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세] 신종 코로나 대유행 시국 감상

 

채만수 | 소장

 

* 이 글은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이 발행하는 ≪현장과 광장≫ 제3호(2020년 11월)에 실린 글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뷔드-19(COrona VIrus Desease-19)로 명명하고, 국내에서는 코로나-19로 불리는, 신종 코로나 봐이러스에 의한 대역병이, 국내에서는 지난 2월 말-3월 초에 비해서 현저히 누그러졌지만, 세계적으로는 아직도 극히 무서운 기세로 번져나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와 기능ㆍ운동의 많은 것들, 특히 그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것들을, 악의에 의해서든, 즉 목적의식적으로든, 선의에 의해서든, 즉 무지에 의해서든, 신비화하고 은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사회에서는 언제나 악의 혹은 선의에 의한 수많은 기담괴설이 횡행할 수밖에 없는데, 그 체제의 모순이 극히 첨예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현 시국, 즉 코로나 봐이러스에 의한 대역병이 그 체제의 모순의 폭발을 더욱 급성적으로 몰아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들 기담괴설은 한층 더 기괴한 형태로 횡행하고 있다.

주요한 몇 가지를 간단히 감상해보자.

 

 

경제위기

 

지금(2020년 7월 말)까지 미국에서는 … 경제가 전혀 전례가 없는 고용과 생산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3개월 동안에 이전에는 고용되어 있던 약 5천만 명이 실업수당을 신청했다. … 4월에 노동통계국(BLS)의 공식 실업률은 14.7퍼센트였지만, 분류상의 오류 때문에 750만 명이 실업자로 계산되지 않았다. 그들을 포함하면, 실업률은 19.3퍼센트였을 것이다. 그리고 비자발적으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포함시키면, 노동시장 불안정의 규모는 25퍼센트 이상이다. 2020년 5월과 6월에 그 률은 약간 하락했지만, 노동시장 불안정의 실제 량은 여전히 20퍼센트 이상이었다.[1]Michael D. Yates, “코뷔드-19, 대경제불황, 그리고 흑인 생명문제 시위: 이 3중의 위기는 미국에서 노동계급의 봉기를 야기할 것인가?(COVID-19, Economic … Continue reading

 

25퍼센트 혹은 20퍼센트를 넘는 실업률! 코뷔드-19 팬데믹(pandemic)이라는 상황에서 세계 최강, 최고 부자 나라인 미국이 현재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한 단면이다. 물론 미국만이 아니다. 사실상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와 유사한, 혹은 그보다 더 심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여기 한국도 파산으로 내몰리는 자본들을 구제하고, 몰락하는 자영업자들과 실업ㆍ임금삭감으로 그 고통이 배가되고 있는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해서 거듭거듭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이른바 ‘긴급재난지원금’을 살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빠져 있음은 우리 모두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있는 그대로다.

그런데 자본주의 세계 전체를 휩쓸고 있는 이 거대한 경제위기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일까?

소수 다른 목소리가 없진 않지만, 대대적으로 대중에게 주입되고 있는, 그리하여 대중의 사고를 사실상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주지하자시피,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즉, “코로나-19로 인한”! 혹은, 국제적인 용어로는, “코뷔드-19로 인한”!

몇몇 발언을 예로 들어보면,

1) 지난 5월 3일 한국방송(KBS)은 “일요진단”이라는 시간에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강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부원장,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등 “경제 전문가 세 분과 함께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적인 파장 그리고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분야별로 냉정하게 진단해 보는[데]”(사회자 박태서. 밑줄에 의한 강조는 인용자. 다른 말이 없는 한, 이하 동일), 그 좌담의 제목이 아예 “코로나19발 경제위기…진단과 대책은?”[2]news.kbs.co.kr/news/view.do?ncd=4458866. 참고로,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적인 파장”과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 혹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 Continue reading이다. 즉, 현재의 경제위기는 코로나-19로 인한 것이라는 전제 하에 ‘진단’하고 있다. 그리고 1시간에 가까운 장시간의 ‘진단’ 중에 ‘경제 전문가 세 분’ 누구도 이 전제에 대하여 일언반구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 다름 아니라, ‘경제 전문가 세 분’이 보시기에도 현 경제위기는 코로나-19로 인한 것이라는 뜻이다!

2) 진보 ≪한겨레≫는 “‘코로나로 GDP 67조 날아가고, 일자리 67만개 사라질 위기’”[3]www.hani.co.kr/arti/economy/marketing/959312.html. (조계완 기자. 2020. 8. 25.) 라는 기사에서 “민간연구기관인 현대경제연구원”이 8월 25일에 발표한 “‘코로나19 충격의 경제부문별 영향’ 보고서”[4]이어서 소개하는 ≪조선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이 보고서의 제목은 “COVID-19 충격의 경제 부문별 영향과 시사점”인 것 같다.를 “현재로선 ‘코로나19와 함께 한 7개월’ 동안의 한국 경제에 관한 가장 꼼꼼한 종합검진표라 할 만하다”며 소개하면서, 현 경제위기를, 필시 그 ‘보고서’에 따라서, “공황이나 금융위기 같은 경제적 요인이 아니라 전염병이라는 외부 충격에서 비롯된 이번 ‘코로나 위기’” 운운하고 있다. 즉, 현재의 경제위기는 전적으로 코로나-19 전염병이라는 “외부 충격”으로 인한 위기이라는 뜻이다!

3) 극우 ≪조선일보≫ 역시 8월 25일 “코로나로 올해 경제 손실 67조원… 사라지는 일자리 67만개 넘어”[5]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5/2020082501451.html. (권유정 기자.) 라는 제목의 기사로 ‘현대경제연구권’의 같은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마찬가지로 “코로나 경제 위기가 가시화 …” 운운하고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라는 뜻이다.

4) 이 사회에서는 제법 ‘진보적’인 시민단체로 통하는 ‘경실련’ 역시 ≪월간경실련≫ 2020년 5, 6월호 “특집, …” 중 박상인 경실련 정책위원장(서울대 교수)의 “코로나19발 경제 위기와 정책대응”[6]ccej.or.kr/61674. (2020. 06. 04.) 이라는 글에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위축되는 실물위기가 발생 …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가 향후 어느 정도 확산될지는 세 가지 요인에 달려 있다.” 운운하고 있다. 명백히,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경제위기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5) “국내외 산업과 무역통상 분야를 서로 연계하여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국책연구기관”임을 자임하는 ‘산업연구원(KIET)’의 관점도 다르지 않다. ‘산업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는 KIET 산업정책 리포트, I-KIET 산업경제이슈”(제90호, [2020-15], 2020. 8. 27.)의, 강두용 동향분석실 산업연구위원이 작성한, “이번 위기는 다르다: 코로나발() 경제위기의 특이성과 정책적 함의”[7]www.kiet.re.kr/kiet_web/?sub_num=9&state=view&idx=56748.라는, 제목에서부터 “코로나발() 경제위기”를 명시하고 있는 ‘보고서’에서, 행여 오해라도 있을까봐 “이번 코로나 경제위기는 몇 가지 점에서 과거의 경제위기와 크게 다르며, 그 차이를 인식하는 것은 효과적인 정책 대응을 위해서도 중요. / 첫째, 주로 경제적 요인에서 비롯된 과거의 경제위기와 달리, 이번 위기는 감염병 위협에서 비롯된 세계 경제위기”라거나, “주로 경제적 요인들에서 비롯된 과거의 경제위기와 달리, 이번 위기는 감염병 위협으로 일부 경제활동이 마비되어 발생” 등등으로 현재의 경제위기가 ‘코로나-19로 인한’ 것임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다.

6) 정부 소속기관의 관점 하나만을 더 소개하자면, “사회복지사업법에 의거, 설립된 사회복지 공익법인으로서, 민간 사회복지 증진을 위한 협의조정, 정책개발, 조사연구, 교육훈련, 자원봉사활동의 진흥, 정보화 사업,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사업수행을 통해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증진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임하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는 그 이름에서부터 ‘진보적’일 것 같은 냄새가 풀풀 나는 기관이다. 바로 이 기관이 지난 5월 6일, 역시 ‘진보적’이라고 호가 난 지식인들과 함께 “‘경제위기와 사회안전망’이라는 주제로 언택트 정책토론회”를 갖는데, 그 토론회를 인터넷에 게재한 제목 자체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실마리 찾다”[8]www.bokj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25. (이경하 기자. 2020. 06. 15.) 다! 그중 발언 하나를 소개하자면, ― “외환위기 때는 기본적으로 외환에서 문제가 시작됐고, 금융권으로 옮아갔고, 금융권에서 기업으로, 기업에서 사람들의 생계까지 가는 과정이었던 같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는 기본적으로 실물이다.”(이원재 LAB2050 대표) 이러한 발언에 어떤 이의도 제기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필시 모두 공유ㆍ공감하고 있는 인식이었을 터이니까!

7) 정부의 인식ㆍ발언도 물론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예컨대, 대대적으로 선전ㆍ보도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의 “종합계획”(2020. 07. 14.)도 바로 그러한 인식을 표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즉, “I. 추진배경”에서 “1. 왜 한국판 뉴딜이 필요한가?”라고 물은 후, “우리 경제는 패러다임 전환 추진 과정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극심한 경제침체 극복 및 구조적 대전환 대응이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 혹은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충격이 대공황 이후 전례없는 경제침체 초래”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현재의 경제위기가 코로나-19라는 대역병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ㆍ인식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말 그대로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물론 국내에서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물론 그렇다.

세 개의 예만 소개하자면,

우선 위키피디아(WIKIPEDIA)는 “COVID-19 recession”이라는 표제 하에, “COVID-19 recession은 어떤 나라들에서는 (단기적) 경기침체(recession)를 야기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들에서는 (대공황적) 불황(depression)을 야기하고도 있는, 현재 진행 중인 심각한 세계적 경제위기다.” 하고 시작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국제통화기금(IMF)도, “세계적인 코로나 봐이러스 팬데믹은 유례가 없는 세계적 경제 위기를 유발하고 있다.”[9]www.france24.com/en/20200624-imf-says-covid-19-sparks-global-economic-crisis-like-no-other. (2020. 06. 24.) 고 말하고 있고, 세계은행(The World Bank) 역시 “팬데믹에 의해서 격발된 심대한 경제침체(the deep recessions triggered by the pandemic)”[10]www.worldbank.org/en/news/feature/2020/06/08/the-global-economic-outlook-during-the-covid-19-pandemic-a-changed-world 운운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현 경제위기의 원인을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라는 대역병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까닭 혹은 논거를 사실상 이구동성으로 이른바 록다운(lockdown) 혹은 격리(quarantine)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통칭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로 인한 생산과 소비 활동의 제약에서, 그리고 혹은 그러한 제약에 대한 공포로 인한 주식 투매에 따른 금융시장의 교란에서 찾으면서, 이 위기로부터의 회복은 장기간을 요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세계적 경제위기는 코로나-19라는 대역병으로 인한 것인가? 그리고 또 그 때문에 그 회복은 장기간을 요하는 것일까?

