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배반당한 사회주의: 쏘련 붕괴의 배후(22)

 

로저 키란(Roger Keeran)ㆍ토마스 케니(Thomas Kenny)

번역: 신재길(교육위원장)

 

 

[차례]

서문

1. 서론

2. 쏘련 정치에서의 두 가지 경향

3. 제2경제

4. 약속과 불길한 예감, 1985-86

5. 전환점, 1987-88

6. 위기와 붕괴, 1989-91

7. 결론과 영향

끝 맺음말 ― 쏘련 붕괴의 설명들에 대한 비판

               ㆍㆍㆍ <이번 호에 게재된 부분>

 

 

끝 맺음말 ― 쏘련 붕괴의 설명들에 대한 비판(1)

 

어떤 뚜렷한 위협도 없이 국제적 국가 체제가 붕괴했다는 것은 설명이 필요하다. 전쟁의 위협도 없었고,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정치적 도전도 없었다. 뽈쓰까(폴란드)는 단지 약간의 예외일 뿐이다. 여러 가지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시민들의 기본적인 경제적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것은 완전한 의미에서 실패나 붕괴가 아니었다. 오히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체계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의 지도부가 쏘련과 전체 체제에 극단적인 정책들을 도입하기로 한 결정이었다. 이는 피지배층들이 과거와 같은 지배 방식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자들이 과거의 방식으로 통치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 프레드 할리데이1)

 

 

쏘련 붕괴에 대한 설명은 많이 있다. 이것들은 온갖 이념적 색조와 정서적 차이들을 반영한다. 공상적인 것에서 진중한 것까지, 기뻐하는 것에서 절망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많은 부분 우리의 이해를 깊게 했지만, 대부분은 우리의 견해와 다르다. 이들의 이론들은 주요 원인에 따라 6가지 범주2)로 나뉜다.

 

1. 사회주의의 결점들

2. 대중적 저항

3. 외적 요소들

4. 관료의 반혁명

5. 민주적 요소의 결핍과 과도한 중앙 집권, 그리고

6. 고르바쵸프 요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에서 우리는 이러한 이론들과 우리의 차이점을 설명할 것이다.

첫 번째 이론의 지지자들은 어떤 사회주의든 자체의 유전적 결함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사회주의가 쏘비에트 연방으로 탄생한 것은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본성과 자유 시장에 반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87년에서 1991년까지 쏘비에트 연방에서 대사로 근무했던 콜롬비아 대학 교수인 잭 매트락(Jack Matlock)은 무턱대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레닌이 정의한 사회주의는 처음부터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가정에 기초하기 때문이다.3) 이 이론의 변종이 마틴 말리아(Martin Malia), 리차드 파이프스(Richard Pipes)4), 그리고 드미뜨리 볼꼬고노프(Dmitri Volkogonov)5)의 글에도 등장한다.

