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과학의 위기와 그에 대한 레닌의 철학 상의 해결: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읽고

 

문영찬 │ 연구위원장

 

 

1.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의 의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이 쓰인 것은 1908년부터 1909년에 걸친 기간에서였다. 이 시기는 러시아에 있어서 1905년의 러시아 1차 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반동기가 전개되고 있던 때였다. 짜르 정권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자행되고 또 운동의 대오가 와해되면서 비합법의 당 조직이 유명무실화되고 또 많은 당원들이 탈당하고 변절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멘셰비키는 비합법의 당 조직을 해체하고 당 조직을 합법 조직으로 전환시키는 길을 걸었다. 반면에 볼셰비키는 비합법 조직의 골간을 유지하면서 반동기에 맞는 전술, 즉, 짜르 의회 선거에 참여하고 대중과의 끈을 강화하는 길을 걸었다.

이 시기에 레닌은 스위스에 망명하고 있었는데, 운동에 있어서 철학 상의 혼돈을 치유하고, 원자의 붕괴, 전자의 발견 등으로 인해 당시 발생하고 있던 과학의 위기에 대해 그 성격을 해명하고, 그러한 과학의 위기를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정리하고, 치유하는 길을 걸었는데, 바로 그러한 작업의 산물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이었다. 당시 레닌의 동료였던 보그다노프는 유물론을 포기하고 관념론으로 전환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철학적, 이데올로기적 혼돈을 시급히 정리하고 해결하는 것이 당시의 반동기에 있어서 주요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당시 과학의 위기의 틈을 비집고 번성하고 있던 관념론의 일종인 경험비판론을 비판하며 주관적 관념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대치시키고, 물자체 개념을 핵심으로 하는 신칸트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을 대치시키면서, 과학의 문제와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계 등 주요 쟁점을 해명하여 맑스주의 철학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였다.

 

 

2. 버클리와 흄의 주관적 관념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레닌은 경험비판론의 실질을 이루고 있던 주관적 관념론의 고전적 원형을 보여주는 버클리 주교의 철학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하고 있다. 버클리는 “지각되는 것과 무관하게, 생각할 수 없는 사물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을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을 의미한다 … 진실로 객체와 감각은 동일물이며, 양자는 서로로부터 제거될 수 없다.”1)는 견해를 표방하였다. 이러한 버클린 견해는 감각이 곧 객관적 존재를 의미하며 따라서 이 세계는 감각의 복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견해를 밀고 나가면, 이 세계에는 감각의 주체인 ‘나’ 자신만이 존재한다는 유아론(唯我論)으로 나아가게 된다. 버클리는 객관적 실재인 물질이 “비실재(非實在)”이며 “무(無)”라고 단언을 했다. 이것은 감각이 곧 존재이며 존재하는 것은 감각만이라는 버클리의 견해에서는 필연적인 논리적 결과였다.

버클리의 이러한 주관적 관념론은 사실상 비과학을 표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에 따라 버클리는 원인과 결과라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인과성을 부정하였다. 왜냐하면 인과성을 인정하게 되면 감각을 넘어서는 물질적 관계, 어떤 물질의 존재 원인이라는 관념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이는 감각만이 존재한다는 자신의 주관적 관념론과 배치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버클리는 “물질적 원인에 의해 사물을 설명할 것을 주장하는 교의”를 배척했는데 이는 주관적 관념론이 과학에 대한 부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은 이후 원인과 결과의 관계, 인과성의 부정으로 유명한 흄으로 이어졌다. 흄은 “정신은 지각 이외에 어떤 것도 결코 획득할 수 없으며, 지각과 대상의 결합에 대한 그들의 어떠한 경험에도 도달할 수 없다.”, “우리의 지각은 우리의 유일한 객체이다.”2)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흄의 견해는 버클리와 같이 주관적 관념론의 전형적인 견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각만이 객체이다’라는 주장! 이것은 전형적인 주관적 관념론인데 흄은 이러한 견해에 기초하여 ‘지각과 대상의 결합은 인식될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적인 견해로 나아간 것이다. 이 세계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흄의 입장에서는 지각과 대상의 결합은 결코 인식될 수 없는 것이다. 주관적 관념론과 불가지론의 결합!이 곧 흄 철학의 실제적 내용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철학을 승인하게 된다면 인간은 이 세계에 대한 능동적 개입과 실천의 근거를 상실하게 될 것이고 또한 이 세계에서 과학은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반면에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지각을 넘어선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승인하며, 그러한 객관적 실재의 세계에서 원인과 결과 관계가 존재하며, 우리 인식 주체가 인식하는 관념으로서의 원인과 결과 관계, 인과성은 객관적 세계에 존재하는 원인과 결과 관계의 반영임을 승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 기초할 때만 어떤 현상, 어떤 물질의 원인에 대한 탐구가 가능해지며, 따라서 과학이 성립될 수 있다.

 

 

3. 주관적 관념론의 변종으로서 경험비판론

 

레닌은 마하의 경험비판론의 개념을 정면으로 분석하면서 비판을 전개한다. 마하는 감각이 사물의 반영인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물이 감각의 상징이라는 전도된 주장을 한다. “감각은 ‘사물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사물’이란 상대적 안정성을 가지는 감각복합을 나타내는 정신적 상징이다. 세계의 실재적 요소는 사물이 아니라 색, 소리, 압력, 공간, 시간(즉 우리가 흔히 감각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3) 감각이 사물의 상징, 정확히 말하면 사물의 반영이라는 것은 유물론을 의미한다. 그러나 마하는 이를 부정하고 사물은 감각의 복합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물, 즉, 물질적 존재가 감각의 복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으로서 전형적인 주관적 관념론을 의미한다. 마하의 이러한 주장은 버클리와 비교해 볼 때, 버클리는 감각 혹은 지각이 곧 존재라고 한 데 비해 마하는 단지 감각의 복합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마하 등의 경험비판론자들을 본격적으로 비판하기에 앞서 주관적 관념론의 원형인 버클리를 먼저 비판했던 것이다.