우선, 과연 그 회복이 장기간을 요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현재로서 나는 단언할 수 없다. 혹은, 앞에서 ≪먼쓸리 뤼뷰≫의 편집고문 마이클 D. 예이츠(Michael D. Yates)가, “이 3중의 위기는 미국에서 노동계급의 봉기를 야기할 것인가?” 하고 물을 때에 희미하게나마 상상할 수도 있는 것, 즉, 현재의 경제위기로부터의 회복은커녕, 노동자계급의 봉기ㆍ혁명에 의해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그 생을 마감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조차도 현재로서 나는 도저히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적 대경제위기가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라는 대역병 혹은 팬데믹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있다. 그러한 주장들은, 그것이 악의에 의한 것, 즉 모종의 목적의식에 의한 것이든, 선의 즉 무지에 의한 것이든, 실로 기담괴설에 불과하다고! 실제의 원인을 은폐하는 대중기만이라고!

그렇다고 해서 물론,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라는 대역병 혹은 팬데믹이 현재의 경제위기에 어떤 악영향도 미치지 않고 있다든가, 또는, 미미한 혹은 심각하지 않은 영향밖에 미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적인 파장은 매우 심각하고, 그리하여 그것은 부정되거나 경시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적인 파장, 나아가 그 파장의 심각함, 즉 그것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심각하게 격화시키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현재의 경제위기는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라는 대역병 혹은 팬데믹으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현재처럼 심대한 경제위기와 대역병 혹은 팬데믹이 동행하고 있는 사태는, 저들이,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사상 유례가 없는” 사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회복까지는 장기간을 요할’ 수도 있고, 물론 그러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할 만큼 희박하지만, 심지어는 노동자계급이 서둘러 주체적 역량을 정비한다면, 자본주의를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버릴 혁명의 가능성조차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위기는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라는 팬데믹에 의한 것이며, 그 때문에 사상 유례가 없다’고 주장하게 되면, 문제는 완전히, 완전히 달라진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라는 팬데믹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현재의 경제위기는, 앞에서 본 것처럼, 저들이 이구동성으로 ‘논증’하고 있는 이른바 “록다운 혹은 격리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통칭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생산과 소비 활동의 제약그러한 제약에 대한 공포로 인한 주식 투매에 따른 금융시장의 교란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고는 있었지만, 그 역병의 규모나 그로 인한 피해가 현재의 그것에는 비할 바 없이 작았던 지난 3월이나 4월, 5월, 6월, 심지어는 2월에 이미 저들이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로 인한 경제위기’를 단언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히, 팬데믹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생산 및 소비 활동의 제약과 그에 대한 공포로 으레 경제위기를 야기하는 것이라는 저들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11]예컨대, 10월 5일 현재로 누적 감염자수와 사망자수는 세계적으로 각각 3,564만 명과 104만 명을 훨씬 넘고 있다. 그에 비해서 세계보건기구에 의해서 … Continue reading 그러한 확신이 없고서야 그토록 초기에 어떻게, 발발하고 있는 경제위기는 그 역병으로 인한 것이라고 단언하고 나설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저들의 그러한 확고한 믿음이 저들의 무근거한 독단이 아니라 진실이라면, ‘현재의 그것과 같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위기’는, “사상 유례가 없는” 사태가 아니라, 20세기 이후에만도 여러 차례 겪어야만 했던 사태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20세기에는, 주지하는 것처럼, 여러 차례의 팬데믹[12]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이라고 선언했든, 아니든 상관없이 ‘세계적으로 대유행한 전염병’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의 팬데믹.이 발생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즉, ‘현재의 그것과 같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결코 여러 차례 겪지 않았다.

저들이 오늘날의 사태를 가리켜 “사상 유례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물론 실제로 그러한 전례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들이 그렇게 말할 때, 즉, “사상 유례가 없다”고 말할 때, 우선 저들은 20세기의 역사를 제멋대로 황당하게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에는 팬데믹이 없었다”고! 왜냐? 저들의 확신에 따르면, 팬데믹은 반드시 경제위기를 야기하는 것인데, “사상 유례가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혹은, 저들이 20세기의 역사를 역사 그대로 인정한다면, 즉 여러 차례의 팬데믹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면, 저들은, 명시적으로 자기들의 오류를 인정하든 안 하든, “사실은 팬데믹이 경제위기를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자가당착을 범하는 것이다.

실제로, 20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수만 명씩의 사망자를 낸 팬데믹들이나 약 1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1968년의 이른바 ‘홍콩독감’,[13]세계보건기구가 최초로 ‘팬데믹’으로 선언한 그것. 미국에서만도 약 7만 명, 세계적으로는 약 2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1957년의 이른바 ‘아시아 독감’ 등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 당시 세계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5억 명 정도가 감염되어 최소 4,000만 명에서 많게는 1억 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저 이른바 ‘스페인 독감’과 관련해서도, 그것이 국지적으로 심각한 일시적 경제침체를 초래했다는 기록이나 연구는 있을지언정, 그리고 그것이 노동력 부족을 야기하여 지역에 따라서는 임금인상을 초래했다[14]예컨대, Thomas A. Garret, “Economic Effects of the 1918 Influeza Pandemic: Implication for a Modern-day Pandemic”, 2007, … Continue reading는 기록이나 연구는 있을지언정, 저들이 오늘날 말하는 것과 같은 전반적ㆍ세계적 경제위기를 야기했다는 기록이나 연구는 어디에도 없다!

2006년의 조류 독감 소동이 수많은 경제학자들과 경제 관련 기관들을 자극하여, ‘스페인 독감’이라는 1918-1920년의 팬데믹이 경제에 미친 영향이 경쟁적으로 연구되고 그 결과가 발표된다. 경제학자이자 당시 12개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하나인 쎄인트 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부부총재(Assistant Vice President)였던 토마스 A. 개럿의 보고서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그는 그 보고서 속에서 특히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팬데믹과 제1차 세계대전의 규모 및 동시 발생을 고려할 때, 그 각 사건의 경제적 영향에 대한 연구가 아주 많으리라고 예상할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경제적 귀추에 관한 의미 있는 문헌은 물론 존재하지만,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의 경제적 영향에 관한 연구 영역은 기껏 해봐야 극히 협소하다. 대부분의 연구는, 팬데믹 생존자들의 후손들의 건강 및 경제적 결과들과 사회경제적 계급에 따른 사망률의 차이에 집중해 왔다.[15]Thomas A. Garret, 같은 보고서, p. 7.

 

1918년 인플루엔자가 혹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팬데믹의 경제적 영향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거의 없었다.[16]같은 보고서, p. 22. 사실 이 보고서에는, 1918년 팬더믹의 “economic effects”, 즉 “경제적 영향들”이라는 말은, 주제가 주제인 만큼, 많이 등장하지만, … Continue reading

 

“그 팬데믹의 경제적 영향들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거의 없었다.(there has been relatively little research done on the economic effects of the pandemic.)”! ― 생각해 보라. 당시 15억 세계 인류의 3분의 1을 감염시키고 4,000만 명 내지 1억 명의 사망자를 낼 만큼 끔찍했던 팬데믹이 야기한 경제위기가 참으로 얼마나 심대ㆍ심각했으면, 2006-7년 당시까지도 그 팬데믹의 경제적 영향들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었겠는가를!

행여, “1918-19년 당시는 지금과 같은 ‘록다운’ㆍ‘격리’ 등의 강제적 ‘사회적 거리두기’가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주장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 말해두자면, 이미 당시도 중세처럼 교회에 모여 귀신에게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며, 결코 모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과학이 엄중히 명령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그러한 조치들은 지금 못지않게 취해지고 있었다.[17]“억제조치들은 오늘날 실행되고 있는 그것들과 유사했다.” (James Bishop, “Economic Effects of the Spanish Flu.”[2020. 06. 18.] Reserve Bank of Austraila, … Continue reading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위치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연합 측의 연구와 보고도 들여다볼 가치ㆍ필요가 있을 것이다.

2006년 6월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경제ㆍ금융문제 총국(European Commission Directorate-General for Economic and Financial Affairs)이 발표한 한 연구 보고서는 역시 무척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분기별 거시경제적 모델을 이용하여, 2006년에 유럽연합에서 발생하고 있는 팬데믹의 있을 수 있는 거시경제적 영향들을 추정한다. … 우리의 기본적인 결론은, 팬데믹은 인명에서는 거대한 사망자를 내겠지만, 유럽의 거시경제에는 필시(most likely) 심각한 위협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18]Lars Jonung and Werner Roeger, “The macroeconomic effects of a pandemic in EuropeㆍA model-based assessment” (European Economy … Economic Papers, No. 251) … Continue reading

 

우리는 유럽연합 25개국에 있어서의 팬데믹에 의한 손실(costs of a pandemic … for the EU-25)을 거시모델(macro-model)을 이용하여 추정해 왔다. 우리는 다양한 가정 하에서의 GDP 손실(GDP losses)을 보고한다. 우리의 기준 씨나리오에서는 팬데믹의 첫 해에 있어서는, 즉 2006년에 있어서는, 우리는 GDP의 –1.1퍼센트의 공급 효과와 –0.5퍼센트의 수요 효과, 합계 –1.6퍼센트의 GDP 하락을 발견한다. 이들 영향들은 2007년과 2008년에 대해서는 급격히 줄어들지만, 팬데믹에 의해서 초래되는 노동력의 감소 때문에 -0.6퍼센트라는 장기적인 부정적 영향은 남는다. 이 씨나리오에 추가적인 영향들이 부가될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결국 2에서 4퍼센트에 걸친 GDP 손실이라는 추정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결과는, 다른 나라들 및 지역들에 대한 거시경제적 효과들을 탐구하는 최근 연구들의 결과들과 일치한다.