사실 쏘비에트 체제는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1985년에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맞다. 일부 문제는 중앙 계획과 관련이 있다. 몇몇 소비재의 질적 양적 부족, 생산성 저하, 시들해지는 지역의 진취성, 컴퓨터와 기타 기술의 더딘 보급, 부패와 불법적인 사적 축재 등이다. 어떤 문제는 정치 체제와 관련이 있다.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데 유용했던 방법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데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 결국 드러났다. 이 문제는 당과 정부의 기능에 공통되는 부분인데, 지도부가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고, 하부 단위들은 자문이나 협의적 기능으로 축소된 점이다. 이는 노동조합과 같은 대중 조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는 또한 성숙한 사회주의 사회에 맞지 않는 형태 및 수준의 검열과 특권이 지속된 문제점도 있다. 이는 당과 정부 엘리트들을 노동자들과 분리시켰다. 몇몇 문제는 분명 냉전과 관련이 있다. 믿을 만한 군사력의 유지와 해외 동맹국에 대한 지원은 자원을 빨아들였다. 개중에는 가차 없는 시간의 진군과 관료제의 불가피한 유혹에 맞서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혁명적 기백, 높은 당 규율, 그리고 상황에 맞는 맑스주의 이념 및 교육을 유지하는 어려움이다. 그러나 요점은 이러한 문제들이 붕괴는커녕 위기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이론의 문제점은 쏘비에트의 역사가 종말을 향해 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인간의 본성과 사유 재산 및 자유 시장으로부터 멀어진 데서 찾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레이건 시대에 미국에서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기반한 역사적 결정론에 찬성하는 역사학자는 거의 없다. 게다가 이 이론은 어떻게 쏘비에트 사회주의가 집단 농업과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의 침입 속에서 생존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에 겉보기에 훨씬 더 작은 도전에도 붕괴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두 번째 이론은 대중적 저항이 쏘비에트 사회주의를 붕괴시켰다는 것이다. 이 유형은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이다. 왜냐하면 주요한 저자 중 어느 누구도 단지 대중적 저항을 쏘비에트 사회주의의 붕괴 원인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저자들은 지식인들의 각성6), 노동자들의 저항7), 민족주의자들의 등장8) 그리고 선거에서 비공산주의자들의 승리와 같은 대중적 저항의 측면을 강조한다. 확실히 쏘비에트 체제에 대한 지식인들의 불만이 꽤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많은 저명한 쏘비에트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선호했다.9) 학자들이 제안한 개혁안은 고르바쵸프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고, 이런 식으로 지식인들은 붕괴에 기여했다.10) 대중적 불만의 다른 측면들도 역할을 했다. 바꾸에서의 폭동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야 사이의 갈등, 발트에서의 민족주의자들의 저항, 광부들의 파업, 인민 대표자회의에서 자유주의 반대파 블록의 형성은 쏘비에트 사회주의 해체의 중요한 순간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이 이론의 주요한 결점은 대중적 불만이 고르바쵸프 개혁의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대중적 불만은 고르바쵸프 정책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한 농담이 말하는 것처럼, 글라쓰노쓰찌는 쏘비에트 시민에게 비판할 권리를 주었고, 뻬레쓰뜨로이까는 비판할 거리를 주었다. 하지만, 1985년 개혁 과정의 시작 당시에 대중의 불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 쏘비에트 사람들은 재화의 품질과 양에 대해서, 공무원들의 특권과 부패에 대해서 불만을 표했지만, 대부분의 쏘비에트인들은 그들의 삶에 대해 만족하고 체제에 대해 만족을 표명했다. 여론 조사는 쏘비에트 시민들의 만족 수준이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체제에 대해 갖는 만족도와 비견될 만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11) 1990-91년, 지도자들이 사적 소유와 시장주의, 그리고 민족적 분열을 지향할 때, 대다수의 쏘비에트 시민들은 공적 소유, 가격 통제, 그리고 쏘비에트의 유지를 선호했다.12) 결국 대중적 저항은 독립 변수라기보다는 종속 변수였고, 고르바쵸프 정책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산출물이었다.

세 번째 이론에 따르면, 외적 요소들은 냉전에 뿌리를 두고 있고, 세계 경제가 쏘비에트의 붕괴를 야기했다. 이 이론의 가장 극단적인 견해는 쏘비에트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이 쏘비에트 지도부 내에 CIA가 침투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이러한 침투는 대부분의 외부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곳까지 이르렀었다. 비교적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1985년쯤에 CIA와 FBI는 미국 역사에서 러시아에 반대하는 스파이들에 대한 가장 화려한 목록을 가지고 있었고, KGB[국가보안위원회]와 GRU(군 정보국)[정보총국]를 스파이들로 벌집처럼 구멍을 뚫어 놨다.13) 하지만, 향후 어떤 폭로가 고르바쵸프나 야꼬블레프가 CIA 요원으로 활동했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는 한, CIA가 쏘비에트 사회주의를 붕괴시켰다는 가정은 믿을 수 없다. 물론, CIA보다 좀 더 강력한 외적 요소들이 작동하고 있었다.

