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세] 6ㆍ15 공동선언 이행과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각계 워크샵에 보내는 편지

 

이병진 | 편집위원

 

* 이 글은, 지난 1월 20일, 615남측위원회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던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각계 워크샵’에서 발표되었던 토론문입니다.

 

 

존경하는 선생님께

 

우리 민족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함으로써 패전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에 의해서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해방 후 곧 통일된 새 조국을 건설할 것이라는 희망이 컸지만, 민족분단의 높은 장벽이 76년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1990년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면서 통일이 되었고 1991년 쏘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해체되면서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졌습니다. 미국은 사회주의 진영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에게 핵사찰을 압박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북은 완강히 저항하면서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였고 준전시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북과 미국의 군사적 대결이 스위스 제네바 극적인 합의를 통해서 관계 정상화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북은 핵개발을 동결하고 미국은 북에 경수로형 원자력 발전소 2기와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이 시기에 제3 세계의 중심국이었던 인도 델리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한반도에서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깨닫고 충격과 불안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북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앞으로 북은 어떻게 될지 탐구하기 위하여 북에 다녀왔습니다.

 

국가보안법이 강제하는 소통과 단절 그리고 갈등의 증폭

1993년과 1994년 북을 두 차례 다녀오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남쪽에서 바라보는 북에 대한 이해와 평가 그리고 분석들이 실제 북의 모습과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993년 준전시가 선포된 북은 매우 혼란스럽고 고립되어 곧 붕괴될 것 같은 “불량 국가”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북 내부의 실제 모습은 준전시가 선포되었음도 사회 체제는 무척 안정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밖에서 볼 때는 북이 무척 호전적으로 보였지만 직접 만나 본 북쪽 주민들은 전쟁을 원하지도 않았으며 남과 북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북이 늘 호시탐탐 남쪽을 공격하려 하고 전쟁을 일으키려는 ‘반국가 단체’로 각인되어 있을까요? 그 원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국가보안법이 북을 정확히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은 북을 “이적 단체”로 특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북과 어떤 형식으로든 연계가 되면 간첩이 되고 찬양고무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할 수도 없고 늘 부정적으로 말하게 됩니다. 그런 정치ㆍ사회적 압박감이 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면서 북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생기고, 더 나아가 불신이 심화됩니다.

이런 북에 대한 왜곡과 편견은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고 남북 관계 전체도 영향을 주어 그 어떤 합의나 선언도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국가보안법이 폭력적으로 강제하는 북에 대한 적대감이 그동안 남과 북 사이에 많은 대화와 합의가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진심 어린 이해와 존중을 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시기 남과 북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군사적 긴장과 장벽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열리고 서로 왕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는 북에 대한 불신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북을 반국가 단체로 보고 북을 적대시하고 있고 그런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북에 대한 불신의 벽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북과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남과 북의 소통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소통 역시 국가보안법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남과 북의 진정한 대화와 상호 이해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한계는 그동안 남ㆍ북이 힘들게 이룩한 선언들과 합의 이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6ㆍ15 남북 공동선언과 실천을 위한 제언

남과 북의 비정상적인 군사적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이남 체제에 그 해악이 누적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남쪽 체제의 불안 요소가 되면서 북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짧은 기간에 수출 대국으로 경제적 성공을 거두면서 북을 깔보았습니다. 하지만 정치ㆍ경제를 독점한 한국의 정실 자본주의는 초국적 자본의 좋은 표적이 되었고 약탈적 초국적 자본이 남쪽 경제의 허점을 파고들어 공격하였습니다. 그 결과 남쪽의 자본은 단기 유동성 위기에 빠져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습니다.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여 높은 이자율과 고강도 구조조정을 강제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업이 도산하거나 파산하였고 대규모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양산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 부도 사태의 위기를 남북 관계를 풀어서 돌파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대결로 치닫는 남과 북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부분적으로 남과 북의 교류를 원하였습니다. 북 역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라는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햇볕 정책)’에 호응하였습니다. 당시 북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여 미국의 핵패권에 대한 위신이 많이 손상된 상황이어서 미국은 북과 직접 마주 앉아 대화하는 데 부담이 컸습니다. 그래서 북을 직접 상대하기보다는 미국-중국-러시아-일본-한국을 한 축으로 묶어서 북을 압박하는 ‘연착륙(soft landing)’ 정책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이런 정세가 반영되어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서 역사적인 공동선언을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역사적인 6ㆍ15 공동선언의 내용을 다시 한번 읽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ㆍ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ㆍ문화ㆍ체육ㆍ보건ㆍ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이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5.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이 역사적인 순간 저는 강원도 최전방 비무장 지대에서 정훈장교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민족이 전쟁이 아닌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는 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매우 냉혹하였습니다. 6ㆍ15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9년이 지난 2009년 9월 저는 간첩 혐의로 국가정보원에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6ㆍ15 남북 공동선언이 저절로 실천될 것으로 믿고 인도 정치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입니다. 지난 8년간 감옥에서 많은 사색과 통찰을 하면서 6ㆍ15 남북 공동선언이 저절로 실천될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 깊이 깨닫는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감옥에서 출소 이후에는 커다란 인식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한 남과 북 사이의 신뢰를 결코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쪽에 사는 사람이라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국가보안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나의 발언이 국가보안법에 위반이 되는지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정보원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저를 표적으로 삼아서 다시 간첩으로 엮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국가보안법은 사람들의 사상과 양심에 대해서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듭니다.