마하는 ‘요소’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여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는 양하는 기만적인 모습을 취한다. 마하는 감각이라고 불리는 요소들의 결합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요소는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물리적인 그리고 심리적인 요소 연관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함께 존재한다.”4) 여기서 마하는 ‘요소’라는 개념에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이 있다고 하여 마치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을 넘어서는 듯한 외양을 취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만적인 것인데, 마하 스스로 요소는 감각임을 주장하고 있어서 요소는 물리적인 것에 대한 감각과 심리적인 것에 대한 감각을 가리키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하는 물리적인 것(에 대한 감각)이 심리적인 것(에 대한 감각)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함께 존재한다고 하여 의식, 심리, 감각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실재라는 물질 개념을 부정하고 있다. 만약 물리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의 불가분적 연관이 인정되면 물리적인 것은 물질이 아니라 심리, 의식, 감각의 산물로서의 성질을 갖게 되고 이는 주관적 관념론으로 귀착되게 된다. 왜냐하면 심리, 의식, 감각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실재로서의 물질, 물리적인 것을 승인할 때만 유물론을 승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하의 ‘요소’ 개념은 물질 개념과 심리, 즉, 의식, 감각 개념의 불가분적 연관을 설정하는 것을 통해 유물론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자신이 주관적 관념론임을 감추고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을 넘어서는 듯한 외양을 취하는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레닌은 “새로운 용어를 발명함으로써 철학의 근본 경향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5)라고 비판했다.

마하의 동료인 아베나리우스는 마하와 비교할 때 새로운 내용이 없으면서도 새로운 용어인 ‘원리적 동격’ 개념을 도입하여 마치 자신이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고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을 넘어서는 듯한 외양을 취하고 있다. “자아와 환경 사이의 불가분한 동격”, “자아는 동격의 중심항이라고 불리워지고, 환경은 대립항이라고 불리워진다.”6) 자아와 환경이라는 개념은 피히테의 자아(自我)와 비아(非我)라는 개념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피히테에게서는 비아는 자아의 산물이었는데, 아베나리우스는 자아와 환경(즉 비아)이 동격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동격이라는 것은 자아와 환경, 즉, 비아가 긴밀한 연관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비아, 환경, 자연, 객관적 실재로서 물질이 자아(즉, 의식, 감각)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베나리우스의 원리적 동격 개념은 스스로 주관적 관념론자임을 감추고 마치 새로운 철학을 도입하고 있다는 모습을 취하는 기만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자아와 비아의 관계, 자아와 환경의 관계는 서로 동격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아, 환경, 자연이 자아, 의식, 감각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아, 의식, 감각은 환경, 비아, 자연, 물질의 산물이며 그 반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을 인정할 때만 주관적 관념론이기를 멈추고 유물론의 입장에 서게 된다.

자아와 환경의 동격이라는 아베나리우스의 주장은 레닌에 의해 통렬하게 비판을 받는다. 레닌은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의 지구를 상정하면서, 그때는 자아가 존재하기 이전이므로 자아와 환경의 동격은 존재하지 않으며, 자아 이전에 이미 지구, 즉, 환경이 존재했다는 점을 들어 아베나리우스를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베나리우스는 현실로 존재하는 자아는 아니지만 잠재적 자아가 존재하며 그것이 “잠재적인 중심항”으로서 작용한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였다. 이러한 비과학적인 주장은 자아와 환경의 동격이라는 논리를 유지하기 위한 억지논리에 지나지 않으며, “잠재적 중심항”이라는 개념 자체가 현실로서 존재하는 자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 개념, 공상적 개념일 뿐이라는 점에서 아베나리우스의 견해가 관념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4. (신)칸트주의의 물자체 개념과 마하주의

 

