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번역] 클라라 쩨트킨의 여성론

 

클라라 쩨트킨(Clara Zetkin)

해제: 정호영(회원), 번역: 서의윤(회원)

 

 

생산계급의 해방은 성과 인종의 구별 없이 모든 인간을 포함한다

남녀 노동자에게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 쥘 게드ㆍ칼 맑스의 프랑스 사회당 강령 초안(1880년)

 

 

[차례]

해제

– 국제혁명자후원회의 지도자 클라라 쩨트킨

– 맑스주의 혁명가들의 무슬림 세계에서의 여성해방투쟁

– 맑스주의 혁명가들의 미국 흑인해방투쟁―스코츠보로 사건

– 스코츠보로 사건으로 세상에 나온 소설 ≪앵무새 죽이기≫

– ≪강간은 강간이다≫에서 보이는 ≪앵무새 죽이기≫에 대한 인종주의적 비난

– 벨 훅스의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 비판

– 모든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끔찍했던 현대판 마녀사냥 ‘기억회복운동’

–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은 맞으나, 개인적 주장이 정치적으로 다 정당한 것은 아니다.

– 정희진의 공로―한국사회에서 모든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를 알게 해주었다.

– 정희진의 한계―정체성 정치: 남녀분리주의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여전히 래디컬 페미니스트이다.

– 생산계급의 해방은 성과 인종의 구별 없이 모든 인간을 포함한다

 

클라라 쩨트킨의 여성론

– 무슬림 여성 클럽에서(1926년)

– 스코츠보로의 흑인 청년들을 구하라(1932년)

 

 

해제

 

국제혁명자후원회의 지도자 클라라 쩨트킨

클라라 쩨트킨은 쏘비에트 러시아에 있는 동안 자주 아프고 몸이 약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병상에 있어야 했지만, 국제노동계급운동과 인종주의 및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클라라 쩨트킨이 했던 이 시절의 국제연대활동에 대해서는 언급이 잘 되지 않고 있다. 이 시절에 대한 어떤 평가가 있다고 해도 쩨트킨이 쏘련의 이해에 복무하기 위해서 러시아에 머물러 있었다는 식으로 주장을 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쩨트킨의 쏘련 시절을 서술할 때 쩨트킨이 쏘련 당국 입장에서 페미니즘의 입장에 있는 꼴론따이에 반대했다고 주장한다.1)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복원과 페미니즘 역사의 비판적 재구성을 위하여 꼴론따이가 페미니즘으로 전 사회적 시스템을 재편하려다가 볼쉐비끼에 의해 쫓겨났다고 왜곡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클라라 쩨트킨이라고 왜곡하지 않고 그냥 두겠는가? 뜨로쯔끼주의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클라라 쩨트킨과 레닌의 담화2)가 클라라 쩨트킨의 생전에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라 쩨트킨이 꼴론따이 비판을 위해서 레닌과의 담화를 조작해서 발표했다고 하는 이들이다.3) 이들의 반공선전은 그들의 조직적 업(業)이니 계속 떠들게 두고 국제혁명자후원회의 지도자 클라라 쩨트킨를 보자.

1920년 이후 쩨트킨은 제3 인터내셔날(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일원으로 러시아와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을 벌였다. 코민테른의 서기 활동과 병마로 인해 쏘련에 머무르면서 그녀는 국제혁명자후원회4)를 지도하였다. 쩨트킨은 국제혁명자후원회의 의장으로 각국에서 벌어지는 피억압 근로 대중과 노동자들에 대한 박해에 저항하는 국제캠페인을 조직하였다. 국제혁명자후원회는 코민테른에 의해 1922년 설립되어 전 세계의 계급전쟁의 정치범들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원하였다.

 

맑스주의 혁명가들의 무슬림 세계에서의 여성해방투쟁

쩨트킨은 1926년 그루지야에 있는 무슬림 여성들에게 연설을 하였다. 쏘비에트 연방 내에 있던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무슬림 여성들의 고통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이후 쏘비에트 연방이 건설이 되고 여성들의 의식화ㆍ조직화와 더불어 남성독재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혁명 직후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결될 수는 없지만 혁명이 진행되면서 남성독재의 많은 부분들이 사라졌다.

 

1928년, 20살의 여성인 자리알 할리리바(Sarial Haluiwa)는 집에서 뛰쳐나와 모임을 주선하고 여성의 성 해방을 호소했다. 그녀는 베일을 쓰지 않고 극장에 갔고 클럽에서 여성들에게 연설하였다. 그녀는 해안이나 스포츠 센터에서 수영복을 입고 다녔다. 그녀의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은 그녀에 대한 재판을 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들은 그녀를 산 채로 토막을 내었다. 이것은 1928년의 일로 러시아 사회 혁명 발발 11년 뒤에 있었던 일이다. 그녀가 살해당한 것은 여성 사이에서 성 정치 운동을 엄청나게 촉진시켰다. 그녀의 시체는 부모로부터 탈취되어 클럽에 안치되었고 소년 소녀 명예 보호단이 밤낮으로 지켰다. 많은 여성과 소녀가 클럽을 방문했다. 그녀를 살해한 사람은 처형되었고 그때 이래로 아버지나 남자 형제가 여성 운동과 청년 운동에 대해 유사한 조치를 취하는 일은 없어졌다.5)

 

국내외의 대부분 중앙아시아 이슬람 연구는 이런 성과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볼쉐비끼 정권이 중앙아시아 이슬람에 대한 정면 공격을 감행하여 이슬람 성직자들에 대한 탄압과 숙청을 하고 이슬람 학교와 단체는 국가가 운영하는 사무실로 개조되었다라고 반쏘반공적인 비판만을 한다. 이런 반쏘반공적인 시각들이 많은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지하게 만들었다. 이 페미니스트들은 1970년대 미니스커트를 입고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던 아프간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보다는 아프간 여성들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데 이루 말할 수 없는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이런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은 시리아 여성들의 삶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시리아 반군을 지지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시리아 반군을 구출해 나가는 것을 보고도 거기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6)

 

1970년대 친쏘 정권 당시의 아프가니스탄 여성들7)

 

탈리반에게 맞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8)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의 반공시각에서 벗어나서 진실을 보자. 1920년대 공산청년동맹의 젊은 여성들은 무슬림 여성들이 두르는 베일을 벗고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종종 그들의 짧게 자른 머리 주위에 붉은 색의 띠를 두르고 다른 여성들에게 그들 자신의 새로운 권리, 포악한 남편으로부터 벗어날 권리, 직업을 가질 등을 알려주기 시작했다.9) 무슬림 여성들은 남성독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기쁨으로 함께 무슬림 여성 클럽에서 인터내셔날가를 불렀다.

 

그들은 그 노래가 자신들의 인간성과 존엄을 인정하고 있다는 감정에 압도되고 감명받았다. 그들은 이 노래가 자신들이 남성과 온전히 동등하며 그로써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과 동등해짐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쩨트킨, 무슬림 여성 클럽에서.)

 

1921년 포스터.

무슬림 여성이 베일을 던지고 공산당 청년동맹에 가입하면서 나는 자유다라고 외친다. 그녀의 뒤로는 봉건적 가부장제의 구세계가 있다.

 

 

1935년 주민의 90%가 무슬림인 우즈벡의 첫 번째 여성 낙하산병

 

맑스주의 혁명가들의 미국 흑인해방투쟁―스코츠보로 사건

쩨트킨은 1932년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의해 살인혐의를 뒤집어쓰고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스코츠보로 흑인 청년들을 구하기 위해 국제적 지원을 조직했다. 쩨트킨의 스코츠보로 사건 연대연설 이후 100년이 다 되어가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은 여전히 억압받고 있다. 흑인은 미국 인구의 13% 정도를 차지하나 2020년 4월 현재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자의 상당수가 흑인이다.10) 1930년대에는 흑인들이 받는 억압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다

스코츠보로 사건 당시의 시대적 배경부터 우선 살펴보자.

 

1865년 남북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난 뒤 남부의 흑인 노예는 해방되고 투표권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형식적인 평등만을 얻었을 뿐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은 계속되었다. 남부의 흑인들은 수확의 대부분을 소작세로 바쳐야 하는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소작농 생활을 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19세기 말부터 남부에서는 철도, 학교, 기타 공공 공간에서의 인종분리 정책을 공공연히 시행하였다. 또한 까다로운 선거인등록법을 만들어 흑인들의 투표권을 사실상 박탈했다. 이러한 차별의 근저에는 두 가지 공포심리가 깔려 있었는데, 그 하나는 성(性)적인 것으로, 흑인이 백인 여자를 범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따라서 백인 여자를 강간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무고(無辜)한 흑인이 사형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또 하나의 공포심은 정치경제적인 것으로, 미국의 노동운동이 성장해갈 무렵 가난한 흑인들과 백인들이 합세하는 기미가 보이자 부유한 백인들은 서둘러 흑인들의 경제력 성장에 대한 공포심리를 자극하여 백인들을 반흑인전선으로 몰아세웠다.11)

 

스코츠보로 청년들과 변호사 사무엘 리보위츠

출처: 모르간 카운티 아카이브

 

2010년에서 2012년 사이에 잡힌 통계에 의하면 흑인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을 확률은 21배가 높다.12) 근래도 이렇게 인종차별이 심한데 1930년대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1931년 앨라배마 주의 두 백인 여자가 흑인 청년들에게 윤간을 당했다고 한 무고(誣告)사건이 미국 전역을 넘어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다. 흑인 청년 아홉 명과 백인 청년 두 명 그리고 백인 여성 두 명이 테네시 주에서 화물차를 얻어 타고 앨라배마 주로 가고 있었다. 화물열차 안에서 흑인 청년들과 백인 청년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백인 청년들은 강제로 차에서 내리게 되었다. 앨라배마에 도착하자마자 흑인 청년들은 부랑아로 체포되었고, 백인 경찰의 사주를 받은 두 백인 여성들은 흑인 청년들이 자신들을 강간했다고 무고했다. 공산당으로부터 사건 의뢰를 받은 명변호사 사무엘 리보위츠의 변호는 남부인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최종변론에서 원고측 라이트 검사는 앨라배마의 정의는 뉴욕에서 온 유대인들의 돈으로 매수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자라고 주장하였다.13) 1932년 3월 24일 앨라배마 최고 법정은 6 대 1로 8명에게는 전기의자 사형 선고, 미성년으로 12살인 윌리엄에게는 종신형을 선고했다(그들 중 가장 나이 많은 이가 스무 살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이 부끄러워하는 흑인차별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재판 참여한 배심원은 모두 백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을 배심원단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규정이 생기게 된 사건이기도 하다. 주심재판관인 앤더슨은 피고들은 적절하게 방어를 할 수 없었고 체포에서 진상조사까지 긴장되고 적대적이고 흥분된 여론의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라고 의견서를 내었다.14)

 

스코츠보르의 청년 9명을 무고한 빅토리아 프라이스(왼쪽)와

무고 이후 사실을 밝힌 루비 베이츠(오른쪽)의 1931년 사진

 

무려 20년을 끈 재판에서 흑인 청년 아홉 명은 크나큰 고통을 받았다. 이듬해인 1932년 11월 9일에 연방대법원이 피고인들이 적절한 변호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뒤집고 새 재판에 들어갈 것을 결정했다. 사건은 끝나지 않고 이들은 계속 감옥에 있었다. 앨라배마 주 경찰이 1937년 7월, 5명에 대해서는 강간혐의 기소를 취하했지만 8명 중 4명은 다시 유죄가 선고되어 사형 또는 장기징역형을 받았다. 앨라배마 법원과 리보위츠를 위시한 정부와 연방 법원의 대립은 정치적 타협에 의해서 이들을 30세가 넘어서야 가석방이 되기 시작했고 1950년에 마지막 한 명이 가석방되었다. 사건 발생 후 45년이 지난 후 유일하게 살아 있던 노리스에게 앨라배마 주지사의 사과가 발표되었다. 우리가 틀렸습니다. 이 사건은 2013년이 되어서야, 10대 흑인 9명에게 억울하게 씌워진 멍에가 82년 만에 모두 풀리면서 종결되었다. 앨라배마 주 사면가석방위원회는 21일(현지시간) 스코츠보로 청년들 사건 연루자 9명에 포함된, 헤이우드 패터슨, 찰스 윔즈, 제임스 라이트 3명에 대해 사면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그 결정도 2013년 4월 상원에서 체포시점 기준으로 80년 이상 된 사건에 대해 사후 사면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된 것에 따른 것이다.15) 물론, 스코츠보로의 청년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미국 공산당이 스코츠보로 사건을 쟁점화하여 미국과 전 세계에 알렸다. 1925년 코민테른이 계급전쟁의 죄수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설립한 국제혁명자후원회의 미국 지부로 설립된 국제노동방어(ILD, International Labor Defense)가 이 사건을 주로 맡았다. 당시 ILD는 쩨트킨의 연설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니콜라 사코, 바르틀로메오 반제리, 탐 무니, 워렌 빌링스 등의 노동운동가들을 맡았지만 스코츠보로의 흑인 청년들은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러나 ILD가 이 사건을 맡은 것은 자본주의의 인종차별을 이용한 착취를 깨부수기 위해서였다. 이 청년들은 실업자들이었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일자리를 찾아서 철도여행 중에 강간 누명을 쓰는 사법 린치를 당한 것이다.16)

실업 문제가 심각한 대공황 시기의 스코츠보로 재판 사건은 실업자 운동과 결합되어 전개되었다.17) ILD는 스코츠보로 사건만 대응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조직해나갔다. 스코츠보로 청년들의 친지들, 활동가들은 청년들과 그 어머니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당의 여성 기관지 ≪워킹 워먼≫에 계속 사설들을 싣고 어머니들은 ILD와 같이 대중 앞에서 호소할 기회들을 만들어 나갔다.

