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책 소개(9)] ≪종교의 자유와 쏘련(Freedom of Religion in the USSR)≫

 

김병기 | 회원

 

* 원문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palmm.digital.flvc.org/islandora/object/ucf%3A5093

≪정세와 노동≫ 제168호(2020년 12월)에 실린 “레닌의 종교론”(http://lodong.org/wp/archives/14670)과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되실 듯합니다.

 

 

자본주의 언론은 사회주의는 종교의 자유가 없는 사회라고 습관적으로 비난한다. 그렇다면, ‘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하 쏘련)’에도 종교의 자유가 없었나? 소개하는 책 ≪종교의 자유와 쏘련≫(총 35쪽, 1951년)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이전과 이후의 종교적 활동에 관한 사례들을 다양하게 제시하면서, 그런 상투적인 비난은 터무니없는 가짜뉴스ㆍ흑색선전이라고 논박한다. 쏘련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폭넓게 주어졌다고 입증한다. 오히려, 러시아 제국이 종교의 자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고 역설적으로 주장한다.

그런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러시아 황제 짜르 체제하에서 러시아 정교회(Russia Orthodox Church, 이하 정교회)는 국교(State Religion)였다. 지주ㆍ자본가와 함께 러시아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였다. 짜르 체제를 보호ㆍ방어하는 종교적인 기구였다. 정교회와 사제들에게는 국가로부터 다양한 특권과 혜택이 주어졌다. 정교회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면 처벌을 받았다. 정교회 이외의 다른 소수 종교를 믿으면 여러 가지 차별과 탄압이 가해졌다. 정교회에서 결혼식을 하지 않은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사생아’로 취급되었고,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 주장은 중대한 범죄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와는 달리, 1917년 사회주의 혁명 후에 정교회와 여러 소수 민족 종교 등은 모두 법 앞에서 동등해졌다. 국교는 폐지되었고, 학교에서 종교 교육은 사라졌다. 짜르 체제하에서 정교회와 사제들이 배타적으로 누려 왔던 모든 특권과 혜택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모든 종교 기관의 예배와 의식은 인정되었지만, 공공 기관에서는 어느 종교 의식도 허용되지 않았다. 어느 종교를 따르든지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다. 누구나 신앙 고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 고백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 무신론과 같은 반종교적인 교육ㆍ선전을 할 수 있는 자유 역시 법으로 보장되었다. 종교적ㆍ반종교적 간행물들은 모두 자유롭게 차별 없이 국영 인쇄소에서 발행되었다.

사회주의는 변증법적ㆍ사적 유물론과 함께하고, 종교는 주ㆍ객관적 관념론과 함께한다. 철학적으로, 양자는 서로 대립한다. 물과 기름처럼 섞어질 수 없는 관계다. 한쪽이 승하면 다른 한쪽은 쇠하는 관계다. 그런데, 왜 레닌의 볼쉐비끼는 사회주의 혁명 후에 종교 활동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기보다 자유롭게 허용했을까? 다음과 같은 맑스주의 입장에 답이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첫 번째 강령인 아이제나흐 강령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 즉 ‘정교 분리’를 선언했다(1869년). 영국 런던에 모여든 블랑끼주의자 망명가들이 무신론을 내세우면서 종교와의 전쟁을 시도할 때, 엥엘스는 그런 분별없는 종교 투쟁은 무정부주의자ㆍ모험주의자의 입장이라고 비난했다(1874년). 엥엘스는 ≪반뒤링론≫에서 관념론과 종교에 타협적인 뒤링을 ‘일관성 없는 유물론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뒤링이 사회주의당에서 종교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내자, 사이비 혁명가의 입장이라고 비난했다(1877년).