마하주의 혹은 경험비판론이 유행할 당시, 유럽에서는 칸트로 돌아가자는 주장, 즉, 신칸트주의가 유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칸트주의에 대해 마하주의자들은 칸트의 물자체 개념을 집중 공격했는데, 이는 물자체 개념이 유물론으로의 전망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칸트에게 남아 있는 유물론적 요소가 마하주의자들의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사실 물자체 개념은 유물론적 요소를 일부 포함하고 있으나 그 자체로는 불가지론적 성격을 보여주는 개념이었다. 즉, 칸트는 현상과 본질을 분리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상의 영역에 국한되며 본질에 해당하는 물자체(사물 자체 thing itself)에 대해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칸트는 엥겔스에 의해 불가지론자로 분류되기도 했다. 엥겔스는 이러한 칸트의 물자체 개념에 대해 우리가 그 본질을 알 수 없었던 사물이 실험과 산업에 의해 즉, 실천에 의해 그 본질이 파악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물자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물(物)로 전환된다고 비판했다. 엥겔스는 “만일 우리 자신이 자연 과정을 만들어 내고, 이 자연 과정을 그 조건으로부터 나타나게 하고, 이것을 우리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함으로써 이 자연 과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정확함을 증명할 수 있다면, 칸트가 말하는 인식할 수 없는 “물자체”는 종언을 고할 것이다.”7)라고 하였다. 예를 들면 꼭두서니에서 채취하던 알리자린이라는 색소를 화학의 발전으로 인해 코울타르에서 저렴하게 생산한다면, 알리자린은 더 이상 물자체인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물로 전환된다는 것이 엥겔스의 설명이었다. 사실 칸트가 물자체라는 개념을 고안한 것은 당시 과학이 막 발돋움하고 있었지만 허다한 과학적 현상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던 당시 과학의 한계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칸트 이후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그전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과제로 남아 있던 많은 과학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칸트로부터 엥겔스에 이르는 약 100년의 기간은 과학의 비약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하자주의자들은 이러한 칸트의 물자체에 대해 물자체가 지각의 영역 밖의 존재에 대한 승인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공격을 가했던 것이다. 즉,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서 지각의 영역 밖의 존재는 ‘무(無)’일 수밖에 없는데, 칸트는 그 ‘무’의 영역에 물자체라는 개념을 설정하여 지각 영역 밖의 객관적 실재의 가능성을 남겨 놓았다는 점에서 주관적 관념론자, 마하주의자들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주관적 관념론자들, 마하주의자들, 경험비판론자들은 유물론자가 지각의 영역 밖에, 지각으로부터 독립한 외적 세계, 물질의 세계가 존재함을 승인하는 것을, 지각을 넘어선 ‘초월’의 감행이라고 비판했다. 지각을 넘어선 외적 세계에 대해 그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주관적 관념론의 인식인데, 이들의 입장에서 지각 영역 밖의 외적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은 곧 ‘초월’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서 지각 밖의 외적 세계, 물질적 세계의 승인은 곧 ‘형이상학’이라고 인식되었다. 그러나 유물론적 인식은 지각과 그 영역밖에 존재하는 대상, 물질적 대상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며, 지각은 물질적 세계, 그 대상들이 인식에 반영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외적 세계, 지각과 의식 밖의 물질적 세계에 대한 승인은 ‘초월’이 아니라 과학적 인식의 전제, 출발점으로서 역할 하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의 지각에 불과한가 아니면 지각을 넘어선 외적 세계, 물질적 세계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는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 객관적 진리를 승인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한때 레닌의 동료였던 마하주의자인 보그다노프는 “진리란 이데올로기적 형식, 인간 경험의 조직된 형식이다.”8)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레닌은 진리가 인간 경험의 조직 형식이라면 카톨릭의 교리 또한 진리가 된다고 조소하였다.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서 진리는 주관의 조직 형식, 따라서 경험의 조직된 형식이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진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정확히 인식했는가 아닌가가 진리의 잣대가 된다. 여기서 조금 더 확장하면 인간의 집단에서 다수가 승인하는 것이 곧 진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에서는 진리가 다수가 승인하는가, 아닌가와 무관하게 인간으로부터 독립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존재, 인간의 출현 이전에 지구의 탄생 초기에 지구가 뜨거운 상태로 존재했다는 것은 현대 지구과학의 견지에서 보면 진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이전의 진리이므로 인간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진리가 된다. 이것은 인간이 뜨거운 상태의 지구를 지각했는가 아닌가의 문제, 나아가 인간 다수가 그러한 상태를 승인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에 의해 검증되고 증명되는 문제라는 것, 즉 객관적 진리의 문제임을 제기하는 것이다. 사실 객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과학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물리학, 역학, 화학, 생물학 등의 과학이 과학인 이유는, 그것이 객관적 실재를 연구 대상으로 한다는 점, 그 대상에서 관철되는 필연성을 파악하고 나아가 거기서 일정한 법칙성을 발견한다는 점 때문이 아닌가?

레닌은 이러한 객관적 실재를 물질이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하여 맑스주의 철학의 발전사에서 중대한 족적을 남겼다. “물질이란 인간의 감각에 의해 주어지고, 우리의 감각에 의해 복사되고 촬영되고 모사되지만, 그것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표현하기 위한 철학적 범주이다.”9) 물질에 대한 레닌의 이러한 정의는 그동안의 철학과 과학 발전의 성과를 담고 있고, 특히 당시 원자의 붕괴, 전자의 발견 등으로 인해 전개되고 있던 과학의 위기에 대해 철학적으로 답을 내린 것이었다. 원자의 붕괴, 전자의 발견 전까지 자연 과학에서 이 세계, 물질의 궁극적 단위는 원자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더 이상 분할 불가능한 최소단위로서 원자 개념이 그동안 과학의 발전을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자의 불변성이라는 이러한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원자 개념은 원자핵과 전자의 발견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물질이 소멸하였다, 전자는 더 이상 물질이 아니다, 물질이 비물질로 전환되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 과학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닌은 이에 대해 물질은 인간의 감각,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는 정의를 내림으로써 물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관점을 극복하고 물질의 전화를 포함하여 물질에 대한 보다 포괄적이고 심원한 접근, 과학 발전의 새로운 전망을 열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레닌은 맑스주의 철학사에서 레닌적 단계를 열었다고 평가받게 되었던 것이다. 원자는 붕괴될 수 있지만 그것은 물질의 소멸이 아니라 물질이 한 형태에서 또 다른 형태로 전화하는 현상이며, 방사능과 전자는 비물질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던 물질의 보다 깊은 층위를 나타내는 현상으로서, 물질이 비물질로 전화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심화되는 것을 가리킨다는 점이 레닌에 의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레닌의 물질 개념에 대한 정의를 통하여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창시되었던 변증법적 유물론은 현대 과학의 기초 위에 확고하게 설 수 있었으며, 실제로 이후 아인슈타인에 의한 상대성 이론의 발전 등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확증하는 것이었다.

객관적 진리에 대한 승인은 일정하게 절대적 진리에 대한 승인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진리는 과거 중세 유럽에서 횡행했던 것처럼, 존재, 본질, 형상 등 스콜라적인 신학적 개념을 통해 형이상학적 진리로서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진리의 총화로서의 절대적 진리라는 변증법적 개념으로서 제기되게 되었다. 이에 대해 레닌은 “인간의 사유는 그 본질에 있어서, 상대적 진리의 총합인 절대적 진리를 우리에게 줄 수 있고 또 주는 것이다.”10)라고 규정했다. 예를 들면 ‘모든 물질은 운동한다’라는 규정은 일종의 절대적 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규정은 물리학의 영역에서, 화학과 생물학의 영역에서, 사회적 영역에서 각기 상이한 물질의 운동으로 관철된다. 즉, 각각의 영역에서만 타당한 특수한 형태의 물질적 운동이라는 상대적 진리가 변증법적으로 종합되면서 고도의 추상적인 절대적 진리로서, ‘모든 물질은 운동한다’는 규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진리가 있을 경우, 그것이 진리가 되는 상대적 조건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며, 또 다른 조건에서는 그 진리가 어떻게 변형되어 나타나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진리는 구체적이다’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명제가 성립하는 것이다.

