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현장] “시발 사드”

 

은영지 | 회원

 

 

[필자의 말]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서 사드철거 투쟁을 하시던 집실댁 장경순 할머니가 지난 8월 9일 소천하셨다. 곧 90을 바라보는 상 어른이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평화를 기원하는 백배를 하고 맨 앞자리에서 사드반대 투쟁을 하는 모범을 보이셨다. “내사마 꼭 사드 빼고 죽을란다” 하시더니 이리 빨리 가시다니…  어머니 같은 다정다감한 동지를 잃은 슬픔을 추스르며 생전에 하신 말씀을 정리하였다.

 

 

사드 돌캉(도랑, 개울)에 내던져도 나는 엿도 안 사 먹는다 캤어. 하도 미버서(미워서). 시발 사드 어이 가거라.

 

아흔을 바라보는 소성리의 왕어머니 장경순 할매(87세)는 언제 뵈어도 소녀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시는 어르신이다. 평생 하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사신 이 수줍음 많은 할매가 소성리에 박아 놓은 전쟁 무기 사드 때문에 얼마간 욕을 달고 살았다. 임순분 부녀회장님이 큰일 났다. 양반 입에서 시발늠이 한 달 내내 하루도 안 빠지고 나오니 입 다 벼렸다. 우짜겠노 했고, 시발 사드가 욕이 아닌 사드 이름인 줄 알고 열심히 외치고 다녔다는 우리의 왕어머니. 지난 토요일 진밭교에 모인 우리는 그 얘길 듣고 배꼽 빠지게 웃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평화모임에 올라오신 장경순 할매는 당신이 살아오신 고단한 삶과 사드 투쟁 얘기로 우리 지킴이들을 울고 웃게 한 잊지 못할 감동을 선물하셨다. 할매의 택호는 집실댁이지만 정작 집실이 어딘지 모르고 가본 적도 없다. 아마 인동 장씨의 터전인 구미 인동 어디쯤이 아닌가 추측하신다.

 

소성리에서 백 리 떨어진 선산 해평에서 나서 자란 집실댁은 신랑 얼굴이 어딨노. 5촌 아재가 여(여기) 갖다 놨어라며 소성리로 시집온 자초지종을 얘기하신다. 집이 너무나 가난해 빨리 한 입이라도 덜 요량인지 초경도 하지 않은 열여덟 나던 해 세 살 많은 오빠보다 먼저 결혼을 하게 된 집실댁은 아버지와 5촌 아재와 신랑을 앞세워 시집으로 향했다.

 

배를 기다리는데 안 와여. 오빠가 따라와서 계속 우는 거야. 오빠를 쳐다보이 내 눈에도 눈물이 나. 쪼맨한 동생을 보내야 하이 부애가 났던지, 울지 말고 가거라 이캤어. 나는 더 울었고. 신랑은 이짜(여기) 있고 아부지가 뒤에 따라오고 백 리 길 오면서 눈물 흘리는 거야. 고전 소설을 읽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렸지만 여성의 척박한 삶이 엿보이는 듯해 내내 울컥했다.

 