심지어 무고를 한 루비 베이츠까지 설득을 하여 무고를 취소하게 만들었다. 루비 베이츠는 성매매와 유랑죄로 경찰에 체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경찰이 시키는 대로 9명의 흑인 청년들을 무고하였다고 고백했다. 지독하게 가난한 룸펜프롤레타리아로 성매매 여성이었던 베이츠는 그나마 갖고 있는 백인종이라는 특권을 이용해서 무고를 하고 빠져 나오려고 했던 것이다. 그 베이츠가 이제는 ILD의 연설자가 되어서 스코츠보로 청년들을 방어하였다. 심지어 ≪워킹 워먼≫에 글을 실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18) 1934년에도 흑인인 에드 존슨이 백인여성을 강간했다는 무고 사건이 또 있었고 ILD는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벌였다. 이 사건에서 무고를 한 여성은 경찰에 의해서 무고를 강요받았다고 법정에서 말하게 되었다. 그녀는 스코츠보로 사건의 두 명의 무고 범죄자들인 빅토리아 프라이스, 루비 베이츠 중 이후 자신이 무고했음을 알린 루비 베이츠가 되어서 진실을 말하고 싶다고 하였다.19)

스코츠보로 재판사건에서 맑스주의자들은 흑인과 백인이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60년대 및 70년대 흑인민권운동의 도화선을 묻은 셈이 된다. 이때가 미국 공산당의 전성기였다.

클라라 쩨트킨은 국제혁명자후원회의 지도자로서 미국 흑인 평등투쟁의 국제적 연대를 확산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1932년 스코츠보로의 흑인 청년들을 구하라 연설은 그 투쟁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클라라 쩨트킨 등 여성 맑스주의 혁명가들의 투쟁은 생산계급의 해방은 성과 인종의 구별 없이 모든 인간을 포함한다라는 맑스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의해서 전개된다. 클라라 쩨트킨 또한 이 연설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모든 인종과 민족의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단결이여 영원하라! (쩨트킨, 스코츠보로의 흑인청년들을 구하라.)

 

스코츠보로 사건으로 세상에 나온 소설 ≪앵무새 죽이기≫

1930년대의 스코츠보로 사건은 이후 흑인 민권운동의 도화선을 품고 있었기에 흑인 민권운동 시기인 1960년에 소설 ≪앵무새 죽이기≫로 다시 부각되었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인종차별과 백인들의 조직보존논리에 의한 집단광기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를 지금도 상기시켜주고 있다.

종교서적을 제외하고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힌 책은 ≪앵무새 죽이기≫이다.20) ≪앵무새 죽이기≫를 제외하고 베스트셀러를 올리는 것은 파블로 피카소를 제외하고 현대미술을 말하고 비틀즈를 제외하고 현대 대중음악을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21)

이 소설은 소코츠보로 사건에 직간접적인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선 소설이 출간된 것은 1960년이지만 소설의 배경은 미국 경제대공황시기였던 1930년대 중엽이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같이 대공황 시대를 다루었다. 대공황기에 일자리를 두고 백인과 흑인이 서로 경쟁하면서 백인의 인종차별의 골은 더 깊어갔다. 1991년에 <북 오브 더 먼스 클럽>과 미국 국회도서관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책은 놀랍게도 성경 다음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바꿔 놓는 데 이바지한 책으로 꼽혔다. 많은 백인들이 가진 인종주의를 일소하는 데 분명한 기여를 한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하퍼 리의 성장사가 반영된 반(半)자전적인 소녀의 성장소설이다. 하퍼 리는 변호사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한때 법률을 공부했고 실제로 하퍼 리의 아버지는 살인죄로 기소된 흑인을 변호하기도 했다. 하퍼 리가 나고 자란 앨라배마는 미국 남부에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못난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곳이다. 이 앨라배마를 상징하는 노래는 미국 서던락의 대표적인 밴드인 레너드 스키나드의 Sweet Home Alabama이다. 닐 영이 그의 노래 Southern man과 Alabama에서 미국 남부의 인종주의와 노예제를 비판하자 여기에 분노한 레너드 스키나드는 닐 영 당신 따위는 필요 없다. … 여기는 하늘이 참 푸르고 주지사[필자―인종차별주의자 조지 왈라스]는 진실된 곳인 앨라배마야라고 답변을 한 노래이다. 레너드 스키나드의 Sweet Home Alabama가 앨라배마 백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가 된 것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앨라배마에서 처음 이름을 떨친 것, 1955년 흑인민권운동의 출발이 된 버스 보이콧 운동을 같이 생각하면 앨라배마에서 흑인 억압이 얼마나 심했던가를 알 수 있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 스냅 사진.

백인 공동체가 무고를 당한 흑인 피제소자 톰 로빈슨을 제대로 된 절차, 재판도 없이 조직보존 논리에서 집단 살인을 하려고 몰려오는 장면.

 

이 작품의 배경인 메이콤은 1930년대 미국 남부를 축소한 소우주이다. 메이콤의 백인 공동체가 흑인인 톰 로빈슨에 대한 강간 무고를 중세 마녀사냥식의 제소자 절대주의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된다. 재판에서 진실이 드러났지만 백인 공동체는 조직보존 논리에 따라 진실을 아예 외면하고 결국 톰 로빈슨을 살해했다. 제대로 된 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조직보존을 위해 흑인 남성을 처형한 것이다. 이 사건은 개인들 간에 일어난 하나의 무고사건이 아니라 진실보다는 자신들 커뮤니티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 집단 광기가 사회적 정의의 외피를 쓰고 일어난 살인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알려준다.

 

≪강간은 강간이다≫에서 보이는 ≪앵무새 죽이기≫에 대한 인종주의적 비난

백인 페미니스트인 조디 래피얼이 ≪강간은 강간이다≫에서 ≪앵무새 죽이기≫에 대해서 내리는 평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다.

 

하퍼 리가 1960년에 쓴 명작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위 이야기의 현대판으로, 이런 영향력 있고 상징적인 이야기들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에서 흑인 남성 톰 로빈슨은 젊은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혐의를 받고,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톰의 변호를 맡는다. 로빈슨은 고소인과 그녀의 아버지가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그 여성은 톰을 성적으로 유혹하려다 아버지에게 들켰고, 아버지는 그녀를 모질게 때렸다. 하퍼 리는 톰이 왼쪽 팔을 다쳐 쓰지 못하며 문제의 여성에게 그런 상처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제시해 독자들에게 톰의 무죄를 확실히 알려준다. 애티커스 핀치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톰은 유죄 판결을 받고 나중에 감옥에서 탈출하려다 죽임을 당한다. 남부에서 흑인들이 지독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가 굳이 허위 강간 신고라는 장치를 사용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이 이야기는 여성들이, 심지어 이미 폭력을 당하고 있는 여성들까지도 허위 강간 신고를 쉽게 이용한다는 생각을 널리 퍼뜨렸다.22) (강조는 인용자.)

 

≪강간은 강간이다≫는 성차별이 있는 사회에서의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 이 책은 강간을 강간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많은 수많은 사회, 문화적 요소들을 통계를 들어서 들춰낸 책이다. 여기에 대해서 이 책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조디 래피얼 같은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강간은 강간이다≫ 같은 책에서 백인 커뮤니티의 조직보존 논리에 의한 흑인 남성들에 대한 강간 무고와 린치에 대해서는 잔인하게 무시하거나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지지하는 것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비판을 한다. 조디 래피얼 같은 페미니스트들의 ≪앵무새 죽이기≫에 대한 평가는 강간죄가 역사적으로 흑인 커뮤니티를 공격하는 형사법 체계를 사용하는 정치적 무기임을 이해하지 못한 백인 인종주의의 오만에서 나온 것이다.

 

벨 훅스의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 비판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은 흑인 여성들의 고통을 모르기에 저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벨 훅스는 1981년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23)라는 제목의 책을 내고 흑인여성이 페미니즘에서 철저히 배제된 것을 고발했다. 이 저서는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이 구성해온 여성 범주에 대한 도전이다. 벨 훅스는 1984년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를 발표하여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의 가족관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현대 페미니즘에서 실시한 가족에 대한 여러 분석에는 성공적인 페미니즘 운동은 가족의 폐지에서 시작하거나 가족의 폐지로 이어진다는 함의가 담겨 있곤 했다. 가족에 대한 이런 분석은 많은 여성들, 특히 유색인 여성들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발레리 아모스와 프라티바파머는 에세이 ≪제국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도전(Challenging Imperial Feminism)≫에서, 유럽계 미국인 페미니스트들은 가족에 대한 논의에서 어떤 식으로 자민족 중심적이고 어떻게 흑인 여성들을 페미니즘 운동에서 떠나도록 만드는지 살피고 있다.) 가족을 억압적 제도로서 체험한 백인 여성운동가들도 있을 터이지만 (그들에게 가족은 심각한 학대와 착취를 체험케 한 사회구조일 것이다) 많은 흑인 여성들은 가족이란 가장 억압적이지 않은 제도인 것을 안다. 가족 구조 안에 존재하는 성차별주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며 인간다워지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은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서야 하는 바깥세상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 남편, 아내, 자녀,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단순한 식구가 아니라는 점을 생생한 경험을 통해 안다. 또한 우리는 성차별적 신념에서 비롯된 파괴적 행태가 다양한 가족 구조에 아주 많다는 점 역시 안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생활이 그 무엇보다 으뜸에 있다고 단언하고자 한다.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이들에게 가족 간의 유대는 한결같은 지원체제로서 유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가족생활을 평가절하하지 않으면서 그 안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억압에서 비롯된 폭력적인 차원을 제거하고 싶다. 페미니즘의 논의에서 가족의 가치를 폄하하는 데는 페미니즘 운동의 계급 특성이 반영된 경우가 많다. 특권계급 출신 사람들은 수많은 제도적  사회적 구조에 의존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고 지키려고 한다. 부르주아 여성들은 가족을 거부한다. 이들은 가족을 거부하면 관계 맺고, 돌봄을 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부르주아 여성들은 돌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이들이다. … 정치적으로 백인 우월주의 가부장제를 유지하려면 가정에서 위계적 통제와 강압적 권위를 지탱하는 가치들을 가족구성원에게 주입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페미니즘 운동이 가정생활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백인 우월주의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데 확실한 도움이 된다. 가족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입장의 페미니즘은 백인 우월주의 가부장제의 이익을 위하여 손쉽게 사용된다.24) (강조는 인용자.)

 

페미니즘 지성사에 접근하는 오랜 방법 중 하나는 이른바 하이픈(Hyphen) 페미니즘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정신분석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등 다망한 페미니즘을 기성의 사상 체계에 따라 분류하는 식이다.25) 이렇게 사람에 따라 끝도 없이 나오는 페미니즘들을 N명의 여성들에 의한 N개의 페미니즘이라고 한다. 분명하게 해 보자. 이들 (N개의) 페미니즘=여성해방론이 아니다. (N개의) 페미니즘이 표상하는 위대한 자매정신은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부르주아 여성의 권리 향상을 위해 만든 허상이다. 페미니즘은 인권과 동의어가 아니다. 더 나아가 여성인권과도 동의어가 아니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계급을 중심으로 N개의 입장이 있고 그 N개의 입장은 N개의 페미니즘을 만든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은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한 N개의 방법론이자 N개의 이념이라는 것을 여기서 확인시켜주고 있다.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여성 권리 향상 방법과 흑인 페미니즘의 여성 권리 향상 방법은 다르다. 백인인종주의자들의 사법 린치는 흑인 남성에 대한 공격만이 아니라 흑인공동체에 대한 공격이다. 백인 여성들의 무고로 시작된 사법 공격으로 처벌받은 남편을, 아버지를, 아들을, 오빠를, 남동생을 둔 가족은 곧바로 붕괴되었다. 이는 한 가정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흑인공동체 전체에 대한 공격들이었다. N개의 페미니즘 중 분리주의를 조장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파괴해야 될 대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억압받는 흑인커뮤니티의 가족에 대한 입장은 이들 래디컬 페미니즘과는 다르다.

한국에서 벨 훅스가 불행한 페미니즘 사상가인 이유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벨 훅스의 저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제목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벨 훅스의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가부장제 비판이 그들 자신을 향하고 있기에 벨 훅스가 실제 말하는 바에 대해서는 래디컬 페미니즘은 침묵하고 있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 정의한다. 페미니즘 정치의 취지와 방향에 대해서는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페미니즘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전략만큼은 다양해야 한다.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천차만별이므로 각자의 삶에 곧장 말을 건네는 페미니즘 이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26) 벨 훅스의 이 말은 젠더만을 앞세우는 한 가지 길을 주장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야한다. 이 말이 반여성적인 부르주아 래디칼 페미니즘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여성이라면 어떠한 계급적 입장에서 말하든지 다 옳다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벨 훅스는 위 주장에 이어서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흑인 여성 페미니즘 사상가로서 나는 페미니즘 투쟁이 흑인의 삶을 개선하는 데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모든 흑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구체적인 관심사와 전략을 찾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흑인의 삶에서의 젠더 역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선구적인 급진적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에게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가부장제 내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끔 젠더와 인종, 계급의 관점에서 각자의 삶을 용감하게 되돌아보라고 격려한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젠더가 어떤 이의 상황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라는 그릇된 전제를 고수했다. 이러한 아집을 깨뜨리는 일도 페미니즘 정치를 위한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덕분에 여성들은 인종과 계급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여성운동이 대중화되지 못했던 과정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27) (강조는 인용자.)

