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 회원
* 원문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archive.org/details/StoriesAboutLenin/mode/2up
지난 4월 22일은 레닌이 탄생한 지 150년이 되는 날이었다. 사회주의당과 좌파 단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날을 기념하며 레닌을 기억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레닌 이야기(Stories about Lenin)≫는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어린이 그림책이다. 1900년대 러시아의 혁명적 상황, 레닌의 ‘1917년 10월 혁명’과 혁명 후 쏘비에트 사회주의 삶이 간략하게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의 절반(80쪽)은 다양한 색채로 그려진 삽화로 채워져 있어서,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이 있다.
- 지주는 땅을, 자본가는 공장을 소유했다. 그들은 부자였다. 공장 노동자는 가난했다. 몇 푼 안 되는 임금은 자식 먹이기에도 힘들었다. 작은 논밭을 부치는 농민도 가난했다. 먹고살기 위해 지주 밑에서 일하는 소작농이 되거나, 도시로 떠나 공장에서 일했다. 러시아 황제 짜르는 지주와 자본가를 보호한다. 지주와 자본가는 짜르를 지지한다. 경찰과 군인은 짜르와 부자를 지켜 주고, 노동자와 농민을 억압한다. 짜르는 지주, 자본가, 경찰과 군인을 보호했다.
- 시골 마을에 이반이라는 농민이 아내 마리야와 어린 아들 미쨔와 살았다. 어느 날 세금을 거두러 마을 경찰이 왔다. 지금 돈이 없으니 며칠 뒤에 내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돈 대신에 젖소를 끌고 갔다. 아들에게 우유를 줄 수 없게 되자 엄마 마리야는 울었다. 세월이 흘렀다. 미쨔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지주의 양치기 소년이 되었다. 그 당시 농민의 자식은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이반의 마을 근처에 대저택이 있었다. 지주와 그의 가족이 매년 여름에 놀러 오는 별장이었다. 커다란 목초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린 아들 미샤는 도시에서 귀족 학교에 다녔고 모든 것이 풍족했다. 그 당시 지주는 그렇게 살았다.
- 이반의 형제인 바씰리는 도시에서 군수 공장에 다녔다. 아내 안나도 공장에 다녔다. 어린 딸 마샤는 겨울에는 어두침침하고 습기 찬 방에서만 놀았다. 따뜻한 옷과 신발이 없어 추운 바깥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부자들은 쥐꼬리만 한 돈을 주고 사람을 부려 먹었다. 그래서 바씰리가 일하는 군수 공장 사장은 크고 멋진 집에서 살았다. 비싼 말과 마차, 아름다운 정원, 넘쳐 나는 맛난 음식들로 부족함이 없었다. 귀족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위한 개인 교사도 있었다. 그 당시 자본가는 그렇게 살았다.
- 어느 해에 흉년이 들었다. 농민들은 먹을 곡식이 없었다. 그러나 지주의 창고는 가득 찼다. 마을 농민들은 지주에게 곡식을 얻으러 갔다. 지주는 도와 달라는 간청을 무시하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이반이 나섰다. “당신은 밭도 갈지 않고 씨도 뿌리지 않았다. 당신의 곡식은 우리들이 수확한 것이다.” 다른 농부들이 “옳소” “사실이다” 하며 목청을 높였다. 이반은 끌려가 감옥에 갇혔고 다른 농민들은 채찍질을 당했다.
- 군수 공장 사장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었다. 더 빨리 일을 하라고 노동자를 다그쳤다. 바씰리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시키는 대로 하면 안 된다. 우리가 일을 안 하면 기계는 멈춘다. 사장은 큰 손해를 볼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다.” 파업이 시작됐다. 경찰은 바씰리와 파업 노동자 모두 감옥에 처넣었다.
- 레닌그라드는 오래전에 쌍뜨뻬쩨르부르끄로 불리었다. 그 도시에 짜르 알렉싼드르 2세의 궁전이 있었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 싸우는 용감한 남녀 청년들이 모의했다. “지주와 자본가를 보호하는 짜르를 죽이자. 그러면 가난한 인민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다.” 그들은 암살 계획을 실행했다. 지나가는 짜르의 마차에 폭탄을 던졌다. 짜르가 죽었다. 붙잡힌 용감한 청년들은 사형당했다. 알렉싼드르 3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황제의 얼굴은 바뀌었지만, 인민의 삶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 볼가강 근처에 울리야노프쓰끄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은 한때 씸비르쓰끄로 불리었다. 그곳에 지역 교육 감독관인 울리야노프 가족이 살았다. 엄마는 여섯 자녀를 키우는 일에 전념했다. 안나, 알렉싼드르, 올가, 블라지미르, 디미뜨리와 마리야다. 어린 나이에 죽은 올가를 제외한 다섯 명 자녀들 모두 ‘혁명가’가 되었다. 맏아들 알렉싼드르는 지적이고, 친절하고, 정의로웠다. 러시아 인민들이 왜 그렇게 가난하게 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쌍뜨뻬쩨르부르끄 대학에서 학생들과 짜르 알렉싼드르 3세 암살을 모의했다. 계획은 실패했고 알렉싼드르와 가담한 학생들 모두 잡혀 처형되었다.