많은 저자들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세계 경제, 기술 변화, 카터와 레이건 정책에 의해 발생한 외부 압력은 의심할 여지없이 쏘비에트에 어려움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안드레 군더 프랭크(Andre Gunder Frank)는 1979-82년의 전 세계적 경기 침체로 카터와 레이건 대통령이 군비 지출을 증가시켰고, 이로 인해 쏘비에트 연방은 더 많은 돈을 지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경기 침체는 또한 서구 은행에서 돈을 빌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부담을 안겨 주었다.14) 마누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와 엠마 끼쎌로바(Emma Kiselova)는 쏘비에트 연방에 대한 주된 압박은 정보 사회에 적응해야만 한다는 것에서 왔다고 주장한다.15) 이러한 경제적, 기술적 요인 외에도, 쏘련 체제에 대한 주요 외부 압력은 1980년대 초 냉전의 격화에 의해 부과되었다.

쏘비에트 사회는 외부 침략의 위협이 없는 내적 발전의 사치를 누리지 못했다. 스스로를 방어하고 동맹을 원조하는 비용은 매년 증가했고, 자원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국내 투자에 쓰이지 못하고 빠져나갔다. 1980년대에, 동맹에 대한 쏘비에트의 원조는 연간 440억 달러에 달했고, 군비 지출은 경제의 25-30%를 차지했다. 쏘련 경제의 이러한 유출은 당시 서방 전문가들이 추산한 것보다 2-3배 많았다.16) 냉전의 중압은 카터 후반, 레이건 초창기에 증가했다. 보수주의자 피터 슈바이처(Peter Schweizer)와 좌파인 숀 지바시(Sean Gervasi)가 모두 지적한 것처럼, 레이건은 제2차 냉전을 일으켜 쏘련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다각적인 전략을 시작했다. 그 전략은 군비를 두 배로 늘리는 것(군비를 파산에 이르게 소비하는 것), 전략 방어 계획(스타워즈), 아프가니쓰딴과 뽈쓰까(폴란드) 그 밖의 지역에 반공주의자들을 원조하는 것, 세계 시장에서 기름과 가스(쏘비에트 경화의 원천)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었고, 다양한 형태의 경제전 및 심리전을 포함하였다.17)

확실히, 쏘비에트 체제를 압박한 외부 요인들은 다양하고 강력한 방식으로 쏘비에트 체제에 장애를 초래했고, 쏘비에트 붕괴를 온전히 해명하기 위한 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피터 슈바이처(Peter Schweizer)가 냉전에서의 승리 로널드 레이건과는 별도로 쏘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이해할 수는 없다18)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프랜시스 피츠제럴드(Frances Fitzgerald)는 레이건의 정책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에 대해 설득력 있게 반박한다. 피츠제럴드는 외적 요소들과 내적 위기 사이에 어떤 분명한 인과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19) 예를 들어, 피츠제럴드는 레이건 하에서 스타워즈와 다른 프로젝트들에 대한 미국의 군비 지출의 증가가 쏘비에트의 군비 지출을 증가시키지는 않았다고 했다.20) 마찬가지로 많은 쏘비에트 내부자들도 군비 경쟁이 고르바쵸프의 개혁이나 붕괴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거부했다. 쏘련의 군 정보국 관계자는 고르바쵸프의 뻬레쓰뜨로이까가 레이건의 스타워즈에 따른 결과로 시작되었다는 생각은 서구에서 꾸며 낸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이다21)고 말했다. 쏘비에트의 미국 및 캐나다 연구소 관계자는 SDI(전략 방위 구상, 스타워즈)나 군비 경쟁 어느 것도 쏘련 붕괴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전적으로 확신한다22)고 밝혔다. 군비 경쟁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권위 있는 의견이 서로 다르다. 논쟁은 대부분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미국의 압력은 그것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리고 어떠한 형태가 되더라도 이전의 경제 제재, 파괴 행위, 외세의 침략보다 대외적 위협의 정도가 약했다. 더구나 외압이 쏘비에트가 대응하는 특정 형태와 방향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결국 외압과 내부 문제에 대한 고르바쵸프의 특정한 대응이 붕괴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네 번째 이론은 그 원인이 관료의 반혁명이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레온 뜨로쯔끼의 1930년대 쏘비에트 연방에 대한 견해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뜨로쯔끼는 쏘비에트가 과도기적 체제이고, 만약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이 관료제를 전복하지 못한다면, 관료 자체가 자본주의 복구의 근간이 되거나 심지어 스스로 새로운 소유계급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23) 관료주의가 위로부터의 혁명을 통해서 새로운 소유계급이 된다는 생각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데이비드 코츠(David Kotz)와 프레드 위어(Fred Weir),24) 제리 F. 허프(Jerry F. Hough),25) 스티븐 L. 솔닉(Steven L. Solnick),26) 그리고 바만 아자드(Bahman Azad)(비록 아자드는 이 새로운 그룹을 하나의 계급으로 여기지 않았지만)27) 등의 주장이기도 하다. 코츠와 위어 그리고 아자드의 설명은 주목할 만하다.