 

헤스터 아이젠스타인은 1983년 ≪현대 페미니즘 사상≫에서 수잔 브라운밀러의 강간 위협이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에 봉사한다는 가설에 대한 비판을 한다. 흑인 여성작가들은 브라운밀러의 강간에 대한 인종주의적 설명이 복잡한 역사를 과도하게 단순화시켰다고 날카로운 비판을 한다. 브라운밀러 등의 페미니스트들은 강간죄가 역사적으로 흑인 커뮤니티를 공격하는 형사법 체계를 사용하는 정치적 무기임을 이해하지 못한다.28) 헤스터 아이젠스타인은 2010년에도 브라운밀러가 강간이 여성의 인성에 대한 범죄라고 한 것은 옳지만, 흑인 남성에 대한 강간 고발에 역사적인 심각함이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남부에서 흑인들의 경제기반이 좋아지면서 흑인들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면서 형사처벌을 이용한 린치가 일어났지만 언론들은 남부 백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린치는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29)

 

ILD의 집행사무장인 애나 대몬은 당의 기관지 ≪워킹 워먼≫에서 스코츠보로 청년들의 죽음은 또 다른 자식들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종은 또 다른 계급 정체성이고 모든 성과 모든 인종을 포함하는 계급적 단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애나 대몬은 스코츠보로 청년들이 죽게 되면 흑백, 고용된 이와 실업자, 이민자, 여성, 늙은 노동자, 젊은 노동자 등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에 대한 테러가 이어질 것이라고 하였다.30) 국가 권력이 흑인에게 무고죄를 조작해서 흑인공동체를 공격할 수 있다면 흑인공동체만 공격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상황은 이제 누구라도 국가 권력에 의해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산당 기관지 ≪워킹 워먼≫ 1934년 8월호에서는 스코츠보로 청년들의 어머니 네 명의 사진을 담은 사설인 그들을 생각하며를 내보냈다. 이 사설은 이 어머니들의 고난은 당신들의 고난이고, 그들의 대의는 당신들의 대의이다라고 알려주었다.

 

스코츠보로 청년들의 어머니.

출처: 미국 공산당 여성 대상 기관지 ≪워킹 워먼≫.

 

백인-제국주의-가부장제 페미니즘이 흑인여성들로 하여금 결국 흑인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게 만들었다.

 

비록 우리가 페미니스트이고 레즈비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진보적인 흑인 남성에게 연대감을 느낀다. 백인 여성 분리주의자들이 요구하는 바, 우리와 흑인 남성 간의 분리를 옹호하지 않는다. 흑인으로서 우리가 처한 상황은 인종이라는 이름 아래 단결하기를 요구한다. 물론 백인 여성이라면 백인 남성과 단결할 필요가 없다. 백인 남성과 인종 우월주의자로서 부정적인 연대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는 흑인 남성과 함께 인종차별에 맞선다. 동시에 우리는 성차별에 맞서 남성과 싸운다.

우리는 모든 억압받는 이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가부장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이익이 사장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노동하는 이들 상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이 조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다. 우리는 사회주의자다. … 우리는 남성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화해 온 것 그들이 무엇을 지지 했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 여성들을 어떻게 억압했는지에 질색했고, 이를 비판하는 데 힘써 왔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야말로 남성성이며, 그들 본질이며, 생물학적 남성성이 그들 본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을 것이다. 흑인 여성으로서 우리는 생물학적 결정주의가 특정한 정치학을 위한 특수하고 위험하며 반동적인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31) (강조는 인용자.)

 

벨 훅스가 스스로를 급진적 페미니스트라 칭하면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철폐를 외치는 것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강령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철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래디컬 페미니즘ㆍ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가부장제는 생물학적 결정주의가 특정한 정치학을 위한 특수하고 위험하며 반동적인 기반으로 쓰이고 있다. 이들의 가부장제 개념은 여성이 생물학적 이유로 태초부터 남성으로부터 억압받고 있다는 몰역사적인 개념이다. 남성들이 생물학적 이유로 태초부터 여성들을 억압해왔다면 여성해방의 갈 길은 남성들을 제거하고 여성들만 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뿐이다. 흑인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 같은 이들이 주장하는 가부장제와 래디컬 페미니즘ㆍ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가부장제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벨 훅스는 스스로를 급진적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60년대 말부터 시작된 급진 페미니즘과는 궤를 완전히 다르게 하고 있다. 벨 훅스에게 가부장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제도화된 성차별주의를 의미하며, 이는 모든 성이 같이 극복해야 하는 내면화된 성차별의식으로서의 가부장제이다. 벨 훅스는 페미니스트 정책의 옹호자들이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가 지속되는 책임을 모두 남성에게만 돌리는 어떤 미사여구에도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32) 여성 정체성 정치인 1세대 페미니즘 및 2세대 페니미즘과 맑스주의는 대척점에 있었지만, 흑인 페미니즘이 등장하고서야 맑스주의 여성론과 페미니즘이 만날 길이 처음 열렸다.

 

모든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끔찍했던 현대판 마녀사냥 ‘기억회복운동’

래디컬 페미니즘이 모든 여성이 강간당했다고 암시하는 것은 모든 여성이 느끼는 공포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영화배우인 나탈리 포트만은 한 인터뷰에서 모든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에 대해서 알리기 위해서 적절하게 레베카 솔닛의 다음 말을 인용했다.

 

소수의 남자들만이 괴롭힌다. 그러나 모든 여성은 폭력과 공격을 두려워한다. 이것은 테러와 같은 효과이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나쁜 짓을 한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밤에 거리를 혼자 걷는 것을 두려워한다. 모든 이들이 온라인 포스팅으로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려는 언어의 행렬을 만들어 버리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33)

 

래디컬 페미니즘이 모든 남성이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사회 일부에서 설득력을 가진 것은 여성들이 가진 공포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의 테러범이 있고 모든 사람들이 공포를 느낀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테러범으로 볼 수 없듯이, 소수의 남자들이 성범죄자이고 모든 여성이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해서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볼 때 일어나는 일들을 보자. 어떤 조사에 들어가야 하는 사건이 있다. 그러나 공포를 강조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라면 조사가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이 개별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건들의 기사들을 모은 후 그 개별 사건도 유죄라는 증거로 제시하면 된다. 래디칼 페미니스트들에게 왜 기사들을 제출했냐고 물으면 너무나 공포스럽다. 이렇게 많은 범죄들이 있었다. 이 사건도 같은 사건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논리는 없다. 공포만을 반복해서 강조할 뿐이다.

여성들이 가진 공포와 현실적인 위험이 그대로 일치하지 않지만, 여성들이 공포를 극복하려다가 생긴 비극인 기억회복운동을 보자.34) 1980-90년대, 미국에서 우울증, 불면증, 거식증, 성기능 장애 등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시달리던 많은 여성들이 심리치료사를 찾아가서 치료를 위해 억압된 기억을 꺼냈다. 꺼낸 기억 속에는 어린 시절 부모나 친척에게 성추행을 당한 기억들이 있어서 기억 속의 가해자를 고발하였다. 한 통계에 의하면, 1988년 이후 100만 명 이상이 어린 시절 성추행 기억을 회복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심리치료가 야기한 오늘날의 전형적인 이중구속(double bind)은 부인(denial) 그 자체가 부인의 증거라는 것이다. 곧 결백을 주장하는 것이 사실상 유죄의 증거가 돼버리는 셈이다.35) 피제소자가 기억을 억압했다면 유죄이고, 부인(denial) 역시 유죄로 간주되었다.36) 뭘 해도 피제소자는 자신의 죄를 입증하는 쪽으로 왜곡되었다.37) 한 여성이 자신은 부모 모두에게 성추행 당한 기억을 회복했다고 말한 후 이틀 뒤 그 어머니는 벼랑으로 차를 몰아 자살을 했다. 이제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이 여성의 남은 인생에서 이 일이 끼칠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38) 물적 증거는 하나도 없이 수많은 부모들이 체포되어 10년가량 형을 살았다.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 현대판 마녀사냥이었다.39) 엘렌 바스와 로라 데이비스가 쓴 ≪치유할 용기≫란 이 사태를 가속화시킨 책은 당신이 성추행당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리고 당신의 삶이 그런 징후들을 보인다면, 당신은 성추행을 당한 것이다라고 치유방법을 알려주었다.40) 심리치료사 등 임상전문가들은 환자들이 떠올린 기억을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기억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기억이 최면과 암시 등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기억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과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부모들이 재단까지 설립해가며 역으로 심리치료사들을 고발하고, 이와 더불어 심리치료사들이 되찾게 해준 기억이 거짓이었음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제소자들의 기억에 대한 진술들이 피해를 강조해가면서 바뀌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를 입증할 증인도 있었지만 기억회복운동은 계속 진행이 되었다.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상흔도 성적 학대도 찾을 수 없었다.41) 제소자의 만들어진 기억, 계속 바뀌는 기억에 대한 진술만을 믿는 기억회복운동이 수많은 가정을 파괴시키고 숱한 사회적 살인들을 한 후에야 기억회복운동은 법적으로 제동이 걸렸다. 피해자들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주장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이제 사법기관이 아니라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몫이 되었다.42)

기억회복운동은 거짓기억증후군이라는 말과 함께 여러 책과 문헌에 등장한다. 사실 심리치료사들의 시조인 프로이트조차도 환자의 기억이 환상인지 실제 기억인지 알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을 했다. 프로이트는 기억과 억압의 관계에서 억압을 의도적 행위로 보았지만, 기억회복운동을 진행했던 심리치료사들은 억압을 무의식적 방어기제라는 믿음을 가지고 성추행을 당한 기억은 무의식적으로 억눌린 것이 나왔다고 주장하였다. 프로이트는 복잡한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억압을 알레고리로 사용했지만 기억회복운동은 기억을 문자 그대로의 역사적 진실이라고 주장하였다.43) ≪타임≫지가 보도했던 것처럼 경험은 기억에서 끌어낼 때 변할 수 있다. 기억은 재생이 아니라 재구성 행위이다.44) 기억은 사실과 허구가 뒤얽힌 창조적인 메커니즘으로 인색해야 한다.45) 기억회복운동은 사실에 근거한 역사적 진실심리적 진실46)을 전혀 구별하지 않고 피제소자들인 부모들을 처벌해 나갔다. 페미니스트들에게 가부장적 광기47)라고 불리면서 단체나 다중의 위력에 의한 협박을 받던, 즉 2차 가해자로 공격을 받던 여성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불안정한가 알려준다. 우리 마음이 맑은 물이 담긴 그릇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각각의 기억은 그 물에 뒤섞여 들어가는 한 스푼의 우유라고 보고요. 모든 성인의 마음속에는 이처럼 뿌연 수많은 기억들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누가 거기서 물과 우유를 따로 구분해낼 수 있을까요?48) 또 기억이라는 것은 분필과 지우개로 끊임없이 썼다 지웠다 하는 변화무쌍한 칠판과 같다고도 한다. 어린 시절의 홀로코스트 체험을 책으로 펴내 일약 사회 유명인사가 되었으나 그 모든 기억이 거짓으로 드러난 빌코미르스키의 사례도 있다.49)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우울증, 불면증, 거식증, 성기능 장애 등)에 시달리던 많은 여성들이 삶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심리치료를 했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기억 속의 가해자를 현실의 가해자라고 믿고 자신의 부모를 고발하여 형을 살게 만든 것이다. 기억회복운동은 법정에서 심리치료 중 생긴 기억이 더 이상 법정 증거가 되기 전까지 조직보존논리와 경제적 동기인 치료과실에 의한 소송의 두려움, 피고 측에 섰다가는 아동보호국과 볼 일이 없었기에 계속 수많은 가정들을 파괴해나갔다.50) 심지어 이들은 조직보존논리에 의해 심리치료 상담과정에서 성추행에 대한 자신의 기억이 억압된 기억이 아니라 거짓 기억임을 알게 된 사람들까지도 철회자들(retractor)라 부르고 단체나 다중의 위력에 의한 협박으로 공격했다.51) 기억회복운동이 제소자의 만들어진 기억, 계속 바뀌는 기억에 대한 진술만을 믿어 수많은 가정을 파괴했다는 것을 사회 전체가 알게 된 후에야 기억회복운동에 제동이 걸렸다. 어머니로부터도 성추행을 당했다는 제소를 한 여성들도 많았지만 제소 대상은 아버지가 대부분이었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남성은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잘못된 전제와 래디컬 페미니스트 드워킨이 이스라엘로부터 배운 생존자/피해자 권력 휘두르기52)가 기억회복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제소한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좀 더 낫게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전제와 과정은 부모를 사회적으로 살해해버렸다. 기억회복운동은 잘못 이해된 피해자 중심주의 즉 ① 피해자에게 사건에 대한 판단 기준 전체를 위임, ② 처벌의 수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 ③ 피해자가 경험에 대한 독점적 해석을 주장53)하는 제소자 절대주의에 의해 돌아갔다. 기억회복운동은 제소자의 경험의 독점적 해석과 제소자의 발언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종교적 믿음과 같이 요구하였기에 사건에 대한 논의 자체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들 제소자들은 부모들을 10여 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하고 손해배상으로 부모의 재산을 뺏었다. 이들은 부모를 무고함으로써 자신의 부모들을 사회적으로 살해하였다. 어떤 제소자들은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더 파괴시켜버렸다.

