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국가)독점자본주의와 노동조합 ―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

 

김태균 │ 연구위원

 

 

2020년 7월 24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김경자 수석 부위원장과 백석근 사무총장과 함께 동반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민주노총 제2기 직선으로 당선된 김명환 집행부가 2018년 1월 1일 임기를 시작해서 임기를 6개월 여 남겨두고 중도 사퇴하게 되었다. 김명환 집행부는 직선 2기 임원선거에 출마하면서 사회적 대화 참여를 공약으로 제시했고, 중도 사퇴하기 직전까지 이를 위해 모든 활동을 집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18년 1월 1일 임기 시작 열흘 후인 2018년 1월 11일 김명환 집행부는 당시 노사정위원장을 맡고 있던 문성현 위원장에게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제안했다. 그리고 1주일 후인 2018년 1월 19일 청와대를 긴급 방문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조건부 참여 입장을 표명했다.

당시 문성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과의 만남과 청와대 면담에 대해 민주노총 내부에서 많은 문제제기와 우려가 있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최소한의 절차와 민주주의를 부정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명환 집행부는 노사정위원장과 대통령 면담 직후인 2018년 1월18일 민주노총 2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위한 긴급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석할 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1월 31일 개최된 제1차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민주노총 위원장 이름으로 참석했다. 이로써 민주노총은 부르주아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대해, 지난 2009년 대의원대회 결정에 따라 사회적 합의주의가 거부된 이후, 8년 여 만에 위원장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참석을 하게 되었다. 이후 민주노총은 2월 6일 대의원대회를 통해 문재인 정권의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참여를 공식적으로 결정하였다. 노사정위원장과의 만남, 청와대 면담 그리고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의 일방적 참여 통보 등 김명환 집행부의 사회적 대화 참여에 대한 일방적 행보는 결국 2월 6일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많은 논란과 혼동 속에서 참여 결정으로 이어졌다.

 

김명환 집행부의 ‘새로운 대화를 위한 사회적 참여’는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우선 첫 번째, 민주노총이라는 노동자 대중의 전국적 조직에서 위원장의 일방적 행보로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가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는 당선과 동시에 기존의 결정(민주노총은 2009년 대의원 대회를 통해 부르주아 정권의 사회적 합의기구에 불참할 것을 결정한 바가 있음)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행보를 보였다. 노사정위원장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 그리고 이 속에서 소위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제안,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일방적 참여 결정과 대의원대회에서 폭력적인 강권 분위기 등은 노동조합의 최대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내부의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훼손한 것이었다.

 

두 번째, 김명환 집행부의 일방적 사회적 대화 참여는 지난 2009년 민주노총이 사회적 합의기구 불참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정세 판단, 즉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판단을 부정하는 행위였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는 1993년 노태우 정권 당시 한국노총과 행했던 노・경총 임금합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3년 노태우 정권과 한국노총과의 사회적 합의기구(노・경총 임금합의)는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억제를 위해 기능했다. 그리고 1996년 김영삼 정권과 권영길 민주노총 집행부가 참여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비록 96-97 총파업 투쟁으로 무력화되었으나 정리해고제 도입과 파견법 확대를 꾀했던 사회적 합의기구였다. 96-97 총파업 직후인 1998년 김대중 정권과 배석범 민주노총 직무대행의 노사정위원회는 결국 정리해고제 도입과 파견법의 확대를 수용했다. 서민의 대통령이라 찬양받았던 노무현 정권과 조준호 민주노총 집행부의 2006년 노사정대표자회의는 기간 사용 연한을 1년에서 2년으로, 그리고 근로자 파견제를 전면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의 역할과 기능은 전체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억압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지상 과제인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로 이어졌기에, 2009년 민주노총은 부르주아 정권의 사회적 합의기구에 대한 불참을 결정했던 것이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한국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합의기구에 대한 이러한 명확한 인식을, 김명환 집행부는 2018년 임기 시작과 동시에 그것도 일방적인 집행으로 부정한 것이었다.

 

세 번째,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의 또 다른 의도, 즉 민주노총 내부에서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를 둘러싼 논쟁으로 인한 혼란으로 당면 투쟁을 방기하게 하는 기능을 이번 2018년 김명환 집행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 논쟁은 충실하게(?) 수행했다.

 

문재인 정권은 민주노총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가 전개되는 과정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을 빙자한 근로기준법 개악과, 산입범위 확대를 통한 최저임금법 개악을 착착 진행했었다. 근로기준법 개악과 최저임금법 등 전체 노동자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노동관계법 개악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고 전개해야 했을 민주노총은 투쟁의 고삐를 죄는 대신에, 김명환 집행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에 대한 논란과 논쟁으로 인해 결과론적으로 투쟁을 방기한 꼴이 되었다.

도대체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사회적 합의기구가 무엇이기에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것일까? 노・경총 임금합의로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에서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는 노동자 민중에게 어떠한 결과를 낳을 지 뻔히 확인이 됨에도 불구하고, 왜 민주노총에서는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기구에 목을 매는 것일까? 100개 중에 100개는 쓸모가 없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왜 때가 되면 나타나고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이 문제로 논란과 쟁점이 형성되어 당면 투쟁을 방기하게 되는 것일까?

본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적극 공감하면서 이 문제를 풀고자 한다. 왜 사회적 합의기구라는 망령이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쟁점이 되며 그리고 이로 인해 투쟁을 방기하게 하는 것일까? 자본과 정권의 입장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는 어떠한 이득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사회적 합의기구가 왜 특정한 시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일까?

본 글은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글은 우선 첫 번째로 한국 사회에서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났는지 간단하게 살펴 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는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는지 살펴보겠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까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를 둘러싼 논쟁은 자본과 정권의 요구를 실현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요구하는 자본과 정권, 그리고 이를 수용하는 노동조합 운동 내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 세력, 마지막으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물적 토대라는 3박자는, 1993년에는 임금총액으로, 1996년과 1998년은 정리해고제 도입과 근로자 파견법 확대로, 2006년에는 비정규직 기간 사용 연한 확대와 근로자 파견법 확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권 시절인 2018년에는 노동시간 단축을 빙자한 근로기준법과, 산입범위가 확대되는 최저임금법 개악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를 저지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진군해야 할 노동자의 투쟁이,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와 불참 논쟁으로 인해 방기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사회적 합의기구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물적 토대에 대해 알아보겠다.

