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자본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

 

신재길 | 교육위원장

 

* 이 글은,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노동전선)’이 발행하는 ≪전선≫ 제124호(2020년 10월)에 실린 글입니다.

 

 

사회주의가 망한 지 30여 년이 다 되었는데 ≪자본론≫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자본론≫은 사회주의에 관한 책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분석한 책이라는 데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구조와 운동 원리를 밝힌 것이 ≪자본론≫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 경제가 자본주의인 한 ≪자본론≫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설명한 것은 ≪자본론≫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대학의 경제학과에서 잘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무수히 많은 소위 석학들의 경제학이 아닌 ≪자본론≫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도 간단합니다. 주류경제학(맑스는 이를 속류경제학이라 했습니다)의 한계 때문입니다. 이하에서 주류경제학의 한계를 간단히 언급하여 ≪자본론≫을 읽어야 할 이유들 중 하나를 제기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먼저 주류경제학의 방법론입니다. 방법론적 개인주의입니다. 경제 현상은 개인들의 합리적 경제 활동이 결합된 결과라는 사고에 기반한 경제 분석 방법입니다. 이는 합리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경제인을 전제로 합니다. 로빈슨 크루소를 예로 듭니다. 그런데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문제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만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가 전체적으로는 비합리적으로 나타나는 데 있습니다. 즉 개인들이 같은 의도를 가지고 모두 같은 행위를 했는데 결과는 반대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구성의 오류’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들이 저축만이 부를 늘리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각각의 개인들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하여 부를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 경제 차원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경제 주체들이 소비를 줄이면 국민 경제 전체적으로 수요가 줄어들게 됩니다. 즉 경기가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국민 경제는 성장이 둔화되고 부의 축적은 감소하게 되는 결과로 귀결됩니다. 개인들의 합이 전체는 아닙니다. 이런 문제들을 주류경제학의 방법론인 방법론적 개인주의로는 해명할 수 없습니다.

 

다음은 시장 경제 문제입니다. 주류경제학이 경제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입니다. 경제 세계관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자본주의로 바라보는 관점과 대비되는 것입니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시장 경제는 인류 보편적 경제 체제라고 합니다. 고대 노예제에도 시장이 있었고, 사회주의 사회에도 시장이 있기 때문에 시장 경제가 인류의 가장 보편적 경제 원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는 시장 원리에 따라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지요. 그러나 노예제 사회나 봉건 사회, 사회주의 사회를 시장 경제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시장 경제란 대부분의 재화(자본)와 용력(노동) 즉 사회 경제적 자원을 시장 기구를 통해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경제입니다. 그러나 노예제나 봉건제는 시장 원리에 의해 사회 경제적 자원이 분배된 것이 아니라, 강제력(폭력)에 의해 분배되었고, 사회주의 사회는 계획에 의해 의식적으로 분배됩니다. 그래서 시장 경제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장 원리가 보편화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입니다. 그 원인은 시장 원리의 발전 때문이 아니라, 생산력의 발전 즉 인간의 지위와 역할의 발전에 따라 이에 맞는 원리가 형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시장 원리는 인류 보편적 원리가 아니라 자본제적 생산관계에 맞는 일시적 원리입니다. 시장 경제로 경제 문제를 바라볼 때 시장 경제 자체도 본질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지요.

 