≪우리 기억은 진짜일까≫를 옮긴 정준형은 진짜 피해자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썼다.

 

거짓기억의 입증에 앞장섰던 과학자가 쓴 이 책이 고발당한 사람들의 입장에 치우친 것은 부득이한 일이었다. 본의 아니게 심리치료사들과 여성운동가들의 적이 되어야 했던 저자의 고뇌와 우려가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실제로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했고 그 기억을 평생 잊은 적 없는 진짜 피해자들이 오해 받거나 상처 받을까봐 저자는 걱정한다. 역자 또한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달리 아동 성추행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도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이 책을 읽을지도 모를 진짜 피해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기억 회복 운동은 반성폭력 운동도 페미니즘 운동도 아니라는 점을. 과학적 진실을 외면하거나 자기성찰이 없는 운동은 오히려 그들이 보호하려는 대상에게 해가 될 뿐이라는 사실이야말로 기억 회복 운동이 남긴 또 하나의 교훈일 것이다.54) (강조는 인용자.)

 

페미니스트들은 기억회복운동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당신 같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 기억을 문제 삼는다면, 지난 20년 동안 페미니즘 운동이 얻어낸 성과가 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라고 공격하였다.55) 여성 심리학자 캐롤 태브리스는 최면으로 불러낸 기억이 잘못될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치료사 출신들은 조직보조논리에 의해서 캐롤 태브리스를 2차 가해자로 지목하고 그녀를 강간자, 소아성애자로서 분류하여 단체나 다중에 의한 협박을 하였지만 태브리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책의 저자들은 모두가 자기 책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서로의 책에 의존한다. 그들은 모두 자기 책의 독자들에게 서로의 책을 추천하고 권한다. 그들 중 하나가 지어낸 통계―예컨대 전체 여성의 반 이상이 어린 시절 성적인 트라우마를 겪었다는 식의―를 제시하면, 이 수치는 야구카드처럼 돌고 돌아 모든 책에 인용되고 결국에는 사실로 대접받는다. 그릇된 정보, 잘못된 통계, 확인되지 않은 주장들이 이처럼 자족적인 사이클을 이루고 있다.56) (강조는 인용자.)

 

모든 가정에서 성추행을 찾아내고 존재하지도 않는 기억을 대량으로 찍어내려는 지금의 이 슬프고 파괴적인 충동이 새로운 위험한 문제들을 낳을까 두렵다. … 우리 정부의 어떤 정책을 비판한다고 해서 반미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듯, 내가 이런 우려를 제기한다고 해서 반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이론의 무분별한 수용은 여성들에게도, 페미니즘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여성의 건강한 삶과 지위 향상을 원한다면, 회복 운동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알아야겠지만 일부에게는 얼마나 해가 되는지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고의가 아니라 해도, 회복 운동이 전 국가적인 성적 히스테리 분위기를 조성하고, 부모들이 제 아이를 끌어안고 뽀뽀하기도 두렵게 만들고(집안에서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일은 물론이고), 성추행이 아니라 정상적인 실수를 저질렀을 뿐인 부모들이 무자비한 비난을 받게 만든다면, 당연히 걱정할 일이 아닌가?57) (강조는 인용자.)

 

제국주의의 정신적 식민지인 한국에서는 미 제국에서 진행된 페미니즘의 궤적이 그대로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남녀 성차별 철폐에 많은 기여를 하기도 했지만 부정적인 것들도 있다. 2020년 한국에서 일어난 트랜스젠더 여성이 래디컬 페미니스트 단체나 다중의 위력에 의한 협박으로 입학을 못한 사건은 1992년 미국 미시간 여성음악축제의 더 비극적인 확대복사판이었다.58) 지금 래디컬 페미니즘을 여성운동 내에서 주변화시키지 못하면 트랜스젠더 여성이 숙대에 입학 못한 비극들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못하게 되면, 한국에서도 미 제국에서 일어났던 제소자 절대주의, 잘못된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의 오남용59)에 기반을 둔 현대판 마녀사냥인 기억회복운동 같은 비극이 일어나서 수많은 가정과 개인들이 파괴될 수도 있다.

기억회복운동을 주도한 반지성주의 래디컬 페미니즘이 공포를 과장해서 남녀 간의 갈등을 부추기면서 세력을 불리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강화에만 도움이 될 뿐이다. 여성들이 성차별적 사회에서 느끼는 공포를 없애기 위해서는 피억압계급의 모든 성들이 협력해서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 사회를 바꾸는 방법이 래디컬 페미니즘이 되어서는 안 된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개별 여성이 극단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기준으로 하여 처벌하려고 한다. 눈이 잠시 마주치는 순간 나는 살해되는 공포를 느끼었다. 저 자를 살해죄로 처벌하라. 눈이 마주친 것으로 살해된 것처럼 느낄 정도로 불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살해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기억회복운동은 사실에 근거한 역사적 진실심리적 진실이 구별되어야 된다는 사회적 비판을 받고 나서야 그 마녀사냥을 멈출 수가 있었다. 실재 존재하는 공포와 이런 저런 이유로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공포는 구분되어야 한다. 그렇게 경중도 없이 개인이 느끼는 공포만으로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잘못된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의 오남용 등으로 가해지목인을 처벌하려고 한다면, 게다가 그 개인이 속한 조직이 조직보존 논리에서 그 가해지목인을 공개처형 하자고 같이 날뛴다면? 그것이 바로 중세의 마녀사냥이다. 이런 주관적 감정들에 기반하여 피해호소인의 공포가 없어질 때까지 가해지목인을 처벌하는 것을 제도화하면, 국가 권력이 주관적 감정을 기준으로 개개인의 삶에 언제라도 개입할 수 있게 된다. 근대의 성과인 공화주의는 파괴되고 마녀사냥이 끝도 없이 펼쳐지던 중세로 돌아가게 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은 맞으나, 개인적 주장이 정치적으로 다 정당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60) 성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고통은 사회구조와 맞물려서 생겨나고 배가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은 맞으나, 개인적 주장이 정치적으로 다 정당한 것은 아니다. 정치적인 것을 개인적 감정으로 다 풀 수는 없다. 개인이 겪는 고통이 사회와 맞물려서 생기는 것이더라도 개인이 느끼는 감정적 고통의 해소를 문제 해결로 보아서는 안 된다. 정치적인 것을 개인적으로 푸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힘에만 의거해서 싸우는 봉건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떠한 개인이라도 그 개인의 감정적 고통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맥락을 고려하는 정당한 과정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처럼 개인의 공포만을 강조하면, 실제 사건의 경중과 관계없이 그 공포가 없어질 때까지 그 남성을 처벌해야 한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단체나 다중의 위력에 의한 협박으로 입학을 못 하게 하는 처벌을 내릴 때 그들 주장의 근거는 자기들의 공포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래디컬 페미니즘을 사회에 실현하고자 하는 래디컬 페미니즘 조직이 이런 사고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기억회복운동처럼 그 폐해가 사회에 알려지게 되면 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즘ㆍ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가부장제는 남성을 언제나 가해자로 여성을 언제나 피해자로 본다. 이들의 가부장제 개념은 남녀 간의 갈등을 영원한 것으로 본다. 래디컬 페니미즘의 이러한 무지막지한 흑백논리에는 개별 인간이 없다. 이 흑백논리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것은 실제로 피해자이다. ≪강간은 강간이다≫를 쓴 조디 래피얼조차도 남성을 언제나 가해자로 여성을 언제나 피해자로 보는 것을 다음과 같이 경계한다.

 

모든 여성이 강간당했음을 암시하는 것은 실제 강간 피해자에게 모욕적일 뿐 아니라 강간의 만연과 끔찍한 실상을 오히려 사소화한다.61)

 

정희진의 공로

― 한국사회에서 모든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를 알게 해주었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 2005년 출간된 후 한국 사회는 정희진으로 인해서 모든 여성들이 가지는 공포를 알게 되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다음과 같은 비판은 한국사회가 성차별적 의식을 바꾸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차별은 인권의 시각에서 정의되거나 문제화되지 않고, 가족주의, 민족주의 등 남성 공동체의 관점과 이해에 따라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 억압에 반대하는 이유조차 여성 인권을 중심으로 논해지지 않아,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여아 낙태는 여아의 생명권과 어머니 여성의 건강에 대한 염려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성비 불균형으로 남자들이 장가 못 간다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정신대 문제는 피해 여성의 인권이 아니라 민족의 수치를 중심으로만 논의된다. 가정폭력의 해결책 역시 피해 여성의 공포나 고통의 해결보다는, 남성 중심적 가족 유지를 더 강조해 왔다. 문제의 원인이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성폭력인가 하는 성폭력 정의(定義)의 배제와 포함의 원리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반(反)성폭력 담론이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계 가족 보호라는 남성 공동체의 이해에 더 기능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96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 여성(성 전환 여성)을 남성 3명이 길거리에서 승용차로 납치하여 집단 강간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를 여성이라고 볼 수 없고, 생식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제1심과 제2심 판결에 이어 무죄를 판결했다. 이 사건은 성폭력의 정의뿐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의 시각에 부합하는 진짜 여성은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62) (강조는 인용자.)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은 한국 지성사와 여성운동사에서 여성의 고통을 알리는 데 시금석이 된 책이다. 그리고 위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희진은 현재 한국의 주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처럼 트랜스젠더 여성을 배제하지도 않는다.

 

 

여성의 당이 삼성 재벌가 호텔 신라 사장 이부진에게 보낸 공개 기부요청. 5만 4천 원은 애플망빙(애플망고빙수)의 가격이다.

 

2020년 총선에 나온 여성의 당은 재벌가의 여성 경영자들에게 기부를 요청하면서 여성의 당의 적은 남성이고, 모든 여성은 하나의 계급으로 본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2012년 새누리당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이 된 재벌 좌파 김성주가 여성 경력 단절에 대해서 애 젖 먹이면서 주방에 앉아서 웰빙 진생쿠키를 만들었다고 구글에 올리면 전세계에서 주문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젊은이들이 이렇게 어마무지한 가상세계가 있는데도 수동적으로 대응하느냐, 고학력 여성이 솥뚜껑 운전만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막말을 쏟아 낼 때,63) 정희진은 이 땅의 아이 엄마들은 재벌가 출신의 전문 경영인이자 유력 후보의 선거 대책위원장으로부터 게으름, 창의력 없음, 수동적이라는 요지의 훈계를 들었다라면서 여성인 김성주 위원장의 계급 차별주의를 비판했다.64) 정희진이 2012년에 재벌 여성을 비판한 것은 그때에도 여성 내부에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희진의 의식은 여성의 당의 몰계급적인 의식과는 차이가 있다. 조국 사태를 맞이해서도 정희진은 내 주변의 좌파 페미니스트들과 다르게 남한에는 좌우는 없고 위아래는 확실한 새로운 신분사회가 온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정희진은 안다. 여성들 내부에도 계급이 존재함을…

 

내 주변의 좌파, 페미니스트들은 대개 자녀를 외국에서 교육시키거나 고급 대안학교에 보낸다. 강남좌파는 여기에 정치적 올바름과 인권 의식까지 갖춘 반가운 존재들이다. 조국교수는 본의든 아니든, 사실이든 아니든, 그 반가운 존재의 상징이었고 우리는 그를 대한민국의 간판으로 욕망했다. 내가 조국이 될 수는 없지만, 그가 우리를 대표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 엘리트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고, 그것이 조국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 그들은 젠더 문제, 학벌주의, 자산 증식 등에 관한 한, 의식과 삶의 양 측면에서 보수 엘리트와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의 보수는 북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분단 체제의 부산물일 뿐 정치 세력이 아니다. 한국의 진보는 민주주의 세력을 의미한다기보다 근대사회가 형성되던 당시의 중상주의(발전주의)자들에 가깝다. 여기에 피식민 경험으로 인한 콤플렉스, 부국강병에 대한 동경이 뒤섞여 국가주의적 경향 역시 강하다. 아이티(IT) 산업에 대한 좌우를 초월한 열광, 그에 대한 성찰의 부재는 이를 잘 보여준다.65)

 

이렇게 정희진은 세상에는 계급이 있고, 여성들 내부에도 계급이 존재함을 알고 있지만 이 계급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거의 없다. 아니 포기했다.

 

정희진의 한계

― 정체성 정치: 남녀분리주의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여전히 래디컬 페미니스트이다

정희진은 이스라엘에게서 배운 생존자/피해자 권력 휘두르기를 한국 여성운동에 도입시킨 래디컬 페미니즘의 이념적 지도자이다.66) 정희진은 이제는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즘과는 거리를 분명히 하려고 하지만 정희진은 여전히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의 남녀 분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희진은 너희도 당해보아야 알게 된다는 주장을 하는데 래디컬 페미니즘의 남녀분리주의 입장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방사능에 오염된 고기, 가기 싫은 군대, 환경 오염된 미군기지, … 해결할 수 없다면 다 같이 겪어야 한다. 그래야 개선된다. 자기 집에 물난리가 날 때, 기름이 유출될 때, 자식이 군대에서 자살할 때, 세월호에 탔을 때 권력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불행하지만 이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다.