≪위로부터의 혁명≫에서, 코츠와 위어는 쏘련의 긍정적인 성취와 쏘비에트 삶의 민주적이고 인도주의적인 많은 특징을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게 그려 내고 있다. 그들은 고르바쵸프의 개혁이 사회주의를 자본주의로 대체하고자 하는 그룹들의 새로운 정치 연합을 만드는 과정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했다. 보리쓰 옐찐은 반사회주의 블록의 리더가 되었다. 그는 당-국가 엘리트의 지지를 업고, 두 개의 라이벌 그룹, 고르바쵸프 사회주의 개혁가들과 쏘련 공산당의 보수파(Old Guard)를 밀어낼 수 있었다. 다민족 연방으로의 쏘련의 해체는 옐찐과 고르바쵸프 세력 간 권력 투쟁의 특수성 때문에 발생했다. 옐찐의 반사회주의자들이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은 반면, 고르바쵸프의 사회주의 개혁주의자들은 연방 기관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옐찐 세력은 러시아가 쏘비에트 연방에서 탈퇴할 때에만 자신들의 힘을 유지할 수 있고,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추진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즉, 쏘련은 분열되었다.

코츠와 위어의 논지는 여러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왜 오늘날 러시아의 최고 경영자들과 자본가들이 이전의 쏘비에트 관리들이었고, 대개 쏘련 공산당원인지를 설명해 준다. 옐찐이 점차 자본주의의 길로 가려는 의도를 드러낼 때, 당-국가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힘과 특권이 자신들을 새로운 소유자로 하는 사유제로의 전환에 의해 유지되고 향상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하여, 1991년 8월의 이른바 쿠데타의 신속한 붕괴는 옐찐과 자본주의에 충성하는 엘리트들의 변절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고르바쵸프나 쿠데타 지도자들에 대한 엘리트(대중뿐 아니라)의 지지가 없었기 때문에, 1991년 8월과 12월 사이에 음모가 흐지부지되고 고르바쵸프의 운이 다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복원이 비교적 빠르고 평화롭게 이루어진 특징과 함께 새로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겪은 것을 동시에 해명해 준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관료 혁명 이론이 완전히 납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권위 있는 연구28)는 당-국가 엘리트들의 인터뷰를 근거로 하여 당과 국가의 관리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사적 재산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쏘비에트를 붕괴시켰다유행하는 이론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사실, 관리들은 체제를 방어하기 위한 집단행동을 할 능력이 없었고 의식적으로 스스로의 종말을 촉진할 능력도 없었다. 고위 관료는 어쨌든 충분한 실체를 가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확실한 사회 그룹인데, 이들은 응집력 있는 정치 세력으로 행동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고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더욱이, 당-국가 엘리트가 자신들의 사리사욕에 따라 친자본주의 방향을 결정했다면, 어떻게 수만의 중앙 관료들이 고르바쵸프의 뻬레쓰뜨로이까와 옐찐의 자유 시장 계획이라는 둘로 나뉘게 된 것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코츠와 위어는 100,000개의 완전히 독단적인 관할 구역을 가진 엘리트를 상정한다. 이러한 엘리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식적으로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1983년에는 안드로뽀프의 맑스-레닌주의를, 1987년에는 고르바쵸프의 수정주의를, 그리고 1993년에는 옐찐의 자유 시장 충격 요법을 지지했겠는가? 세 개의 매우 이질적인 이데올로기가 관료의 자기 이익 속에 있었던 것인가? 쏘련 공산당의 해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인 1987년에 관료 엘리트의 국가 재산에 대한 절도는 배아 단계였다.29) 1990-1991년에는 절도가 만연했는데, 당-국가 엘리트가 아닌 다른 곳에서 절도가 만연했고, 이것이 붕괴를 초래했다는 견해가 신빙성이 있다. 당-국가 엘리트는 사건에 반응했지 선도하지 않았다. 일부 엘리트들은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재산을 탈취했지만, 그 과정에서 기회주의적으로 반응했지 주인공은 아니었다.