 

광폭한 폭압이 존재했던 일제 점령기 시대에도,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파쇼 정권 시절에도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사회적 합의기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1993년 노・경총 합의로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의 사회적 합의기구의 역사는 노태우 정권에 이어 김영삼 정권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문재인 정권 시절에 다시 등장했다. 왜 이승만 정권부터 전두환 정권 시절까지는 없다가 노태우 정권 시절에 등장해서 노무현 정권 시절까지 이어지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없어졌다가 다시 문재인 정권에서 부활한 것일까? 이는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사회적 합의기구의 물적 토대와 관련된 것이며 본 글의 하나의 고찰 대상이다.

 

세 번째로는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사회적 합의기구가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겠다.

 

노동자계급의 요구는 노동자 대중이 처해 있는 현실로부터의 해방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에 맞서 치열하게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노동 강도의 저하를 요구한다. 이에 반해 자본가계급은 자본가계급으로서의 사회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대폭적인 임금인하와 장시간의 노동시간 그리고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요구하면서 비타협적인 노사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노사관계에 대해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노동 강도의 저하라는 경제적 투쟁을 넘어 노동력을 둘러싼 판매 관계 자체, 즉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을 근본 모순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뛰어넘는 해방 투쟁을 전개해야만 한다. 이러한 노동자 민중의 해방 투쟁에서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사회적 합의기구가 어떠한 의미로 위치 지워지는지 그리고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 번째 단락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다.

 

 

1. 한국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사회적 합의기구의 역사와 그 결과

 

(1) 한국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의 역사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의 효시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시절인 1993년 노태우 정권과 한국노총이 참여한 노・경총 임금합의 기구였다. 당시 사회적 합의는, 1990년 전노협으로 모아지고 있는 민주노조의 움직임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면서, 동시에 전체 노동자 대중의 임금을 억제하기 위하여, 한국노총과 함께 임금 인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합의한 노・경총 합의였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임금인상 쟁취하자’, ‘민주노조 건설하자’로 집중되었던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건설로 이어졌다. 전노협은, 민주노조의 전국적 조직으로서의 민주노총 건설과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전면에 걸고 1990년 출범을 했다. 전노협 출범은 당시 전국적 조직으로서는 유일한 한국노총의 어용성에 대한 반대였고 민주노총 건설에 대한 의지였다. 전노협이 불참하고 한국노총과 김영삼 정권이 진행한 노・경총 임금합의는 광범위한 한국노총 탈퇴로 이어졌고, 이는 1995년 출범한 민주노총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1993년 노・경총 임금합의 기구는 폭력적 성격이라는 점에서 이후 민주당 정권과 민주노총이 참여했던 사회적 합의기구와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1995년 민주노총 출범 이후 김영삼 정권은 곧바로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인 권영길 집행부를 상대로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참여를 요구하는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를 펼쳤다. 당시 김영삼 정권은,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한국 사회에서 민주당 세력이라 보기 어려운 성격의 정권이었다. 하여튼 김영삼 정권과 민주노총의 권영길 집행부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 기구를 운영했는데,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제 도입과 파견법 확대 등에 항의하며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탈퇴했고, 이는 96・97 총파업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후 1998년 김대중 정권과, 권영길 위원장 사임 이후 직무대행을 맡고 있던 배석범 민주노총 직무대행과 제1기 노사정위원회를 운영하였고, 이 결과 96・97 총파업 투쟁으로 무력화되었던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이 다시 살아나 법안으로 통과되고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6년에는 민주노총 조준호 집행부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여 1년 단위 기간 제도를 2년으로 확대하고 근로자 파견제를 확대하는 등 비정규 관련 법 개악으로 이어졌다.

이후 2018년 문재인 정권과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는, 산입범위 확대하는 최저임금법 개악과 파견법 확대 등 노동 관련법 개악을 위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운영하다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었고, 2020년 코로나19 원 포인트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했다가 민주노총에서 부결 이후 김명환 집행부 동반 사퇴로 마무리가 되었다.

한국에서 지난 사회적 합의기구 논쟁에 있어 우리는 네 가지 주요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로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는 임금이나 노동조건 또는 고용 관련되어 노동조건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일 주체인 정부가 바로 민주당 세력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1993년 노・경총 임금합의 시절에서의 노태우 정권과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주도했던 김영삼 정권은 전통적(?)인 민주당 세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세 번째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또 다른 주체인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 세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 또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물적 토대의 측면을 보면, 사회적 합의기구가 제기된 시점이 경제위기 전후로 자본이 이윤율을 압박받는 시점이라는 점이다.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는 노동자의 철저한 희생을 결과했는데, 임금이나 노동시간 그리고 노동의 유연화 등 노동조건을 저하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1) 1993년 노・경총 임금 합의(노태우 정권과 한국노총)

1993년 한국노총과 노태우 정권 간에 진행된 노・경총 임금 합의는 임금인상 총액 수준을 정부가 중재하고 부르주아 전국 조직인 경총과 노동자 전국 조직인 한국노총이 임금인상안을 합의했다는 점에서 전국적 임금수준을 통제하는 기능을 했다. 1993년 4월 1일 ‘중앙노사임금조정 합의서’로 표현된 노・경총 임금합의 수준은 임금인상률 4.7%~8.9%로 당시의 두 자리 수 임금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합의 내용이었다. 4월 1일 노・경총의 임금합의는 전노협의 즉각적인 반발과 함께 대규모의 한국노총 탈퇴로 이어졌다. 1993년 노・경총 임금 합의는 그 이듬해인 1994년 사회적 합의(임금 인상률 : 5.0%~8.7%)와 1995년 산업평화 정착을 위한 공동 선언문(합의 내용: 산업평화를 위한 무쟁의 선언)으로 이어졌다.