 

 

5. 레닌에 의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범주들의 발전

 

레닌은 철학의 근본문제인 물질과 의식 중 어느 것이 일차적인가의 문제에서 다음과 같은 방법론을 제기하고 있다. “물질과 의식이라는 두 개의 궁극적인 개념에 대해 그 어느 것이 일차적인가라는 정의 이외에는 어떠한 정의도 본질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들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본질적으로 한 개념을 그보다 더 포괄적인 다른 개념 속에 포섭시킴을 의미한다.”11) 레닌은 일반적 정의는 당나귀는 동물이다와 같이 당나귀라는 개념을 그보다 포괄적인 동물이라는 개념에 포섭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물질과 의식과 같은 인식론의 궁극 개념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포섭시키는 방식의 정의가 불가능하며, 따라서 물질과 의식 중 어느 것이 일차적인가를 선택하는 것만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물론과 관념론의 무수한 학파와 철학자들은 각기 물질과 의식에 대한 이러한 선택을 통하여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질과 의식 중 어느 것이 선차적인가에 대한 검증은 단순한 논리로서만이 아니라 실천, 실험과 산업, 계급투쟁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의 뇌과학과 생리학의 발전은 의식이 뇌리라는 물질의 내적 성질임을 입증하고 있는데 이는 과학의 발전이 유물론적 선택을 뒷받침하고 있는 사례이다.

그리고 레닌은 물질과 의식이 대립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물론 물질과 의식 간의 대립은 극히 국한된 범위 내에서만―이 경우에 있어서는 무엇이 일차적이고 무엇이 이차적인가 하는 인식론 상의 근본문제의 범위 내에서만―절대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범위를 넘어서면 이 대립은 물론 상대적인 의미밖에 없는 것이다.”12) 레닌의 이러한 설명은 철학의 근본문제에 대한 태도 정립에 있어서 극히 귀중한 것이다. 물질과 의식이 대립하는 것은 인식론의 범주 내에서이며, 만약 인식론의 범위를 넘어서서 물질과 의식의 대립을 현실 세계로까지 확장하면 그것은 세계에 대한 이원론(二元論)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철학적 영역 내에서만 물질과 의식의 대립은 절대적이며, 철학의 영역을 넘어서면 물질과 의식은 상대적으로만 대립한다는 것이 레닌의 주장인 것이다.

레닌은 마하주의자들이 흄을 따라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 인과성이 자연에 실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인과성을 단지 하나의 사건에 뒤이어서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는 시간적 순서로만 파악하는 것을 비판한다. 이들 마하주의자들은 자연에서 원인과 결과 관계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필연성은 개념에 세계에 속하는 것이지 지각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13)라고 주장한다. 마하주의자에게 지각은 곧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 인용문은 마하주의자들이 자연에서, 현실 세계에서는 필연적 연관이 존재하지 않으며 필연성은 단지 인간의 의식 내부의 개념의 세계에서만 나타난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는 인과성의 영역, 필연성의 영역에서 주관적 관념론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인과성이 현실의 영역, 자연의 영역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승인할 때만 과학의 성립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 주관이 파악하는 필연성은 자연의 영역에서의 필연성의 반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것이 곧 변증법적 유물론의 인식론이다. 레닌은 이 점에 대해 “자연의 필연성을 승인하고, 이로부터 사유의 필연성을 도출하는 것이 바로 유물론이다.”14)라고 정식화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문제에 있어서 마하는 시간과 공간의 객관적 실재성을 다음과 같이 부정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일련의 감각의 질서정연한 체계이다.”15) 시간과 공간을 단지 감각의 형식으로만 보는 것은 주관적 관념론적 인식이다. 칸트 또한 시간과 공간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정하고 시간과 공간은 인간 직관의 주관적 형식으로 파악한 바 있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지구의 계절 변화는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주관에만 존재하는 것이 된다. 칸트나 마하가 이런 엉터리 같은 견해를 가지게 된 것은 그들의 인식론이, 철학적 견해가 주관적 관념론의 지반 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칸트의 입장에서 만약 시간과 공간이 인식 주관의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물질, 사물의 실재적 형식으로 승인되게 된다면, 그것은 칸트가 물자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한 주장과 모순되어 칸트 철학 전체가 붕괴하게 된다. 즉, 어떤 물질의 시간과 공간의 형식을 파악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 물질과 대상의 실체, 본질에 대해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 부분은 파악 가능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하와 같은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서는 세계 자체가 주관의 지각에 지나지 않으므로 시간과 공간 또한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지각의 형식에 지나지 않게 된다. 과거 중세 유럽이 신학에 의해 무지몽매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면, 현대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이러한 주관적 관념론이 대중을 무지몽매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레닌은 자유와 필연성의 문제에서 마하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마하주의같은 주관적 관념론에서 자유는 필연성과 무관한 것으로서 단지 주체, 주관의 의지의 문제가 될 뿐이다. 이것은 고전적인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논쟁에서 자유의지에 대한 옹호로 나타나기도 했던 문제이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은 자유와 필연성의 연관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켰다. 그리하여 헤겔에 의하면 자유는 필연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필연의 지양’이라고 파악되었고 이러한 견해는 엥겔스에게 계승되었다. 엥겔스는 헤겔의 자유와 필연성에 대한 견해를 대중적으로 쉽게 개설했다. “필연이란 이해되지 않는 한에 있어서만 맹목이다.”, “일정한 문제에 대한 인간의 판단이 자유로울수록 이 판단의 내용은 필연성에 의해 규정받는 것이다. … 그러므로 자유는 자연필연성에 대한 인식에 입각하여 우리 자신과 외적 자연을 지배하는 데서 성립하는 것이다.”16) 그리고 자유와 필연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에 입각하여 엥겔스는 자유는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라고 파악했는데, 이러한 엥겔스의 견해의 깊이는 자유를 단순한 의지의 문제로 보는 견해의 피상성과 잘 대비된다.