위로부터의 혁명론은 여러 다른 흠결도 가지고 있다. 코츠와 위어는 국제 정세, 즉 쏘비에트의 몰락에 기여한 원인으로서의 제국주의 외부 압력을 경시했다. 또한, 이들은 고르바쵸프 프로젝트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구별되지 않는 것처럼, 분명한 반혁명을 혁명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국내 친자본주의자들과 해외 제국주의자들에게 고르바쵸프가 양보하고 후퇴한 것을 비판하지 않았다. 꾸바와 니까라과를 포기하고, 걸프전을 지지한 것을 비판하지 않았다. 결국 코츠와 위어는 관료 엘리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신들이 지지한 고르바쵸프에게는 면죄부를 주었다.

표면적으로는 바만 아자드(Bahman Azad)도 관료 엘리트가 반혁명을 키웠다는 논지를 지지한다. 아자드의 분석에 의하면 쏘비에트 역사의 일정한 정치적 전개가 고르바쵸프 사태를 위한 길을 준비했다. 이러한 아자드의 분석은 관료적 반혁명의 생각만 제외하면 주목할 만하다. 아자드는 쏘비에트 사회주의가 가진 성취와 한계의 역사적 과정(1918-1921년의 전시 공산주의, 1921-1928년의 신경제 정책, 1928-1945년의 급속한 공업화와 제2차 세계 대전, 그리고 전후 복구)을 공감되고 설득력 있게 제공한다. 아자드는 진정한 문제는 흐루쇼프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1956년 20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급진적 소비형 모델과 임금 평준화는 동기를 약화시켰고, (물자) 부족을 낳고, 경제 성장을 늦췄고, 암시장과 부패를 조장했다. 1959년 21차 당 대회에서 채택된 쏘비에트 연방이 완전한 형태의 공산주의 사회를 시작했다는 흐루쇼프의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고, 환상을 심어 주었으며, 임금 평준화와 침체로 이어졌다. 1961년 22차 당 대회에서 채택한 쏘비에트 국가가 전 인민의 국가가 되었고 쏘련 공산당은 전 인민의 당이 되었다는 생각은 국가에 대한 당의 약화와 지식인 및 관료들이 당에서 점점 더 우위를 차지한다는 신호였다. 요약하자면, 아자드는 쏘비에트 연방의 문제점들과 고르바쵸프의 정책은 흐루쇼프의 잘못된 정책의 여진이라고 주장했다.