- 알렉싼드르의 동생 블라지미르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다. 독서, 체스 게임과 아이스 스케이트를 좋아했다. 형 알렉싼드르의 죽음으로 블라지미르는 매우 슬퍼했지만, 러시아 인민들을 위해서 목숨을 희생한 형을 잘 이해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싸우는 것이 최선이었던가? 하는 의구심은 있었다. “황제 한 명을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다시 황제가 되면 그만이다. 황제, 지주, 자본가들이 힘이 있는 것은 그들이 땅과 공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싸워야 그들이 소유한 땅과 공장들을 일하는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가?” 블라지미르는 열심히 생각하고, 학습하고, 실천했다. 뜻을 품고 쌍뜨뻬쩨르부르끄로 떠났다.
- 바씰리는 감옥에서 나왔다. 그렇지만 과거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파업을 주도한 노동자로 찍혀 다른 공장에서도 받아 주지 않았다. 일자리를 찾아 아내와 딸과 함께 쌍뜨뻬쩨르부르끄로 떠났다. 그곳에서 블라지미르와 동지들은 노동자 모임을 조직했다. 노동자와 농민은 연대해서 함께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날 바씰리는 동료 노동자의 소개로 노동자 모임에 참석했다. 블라지미르의 얘기를 들었다. “자본가는 큰 부자가 되려고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린다. 짜르와 관료들은 자본가를 보호하고 노동자를 감옥에 집어넣는다. 노동자는 짜르, 지주와 자본가에 맞서 일어서야 한다.” 블라지미르와 동지들은 노동자 학습 모임을 여러 개 조직했다. 노동자 학습 자료들을 여러 개 발행했다. 연행되고 감옥에 가도 계속해서 짜르와 부자들에게 맞서 싸웠다.
- 블라지미르와 동지들은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비밀리에 결성했다. 다가올 거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블라지미르는 23세에 불과했지만 그 조직을 이끌었다. 동지들은 그가 지적으로 뛰어나고, 계획을 잘 실천하기 때문에 별명으로 ‘늙은 사람(Old Man)’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조직 활동을 하다 붙잡혀 블라지미르는 씨비르(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 그때 씨비르(시베리아)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아주 외딴 지역이었다. 동지들이 계속 싸울 것이라는 확신으로 블라지미르는 낙담하지 않고 학습에 정진했다. 형제자매들과 동지들이 끊임없이 책을 보내 줬다. 글도 쓰면서 앞날의 투쟁을 준비하고 계획했다. ‘지역을 뛰어넘어 전국적으로 노동자를 조직해야 한다. ‘노동자 신문’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작은 냇물이 모여 강을 이룬다. 노동자 조직도 공장 단위에서, 지역 단위로 그리고 마침내 전국 단위로 커진다. 형기를 마치고 씨비르(시베리아)에서 돌아온 블라지미르는, 계획한 대로 동지들과 노동자 신문 발행을 다짐했다. 감시와 탄압이 심한 러시아에서 신문 발행이 어렵자, 블라지미르는 외국으로 망명해서 ≪이쓰끄라(불꽃)≫를 발행했다. 러시아 국내의 동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쓰끄라≫를 노동자에게 배포했다. 잡히면 감옥에 가거나 추방당했다. ≪이쓰끄라≫를 받아 보는 노동자는 점점 늘어났고 짜르와 자본가에 대한 투쟁도 그만큼 거세졌다.
- 블라지미르는 ≪이쓰끄라≫의 편집장이었다. 짜르 정부는 블라지미르의 글과 책을 불온시 했다. 노동자가 ≪이쓰끄라≫ 신문이나 블라지미르의 책을 갖고 있으면 끌고 가서 조사하고 감옥에 처넣었다. 그러자 블라지미르는 레닌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쓰끄라≫ 편집진은 러시아 노동자 조직들의 대회를 조직했다. 그 대회에 참석한 대표자들은 짜르와 부자들에 맞선 투쟁을 논의했다.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 투쟁도 논의했다. 그 대회에서 레닌이 이끄는 ≪이쓰끄라≫ 그룹은 공산주의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의 전위당을 결성했다.
