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책 소개(8)] ≪레닌의 종교론(Religion by Lenin)≫

 

김병기 | 회원

 

* 원문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ciml.250x.com/archive/lenin/english/lenin_on_religion_1.pdf

 

 

유물론과 관념론은 서로 적대적인 세계관이다. 무신론의 사상적 기반은 유물론이고, 유신론의 사상적 기반은 관념론이다. 사회주의의 철학적 토대는 유물론이 과학적으로 발전한 변증법적 유물론이고, 종교의 철학적 토대는 주ㆍ객관적 관념론이다. 지배ㆍ착취당하는 노동계급의 철학은 변증법적 유물론이고, 지배ㆍ착취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철학은 관념론이다. 다양한 종교 집단 모두가 반공ㆍ보수적이고, 언제나 지배ㆍ착취 세력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의 관념론에 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공산주의)와 종교는 서로 적대적이다.

사회주의자는 종교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나? 노동계급 정당인 사회주의당은 종교에 대해서 어떤 강령적인 입장을 선언해야 하나? 프롤레타리아 정부는 종교에 대해서 어떤 정책을 집행해야 하나? 계급 의식이 결여된 노동자는 왜 종교에 빠져들고 의지하나? 종교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맑스주의자와 기회주의적인 무정부주의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종교 지도자가 입당하기를 원하면 받아 주어야 하나? 종교의 멍에로부터의 해방은 가능한가? 종교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라는 견해는 맑스주의자에게도 타당한 것인가? 등등의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논리적 관점과 입장들이 소개하는 책에 있다.

≪레닌의 종교론(Religion by Lenin)≫(49쪽, 1933년)에는 1902–1922년 사이에 레닌이 썼던 논문과 편지들 8편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종교적 관점을 확산시키는 관념론 철학을 폭넓게 분석ㆍ비판한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레닌은 1908년에 저술했다.

8편 중에서 널리 알려진 글은 “사회주의와 종교”(1905년) 그리고 “종교에 대한 노동당의 입장”(1909년)이다. 레닌은 여기에서 종교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포괄적인 견해와 근본적인 입장을 피력한다. 반종교적인 투쟁은 사회주의당의 중요한 사상 투쟁이지만, 종교 투쟁은 언제나 계급 투쟁의 이익에 먼저 복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후자가 전자보다 상위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레프 똘쓰또이―러시아 혁명의 거울”(1908년)은 흥미로운 논문이다. 이 글에서 레닌은 똘쓰또이가 러시아의 노동계급 운동과 혁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의 작품에서 드러난 이중적인 태도와 모순들에 있고, 그런 모순적인 입장은 19세기 후반 러시아 농촌 사회 상황의 반영이라고 한다.

“막씸 고리끼에게 보낸 두 편의 편지”(1913년)도 흥미롭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이 실패한 뒤에 ‘구신(求神, God-seekers)’ 그룹[1][편집자 주] 1905년 혁명이 실패한 이후, 드미뜨리 메레쥐꼬프쓰끼(Dmitry Merezhkovsky), 미하일 불가꼬프(Mikhail Bulgakov), 니꼴라이 베르쟈예프(Nikolai Berdyaev) … Continue reading 이 (그들 중에는 레닌과 가까웠었던 동지들도 있었다) 고리끼 주위로 몰려들었다. 편지는 그들이 설교하는 ‘사회주의의 정서적 다양성’(Emotional Variety of Socialism)이라는 종교적 경향을 비판했다.

“공산주의자와 종교적 윤리”(1920년)에서 공산주의자는 윤리와 도덕을 거부한다는 부르주아의 비난을 레닌은 정면으로 반박한다: 공산주의자는 신의 계명과 관념론에 기반한 부르주아의 윤리ㆍ도덕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이익에 복무하고자, 노동계급 투쟁을 지지ㆍ옹호하는 윤리와 도덕만을 받아들이고 실천한다.