 

2)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김영삼 정권과 민주노총 권영길 집행부)

1996년 민주노총이 최초로 참여했던 김영삼 정권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1996년 4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의 ‘신노사관계로 21세기 세계 일류 국가 건설을’이라는 제목의 신노사관계 구상이 발표되면서 구체화되었다. 1996년 5월 9일 민주노총 권영길 집행부가 참여한 상태에서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출범하였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이후 8차까지의 회의를 통해 정리해고제 도입과 파견제 확대를 위한 노동법 개악 안을 마련했다. 이에 민주노총 권영길 집행부는 1996년 12월 2일 ‘반개혁적인 정부는 노동법 개악 안을 즉각 철회하라’라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탈퇴하였다.

민주노총의 탈퇴 선언 이후 김영삼 정권은 정리해고제 도입과 파견제 확대・안기부법 개악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악 안을 1996년 12월 26일 새벽에 날치기 제・개정하였고 이에 반발하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노동자는 96-97 총파업 투쟁을 시작하였다. 96-97년 노동법 개정 총파업 투쟁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출범하고, 5년 뒤인 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한 이래, 최초로 전개된 전국적 정치적 총파업 투쟁이었다. 1996년 12월 26일부터 시작된 96-97 총파업 투쟁은 무기한 총파업을 중심으로 한 1단계 총파업 투쟁(1996.12.26.-1997.1.2.)과 철도와 공공 그리고 금속으로 확산된 2단계 총파업 투쟁(1.3-1.14), 전면 파업투쟁과 가두투쟁으로 집중된 3단계 총파업 투쟁(1.15-1.19) 그리고 매주 수요일 파업으로 전환된 4단계 총파업 투쟁(1.20-2.28)로 전개되었다.

96-97 노동법 개정 총파업 투쟁으로, 당시의 여야는 1997년 3월 10일 날치기 통과한 노동법을 수정해서 합의・처리를 하였다. 그러나 3월10일 여야가 합의 처리한 노동법 또한 지난 12월 26일 날치기 통과 당시 핵심적 내용이었던 정리해고제를 유지하는 등 악법 조항이 그대로 유지된 노동악법이었다.

 

3) 1998년 노사정위원회(김대중 정권과 민주노총 배석범 집행부)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는 1998년 1월 15일 출범하였다. 민주노총 배석범 집행부가 참여한 노사정위원회는 곧이어 1월 20일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고, 2월 6일 ‘노사정 공동 선언문’을 연이어 발표하였다. ‘노사정 공동 선언문’의 핵심 내용은 ‘IMF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계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를 수용하고 교원 노조를 허용’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곧바로 배석범 민주노총 집행부는 2월 9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소집해서 2월 6일 잠정 합의한 ‘노사정 공동 선언문’ 승인을 요청했다. 2월 9일 대의원대회는 배석범 집행부가 잠정 합의한 ‘노사정 공동 선언문’을 부결시켰다(찬성 54표, 반대 184명).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누가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는 정리해고제를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인가?

2월 9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배석범 집행부의 잠정 합의안의 부결과 동시에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탈퇴, 배석범 집행부의 총 사퇴, 민주노총의 총파업 선언, 총파업을 위한 단병호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선출 등을 결정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노사정 공동 선언문 잠정 합의안을 부결시켰지만 총파업을 위해 구성된 단병호 집행부는 총파업을 포기하고 임원 선출을 위한 선거 체제로 돌아섰다.

 

4) 2005년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의 사회적 대화 복귀 움직임(노무현 정권)

2004년 민주노총은 ‘중층적・총체적 교섭 틀 마련’을 공약으로 내건 이수호 후보를 집행부로 선택했다. 당선과 함께 이수호 집행부는 2005년 1월 20일 충북 속리산 유스 타운에서 개최된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대화 복귀를 위한 ‘사회적 교섭’ 안을 사업계획으로 제출하였다. 그러나 이날 개최된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이수호 집행부가 제출한 ‘노사정 복귀를 위한 사회적 교섭’ 안은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으며 새벽 6시 가까이까지 논쟁되다가 성원 부족으로 대의원대회가 유회되었다.

이수호 집행부는 1월 정기 대의원대회에서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2월 1일 대의원 대회를 재소집하여 ‘노사정 대화를 통한 사회적 교섭’ 안을 또다시 제출하였고 형식적 논의를 거친 뒤 찬반 투표를 진행하려 했다. 찬반투표로 의결할 것을 선언한 순간 민주노총 연단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회적 합의주의, 노사정 담합 분쇄 전국 노동자투쟁위원회(전노투)’와 현장 노동자들에 의해 단상이 점거되어 더 이상 대의원 대회가 진행되지 못하고 유회되었다. 1월 20일 정기 대의원대회에서의 밤샘 논쟁과 2월 1일 현장 조합원들에 의한 연단 점거사태까지 야기시켰던 이수호 집행부의 ‘노사정 대화를 위한 사회적 교섭’은 결국 또다시 3월 15일 소집된 대의원대회에서 물리적 충돌로까지 나타났다. 2월 1일 대의원대회 이후 이수호 집행부는 재차 3월 15일 대의원대회를 소집하면서 ‘민주노총 질서 유지대’를 운영했다. 만약의 폭력을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3월 15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민주노총 질서 유지대’와 ‘사회적 합의주의, 노사정 담합 분쇄 전국 노동자투쟁위원회(전노투)’를 중심으로 한 현장 조합원 간의 몸싸움으로 유회되었다. 사회적 합의의 수차례의 부결 이후, 이수호 집행부는 그해 10월 강승규 수석 부위원장의 비리 건으로 총사퇴를 하게 된다.

 

5) 2006년 노사정 대표자회의(노무현 정권과 민주노총 조준호 집행부)

2003년 2월 참여정부라는 이름으로 출범한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은 ‘사회 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으로 표현되었다. ‘사회 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은 노사정위원회가 중추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중앙 노사정위원회와 각 지역 및 산별 노사정회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는 2006년 2월 한국노총의 조건 없는 복귀 선언 이후 한국노총이 참여하고 민주노총이 불참한 상태에서 3월 회의를 재개했다.