시장 경제에 대해 좀 더 봅시다. 시장 경제란 시장을 통해 사회 경제적 자원(자본과 노동)이 분배되는 경제적 메커니즘이라 했습니다. 그럼 시장을 통해 어떻게 사회 경제적 자원이 분배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시장에서 상품 가격의 결정과 변화를 통해 자본과 노동이 각 산업 분야로 합리적으로 분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가격의 결정과 변화를 설명하는 게 주류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로 마스크의 수요가 폭등하여 마스크 가격이 한 장에 몇만 원씩 한다면, 마스크 산업의 수익률이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면 다른 분야 예를 들어 빵 공장의 자본과 노동이 마스크 생산 분야로 이동하여 공급을 늘리게 되고,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안정되어 균형 가격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균형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가격을 말합니다. 여기서 마스크 산업으로 자본이 이동하고 자본의 이동에 따라 일자리를 찾아 노동이 이동하는 것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자의적 판단과 선택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자본가는 높은 이윤을 찾아서, 노동자는 일자리를 찾아서 마스크 산업 분야로 스스로 이동한 것입니다. 그 누구의 명령이나 지시도 없이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를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장 경제에서는 가격 결정과 변화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즉 가격 결정과 변화 과정에서 외부적 간섭에 의한 왜곡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어떤 계획이나 명령 지시 없이도 가장 이상적인 사회 경제적 자원의 배분 상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류경제학자들은 시장 경제 메커니즘이야말로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공공성을 가장 이상적으로 조화시키는 경제적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주류경제학자들이 스미스의 말을 이용하여 표현합니다. “우리가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은 것은 정육점 주인과 제과업자의 이타심 때문이 아니라 이기심 때문이다.” 시장 경제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기심,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한 자원 분배 상태를 낳는다는 것이지요.

 

그럼 이런 시장 경제의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가장 조화로운 사회이고, 나는 나의 가장 이기적인 욕구에 기초해서 행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행위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 경제적 제반 문제는 시장의 문제나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환원됩니다. 각 개인이 시장이 주는 신호를 알지 못했거나, 알아도 그럴 능력이 못 되어 실업자가 되고 패배자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진정 현실은 이런 조화로운 경제입니까? 빈부 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부동산 투기 등에 자원이 몰리며 합리적 자원 배분은 파탄 나고, 10년 주기로 공황이 밀어닥칩니다. 국가 간 경제 갈등은 물리적 충돌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회 경제 문제들에 시장 경제의 조화로운 관점은 눈을 감고, 모두 개인들의 잘못이라 합니다. 주류경제학자들은 시장 경제 이론이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시장 경제 이론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전도된 도그마에 빠져 있는 것이지요.

 

이제 주류경제학의 도그마에 대해 살펴봅시다.

시장 경제 이론의 가장 근간이 되는 법칙이 두 가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법칙 위에 화려한 주류경제학의 궁전을 지었지요. 따라서 이 토대를 살펴보는 것은 주류경제학 전반의 근거를 살피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 두 가지 법칙이 타당하다면 이에 기초한 다른 법칙들은 다시 개별적으로 살펴 그 진위를 따져 봐야겠지만, 만약 이 토대 법칙이 타당하지 않다면 주류경제학 전체를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두 가지 법칙은 첫째 희소성의 법칙과 둘째 수요-공급의 법칙입니다.

 