이십 리까지 시댁이 가매(가마)를 가져온다꼬(보낸다고) 약속했어. 근데 끼를 파갖고(꾀를 내서) 가매(가마)가 십 리도 안 왔어. 고마 우리 아부지가 해가(성이) 마이 났는 기라. 가매가 십 리도 안 오고 바라코 앉았응께 어린 걸 백 리 길을 걸린께 애가 터졌는지 작대기를 가지고 가매 뿌사뿔라고 했어. 내가 아빠 한 분만(한 번만) 참아 주이소 하니 어린 기 이칼 줄 아노 하며 작대기를 내던지고 가매 타고 온께 해가 졌뿌맀어. 우리는 숨소리도 죽여가며 할매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신랑이 벽진 이가(이씨) 12대 종손이라 갓 썼는 사람이 50밍(명)이라. 절 받을라꼬 나래비 해가 섰더라꼬. 절 하려는데 고꾸라져 뿌릿어. 너무 많이 걸어서. 여자 하인하고 남자 하인이 나를 꼭 끌어안더니만 절을 하지 말기로 하입시다 이카데. 새댁이 다리가 부서(부어서) 서도(서지도) 모한께. 그래도 시어마님은 절 받아야 된다 해서 하인이 끌어안고 도와줘서 절했어. 내가 제일 높은 어른에게는 하자 했어. 반틈(절반)은 하고 반틈은 그 안날(다음 날) 아침 아래에 하기로 했어. 집실댁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아침 아래 일날라 카이 일날 수가 있어야재. 새댁이가 오줌을 쌌어. 식모한테 나 오줌 누러 가야겠는데 몬 가겠다 하이 막 쫓아가서 오줌단지(요강)를 갖다 줬어. 방에 앉아 오줌 누고 절도 모하고 자빠지고…

 

시어머님 큰아들(남편)이 다섯 살, 동상(시동생)이 세 살 묵었을 때 아버님이 세상을 버려뿟어. 시어머님이 12살 때 시집와 10년이 다 돼간께 애기 안 놓는다고 어른이 머러캤다(꾸중했다) 캐. 애기 놓을라꼬 천상에 공을 드려 우리 영감이 태어났어. 천상의 공을 드렸다고 천수라 지었어. 초상집에도 가지 말라 캤는데 깜박 잊고 초상집에 가뿌맀어. 사흘 만에 세상 비리삐렸어. 어무이가 아들 업고 친정을 갔어. 친정은 아무것도 없어 박재기(바가지)로 밥 얻어먹었어. 아(아이) 둘 다 내던지고 새로 시집가라 칸께 엄마를 작대기로 때릴라 카매 내가 가도 몬 가그로 할 낀데 엄마 말이 그기 뭐요? 우리 영감이 그 소리 듣고 어떻게 해야 우리 엄마 밥 먹끄로 할까 생각했대.

 

아홉 살 먹었을 때 넘 집에 살로(살러) 갔어. 소먹이는 일해서 먹으라고 밥 주면 엄마와 먹는다 하매 가져왔어. 열 살 무서(먹어서) 새경을 받게 돼서 동상을 국민핵교에 넣었어. 내가 벌어서 동상을 시키꾸마 하면서…

 

열아홉 살 문께 부잣집 영감이 일본 난리가 나서 보급대로 보내뿐다 캐. 알고 봉께 저거 아들 대신해서 보내 삐맀어. 1년 산께 해방돼서 돌아와 돈을 요만치 모아 쪼맨한 오두막집을 하나 샀어. 시어마님이 아들 스무 살 때 사람 되그러 할라꼬 고향을 뒤찾아 왔어. 그라고 나서 5촌 아재하고 짝짜꿍이 돼서 나를 여 딜다 놨어. 첨에 시집올 때 하도 다리가 아프고 하도 그래서, 저 문디 그튼게 뭣이디 날 데려가나 싶어서 얼굴 쳐다봉께 갓을 썼는데 빼짝 말랐어. 삐(뼈)하고 가죽밖에 없어. (양손을 둥글게 크게 말아서) 낯이 이거만 해요. 어떠크롬 무섭든지 아이쿠야 했어. 신랑이 무섭대.

 

그때 우리 어마님이 나이 사십 몇 살인디 사십 전에 미느리 봐 놓으면 살로 간다꼬 핑상(평생) 한 바(방) 안 잤나. 어무이 바 가서 자는 기라. 서이가(셋이) 같은 방에 자. 자다 보이 내가 어무이 옆에 꼭 붙어서 자는 기라. 아들 졑(옆)에 가서 자거라 했어. 얼마나 못 살았든지 이불 하나 모해 와서 이불도 없었어. 친정 어무이가 밤새 만들어준 시커먼 밥상보와 비(베) 똘똘 뭉쳐 넣고 옷도 평상복 차림으로 그냥 왔고.

