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편집자의 글

 

사상의 재정립, 전선의 구축으로
세계사적 반동기에 맞서자!!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소송으로 선거 결과의 확정을 늦추고자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트럼프의 패배 확정에 다가서고 있다. 트럼프가 그동안 ‘법과 질서’를 강조하고 인종주의를 조장하는 등 파시즘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에 비추어 보면, 트럼프의 패배는 세계적 차원의 반동의 경향 중의 일부가 패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패배는 세계사적 반동의 경향이 극복될 수 있다는 징표의 하나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쏘련의 해체 뒤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은 침체하고 있고 사회주의 사상, 맑스-레닌주의 사상 자체가 대중적 영향력을 회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패배는 세계사적 반동기가 극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서서히 자라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쏘련 해체 뒤 승승장구하던 세계 자본주의는 2007년의 세계 대공황과 2020년 현재의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위기에 몰려 있다. 연이은 두 번의 세계대공황은 자본주의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세계적 차원에서 드러내고 있고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 사회주의 운동이 재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나아가 세계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은 세계사적 반동기라는 지금의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길을 갈 필요가 있다. 쏘련의 해체는 반혁명의 승리였다는 것, 자본주의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것,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사상에 기초한 과학적 노선의 수립을 통해 재생될 수 있다는 것 등의 인식을 기초로 다시금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의 기치, 사회주의 운동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어느 한 지역, 어느 한 부문의 과제가 아니라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세계사적인 과제이다. 이에 대해 맑스는 ≪공산주의 당 선언≫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를 제시한 바 있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해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심화된 인식을 갖고 그것을 정치노선으로까지 확대하여 정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사회주의의 교훈을 철저히 체득하면서 21세기 지금 현실에 맞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정립해 갈 때, 변혁의 전망은 태양이 여명을 뚫고 솟아오르듯이 열리게 될 것이다.

이번 ≪노동사회과학≫ 14호는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대해 세계 노동자계급이 현재 탐구한 결과를 번역하여 싣고 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또한 세계사적 반동기에 맞서는 것은, 여전히 사상의 문제를 핵심 관건으로 제기하지만, 동시에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현실에 맞서는 전선의 구축을 과제로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호에는 전선에 대한 이론적 접근과 현재 노동운동이 부딪히고 있는 전선에서의 쟁점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먼저 문영찬은 ‘현 정세에서 전선의 성격에 대하여’에서 지금의 정치적 정세, 정치적 구도에서 형성되어야 할 전선의 성격을 고찰하고 있다. 먼저 전선(front)은 단순한 전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전선은 정세에 조응하는 계급세력의 배치 문제라는 점에서 전선은 전략과 전술의 교집합임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당면 변혁의 성격이 ‘민족민주 과제를 포함하는 사회주의 변혁’이라는 점에서 현 정세에서 전선은 반자본주의 전선과 민족민주 전선이라는 중층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개의 전선 중에서 일차적인 것은 반자본주의 전선이며 민족민주 전선은 이차적 전선으로서 두 개의 전선은 성격상 차이가 있지만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통일적인 연관 하에 상호 결합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반자본주의 전선과 민족민주 전선이 상호 간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통일되어 있는 것은,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이 미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성을 조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 자본가계급이 국가보안법의 폐지 등 민주주의 과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현실, 즉, 한국 자본가계급의 반동성으로 인해 민주주의 투쟁과 사회주의 투쟁의 거리가 매우 좁혀지고 있는 현실 등이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반문재인 정권 전선에서 반자본주의 전선과 민족민주 전선은 하나로 모아질 수 있다는 점을 전망하고 있다.