유럽에서의 팬데믹에 의한 거시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리의 추정치가 높은 것은 우리가 1918-1919년 스페인 독감의 유럽에서의 사망률보다도 더 높은 사망률을 가진 상당히 심각한 의료 모델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팬데믹이 반드시 유럽에 경제적 재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추정한 것과 같은 장래의 팬더믹의 거시경제적 영향은 주요한 경기후퇴(recession)의 그것과 대략 같은 규모다.[19]같은 보고서, p. 13. 여기에서 “recession”은 단기적인 경기후퇴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경제위기(economic crisis)”, 즉 공황과는 많이 다른 개념이다. … Continue reading

 

스페인 독감의 유럽에서의 사망률보다도 더 높은 사망률을 가진 상당히 심각한 의료 모델을 연구”하여 이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팬더믹의 ‘거시경제적 영향들’을 오늘날 자본주의 주요 국가들에서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위기상황들과 비교해 보라.

그토록 끔찍했던 ‘스페인 독감’이 오늘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나 언론ㆍ국가 등이 떠들어대는 것과 같은 경제위기를 야기하지 않았다는 데에 대해서는, 예컨대, “1918년의 독감은 미국경제를 죽이지 않았다”[20]Efraim Benmeiech, Carola Frydman, “The 1918 influenza did not kill the US economy” (2020. 04. 20.), (<voxeu.org/article/1918-influenza-did-not-kill-us-economy>). “사망률에서의 … Continue reading거나, “스페인 독감은 세계경제를 좌초시키지 않았다”[21]Walter Scheidel, “The Spanish Flu Didn’t Wreck the Global Economy: What Is Different About the Coronavirus Pandemic?” (2020. 05. 28.) … Continue reading 등등, 수많은 자료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하나의 자료만 더 인용하는 것으로 일단 그치자.

 

그 전염병은, 1919-1921년에 이르면 실질 개인소득을 하락시키게 한, …, 총수요에 대한 부정적 충격으로 끝났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전염병 동안 그리고 그 후의 여러 해 동안의 산업순환의 시기 및 엄혹성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매우 큰 불확실성이 있다. 전국경제조사사무소(NBER)의 산업순환연대기에 의하면, 19188월 및 1919년에 걸쳐서 순환적 절정(cyclical peak)이 있었다. 이 날들은 19189월에 시작되어 거의 19193월까지 내달은 전염병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22]Elizabeth Brainerd and Mark V Siegler, 같은 보고서, pp. 21-22.

 

미국의 “전국경제조사사무소(NBER)의 산업순환연대기에 의하면, 19188월 및 1919년에 걸쳐서 순환적 절정(cyclical peak)이 있었다. 이 날들은 19189월에 시작되어 거의 19193월까지 내달은 전염병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 팬데믹은 경제위기를 초래한다는, 이보다 더 정확한, 웅변적인 자료ㆍ증언이 또 있을 수 있겠는가?!

사실,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가 경제위기를 일으켰다’는 소리가 너무나도 요란한 나머지 잘 들리지는 않지만, 그리고 비록 자신들이 검출한 ‘실증적’ 자료들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소리이긴 하지만,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 이전에 이미 경제가 죽어 자빠지고 있었다’는 주장ㆍ자료, 즉 ‘현재의 경제위기가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에 의해 야기된 것은 아니다’는 주장ㆍ증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영국의 일간지 ≪더 가디언(the Guardian)≫(2020. 04. 09.)은 “영국 경제는 코로나 봐이러스 전부터 이미 죽어 자빠지고 있었다, 통계가 보여준다(UK economy already flatlining before coronavirus, figures reveal)”[23]<www.theguardian.com/business/2020/apr/09/uk-economy-already-flatlining-before-coronavirus-figures-reveal>. ≪더 가디언≫의 자매지로서 매주 일요일에 발간되는 ≪더 … Continue reading라고, 기사의 제목에서부터 이를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 기사에 의하면, 영국 경제는 코로나 봐이러스가 영국에 상륙하기 전인 2월부터 이미 고꾸라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에이비씨 뉴스(abc NEWS)≫도, “미국 경제는 2월에, … 비록 완만했지만 꾸준했던 10년 이상의 성장을 끝내고 침체에 들어갔다”[24]Christopher Rugaber (AP Economics Writer), “A US recession began in February in the face of coronavirus”(2020. 06. 09.) … Continue reading고 보도하고 있는데, 동시에 무척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코로나 봐이러스가 전국을 강타함에 따라(as the coronavirus struck the nation) … 미국 경제는 2월에 침체(recession)에 들어갔다. …

비영리 사설단체인 전국경제조사사무소(NBER) 내의 한 위원회가 언제 침체가 시작되고 끝나는가를 확정하고 있다. 그 위원회는 침체를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제 활동의 축소”로 넓게 정의하고 있다.

그 때문에 NBER, 경제가 하강하고 있다고 확정하기 전에 전형적으로 오래 기다린다. 지난번의 침체에서는, 침체가 실제로 시작되고 나서 1년 후인 2008년 12월까지 그 위원회는 경제가 침체해 있다고 선언하지 않았다.[25][인용자 주] 1997년 여름부터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심각한 외환위기들이 발발하고 있는데도 4/4분기에 한국의 폭발적 외환위기가 발발할 때까지 … Continue reading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고용 및 소득의 붕괴가 너무나도 가팔라서 아주 재빨리 확정지을 수 있었다고 NBER은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 “NBER, 경제가 하강하고 있다고 확정하기 전에 전형적으로 오래 기다린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코로나 봐이러스가 전국을 강타함에 따라 2월부터 고용 및 소득의 붕괴가 너무나도 가팔라서 아주 재빨리 확정지을 수 있었다”고!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미국에서는 2월 19일에 최초로 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말일인 29일 현재 60명을 넘지 않았으며, 사망자는 3월 2일에 이르러서야 최초로 2명이 발생한다.[26]<covid19.who.int/region/amro/country/us>.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전국을 강타! 강타!한 것인가! ― 이것이 바로 현대의 부르주아적 지성의 전형이다!

그런데 방금 언급한 NBER의 발표는 일부 언론에 의해서, 예컨대, “미국 경제는, 연방정부가 전국에 걸쳐 많은 기업들을 문 닫도록 강제한, 코로나 봐이러스와 관련한 엄격한 록다운 및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들을 발하기도 전에 침체에 들어갔는지도 모른다.”[27]Brittany de Lee, “Recession officially started in February, researchers say: Record-long economic expansion ended before coronavirus pandemic was declared national emergency”(2020. 06. 08.), … Continue reading고 읽힘으로써, “절대 아니다. 미국은 코로나 봐이러스 전에는 침체를 향해 가고 있지 않았다”[28]“Fact Check: No, America Wasn’t Heading Into a Recession Before Coronavirus”, <gop-waysandmeans.house.gov/fact-check-no-america-wasnt-heading-into-a-recession-before-coronavirus/>.는, 트럼프 백악관의 트럼프스럽게 발끈하는 반박도 나왔지만, 여기에서는 그러한 반박이 있었다는 사실만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자.

그건 그렇고, 이상의 간단한 논의만으로도 현재의 경제위기가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로 인한 것이라는 시끄러운 주장들이 얼마나 대중을 기만하는 기담괴설들인가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 자본과 그 지배도구로서의 국가, 그 하수인으로서의 언론과 기타 이데올로그들은 왜 지치지도 않고 저런 기담괴설을 유포하는 것일까?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 각국에서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사실상 노동자계급의 일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서의 안전판(安全瓣)[29]≪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526 (채만수 역, ≪자본론≫ 제1권, 제3분책, p. 826) 참조.이기도 한 소생산자들, 즉 자영업자들을 대거 몰락시키고 있는 경제위기 즉 공황은 발달한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그 자체에 내재한 필연적인 계기라는 것은 이제는 이 대한미국에서도 적어도 선진노동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 대중, 소생산자 대중은 다르다. 그리고 저들의 지칠 줄 모르는 기담괴설 유포는 다름 아니라 바로 그들, 즉 대중을 기만하기 위한 것, 이 위기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고유한 모순에 의한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팬데믹이라는 외부로부터의 우발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라고 대중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것, 그리하여 그 종말이 임박한 자본주의 체제를 연명시키기 위한 것이다.

물론 논자에 따라서는 이러한 목적의식을 자각하고 있는 경우, 즉 악의적으로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그러한 목적의식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 즉 선의=무지로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선의라고 해서 그 대중기만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도 무지가 결코 면책의 사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고, 하물며 지식인, 무비판적인 지식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기 때문이다.

 

 

소위 “한국판 뉴딜”

 

문재인 정부 자신에 의해서 요란스럽게 선전되고, 언론 일반에 의해서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른바 “한국판 뉴딜”도 “현재의 경제위기는 코로나-19로 인한 것”이라는 기만적 주장에 의거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다. 몇 마디만 더 덧붙이자면,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속에서 “초유의 감염 사태” 운운 같은, 명백히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순전히 가장과 기만을 위한 수사(修辭)들이 난비(亂飛)하는 것도, 또한 특히 청년실업 문제의 격화 때문에 ‘헬조선’이라는 자조적 시쳇말이 유행한 지가 언제부터인데, 이제 와서 그러한 실업문제의 격화가 대부분 코로나-19 사태 탓인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도 모두 다 같은 맥락의 기만이다.

그런데 이 소위 “한국판 뉴딜”의 기만성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7월 14일에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의 이름으로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으로 대전환 -”을 일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 있는 특징 하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다름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대 진서(眞書)’, 즉 영어나 영어스러운 낱말ㆍ조어들, 어떤 것들은 참으로 생소하기까지 한 그러한 진서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특징!

실제로 표지ㆍ목차를 빼고 16절지, 현대 진서를 섞어 말하자면 A4 용지, 35쪽인 “종합계획”[30]보다 더 장황하게 제시하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은 A4 용지 125쪽에 이른다.에 100가지를 넘는 그러한 진서들이 그 하나하나마다 거듭거듭 등장하니,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거기에 감흥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렇게 진서가 난무하는 것일까?

다름 아니라, 시쳇말로 “무언가 있어 보이려는” 목적, 즉 대중을 기만하려는 목적에서다. 그 외에 어떤 다른 목적이 있겠는가?

