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집자의 글] 밧줄 감긴 코끼리가 아닙니다

 

김해인 | 편집출판위원장

 

 

3ㆍ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표지>를 만들고, <권두시>에는 제임스 오펜하임의 “빵과 장미”를 실었습니다. 그리고 <회원마당>에 김병기 회원의 “책 소개(10): 러시아 여성과 사회주의 건설”과 천연옥 부산지회장의 “사회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실었습니다. <자료>에도 2021 국제 부인데이 3・6 도쿄 집회 실행위원회의 “2021 국제 부인데이 36 도쿄 집회 연대사를 요청하며”와 이에 답하는 운영위원회의 “2021,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면서”를 실었습니다.

<정세>에는 채만수 소장의 “주택 문제에 대하여”를 실었는데, 이 글에서 채 소장은 ‘주택 문제’, 혹은 ‘부동산 문제’의 본질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이 문제에 대한 ‘온갖 사회적 돌팔이 처방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현장>에는 은영지 회원의 “소성리 소식: 민족 모순 현장에 선 소성리 할매들”을 실었습니다. 이전에도 고희림 편집위원, 은영지 회원 등이 소성리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드 철거 투쟁 상황을 전해 주었는데, 이번 호부터 ‘소성리 소식’이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소성리 투쟁 현장의 소식을 싣기로 했습니다. 이 글과 함께 김근성 회원이 번역한 <번역>전쟁은 우리다크리스티안 소렌슨(Christian Sorensen)의 새 책 군수 산업의 이해를 읽고”를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장인기 편집위원의 “플랫폼 노동자에게 노동법은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는 지난 호의 “플랫폼 노동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리고 <현장>에 최현진 동지의 “자동차판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를 실었습니다. 동지들에게 연대와 응원의 인사를 드리며, 끝까지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길 바라고 또 바라봅니다.

<이론>에는 문영찬 연구위원장의 “20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적 성격(12)”가 이어집니다. 이번 호에는 ‘중국 혁명의 승리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김의진 회원이 번역한 <번역>마오는 대약진 운동 시기에 정말로 수백만 인민들을 학살했는가?”와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그 밖에 신재길 교육위원장이 번역한, “농민 문제에 관한 당의 세 가지 기본 구호”를 <번역>으로 실었고, 신 위원장의 “코로나 시대의 경제 위기의 배경과 전망”을 <자료>에 실었습니다. 운영위원회의 “<건강보험 고객센터 파업 지지 성명서> 국민건강보험은 즉각 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라!”도 <자료>로 실었습니다.

 

* * *

 

인도에서 코끼리를 기를 때, 어릴 적부터 발목에 밧줄을 감아 큰 나무에 묶어 둔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끼 코끼리는 그 밧줄의 반경을 넘어서 움직이다 계속해서 발목이 다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밧줄 반경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중에는 굳이 밧줄을 나무에 묶지 않아도, 그냥 밧줄을 발목에 감아만 두어도, 나무 근처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웬만큼 큰 나무에 묶어 두어도, 다 큰 코끼리의 힘은 그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릴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길들여진 코끼리는 나무에 묶을 필요도 없이, 밧줄만 감아 두어도 되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생각하게 됩니다. 노동자 개개인의 힘은, 새끼 코끼리처럼 미약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힘은 단결에서 나오고, 단결된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힘은 거대한 코끼리의 힘처럼, 자본주의를 뿌리째 뽑아 버릴 수도 있을 텐데, 우리는 자신의 그러한 힘을 자각하지 못하고, 억압과 착취의 나날을 보내며, 길들여진 코끼리가 나무 주위를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체제 내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은 인도의 코끼리가 아닙니다. 길들여진 코끼리는 자신의 힘을 인식하지 못하고, 밧줄만 감아 두어도 나무 주위를 떠나지 못하지만, 노동자계급은 온갖 족쇄를 채워 두어도, 결국 자신의 위대한 힘과 역할을 인식하고, 자본주의의 사슬을 끊어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맑스와 엥엘스, 레닌, 그리고 위대한 혁명가들이, 노동자계급의 투사들이 우리에게 이론과 실천으로, 가르쳐 주고, 보여 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 노동자계급에게는 위대한 힘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힘을 인식하고, 조직하고, 분출해야 합니다.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노동자들이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의 처지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이 체제를 뒤집고 새로운 세상, 해방 세상을 열어나갈 자신의 위대한 힘과 세계사적 역할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억압ㆍ착취당하고 있는 자신의 위치 및 노자 간의 적대적인 계급 관계를 인식하고,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를 열어갈 힘이 자신에게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맑스와 엥엘스가 말한 ‘계급의식’의 내용이고, 고립적ㆍ주관적ㆍ감각적인 수준의 ‘즉자적(卽自的) 계급’에서, 자기 자신의 처지와 역할을 대상적ㆍ객관적ㆍ반성적ㆍ과학적으로 인식한 ‘대자적(對自的) 계급’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활동가들은, 노동자계급 대중이 바로 이 ‘계급의식’을 갖도록 끊임없이 분투해야 합니다. 나날이 벌어지는 투쟁 속에서, 계급 대중과 함께 싸우며, 그 투쟁이 과학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끊임없이 밝혀 줘야 합니다. 즉, 목전의 투쟁을 넘어, 그 투쟁의 과정에서 대중의 의식이 성장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현장에서 ‘계급의식’의 성장과 직결된 학습 투쟁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금 독일의 위대한 혁명가 칼 리프크네히트의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라는 경구로 돌아왔습니다.