우리는 착각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모두가 혹은 다수가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배제된 사람이 없는 사회다.67) (강조는 인용자.)

 

부르주아 지배계급은 방사능에 오염된 고기를 먹거나 가기 싫은 군대를 가지 않는다. 물난리를 당하지도 않고 세월호에 탄 자식이 수장되는 비극을 우리와 같이 겪지 않는다. 정희진이 지배계급이 당하지 않는 비극들을 다 같이 겪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왜일까? 정희진이 이런 비극들은 다 같이 겪어 보야 한다고 말하는 대상에서 계급은 없다. 그 대상은 남성과 여성으로만 구분되는 우리이다. 우리들 중 생물학적 남성들, 부르주아 계급을 제외한 남성들은 모두 저런 비극을 언제라도 당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피지배계급으로 살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을 제외한 모든 남성들이 저런 비극을 겪는 것만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정희진은 남녀 분리주의에 기반을 둔 래디컬 페미니즘의 이념적 지도자에서 양성을 넘어서는 3세대 페미니즘의 지도자로 넘어가려고 한다. 정희진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호소도 하고 있다. 정희진 또한 일명 넷페미, 트페미라 불리는 이들에게 공격을 실제로 받기도 한다.

 

이 중에서 트위터를 하시는 분? 생각 보다 적은 것 같다. 트위터에서의 저의 평판은 아는가? … 소통이 안 되는 사회니 각자 살아야지 하는. 뭐 소식을 공유하고 하지 말고… 제 주장은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끼리, 레즈는 레즈끼리 살자고, 정체성의 정치를 하는 사람들끼리 살자고 했더니 그러면 진짜 더 싸움된다고 한다. 친구가. 제가 부탁 한 가지 드려도 될까요? 최근에 트위터 공포증이 생겼다. 너무 무섭다. 말과 글의 검열이 이루 말할 수가 없고, 내가 보기와 달리 소심하고 겁이 많다. 비판받는 건 좋은데 최소한 팩트가 맞거나, 말이 되면 환영이다. 이렇지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억울한 심정이 든다. … 제가 여기서 어떤 맥락의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서는 맞았는데 밖에서 옮기면 이상한 이야기가 되기 쉽다. 이 강의에 대해서 안에서 얘기하는 게 좋지만 트위터로 옮겨지면.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서평을 썼는데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다만 좋은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사투하는 사람. 페미니스트가 되기는 얼마나 힘든 과정인가 이라는 얘기를 썼다. 트위터에 조리돌림을 당했다. 정희진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선언을 했다라는 등.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68)

 

정희진은 이들과 거리를 이렇게 두면서 제3세대 페미니즘의 이념적 지도자로서 3세대 페미니즘을 이끄는 글들을 계속 쓰고 있다. 2017년에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책까지 엮어서 내면서 남성과 여성은 문화적 구성물이며 규범의 산물이지 생물학적 분류가 아니다라고 제3세대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였다.69) 3세대 페미니즘이 내세우는 메타젠더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메타젠더는 젠더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고, 인식론으로서 메타젠더는 남녀를 벗어난다. 메타젠더는 젠더의 필연적 결과이다. 젠더를 가시화하는 작업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여성주의)로 인도하지만, 성별이 그 자체만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없다. 어떤 사회 현상도, 인간 본성도, 한 가지 요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70)

 

그러나 정희진의 3세대 페미니즘에는 계급적 입장은 없다. 그 때문에 부르주아 실증주의를 벗어나지 못했기에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벗어나려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하더라도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현실에서 평등은 남녀 모두에게 윈윈 게임이 될 수 없다. 여성의 지위 변화가 남성의 지위 변화로 연결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다른 계급과 인종의 여성이 기존 여성의 자리를 대체한다. 중산층 가정에서 기혼 여성의 경제력과 교육 수준이 향상되었다고 해도, 이것이 남편의 가사 노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현실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다시피, 가난한 나라의 여성이 가사 노동자로 부자 나라에 이주하는 이주의 여성화이다. 평등해지고 싶은데, 남성들 중 누구와 평등해질 것인가 역시 미봉된 문제다. 누구와 평등해질 것인가. 노숙인, 빈민, 알코올 중독자와 평등해지고 싶은 여성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 양성평등은 남성 중산층과의 평등을 의미한다. 한편, 이러한 평등이 현실화되면 남성의 반발은 필연적이다. 즉, 남성 사회에서 양성평등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논리, 남성들끼리도 경쟁하기 힘든 판에 여자들까지 끼어든다는 이데올로기가 힘을 얻게 되고 여성에 대한 혐오로까지 발전한다. 이처럼 양성평등은 갈등, 대립 논리일 수밖에 없다. 남성 집단 전체 대(對) 여성 집단 전체의 평등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평등 논의가 전개되면, 소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동원이나 포섭의 형태를 띤다. 물론, 그마저도 간택의 형식을 띤다. 기존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 없는 평등은 실현 여부 이전에 실현의 의미가 없다. 더 나쁜 세상 만들기에 여성도 동참할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71) (강조는 인용자.)

 

정희진은 한국 3세대 페미니즘의 이념적 지도자로 나섰지만 여전히 남성 집단 전체 대 여성 집단 전체의 평등은 불가능하다는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한 걸음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정희진은 물론 기존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유리천장 걷어내기의 한계를 비판한다. 정희진은 기혼여성의 경제력이 향상되더라도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가난한 나라의 여성이 그 기혼여성의 가사노동을 대신할 것을 안다. 그러나…

고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기 전 화력 발전소의 모든 간부들이 여성이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발전소의 간부들이 여성이었더라도 사고는 났을 것이다. 마사회 경영진들이 모두 여자였더라면 조교사들이 기수들이 자살하지 않았을까? 이를 생각해보면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는 뚜렷하다. 그러나 정희진이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있더라도 여전히 남성 집단 전체 대 여성 집단 전체의 평등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주장하는 한 정희진은 결국은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고 외치면서 부르주아 여성들의 참정권만을 획득하기 원했던 1세대 부르주아적 사고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1세대 페미니즘의 남성은 여성의 적이라는 전제를 증폭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정희진의 이 한계를 알기 위해서는 페미니즘 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좋을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스트ㆍ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미국에서의 여성의 권리≫에서 1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실패를 이렇게 말한다. 참정권 운동이 해산될 때 여성의 권리 운동은 죽었다. 남편은 표를 잃은 것이 아니라 하나를 더 얻었고 여성은 아내로서 투표할 뿐이라고 한다. 여성운동이 참정권을 얻기 위해서 타협하면서 그 전투성을 잃었고 1차 대전이 나자 애국심을 보여주면서 참정권을 요구하였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여성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내세울 것을 주장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1. 정치적 편의를 위해서 기본 원칙을 타협하지 말 것.

2. 특정 자유에 대한 선동은 이러한 자유를 완전히 활용하는 데 필요한 의식의 예비 상승 없이는 가치가 없다.

3.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다음 다른 억압 그룹과 동맹을 맺는다. 전선에 합류하기 전에 먼저 혁명의 파이 한 조각을 먼저 요구할 것.72)

 

1세대 페미니즘은 부르주아 페미니즘이었다. 영국에서 자유당은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는 구호를 내걸고 부르주아 여성 참정권만을 요구하는 1세대 페미니스트들을 지원했다. 자유당이 부르주아 여성들로부터 표를 얻기 위해서 참정권 운동을 지원한 건 바로 아내의 표를 행사하려는 남편의 마음이었다. 1차 대전 시의 1세대 페미니즘은 참정권 운동을 하는 부르주아 여성과 기존 정치판의 부르주아 남성들의 잔치 즉 애국적인 페미니스트 아내와 그를 지원하는 남편의 이미지로 돌아갔다.

1968년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몰계급적 입장이었기에 1세대 페미니즘의 한계를 부르주아 여성 운동의 한계로 보지 못하고, 1세대 페미니즘이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비판하였다. 여성을 정치의제화 하기 즉 기본원칙으로서의 여성, 필요한 의식으로서의 여성―여성은 노동자도 자본가도 아니고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여성이다―이 시작된 것이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1969년에는 엘렌 윌리스와 함께 레드스타킹즈를 시작하고 레드스타킹즈 선언을 발표한다. 이 선언에서 그러나 현실에서 모든 남녀관계는 계급관계다. 남성 개인과 여성 개인 간의 갈등은 오로지 집단적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정치적 갈등이다73)라면서 여성을 남성과 대립하는 단일계급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래디컬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선언은 가장 가난한 여성, 가장 악랄하게 착취당한 여성이 얻는 성취가 바로 우리의 최고 성취다라고 하지만 이 선언에서 착취 계급의 여성피착취 계급의 여성 간의 계급투쟁은 부재했다. 정희진이 남성 집단 전체 대(對) 여성 집단 전체의 평등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한, 정희진이 3세대 페미니즘의 새로운 페미니즘 용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아무리 많을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다녀도 정희진은 여전히 래디컬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다.

래디컬 페미니즘ㆍ사회주의 페미니즘과는 다른, 사회주의 여성운동은 남성 집단 전체 대(對) 여성 집단 전체의 평등은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꼴론따이, 룩셈부르크, 쩨트킨 등의 여성혁명가들은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을 전쟁에다가 갈아 넣어서 부르주아 여성들만의 참정권만을 얻으려고 했던 서프라제트들/1세대 부르주아 페미니즘을 비판했다.74) 클라라 쩨트킨은 부르주아 여성운동가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얻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을 전쟁에다 갈아 넣을 때, 전쟁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이 여성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전쟁에 반대하였다.

 

전쟁은 그만! 다시 이것은 수없이 많은 여성들에게서 터져 나온 날카로운 외침이었다. 전쟁의 분노가 적군의 침입을 통해 날뛰고 혹은 폭탄과 포탄이 쏟아져 자신들의 집을 폐허 더미로 만들거나 정원과 밭과 숲을 파괴했던 그런 곳들에서 언제나 항상 희생자였던 그 고통과 고난을 어떻게 잊겠는가? 수년간의 살육이 일어난 외딴 오지에서 어머니들은 멀리 전쟁터에 나간 아들들의 건강과 목숨을 위해 울고 고통스럽게 불안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보낸 그 밤들을 기억했고, 아내들은 아이들에게 빵을 가져다주고 남는 시간에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굴종 속에 혹사당하던 시절들을 기억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내들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며 농사일을 온통 떠안을 자신들 외에는 마을에 온통 아이들과 노인들만 남게 만든 새로운 전쟁에 맞서 들고일어났다. 산업에, 교통에, 그리고 사회적인 활동의 다른 분야들에 활발하게 종사했던 여성들은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전선의 긴급 보조자로서 자신들이 평소 법이 제공하던 그 약간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온 신경과 근력을 살인적으로 착취해야 하는 그런 상태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이는 특히 전쟁 및 군수 산업에서 일하면서 있는 대로 노동력과 생명의 활기를 쥐어짜내는 것 말고도 폭탄과 포탄을 채우다가 폭발로 산산조각이 나거나 살인적인 화학 산업의 유독한 고통 속에 희생자로 스러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에게 해당했다.75) (강조는 인용자.)

 

사회주의 여성운동은 전쟁에 반대하였다. 반전운동이 볼쉐비끼 혁명으로 이어졌다. 러시아 혁명 직후 내전으로 파괴된 사회를 재건하려는 볼쉐비끼의 자전적 소설인 꼴론따이의 ≪붉은 사랑≫이 1차 대전 당시 반전 투쟁의 회고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클라라 쩨트킨은 페미니즘과의 투쟁에서 단호했다. 사회주의 여성운동이 페미니즘=여성해방운동이라는 잘못된 도식에 속아 넘어가 페미니즘이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것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우리가 서프라제트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이는 노동계급적 입장에서 벗어나 부르주아 여성운동에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복무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내부에서는 1890년에 이르기까지는 여성들의 분노가 표출되고 있으니 페미니즘 비판에 대해서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쩨트킨과 동료 여성혁명가들은 가차 없이 이러한 태도를 비판하고 페미니즘을 공격하였다.

 

1892년 체트낀은 베를린 여성 집회에 앞서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는 연설을 했다. 3년 후 독일의 최대 부르주아 여성단체에서 집회의 자유를 요구하는 청원서에 여성노동자들이 서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체트킨은 사회주의자 여성들에게 페미니스트 그룹과의 협력을 거부하라고 설득하면서 선명하게 대응했다. 1904년 국제여성참정권연맹의 창설과 함께 여성참정권운동이 국제적인 차원에서 전개 되었을 때 체트킨은 다시 한번 그것을 숙녀들의 운동이라고 경멸하면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고 성(性)의 전투가 아닌 계급의 전쟁을 역설했다. 그녀는 모든 여성의 위대한 자매정신의 신화라고 불렸던 것에 대해 극단적인 적대감을 갖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에 대해 그녀는 보통선거권이라는 명백한 요구를 걸었다.76) (강조는 인용자.)