 

 

6. 과학의 위기와 그에 대한 레닌의 철학적 해결

 

레닌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쓰던 1908-1909년 당시는 최신의 과학혁명이 이루어지고 있던 때였다. 당시 막 전자의 존재가 발견되었고 또 일정한 원자의 붕괴 현상이 관찰되어 과학자들은 이를 ‘물질의 소멸’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기존에 물질의 최소단위는 원자로 해석되었기 때문에 전자는 물질이 아닌 것으로 파악되었고 따라서 물질이 비물질로 전환된다는 해석이 나타났다. 이것이 이른바 과학의 위기의 실체적인 모습이었다.

과학자들은 “라듐-거대한 혁명”에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손상될 뿐만 아니라 물리학의 “다른 모든 법칙들이 똑같은 위험에 처해 있다”17)고 파악하였다. 이는 라듐 원소에서 방사능이 나오면서 방사능을 어떻게 해석하고 파악할지 몰라서 기존의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맞지 않다고 그릇되게 파악했기 때문에 발생한 ‘위기’였다. 또한 전자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전자의 질량이 거의 ‘0’에 가까운 것이 확인되면서 “질량이 소멸한다”는 그릇된 인식이 발생했고, 이는 질량을 기초로 한 기존의 고전 역학이 붕괴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위기와 모순은 전자의 상태와 운동에 대해 기존의 고전역학을 넘어서는 전자기 역학의 발견과 발전으로 극복되게 되는데, 당시로서는 기존의 과학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충격을 안겨주었고, 그리하여 과학의 위기가 소리 높이 외쳐졌던 것이다.

이러한 ‘과학의 위기’의 발생은 철학적으로 관념론이 과학에 침투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었고, 과학자들은 새로운 발견들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서 관념론에 기울어져 갔다. 포앙카레는 물리학의 기존의 법칙들이 파괴되고 있다고 해석하면서 이에 기초하여 법칙이란 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부과한 것이라는 그릇된 주장을 하였다. 그리하여 “사상이 아닌 모든 것은 순수한 무(無)이다”18)라는 관념론적 주장을 하였다. 이른바 과학의 위기가 철학의 위기로 전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레닌은 이러한 상황을 분석하면서 앞서 고찰했던, 물질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면서 과학의 위기 자체에 대해서도 철학적인 해석을 하였다. 과학자들은 원자의 붕괴 현상을 보면서 “원자는 탈물질화되며 … 물질은 소멸한다”19)고 파악했는데, 이러한 주장에 대해 레닌은 물질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심화되는 것으로 보아야 함을 주장했다. 다소 길지만 물질의 소멸에 대한 레닌의 해석을 인용해 보자. “유물론과 관념론은 인식의 원천, 인식(그리고 “심리적인 것” 일반)과 물리적 세계의 관계 문제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서 구별되는 것이며; 반면에 물질의 구조의 문제 및 원자와 전자의 문제는 오직 이 “물리적 세계”에만 관계된 문제이다. 물리학자들이 “물질은 소멸한다”고 말한 의미는, 지금까지는 과학이 물리적 세계의 연구를 세 개의 궁극적 개념: 즉, 물질, 전기, 에테르로 환원시켰는데; 현재는 전기와 에테르만 남았다는 뜻이다. … “물질은 소멸한다”라는 말은 우리가 물질에 대하여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인식의 한계가 소멸한다는 뜻이고, 이것은 우리의 인식이 더 깊이 들어간다는 뜻이며; 이전에는 절대적, 불변적, 근원적으로 여겨지던 물질의 성질(불가입성, 관성, 질량 등)이 마찬가지로 소멸하고 이제는 그것이 상대적으로 오직 물질의 일정한 상태에서만 특징적임이 밝혀진다는 뜻이다.”20) 이것이 물질의 소멸을 중심으로 한 과학의 위기에 대해 레닌이 해석하고 철학 상의 해결방안을 제시한 내용이다. 원자의 붕괴는 기존에 원자를 물질의 최후 단위로 해석하던 과학의 입장에서는 과학의 붕괴 혹은 위기를 불러오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물질에 대한 우리의 기존의 인식이 무너지고 물질에 대한 새롭고 보다 더 깊이 있는 인식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함을 레닌은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발견으로 원자가 원자핵과 전자로 나뉘어져 있다는 인식의 발생은 물질의 최후 단위로서 원자라는 인식은 무너뜨렸지만 객관적 실재로서의 전자는 비물질이 아니라 물질의 새로운 형태이며, 따라서 전자의 상태와 운동에 대한 우리 인식의 확장은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붕괴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의 새로운 심화, 확장이라는 것이 레닌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기존의 고전 역학에서 물질의 질량은 고정되어 불변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전자와 같은 소립자에서는 소립자의 운동에 따라 질량이 달라지는 현상이 발견되면서, 기존의 고전 역학은 전자와 같은 소립자의 운동에는 들어맞지 않으며, 따라서 전자와 같은 소립자의 운동에 대한 새로운 역학이 창안되어야 함을 제기하는 것이었고, 이는 이후 전자기 역학의 발견과 발전으로 나타났다. 또한 레닌이 말한 에테르라는 개념은 당시 과학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었는데, 이후 과학의 발전으로 에테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러한 전자기 역학의 발전, 물질의 불변의 질량을 상정하는 고전 역학의 붕괴는 물질의 영역, 과학의 영역에서 형이상학적 사고를 붕괴시키면서 변증법적 인식을 고취시켰는데, 이는 다름 아니라 변증법적 유물론이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확증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레닌은 물질 개념과 의식 개념을 통합시킨다는 오스트발트의 에너지론을 비판하면서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근본 명제를 전개했다. 레닌은 “물질 없는 운동은 생각할 수 없다”라는 엥겔스의 언명을 인용하면서 오스트발트의 에너지론이 실제로는 물질 없는 운동을 상정하는 것임을 폭로하였다. 오스트발트는 “물질과 정신의 양 개념을 에너지 개념에 종속시킴으로써 결합시키는 방법을 통해, 낡은 난점을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제거하는 것을 큰 수확”21)이라고 간주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오스트발트의 에너지 개념은 지금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에너지 개념과 달리, 물질과 정신의 양 개념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철학논쟁에서 나타났던 진부한 관점, 즉,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여 물질과 의식의 대립,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을 넘어선다는 관점이 과학의 영역에서 재탕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오스트발트의 에너지 개념은 정신의 요소를 포함함으로써 물질과 분리된 에너지의 상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물질과 분리된 운동이라는 관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고양이는 없는데 고양이의 웃음은 남아 있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레닌은 오스트발트의 에너지 개념의 비과학성을 비판함으로써 물질과 운동의 관계에 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을 확립하는 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레닌은 “운동을 물질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사유를 객관적 실재로부터 분리시키는 것, 또는 나의 감각을 외적 세계로부터 분리시키는 것―한마디로 말해서 관념론 쪽에 붙는 것과 같은 것이다.”22)라고 정식화를 하였다.