김태균의 ‘(국가)독점자본주의와 노동조합’은 사회적 합의주의의 역사와 이론을 다루고 있는 글이다. 노태우 정권 당시의 노・경총 임금가이드라인 합의에서부터 시작하여 문재인 정권에 이르기까지 자본가계급은 자본가들의 자본축적 위기를 노동자계급의 양보와 굴종을 내용으로 하는 노사정 합의를 통해 극복해 왔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합의주의가 가능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국주의 단계의 (만성적) 경제위기가 존재할 것, 그리고 민주당 류의 정치세력이 존재할 것, 노동운동 내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찬동 세력이 존재할 것 등을 들고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 합의주의의 이러한 전제들에서 제국주의 시대를 만성적 경제위기로 규정한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필자는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투쟁의 방향으로 노동해방을 지향하는 변혁적 투쟁을 목적의식적으로 배치할 것, 공황기 투쟁의 전형을 창출할 것, 노동운동 내의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과의 비타협적 투쟁을 들고 있다. 그런데 공황기 투쟁의 전형에서 국유화 투쟁을 제기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의 권력이 전제되지 않은 국유화의 제기는 자본주의 국가를 강화하는 것으로서 사회민주주의적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사회적 합의주의의 역사와 이론을 나름대로 체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의 발전에 있어서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조남수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저지 투쟁과 국유화의 문제’는 앞서 김태균 동지가 잠깐 언급했던 국유화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글이다. 필자는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기계가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로 본다. 그리고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성으로 인해 수요와 공급의 자동조절 신화가 붕괴되고 있고, 한국의 재벌, 독점자본들을 옹호하는 논리인 규모의 경제 또한 자본주의 하에서는 착취의 도구일 뿐임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산업의 경우 규모의 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잉생산보다는 설비투자의 과잉이 주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 해고의 위협이 존재하며 이에 대해 거제 조선산업의 공기업화, 대우조선해양의 공기업화가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기업화는 고용의 안정을 담보하지 못하며, 따라서 자본주의 내에서 한계는 있지만 경제위기 상황 하에서 고용의 안정이 담보되는 국유화를 전술적 슬로건으로 제출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국유화의 제기는 앞서의 김태균 동지의 국유화 주장과 같은 맥락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을 전술적 슬로건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국유화가 하나의 전략으로서가 아니라 경제위기 상황 하에서 전술로서 제기될 수 있는가는 그 자체로 검토해 보아야 할 쟁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국유화를 통한 고용의 안정이라는 담론은 그 자체로 이미 사회민주주의적인 것으로서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흐리고 노동자계급의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투쟁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필자가 전략적 차원이 아닌 전술적 차원으로 국유화를 제기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박문석의 ‘민족문제에 대한 계급적 접근을 위하여’는 노동운동 내에서 계급적 전망을 흐리고 있는 엔엘(NL)적 흐름에 대한 비판의 글이다. 필자는 엔엘적 경향을 소부르주아 민족주의라 규정하면서 소부르주아 사상은 노동자계급의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필자는 엔엘적 경향이 민족모순을 주요모순으로 놓고 당면 변혁으로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추진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하여 계급모순이 지금은 단지 기본 모순인 것만이 아니라 주요 모순으로 되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인민민주주의 혁명 노선이 낡았고, 지금의 당면 변혁은 사회주의 변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통일만 되면 노동해방은 자동적으로 된다’는 몰계급적 관점을 비판하고 있고 남과 북은 두 개의 국가, 사회로서 남과 북의 노동자의 관계는 국제주의적 관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데 남과 북이 2개의 국가로서 남북 노동자계급의 관계가 일차적으로 국제주의적 관계여야 한다는 것은 옳지만 2차적으로는 민족적 관계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통일을 위해 남북의 노동자계급 모두가 미제국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것은 남북 노동자계급 모두의 민족적 과제가 되는 것이다. 필자는 엔엘진영이 노동운동 내의 분열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고 계급협조주의 등으로 노동운동의 분열에 책임이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홍승용의 ‘변혁주체의 자유와 결정론’은 지젝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자유와 필연의 문제, 결정론의 문제를 고찰한 논문이다. 필자는 “악성 결정론에 맞서 자유로운 주체의 지위를 옹호하는 지젝의 논의는 흥미롭다”고 보면서 자유와 필연의 문제에서 지젝을 매개로 자신의 담론을 형성해 간다. 필자는 “나는 원인들에 의해 결정되지만 사후적으로 어떤 원인이 나를 규정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한다(할 수 있다)”는 지젝의 사후적 결정이라는 처방이 인과적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아님을 비판하고 있다. 즉 지젝의 사후적 결정이라는 방식은 인과적 필연성과 주체를 분리시키는 것이며, 그에 따라 주체는 인과적 그물에 포섭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악성 결정론’이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고 숙명론에 빠지게 함을 비판하며 “필연의 그물을 현실적 인식이 아닌 인식 생산에 유용한 ‘규제적 이념’으로서 상정”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필연에 대한 탐구와 인식의 확장, 자유의 문제를 ‘병립’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사실 자유와 필연의 문제는 근대에 논의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도 논쟁의 대상이다. 그런데 필자는 결정론 자체를 극복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듯하다. 그러나 결정론이 숙명론을 야기하는 기계론적 결정론만이 있는 것은 아니며, 변증법적 유물론에서의 결정론은 우연의 존재를 인정하는 변증법적 결정론이기도 하다. 자유의 쟁취와 자유의 확장을 위한 투쟁은 실천의 영역에서도 필요하지만 자유와 필연의 관계 문제, 결정론의 문제를 이론의 영역에서 개념적으로 다듬어 가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번 호에는 [서평] 두 꼭지가 실렸다. 천연옥의 ‘콜론타이의 ≪붉은 사랑≫, ≪위대한 사랑≫을 읽고’와 문영찬의 ‘과학의 위기와 그에 대한 레닌의 철학 상의 해결: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읽고’가 그것이다. 천연옥 동지는 그동안 페미니즘과 대결하면서 여성해방은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노동자계급의 여성해방론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서평 또한 그러한 노력과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콜론타이는 여성해방 관련 소설로도 유명하지만 볼셰비키 혁명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투쟁한 사람이며 천연옥 동지는 이 과정을 콜론타이의 삶과 정치적 역정이라는 점에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콜론타이가 혁명 후에 노동자 반대파에 참여하여 레닌과 대립했지만 이후 노르웨이 대사를 하면서 그리고 삶 전체에 걸쳐서 충실한 볼셰비키로 활동하고 삶을 마감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페미니즘이 여성해방을 내세우는 문제의식을 살리되, 그러한 운동이 노동자계급의 해방운동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되는 길을 열어가는 천연옥 동지의 노력과 투쟁에 연대의 인사를 보낸다.