 

스물한 살 무서 아(아이)가 태어났어. 어무이가 놀러 가고 없는데 대낮에 마누라 끌어안으러 왔어, 신랑이. 엄마가 애기 안 놓는다고 머리 카니께(꾸중 하니) 내 말 들어도고 이캐. 대낮에 태어난 그 첫 딸은 내 젖만 묵고 나면 가서 할매 젖 만지고 자고 했어.

 

여덟 살 먹은 딸을 곱게 옷 해 입혀 아버지 손잡고 외갓집엘 보냈더니 너거 엄마 참말 불쌍테이 해도 아이는 그 엄마가 할매인 줄 알았을 정도로 집실댁은 아이 키울 짬 없이 미영(목화솜) 잡고 베 짜고 들에서 일만 했다고 한다. 친정 한 번 안 가고 모진 시집살이 견디어 가며 일을 해 일 년에 논 두 마지기씩 사서 몇 년 지나니 여남은 마지기가 돼 밥은 먹고 살았다. 한 번은 장가갈 때가 된 시동생이 노름을 해 빚을 져서 나락 두 가마니를 신랑 몰래 퍼다 준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 나락 흘린 걸 치우지 않아 신랑한테 들켰을 때 닭 줄라꼬 퍼내다가 흘렸다고 둘러댄 적도 있다. 다행히 신랑이 재주가 많고 끼도 많아 농사를 지으면서 동네 나락을 다 모아 곡물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모았다. 소도 두 마리나 되었다. 첫 딸 이후 아들 하나 놓고 여섯 살 터울로 딸과 아들을 내리 두었다. 나이로 세 번째 서열인 작은 딸은 계집아이라고 늘 치여 살았다.

 

애가 너댓 살 됐을 끼라, 옴마 나 죽겠어. 오빠는 오빠라꼬 때리고 동상은 동상이라꼬 때리고 마(맞아) 죽겠어 이래. 내가 아무꺼나 쳐묵고 자라 했을 기라. 옴마 아무꺼나 쪼매만 줘. 쳐묵고 자께 해. 미안해서 동상 확 쥐 바(쥐어박아) 뿌라 칸께 그럼 우리 할매 야단난다 하는 기야. 아들만 이뻐했어. 집실댁의 입말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감칠맛을 더해주었다.

 

늘 찬밥 신세였던 그 딸이 집실댁이 몸져누웠을 때 아픈 엄마를 업고 버스 태워 대구 동산병원엘 모시고 갈 정도로 효도를 다했다. 집실댁은 자궁에 혹이 생겨 큰 수술을 했다. 평생 친정 왕래는 고사하고 바깥나들이조차 못해 본 집실댁. 해만 뜨면 일만 해서 다른 곳은 건강한 편이지만 허리가 많이 아프고 굽으셨다. 사위가 우리 장모 불상타 하며 호강시켜주고 용돈을 많이 줘서 철철이 옷 사고 이불을 장만해 장롱에 다 못 넣을 정도라며 늘그막에 호강한다고 아들딸 며느리 자랑에 지칠 줄 모르신다.

 

할매가 한국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 궁금했다. 인민군을 뺄개이라 카데. 뺄개이가 온다 캐서 방에 문 꼭 닫고 있다가 진밭교 있는 산밑 골짜기에 한 달을 피난 가 살았어. 뺄개이가 보고 잡은 기라. 웃마 대구띠와 가만히 나와 몰래 봉께, 뺄간가 여겼디 우리와 똑같등구만. 한 달 있다가 내려와 가주고 야전병원에 밥해 주러 오라 캐여. 어무니가 밥해 주러 가라 카나. 뺄개이가 우리 집 소 한 마리 몰고 가서 자 무 뿌대. 소 한 마리 떨갔지(잃었지). 그 당시 인민군들이 나중에 갚는다는 증표를 하나씩 주고 가져갔지만 급하게 후퇴하느라 소 값을 돌려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통일을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할배는 79살에 돌아가셨다. 영감 죽고 없는데 테레비를 못 틀어서 울었어. 테레비를 우예 트는지 알아야재. 맨날 일만 하고 조금 보다가 요래 자고 했으이. 병에 걸려 20년간 고생한 영감은 미느리 못 보고 죽는다고 내 울어싸여. 난중에 미느리 다 보고 돌아가셨어. 손녀까지 보고 갔어. 21살 된 외손녀가 상복까지 입었어.