 

부르주아 페미니즘을 비판했던 사회주의 여성운동은 무산계급의 입장에서 부르주아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인민들의 참정권을 쟁취하고자 했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여기에 정체성 정치가 끼어들 이유는 전혀 없다. 유럽의 오랜 종교전쟁들에서 내린 최종 결론은 근대에서의 종교의 자유이지 특정 종교들의 편에 서자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맑스주의 여성 혁명가들은 여성인권의 향상을 위해서 여성 참정권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선거권을 요구했다. 3세대 페미니즘과 함께 부상한 LGBT 문제는 맑스주의에서는 난해함이 전혀 없다. 성의 문제에서 우리가 할 일은 모든 이들이 선거권을 가지듯이 모든 이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지 특정 성적 소수자들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의 발전을 1세대, 2세대, 3세대로 구분하지만 실상 이 원어는 세대(generation)가 아니라 물결(wave)이다. 단절이 느껴지는 1세대, 2세대, 3세대 페미니즘보다는 페미니즘의 첫 번째 물결(First-wave feminism), 두 번째 물결, 세 번째 물결로 원어로 번역하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세대라는 말보다는 물결이 1세대부터 3세대의 연속성을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정체성 정치이다. 1세대 페미니즘-남녀 생물학적 분리주의의 양성 정체성 정치에 출발하여 양성 평등을 벗어나 모든 젠더의 정체성 정치에 기반을 둔 것으로 이어져 왔을 뿐이다. 첫 번째 물결의 페미니즘이 세 번째 물결의 페미니즘까지 오는 과정에서 주류 페미니즘은 계급적 입장에서 자본의 분할 통치(divide and rule)에 저항하지 않았고 분할이 무엇인가 정교화하고 이를 자신들이 정체성을 느끼는 집단의 공간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3세대 페미니즘이 2세대 래디컬 페미니즘의 남녀의 생물학적 분리주의를 비판하여 양성평등이 아니라 젠더 평등이라고 주장하더라도, 계급적 입장을 가지지 못한 것은 동일하기에 결국 어떠한 소수자가 더 억압 받는가의 순위 매기기/정체성 정치의 혼란 속에 여전히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앞에서 우리는 3세대 페미니즘의 이념적 지도자로 나선 정희진이 결국 래디컬 페미니즘과 같이 남녀 간의 적대를 부추기는 결론을 여전히 내리는 것에서 이를 적나라하게 보았다.

3세대 페미니즘을 수용하고 있는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정체성 정치의 극단인 래디컬 페미니즘이 무늬만 바꾼 것이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당과 마찬가지로 모든 여성을 하나의 계급으로 간주하고 모든 남성을 적으로 본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현재 너무나도 바라는 것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으로 만드는 여성의 당이다. 이들은 스스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여성의 당을 만들 수 없다면 여성의 당에 대한 구애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계급적 입장에 서야 자본의 분할 통치 전략에 맞설 수 있다.

 

다시 이야기해보자. 계급은 생산수단을 누가 어떻게 소유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한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누가 어떻게 소유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사회의 종교, 인종, 성의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방법들이 달라진다. 즉 각 사회마다 다른 계급관계가 종교, 인종, 성에 관한 문제를 사회마다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계급적 입장으로 한 사회를 보아야 각종 차별들이 만들어내는 착취들이 어떻게 다층적으로 제도화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사회를 바꾸기 위한 실천의 지침을 구체적으로 낼 수가 있다.77)

 

남성 폭력만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법제화가 진행되어야 한다.78) 남녀 임금이 차이가 있다. 동일노동인데도 성차별에서 임금 격차가 있다면 동일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원칙으로 접근해야 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법제화가 되고 실행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남녀 임금이 차이가 있다. 동일한 일을 하는데도 임금이 차이가 있는 이유는 비정규직 문제이고 여성 비정규직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녀 노동자가 같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쳐야 한다. 하루에 5명가량 사망하는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는 90% 이상이 남성이다. 이를 남성에 대한 역차별 문제로 페미니즘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모든 젠더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노동자, 어떠한 젠더의 노동자라도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안전한 작업환경,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작업중지권을 쟁취해야 한다. 페미 vs 안티페미남녀 임금 차별 vs 산재 사망률이라는 황당한 남녀 간의 성대결 프레임으로 몰고 가고 있다. 사회주의냐 공멸이냐라는 절박한 현재의 순간에, 페미 vs 안티페미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면서 서로 협력하면서 세상의 공멸을 향해 나란히 사이 나쁘게 가고 있다. 페미 vs 안티페미는 계급 투쟁을 성 전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페미 vs 안티페미는 자본주의 착취 강화에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되고 있다. 종교, 인종, 성의 차이를 기반으로 삼는 정체성 정치에 빠져나와서 계급적 입장에서 투쟁하지 않으면 공멸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

페미 vs 안티 페미는 정체성 정치의 극단이다. 정체성 정치의 폐단은 특정 집단의 편에 서는 것을 정의로 여기고 억압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미국의 잘 발달한 정체성 정치의 억압의 순위에서 상위 차트를 장식하는 것은 노동운동이 아니라 성소수자 운동이다. 정체성 정치가 가장 잘 발달된 미국을 보자. 노동운동 출신은 정계의 스타가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커밍아웃한 피터 부티지는 백만장자들의 친구로 정계의 스타가 되었다.79)

보편적 권리, 기본권을 근간에 두는 공화주의 앞에서도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하는 공적 공간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공화주의(republicanism)와 공화국(republic) 개념이 나왔다. 공화주의자들은 특정의 도덕적 선 관념을 공유하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공동체주의자과 다르다.

 

공화주의 사상가들은 시민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자치적인 종족-문화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 또는 키비타스(civitas)(즉 개인들이 법의 지배 아래에서 정의와 자유를 만끽하면서 더불어 살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 정치적 공동체)의 멤버십에 따르는 여러 시민적 정치적 권리들을 행사한다는 데에 있다고 믿었다. 공화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공공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인데, 왜냐하면 오직 정의로운 공화국 안에서만 개인들이 타인의 의지에 굴종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화국의 토대는 동등한 권리, 즉 정의인데, 공동체주의자들은 공화주의자들과 달리 특정의 도덕적 선 관념을 공유함으로써 이것을 강화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80) (강조는 인용자.)

 

정체성 정치는 공화주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여성 정체성을 강조하며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정체성 정치를 하고 있다. 분리주의 래디컬 페미니즘에 빠져 있는 한, 공화주의의 구현보다는 여성의 권리를 특화하는 제도화, 여성만의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정체성 정치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면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성공동체가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대에 합격시켜주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하게 된다. 성전환 수술을 했던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대에 입학이 가능한 것은 여성공동체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법이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권리를 보호ㆍ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숙대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이 입학을 못 하게 된 사건에서 주류 여성공동체가 한 일은 공화주의가 입학을 보장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입학을 못 하도록 단체나 다중의 위력에 의한 협박을 한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공화주의 의식이다. 특유의 도덕적 선 관념을 정체성으로 공유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공화주의 사고조차도 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대부분 개인을 강조하는 소생산자의 사상인 아나키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코뮤니테리안 아나키스트를 자처하거나 바쿠닌의 집산주의, 크로포트킨의 아나코-코뮤니즘, 국유화가 아니라 사회화, 프루동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등의 아나키즘의 구호들을 좋아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다.

정체성 정치가 억압에 순위를 매기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여성운동과 대척점에 서 있던 1세대 페미니즘부터 다시 한번 돌이켜보자. 페미니스트들은 1917년 러시아에서 여성들을 포함한 전 인민이 참정권을 가진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1918년에 마침내 여성들이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강조할 때도 그게 부르주아 여성들만의 참정권인 것도 말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참정권의 역사에서 여성이 더 억압받으니 여성부터 참정권을 가져야 되는데 흑인이 먼저 가져가서 잘못되었다고 운운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케케묵은 이야기 우려내기는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데 계속 사용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양성평등 이야기≫ 같은 교재도 러시아 혁명은 완전히 지우고, 1세대 페미니즘이 부르주아 여성들만의 참정권을 요구한 것은 말하지 않는다. 거기에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흑인보다 여성이 더 억압받는다는 주장을 한다.

 

노예였던 흑인 남성들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1870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백인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얻었습니다. 미국의 헌법은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그 내용을 조금씩 수정했는데, 남북전쟁 뒤 15번째 법을 수정할 때 흑인 남성들의 참정권을 인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여성들은 참정권을 얻지 못했습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였지만 노예 출신인 흑인 남성의 참정권은 인정하면서도 여성의 참정권은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종차별 못지않게 성차별 또한 심했던 것이 그 이유인데 참정권을 보면 오히려 인종차별보다 성차별이 더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81)

 

흑인 참정권 문제를 따지고 들어가면 흑인은 1870년에 형식적으로는 참정권을 받았지만 투표 의지를 보이는 흑인에 대한 무차별 폭력과 위협으로 사실상 행사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남부 10개 주에선 흑인의 참정권 행사를 가로막기 위해 투표자 문맹 검사나 투표세 등의 새로운 제도들을 신설하여 제도적으로 흑인 참정권을 봉쇄하였다. 문맹 검사가 흑인과 백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됐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인들은 검사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소위 할아버지 조항(Grandfather clause)이라는 예외 규정을 만들었다. 노예해방 이전 즉 1866년이나 1867년 이전에 투표권이 있던 자의 후손은 문맹 검사에서 제외했다. 1912년 이 할아버지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자 일부 남부 주의 경우 문맹 검사를 구두(口頭) 시험으로 바꿔 백인에게는 쉬운 문제를, 흑인에게는 어려운 문제를 내는 방식으로 흑인들이 참정권을 공공연하게 방해했다. 이 제도가 1964년 민권법이 제정되면서 없어졌다.82) 1965년 마틴 루터 킹이 참석한 가운데 연방투표권법 서명식이 있었다. 수정헌법 24조를 제정해 인두세 등의 조세 납부 여부를 통한 투표권 제한 또한 역시 불가능하게 했다. 흑인에게 실질적으로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1965년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미국의 흑인 노예폐지 운동가인 프레드릭 더글라스가 노예제 폐지만큼이나 평생 여성 인권 운동에 힘쓴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1848년 뉴욕 주 세네카 폴즈에서 세계 최초로 열린 여성 인권 회의인 세네카 대회(Seneca Falls Convention)에 참여한 유일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지 못한다면 흑인으로서의 투표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연설하였다.83) 프레드릭 더글라스는 노예로서 아일랜드에 도망가 있을 때 그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롭게 해 준 이들 중 영국 여성들이 있었음을 잊지 않았다.84) 이런 이야기들을 페미니스트들은 하지 않는다.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에게 흑인 참정권 문제는 여성이 흑인들보다 억압의 순위에서 더 위라는 것을 강조하는 예로 잠시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처럼 억압에 대한 순위를 매기는 것에 목을 매달면 결국 각 억압 자체는 무시할 수밖에 없다. 황인종, 치카노(멕시코계 미국인), 레즈비언을 정체성으로 하여 작가로서 성공한 체리 모라가는 억압의 순위를 매기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 나라에서 레즈비어니즘은 가난이다. 황인종인 것이 그런 것처럼, 여성이 그런 것처럼 그저 가난한 것이다. 억압에 대한 순위를 매기는 데에는 위험이 있다. 억압의 특이성들을 인지하는 데 실패하는 위험이 있다. 억압을 순수하게 이론적 기반으로 다루는 것은 위험하다.85) (강조는 원문.)

 

생산계급의 해방은 성과 인종의 구별 없이 모든 인간을 포함한다

억압에 순위를 매기는 제국주의-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착취를 강화하는 데 복무할 뿐이다. 사회주의 여성운동에서 참정권 문제는? 러시아 혁명을 보라. 1917년 모든 억압받는 인민은 참정권을 다 가졌다. 1922년 코민테른 제4차 대회는 통일전선을 미래 권력의 맹아로 보고 노동자 정부를 결의한 대회이다. 흑인 문제에 대해서는 흑인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인정하게 하고 명목상으로만 가입권이 있는 경우에는 흑인노동자를 조합에 가입시키기 위한 특별한 선전활동을 수행한다. 만일 이것이 잘되지 않을 경우에는 흑인을 조직하여 그들 자신의 조합을 만들게 하고, 가입을 인정하게 하기 위한 통일전선 전술을 이용한다라고 결의하였다. 흑인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넘어서서 미래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결의한 것이다.86)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문제는 정체성이 아니라 계급이다. 여성은 단일집단이 아니고 N명의 여성들은 계급에 따라 입장이 다르고 삶도 다르다. 클라라 쩨트킨은 1896년 독일 사민당 전당 대회 연설 오직 프롤레타리아 여성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사회주의는 승리할 수 있다에서 여성 문제는 각 계급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조목조목 밝힌 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해방 투쟁은 부르주아 여성이 자신이 속한 계급의 남성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과 비슷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투쟁은 자본가라는 전체 계급에 맞서서 프롤레타리아 남성과 함께하는 투쟁이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시장에서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유로운 경쟁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부수려고 프롤레타리아 남성과 맞서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가진 착취의 필요성과 현대 생산 양식의 발달로 인해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남성에 대항한 싸움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착취에 맞선 새로운 벽이 세워져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가진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권리는 보존되고 영구적으로 확보되어야 합니다. 이들의 첫 번째 목표는 남성과의 자유로운 경쟁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프롤레타리아 남성과 손을 맞잡고 싸웁니다. 분명, 이들은 또한 부르주아 여성운동의 요구에도 동의하지만, 그러한 요구들이 성취되는 것을 단지 그 운동이 같은 무기를 들고서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하는 전투에 들어갈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합니다. … 여성에게 정치적인 동등함을 준다고 해서 힘의 실제적 균형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은 프롤레타리아로, 부르주아 여성들은 부르주아 진영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들이 억압받았다고 느낄 때만 나오는 부르주아 여성운동 안의 사회주의적 경향에 의해 속아서는 안 됩니다.87) (강조는 인용자.)