문영찬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 대한 서평은 1905년 러시아 1차 혁명이 좌절되고 난 후 반동기에 경험비판론이라는 반동적 철학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을 수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레닌의 노력과 투쟁에 대한 서술이다. 경험비판론이 고전적인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며 감각복합, 요소 등의 요란한 언설이 새로운 개념을 도입함을 통해 마치 새로운 철학을 수립하는 양 하는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폭로하는 레닌의 견해를 요약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은 당시 원자의 붕괴, 방사능의 발견, 전자의 발견 등 과학의 새로운 진전을 철학적으로 해명하지 못해 야기된 이른바 ‘과학의 위기’에 대한 레닌의 철학 상의 해결을 서술하고 있다. 원자의 붕괴는 물질의 소멸도 아니고, 나아가 과학의 붕괴가 아니며 물질에 대한 기존의 우리 자신의 인식의 한계가 소멸하고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심화되는 것이라는 레닌의 견해를 서술하고 있다.

이외에 이번 ≪노동사회과학≫ 14호에는 번역이 4편 실려 있다. 코로나 정세 속에서 노동자계급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그리스 공산당이 입장이 실려 있고 이외에 ≪국제 공산주의 평론 International Communist Review≫에서 특집으로 실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관련된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당의 글과 그리스 공산당의 글이 번역되어 실렸다. 이 글들을 통해 독자들은 국제적으로 세계사적 반동기가 여전히 지배적이지만 그러한 세계사적 반동기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의 면면을 읽을 수 있다.

 

2020년 11월 14일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장 문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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