사실 물질과 운동의 관계,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의 테제는 물질이 무엇인가라는 정의 못지않게 변증법적 유물론의 근본 명제에 해당하는 것이다. 운동은 물질의 본질적 속성이라는 것, 따라서 운동 없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고 또 물질과 분리된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관점, 이러한 명제는 단지 직관적인 착상에 의해 발견된 것이 아니라 철학의 발생 이래로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철학과 과학의 발전을 통해 서서히 발견하고 다듬어 온 것이며, 결정적으로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정식화된 것이었고, 레닌은 이를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논쟁적으로 확인하고 정립한 것이었다.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 테제는 과학이 무한대의 우주로 확장하고 또 물질의 내부의 소립자의 세계로 침투함에 따라 발생하는 새로운 발견에 대해 유물론적 인식, 변증법적 인식의 토대를 놓은 것이었다. 소립자의 세계에 대한 과학인 현대의 양자역학에서 그 주류는 하이젠베르크와 같이 관념론의 길을 걷고 있는데, 이들 관념론적 과학자들의 흐름에 대해 변증법적 유물론의 물질과 운동의 통일성 테제는 커다란 비판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사과연


1) 버클리,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 24.

 

2) 흄,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p. 34-35.

 

3) 마하,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p.

41-42.

 

4) 레닌, 앞의 책, p. 55.

 

5) 레닌, 앞의 책, p. 57.

 

6) 아베나리우스,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 68.

 

7) 엥겔스,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 104.

 

8) 보그다노프,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 128.

 

9) 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아침, 1988, p. 135.

 

10) 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아침, 1988, p. 140.

 

11) 레닌, 앞의 책, p. 153.

 

12) 레닌, 앞의 책, p. 155.

 

13) 칼 피어슨,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 170.

 

14) 레닌, 앞의 책, p. 176.

 

15) 마하,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

188.

 

16) 엥겔스,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 199.

 

17) 포앙카레,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 269.

 

18) 포앙카레,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 270.

 

19) L. 올레비그,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 275.

 

20) 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아침, 1988, pp. 277-278.

 

21) 오스트발트,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재인용, 아침, 1988, p. 288.

 

22) 레닌,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아침, 1988, p. 284.

노사과연

노동운동의 정치적ㆍ이념적 발전을 위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

1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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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라보예 지젝이 레닌보고 관념론자라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젝은, 레닌이 주관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물질로서의 객관적 현실이 존재론적으로 완전히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관념론자랍디다.

    지젝은 현실이 완전히 구성되어 있지 않으며 완전한 구성을 가로막는 내재적인 존재론적 탈구로 고통받고 있다고 합니다.

    • 지젝은 개념을 거꾸로, 정반대로 사용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객관적 실재의 승인이 존재의 완전한 구성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객관적 실재로서 물질적 세계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과정’으로 파악되고 있고 하나의 물질이 끊임없이 또 다른 물질로 전화되는 과정으로 보지요.

      • 지젝이 쓰는 “존재론적으로 완전히 구성되어 있다”라는 표현의 의미는 사물들이 유동적이지 않다거나 혹은 동태적으로변화/발전하는 과정성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완성된 형태로 “형이상학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즉, 레닌을 비난할 때, 지젝은 그를 형이상학적 유물론자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젝이 말하는 “존재론적 탈구” 혹은 “존재론적으로 완전히 구성되어 있지 않음”의 의미는, 사회구성체와 관련하여 말하자면, 모든 사회구성체를 조화로운 총체성으로 되지 못 하게 하는 근원적인 내적 적대가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렇게만 들으면 적대적 모순으로서의 노자관계가 생각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젝은 이러한 노자간의 적대적 모순을 선-존재론적 부정성 혹은 무無 혹은 하나와 하나를 가르는 극소차이 등의 이차적 효과로 봅니다. 노자간의 외적 모순 이전에 실재로서의 교착상태가 먼저 존재한다는 얘기입니다. 말하자면, 지젝에 의하면, 상징계의 완전한 구성을 가로막는 순수한 형식적 범주로서의 실재(부정성,무 등등으로 불림)내부의 환원불가능한 적대와 교착상태, 존재론적 파열과 공백이 1차적이고(그리고 덧붙이자면, 우리는 결코 이러한 실재로서의 적대를 해소할 길이 없고) 우리가 맑시즘 전통 안에서 논해오던 노자간의 적대와 대립은 2차적이고 파생적이라는 것입니다.

