국가의 헌법은 대개 자본주의 체제는 바꿀 수 없다는 신념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헌법의 주된 근거는 자본주의 원칙, 자본주의의 주요 뼈대이다. 즉 토지, 삼림, 공장, 제작소, 그리고 그 밖의 생산 도구 및 생산 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존재, 사회의 한쪽 극단에는 대다수 노동자들이 피땀 흘리며 고통받고 있고 다른 극단에는 걱정 없는 소수가 일하지 않으면서도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 등등이다. 부르주아 헌법은 이러한 것이나 이와 유사한 자본주의 뼈대에 의거하고, 이를 반영하여 법적으로 구체화한다.

 

부르주아 국가의 헌법과 달리 쏘련의 새로운 헌법 초안은 쏘련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사회주의 체제가 승리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쏘련 헌법 초안의 주된 근거는 사회주의 원칙, 이미 쟁취하여 실현한 사회주의의 주요 뼈대이다. 즉 토지, 삼림, 공장, 제작소, 그리고 그 밖의 생산 도구 및 생산 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 착취와 착취계급의 청산, 다수의 빈곤과 소수의 사치 청산, 실업의 청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원칙에 따라 능력 있는 시민의 영예로운 직무와 의무로서의 노동, 또 권리로서의 노동 즉 모든 시민이 일자리를 보장받을 권리, 휴식과 여가의 권리, 교육받을 권리 등등이다. 헌법 초안은 이러한 것이나 이와 유사한 사회주의 뼈대에 의거하고, 이를 반영하여 법적으로 구체화한다.

 

이것이 새로운 헌법 초안의 두 번째 특징이다.

 

다음으로, 부르주아 헌법은 암묵적으로 다음과 같은 전제에서 출발한다. 사회는 적대 계급으로, 즉 부를 소유한 계급과 부를 소유하지 않은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떠한 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사회에 대한 국가적 지도(독재)는 부르주아지에게 속해야 한다. 헌법은 유산계급의 염원에 부합하고 유리한 사회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하다.

 

부르주아 헌법과는 달리 쏘련의 새로운 헌법 초안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출발한다. 더 이상 적대 계급은 없다. 사회는 우호적인 두 계급, 노동자와 농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이 두 근로계급이 권력을 잡고 있다. 사회에 대한 국가적 지도(독재)는 사회의 선진계급인 노동자계급에게 속한다. 헌법은 노동 대중의 염원에 부합하고 유리한 사회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것이 새로운 헌법 초안의 세 번째 특징이다.

 

다음으로, 부르주아 헌법은 암묵적으로 다음과 같은 전제에서 출발한다. 민족과 인종은 평등할 수 없다. 완전한 권리를 가진 민족과 완전한 권리를 갖지 못한 민족이 있다. 게다가 식민지와 같은 세 번째 민족이나 인종이 있다. 이들은 완전한 권리를 갖지 못한 민족보다도 더 권리가 없다. 이것은 이들의 모든 헌법이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적 헌법, 즉 지배 민족의 헌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헌법과는 반대로 쏘련의 새로운 헌법 초안은 완전히 국제주의적이다. 쏘련의 헌법 초안은 모든 민족과 인종은 평등하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피부색이나 언어의 차이, 문화 수준이나 정치적 발전 수준의 차이, 민족과 인종의 그 어떤 차이도 민족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모든 민족과 인종은 과거와 현재의 처지와 상관없이, 강하든 약하든 상관없이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국가적 및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발의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새로운 헌법 초안의 네 번째 특징이다.

 

새로운 헌법 초안의 다섯 번째 특징은 일관되고 철저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부르주아 헌법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지 유형의 헌법은 시민의 평등한 권리와 민주적 자유를 직접 부정하거나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한다. 다른 유형의 헌법은 민주주의 원칙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심지어 선전까지 하지만, 동시에 그것에 유보 조항과 제한을 추가하여 민주적 권리와 자유를 완전히 불구로 만들어 버린다. 부르주아 헌법은 모든 시민의 평등한 선거권을 운운하지만 동시에 주거, 교육, 심지어 재산상의 자격 요건으로 제한한다. 시민의 평등권을 운운하지만 동시에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적용되는 유보 조항을 둔다. 기타 등등.

 

쏘련의 새로운 헌법 초안의 두드러진 특징은 이러한 유보 조항과 제한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적극적 시민과 소극적 시민은 없으며, 모든 시민은 적극적 시민이다. 초안은 남성과 여성, “거주자”와 “비거주자”, 유산자와 무산자, 유식자와 무식자 사이의 그 어떤 권리상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시민의 권리는 동등하다. 사회에서 시민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재산 정도나 출신 민족, 성별이나 직위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노동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헌법 초안의 특징이 하나 더 남았다. 부르주아 헌법은 일반적으로 시민의 권리를 형식적으로 명시하는 것에 그친다. 이 권리의 실현 조건, 그 실현 가능성, 그 실현 수단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부르주아 헌법은 시민의 평등을 운운하지만 자본가와 지주가 사회의 부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반면 노동자와 농민은 모두 빼앗긴 상태이기 때문에, 즉 자본가와 지주는 착취자이고 노동자와 농민은 피착취자이기 때문에, 자본가와 노동자, 지주와 농민 사이에 진정한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무시한다. 그리고 또한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를 운운하지만, 노동자계급이 집회를 위한 적당한 장소, 훌륭한 인쇄소, 충분한 인쇄용지 등등을 가질 수 없는 한, 이 모든 자유는 단지 공허한 소리일 뿐이라는 것은 무시한다.

 

쏘련의 새로운 헌법 초안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민의 권리를 형식적으로 명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권리를 보장하고 실행할 수단에 초점을 맞춘다는 사실이다. 초안은 단순히 시민의 평등권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착취 제도가 폐지되었다는 사실, 시민이 모든 착취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구체화하여 이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다. 초안은 노동할 권리를 단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쏘비에트 사회에서 공황은 더 이상 없고 실업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구체화하여 그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초안은 민주적 자유를 단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물질적 수단을 제공하도록 법률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헌법 초안의 민주주의는 “통상적”으로 “인정된” 추상적인 일반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이 새로운 쏘련 헌법 초안의 주요 특징이다.

 

이는 새로운 헌법 초안이 1924년부터 1936년까지 쏘련의 경제와 사회-정치 생활의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반영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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