“한국판 뉴딜” 운운하며 표제에서부터 진서를 달고 나오는 것도 바로 그러한 목적에서다. 그런데 그 표제에서부터 대중을 기만하려는 것은 사실은 “한국판 뉴딜”에서 만이 아니다. 그러한 목적은 원판 뉴딜, 즉 미국의 루즈벨트 정권의 뉴딜의 그것이기도 하다. 뉴딜 ― ‘새로운 Deal’? ‘새로운 거래’? ‘새로운 분배’? 참으로 알쏭달쏭하다. ‘뉴딜’이란 이렇게 애초부터 그 의미가 애매모호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어 있고, 바로 그 점을 노린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그리고 소위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p. 2)에서도 ‘뉴딜’을 “새로운 합의”라고 번역하고, 또 그와 유사하게 “사회적 협약” 등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억지스러운 감을 금하기 어렵다.

그런데, ‘뉴딜’ 그것의 의미야 어떻든, 그것은 과연 널리 알려지고 선전되고 있는 것처럼, 1930년의 대공황을 극복했던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1930년부터 1939년까지 10년 동안 미국의 ‘공식적인’ 평균 실업률이 20퍼센트에 육박했으며, 15퍼센트 아래를 기록한 것은 1937년 한 해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그렇다면, 1930년대의 대공황은 무엇에 의해서 극복되었는가?

화려하게 선전되는 저 뉴딜에 의해서도, 역시 화려하게 선전돼온 소위 케인즈주의 혁명에 의해서도 아니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따라서 가장 비극적인 파괴와 살육으로서의 제국주의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해서였다![31]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세계의 자본의 경악하고 나서자, 한국에서는 무슨 의도에서였는지 극우 중의 극우 언론 ≪조선일보≫(2009. 04. … Continue reading

결국 ‘뉴딜’이란, 그리고 저 이른바 케인즈주의 혁명이란 것도, 사실은 자본주의 체제의 치명적 모순과 그로 인한 엄청난 파괴와 학살, 그리고 종말이 임박해오는 자본주의 체제 그것의 운명을 은폐하기 위해서 대중기만용으로 잘 가꾸어진 신화인 것이다.[32]잘 알려진 것처럼, ‘뉴딜’에는 대대적인 과잉생산으로 폭락한 농산물 가격의 안정정책 혹은 ‘농촌경제 활성화 지원’(“‘한국판 뉴딜’ … Continue reading

그런데 ‘촛불정부’ 문재인 정권은, 행여 누군가가 자본의 권력임을 의심이라도 할까봐서인지, “한국판 ‘뉴딜’” 하고, 바로 그러한 대중기만적으로 가꾸어진 신화를 요란하게 치켜들고 나선 것이다.

원판 ‘뉴딜’은 그렇다 치고, 그러면 “한국판 뉴딜”은 어떤가? 그것은 거기에서 표명ㆍ선전하는 효과들을, 달성하도록 꾸며져 있는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특히 그것이 크게 선전하는 ‘일자리 창출’이라든가 ‘일자리 안정화’는 표명ㆍ선전하는 효과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야기할 수밖에 없도록 꾸며져 있다.

그런데, 혹시 선의로? 즉, 그들 정책이 유발할 객관적 효과에 대한 무지 때문에? 결코 아니다. 그러한 정책들이 표명ㆍ선전하고 있는 효과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야기한다는 것은, 사실 이른바 과학기술혁명의 사회적 효과에 대해 다소라도 진지한 관심을 가진 지식인ㆍ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일종의 상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저들이 표명ㆍ선전하는 거짓 효과는, 선의 즉 무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악의 즉 알면서도 거꾸로 떠들어 대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저들이 소위 “한국판 뉴딜”로서 내세우는 양대 ‘뉴딜’은, 주지하다시피, 소위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다.

이 중 소위 ‘그린 뉴딜’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 환경론자들ㆍ생태주의자들의 안목에서야 많은 불만이 없을 수 없겠지만, 사실은 소위 ‘그린’, 즉 환경문제 개선을 위한 상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내용을 담은 것은 물론, ‘그린’ 혹은 환경문제의 개선 그 자체가 목적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최근 자본 간의 경쟁의 추세가 그러한 내용을 담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기 때문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소위 ‘디지털 뉴딜’인데, 그 내용인즉슨 사실상 전적으로 현대 과학기술혁명의 가속화, 즉 과장하기 좋아하는 부르주아ㆍ소부르주아적 어법으로 최근엔 “5차 산업혁명” 운운까지 하는, 소위 ‘4차 산업혁명’ 혹은 ‘디지털 혁명’의 가속화다! 그리하여 그것은 결국 재생산과정 전반의 자동화ㆍ무인화의 가속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추진하는 정책의 내용ㆍ성격이 그러한데, 그 가속화를 위해서 그 정책들이 직접적으로 필요로 하는, 즉 그 소위 ‘디지털 뉴딜’을 실현하기 위해서 당장 필요한 극히 단기적인 일자리들 외에, 어떻게 그것이 ‘일자리 창출’ㆍ‘일자리 안정’에 기여할 수 있겠는가?! 일자리를 없애는 데에 기여할 뿐이지!

결국 그러한 정책들은 자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일 뿐이어서, 그것이 노동자들의 ‘일자리 창출’이나 ‘일자리 안정’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과 선전은 헛소리를 넘어 순전한 기만ㆍ사기일 뿐이다!

나는 이 글의 모두(冒頭)에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와 기능ㆍ운동의 많은 것들, 특히 그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것들을, 악의에 의해서든, 즉 목적의식적으로든, 선의에 의해서든, 즉 무지에 의해서든, 신비화하고 은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나아가 이 시대에 사실상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가계급의 이데올로기, 즉 비과학으로서의 부르주아 인문ㆍ사회과학이 대중의 이데올로기, 대중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부르주아 인문ㆍ사회과학의 대중지배 때문에 대중은 저들이 떠들어대는 기만적 언설의 진정한 사회적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른바 “한국판 뉴딜” 중 이른바 ‘디지털 뉴딜’에 대한 이해, 즉 그것이 초래할 사회적 효과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서도 저들은 바로 그러한 대중의 오해, 즉 몰이해를 노리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소위 ‘디지털 뉴딜’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며, 안정화시킬 것이라고 떠들어 댈 수 있겠는가?

사실 조금만이라고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저 소위 ‘디지털 뉴딜’이란 것을 읽으면, 그 내용이, 노동자 등 대중의 이익이 아니라, 철저히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정상 성장경로 회복”이라든가, “구조적 변화 적응ㆍ선도하기 위한 토대 구축”이라든가,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속도가 국가의 산업ㆍ기업 경쟁력 좌우”라든가, “각국이 위기 극복 및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디지털 투자 확대”라든가, “그린 경제 전환에 뒤쳐질 경우 GVC[?] 내 경쟁우위 상실 우려” 등등, 한 마디로 온통 자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목표들, 따라서 일자리를 없애는 정책들이 솔직(!)하게도 노골적으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만 더 덧붙이면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 감상은 일단 접도록 하자. 다름 아니라, 앞에서 이른바 “한국판 뉴딜”은, 기만적 동기에 기초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만적 진단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도 넌지시 지적했는데, 분명한 것은 “기만적 진단에 올바른 치료법이 뒤따를 리 없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가제 잡을 확률보다도 더!

 

 

의사파업

 

신종 코로나 봐이러스가 대유행하는 시국에서 감상을 강요당한 또 하나의 풍경은 소위 “의사파업”, 즉 의사들의 집단적 진료거부 및 의대생들 혹은 태내(胎內)의사들의 동맹휴학ㆍ의사국시 거부라는 사태였다. 그리고 이 사태는,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9월 말/10월 초 현재에도 의사국시를 거부한 학생들에 대한 응시기회 부여 여부 때문에 아직도 불씨가 완전히 꺼진 상태는 아니다.

이른바 “의사파업”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공공의사 확충’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정부의, 매년 불과 3ㆍ400명 정도의 의대 정원 확대, 따라서 의사 수 확대정책에 반대하여, 극우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애국의사” 최대집[33]<youwin0427.tistory.com/3836>에 의하면, “2005년 10월 13일 ‘조갑제닷컴’에 ‘진료실을 나온 애국의사 최대집’이라는 글이 실렸다.”으로 대표되는, ‘대한의사협회’의 집행부가 선동ㆍ선도했고,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 전공의들이 보다 더 대량적으로, 그리고 보다 더 강경하게 더 장기간 ‘파업’ 즉 집단적 진료거부에 나섰으며, 태내의사들인 의대생들은 응시 대상자의 약 86퍼센트가 의사국시를 거부하면서 더 강경하게, 더 장기간 ‘투쟁’했다.[34]전국 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학생들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발표한, 40개 의과대학ㆍ의학전문대학원 본과 4학년 … Continue reading 그리고 그들 자신 역시 의사인, 대학병원들ㆍ의과대학들의 적지 않은 교수님들께서, 교육자로서의 사명의식을 십분 발휘, 의사들ㆍ학생들의 ‘파업’ㆍ‘투쟁’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이 모두가 다른 때도 아닌, 사실상 전체 인민이 맹독성 전염병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그 전염병으로 인한 감염자ㆍ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코로나-19/코뷔드-19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소수 극우언론ㆍ극우정당과 정치인들ㆍ극우투사들 및 극우룸펜들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인민이 분노한 것도 당연하다. 그리하여, 예컨대, “청년의사”를 “제호”로 내세우고 있고, 저들 의사파업을 맹렬히 선동ㆍ선전한 한 인터넷 매체 <docdocdoc.co.kr>의 “docdocdoc”을 “毒毒毒”으로 읽고 싶었던 것은, 필시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가 아무리 분노해본들, 그리고 아무리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상기하라”고 외친들, 현실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기능인으로서의 저들의 ‘위력’ 앞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를!

실제로 대통령의 입으로, “선을 넘지 마라”거나, 불법적 집단의료거부에 대한 “단호히 대응”ㆍ“원칙적인 법집행” 등등의 경고를 날렸지만, 실제로는 어떤 “단호히 대응”ㆍ“원칙적인 법집행”이 이루어져 왔던가?! 2차에 걸쳐 의사국시를 거부한 태내의사들에게 그에 응시할 추가 기회를 아직(!) 주고 있지 않은 외에 말이다.

그런데, 의사들의 ‘파업’(!) 혹은 집단적 진료거부를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운운하면서 비난하는 것은, 다른 사회에서라면 몰라도, 이기적 타산이, 다시 말해서, 금전적 동기가 지배하는 이 사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력할 뿐만이 아니라, 누가 뭐라고 해도, 사실은, 불공정하기까지 하다. 일찍이 맑스와 엥엘스는 이렇게 언명하지 않았던가?