 

페미니스트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는 프롤레타리아 여성 운동이 시작되려면 무엇보다도 계급적 관점의 노동 운동이 자리를 찾아야 한다. 계급적 관점의 노동 운동이 성장을 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여성 운동은 굳이 이론적 논쟁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진영인 사회주의 페미니즘ㆍ맑스주의 페미니즘ㆍ유물론 페미니즘과 차별성을 드러낼 것이다. 계급적 노동 운동이 성장하는 만큼, 몰계급적 운동과 그에 동반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ㆍ맑스주의 페미니즘ㆍ유물론 페미니즘은 퇴조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 페미니즘ㆍ맑스주의 페미니즘ㆍ유물론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보다는 계급적 운동의 복원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88) 래디컬 페미니즘은 오랜 남녀차별로 인해 생긴 역편향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래디컬 페미니즘의 문제점들을 꾸준히 비판하면서 여성운동의 주류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89)

래디컬 페미니즘은 특정집단들의 문제가 아니라 운동의 퇴보와 맞물려서 현재 진행형인 문제이기에 특정집단들을 비판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계급적 관점의 노동운동이 자리를 잡아야 해결이 될 문제이다. 그러나 맑스주의 여성론과 사회주의 여성운동이 왜 래디컬 페미니즘과 다른가는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맑스주의 여성론과 사회주의 여성운동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1880년에 쥘 게드, 칼 맑스의 프랑스 사회당 강령 초안을 보라. 생산계급의 해방은 성과 인종의 구별 없이 모든 인간을 포함한다, 남녀 노동자에게는 동일노동, 동일임금90)이다.

1960년대에 등장한 래디컬 페미니즘은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대립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잣대와 다를 수 있다. 그러면 어디에 접점이 있을까? 여성에 대한 차별이 노동관계에서 발생한다면, 이를 페미니즘 시각과 가치를 가지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 운동의 기본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대립이지만, 이런 관점 이외에는 다른 목소리와 다른 잣대를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계급주의는 될지 모르지만 사회주의는 아니다 운운하며 맑스주의를 곡해ㆍ비난하여 래디컬 페미니즘이 맑스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처럼 말해 왔다. 그러나 성과 인종의 구별 없이 모든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강령으로 내세운 맑스주의의 오랜 투쟁의 역사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이 감히 숟가락을 놓을 자리는 아예 없다.

 

 

클라라 쩨트킨의 여성론

 

무슬림 여성 클럽에서(1926년)91)

쏘련에 있는 무슬림 여성 클럽은 폭넓은 동방의 여성 모임을 상징한다. 이 클럽이 만들어지고 발전해 온 것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동방92)에서는 노동자 여성들이 여성 해방의 전제가 될 사회 조건들을 바꾸고자 열망하며 일어나 행동하기 시작하고 있다. 낮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이들, 전통과 법과 종교 교리에 의해 사회적인 노예 상태라는 가장 깊은 골로 밀려난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감을 잃고 몸과 마음에 상처를 지녔으면서도 자유과 평등을 성취하기 위해 꾸준히 일어서고 있다. 레닌이 정확하게 지적한 바대로 이는 가장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레닌은 가장 희미한 혁명적 기운의 기미도 항상 잘 포착해 냈으며 항상 그것을 현재의 세계가 겪고 있는 전반적인 사회적 변혁이라는 틀 안에서 평가했다. 동방의 여성들의 동요가 지금은 희미한 불빛으로 보일지라도 이는 다가오는 뇌우의 전조인 것이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실로 세계 혁명이 될 것이며 그때는 억압받고 노예인 마지막 한 사람도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해방할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 쏘련의 무슬림 여성 클럽들은 참정권 운동가들을 위한 아늑한 터전이 아니라 혁명 세력들이 모이고 학습하는 장소이다.

티플리스(Tiflis)93)의 무슬림 여성 클럽은 공산당이 설립했으며 공산당 여성 분과의 특별 업무이다. 이 클럽은 쏘비에트 체제의 설립이 무슬림 여성들의 정신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립되었다. 무슬림 여성들에게 있어서 이 클럽은 쏘비에트 법이 남성을 여성 위에 두지 않으며 한 성별이 다른 성별 위에 특권을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신들의 삶이 변화한 것에 대한 상징이다. 이 클럽은 모든 사회 분야 안에서 여성이 온전하게 남성과 평등함을 주장하며 쏘련이 그러한 평등을 현실화하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여성들은 사회의 변화에 참여하고 노동자 여성의 재능을 받아들일 새로운 구조를 건설하면서 자신들의 새로운 법적 지위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열정적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각성한 무슬림 여성들 대다수의 요구들은 여전히 낡은 편견으로 막혀 있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남성 동지들과 나란히 자신의 지위를 주장하지 못한다. 무슬림 여성들의 바람과 그것의 실현 사이에는 굳게 닫힌 하렘의 문이 있다.94) 티플리스의 여성 동지들과 남성 동지들은 격리된 가정생활과 회의실 사이에 무슬림 여성들을 위한 중간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곳은 깊은 소망이 자라서 투쟁을 위한 분명한 의식과 의지가 될 장소여야 했다. 무슬림 여성 집단들의 의지에 거슬렀거나 그들의 협조가 없었더라면 그루지야95)의 혁명적인 재건은 불가능했을 것임을 깨닫고 그에 따라 이들은 무슬림 여성 클럽을 조직하기 위한 그런 장소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이곳은 내가 본 최초의 장소로 당연하게도 나는 이 클럽으로 향하면서 기대가 컸다. 클럽의 일원들은 내가 방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건물을 살피고 몇몇 여성 무슬림 동지들과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동체 전체의 의견을 알고 싶었고 이 클럽이 다른 여성 클럽들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면서 그 이상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방문을 알렸다. 클럽 양쪽의 거리와 보도는 무슬림 여성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모두 베일을 벗고 있었다. 차는 거북이처럼 속도를 늦춰야 해서 출입구에 갈 기미가 안 보였다. 나는 걷는다기보다는 밀리고 들려서 마침내 클럽 복도에 다다랐고 나선형 계단을 올라 중앙의 커다란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도 숨 막히는 가운데 밀고 당기기가 계속되었다. 그 장면은 바글거리는 개미집을 연상케 했다.

이 클럽은 1923년 설립될 당시 40명으로 구성되었고 부정할 수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쏘련은 그 인원수에 맞는 크기의 공간을 제공했다. 이 클럽이 설립된 것은 너무도 급진적인 개혁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성장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으나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클럽의 선전은 비옥한 땅에 뿌리를 내렸고 일 년이 채 되기도 전에 벌써 회원이 200명이 된 데다가 더 많은 무슬림 여성들이 항상 회원이 되고자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쏘련 정부가 결국 이 클럽에 더 큰 장소를 제공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새로운 건물은 다른 장소에 위치해서 그 영향력이 더 많은 무슬림 여성들에게 닿아야 할 것이다. 클럽의 이주는 보기만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클럽의 속성상 내가 도착했을 때는 여성들만이 보였다. 그들은 자캅카스96)의 다양한 무슬림 산악 민족과 스텝 민족에 속한 여성들이었다. 전등 빛이 그들이 쓴 알록달록하고 많은 수가 놓아진 베일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 베일은 얼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이 여성들의 윤곽과 움직임에 우아함을 더하는 것이었다. 색색의 이국적인 복장보다 더 흥미롭고 매력적인 것은 그들의 얼굴에 드러나 순전한 환희의 표정이었다. 분명 계시의 전갈이 이 여성들에게 닿아서 그들 존재를 깊숙이 휘저었던 것이다. 그들 모두가 어찌 표현할 방법이 없는 새로운 의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 감정이 그들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고 클럽의 문턱을 넘어 뻗어나가서 심지어 국경도 넘어섰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이제 황혼에 접어드는 나이 든 여성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성숙한 여성을 투쟁과 직업으로 가득 차 있는 새로운 삶으로 부르고, 아직 절반은 어린아이인 젊은 여성이 혁명의 계승을 준비하도록 이끈다.

모여든 여성들은 인터내셔날가를 불렀다. 나는 러시아의 남녀 프롤레타리아들이 똑같이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혁명적 자세를 가지고 전투와 희망을 노래하는 그 공산주의 찬가를 부르는 것을 수백 번 들었다. 하지만 이 티플리스의 무슬림 여성들과 소녀들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만큼 굳건하고 매력적인 가사와 가락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과 존재 전체가 그 노래에 녹아 있었다. 그들은 신실한 개신교도들이 성찬식을 받으면서 포도주와 성체를 모심으로써 자신이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과 함께한다는 확신으로 깊이 고무되는 것과 같은 분위기로 인터내셔날가를 불렀다. 그들은 그 노래가 자신들의 인간성과 존엄을 인정하고 있다는 감정에 압도되고 감명받았다. 그들은 이 노래가 자신들이 남성과 온전히 동등하며 그로써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과 동등해짐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위에 언급했던 분위기는 분명 클럽에서 몇몇 무슬림 여성들이 했던 강렬한 연설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중에는 흥분하여 거의 말을 잇지 못했던 젊은 여성 동지도 있었다. 여성으로서 새로운 평가와 지위를 갖게 되고 전 세계적인 자유의 투사들의 공동체에 합류하게 된 것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쏘비에트 체제가 해낸 보완 작업에 대한 열렬한 감사와 뒤섞인다. 쏘련을 건설하고 지키겠다는, 또한 세계 혁명에 기여하겠다는 거룩한 맹세의 말들이 들린다. 하지만 그 연설 속에는 말할 수 없는 고난과 모욕, 쓰라림의 기억들 또한 드러난다. 이러한 공포가 되돌아와서 꽃 피어나는 딸을 압사시키는 운명이 될 것인가? 연설에 귀 기울이던 청중이 열렬하게 외친다. 그러한 운명을 다시 한번 겪느니 차라리 죽겠다! 이 열정적인 외침을 힘찬 박수가 맞는다.

연사 중 한 명이 외쳤다. 혁명 전 우리의 삶이 어땠습니까? 우리 아버지들은 우리를 마치 새끼 양처럼 겨우 열 살, 열 두 살일 때, 심지어 그보다도 어릴 때 팔아 넘겼습니다. 우리 남편들은 그들이 역겹게 느껴질 때조차 우리의 애정과 사랑을 요구했습니다. 우리 남편들은 내킬 때마다 우리를 몽둥이와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우리는 노예처럼 밤낮으로 남편들의 시중을 들어야 했습니다. 남편들은 우리에게 질리면 지옥에나 가라고 말하고 자기 친구들에게 우리를 정부로 넘겼습니다. 멋대로 우리를 굶겼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으며 힘없는 팔다리를 부축해 주었던 사랑하는 우리 딸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를 사올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딸들을 팔아 버렸습니다.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어떤 물라97)도 와 주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 우리에게 법적인 도움을 줄 판사를 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사랑하는 자매들이여,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혁명은 강렬한 뇌우처럼 찾아와서 불의와 노예 상태를 쳐부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정의와 자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더 이상 어린 우리들을 데려가서 낯선 남편과 한 자리에 들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남편을 고를 수 있고 남편은 결코 다시는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우리의 친구이자 동지여야 합니다. 우리는 남편과 나란히 서서 일하고 투쟁하기를 원하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모두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쏘련은 새로운 법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인간이라고 적혀 있고 우리가 자유로우며 남자들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도 쏘비에트로 보낼 남자와 여자들을 직접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직접 쏘비에트에서 일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남편이나 이웃, 혹은 상사에게 불만이 있을 때면 그들을 인민재판에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다면 인민재판은 우리 편에 설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무함마드나 모세나 예수 등 어떤 선지자를 따라야 한다고 우리에게 지시하지 못합니다. 쏘련은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쏘련에게 영원한 감사를!