레닌의 ‘노동 해방’ 조직은 종교ㆍ인종에 관계없는 ‘양심의 자유’와 ‘동등한 시민권’을 주장했다(1883년). 엥엘스는 독일 사민당이 에르푸르트 강령(1891년)을 선언하기 전에 자신의 입장을 당에 제출했다: 국가는 종교를 사적인 문제로, 종교 기관을 사적인 단체로 다루어야 한다. 종교 기관은 정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없고, 학교 교육에 관여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당은 종교를 사적인 문제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레닌이 작성한 ‘러시아 사회민주당 강령’(1902년)은 성ㆍ종교ㆍ인종과 관계없는 ‘동등한 시민권’을, 그리고 ‘교회와 국가, 교회와 학교의 분리’를 선언했다. 레닌의 입장은 엥엘스와 일치한다: 종교는 국가 차원에서는 사적인 문제다. 그러나 당 차원에서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무계급적 의식을 심어 주는 종교적인 미신ㆍ편견과 싸우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당의 중요한 사상 투쟁이다. 사상 투쟁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사회주의와 종교”, 1905년).

1918년 1월에 선포된 “종교에 대한 쏘비에트 법령”은 맑스-레닌주의 입장의 구체적인 실현이다.

 

아래는 이 책의 요약이다.

 

 

러시아 혁명 이전의 종교

 

1. 러시아 제국에서 정교회는 국교였다. 러시아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였다. 정교회 이외의 다른 종교를 믿으면 차별을 받았다. 정교회로 개종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기독교에서 비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하면 감옥에 끌려갔다. 무신론은 중대한 범죄 행위로 다루어졌다. 정교회에서 결혼 예식을 하지 않은 부부는 고발되었다. 그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사생아’로 취급되었고,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했다.

 

2. 정교회의 최고 우두머리는 러시아 황제인 ‘짜르’(Tsar)였다. 정교회와 사제들은 짜르에게 절대 복종했다. 정부로부터 주어지는 여러 가지 혜택과 특권을 누렸다. 짜르는 민중을 억압하기 위해 정교회를 이용했다. 사제들은 정치적으로 불온한 사람들을 관할 경찰서에 신고했다.

 

3. 정교회 대신에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단자’로 취급되었다. 주로 변방에 있는 소수 민족 종교들은 박해를 받았다. 정부 기관이나 학교에서 차별과 불이익을 당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혁명 이전의 러시아에서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짜르 전제 정치에 맞선 러시아 인민들이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4. 러시아에서 최초의 맑스주의자 단체인 레닌의 ‘노동 해방(Emancipation of Labor)’은 1883년에 종교ㆍ인종에 관계없는 완전한 ‘양심의 자유’와 ‘동등한 시민권’을 주장했다. 1902년에 레닌이 작성한 ‘러시아 사회민주당 강령’은 성ㆍ종교ㆍ인종에 관계없는 동등한 시민권과 국가와 교회의 분리, 그리고 학교와 교회의 분리를 선언했다.

 

 

쏘비에트 공화국에서의 종교

 

5.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은 교회와 국가 간의 오래된 밀접한 관계를 폐지하고, 1918년 1월 23일 쏘비에트 공화국은 교회와 국가, 교회와 학교의 분리, 그리고 종교의 자유에 관한 법령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6. ①교회는 국가로부터 분리된다. ②종교적 신앙에 따른 혜택과 특권을 보장하거나,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령의 집행은 금지된다. ③모든 공식 서류에서 종교ㆍ무종교를 묻는 항목은 삭제된다. ④모든 국가 기관의 공식 행사와 사회적 행사에서 종교 의식은 거행되지 않는다. ⑤종교 의식은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공공질서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행해질 수 있다. ⑥어느 누구도 종교적 신앙을 이유로, 시민의 의무를 회피할 수 없다. ⑦종교적 서약과 선서는 폐지된다. ⑧결혼ㆍ출생 신고 등은 국가의 공식 기관에서만 할 수 있다. ⑨학교는 교회로부터 분리된다. 종교 교육은 모든 학교에서 금지된다.