 

≪소성리≫ 영화에도 출연한 바 있는 곱고 여린 집실댁은 사드 얘기만 나오면 벌컥 화를 내신다. 사드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저 산에 가면 나물이 쎘어요. 고사리도 얼매나 많은데 뜯어 갖고 막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왔어. 내가 사드 땀시 욕쟁이가 다 됐뿐는 기라. 시발 사드가 이름인 줄 알고 시발 사드 하고 댕겼으이.

 

할매는 매일 아침 11시 소성리 마당에서 하는 원불교 평화백배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참가하신다. 절도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하시는지 의자가 앉아 손이 땅에 닿을 듯 고개 숙여 반절을 하시고 집회도 빠지는 법이 없다. 사드장비 들여올 때 할매를 제지하는 경찰 귓통배기(따귀)를 때린 적도 있다. 할매의 발과 다리를 바짝 들고 옮기는 순경들을 쥐박으며 이놈의 새끼들이라고 욕도 했다.

 

한번은 들에서 일하는데 사드가 들어오매 고동(싸이렌)을 불고 난리가 났어야. 고마 신도 안 신고 호미 들고 기올라와 버렸어. 사드를 막아야 하니. 사람들을 보니 좀 부끄럽대. 나 손 씻고 발 씻고 갔께 하니 어떤 여자가 할매 괜찮아 하며 지 옷을 훌렁 벗어 입히뿌리. 난중에 그 옷 벗어 이장에게 주며 꼭 갖다 주라 캤는데 줬는지 몰라. 몇 년 전 일을 지금까지도 잊지 않으신 착해빠진 우리 왕어머니이시다.

 

내가 넘보다 건강한가 봐. 일을 마이 해서 허리가 꼬부라져서 그렇지 아픈 데는 없어 하면서 돌캉 물이 맑고 옛날 하던 버릇이 있어 지금도 돌캉에서 빨래한다옛날 버릇 못 내던진데이 하시는 집실댁 할매. 사드 빨리 뽑아내고 옛날처럼 배차(배추) 돌캉에서 이래이래 씻거 막 먹는 평화로운 소성리를 간절히 꿈꾸신다. 너무 벌로(건성으로) 직겨서 미안하데이 하시기도 했고 야 이놈들아 사드 갖고 얼른 가거라라고 미군들에게 호통치기도 했다.

 

얼마 전 전작권 환수 문제로 한미안보연례협의회(SCM)를 개최한 미군 장성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청와대로 쳐들어갔다.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기 전 조선의 주권을 빼앗기 위해 몰려가 고종을 협박했던 분노의 역사가,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지소미아 강요, 주권 강탈, 한반도 평화를 짓밟는 저들의 폭력적인 행태가 일제의 침탈 모습과 한 치도 다르지 않으니 피가 확 거꾸로 올라온다. 연로하신 어른들도 이렇듯 불의에 저항하는데 위정자라는 인간들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미 제국주의 마름 노릇에 정신없다.

 

안타깝게도, 집실댁은 시발 사드라는 욕을 이젠 하지 않으셨다. 소성리의 젊은 원주민 소야 훈이 대신했다. 오늘 소성리 왕어머니도 함께 왔다. 너희 미군들이 있는 곳은 소성리 어머니들의 따뜻한 품. 우리 어머니들 손 맞잡고 시발 사드 함께 뽑자. 미군은 사드 갖고 이 땅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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