 

부르주아지는, 그들이 지배하게 된 곳에서, 모든 봉건적ㆍ가부장제적ㆍ목가적 관계들을 파괴해 버렸다. 그들은 사람을 타고난 상전들에게 묶어 놓았던 잡다한 색깔의 봉건적 유대(紐帶)를 무자비하게 찢어발겼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노골적인 이해 외에, 냉정한 “현금 계산” 외에, 어떤 다른 유대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들은 경건한 광신ㆍ기사적(騎士的) 열성ㆍ소부르주아적 애상(哀想)이라는 외경(畏敬)을 이기적 타산이라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속에 익사시켜 버렸다. 그들은 인간적 품위를 교환가치 속에 용해시켜 버렸으며, 문서로 보증되고 정당하게 획득한 무수한 자유들을 양심이 없는 단 하나의 상업의 자유로 바꿔놓아 버렸다. 그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종교적ㆍ정치적 환상으로 은폐되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 꾸밈없는 착취로 바꿔놓아 버렸던 것이다. (강조는 원문)

부르주아지는, 지금까지 존경스러웠고 경건한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모든 직업들로부터 그것들의 후광을 벗겨 버렸다. 그들은 의사ㆍ법률가ㆍ성직자ㆍ시인ㆍ학자를 자신들의 매수된 임금노동자들로 전화시켜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가족관계로부터 그 심금을 울리는 감상적(感傷的) 베일을 찢어내 버리고, 그것을 하나의 순전한 금전관계로 환원해 버렸다.[35]≪공산당 선언≫ (MEW, Bd. 4), SS. 464-465. (최인호 역, ≪공산주의당 선언≫[김세균 감수,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1권, pp. 402-403 … Continue reading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렇게, 가족관계조차도 “그것을 하나의 순전한 금전관계로 환원해 버”릴 만큼 “얼음처럼 차가운” “이기적 타산”이 지배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 노골적인 이해 외에, 냉정한 ‘현금 계산’ 외에, 어떤 다른 유대도 남겨”져 있지 않으니, 저들 의사들에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아무리 수천ㆍ수만 번 상기시켜 본들 쇠귀에 경 읽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36]그것이 얼마나 쇠귀에 경 읽기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는, 박현미 전 재영(在英)한인의사회장님께서 “비난 여론 이해 안돼”ㆍ“정부가 책임지지 … Continue reading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인간관계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그리고 그렇게 만들고 있는 부르주아지를 제거하는 길 외에 과연 다른 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인권의 전투적 수호자ㆍ인권의 천국 미국

 

주지하는 것처럼, 미국은 비근하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게도, 중화인민공화국에게도, 이라크나 이란, 리비아 등등에게도 끄떡하면, 사실상 자신들의 지배 하에 있는 유엔이나 기타 국제기관들까지를 동원하여, “인권” 운운하면서 시비를 걸고, 협박을 하고 나선다.[37]미국이나 기타 지역ㆍ국가의 소위 ‘인권단체’들이나, 예컨대, 한국의 극우 언론 및 기타 극우 논객들ㆍ정치가들 등의, 어릿광대춤에 대해서는 … Continue reading 그것도 사실을 왜곡하고, 없는 사실을 꾸며내서! 필시, 자신은 인권의 천국이란 뜻이렸다!

그런데, 현 팬데믹 때문에 우연찮게도 우리는 인권의 전투적 수호자 미 제국주의가 그야말로 얼마나 대단한 인권 천국이며, 인권의 수호자인가를 새삼 생생하게[38]“새삼”이라고 말하는 것은 주로 흑인 등 유색인종인 빈곤한 노동자들에게 걸핏하면 경찰이 총질을 해대는 것이,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권의 … Continue reading 감상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니 사실은 제1차 대전 이후 미국은, 자타가 공히 인정하는 것처럼, 세계 최강국, 세계 최부국으로 군림하고 있고, 의학 역시 그에 걸맞게 필시 세계 최고로 발달해서, 예컨대, 한국의 재벌 지배자들도 걸핏하면, 미국에 가셔서 건강검진을 받으시거나, 치료를 받으시곤 한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나라에서,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2월 19일에 최초의 확진자 5명이 발생하고, 3월 2일에 최초의 사망자 2명이 발생한 이후, 그리고 3월 11일에 WHO가 코로나-19 혹은 COVID-19를 팬데믹으로 선언한 이후 7개월이 채 되지 않는 10월 7일 현재 놀랍게도 확진자가 겨우 7,735,938명, 사망자 겨우 216,125명에[39]<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이른다! 세계 최강국이자 최부국이고, 필시 의학이 최고로 발달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나라에서 말이다![40]미국의 이러한 인권상황은, 특히 두드러지긴 하지만, 물론 결코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들 대부분의 인권상황이, 다소 정도의 차이는 … Continue reading

얼마나 끔찍한 인권의 전투적 수호자, 즉 돈권의 수호자이고, 얼마나 끔찍한 인권 천국, 즉 돈권 천국이면, 이러한 놀라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끔찍한 돈권 천국을 가리켜, 문재인 정부는 기만적으로 잘 가꾸어진 신화에 따라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서 뉴딜을 통한 “미국의 복지제도 토대 형성” 운운하며, 상찬하고 있다!

속담에 준하는 우스갯소리 중에 “무엇보다도 말 잘하는 자식을 두라”는 게 있다. 뉴딜의 ‘아이콘’ 루즈벨트는 바로 그런 사람, 즉 “무엇보다도 말 잘하는 사람”, 무엇보다도 구라 혹은 정치적 사기를 잘 치는 사람이었다.[41]이 대한미국의 정치가들이 한결같이 무엇보다도 말 잘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는 이른바 ‘노변정담(爐邊情談, fireside chats)’로 유명하고, 12년 대통령직 재임기간 중에 수백 번의 기자회견을 한 것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당시 이미 대중화된 라디오를 통해서 그가 연설을 할 때면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화롯불 곁에 앉아서 그의 연설을 경청했다는 저 ‘노변정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민의 대다수가 그의 구라, 정치적 사기에 영혼을 팔고 놀아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말고 달리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리고 오늘날 팬데믹 선언 불과 6개월여 만에 7백만 명을 훨씬 넘는 COVID-19 학진자, 20만 명을 훨씬 넘는 사망자, 게다가 앞으로도 얼마나 더 늘어날지 가늠조차 힘든 그 희생자들! 이 모두가 “사회보장제도” 운운하는 그 구라, 그 정치적 사기에 영혼을 팔아 받고 있는 대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부르주아 정치인들에게, 부르주아 언론에 영혼을 싸구려로 팔면 어떤 대가를 받는가를 보여주는 찬란한 타산지석일 터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말 잘하는 정치 사기꾼들의 세치 혀에 수많은 사람들이 영혼을 팔고 있지 않은가? 정치가들의 대중 기만적인 지들끼리의 추잡하고 파렴치한 권력투쟁에 영혼을 팔면서, 그들에 대항해 뭉쳐야 할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삿대질하고 있는 것이, 즉 정치꾼들의 사기판의 어릿광대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감상을 강요당하는 이 사회의 주요 풍경의 하나 아닌가?

 

 

종교 혹은 득시글거리는 귀신들, 그리고 극우의 발호

 

3월 11일에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를 전염병에 대한 최고의 경계단계인 팬데믹으로 선언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전 세계 114 개국에서 확진자로 보고된 11만8000건 중 90% 이상이 단 4개국에서 발생했…다.” 운운했다고 3월 12일자 언론이 보도 하고 있다.

“전 세계 114개국에서 확진자로 보고된 11만8000건 중 90% 이상이 단 4개국에서 발생” 운운할 때 그 4개국은 당시 상황에서 중국과 한국, 이딸리아, 이란을 지칭하는 것일 터이다. 실제로 그는 그 발언에 이어, “코로나19에 대해 이란, 이탈리아, 한국이 취한 조치에 감사한다”며 “그들의 조치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음을 안다”고 말한 것으로도 보도되고 있다.[42]예컨대, 바이오스펙테이터 서윤석 기자, “WHO, 코로나19 ‘팬데믹’ 선언…‘통제의지가 중요’”, <biospectator.com/view/news_view.php?varAtcId=9770> … Continue reading 영광스럽게도 이 대한미국이 당당히 세계 4대 국가 중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그러한 영광을 차지하게 된 것일까?

3월 11일, 한국 시간으로 3월 12일은, 2월 18일에 대구ㆍ경부지역의 최초의 확진자 1인이 발생한 후 가히 유례가 없는 속도로 확진자들이 발생, 2월 29일 하루 813명으로 절정에 달한 후 감소세로 접어든 후였으나, 아직도 하루 2백 수십 명의 신규 확진자들이 발생하던 때였고, 사망자의 경우 3월 19일 하루 10명 사망으로 정점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그러한 상황이었으니, “전 세계 114개국에서 확진자로 보고된 11만8000건 중 90% 이상이” 발생한 “단 4개국” 중에 한 자리를 차지하는 영광은, WHO가 팬데믹 선언을 망설이다 겨우 결단을 할 만큼 세계적으로는 아직 초기였던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코로나-19는, 확진자 발생의 경우 2월 하순에서 3월 중순에 접어들 때까지 최대의 맹위를 떨친 후 그 기세가 4월 중순여까지 이어졌고, 극우 집단들의 8.15 광화문 집회 후, 2월 말-3월 초순보다는 약간 덜 했지만, 8월 27일에 하루 441명 발생으로 제2차 정점을 찍은 후 9월 말-10월 초로 이어지고 있다. 대량의 확진자 발생에 뒤따른 대량의 사망자는 제1차는 대략 2월 24일 이후부터 발생하기 시작하여 3월 19일 하루 10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5월 초순까지의 기간에 발생했고, 제2차는 대략 8월 18일부터 지금 10월 2일까지 이어지는 기간으로 이 제2차 대량 사망은 8월 29일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하루 5명의 사망자를 기록하다가, 10월 8일 현재까지는 9월 30일에야 하루 6명으로 정점을 찍고 있다.

보건당국의 효율적인 관리와 여러 의사들ㆍ간호사들의 헌신적인 치료ㆍ노동으로, 그리고 대다수 인민의 기꺼운 협조로 전염병이 상대적으로 효과적으로 억제되면서 한국의 방역이 모범적인 ‘K방역’으로 세계적으로 칭송을 받고 있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에 걸쳐 이 사회에서 코로나-19 역병이 맹위를 떨치고, 아직도 그 여파 속에 있는바, 여기에는 정말 어이없는 곡절들이 있다는 것도 역시 주지하는 대로다.