노무현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는 2004년 출범한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에 의해 ‘민주노총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 안건이 수차례 제기되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부결이 되었다.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의 비리로 인한 사퇴 이후 당선된 조준호 집행부 또한 이수호 집행부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합의기구에 대한 민주노총 참여 안건을 제안하면서 민주노총은 또다시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 관련한 논쟁에 휩싸였다.

민주노총 조준호 집행부의 경우 2006년 3월 14일 개최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제안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2006년 5월 16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면서 이 안건은 유예가 되었으나 6월 19일 재차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대한 참여를 결정하였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 문제는 대의원 대회에서 이미 결정 난 사항이었다. 즉, 1998년 배석범 집행부의 야합을 반대하면서 집행부를 사퇴시키고 대의원 만장일치로 사회적 합의기구 불참을 결정했었다. 이러한 사항이기에 이수호 집행부의 경우 치열한 몸싸움이 있더라도 대의원대회에서의 결정을 존중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준호 집행부는 중앙집행위원회 결정 사항으로 대의원 대회 결정을 뒤집어서 조직 내 민주주의 절차를 부정한 것이었다. 특히 6월 19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의 안건 상정은 직전인 6월 13일에 개최되었던 중앙위원회에서의 위임 사항이었는데, 6월 13일 중앙위원회는 성원 부족으로 의결 권한이 없는 회의였는데 이 회의에서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건을 중앙집행위원회로 위임한다는 내용으로 정리하고 6월 19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논의 결정을 한 것이다. 여하튼 조준호 집행부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를 대의원 대회가 아니고 성원 부족으로 문제가 되는 중앙위원회의 위임을 통해 중앙집행위원회의 의결로 결정을 한 것이다.

6월 13일 중앙집행위원회의 참여 결정 이후 조준호 집행부는 곧바로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를 했고 노사정대표자회의는 복수노조의 전임자 임금 지급 건을 가지고 9월까지 수차례 회의를 진행하다가 9월 5일 입법 예고 강행과 복수노조 금지 5년 유예 조항에 항의를 하면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탈퇴를 하게 되었다. 이후 민주노총의 조준호 집행부가 빠진 상태에서 2006년 9월 정부와 경총 그리고 한국노총이 참여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선진 노사관계 로드맵’을 합의하였다. ‘노사관계로드맵’의 핵심 내용은 ‘복수노조 금지’,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3년간 유예’, ‘기간제 사용연한 1년에서 2년으로 연장’, ‘근로자 파견제의 전면 확대’ 등이었다.

이후 민주노총은 9월 19일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 결정 합의 내용을 규탄하고 11월 15일부터 무기한 전면적 총파업 투쟁에 돌입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결국 투쟁은 무산되었다.

 

6) 2018년 노사정대표자회의(문재인 정권과 김명환 집행부)

2018년 1월 1일로 임기가 시작된 민주노총 직선 2기 김명환 집행부는 공약으로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사정대표자 회의’를 제안한 바가 있었다. 김명환 집행부는 임기 시작 한 달도 채 안 된 1월 19일 청와대를 방문해서 ‘노사정대표자 회의’를 제안했다. 이후 김명환 집행부는 1월 25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새로운 대화를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민주노총의 참여를 제안했고, 곧바로 1월31일 문재인 정권의 제1차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지난 2009년 탈퇴 이후 8년 만에 민주노총이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김명환 집행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는 최소한 민주노총의 의결이라는 절차상 민주주의조차 부정한 것이었다. 1월 31일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한 김명환 집행부는 일주일 후인 2월 6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통해 ‘민주노총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가’를 사후 추인 받고 곧바로 4월 3일 개최된 제2차 노사정대표자 회의에 참여를 하게 된다.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 회의에 참여를 하는 동안 문재인 정권은 노동시간 단축을 빙자해서 수당을 없애는 근로기준법 개악을 했고,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기 위한 최저임금법 개악을 기도했다. 5월 22일 김명환 집행부는 산입 범위를 확대하는 최저임금법 개악에 항의하며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불참했는데, 문재인 정권은 5월 28일 상여금과 식대 등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최저임금법 개악 안을 통과시켰다.

김명환 집행부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석 과정에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이 개악 된 것이다. 이후 김명환 집행부는 아무런 이유 없이 또다시 7월 3일 청와대를 방문한 뒤 8월 18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문재인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를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이후 김명환 집행부는 10월 12일 개최된 제4차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이후 건설되어질 것으로 예정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민주노총의 참여를 합의하게 된다. 김명환 집행부는 10월 12일 제4차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합의한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안건을 10월 17일 개최된 민주노총 정책 대의원대회에서 사후 추인 받고자 안건으로 제출했으나 치열한 논의와 논쟁이 진행되다가 정족수 부족으로 안건 논의 자체가 유예되었다.

2018년 11월 22일 민주노총이 불참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출범하였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2019년 1월 25일 3차 청와대 면담을 통해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확인하고, 2019년 1월 28일 개최된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에 경사노위 참여 안건을 상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2019년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안건’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격론을 통해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면서 기존의 결정 사항인 ‘불참’을 확인하게 되었다.

당시 대의원대회에서는 대의원 181명의 발의로 제출한 ‘경사노위 불참과 대정부 투쟁’ 안이 331명(34.5%)의 지지를 받고, 금속노조가 발의한 ‘조건부 경사노위 참여’ 안이 362명(38.6%)의 지지를 받은 반면, 김명환 집행부의 ‘경사노위 참여’안이 부결될 것을 우려하여 산별 대표자 8인이 제출한 ‘선 참여, 개악 시 탈퇴’안은 402명(44%)의 지지를 받음으로써 모든 안이 부결되어 기존의 ‘불참’ 안을 재확인하였다.