 

7. 국가와 교회의 분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교회는 더 이상 국가 기구의 일부분이 아니다. 종교 행사의 의무적인 참여는 폐지된다. 정교회는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국가는 종교적 행위를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하기 때문에 종교 활동에 간섭하지 않는다. 사무실ㆍ공장ㆍ학교ㆍ군대 등에서 종교인과 무신론자 사이의 차별은 없다. 어느 사람이 고용될 때, 학교에 입학할 때, 어느 조직에 가입할 때 등 어느 경우에도 종교에 대해서 물을 수 없고, 대답할 의무가 없다. 국민들의 종교에 관한 통계를 국가는 보관하지 않는다.

 

8. 국가는 종교 지도자와 독실한 신자들의 시민권 행사를 완전하게 보장한다. 쏘비에트 법령이 종교적 신앙과 관계없이 모든 시민들에게 시민권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쏘비에트 공화국에서 모든 종교는 서로 동등한 관계다.

 

9. 침례교 대표인 쥐트꼬프(Y. I. Zhidkov)의 기록이다: 10월 혁명의 중요성은 모든 종교를 법 앞에서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이제 지배적인 종교는 없다. 신앙인들은 이제 각자의 양심의 명령에 따라 자유롭게 예배를 드린다.

 

10. 이슬람교 지도자 알리-자데(Ali-Zade)는 인터뷰에서 말한다: 혁명 전에, 이슬람교는 종교적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이제 동등하다. 쓰딸린 헌법은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우리 이슬람 자녀들의 상당수는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하고, 정부 기관ㆍ공장ㆍ연구 기관에서 좋은 직책을 갖고 있다.

 

11. 쏘비에트 법은 시민권 제한이라는 두려움 없이 종교적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권리, 신앙 고백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반종교적인 선전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12. 쓰딸린은 미국 노동 대표단과의 인터뷰(1927년 9월)에서 설명한다: 우리 법률은 종교를 믿는 권리를 보장한다. 그것은 개개인의 양심의 문제이다. 그래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 정책을 실행한다. 정교 분리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모든 시민에게 논쟁ㆍ선전ㆍ선동을 통해 종교와 싸우는 권리 역시 보장한다. 종교의 자유에 관한 쏘비에트 정부의 법령(1918년 1월)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시민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교회는 국가와 학교로부터 분리된다. 종교적 예배의 자유와 반종교적인 선전의 자유는 모든 시민들에게 승인된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대한 성직자와 신도들의 반응

 

13. 교회를 국가와 학교로부터 분리시키는 법률은 여러 종교 지도자와 신도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법이 종교 기관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폐지했기 때문에 다수는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모쓰끄바와 전 러시아 정교회의 총대주교 쎄르기(Sergius) 1세의 기록이다: 그 법령은 우리에게는 최상의 축복이었다. 이제 정교회는 독재 정부의 도구로써 이용되지 않는다.

 

14. 소수의 종교 지도자들은 반발하고 저항했다. 정교회와 사제들의 혜택과 특권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신도들을 선동해서 쏘비에트 정부에 대항했다. 종교적인 문제로 가장했지만 실제로는 짜르 전제 정치로 돌아가려는, 쏘비에트 정부를 반대하는 정치적 투쟁이었다. 그러므로 쏘비에트 정부는 그런 가장 반동적인 사제들의 저항에 맞서 적절하게 필요한 조치를 해야만 했다. 러시아 국내외의 반혁명적인 세력들은 그런 조치들을 종교ㆍ종교인ㆍ교회에 대한 탄압이라고 비방했다.

 

15. 그런 비방은 ≪러시아에서의 종교에 관한 진실(The truth about religion in Russia)≫(1944년)이라는 책에 수록된 교회 지도자들의 성명서에 의해서 여지없이 반박되었다: 러시아 혁명 후에 교회 대표들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그럼 왜 그들은 재판을 받았는가? 반쏘비에트 행위를 감추기 위해서 교회의 이름과 외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재판은 성직자와 신도들의 종교 활동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정치적 재판이다.