        • 따라서 원래의 관념론/유물론의 규정과 많이 빗나가는 용례이긴 하지만, 지젝이 레닌을 관념론자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1)실재로서의 내재적 적대를 사유하지 못했고, 현실 내부에 환원불가능한 파열과 공백 또한 파악하지 못 했으며, 기껏해야 저러한 것들의 2차적 파생태들만 포착한 점… 2)혁명으로 적대적 모순을 없애고 사회주의적 생산관계가 지배하는 사회구성체 속에서 비폭력적 방식으로 비적대적 모순을 해결해나갈 수 있고, 그럼으로써 종국에는 조화로운 유기적 총체성(성숙하고 발달된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내다 본 점

          • 익명씨의 실재 개념은 유물론적인 상식적인 개념이 아닌듯 하네요. 그리하여 환원 불가능한 파열과 공백 등을 레닌이 인식하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재라는 개념에 부정성, 무 등의 개념이 포괄된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 철학 이래의 상식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레닌이 이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주관적인 헛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관념론적인 헛소리를 기초로 노자간의 모순이 이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아니라 2차적 파생태라고 하는 엉터리의 , 실제로는 반동적인 주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익명 씨는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를 “조화로운 유기적 총체성”로 보는데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 또한 수많은 모순이 꿈틀대는 사회입니다. 모순이 없는 사회라는 것은 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에 도달하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은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익명씨의 레닌에 대한 비난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입니다.

          • 존재론에 대한 이해는 유물론적 이해도 있고 관념론적인 형이상학적 이해도 있지요.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 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익명씨는 선-존재론적 부정성, 존재론적 파열이라는 개념이 왜 관념론적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라 유물론적 개념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젝이 유물론과 관념론을 전도시키며 진보와 혁명의 불가능성을 전도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책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에 대한 지적을 가치 운운하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지요

        • 바나나씨는 존재론적 완전한 구성이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선-존재론적인 부정성, 존재론적 파열 등 형이상학적 개념들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특히 존재론이라는 개념이 유물론적 개념이 아니라 관념론적인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그러한 개념을 사용하면 유물론적 개념이 논박당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노자간의 모순이 외적모순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사실 지젝은 존재론과 인식론을 바꿔치기하고 유물론적 개념을 관념론적으로 전도시키는 엉터리 논리를 구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쏘련 붕괴 후의 동유럽의 황폐한 지적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으로서 진보와 혁명의 불가능성을 전도하는 사이비 철학자일 따름이지요.

          • 먼저 보잘 것 없는 제 의견과 댓글에 답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철학및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일뿐입니다. 지젝이 저술한 핵심적인 책들을 몇 권 읽었고(지젝은 책을 너무 많이 써서, 다 읽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냥 공부한다 생각하고 지젝 철학의 내용을 아주 조금 습득한 것일 뿐, 제가 무슨 지젝 철학의 대변자이거나 옹호자인 것은 아닙니다.

          • 지젝의 선-존재론적 부정성,존재론적 파열은 유물 존재론적 개념이지 님이 이해하는 관념론적인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닙니다.자신의 견해가 아니라고 유물론적 개념을 관념론적으로 전도시키는 엉터리 논리라든가 동유럽의 황폐한 지적 세계를 보여주며 진보와 혁명의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사이비 철학자로 매도하는 태도는 성숙한 토론자의 자세는 아닌 것 같다.이론적인 사안을 가치로 치환하는 오류다.아직도 그대 교조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는 않는지~

          • 존재론에 대한 이해는 유물론적 이해도 있고 관념론적인 형이상학적 이해도 있지요.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 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익명씨는 선-존재론적 부정성, 존재론적 파열이라는 개념이 왜 관념론적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라 유물론적 개념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젝이 유물론과 관념론을 전도시키며 진보와 혁명의 불가능성을 전도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책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에 대한 지적을 가치 운운하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지요

          • 지젝같은 반동적인 3류 철학자를 마치 대단한 내용을 지닌 철학자인 양 치켜세우는 것은 맑스-레닌주의 철학에 대한 공격을 지젝이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 진영에서, 그리고 부르주아 철학 진영에서는 맑스-레닌주의 철학을 매장하기 위해 지젝같은 똘마니가 필요하지요.
            지젝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복원해야 한다면서 거꾸로 변증법을 매장하고 있고 레닌을 복원해야 한다면서 레닌을 매장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이비 야바위 같은 논리가 지젝의 논리입니다. 마치 혁명을 말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혁명의 불가능성을 선전하는 것이 지젝의 실제 내용입니다.
            맑스주의 철학의 기본 개념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지젝의 반동성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 제가 딱히 지젝을 지지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또 인간의 보편적 해방, 인간 주체성과 유적 본질의 전면적 발달/전개의 실현 등등에 반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변증법적 유물론의 가르침에도, 100%의 종결적 확실성을 가지고 신뢰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꽤 호의적이고, 맑스 정치경제학과 사적 유물론의 기본 원리들도, 보완해야 할 구석이 아예 없어 보이진 않지만, 원칙적으로는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가 드리는 말씀에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몇 마디 말씀 드리자면, 1)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후 3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시대에, 왜 여전히 소위 “정통 맑스-레닌주의”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서, 마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천지창조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읽는 것마냥, 고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론의 진리성을 이론 내부에서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은 스콜라 철학적 태도이며, 이론은 실천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는 것은 맑스주의의 가르침들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론을 실현을 해봤더니, 대내외적으로 여러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말해 사회주의권 내에서는 원칙의 포기/배반과 함께 수정주의가 발생하고, 외적으로는 제국주의의 압살책동 등이 있었지만, 사정이 어찌되었든 결론은 멸망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왜 옛날 이론만 계속 고집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고집이 이념에 대한 충실성과 투철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볼 때는 그게 아니라, 사유의 무능력, 공부하기 싫어하는 지적 게으름, (삶에 있어서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 주는)자기 신념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공포인 것 같습니다.