이후 김명환 집행부는 2020년 사업계획을 논의 확정하는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조직 내부의 소모적 논쟁을 야기시키는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 안건을 상정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면서 정기대의원대회는 무탈(?)하게 지나가는 듯 했다. 2월 대의원대회 이후 김명환 집행부는 3월10일 ‘코로나19 특별 요구안 및 대정부 교섭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문재인 정권과의 노정교섭을 요구했다. 이후 김명환 집행부는 3월 18일 청와대에서 개최한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에 참가하고, 곧이어 4월 18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비상협의’를 제안하였다. 하루 뒤인 4월 19일 정세균 총리는 민주노총의 제안을 수락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5월 20일 민주노총이 참여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 1차 회의’가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 회의’는 이후 5월 22일 1차 실무협의와 6월 18일 2차 회의를 개최하고 이후 집중 교섭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민주노총은 6월 26일 9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민주노총 최종안을 확정하고 6월 29일 10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잠정 합의안에 대해 논의한 결과, 부결이 되었다. 이후 김명환 집행부는 7월 1일 예정되었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비상협의’ 협약식에 불참을 하고, 7월 23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10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부결된 노사정 최종합의안을 상정시켰으나 최종적으로 부결이 되었고, 이에 따라 7월 24일 김명환 집행부는 동반 사퇴를 하게 되었다. 한편 문재인 정권의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식’은 김명환 집행부 동반 사퇴 이후인 7월 28일 개최되었다.

 

(2) 한국 사회적 합의기구가 노동자 민중에게 남긴 것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가 노동자 민중에게 남긴 것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첫 번째, 사회적 합의기구의 결과 부르주아지는 자본의 요구를 얻었고 노동자는 생존권과 근로조건의 악화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사회적 합의기구가 남긴 것은 민주노총이 사회적 합의 기구 참여 논쟁으로 인해 당면 투쟁을 방기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의 논쟁을 통해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에 찬동하는 세력이 점차 시민권을 획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가 남긴 것으로서, 부르주아들은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켰고, 노동자계급은 노동자의 생존권을 잃었다.

 

표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는 1993년 노태우 정권과 한국노총이 참여했던 노・경총 임금합의와, 1996년 민주노총이 참여하기 시작했던 사회적 합의기구의 역사적 과정에서 모두 당시 정세에 근거한 부르주아 계급의 요구를 관철하는 기구로서 기능했다.

 

표1) 한국 사회 사회적 합의기구의 역사

연도, 및

사회적 합의기구

정권

노동조합

결과

1993년 

노・경총임금합의

노태우 정권

한국노총

임금인상률 

한자리 수 통제

1996년 노사관계개혁

위원회

김영삼 정권

민주노총 

권영길 집행부

정리해고・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1998년 

노사정위원회

김대중 정권

민주노총 

배석범 집행부

정리해고제, 

근로자 파견법 확대

2005년 노사정대표자회의

노무현 정권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

민주노총 내부 논쟁으로 투쟁 방기

2006년 노사정대표자회의

노무현 정권

민주노총 

조준호 집행부

기간제 사용 연한 연장, 파견제 확대

2018년 노사정대표자회의

문재인 정권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

근로기준법 및 최저임금법 개악

2020년 경제사회노동

위원회

문재인 정권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

코로나19 투쟁 방기

 

두 번째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는 민주노총에서의 참여를 둘러싼 논쟁으로 인해 내부 혼란과 혼동 그리고 당면한 투쟁을 방기했다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노총(전노협)이 참여하지 않았던 1993년 노태우 정권의 노・경총 임금 합의는 비록 한국노총을 참여시켜 당시의 두 자리 수 이상의 임금인상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한 의도로 전개되었으나, 오히려 밑으로부터의 한국노총 탈퇴 운동과 민주노총으로의 결집 투쟁으로 이어지면서 민주노조 운동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참여하기 시작했던(1995년 민주노총이 출범을 하고 1996년 김영삼 정권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부터 참석을 했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역사는 철저하게 부르주아 정권의 사회적 합의기구에 유린당한 역사였다) 1996년 김영삼 정권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부터 지금의 문재인 정권 시절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까지 한순간도 참여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전개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특히 1998년 배석범 집행부 시절에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와 2005년 이수호 집행부 시절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대표자 회의는 참여여부를 둘러싸고 몸싸움까지 전개되었던 내홍을 겪었다. 그리고 또한 1998년 배석범 집행부 시절의 김대중 노사정위원회, 2006년 조준호 집행부 시절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 2018년 김명환 집행부 시절 문재인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와 2020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는 집행부의 독단적 판단으로 참여와 불참을 반복함으로써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 질서를 훼손하기도 하였다.

부르주아 정권의 사회적 합의기구에 대한 일방적 참여를 주장했던 민주노총 집행부의 말로는 그리 좋지 않았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에 참여를 주장했던 배석범 집행부는 불신임 퇴진, 2005년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를 주장했던 이수호 집행부는 수석 부위원장의 비리 사건으로 동반 사퇴, 2018년 문재인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와 2020년 문재인 정권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주장했던 김명환 집행부 또한 동반 사퇴로 마무리 되었다.

이러한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혼란과 혼동 이외에도 자본과 정권이 요구하는 노동의 유연화가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실현되었다. 1993년 노태우 정권의 노・경총 임금합의는 임금인상 한자리 수로의 통제 기능을 했고, 1996년 김영삼 정권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정리해고제 안기부법 등의 날치기 통과, 1998년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는 정리해고제와 파견법 확대, 2006년 노무현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는 기간제 사용 연한 확대와 파견제 전면 확대로, 마지막 2018년 문재인 정권의 노사정대표자회의는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개악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세 번째로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기구는 민주노조 운동 내부에서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세력의 확대와 재생산 그리고 이를 통한 시민권 획득으로 이어졌다.

 

한국 사회의 노사관계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확대 재생산 되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당시의 전국적 조직인 한국노총의 무력화와 전노협에 이어 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민주노조의 전국적 조직 건설로 모아졌다.