아자드는 고르바쵸프 시대를 흐루쇼프의 각주로 취급하면서 필요한 변화를 실행하지 못한 25년의 단절30)이라고 평가했다. 아자드는 고르바쵸프가 흐루쇼프의 정책과 약점들을 연장시키고 증폭시켰다고 보지는 않았다. 아자드는 붕괴로 이어지는 직접적 정책 및 과정에 대한 분석 대신에, 전체 과정을 알기 쉽게 압축했다. 고르바쵸프 하의 국가 관료들은 안드로뽀프의 개혁 프로그램을 가로챘고, 고르바쵸프는 사회주의를 배신하고 자본주의를 복구했다. 우리의 관점에서 진정한 문제는 그러한 관료제가 아니라 제2 경제이다. 제2 경제는 당과 국가를 부패시켰고, 쁘띠 부르주아 정신을 관료 안팎으로 키웠으며, 제2 경제 기업가들과 함께 일부 관료들을 고르바쵸프 기회주의의 기반으로 만들었다.

(다음 호에 계속)

노사과연

 

 


 

1) 프레드 할리데이(Fred Halliday), “하나의 기이한 붕괴: 쏘련, 시장 압력, 그리고 국가 간 경쟁(A Singular Collapse: The Soviet Union, Market Pressure, and Interstate Competition)”, Contention Magazine, 1992.

 

2) 우리는 코츠와 위어가 해명한 설명을 수정 보완하였다. 데이비드 코츠(David Kotz)ㆍ프레드 위어(Fred Weir), ≪위로부터의 혁명: 쏘비에트 씨스템의 종말(Revolution from Above: The Demise of the Soviet System)≫, New York and London: Routledge, 1997, pp. 3-5.

 

3) 잭 매트락(Jack Matlock), ≪제국의 해부(Autopsy on an Empire)≫, New York: Random House, 1995, p. 648.

 

4) 말리아와 파이프스에 대한 개요와 비평은 다음을 보라. 월터 라큐어(Walter Laqueur), ≪실패한 꿈(The Dream That Failed)≫, New York an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4의 여러 곳과 알렉산더 달린(Alexander Dallin), “쏘련 붕괴의 원인(Causes of the Collapse of the USSR)”, ≪포스트-쏘비에트 문제(Post-Soviet Affairs)≫, Vol. 8, 1992, pp. 279-28.

 

5) 드미뜨리 볼꼬고노프(Dmitri Volkogonov), ≪제국에 대한 분석(Autopsy for an Empire)≫, New York, London, Toronto, Sydney, Singapore: The Free Press, 1998.

 

6) 로이 메드베제프(Roy Medvedev)ㆍ줄리에또 키에자(Giulietto Chiesa), ≪변화의 시대: 러시아 변혁에 대한 내부자의 시각(Time of Change: An Insider’s View of Russia’s Transformation)≫, New York: Pantheon, 1989.

 

7) 엘리자베스 티그(Elizabeth Teague), “노동계급의 운명(The Fate of the Working Class),” 로버트 다니엘스(Robert Daniels) 편집, ≪쏘비에트 공산주의 개혁에서 붕괴까지(Soviet Communism from Reform to Collapse)≫, Lexington, Mass.: Heath and Company, 1995, pp. 352-365.

 

8) 스티븐 화이트(Stephen White), “소수 민족의 자주권 투쟁(The Minorities’ Struggle for Sovereignty),” 다니엘스(Daniels), 앞의 책, pp. 216-229.; 이츠하크 브루드니(Yitzhak Brudny), ≪러시아 재창조: 러시아 민족주의와 쏘비에트 국가, 1953-1991(Reinventing Russia: Russian Nationalism and the Soviet State, 1953-1991)≫, Cambridge, Mass., and London, England: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엘렌 당꼬스(Helene d’Encausse), ≪쏘비에트 제국의 종말: 민족의 승리(The End of the Soviet Empire: The Triumph of Nations)≫, New York: A New Republic Books, Basic Books, A Division of Harper Collins, 1994.

 

9) 안데쉬 오슬룬드(Anders Aslund), ≪고르바쵸프의 경제 개혁을 위한 투쟁(Gorbachev’s Struggle for Economic Reform)≫, Ithaca,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89, pp. 4-5.