            2)엥겔스는 언젠가 유물론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함께 계속 변화해서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엥겔스는 고전 맑스주의의 대가답게, 애플님(그리고 노사과연에서 나온 책이나 글의 저자들)께서 가지고 있는 고집과 경직성과는 거리가 먼, 지적으로 유연한 사람이었습니다. 엥겔스의 저 말은 맑스주의 이론의 원리와 원칙을 내다 버리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오히려 “유물론은 계속 변해야 한다”는 저 엥겔스의 말은 그 자체로 변증법적 사고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변증법을 다시 자기들의 변증법에 적용하라는, 후대에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엥겔스는 19세기 사람이고 그가 죽은지 100년도 넘었습니다. 강산이 10번 넘게 바꼈습니다. 그 동안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서 많은 진보와 발전이 있었는데, 노사과연에서 나온 책을 읽어 보면 그러한 이론적 성과물들에 대해 성실한 독해나 정확한 파악은 고사하고 “부르주아 과학”, “소부르주아 잡사상” 등 이런 식으로 딱지 붙이기만 하고 배타적 태도로 일관하며 비판(아니, 거의 헐뜯기)하는데, 그러한 비판마저도 타-이론에 대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정확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어서, 비판으로서 별 가치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 동구에서 공식화된 정통 맑스-레닌주의의 이론에 대해 반성적 성찰이나 별 보완과 수정도 없이 2021년 지금도 흔들림없이 굳게 신뢰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비변증법적이고, 비-맑스레닌주의적 태도입니다.

          • 바나나씨는 20세기 사회주의가 멸망했는데 여전히 그 논리를 고수하는 것은 비변증법적이지 않은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증법이 관념적 유희나 궤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논리와 역사를 통일시켜 변증법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청산주의를 제가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러한 청산주의가 역사에 대한 무책임성을 보여주고 역사 대신에 관념적인 논리를 채택하는 오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로츠키주의자들, 알튀세르주의자들, 푸코류, 지젝류의 논리가 비판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들 “잡사상”들은 현실(역사)에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변증법을 관념론적이 아니라 유물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며 논리와 역사의 통일의 변증법은 그러한 접근의 하나의 유력한 무기가 됩니다.

  • 바나나님께,
    저는 지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젝 관련 내용에 대해선 첨언할 수 없지만, 20세기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에 대한 바나님의 접근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쓰신 내용 중 ‘어찌됐든 결론은 멸망’ 이라는 문장은 명백히 비변증법적이고, 동시에 관념론적입니다. 제가 멸망했다는 역사적 팩트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멸망했냐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바나나님께서 쓰신 내용은 모순적이기까지 합니다. 바나나님께서는 ‘내부적으로는 수정주의의 발흥과,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의 압살책동’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맑스레닌주의를 ‘옛날이론’, ‘창세기 천지창조’, ‘스콜라’ 등으로 매도하고 계시지만, 맑스엥겔스를 레닌이, 그 레닌을 스탈린이 계승 및 발전시켰던 것처럼, 지금도 계속 해서 맑스레닌주의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시대적 한계로 인해 매우 지체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구권에서 공식화된 맑스 레닌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 수준에 그치는 것이 목표였다면, 번역서나 열심히 내고 말 일이었을 겁니다. 제 학문적 수준은 노사과연 선생님들의 발끝조차 닿지 못하지만, 왜 흐루쇼프와 같은 수정주의자들이 발흥하게 되었는가, 국제 정세에서의 소련의 실책, 또는 정확한 정세판단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전인민국가론 등등이 어떠한 파멸적 결과를 낳게 되었는가 등등을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분석하는 작업은 분명 ‘발전,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비겁한 변명입니다~!’라고 생각하신다면 저로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노사과연의 글들을 얼마나 읽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100년 전과 다른 게 하나도 없다고 비난하시고 계신지 의문이 들 뿐입니다. 그리고 학문의 세계에서 100년 남짓된 이론은 별로 오래된 이론도 아닐 뿐더러, 인류 역사 몇 만 년, 몇 십 만년 중 소련이 존재했던 시간 약 70년은, 다수의 피지배 계급이 소수의 지배계급을 지배하고,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자유의 왕국에서 살 수 있는 시대를 열기 위해 인류가 쏟아야 하는 기나긴 시간과 비교했을 때, 미립자를 연구하는 물리학 연구소에서의 찰나의 시간과도 같습니다.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이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정권’이라고 부르는 ‘파리코뮌’은 심지어 몇 달에 불과합니다. 그 찰나의 순간에서도 과학으로 무장한 공산주의자들은 무수한 경험과 영감을 얻을 수 있었고, 결국 소련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련을 비롯한 20세기 사회주의 역시 그 다음 시대를 위한 거름이 될 것입니다. 이 짧지만 귀중한 경험을, 그리고 이 경험을 연구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춰 발전시키려는 작업들을 ‘공자왈맹자왈’ 취급하며서 지배계급에게 굴종하는 철학들을 ‘패배주의’가 아니면 뭐라 불러야 하겠습니까? 부르주아 경제학이 복잡한 용어와 수식을 동원해서 그 뒤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 마냥 노동자계급을 현혹시키려는 수작이, 현대의 소부르주아 잡사상들에게 반영되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분명 배경지식이나 잡다한 테크닉들을 위해 어느 정도 참고할 부분은 있겠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이론적 타당성을 갖고 있으니 양립할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그런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른다고 인정하거나, 부르주아들 뒤 닦아주는 대가로 연구 자금이나 받아먹고 편히 지내고 싶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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