종교 문제에 관해서 엥엘스와 레닌은 ‘종교와 국가’ 그리고 ‘종교와 학교’의 완전한 분리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국가는 모든 종교를 사적인 문제로, 그리고 종교 기관들을 사적인 단체로 다루어야 한다. 교회와 종교 기관은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없고, 학교 교육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반면에, 맑스주의와 사회주의당은 종교를 사적인 문제로 간주하면 안 된다. 무계급적 의식을 조장하는 종교적 미신ㆍ편견과 싸우는 것은 프롤레타리아당의 중요한 사상 투쟁이기 때문이다. 사상 투쟁은 결코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자. 한국은 형식적으로는 공인된 국교가 없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세속주의 국가다. 내용적으로도 그런가? 수많은 종교ㆍ사학 재단들이 국가로부터 다양한 세제 혜택과 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종교 재단들은 학교 교육에 종교 교육과 예배를 포함할 만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실질적으로 한국 사회는 국가와 종교가 서로 긴밀하게 결합된 사회다. ‘정교 분리’의 사회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엥엘스ㆍ레닌의 입장과 심하게 어긋난다. 게다가, 한국 사회의 성인 남녀 대다수는 다양한 종교 기관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무당을 불러 굿을 한다. 점을 보러 점집에 가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다양한 종교적 활동의 확대는 반공ㆍ보수적인 사고를 확장한다. 반대로, 맑스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은 왜곡ㆍ거부ㆍ축소된다. 이런 의미에서, 무신론을 지지ㆍ옹호하는 조직적인 운동과 반종교적인 투쟁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아래는 소개하는 책의 요약이다.

 

 

서문

 

1. 맑스주의와 무신론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변증법적 유물론자인 맑스와 엥엘스는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종교적 세계관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했다. 유럽 노동 운동 초기에 노동 대중은 종교를 외면했다. 1844년, 맑스는 “종교 비판은 모든 비판의 시작이다”라고 단언했다. 1874년, 엥엘스는 “유럽의 노동당에서 무신론은 실질적으로 인정된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1909년, 레닌은 “사회민주주의자는 당연히 무신론자”라고 말했다.

 

2. 독일 사회민주당의 첫 번째 강령인 아이제나흐 강령(Eisenach Programme, 1869년)은 교회를 국가로부터 분리시키는 ‘정교 분리’를 선언했다. 올바른 입장이다. 그러나 고타 강령(Gotha Programme, 1875년)에서 ‘종교는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었다. 기회주의적인 입장이다. 에르푸르트 강령(Erfurt Programme, 1891년) 역시 ‘교회와 종교 기관을 사적인 단체’로 간주했다.

 

3. 에르푸르트 강령이 작성되기 전에, 엥엘스는 자신의 입장을 전달했다: 국가는 종교를 사적인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국가는 모든 종교 기관을 예외 없이 사적인 단체로 간주해야 한다. 교회와 종교 기관은 정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없고, 학교 교육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당과 맑스주의는 종교를 사적인 문제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독일 사민당은 종교에 대한 엥엘스의 입장을 무시했다. 당원들에게는 1901년 10월까지 비밀로 했다.

 

4. ‘종교는 사적인 문제’라는 입장은 실제에 있어서는 이렇게 해석되었다: 당은 당원이 종교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개의치 않는다. 맑스주의는 종교와 대립하지 않고, 반종교적이 아니다. 노동 대중에게 종교적인 미신을 확산시키는 독일 사민당의 종교에 대한 이런 기회주의적 입장은 미국 사회당과 영국 독립노동당 등을 비롯해 다른 여러 나라의 사민당에도 영향을 끼쳤다. 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의 지지를 얻기 위해 유럽 사민당의 기회주의자들은 맑스주의를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원칙인 세속주의, 즉 비종교적인 입장을 포기했다.

 

5. 러시아 공산당 강령(1919년)의 입장: 위에서 언급된 ‘엥엘스의 입장’을 지지했다. 당은 착취계급과 종교적인 조직 간의 밀접한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킨다. 종교적 편견으로부터 노동자를 해방시키기 위해, 당은 과학적이고 반종교적인 선전을 광범위하게 조직한다.

 

6.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강령(1928년)의 입장: 종교와의 전투는 매우 중요한 문화 혁명이다. 프롤레타리아 정부는 착취계급의 기관인 교회에 대한 국가 지원을 중지한다. 학교 교육에 대한 교회의 간섭을 차단한다. 종교 기관의 반혁명적인 활동을 진압한다. 예배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종교 기관의 특권은 폐지한다. 과학적 유물론에 근거해서 반종교적인 선전과 교육을 조직한다.

 

 

사회주의와 종교(1905년),

종교에 대한 노동당의 입장(1909년)

 

7. 현대 사회는 소수의 자본가와 지주계급이 노동 대중을 착취한다. 이런 경제적 억압이 노동자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강등의 근원이다. 노동 대중은 정신적ㆍ도덕적으로 점점 더 타락한다. 종교는 궁핍과 소외감으로 짓눌린 노동 대중에게 가해지는 정신적 억압이다.