87년 노동자 투쟁의 과정에서 현장 활동가들은 ‘민주노조 사수’, ‘한국노총 해체’, ‘노동자 생존권 쟁취’, ‘임금인상 쟁취’ 등으로 모아졌고 헌신적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신뢰와 믿음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현장 활동가들은 우파, 중앙파, 현장파 등으로 구분되면서 한국 사회 변혁을 둘러싼 쟁점과 노동조합 운동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등에 대한 이견 등 노선에 따른 쟁점으로 인해 조직적 분화의 과정을 걷게 되었다. 물론 노선 차이로 인한 조직적 분화는 불가피했고 필연적 현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과 노동시간 그리고 노동 강도 등을 둘러싼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계급적 대립 지점을 분명히 했으며, 나아가 분단이라는 한국 현실에서 계급 해방과 민족 통일이라는 공통의 과제에 대해서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그러나 1996년 김영삼 정권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대한 권영길 집행부의 참여를 시작으로, 민주노조 운동 내부에서 부르주아 정권의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형성되었고, 급기야 민주노총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전국적 대중조직의 집행부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민주노조 운동 내부에서 부르주아 정권의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민주노총 집행부를 장악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역으로 이러한 세력들에 의해 민주노조 운동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월 김명환 집행부 사퇴 이후 노골적으로 문재인 정권을 찬양하는 세력과 김명환 집행부 세력이 다시금 민주노총 선거에 조직적으로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민주노조 운동 내부에서 부르주아 정권의 사회적 합의기구 찬성 세력이 시민권을 획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사회적 합의기구의 물적 조건

 

(1) 사회적 합의기구가 가능한 조건

한국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사회적 합의기구 참여를 둘러싼 역사는 철저하게 자본과 정권의 요구대로 관철된 것이었다. 정리해고제와 비정규 관련 법 확대, 임금과 노동시간 그리고 노동 강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요구가 철저하게 관철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 운동이 당면 정세에 적합한 투쟁을 방기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지금도 시민권을 획득하고 있는 민주노조 운동 내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 세력들의 성장은, 여전히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가 진행 중임을 밝혀주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가 성립될 수 있는 물적 조건은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둘러싼 역사에서도 확인되듯이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민주당류의 부르주아 정치 집단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에 손바닥을 마주칠 민주노조 운동 내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 세력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노동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부르주아계급의 요구―위기가 존재해야 한다.

그림1]은 사회적 합의기구 관련한 간단한 도식이다.

사회적 합의기구는 민주당류의 정치세력과 민주노조 운동(민주노총) 내부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에의 참여를 갈망(?)하는 세력이 존재해야만 성립이 되는 사회적 현상이다. 또한 사회적 합의기구는 부르주아계급의 이윤을 착취하는 착취구조에 이상(?)이 생길 때, 즉 이윤율의 감소나 또 다른 형태의 경제위기 등을 물적 조건으로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의 결과는 민주노조 운동 내부의 사회적 합의기구에 찬동하는 세력(개량주의)의 동의(?)를 통해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 강도를 강화 하는 등 노동조건의 저하를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개악)한다.

결국 사회적 합의기구는 경제위기를 물적(경제적) 조건으로 하여 민주당류의 정치세력과 민주노조 운동 내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 세력(개량주의) 세력이 존재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림1] 사회적 합의기구 관련 간단한 도식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K-005.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47pixel, 세로 542pixel

 

 

 

(2) 기계제대공업・국가・독점자본주의 경제위기
1) 자본주의의 최후의 단계로서 제국주의

레닌이 1916년에 쓴 ≪제국주의론≫을 보면 20세기 초엽의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최고 단계로서의 제국주의’로 규정했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를 독점자본에 의한 독점이윤이라고 규정했다. 동시에 레닌은 매뉴팩처와 같은 수공업 생산이 아닌 기계제 공업 생산 시스템을, 비독점적 경쟁 시스템이 아닌 독점적 경쟁 시스템을,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이 아닌 국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로 규정을 했다.

결국 레닌의 정의에 따르면 ‘20세기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최후의 단계인 제국주의이며, 기계제 대공업・독점적・국가 자본주의’인 셈이다. 이러한 레닌의 정의에 따르면 자본주의 단계의 일반적 발전사는 “수공업적・자유주의적・경쟁적 자본주의 → 기계제 대공업・자유주의적・독점자본주의 → 기계제 대공업・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발전이며, 따라서 흔히 이야기하는 제국주의는 ‘기계제 대공업・국가・독점자본주의’를 의미하게 된다. 자본의 생리는 노동자가 생산하는 잉여가치를 자본으로 전화하여, 자본이 점차 거대해지는 ‘자본의 집적’과 다른 자본을 인수・합병함으로써 자본이 거대해지는 ‘자본의 집중’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거대해지는 (거대)자본은, 수많은 다른 자본과의 경쟁에서 평균적으로 취득하는 (평균)이윤율 이상의 (독점)이윤을 취득하는 독점자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성장한 독점자본이 시장1)과 사회를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독점자본주의 사회이다.

결국 레닌이 정의했던 제국주의는 독점이윤에 의해 시장과 전 사회가 지배받는 독점자본주의 사회이며, 수공업이 아닌 기계제 대공업이, 자유주의적 경쟁 자본주의가 아닌 국가 자본주의적 성격을 가지며,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서 최후의 단계로서의 ‘기계제 대공업・국가・독점자본주의’인 것이다.

 

2) 제국주의의 (만성적) 경제위기

생산의 무정부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그리고 대략 10년을 주기로 나타나는 공황은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시기이다. 특히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자본의 집중은 경제위기=공황기에 가장 활발하게 나타난다. 즉, 경제위기=공황은 자본 입장에서 독점자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독점자본이 시장과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제국주의 사회, 즉 ‘기계제대공업・국가・독점자본주의’의 독점자본이 형성되고 성장하기 위한 가장 좋은 조건은 경제위기 상황인 것이다.

결국 ‘제국주의=기계제 대공업 자본주의・국가 자본주의・독점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최후의 단계로서 주기적 공황과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되는 경제위기와 함께 만성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대략 10년을 주기로 나타나는 생산의 무정부성에 의한 주기적 공황과 더불어, 자본주의 사회는 ‘이윤’을 위한 생산 시스템에 있어서, 과학기술 발전 등으로 인해, 불변자본이 증대함에 따라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가변자본(노동력)이 점차적으로 축소됨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이윤율이 점차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대략 10년마다 나타나는 주기적 공황을 불러오는 동시에, 자본주의라는 계급사회가 계급 없는 새로운 사회로 전환될 수 있는 물적・경제적 조건이 된다.