먼저 희소성의 법칙은 인간의 욕구는 무한한데 충족수단은 유한하다는 법칙입니다. 희소성의 법칙에 직면하면 인간은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만약 내가 유한한 충족수단인 돈이 20만 원 있는데, 오늘 점심으로 10만 원 하는 최고급 안심 스테이크나, 1만 원짜리 백반이나 2000원짜리 빵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한 달간의 점심값을 아껴 스테이크를 먹을 수도 있고, 2000원짜리 빵을 먹고 나머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폴 사뮤엘슨은 합리적 선택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 합리적 선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경제학의 목표라고 합니다. 그리고 경제학은 합리적 선택의 문제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넘어서는 문제는 경제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구가 무한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내가 스테이크보다 빵을 점심으로 좋아한다고 해서 하나면 족한 빵을 5개씩 먹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구란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한계 지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주류경제학에서는 왜 인간의 욕구 욕망은 무한하다고 할까요? 그건 인간 일반의 욕구가 아니라 자본가의 욕구입니다. 자본가의 욕구는 무한합니다. 자본가의 욕구는 개인의 욕구가 아니라 자본의 욕구입니다. 자본은 계속적인 확대 재생산을 자기 욕구로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본가의 욕구는 시장 경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욕구는 빵을 먹고 한 끼의 식사를 하는 욕구라고 한다면, 자본가의 욕구는 빵을 시장에 내다 팔아 자본을 증식하는 것을 욕구로 합니다. 따라서 내다 팔 시장이 있는 한 빵에 대한 욕구는 무한대입니다. 따라서 희소성의 법칙이 인간의 욕구에 기초한 법칙이 아니라, 반대로 자본가의 욕구를 기초로 인간의 욕구를 설명한 것이 희소성의 법칙입니다. 시장 경제는 인간의 보편적 욕구에 기초한다는 주장은 전도된 것이지요. 결과와 원인을 바꾸어 놓은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수요-공급의 법칙을 봅시다. 수요-공급 법칙도 희소성의 법칙처럼 간단한 원리입니다. 우리는 모두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우기도 하지요. 그 정도로 쉽고 간단한 법칙입니다. 수요-공급 법칙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조건에서 상품의 가격이 결정된다는 법칙입니다. 이를 시장 균형 가격이라고 합니다. 수요-공급의 법칙이 주류경제학에서 중요한 이유는 가격의 결정을 설명하는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시장 경제에서 가격의 결정과 변화가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인데 이를 설명하는 법칙이 수요-공급 법칙인 것입니다. 만약 수요-공급 법칙을 포기하거나 결함이 있다면 시장에서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없고, 그러면 시장 경제의 작동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즉 주류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법칙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요-공급의 법칙이 가격 결정을 설명할 수 없다면 주류경제학의 화려한 궁전은 사상누각에 불과하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요-공급 법칙으로는 가격 결정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지 봅시다.

 

시장은 상품의 가격과 상품의 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격과 수량은 수요에서는 반비례, 공급에서는 정비례 관계에 있습니다. 소위 수요-공급 곡선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즉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은 올라가고 가격이 올라간 만큼 공급이 증가합니다. 반대로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은 떨어지고 공급은 줄어들게 됩니다. 가격은 이런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수요-공급의 메커니즘입니다. 그런데 이는 가격의 결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의 변화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가격의 결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만약 마스크 가격이 1500원에서 균형 가격을 이루었다면 왜 균형 가격이 1만 원도 아니고 500원도 아닌 1500원인지 설명해야 합니다. 이는 정당한 상품 가격에 대한 문제입니다. 시장의 균형 가격이 정당한 가격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이미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기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강남의 고급아파트 가격이 한 채당 100억으로 시장 가격이 형성되었다면 이 가격이 과연 정당한 가격인가의 문제입니다. 즉 어떤 가격에 버블이 끼었는지 수요-공급 법칙으로는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는 상품의 가격 결정 요인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수요-공급 법칙의 한계입니다. 좀 더 설명한다면, 한 상품의 가격은 비용과 이윤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수요-공급 법칙으로는 이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비용은 시장에서 조달하는 가격으로 도출할 수 있습니다. 마스크라면 필터 가격이나 기계와 공장의 임대료, 인건비 등은 시장 가격을 통해 리스트를 뽑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윤은 그 근원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파트 원가 공개를 요구하면 영업 비밀이라고 거부합니다. 이윤의 원천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비밀스러운 것이 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자본가의 통찰력에서 그 근원을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장에서 누군가 비싸게 팔았다면 다른 누군가는 바가지를 쓴 것이고, 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이윤은 제로가 됩니다. 도대체 이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자본론≫ 제1권에 그 답이 있습니다. 주류경제학은 이윤을 설명할 수 없기에 이윤을 설명하는 이론 자체가 없습니다. 다만 수요-공급 법칙은 가격의 변화와 상대 가격만을 설명할 수 있지, 적정 가격, 정당한 가격, 절대 가격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가격 결정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법칙이 수요-공급 법칙입니다.