 

8. 미개인은 자연과 싸울 때 의지할 데 없는 무력감을 경험한다. 그들이 신ㆍ악마ㆍ기적 등을 믿기 시작한 이유다. 착취자에 맞서는 피착취계급 역시 의지할 데 없는 무력감으로 시달린다. 죽고 난 이후의 멋진 삶을 꿈꾸고 바라고 믿는 이유다. 이 세상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민중에게 종교는 체념하고 인내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저 세상인 내세에서 크게 보상받을 거라고 위로한다.

 

9. 계급 의식이 있는 노동자는 그런 종교적 기만과 사기를 경멸한다. 과학적 인식으로 무장한 노동자는 종교적 미신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종교 지도자와 부르주아 위선자들에게 내세의 ‘천국’을 넘겨준다. 이 세상에서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싸운다. 그런 계급 투쟁 과정에서 내세의 달콤한 삶에 현혹되어 있는 동료 노동자를 해방시킨다.

 

10. 맑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단언했다. 종교에 대한 맑스주의의 근본적인 입장이다. 맑스주의는 모든 교회ㆍ종교 기관 등은 노동자의 계급 의식을 마비시키고, 부르주아의 착취를 방어하고 보장하는 도구로 간주한다.

 

11. ‘종교는 사적인 문제’라는 명제에서 우리 사회주의자는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종교는 국가 차원에서는 사적인 문제다. 그러나 당 차원에서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 당은 계급 의식으로 무장된 노동 해방 투사들의 동맹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적 신앙의 무계급적인 의식에 무관심할 수 없다. 종교적 미신ㆍ편견과 싸우는 것은 프롤레타리아당의 중요한 사상 투쟁이다. 그런 사상 투쟁은 결코 사적이고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12. 그렇다면, 왜 우리는 당 강령에서 우리가 무신론자임을 선언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종교인과 신을 믿는 사람들의 당 가입을 금지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이렇다: 우리 당 강령의 토대는 무신론을 흔들림 없이 선전ㆍ지지ㆍ옹호하는 과학적 유물론이다. 우리는 종교적 문제를 계급 투쟁과 관련이 없는, 즉 관념적인 추상적인 문제로, 순수한 이성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급진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자의 태도다. 단순하게 설교와 논쟁을 통해서 종교적 편견을 타파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부르주아의 좁은 시야는 종교적 억압이 경제적 억압의 산물이고 반영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13. 우리는 언제나 과학적인 세계관을 앞세우면서 종교인의 비과학적인 세계관과 싸운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인 문제를 투쟁의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혁명적인 경제적ㆍ정치적 투쟁이 1등급 투쟁이라면 무신론과 관련된 종교적 투쟁은 3등급 투쟁이다. 반동적인 부르주아는 여기저기에서 종교적 증오를 불러일으키면서 노동 대중에게 종교적인 투쟁을 부추긴다. 언제나 노동 대중의 관심을 중요한 정치ㆍ경제 문제로부터 종교 문제로 돌리려고 한다. 짜르 경찰이 조직한 ‘흑백인조의 유대인 학살(Black Hundred pogroms)’은 좋은 예다.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 세력을 분열시키려는 반동적인 전술이다.

 

14. 엥엘스는 무신론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면서 ‘종교 전쟁’을 꾀하려는 자칭 혁명가들을 무정부주의자ㆍ모험주의자라고 비난했다. 1874년, 영국 런던에 모여든 블랑끼주의(Blanquist) 망명가들은 무신론을 앞장세우면서 종교와의 전쟁을 시도했다. 엥엘스는 그런 입장은 종교에 대한 관심을 없애기보다 더욱 크게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했다. 노동계급의 혁명적이고 구체적인 실천만이 피착취계급을 종교의 멍에로부터 진정으로 해방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분별없는 종교 투쟁을 무정부주의자의 입장이라고 비판했다.

 

15. 1877년, 엥엘스는 ≪반뒤링론≫에서 관념론과 종교에 대한 뒤링의 타협적인 태도를 ‘일관성 없는 유물론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뒤링이 종교는 사회주의당에서 금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자, 사이비 혁명가의 입장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엥엘스는 프롤레타리아당은 차분하고 인내심 있게 반종교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조직하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무분별하게 무정부주의적이고, 모험주의적인 종교 투쟁에 휘말려 들지 말라고 충고했다.