“욕심은, 이윤 추구는, 인간의 본성이다”, “자본주의는 인간 본성에 충실한 제도이고, 영원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경쟁하라”, “각자도생하라” 등등, 자본주의 체제가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주입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정신적 족쇄를 끊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권력’이라는 억압적 사슬을 깨부수고, ‘임노동’이라는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노동자계급에게는 위대한 힘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 힘을 인식하고, 조직하고, 분출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고 해방 세상을 건설해 나가야 합니다. 이 역사적 필연에 노동자계급의 세계사적 역할ㆍ사명이 있는 것이며, 노동자계급 대중이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추동하는 것이 바로 활동가들의 역할입니다.

바야흐로 대전환의 시대, 혁명의 시대입니다. 생산ㆍ재생산 영역 전반의 자동화ㆍ무인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고도로 발전한 현재의 생산력 수준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극렬하게 충돌하고 있으며, 그 모순은 대공황, 대규모의 실업, 광범위한 빈곤 등 수많은 사회 체제적 문제ㆍ위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객관적인 정세에 우리의 주체적인 역량이 조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우리를 더욱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즉, 주체 역량의 성장이라는 시급한 과제가 우리 앞에 제시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위해, 앞서 말한 대로 우리 활동가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계급 대중의 의식 성장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즉, 계급 대중이 현재 자신의 처지와 세계사적 역할을 인식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하고, 가장 원칙적인 입장을 가지고 가장 선도적으로 투쟁에 나서야 하며, 목전에서 전개되고 있는 그 투쟁 속에서 역사적 운동의 조건들, 진행 및 결과들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이러한 내용으로 계급 대중에게 전망을 제시하고, 그들을 추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력하나마 다시금 그 길에 진력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2021년 4월 26일

 

김해인 편집출판위원장

1개의 댓글

  •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 같지만….

    ‘4차 산업혁명’ 대충 어렴풋이 그 개념만 짐작했지 정작 그 단어. 그 이름조차 몰라서 한참을 찾았습니다.

    실은 크롬의 북마크를 손보다가 이것도 이름만 알고 지냈던 ‘노동 사회과학연구소’ 보여서 눌러서 들어왔어요.

    수십 개의 사이트가 폴더 이름이 ‘사이버 정보’라는 곳에 들었는데 ‘노사과연’은 IE에서 오래전부터 ‘자료실’ 폴더에 있었습니다.

    크롬에서 뭘 잘못했는지 어느 날 자료실 폴더와 그 안의 작은 폴더며 등록해둔 링크가 모두 날아갔어요.

    그리하여 지금 IE에 있는 즐겨 찾기를 끌어와서 크롬에서 융복합(?)하는 중이었네요.

    그런 찰나에 들어왔기에 노사과연의 말씀은 제게 너무나도 오래간만에 맛보는 좋은 나라의 성수이고 백 년 가뭄에 단비 같네요.

    각설하고, 맨 처음에 잠깐 들먹였지만, ‘4차 산업혁명’….

    고도의 기술 사회·고도의 문명사회, 다 좋은데요.
    그렇지만, 생각 해보면 그건 인간이 인간을 위한 인간의 기술에서 창조되고 조정돼야 옳지 그렇지 않다면 그건 되먹지 못한 부류가 되먹지 못한 발상으로 치닫는 동반 자살이랑 동급이겠지요?

    그러하기에 고도의 발전된 기술이건 저급한 기술이건 소수의 집단이 소유하거나 특이한 개체의 통제 아래 둘 수도 없을 거예요.

    그러기에 모든 생산력·생산 수단은 공적인 자산으로 그 시대의 사회가 가져야 하겠네요.

    기술이 발전하여 우리가 누려야 할 시간이 더 커진다면 그 시간에 우리는 그냥 일자리에서 밀려나 다음 생을 계속해서 지속할 수 없을 지경이라면 그건 아니잖아요?

    그 여분의 시간에 우린 모두가 고도화된 정보를 나눠 갖는 교육을 받거나 그 교육 자료를 만들어서 더욱 우리에게 좋은 사회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나서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자다가 봉창 뚫은 사람으로서 맨날 집에 처박혀 지내니까 몸과 맘이 쇠약해져서 인제는 봉창 뚫을 힘도 사그라지는 듯….

    노·사·과·연 /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