정말 어이없는 곡절들! 다름 아니라 귀신과 극우의 발호라는 곡절들!

2월 18일에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하여 많을 때에는 하루 813명(2월 29일)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사망자수도 하루 10명(3월 19일)까지 치솟아 이 한국을 영광스럽게도 전 세계 4대국의 하나로까지 자리매김하게끔 한 제1차 파고가 전적으로 귀신의 발호에 의한 것임은 전혀 이의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하루 확신자가 441명(8월 27일), 하루 사망자가 6명(9월 30일)까지 치솟은, 8.15 극우 난동 이후의 제2차 파고도 그 핵심적 동력이 귀신에 있었음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이러한 귀신의 발호, 그것은 분명 중세에나 있었음직한 상황으로서, 이 사회가 정신적ㆍ문화적으로 조금만 덜 천박했더라면, 과학의 발달이 가히 절정에 달해 있는 이 21세기에는 분명 있을 수 없었을 상황이다.

한편,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엄청난 학살을 통해 이 사회를 지배해왔고, 사실상 지금도 지배하고 있는 극우 세력, 그들은, 다름 아니라, 이 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의 한 축이다. 그리고 근래 발호하고 있는 극우화된 룸펜의 확산은, 장기간의 그 극우 지배의 결실이다. 그리고 그 확산은 특히 모순이 격화될 대로 격화된 말기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이, 때로는 암암리에 때로는 노골적으로, 그러한 세력ㆍ문화를 배양ㆍ고무하고 있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는 조ㆍ중ㆍ동ㆍ문ㆍ매 … 등등으로 대표되는 극우 언론들을 통해, 그리고 사실은 제도언론 일반, 제도교육 일반을 통해.

이 사회에서도 그러한 귀신ㆍ극우의 발호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특히 극우의 파쑈 지배에 대해서는 수십 년 동안 치열한 투쟁이 있어 왔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이른바 ‘민주화’된 세상에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귀신ㆍ극우의 발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판ㆍ투쟁은 과연 그들 문제를 해소ㆍ해결할 수 있는 방침ㆍ성격으로 수행돼 온 것일까?

귀신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기껏 ‘이단’ 여부의 문제로 수행된다. ‘이단’ 여부! 결국 이 찬란한 과학의 세기, 21세기에도 귀신은 존재하는 것이다! 단지 ‘이단’이 문제일 뿐! 도시의 밤풍경이 온통 붉은 십자가로 뒤덮이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43]발호ㆍ발광하고 있는 것은 특히 양(洋)귀신인데, 이 귀신은 자본주의의 고향ㆍ보루인 서구 및 미국에서 온 귀신답게 엄청난 돈귀신이고, 또한 … Continue reading

극우에 대한 비판은 파쑈 독재까지를 포한한, 극우의 양태ㆍ행태에 대한 비판에 대체로 한정되어 있다. 극우 세력 그것은 이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투쟁의 한 축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하고 있다. 그리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낸 ‘민주화’ 투쟁으로 파쑈 독재를 일정하게 제어하는 데에는 우선 성공했지만,[44]무엇보다도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 파쑈 독재를 극복한 게 결코 아니다. 그 제어에 대한 극우 지배세력의 계급투쟁으로서의 저항이 오늘날 극우 룸펜들의 난동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결국, 비판도 투쟁도 그릇된 전제 위에서, 그리고 철저하지 못한 전제 위에서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이 사회에서 천박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가 얼마나 강고한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야 어떻든, 그릇된 전제 자체를 비판하지 않고 어떻게 그 전제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ㆍ해소할 수 있겠는가?

 

 

코로나-19/코뷔드-19: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면?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의 창궐로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하자 국내ㆍ국외를 불문하고 일부 환경ㆍ생태론자들 사이에서 그 원인, 특히 그 봐이러스 발생의 원인을 인간의 자연파괴에서 찾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게 들리고 있다.[45]예를 들어, 자신을 더 없이 특출한 좌파로 상품화하는 데에는 그야말로 특출한 재주를 가진 한 지식인도 이렇게 얘기한다. ― “우리에게는 가지 … Continue reading

인간의 삶이란 것이 자연과의 투쟁이면서 동시에 자연과의 물질대사 과정[46]“노동은 우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과정,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자신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物質代謝)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 Continue reading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자연의 과도한 훼손ㆍ파괴는 자연과 인간의 물질대사, 따라서 인간의 삶 자체를 훼손하고 파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환경ㆍ생태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자본주의적 생산체제가 과도하게 훼손ㆍ파괴된 자연을 복원하는 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의 발생ㆍ창궐이 자연훼손ㆍ자연파괴 때문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다.

현재의 경제위기가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라는 팬데믹으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과거를 돌아보면, 거짓인 것처럼, 현재의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 팬데믹의 원인균 발생이 자연훼손ㆍ자연파괴로 인한 것이라도 주장도, 과거를 돌아보면,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그릇된 주장이란 것이 금세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ㆍ환경문제를 중시하는 시류에 편승한 그러한 주장은 대개의 경우 그럴 듯하게 들리는바, 그러한 그릇된 주장이 그럴 듯하게 들리면 그럴 듯하게 들릴수록, 그만큼 그것은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따라서 그 극복 방향을 오도하게 된다.

우선 그 발생의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수백만ㆍ수천만의 사람이 죽어나간 팬데믹은 고대ㆍ중세에도 거듭거듭 발생했다. 고대 및 중세의 이들 팬데믹의 원인균들이 과연 자연훼손ㆍ자연파괴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코로나 봐이러스를 우한[武漢]의 한 연구실에서 제조한 것이라는 홍콩 출신 어떤 미 망명 ‘과학자’의 주장이, 과학적 분석의 정당한 결론이 아니라, 비뚤어진 반중 정서, (착각에 의한) 반공주의의 발로인 것처럼, 코로나 봐이러스가 자연파괴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과학적 분석의 결과가 아니라, 단지 신앙의 발로일 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체제가 자연을 심각히 훼손ㆍ파괴하기 전부터 전염병의 원인균들은 발생해왔던 것이고, 앞으로 인류가 어떠한 사회를 건설하든, 필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임에 틀림이 없다. 즉, 전염병의 원인균 발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전염병 그것의 확산과 그에 따른 대량의 희생을 예방ㆍ억제ㆍ봉쇄하는 것이지, 그 원인균의 발생을 예방ㆍ억제ㆍ봉쇄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다시 문제는 당연히 전염병 그것은 왜, 어떻게 해서 확산되는가를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그 확산의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전염병은 왜 확산되는 것일까?

별의별 질문을 다 한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확산되는 것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제는 문자 그대로 삼척동자까지도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명 ‘모이기 때문’이다!

다만, ‘모이는’ 이유가 과거 고대나 중세와 지금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대나 중세, 특히 중세에는 보편적인 무과학ㆍ무지 때문에 귀신에게 매달리기 위해서, 빌기 위해서 모였다면, 지금은 찬란한 과학, 보편화된 과학적 지식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가 모이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모이는 것이다. 즉, 모이지 않으면, 소득이 없고, 그리하여 먹고살 수가 없기 때문에 모이는 것이다!

그럴 듯한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자유옹호자들은,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ㆍ‘격리’가 사람들에게 주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그에 반발하여 모이는 경향도 많은 것으로 얘기한다. 그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서 감염과 그에 따른 희생이 속출하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해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사진 등을 제시하면서 그렇게 주장한다. 물론 당장은, 즉 현재 그러한 현상이 일부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현상 중 상당 부분은 필시 그러한 주장에 내포된 ‘자유정신’에 의해 고무된 것일 터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하지만, 모여야만 먹고살 수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ㆍ‘격리’에 따른 그러한 심리적 압박감이 과연, 자칫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렇게 모이는 것으로 그것을 해소해야 할 만큼, 그토록 강렬할까?

필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회체제가 달라지면, 그에 따라 반드시 사회적 문화ㆍ심리도 달라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비록 강제된 ‘사회적 거리두기’ㆍ‘격리’이지만, 그것은 악의적인 것이 아니고 공동의 이익을 보장하고 있는 공동의 사회적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절대,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느 사회든 생산을 계속해야 한다고?

물론 어느 사회든 생산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포함해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를 주기적으로 엄습하는 사회적 질병, 즉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는, 저들 자본가계급, 그들의 이데올로그들이 떠들어대는 것처럼, 노동자들의 파업 등으로 ‘생산이 중단되어서’ 발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실은,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알려진 대로이지만, 과잉생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구성원의 필요와 욕망을 충족시키고도 남는 과잉생산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이기 때문에 대다수 구성원의 욕망과 필요를 채우지 못한 채 남아돌아가고, 그리하여 자본은 자본대로 파산의 위기에 처하고,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대대적으로 길거리로 내던져지는 과잉생산이다.

인류가 획득한 생산력은, 이미, 만일 인류 전체가 일정 기간 생산을 중단하면, 사회체제의 성격과 무관하게, 사회가 결딴나고, 따라서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만일 인류 전체가 일정 기간 생산을 중단하면”이라는 가정 자체가 절대적으로 비현실적이지만, 그리하여 아무리 엄혹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하더라도 일류 전체는 물론 한 국가사회 전체가 일정 기간 생산을 중단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사유재산제에 기초하지 않는 보다 고도한 사회라면, 설령 그러한 극도로 비현실적 가정이 현실화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 사회가 결딴나거나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을 리가 없다.

이미 인류의 생산력은, 사회가 보다 고도로 조직되기만 하면, 있을 수 있는 대재앙들에 대비한 충분한 예비재원을 조성해두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보다 고도로 조직된 사회에서는, 사회체제가 모여야만 하도록 강제하지 않는, 사실상 사회성원 전체의 기꺼운, 따라서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빠른 시간 내에 그 전염병을 극복하게끔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촛불정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찬양하는 것으로써 이 감상을 끝내야겠다.

그 “한국판 뉴딜”은 그러한 보다 고도의 사회를 실현하는 데에 분명 기여할 것이라고!

다만, 그것이 내세우는 ‘일자리 창출’, ‘일자리 안정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 정반대의 효과를 초래함으로써! 즉, 일자리를 불안정화하고 파괴함으로써! 그리하여 인류를 보다 고도의 사회로 갈 수 있게끔 하는 절대적인 객관적 조건인, 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을 한층 더 격화시킴으로써!