 

16. 18세기 백과전서파(encyclopaedists)와 포이에르바흐의 유물론은 종교를 사정없이 비판했다. 맑스ㆍ엥엘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들의 유물론을 넘어선다. 유물론적 철학을 역사와 사회 과학에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종교와 투쟁하는 것은 유물론과 맑스주의의 AㆍBㆍC다. 그러나 맑스주의는 그런 AㆍBㆍC 수준에 딱 멈춰서는 유물론은 아니다. 맑스주의는 그런 수준을 넘어선다: 우리는 종교와 투쟁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투쟁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는 먼저 종교와 신앙이 인민 대중에게 널리 퍼지는 이유를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밝혀내야만 한다.

 

17. 종교를 반대하는 투쟁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설교로만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반종교적 투쟁은 종교의 사회적 뿌리를 뽑아내는 구체적인 계급 운동과 결합되어야만 한다. 종교의 영향력이 농민ㆍ반(半, Semi)프롤레타리아ㆍ도시 노동자의 후진 계층에서 특히 강한 이유는 무엇인가? 진보적인 부르주아와 부르주아 유물론자의 대답은 이렇다 ― 그들이 무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친다: ‘종교를 타도하자’, ‘무신론 만세’.

 

18. 맑스주의자는 그런 대답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종교의 뿌리와 근원을 유물론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관념론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의 토대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성격을 갖는다. 현대 종교의 뿌리는 노동 대중의 사회적ㆍ정치적 억압에 깊이 박혀 있다. 노동자와 소부르주아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심한 무력감을 매일 경험한다. 언제든지 예기치 않게, 그들의 삶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궁핍으로 거지가 되고, 매춘부가 되고, 굶어 죽을 수 있다는 무서운 공포가 그들을 종교에 의지하게 만든다. 이것이 현대 종교의 근본적인 뿌리다. 노동 대중은 자본주의와 맞서 싸울 때, 진정으로 종교적 미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유물론자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 반종교적인 교육과 선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래전에 엥엘스도 18세기 말의 전투적인 무신론 문학을 대량으로 대중에게 배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무신론을 선전ㆍ선동하는 것은 근본적인 투쟁 사업이 아니고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투쟁 사업이다. 착취자에 대항하는 피착취 대중의 계급적 이익을 확대ㆍ강화시켜 나가는 경제ㆍ정치적 계급 투쟁이 근본적인 투쟁 사업이다.

 

20. 예를 든다. 어느 지역에 두 개의 노동자 조직이 있다: 하나는 계급 의식이 높은 선진 노동자 그룹이다. 그들은 무신론자다. 다른 하나는 후진 노동 대중인 기독 노동자 연맹이다. 그들은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신)을 믿는다. 파업이 일어났다고 가정하자. 맑스주의자는 파업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파업의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무신론자와 유신론자라는 사상적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파업 현장에서, 선진 노동자가 앞뒤 가리지 않고 무신론을 선전ㆍ선동한다면, 그것은 파업 승리라는 계급 투쟁의 관점에서 매우 불필요하고 해로운 투쟁 자세다. 어떤 상황과 희생 속에서도, 무신론을 설교하려는 무정부주의적인 태도는 결과적으로 언제나 교회와 자본가를 돕는다. 그러므로 변증법적 유물론자는 구체적인 계급 투쟁 현장에서 무정부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입장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21.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성직자가 가입하기를 원하면 사회민주당은 받아들여야 하는가? 대답은 긍정적이다. 만약에 그 성직자가 당 강령에 반대하지 않고, 당 사업을 성실하게 실천한다면, 우리는 그를 당원으로 받아들인다. 틀림없이 당 강령의 원칙과 그의 종교적 신념 사이에 커다란 모순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모순은 전적으로 성직자 개인의 문제이고, 그 자신이 당 활동을 하면서 해결해 나가야 할 모순이다. 그러나 당 사업 중에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선전ㆍ선동한다면, 당연히 당은 그를 징계하고 제명한다.

 

 

레프 똘쓰또이―러시아 혁명의 거울(1908년)

 

22. 사물을 올바르게 비추지 않는 거울은 거울이라고 할 수 없다. 똘쓰또이의 입장ㆍ신조에는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모순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인의 생활을 천재적으로 표현하는, 세계 최고의 문학을 저술하는 위대한 예술가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사로잡혀 있는 지주의 모습이다. 한편으로는, 자본가의 착취를 무자비하게 비판한다. 문명사회의 업적과 노동 대중의 궁핍ㆍ악화ㆍ고통이라는 심각한 모순의 가면을 벗겨 낸다. 다른 한편으로는, 얼빠진 사람처럼 폭력으로 악에 저항하지 말고, 굴복하라고 설교한다. 한편으로는, 온갖 종류의 위선적인 가면을 찢고, 벗겨 내는 사실주의 작품을 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혐오해야 할 것들 중의 하나인 종교와 교권주의를 설교한다.