 

10) 마이클 엘먼(Michael Ellman)ㆍ블라지미르 꼰또로비치(Vladimir Kontorovich), ≪쏘비에트 체제의 파괴: 내부자 역사(The Destruction of the Soviet System: An Insider’s History )≫, Armonk, New York, and London, England: M. E. Sharpe, 1998, p. 17.

 

11) 엘먼(Ellman)ㆍ꼰또로비치(Kontorovich), 같은 책, pp. 30-40.

 

12) 앤토니 다고스띠노(Anthony D’Agostino), ≪고르바쵸프의 혁명(Gorbachev’s Revolution)≫,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1998, pp. 272-273, 285, 296.

 

13) New York Times, February 26, 2001.

 

14) 안드레 군더 프랭크(Andre Gunder Frank), “사회주의 동구에 무엇이 잘못되었나?(What Went Wrong in the ‘Social’ East?)”, ≪훔볼트 사회주의 저널(Humboldt Journal of Socialist Relations)≫, Vol. 24, No. 1/2, pp. 179-184.

 

15) 마누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ㆍ엠마 끼쎌로바(Emma Kiselova), ≪쏘비에트 공산주의의 붕괴: 정보 사회의 전망(The Collapse of Soviet Communism: A View From the Information Societ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5.

 

16) 라큐어(Laqueur), 앞의 책, pp. 58-59.

 

17) 피터 슈바이처(Peter Schweizer), ≪승리: 쏘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촉진한 레이건 행정부의 비밀 전략(Victory: The Reagan Administration’s Secret Strategy that Hastened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New York: Atlantic Monthly Press, 1994.; 숀 지바시(Sean Gervasi), “총공세: 쏘비에트 연방의 불안정화(A Full Court Press: the Destabilization of the Soviet Union)”, ≪비밀공작(Covert Action)≫, Vol. 35(Fall, 1990), pp. 21-26.

 

18) 피터 슈바이처(Peter Schweizer), ≪레이건의 전쟁(Reagan’s War)≫[Bound galley copy], New York: Doubleday, 2002, pp. 3-4.

 

19) 프랜시스 피츠제럴드(Frances Fitzgerald), ≪갑작스런 출구: 레이건, 스타워즈와 냉전의 종식(Way Out There in the Blue: Reagan, Star Wars and the End of the Cold War)≫, New York et al.: Simon & Schuster, 2000.

 

20) 피츠제럴드(Fitzgerald), 같은 책, p. 474.

 

21) 엘먼(Ellman)ㆍ꼰또로비치(Kontorovich), 앞의 책, p. 57.

 

22) 같은 책, p. 59.

 

23) 레온 뜨로쯔끼(Leon Trotsky), ≪배반당한 혁명(The Revolution Betrayed )≫, New York: Merit Publishers, 1965, pp. 252-254.

 

24) 데이비드 코츠(David Kotz)ㆍ프레드 위어(Fred Weir), 앞의 책.

 

25) 제리 허프(Jerry F. Hough), ≪쏘련의 민주화와 혁명, 1985-1991(Democratization and Revolution in the USSR, 1985-1991)≫, Washington, D. C.: Brookings, 1997.

 

26) 스티븐 솔닉(Steven L. Solnick), ≪국가 탈취: 쏘비에트 기관의 지배와 붕괴(Stealing the State: Control and Collapse in Soviet Institutions)≫, Cambridge, Mass. and London, England: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27) 바만 아자드(Bahman Azad),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 쏘련 사회주의 국가 해체에 기여하는 요인들(Heroic Struggle Bitter Defeat: Factors Contributing to the Dismantling of the Socialist State in the USSR)≫,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2000.

 

28) 엘먼(Ellman)ㆍ꼰또로비치(Kontorovich), 앞의 책, p. 27.

 

29) 솔닉(Solnick), 앞의 책, 여러 곳에.

 

30) 아자드(Azad), 앞의 책, pp. 115-118, 120, 129-134.

 

신재길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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