 

3) 사회적 합의기구의 전제조건은 제국주의 시대에만 가능한 조건이다.

사회적 합의기구의 물적 조건은 1)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물적 조건―경제위기・공황과 2) 국가권력과 자본의 결탁, 그리고 탄압보다는 형식적 민주주의(사회적 합의기구)를 요구하는 민주당류의 정치세력, 그리고 3) 민주노조 운동 내부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에 목숨 걸고(?) 찬동하는 세력이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기구의 물적 조건은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인 제국주의 시대=기계제대공업・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에만 가능하다.

우선 첫 번째 사회적 합의기구가 가능한 경제적 조건, 즉 경제위기, 공황은 물론 제국주의 시기 이전에도 존재했다. 더불어 자본주의 최후 단계인 제국주의 시기에도 (만성적 형태)로 경제위기, 공황이 존재한다. 또한 사회적 합의기구가 가능한 두 번째 물적 조건인, 국가권력이 (독점)자본과의 결탁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만 사회적 합의기구가 가능하다. 결국 사회적 합의기구의 두 번째 조건은 국가자본주의와 독점자본주의가 결탁된 (기계제 대공업)・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에서만 가능하다.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 국가독점자본의 요구에 의한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에 목을 매는 세력, 즉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 세력이 존재해야만 사회적 합의기구는 성립할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서 평균 이윤율 이상으로 취득되는 독점이윤의 사용처 중 일부는 노동운동 내부에서 부르주아계급의 이해와 요구에 찬동하는 개량주의 세력을 육성하고 성장시키는 비용이다. 바로 이 지점! 민주노조 운동(민주노총 내부)에서 독점이윤에 의해 배양된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 세력이 존재해야만 사회적 합의기구는 가능하게 된다.

결국 종합해 보면 사회적 합의기구의 물적 조건은 1) 경제위기=공황, 2) 민주당류의 정치세력, 3) 민주노조 운동 내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세력으로서, 이것이 가능한 시기는 자본주의 최후의 단계인 제국주의 단계이자 동시에 기계제 대공업・국가・독점 자본주의 단계인 것이다.

 

 

3. 제국주의=기계제대공업・국가・독점자본주의와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응 원칙

 

1993년 노태우 군사파쇼 정권 시절 어용 한국노총을 앞세운 노・경총 임금합의가 한국 사회에서 최초의 사회적 합의기구였듯이 1930년대 말 이탈리아 무솔리니 파쇼 정권이 기업주와 노동자 그리고 전문가 등 22개 조합과 조직을 (사회적 합의 기구)협의체에 참여시켜 파쇼적 국가기구로 운영을 했던 것이 세계 수준에서의 사회적 합의기구의 최초의 사례2)이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 무솔리니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 이후, 1950년대 후반부터 서유럽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가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한국의 경우 민주당류의 정권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가 득세했다.

세계적 차원이나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국가독점자본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는 노동 관련법의 개악과 이로 인한 임금 및 노동시간과 노동 강도 등 노동조건의 악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 독점이윤에 의해 배양된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 세력에 의해 민주노조 운동의 기풍이 타협적・개량적으로 흘렀으며 노동조합 운동의 투쟁성이 거세되면서 자본과 정권에 협력적인 노동조합 운동이 대세가 되기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는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인 제국주의 시대에, 계급이 없는 노동해방 세상으로 가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변혁운동을 거세하고, 노동조합 운동을 독점이윤에 의해 배양된 개량주의 세력이 장악함으로써 노동자 투쟁을 봉쇄하는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 방향은 우선 첫 번째로, 의식적으로 노동해방 투쟁을 제기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제국주의=기계제 대공업・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의 투쟁에 복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제국주의의 경제적 특징, 즉 만성적 경제위기=공황기에 있어서 노동자 투쟁의 전형을 제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노동조합 운동 내부의 개량적・사회적 합의기구 찬동세력과의 비타협적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의 노동해방 정신・전투적・비타협적 투쟁 정신을 복원해야 한다는 점이다.

 

(1)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투쟁방향은 우선 첫 번째로 노동해방을 위한 변혁적 투쟁을 목적의식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가 전개되는 시기는 독점이윤에 의해 배양된 노동조합 운동 내부의 개량주의 세력들이 판을 치는 시기이다.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에 찬동하는 독점이윤 장학생들은, 경제적 지원은 독점자본에게, 정치적 지원은 국가에게 받는 것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시대적 현상이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과 밀착된 세상, 자본의 경쟁에서 획득되는 평균 이윤율을 상회하는 독점이윤을 획득하는 독점 자본이 형성된 세상, 독점이윤 중 일부를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받고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 개량의 이름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세력이 성장하는 사회, 독점자본에 의해 국가와 사회 그리고 시장이 지배되는 사회는 자본주의의 최후 단계인 제국주의 사회이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가장 극렬하게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최후의 사회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를 뛰어넘는 계급 없는 노동해방 사회를 위해 노동자계급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회이다.

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격렬하게 대립되는 노・자간의 계급적 모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경제위기・공황기 투쟁이며, 또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이며, 새로운 사회・노동해방으로 가기 위해 노동자계급이 국가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노동해방을 위한 변혁적 투쟁의 상을 분명히 하고, 매 순간 구체적 투쟁 전술에서부터, 노동해방의 길에 노동자들이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의식적 노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2)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제국주의의 경제적 특징, 즉 만성적 경제위기=공황기 노동자 투쟁의 전형을 제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생산의 무정부성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로 인해 자본주의 최후의 단계인 제국주의 단계는 경제위기・공황이 만성적으로 나타난다. 항상적으로 자본끼리의 대립이 강화되며, 독점자본들이 국가와 사회 그리고 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 경제위기・공황은 자본가계급이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위기로 전화시키면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제위기・공황기 투쟁은 자본의 위기 극복 방안, 즉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상대로 전면적이고도 공세적인 투쟁을 목적의식적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다. 양보와 타협이 아닌 비타협적 투쟁, 바로 구조조정과 노동 강도 강화로 표현되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에 맞서 노동시간 단축과 실질임금 삭감 없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노동자의 생존권 쟁취와, 이를 위한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투쟁이 요구된다.