 

수요-공급 법칙이 주류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가격을 결정한다고 인정합시다. 그럼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위에서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현실과의 대비에서 수요-공급 법칙의 한계를 보였다면, 여기서는 수요-공급 법칙 메커니즘 자체의 논리적 결함을 말하고자 합니다. 시장에서 수요곡선이 우하향하는 이유는 소비자가 효용을 극대화하기 때문이고, 공급곡선이 우상향하는 이유는 생산자가 이윤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공급곡선이 우상향하고 수요곡선이 우하향하면 시장에서 그 교차점은 반드시 존재하게 되고 이 점에서 균형 가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비자가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가격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시장에서 빵을 사려고 하는데 몇 개를 사야지 나의 효용(주관적 만족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빵 가격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빵업자도 빵 가격이 이미 결정되어 있어야 빵을 생산하는 비용 대비 이윤을 계산하여 공급량을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소비자가 효용을 극대화하고 생산자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가격은 이미 주어져 있어야 합니다. 시장에는 주어진 가격에 따라 소비자는 효용을 극대화하는 우하향의 수요곡선이 존재하게 되고, 생산자는 이윤을 극대화하는 우상향의 공급곡선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은 결정됩니다. 이렇게 수요-공급 법칙에 의거해서 가격 결정을 설명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듭니까? 가격 결정을 위해서는 가격이 미리 결정되어야 한다는 순환 논리입니다. 가격을 결정하는 원인이 가격이 됩니다. 즉, 빵 가격은 빵 가격이 결정한다는 논리입니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인과 관계를 밝히는 것이 과학이라면 가격 결정을 설명하는 수요-공급 법칙은 과학일 수 없습니다. 순환 논법은 대표적인 논리적 오류입니다.

 

이렇듯 주류경제학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명백히 잘못된 이론입니다. 주류경제학은 가격론에 한계가 있고, 이윤론은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여기에선 설명하지 않았지만 화폐론도 기능적 설명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이 다기하게 있어 왔고, 지금도 비판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이론적 틀이 ≪자본론≫입니다. ≪자본론≫은 가격 이론, 이윤론, 화폐론, 그리고 공황론에 이르기까지 주류경제학이 다루지 못하고 있는 분야에 명확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를 이해하는 기본이 되는 내용들입니다.

노사과연

 

신재길 교육위원장

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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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자본주의는 사회간접자본의 시대라는 말이 있는데, 정부가 좌로 가든 우로 가든 토건개발사업을 통하여 자본의 번식을 도와주고, 사회간접자본의 도움으로 독점자본의 확장과 영역월도를 하는 과정의 연속인데, 이를 두고서도 의제자본주의라는 자본의 운동으로 보기만은 어려운 점이 있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학문과 용어를 빌려 사회직접자본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그 자본이 역사적으로 확장 재생산하고 있는 자본축적의 규모가 어떻게 되는 지를 밝혀내야 과학적 정의에 이르게 된다. 생산의 영역을 넘어서서 국토개발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의 기생성을 밝혀내려면 사회직접자본의 재생산 운동을 파헤치고 추적해야 한다. 사회직접자본에 대한 자본가들의 우상숭배를 끝내지 않고서 의제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은 과학적 정의가 아니다. 직접사회자본과 간접사회자본과의 연관과 국가에 의한 통제권 독점을 추적하고 그것을 경제학적 고찰과 해명 그리고 거기에 따른 노동의 실천적 투쟁이 전제되지 않는한, 의제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철학적 규명의 일면일 뿐이다. 우리의 당면 임무는 자본이 철학의 영역에서 합법화되어가고, 사회운동을 파괴하는 기생성의 폭로와 더불어 인간운동에 의한 해체일 것이다. 노동자당이라면 사회간접자본과 더불어 사회직접자본을 규명하고, 노동의 편으로 변혁하기 위한 투쟁을 결사하고자 과학적 사회주의의 계승을 제1차적 임무로 삼고 이를 담당하는 혁명적인 계급을 현실운동에서 찾아내야 한다.

    • 너는 쾌감, 혐오감 등을 숫자로 통계화할 수 있다는 신비주의부터 청산하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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