- 짜르는 일본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러시아 지주와 자본가는 영토 확장을 원했다. 한편 1905년 1월 9일 쌍뜨뻬쩨르부르끄 노동자와 가족들은 짜르의 궁전으로 행진했다. 그들의 빈곤과 배고픔을 짜르에게 하소연하면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짜르는 군인들에게 사격을 명령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고 다쳤다. 그 유혈 사태로 노동자는 짜르를 더 이상 믿지 않았다. 짜르를 쫓아내야만 노동자들이 살 수 있다고 확신했다.
- 쌍뜨뻬쩨르부르끄 공장 노동자는 파업에 들어갔다. 군인들은 사격을 가했다.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장애물을 설치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바리케이드에는 붉은 깃발이 휘날렸다. 붉은색은 싸우다 흘린 노동자의 피를 상징했다. “자유 아니면 죽음” “짜르를 타도하자”는 함성이 크게 울려 퍼졌다. 다른 도시 노동자들은 연대 투쟁을 힘차게 했다. 무장된 군인들에게 노동자는 돌멩이로 저항했다. 레닌은 당원과 노동자에게 무장하라고 호소했다. 국내외에서 모금한 돈으로 무기를 구입했다. 11월에 레닌은 쌍뜨뻬쩨르부르끄에 들어와 투쟁을 지도하고 조직했다.
- 시골에도 반란의 분위기가 있었다. 이반이 말문을 열었다. “지주를 몰아내자. 지주는 땅이 많고 자식들은 돈이 넘쳐 난다. 그런데 우리 자식은 빵을 구걸한다.” 마을 주민은 도끼, 낫과 몽둥이를 움켜쥐고 지주에게 몰려갔다. 놀란 지주는 가족과 마차를 타고 줄행랑을 쳤다. 지주의 곡식은 마을 주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었고, 농민은 지주의 땅을 경작하고, 동네 아이는 지주의 자식이 놀던 정원에서 뛰어놀았다.
- 자본가와 지주는 짜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짜르의 명령으로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된 군인들이, 노동자와 농민의 봉기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몇 자루의 총으로 무장한 노동자는 도시에서, 도끼와 낫으로 무장한 농민은 시골에서, 처참하게 죽거나 감옥에 끌려갔다. 짜르의 경찰이 레닌을 수배하고 추적했다. 레닌은 동지들의 도움으로 은신처에 몸을 숨겼다. 봉기가 실패로 끝났다. 그러자 짜르, 자본가와 지주에 맞서는 싸움은 이기기 힘들다는 견해가 널리 퍼졌다. 레닌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실패한 싸움에서 배우고,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 투쟁에 집중하고, 무장 투쟁을 잘 조직하면서, 다가오는 큰 싸움을 준비하자고 주장했다.
- 1914년에 러시아와 독일은 전쟁을 했다. 이반의 아들 미쨔는 징집되어 최전선에 배치됐다. 미쨔와 러시아 병사는 독일과 터키 병사를 죽였다. 독일과 터키 병사는 러시아, 영국 그리고 프랑스 병사를 죽였다. 국적은 서로 다르지만 죽고 죽이는 병사는 모두 노동자와 농민의 아들이었다. 자본가와 지주들은 전쟁에 필요한 군수 물자와 식량을 정부에 팔면서 큰 이득을 보았다. 전쟁 중에 그들은 큰돈을 벌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 레닌은 러시아 인민들에게 ‘전쟁 중지’를 호소했다. 각국의 병사들은 모두 한 형제다. 공동의 적은 지배자, 자본가와 지주다. 그러니 총부리를 그런 적들에게 돌리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공산주의자는 레닌의 주장을 지지했다. 러시아 노동자, 농민 그리고 군인의 총부리가 짜르와 부자를 겨냥했다. 비밀리에 레닌의 호소를 담은 팜플렛이 전선에 뿌려졌다. 미쨔는 참호 속에서 팜플렛을 읽었다. 독일 병사도 읽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레닌의 말이 옳다” “레닌은 우리의 친구다.”
- 전쟁은 계속되었다. 쌍뜨뻬쩨르부르끄는 뻬뜨로그라드로 명칭이 바뀌었다. 굶주림에 시달린 인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외쳤다. “빵을 달라” “짜르를 타도하자” “짜르 전쟁을 반대한다.” 짜르는 군인들에게 시위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노동자와 농민의 아들인 군인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시위대와 함께 외쳤다. “전쟁을 끝내자” “짜르를 타도하자.” 마침내 짜르 체제가 무너졌다. 1917년 2월 혁명이었다. 자본가와 지주는 새롭게 정부를 구성하고 나서 전쟁 지지를 선언했다. 노동자와 군인은 반대했다. “지주와 자본가는 우리의 적이다. 그들이 세운 정부를 지지할 수 없다. 그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전쟁터에 나가 싸우지 않겠다.” 노동자와 군인은 그들의 대표를 선출하고 ‘노동자와 병사 대표 평의회’인 쏘비에트를 구성했다. 지주와 자본가 정부에 대항하는 조직이었다.