‘노동시간 단축과 실질임금 삭감 없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노동자의 생존권 쟁취와 이를 위한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투쟁’은 노동해방을 위한 직접적 투쟁 요구는 물론 아니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제기되는 투쟁의 요구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체제 안에서의 투쟁 요구를 중심으로 노동자를 조직하고 나아가 노동해방・변혁투쟁으로 조직적 배치를 해 들어가는 투쟁 전술이 제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위기・공황기 노동자계급의 투쟁 전술은 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고민해 들어갈 필요가 있다. 매각을 전제로 하는 사업장에서의 투쟁 전술, 매각은 아니지만 생존권을 공격해 들어오는 사업장에서의 투쟁전술, 법과 제도를 개악하고자 하는 노동법 개악 정국에서의 투쟁 전술 등 다양한 사례와 상황에 맞춰 경제위기・공황기 투쟁의 전술을 배치해 들어갈 필요가 있다.

 

(3)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노동조합 운동 내부의 개량적・사회적 합의기구 찬동세력과의 비타협적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의 노동해방 정신, 전투적・비타협적 투쟁 정신을 복원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합의기구의 운영은 제국주의와 경제위기・공황기가 맞물려 있는 물적 조건으로 인한 계급관계에서 나타나는 필연적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조합 운동 내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 세력의 형성은 한순간에 발생한 현상이 아니며, 이들은 꾸준히 장기간에 걸쳐 국가와 독점자본의 치밀한 계획과 시나리오 속에서 형성된 개량주의 세력이다. 그러하기에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 암약하는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세력의 존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앉아 더욱 더 강화되고 확대될 것이다.

노동조합 내부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에 찬동하는 개량주의 세력은 소위 노선 차이로 구분되는 현장 활동가 제 조직과는 다르다. 그러나 독점이윤에 의해 배양된 사회적 합의기구 세력들은 여타의 활동가 조직과 같은 ‘또 다른 활동가 조직’인 양 행세를 하면서 민주노총 내부에서 암약한다.

예를 들면 지난 2005년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를 들 수가 있다. 이들은 지난 2005년 노무현 정권의 사회적 합의기구에 참여하고자 세 차례3)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를 소집하고, 민주노총 질서 사수대라는 이름의 ‘구노조(勞組)대’를 구성하여 조합원과 몸싸움을 벌일 정도로 노골적이다. 결국 이수호 집행부는 그해 10월 이수호-강승규 후보조가 민주노총 선거에 나올 때 회사로부터 강승규 수석 부위원장이 선거자금 받은 것이 폭로되어 동반 사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10월 현재, 오는 12월 진행되는 민주노총 직선 3기 선거에 사회적 합의기구를 찬동하는 김명환 전 집행부 세력과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 노골적으로 문재인 정권을 찬양하는 세력들이 임원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다.

사회적 합의기구에 찬동하는 개량주의 세력들과의 비타협적 투쟁은 운동진영 내부의 노선 대립이 아니라 ‘민주와 어용’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대립이고 투쟁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 개량주의 세력과의 투쟁은 곧 계급투쟁이며, 제국주의・국가독점자본주의에 맞서는 경제위기―공황기 노동자계급의 투쟁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  *  *

 

본 글은 “국가독점자본주의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주제로 쓴 글이다.

김명환 집행부의 사퇴와 곧이어 진행되고 있는 민주노총 직선 3기 선거 투쟁에서 김명환 집행부 및 노골적인 문재인 정권 찬양 세력에 대한 전체 노동운동의 공동대응은, 단지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 대한 대응 투쟁일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운동 내부에서 사회적 합의기구에 찬동하는 개량주의 세력과의 투쟁이다. 그리고 제국주의・독점자본주의・공황기 노동자계급의 투쟁이기도 하다.

선거가 끝나고 여전히 암약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 세력과의 투쟁, 여전히 예상되는―2022년 대선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겠지만―자본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 코로나 상황을 전후하여 급격하게 전개된 한국 자본주의의 경제위기・공황, 이 모든 객관적 정세와 주체적 과제가 우리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자본가계급과의 계급적 투쟁을 전개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투쟁 지도체, 노동조합 운동을 지지, 지원하고 민주주의 투쟁 등의 정치 투쟁을 지도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결사체 건설은 당면한 현실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노사과연


1) 독점자본에 의한 시장 지배는 이윤을 취득하는 산업자본과 이자를 취득하는 금융자본 그리고 지대를 취득하는 토지자본의 결합에 대한 강화를 의미한다.

 

2) 물론 노태우 파쇼 정권과 무솔리니 파쇼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가 진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인가? 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많은 논란이 존재하고 있다. 한 축에서는 독점이윤에 의해 배양된 노동조합 내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세력이 아니라 파쇼적 폭력에 의해 억눌려진 세력이라는 점, 그리고 노태우 정권과 무솔리니 정권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민주당류의 정치세력과는 달리 파쇼 정치세력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와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물론 본 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논쟁을 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다. 다만 간단하게 필자의 의견을 제시해 보자면, 노태우 정권 시절 노・경총 임금합의나 무솔리니 정권 시절의 협의체 또한 사회적 합의기구의 형태라고 보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한국에서 노태우 정권이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과 한국의 민주당 류의 정권과의 차이점 그리고 노태우 정권 때의 한국노총과 무솔리니 정권시절 협의체에 참여했던 노동조합과 한국에서의 민주노총 내부의 사회적 합의기구 찬동 세력과의 차이와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나타난 결과 등을 비교하면, 물론 차이가 있으나 큰 차이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특히 한국에서의 민주당류의 정치세력에 대한 계급적 판단과 파쇼 정권의 성격 등에 대해서 크게 차이를 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전제가 된다면, 이 문제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그리 큰 문제는 아닐 듯 싶다.

 

3) 2005년 1월 20일 정기 대의원대회, 2월 1일 임시 대의원대회, 3월15일 임시 대의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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