저는 1993년 북이 다녀와서 북의 실제 모습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을 기초로 북을 이성적인 힘으로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관점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을 통해서 국제 질서에 관해서 보다 과학적으로 국제 정세 인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분석력과 판단력은 정치학자인 제게 인도뿐만이 아니라 제3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를 높여 주었습니다. 남쪽이 미국에 예속된 국가가 아니라면 당연히 우리의 입장 관점에서 국제 정세를 분석하고 우리 앞에 제기되는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를 원하면서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강제하는 냉전적 사고에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냉전적 사고에 갇혀 있다 보니 북에 대한 인식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국제 정세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북은 국제연합(UN)에 가입되어 있는 정상적인 국가이고 북은 제3 세계 국가들은 자유롭게 외교 관계를 맺으며 국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 국가들은 모두 이적 단체를 국가로 인정하고 외교 관계까지 맺는 비정상적인 국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북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과는 거리감이 생기고 북을 압박하고 적대하는 국가들만을 중심으로 하는 외교 편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6ㆍ15 공동선언 1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국가정보원에서 조사를 받을 때, “우리 민족끼리”는 북의 통일전선ㆍ전략에 불과하다면서 저의 사고를 매우 불순하게 보았습니다. 저는 그런 국가정보원의 폭력에 위축되었습니다. 또한 출소 이후 보안관찰처분을 받으면서 경찰서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무수히 받았습니다. 그때 무조건 북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공안 기관은 북을 이적 단체로 보고 집요하게 시민들의 통일실천 의지를 불순하게 보고 감시하고 통제할 것입니다.

남과 북이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합의를 하고 국가의 최고 지도자들이 만나서 신뢰를 쌓아도 국가보안법이 생산한 공안 통치 기구들은 그것은 북의 위장평화 공세라 폄훼하면서 시민들을 감시하고 간첩으로 만드는데, 누가 책임 있게 6ㆍ15 공동선언을 실천하려 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비정상적이고 모순적인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누구도 책임 있고 진정성 있게 남북 합의를 실천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2000년 6ㆍ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2007년 10ㆍ4 남북 정상선언, 2018년 4ㆍ27 판문점선언에 이르기까지 남과 북은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합의와 선언들이 사문화되거나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이라는 냉전의 산물을 청산하지 못해서라고 봅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한 남과 북 사이에 수준 높은 선언과 합의가 이루어져도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6ㆍ15 공동선언이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북의 체제를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북 역시 남쪽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데 우리만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없지 않느냐’며 반문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상대쪽의 입장을 고려해서 우리의 입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서 얼마나 진정성 있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하는가에 따라 상대쪽도 우리에 대한 이해와 평가도 달라지는 것이지요. 우리가 상대편을 진심으로 인정하는데도 상대편이 우리에 대해서 적대적이라 한다면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공론을 통해서 정치적 결정을 내리면 될 일입니다. 더군다나 76년 이상 분단과 불신의 벽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전히 낡은 냉전적 사고에 갇혀 지낸다면 역사 발전에 도태되고 고립될 것입니다. 이것은 또다시 우리 민족에게 노예적 삶을 강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남과 북의 실질적인 화해와 평화를 위한 시작일 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급박한 실천 과제입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함으로써 오랜 기간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냉전적 사고를 허물고 남과 북이 화합해서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데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합니다. 세계는 이미 냉전의 질곡에서 벗어나 인류 공동체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 분발하고 전진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나와 가족들의 삶뿐만이 아니라 이 땅을 토대로 살아갈 미래 세대들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입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여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며 행복하게 살지, 아니면 인류 문명의 발전에 역행하며 도태될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2021년 1월 20일

이병진 올림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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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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