- 1917년 4월 레닌은 뻬뜨로그라드에 도착했다. 수많은 군중이 레닌을 환영하러 기차역에 모였다. 레닌은 군중들에게 외쳤다. “무기를 놓지 마라. 우리는 짜르를 타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타도해야 할 지주와 자본가의 부르주아 정부가 있다.” 레닌과 당의 지침대로 노동자ㆍ농민ㆍ병사들은 자본가의 공장과 지주의 땅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노동자ㆍ병사ㆍ농민 대표 평의회인 쏘비에트는 부르주아 정부에 도전했다. 부르주와 정부는 모든 공권력을 동원해 레닌을 체포하려고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레닌을 안전하게 라즐리프 호숫가에 있는 오두막으로 피신시켰다. 레닌은 동지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부르주아 정부를 타도하고 노동자와 농민의 정부를 구성할 때라고 주장했다.
- 전선에 있는 병사들은 그들의 대표를 레닌에게 보냈다. 이반의 아들 미쨔도 대표단에 있었다. 뻬뜨로그라드에 도착하자 총성이 사방에서 들렸다. “노동자와 농민 혁명 만세” “모든 권력을 쏘비에트로” “전쟁을 끝내자”라는 붉은 깃발들이 여기저기 휘날렸다. “레닌은 어디에 있어요?” 미쨔가 물었다. “쓰몰늬이로 가. 거기에서 봉기를 지휘하고 있어.” 모든 노동자와 병사들이 레닌의 지도를 따랐다. 병사는 탄약고를 접수했다. 노동자는 전화 교환국과 전보국을 접수했다. 이제 레닌이 있는 쓰몰늬이는 러시아 전역에 전화와 전보로 연결되었다. 부르주아 정부 각료들은 항복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짜르의 겨울 궁전에서 저항했다. 그러나 노동자와 병사는 그들을 손쉽게 체포했다. 위대한 10월 사회주의 혁명은 승리했다. 오랫동안 러시아 인민을 지배한 지주와 자본가 세상은 끝났다. 노동자와 농민의 쏘비에트 정부가 탄생했다. 1917년 10월 25일이었다.
- 쏘비에트 정부의 최고 지도자로 선출된 레닌은 ‘전쟁 중지와 평화 협정’을 선언했다. 지주의 땅은 농민에게 분배되었다. 공장은 노동자가 직접 관리하고 운영했다. 처음으로 노동자는 하루에 8시간만 일했다.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쏘비에트 정부는 문맹자 퇴치 운동을 열심히 했다. 도시와 시골에 수많은 학교, 도서관과 독서실이 새로 생겨났다. 쏘비에트 정부는 민중 교육에 경험이 풍부한 나제쥐다 끄루쁘쓰까야를 교육 인민위원회에 배치했다. 나제쥐다는 젊었을 때부터 레닌과 함께 활동했던 동지이자, 레닌과 함께 씨비르(시베리아) 귀양 생활을 같이했던 부인이다.
- 지주와 자본가는 사치스러웠던 과거의 삶을 그리워했다. 쏘비에트 공화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여러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쟁 자금과 무기를 제공했다. 쏘비에트 노동자와 농민은 굳게 다짐했다. “과거로 돌아가느니 죽는 게 낫다. 우리 쏘비에트 국가를 지키자.” 수많은 젊은 노동자와 농민이 조국 방어를 위해 자원입대했다. 외국의 부두 노동자는 쏘비에트와 전쟁하는 국가의 선박에 군수 물자 싣기를 거부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병사는 쏘비에트와 싸우는 것을 거부했다. 조국 방어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붉은 군대는 승리했다.
- 어느 날 레닌은 몹시 아팠다. 회복하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 1924년 1월 24일이었다. 수많은 인민이 큰 슬픔으로 장례식을 지켜봤다. 레닌이 묻힐 때 모든 공장에서는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기차와 자동차는 일 분 동안 멈췄다. 전 세계 노동자도 애도하며 흐느꼈다. 레닌은 우리 곁에 없지만 전 세계 노동자는 그를 늘 기억한다. 임종 직전에 레닌은 쏘비에트와 전 세계 노동자에게 공산주의 사회 건설에 매진하라고 당부했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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