노사과연

 

References

References
1 Michael D. Yates, “코뷔드-19, 대경제불황, 그리고 흑인 생명문제 시위: 이 3중의 위기는 미국에서 노동계급의 봉기를 야기할 것인가?(COVID-19, Economic Depression, and Black Lives Protests: Will the Triple Crisis Bring a Working-Class Revolt in the United States?)”, Monthly Review, Vol. 72, No. 4, 2020년 9월, p. 15.
2 news.kbs.co.kr/news/view.do?ncd=4458866. 참고로,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적인 파장”과 “코로나19발[發] 경제위기” 혹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같은 의미일 수도 있고, 뒤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전혀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의 ‘일요진단’에서는 전적으로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명백하다.
3 www.hani.co.kr/arti/economy/marketing/959312.html. (조계완 기자. 2020. 8. 25.)
4 이어서 소개하는 ≪조선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이 보고서의 제목은 “COVID-19 충격의 경제 부문별 영향과 시사점”인 것 같다.
5 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5/2020082501451.html. (권유정 기자.)
6 ccej.or.kr/61674. (2020. 06. 04.)
7 www.kiet.re.kr/kiet_web/?sub_num=9&state=view&idx=56748.
8 www.bokji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25. (이경하 기자. 2020. 06. 15.)
9 www.france24.com/en/20200624-imf-says-covid-19-sparks-global-economic-crisis-like-no-other. (2020. 06. 24.)
10 www.worldbank.org/en/news/feature/2020/06/08/the-global-economic-outlook-during-the-covid-19-pandemic-a-changed-world
11 예컨대, 10월 5일 현재로 누적 감염자수와 사망자수는 세계적으로 각각 3,564만 명과 104만 명을 훨씬 넘고 있다. 그에 비해서 세계보건기구에 의해서 팬데믹으로 선언되던 3월 11일 현재의 그것은 각각 12만 명과 4,300명 정도였다. 그런데도 저들은 이미 그때에도 현재의 경제위기는 코로나-19 혹은 코뷔드-19라는 팬데믹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12 세계보건기구가 ‘팬데믹’이라고 선언했든, 아니든 상관없이 ‘세계적으로 대유행한 전염병’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의 팬데믹.
13 세계보건기구가 최초로 ‘팬데믹’으로 선언한 그것.
14 예컨대, Thomas A. Garret, “Economic Effects of the 1918 Influeza Pandemic: Implication for a Modern-day Pandemic”, 2007, (<www.stlouisfed.org/~/media/files/pdfs/community-development/research-reports/pandemic_flu_report.pdf>), pp. 20 이하 참조. 스페인 독감의 영향ㆍ충격이 그 감염률에서도, 사망률에서도, 소득ㆍ생산ㆍ소비 등에서도 도시별ㆍ지역별로 상당한 차이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예컨대, Elizabeth Brainerd and Mark V Siegler, “The Economic Effects of the 1918 Inflenza Epidemic”(2020. 03. 20.) Centre for Economic Policy Research(CEPR) (<cepr.org/content/free-dp-download-20-march-economic-effects-1918-influenza-epidemic>)나, Martin LarlssonㆍTherese NilssonㆍStefan Pichler, “The Impact of the 1918 Spanish Flu Epidemic on Economic Performance in Sweden: An Investigation into the Consequences of an Extraordinary Mortality Shock” (2013. 04. 03.) (<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16762961 4000344>) 등도 참조.
15 Thomas A. Garret, 같은 보고서, p. 7.
16 같은 보고서, p. 22. 사실 이 보고서에는, 1918년 팬더믹의 “economic effects”, 즉 “경제적 영향들”이라는 말은, 주제가 주제인 만큼, 많이 등장하지만, “economic crisis”, 즉 “경제위기”라든가, 공황이라든가, 기타 그와 유사한 단어ㆍ개념 따위는 아예 보이지조차 않는다. 물론 COVID-19 팬데믹을 통해 고도의 지혜를 얻기 훨씬 전의 보고서이니까!
17 “억제조치들은 오늘날 실행되고 있는 그것들과 유사했다.” (James Bishop, “Economic Effects of the Spanish Flu.”[2020. 06. 18.] Reserve Bank of Austraila, <www.rba.gov.au/publications/bulletin/2020/jun/pdf/economic-effects-of-the-spanish-flu.pdf>, p. 10.). “주로 시당국들에 의해서, 그리고 때로는 주(state) 차원에서 가해진 비약학적 조치들(NPIs [non-pharmaceutical interventions])은 공중의 모임과 번잡한 곳들을 폐쇄하는 것에서부터 업무시간 시차두기ㆍ학교 폐쇄ㆍ감염자 격리ㆍ마스크 요구 등에 걸치는 광범하게 다양한 형태를 취했다.” (François Velde, “What Happened to the US Economy During the 1918 Influenza Pandemic? A View Through High-Frequency Data [REVISED July, 2020]”, Working Paper, No. 2020-11, 2020. 04., Federal Reserve Bank of Chicago, <www.chicagofed.org/publications/working-papers/2020/2020-11>, p. 5.)
18 Lars Jonung and Werner Roeger, “The macroeconomic effects of a pandemic in EuropeㆍA model-based assessment” (European Economy … Economic Papers, No. 251) (<ec.europa.eu/economy_finance/publications/pages/publication708_en.pdf>), p. 3.
19 같은 보고서, p. 13. 여기에서 “recession”은 단기적인 경기후퇴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경제위기(economic crisis)”, 즉 공황과는 많이 다른 개념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지금 저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개념이나 연구방법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하는 게 결코 아니다. 다만, 저들이 지금 이전과는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저들의 과거 보고서들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20 Efraim Benmeiech, Carola Frydman, “The 1918 influenza did not kill the US economy” (2020. 04. 20.), (<voxeu.org/article/1918-influenza-did-not-kill-us-economy>). “사망률에서의 부분적인 편차를 악용하여, 코레이아(Correia) 등(…)은 미국 내에서 그 팬데믹에 엄습당한 지역들이 경제 활동에 급격한 축소를 겪었다는 것, 그리고 그 영향이 적어도 1923년까지 완강히 지속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하지만 흥미롭게도, 국가들(contries) 간의, 혹은 미국의 도시들 간의 비교는 1918년 팬데믹의 핵심적 특징 하나를 덮어 감추고 있다. 스페인 독감은 미국의 총경제에 식별할 수 있는 어떤 흔적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코로나 봐이러스가 미국에 들어온 것은 증시가 한창 활황일 때(at a time of booming stock market values)였다. 그에 비해서, 1918년 봄의 독감 발발은 하강 직후였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은 실제로 1917년에 21.7%가 하락했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다우 지수가 1918년에 10.5% 그리고 1919년에 30.5% 등귀하면서, 팬데믹 동안에 많이(substantially) 회복되었다. 실제로, 1919년은 다우에게는 1915년부터 1929년까지 중에 9번째로 좋은 해에 해당한다. 일부 평가들에 의하면, 실질국민총생산은 1919년에,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은 1%지만, 실제로 성장했다.” (같은 글.) 이들 발언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히, 미국 경제는, 적어도 주식시장의 동향에 관한 한, 1918-1919년의 스페인 독감 팬데믹 당시에도, 현재에도 기본적으로 경제 그것에 필연적인 주기적인 순환운동을 하였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21 Walter Scheidel, “The Spanish Flu Didn’t Wreck the Global Economy: What Is Different About the Coronavirus Pandemic?” (2020. 05. 28.) (<authenticmedicine.com/2020/07/the-spanish-flu-didnt-wreck-the-global-economy-what-is-different-about-the-coronavirus-pandemic/>)
22 Elizabeth Brainerd and Mark V Siegler, 같은 보고서, pp. 21-22.
23 <www.theguardian.com/business/2020/apr/09/uk-economy-already-flatlining-before-coronavirus-figures-reveal>. ≪더 가디언≫의 자매지로서 매주 일요일에 발간되는 ≪더 업저버(the Obverser)≫의 경제 편집인이자 ≪더 가디언≫의 경제면 필자인 퓔립 인먼(Phillip Inman)의 글이다.
24 Christopher Rugaber (AP Economics Writer), “A US recession began in February in the face of coronavirus”(2020. 06. 09.) (<abcnews.go.com/Business/wirStory/recession-hit-us-february-ending-record-long-expansion-71135383>).
25 [인용자 주] 1997년 여름부터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심각한 외환위기들이 발발하고 있는데도 4/4분기에 한국의 폭발적 외환위기가 발발할 때까지 기라성 같은 세계의 경제학자들이나 소위 신용평가기관 중 어느 하나도 한국의 외환위기 발발 가능성을 말씀하시지 않은 것처럼! 물론 세계의 석학님들과 신용평가기관들이 모두 그렇게 침묵하고 계실 때, 유독 한국의 정부나 언론 등은, 닥쳐올 공황의 환영을 현실로 착각했던 것인지, 한창 활황이던 1996년 여름부터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징징대고는 있었다. 저들 냉혹한 현실주의자들이 환영을 현실로 착각했을 리가 있겠는가? 그 징징거림은 사실은 노동법을 개악하기 위한 정지작업의 하나였다. 그런데도, 예컨대, 정성진 교수님이라든가 강신준 교수님 등등등과 같은, 이 대한미국의, 내로라하는 ‘마르크스 경제학자님들’ㆍ‘진보적 경제학자님들’께서 그들의 장단에 맞춰 신명나게들 어릿광대춤을 추셨던 것은 2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기억에 생생한 그들 교수님들의 영예다.
26 <covid19.who.int/region/amro/country/us>.
27 Brittany de Lee, “Recession officially started in February, researchers say: Record-long economic expansion ended before coronavirus pandemic was declared national emergency”(2020. 06. 08.), (<www.foxbusiness.com/economy/us-recession–started-in-february-researchers-say>).
28 “Fact Check: No, America Wasn’t Heading Into a Recession Before Coronavirus”, <gop-waysandmeans.house.gov/fact-check-no-america-wasnt-heading-into-a-recession-before-coronavirus/>.
29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526 (채만수 역, ≪자본론≫ 제1권, 제3분책, p. 826) 참조.
30 보다 더 장황하게 제시하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은 A4 용지 125쪽에 이른다.
31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세계의 자본의 경악하고 나서자, 한국에서는 무슨 의도에서였는지 극우 중의 극우 언론 ≪조선일보≫(2009. 04. 04.)가 이를 누설하고 나섰다. 이렇게. ―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 각국 정책 입안가들 사이에선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미국 정부가 실시한 뉴딜(New Deal) 정책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뉴딜 정책의 진실은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는 다르다. … 1937년에 2차 경제위기가 다시 찾아왔다는 점에서 대공황의 궁극적 극복은 뉴딜정책이 아니라 2차 대전 발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장용성, 연세대 언더우드 특훈 교수ㆍ美로체스터대 교수, “뉴딜정책, 절반은 실패였다”, ≪조선일보≫ 2009. 04. 04.) 다만 ≪조선일보≫의 이러한 누설은 누구의 상상도 초월한 예외였고, 평소에는 물론, 예컨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1930년대 대공황서 뉴딜정책 펴 美 구해내 / 금융위기 맞아 ‘신념ㆍ화합의 리더십’ 부각 / 정치인ㆍ관료ㆍ언론 ‘그를 본받자’ 한목소리”(김민구 기자, “길잃은 미(美), 루스벨트에게 길을 묻다”, ≪조선일보≫, 2008. 10. 02.) 운운.
32 잘 알려진 것처럼, ‘뉴딜’에는 대대적인 과잉생산으로 폭락한 농산물 가격의 안정정책 혹은 ‘농촌경제 활성화 지원’(“‘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p. 2)이란 것도 있었는데, 그 내용인즉슨 주로 대량의 곡물을 불태우고, 곡물과 목화 등이 한창 자라고 있는 밭을 갈아엎는 것이었다. 대도시마다 헐벗고 굶주린 실업자들ㆍ노숙자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는데 그렇게 불태우고 갈아엎었던 것이다! 다름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라서!!!
33 <youwin0427.tistory.com/3836>에 의하면, “2005년 10월 13일 ‘조갑제닷컴’에 ‘진료실을 나온 애국의사 최대집’이라는 글이 실렸다.”
34 전국 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학생들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발표한, 40개 의과대학ㆍ의학전문대학원 본과 4학년 대표들의 성명서를 보면, 무척 흥미롭다. 다 그만두고, 8월 15일의 극우단체ㆍ극우룸펜 등의 광화문 대규모 시위를 계기로, 2월 말-3월 초만큼은 아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재격화되던 상황에서도 ‘굳쎄게’ 투쟁하시던 그분들이 참으로 고맙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국민 건강권이 위협받고 의료 인력 수급 문제가 대두되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학생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옳은 가치와 바른 의료’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하시고 계시니 말이다. 게다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8월 “22일부터 의대생 본과 4학년 대표단과 화상회의를 열고 ‘사과 없는 실기시험 응시 의사 표명 여부’에 대한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지 않은가?!
35 ≪공산당 선언≫ (MEW, Bd. 4), SS. 464-465. (최인호 역, ≪공산주의당 선언≫[김세균 감수, ≪칼 맑스ㆍ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1권, pp. 402-403 참조.)
36 그것이 얼마나 쇠귀에 경 읽기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는, 박현미 전 재영(在英)한인의사회장님께서 “비난 여론 이해 안돼”ㆍ“정부가 책임지지 않는데 왜 공공의료인가”ㆍ“파업에도 영국 정부 입장 안 바뀌자 의사들 떠나” 운운하시는, 송우연 기자의 “영국에서 온 의사가 보는 ‘한국 전공의 파업’”(<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1894>)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저 극우 ‘애국의사’ 최대집을 의사협회장의 직에서 탄핵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탄핵안’이, ‘파업’을 선동ㆍ선도했대서가 아니라, 그 ‘파업’을 보다 더 강경하게 비타협적으로 이끄는 대신에 중도에서 ‘타협’했대서 제출되었다는 사실도, 또 그 탄핵을 결행해야 한다며 무리지어 회의장으로 몰려든 평회원 의사들을 경비원들이 저지함으로써만 겨우 최대집 그가 ‘탄핵’을 모면했다는 사실도 상기하는 것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쇠귀에 경 읽기일 수밖에 없는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37 미국이나 기타 지역ㆍ국가의 소위 ‘인권단체’들이나, 예컨대, 한국의 극우 언론 및 기타 극우 논객들ㆍ정치가들 등의, 어릿광대춤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별로 없다.
38 “새삼”이라고 말하는 것은 주로 흑인 등 유색인종인 빈곤한 노동자들에게 걸핏하면 경찰이 총질을 해대는 것이,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권의 수호자ㆍ천국인 미국의 일상 풍경이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39 <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40 미국의 이러한 인권상황은, 특히 두드러지긴 하지만, 물론 결코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들 대부분의 인권상황이,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훌륭하긴 마찬가지다. 예컨대, 미국에 버금가는, 그리고 ‘전통적’인 부국들인 서유럽 국가들의 사망자수를 보면, 10월 7일 현재, 영국이 42,515명, 프랑스가 32,365명, 스페인이 32,562명, 이딸리아가 36,061명, 독일이 9,645명 등등이다. (같은 자료). 이러한 엄청난 수의 희생자는 당연히 각 계급계층에 균등히 분배되어 있는 게 아니다. 팬데믹의 격심한 계급차별!
41 이 대한미국의 정치가들이 한결같이 무엇보다도 말 잘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42 예컨대, 바이오스펙테이터 서윤석 기자, “WHO, 코로나19 ‘팬데믹’ 선언…‘통제의지가 중요’”, <biospectator.com/view/news_view.php?varAtcId=9770> (2020. 03. 12.).
43 발호ㆍ발광하고 있는 것은 특히 양(洋)귀신인데, 이 귀신은 자본주의의 고향ㆍ보루인 서구 및 미국에서 온 귀신답게 엄청난 돈귀신이고, 또한 엄청나게 반공주의적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중국이 아직 ‘공산주의 국가’라는 착각에서, 중국에 대한 국경봉쇄를 그토록 떠들어대던 그들이나 그들과 한 패거리인 극우가, 확진자가 하루에도 수만 명씩 발생하고 있는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는 국경봉쇄의 국자도 입 밖에 내고 있지 않는 것을 보라.
44 무엇보다도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 파쑈 독재를 극복한 게 결코 아니다.
45 예를 들어, 자신을 더 없이 특출한 좌파로 상품화하는 데에는 그야말로 특출한 재주를 가진 한 지식인도 이렇게 얘기한다. ― “우리에게는 가지 말아야 할 네 가지 막다른 길이 있다. / 첫째 막다른 길은, 급한 위기를 해결한다는 핑계로 다른 위기를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다. 코로나 위기를 해결해야 하니 환경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는 생각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서로 얽혀 있다. … 코로나 위기는 단순한 감염병 위기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맺고 있는 착취적인 관계에 기인한 위기다.” (슬라보이 지제크, “바이러스와 사는 법을 배우라고요? 사양합니다”, ≪한겨레≫, 2020. 10. 05.)
46 “노동은 우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과정, 즉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자신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物質代謝)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자연소재 자체에 대해서 하나의 자연력(自然力)으로서 상대한다. 인간은 자연소재를 자신의 삶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어떤 형태로 획득하기 위해서 자신의 육체에 속하는 자연력들인 팔과 다리, 머리와 손을 운동시킨다. 인간은 이 운동에 의해서 자신의 외부의 자연에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그는 자기 자신의 자연(Natur)을 변화시킨다. 그는 자신의 자연 속에 잠자고 있는 능력들을 발전시키고, 그들 힘의 운동을 통제한다.” (≪자본론≫ 제1권 (MEW, Bd. 23), S. 192. 채만수 역, 제1권, 제2분책, p. 298.)