 

23.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런 모순들 때문에 똘쓰또이는 노동계급 운동, 사회주의 운동에서 노동계급의 역할, 그리고 더 나아가서 러시아 혁명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똘쓰또이의 모순적인 입장과 신조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모순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입장이다. 농노의 신분에서 해방된 가부장적인 시골은 지주와 세금 징수원들에게 심하게 약탈당했고, 농민의 삶과 경제 토대는 급속하게 무너져 내렸다.

 

24. 부르주아 혁명이 다가오는 러시아에서, 똘쓰또이는 수백만 러시아 농민의 생각과 정서를 뛰어나게 표현했다. 교회와 지주에 대항하고, 경찰국가 대신에 자유롭고 동등한 농민 공동체를 염원했던 농민 부르주아 혁명은 똘쓰또이 작품의 내용과 비슷하다. 소수의 농민은 그 혁명을 위해 무장했다. 그러나 다수의 농민은 기도하고, 몽상하고, 청원 운동만을 했다. 똘쓰또이 사상은 러시아 농민 반란의 그런 약함과 약점의 거울이다. 가부장적인 농촌 사회의 무기력함과 진취적인 농민의 소심함의 반영이다.

 

 

공산주의자와 종교적 윤리(1920년)

 

25. 공산주의자에게 윤리와 도덕은 있는가? 물론 당연히 있다. 그런데 부르주아는 공산주의자는 윤리와 도덕을 거부한다고 비난한다. 노동자와 농민의 눈에 먼지를 뿌려 대는 태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윤리와 도덕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신의 계명과 관념론에 기반한 부르주아의 윤리ㆍ도덕을 우리는 철저하게 거부한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착취자계급인 성직자ㆍ지주ㆍ부르주아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신을 찾고, 부르고, 모신다는 사실 때문이다.

 

26. 우리는 초인간적이고 초계급적인 윤리와 도덕 역시 거부한다. 그런 윤리와 도덕은 자본가와 지주의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와 농민을 기만하고, 속이고,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농민을 억압했던 러시아 자본가와 지주계급은 노동계급의 혁명적인 투쟁으로 타도되었다. 인간 사회를 초월하는 윤리ㆍ도덕 같은 것은 없다. 이미 역사가 그것을 입증했다. 공산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투쟁을 지지ㆍ옹호하는 윤리와 도덕만을 받아들이고 실천한다. 우리의 윤리와 도덕은 전적으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익에 복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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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 [편집자 주] 1905년 혁명이 실패한 이후, 드미뜨리 메레쥐꼬프쓰끼(Dmitry Merezhkovsky), 미하일 불가꼬프(Mikhail Bulgakov), 니꼴라이 베르쟈예프(Nikolai Berdyaev) 등이 처음에는 ‘새로운 종교 의식(New Religious Consciousness)’이라는 이름으로, 이후에는 ‘러시아 종교-철학 부흥(The Russian Religious-Philosophical Renaissance)’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신과 인간, 하늘과 땅, 영과 육의 통합을 추구했던 이들 그룹은 보고이쓰까쩰리(Bogoiskateli) 즉, 구신주의자들(求神主義者, God-seekers)이라 불렸다. 이 경향의 대표적 사상가인 드미뜨리 메레쥐꼬프쓰끼는 “똘쓰또이는 육(肉)의 종교적 관조자이고, 도쓰또예프쓰끼는 영혼의 관조자인데, 이 둘은 영구히 대립하나, 한쪽은 육(肉)의 영화(靈化)를, 한쪽은 영(靈)의 육화(肉化)를 시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통합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내에서도, 맑스주의와 종교를 통합하려는 흐름이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알렉싼드르 보그다노프(Alexander Bogdanov), 아나똘리 루나차르쓰끼(Anatoly Lunacharsky), 블라지미르 바자로프(Vladimir Bazarov), 막씸 고리끼(Maksim Gorky) 등이 있고, 1909년 출판된 고리끼의 소설 ≪고백(The Confession)≫은 이 경향의 대표적 저작이다. 레닌은 이들을 구신주의자들에 빗대어, 보고쓰뜨로이쩰리(Bogostroiteli), 즉 창신주의자들(創神主義者, God-builders)이라고 불렀다. 창신주의 경향에 대한 레닌의 비판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그리고 여기 소개하고 있는 ≪레닌의 종교론(Religion by Lenin)≫에도 실린 “막씸 고리끼에게 보낸 두 편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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