 

16. 외국의 군사적 간섭과 국내의 반혁명 세력의 패배, 사회주의 건설의 전진, 다수 인민의 쏘비에트 정부에 대한 열렬한 지지 등은 정교회와 사제들의 마음을 크게 돌려놓았다. 1927년 7월에 러시아 정교회는 쏘비에트 정부의 국내외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선언을 표명했다: 우리는 정교회 기독교인이고, 동시에 쏘비에트 공화국이 우리의 세속적인 조국이라는 것 그리고 조국의 기쁨과 성공이 우리의 기쁨과 성공이고, 조국의 실패가 우리의 실패라는 것을 자각한다. 정교회 기독교인으로 고백하면서, 동시에 두려움 없이,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양심의 명령에 따라 쏘비에트 공화국의 시민이 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파씨즘에 대항하는 애국 전쟁 시기의 종교 기관

 

17. 위대한 애국 전쟁 기간 중에, 종교 기관들은 인민들과 일치단결해서 히틀러 제국주의자와 맞서 싸웠다. 종교 지도자들은 오직 쏘비에트 정부만이 히틀러 침략자들로부터 협박당하는 정교회를 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침략자들은 성직자에게 그들이 확립한 ‘신질서’를 칭송하는 설교를 하도록 압박했다. 종교 지도자와 신도들은 파씨스트가 러시아를 지배하기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나찌 군인들은 수도원과 교회들을 파괴하고 약탈했다.

 

18. 전쟁 기간 동안에, 종교 기관들은 쏘비에트 정부를 전적으로 지지ㆍ지원했다. 교인들에게 호소하고, 비행기ㆍ탱크 생산을 위해 모금 활동을 하고, 전선에 선물을 보내고, 고아ㆍ병자ㆍ부상병ㆍ장애인 등을 보살폈다. 쓰딸린은 여러 종교 기관의 대표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정교회와 다른 여러 종교 기관들은 인민들과 함께 평화를 위해서 ‘전쟁 선동가’와 맞서 싸웠고, 다른 나라와의 우호ㆍ친선을 도모했다.

 

 

쏘련에서 종교의 자유

 

19. 종교 기관들은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종교적 활동을 한다. 러시아 정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카톨릭, 루터교, 불교, 침례교 등은 그들 각각의 종교적 예배ㆍ의식을 주기적으로 드리고, 전통적인 교회 타종을 한다. 종교 간행물ㆍ서적ㆍ경전ㆍ기도서ㆍ교회 달력 등을 자유롭게 발행한다. 종교 인쇄물들은 영어ㆍ독어ㆍ불어 등으로 출판되기도 한다. 종교적ㆍ반종교적 간행물 등은 모두 국영 인쇄소에서 발행된다.

 

20. 모든 종교 기관들은 종교인들의 자발적인 단체다. 운영비는 교인들의 헌금, 초와 향유 등과 같은 종교적 물품 판매 그리고 세례ㆍ주례ㆍ장례식 사례금 등으로 충당된다. 20,000개 이상의 정교회가 종교 활동을 하고 있고, 모쓰끄바에 있는 정교회 본부는 미국, 중국, 프랑스, 독일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정교회를 지부로 두고 있다.

 

21. 정교회는 성직자 학교(Ecclesiastical Schools), 학술원과 신학교 등을 여러 도시에서 운영하고 있다. 수십 개의 수도원과 수녀원도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 적당한 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사와 수녀들은 농사를 짓고 수공예품들을 만들면서 생활을 꾸려 나간다. 땅이 없는 종교 기관들은 신도들의 헌금에 의존한다. 휴가철에는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수도원ㆍ수녀원을 찾는다.

 

22. 외국의 종교 단체 대표들은 여러 종교 기관 그리고 수도원ㆍ수녀원을 자유롭게 방문한다. 영국 퀘이커(The Quaker) 대표단의 보고서 내용 중 일부다: 쏘련에서 교회와 학교는 분리되어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받지 않는다. 시민들은 기도처(Prayer House)에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으면서, 또는 그들 각자의 집에서 종교적 교육과 훈련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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