채만수 소장

5개의 댓글

  • 기래기들이 싸지른 쓰레기들만 골라줏어다가 체할세라 꼭꼭 씹어드시는 꼴은 여전하시군ㅋㅋ
    그래 경제건 사람이건 뒤질놈이 뒤지는게 꼭 옘병 탓이겠소?
    새해 복 많이 받고 잘먹고 잘살면서 개돼지몰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하시길

    • 비판을 할 거면 비판의 근거가 되는 링크라도 걸어놓는 성의를 보인던가하지? 나도 본문 내용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니놈 글은 비판이 아니라 익명 뒤에 숨어서 똥싸지르고 튀는 수준인데?

      • 비판? 무슨 비이이판? 똥간이니까 똥을 싸지르지 아님 어따가 지름?

        ““만일 인류 전체가 일정 기간 생산을 중단하면”이라는 가정 자체가 절대적으로 비현실적이지만, 그리하여 아무리 엄혹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하더라도 일류 전체는 물론 한 국가사회 전체가 일정 기간 생산을 중단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사유재산제에 기초하지 않는 보다 고도한 사회라면, 설령 그러한 극도로 비현실적 가정이 현실화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 사회가 결딴나거나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을 리가 없다.”

        이 쌉소리가 무슨무슨 비판꺼리로나마 읽히면 네놈이 처먹는 개사료 유통기한이나 살펴보고 다시 생각해보렴. 이게 노동자민중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작자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쌉소리냐? 비판은 개뿔 무기의 비판 마렵다

        • 사유재산에 기초하지 않는 보다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더 나아가 일정기간 생산중단을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지금처럼 인간들이 생존위협을 받을 일이 없다는 얘기잖아.. 여기서 생존위협을 받는 인간의 절대다수가 누구라고 생각하냐? 할 말 있으면 말 좀 예쁘게 해라

          • 생산이 잠시라도 멈추면 온세상 절딴나는것은 사유제산제와 무관한 당연한 이치다. 당신네들이 무슨 무슨 위원회를 꾸려서 땅땅땅 의결하면 논에 옮겨 심을 모들이, 축사의 소 돼지 닭들이, 원자로의 핵연료봉들이, 자연적 활동을 멈추고 얌전히 기다려줄 줄 아느냐?

            스스로 절대적으로 비현실적이라는 가정을 던져놓고 정작 왜 그것이 절대적으로 비현실적인 가정일 수밖에 없는지는 이해하지 못한 주제에, 운동의 “과학성”을 운운하며 주제넘게 여기저기 안 끼는 데가 없이 비판질 훈수질을 해대는게 꼴불견이 아니고 무엇이냐?

            남의 문장을 빌려오면서도 “자신을 더 없이 특출한 좌파로 상품화하는 데에는 그야말로 특출한 재주를 가진 한 지식인” 운운하시는 당신네 버릇없는 소장님께나 평소에 말 좀 예쁘게 하시라고 충심의 간언 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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