티플리스의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훈련된 여성 동지들이 그 모임의 분위기와 정서를 내게 설명해 준다. 이 여성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인구의 가장 낮은 계층에 속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태어난 산악과 스텝 지역보다 더 용이한 생활 조건을 찾아 혁명 전에 티플리스로 모여들었다. 남성들은 행상인이나 일용직 노동자, 하인, 짐꾼 등 집밖에서 구할 수 있는 비천한 직업을 구했다. 아내들은 아이들과 함께 비참한 헛간에 남겨졌다. 도시로 이주해 오면서 여성들은 예전에 있었던 존재의 경제적 기반을 잃게 되었다. 농사일을 할 들판도 가축 떼도 없어지고 이전에 살던 오두막이나 텐트도 없어진 아내들은 생산적 노동을 하기 위한 가장 원시적인 도구나 가능성도 갖지 못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집안 살림도 제대로 꾸려갈 수 없다. 모든 것은 돈을 주고 사야 하는데 여성들에게는 돈이 없다. 남편들만이 돈을 갖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 남편들이 보기에 무슬림 여성들은 가족을 지키는 동반자로서의 중요성이 없어지게 되었다. 오랜 가부장적 가정의 경제적 기반은 사라졌다. 하지만 가부장제 안에서 남성이 누렸던 지배적인 지위는 계속되었고 최악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여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을 노예처럼, 남편이 가진 재산의 일부처럼 느끼게 되었다. 관습과 전통, 언어, 종교로 인해 여성들은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을 포함한 도시 인구의 여타 부분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여성들의 비참함과 외로움, 절망은 극단적인 형태를 띠었다. 그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에서 떨어져 나간 나뭇잎들과 같았다. 혁명은 티플리스의 무슬림 여성들에게 말 그대로 구세주처럼 왔다. 혁명과 함께 기대하지도 않았던 압도적인 일들이 이 여성들의 삶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 여성 동지들은 이 도시의 무슬림 여성들을 위한 여성 클럽이 갖는 가장 큰 중요성을 설명한다. 가장 큰 에너지와 재능을 가지고 지식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첫 단계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훈련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들이 다양한 종류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몇몇 사람들은 같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선동가와 조직가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기 위해 공산당에 가입한다. 하지만 이 클럽은 또한 그 무슬림 여성들 모두가 불의에 맞닥뜨리거나 비참함과 반계몽주의에서 빠져 나오고자 할 때 조언과 도움을 구하는 피난처이기도 하다. 이 클럽에는 문화사업부가 있어서 머리가 희끗한 나이 든 여성들이 젊은 아가씨들 옆에 앉아 감동적인 열의를 가지고 글자를 쓰거나 읽는 법을 배운다.98) 강좌들이 열려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전달한다. 하루 일정한 시간 동안은 법 전문가인 세 명의 동지들이 클럽에 와서 법적 문제를 도와준다. 사람들은 특히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물론 법적 평등이 선언되었다고 해서 수 세기 동안 쌓여 온 남성들의 기존 태도를 마술처럼 단번에 없애지는 못한다. 대개 여성들은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하고 그것은 법정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클럽에서는 옷가지를 수선하고 꿰매고 수를 놓는 법을 가르치는 강좌들이 열린다. 도시에서 사는 대부분의 무슬림 여성들은 어머니 세대로부터 바느질을 배우지 못했고 더 어린 여성들은 바늘을 쥐는 법도 모른다.

(그 여성 동지들이 힘줘서 강조한 바에 따르면) 당연하게도, 공산주의자의 목표는 여성들을 사회주의 경제 안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루지야의 현대 산업이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한 상황에서 아주 어려운 과제이다. 쏘련 정부는 티플리스 근처에 있는 쿠라강(Kura River) 옆에 거대한 첫 발전소를 짓고 있는 중이며, 일단 이 발전소가 들어서면 산업은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그와 함께, 공산당 내 여성 분과는 무슬림 여성들이 개별적으로 직업을 구하는 것을 돕는다. 어떤 여성들은 판지 공장에서 일하고 또 다른 여성들은 담배나 섬유 산업에서 일한다. 필요에 따라 클럽이 더 큰 장소로 옮기게 되면, 이 여성 동지들은 거기에 여성 공동체인 여성 집단 사업체를 세울 계획이다. 생산 집단에서의 일을 통해 무슬림 여성들 사이에서 자신감과 연대감이 자랄 것이고 그래서 클럽의 발전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이 클럽은 이 도시 및 근교의 많은 무슬림 여성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자석이 되었다. 클럽의 영향력은 공식적인 200명의 회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추정이 과장이 아닌 이유는, 중요한 사안이나 사건이 있을 때면 클럽이 대부분의 무슬림 여성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공식적인 회원 한 명마다 대략 10명의 여성들이 돕기 때문이다. 모든 클럽 회원들은 친구와 친척들에게 에너지와 열정과 심지어 열렬한 종교적 열의를 가지고 클럽을 홍보하고 그 메시지를 전한다.

이 클럽의 교사들과 운영자들이 옆방으로 가서 내게 교육 자료들과 수놓은 것들로 가득한 찬장과 상자들을 보여 줄 때도 무슬림 여성들은 방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들 모두가 클럽의 활동을 칭찬하는 데 한 몫을 거들고 자신들이 이뤄낸 것들에 대한 기쁨을 보여 주고 싶어 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혁명 전에 어떻게 일했었는지를 보여 주는 교육용 책자예요. 이 칠판에다가 선생님이 쏘련에 문맹자가 아직도 얼마나 많은 지를 보여 주죠. 여기에서 아기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보여 줘요. 제가 이걸 썼어요. 제가 이 커다란 담요에 수놓는 걸 도와줬고 이 블라우스는 제가 만든 거예요. 나는 이런 것들과 같은 셔츠를 만들 수 있어요.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러한 외침들을 통해 각각의 개인들이 이 작업에 가지고 있는 끈끈함과 집단 사업체에 대한 배움이 드러나고 있었다. 다른 방에서는 법조인 상담사들이 말 그대로 업무에 잠겨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내게 클럽이 오락과 기쁨을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자 했다. 사람들이 피아노를 치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첫 번째 춤은 한 여성 동지의 다섯 살짜리 딸이 췄다. 아이의 몸짓과 얼굴과 옷차림에서 어렸을 때 내가 상상했던 셰바의 여왕과 세미라미스99)가 떠올랐다. 그 소녀는 검은 곱슬머리에 커다랗고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매력적인 아이이다. 아이의 우아한 동작과 얼굴 표정은 음악의 리듬과 성격이 바뀔 때마다 놀랍도록 빠르게 바뀌어갔다. 분명 클럽에서 오냐오냐하는 어린 귀염둥이임에 틀림없었다. 다음으로는 어린 소녀들이 주로 혼자서 때로는 짝을 지어 춤을 췄다. 아이들의 몸짓에서 볼 수 있는 우아함은 서구에서 대개 볼 수 있는 그런 동방의 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춤들은 열정적이면서도 순수하여, 서구에서 보는 그런 춤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 춤들은 몸을 자극적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으며 대신 삶과 움직임을 기쁘게 표현한다.

춤들은 그날 저녁 있었던 일들 중 짧은 한 토막에 불과하다. 혁명, 즉 각성된 새로운 삶이 다시 한번 그들의 사고와 감정의 한가운데에 들어온다. 질문들, 외침들, 연설들, 다짐들이 국제적인 혁명적 연대의 정신을 담고서 무슬림 여성들이 과거에 가졌던 비좁은 테두리가 얼마나 넓게 확장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연대감은 떨쳐 일어나고 있는 동방의 여성들에게 구원의 계시처럼 찾아왔고 그들에게 강렬한 에너지를 주었다. 그들은 알고 있으며 믿고 있다. 이 표를 가지고 승리하라.100)

내가 그 클럽을 나설 때 건물 안과 바깥 거리에서 티플리스의 무슬림 여성들이 부르는 인터내셔날가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신문들에 가득한 뉴스에서는 강력한 자본가 집단과 그 부르주아 정부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위협적인 뇌우와 이 세계의 강력한 역사적 변혁을 막기 위해 벌이는 온갖 시도들을 전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것은 움직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움직일 거거든요. 이 맹세, 이 신념의 문구가 이 세계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진다.

 

스코츠보로의 흑인 청년들을 구하라(1932년)

국제혁명자후원회(MOPR)101)의 동지들과 친구들, 그리고 아직도 인간적인 마음을 간직한 모든 사람들이여! 여러분의 결단력 있고 재빠른 조치가 없다면 이미 끔찍한 폭력이 난무하는 미국의 사법 범죄에 하나를 더할 수도 있는 특히 믿을 수 없고 극악무도한 범죄를 막기 위해 단결하라!

(부르주아 사법부의 정확한 재판에 따라 전기의자라는 현대식 화형 장작 위에서 불태워진 두 명의 무고한 인물들인) 사코와 반제티(Sacco and Vanzetti)102)에 대한 시위와 저항이 아직 채 가시기도 전에 이 사형집행자들은 고문과 살인이라는 방식을 다시 한번 동원하여 8명의 무고한 희생자들을 한 번에 죽이려고 하고 있다.

앨라배머 주에서 사춘기도 채 지나지 않은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청년이 20살이다!) 9명의 흑인 청년들이, 한 명만 겨우 종신형을 받고 나머지 8명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들이 고발된 혐의인 두 명의 백인 창녀에 대한 강간이라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 명확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판결이 내려진 것이었다. 그 고발은 지주들과 공장주들이 사악한 목적으로 기획한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이들 세력은 이 흑인 청년들을 화형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착취에 맞서 일어나고 있으며 백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굶주림과 제국주의 전쟁, 피비린내 나는 백인 테러에 맞서 공동전선을 형성하기 시작한 흑인 대중들을 공포로 몰아넣으려는 것이다.

애초부터 이 중대한 고발에는 어떤 근거도 없었으며 진지한 조사가 이루어지자 버텨내지 못했다. 두 창녀 중 한 명은 마침내 자신의 최초 고발은 허위였음을 시인했다.103) 그런데도 판사는 그 사실을 완전히 무시했다. 흑인에 대해 백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비열한 인종 혐오라는 이 오만함의 가장 저급한 표현이며 질 낮은 인간적, 문화적 가치관은 사적 제재라는 야수를 일깨웠다. 이 야수는 앨라배머 전역을 다니며 희생자를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야수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 8명의 흑인 청년들이 현대판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을 당할 판이다.

앨라배머의 고등법원은 아직 말이 없다. 아직 미국연방대법원에 이 저급한 인종 혐오에서 나온 비열한 판결에 관한 상고가 들어가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재판과 판결을 이끌어낸 인종 혐오와 사적 처형의 잔혹함이라는 기운으로 인해, 앨라배머 고등법원의 피비린내 나는 판결을 늦춰지고 그 집행은 재빨리 이루어질 것이라는 공포, 즉 미국연방대법원에 이 문제를 가져갈 시간조차 없을 것이라는 공포가 일어나고 있다.

이 끔찍한 가능성을 앞에 둔 여러분들은 즉시, 그리고 온 힘을 다하여 행동을 취해야 한다. 낭비할 시간이 없으며 매 일분일초를 이 8명의 흑인 젊은이들의 생명이 전기의자에서 불타버리지 않도록 하는 데 써야만 한다.

전 세계 국제혁명자후원회의 동지들과 친구들이여! 여러분은 분명 온 힘과 노력을 다해 다음과 같은 요구를 계속해서 지지할 것이다. 그 8명의 흑인 젊은이들을 전기의자에서 내리고 감옥 밖으로 보내라. 그 무고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용감한 노동운동 지도자인 탐 무니(Tom Mooney)와 워렌 빌링스(Warren Billings)104), 그리고 할란(Harlan)의 광부들105) 및 다른 모든 정치범들을 석방하라. 그렇다. 여러분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 일들을 해낼 것이며 이타적이고 정열적인 노력을 더해 그 8인의 흑인 청년들을 구해낼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인종 혐오, 사적 제재라는 불의, 그리고 착취하는 탐욕에 맞선 싸움에서 굳게 흔들림 없는 선두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 8인의 흑인 청년들에 대한 사법적 살인을 막으려면 대중들의 강인한 무적의 힘이 동원되어야만 한다.

인간적인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여러분들이여! 이 8인의 흑인 청년들을 사형집행자와 전기의자라는 장작으로부터 구해 내자. 그들의 죄라고는 흑인으로 태어났다는 것밖에 없다.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하라! 여러분의 앞자리에 편견에 갇히지 않고 인간성을 간직한 수많은 미국의 개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미국에 진일보한 정신과 성정을 가지고서 자신의 명성과 사회적 지위와 건강, 그리고 때로는 드물게 목숨까지도 내놓고서 흑인 노예제를 끝장내고 흑인 형제자매들의 해방과 평등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잊지 않고 있다. 고인이 된 이 위대한 사람들이 세운 위대한 사례는 학계의 논문 속에만 모셔진 채로 남지 않고 사람들의 살아 있는 행동 안에 깃들어야 한다. 미국 역사는 모든 억압받고 경멸받는 사람들을 위한 해방과 평등이라는 깃발을 들고서 뿌리 깊은 혐오와 편견에 맞서 인간의 권리를 위한 대중 전투에서 두려움 없이 싸워 온 영웅적인 남녀의 행동들을 영원히 담고 있다. 8인의 흑인 청년들을 사형함으로써 이 빛나는 책장 옆에 사적이고 사법적인 범죄라는 어둡고 피비린내 나는 기록이 더해져서는 안 된다. 수사를 위한 그 오랜 감금에서 겪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을 생각해 보라. 매일 매시간마다 그들은 사형집행인이 감옥의 문턱을 넘어와서 인종 혐오의 제물로 선택된 이 8인의 흑인 희생자들을 바칠 날이 내일인지 그 다음 날인지를 묻는 괴로움과 마주하고 있다.

국제혁명자후원회 동지들, 국제혁명자후원회 친구들, 인간적인 마음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여러분 모두들! 목소리를 높여라! 행동하라! 거대하고 수많은 대중들의 강인하고 저항할 수 없는 외침은 판사의 인종 혐오적 판결을 극복해 낼 수 있다. 사적 제재라는 야수의 으르렁거림을 잠재울 수 있다. 거대하고 수많은 대중들의 손들이 한데 엉켜서 거대한 주먹을 만들면 이 판결을 찢어버리고 전기의자를 전복시킬 수 있다. 8인의 흑인들을 구하고자 하는 이 전투에서 침묵을 지키는 모두들, 아마도 묵묵히 체념한 채 비켜나 있는 모든 사람들은 미국과 인류의 역사에 수치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이 될 이 야비한 범죄의 책임을 저들과 함께 짊어지게 될 것이다.

이 8인의 흑인 젊은이들의 목숨을 고문과 전기의자 살인으로부터 구하려는 전투는 편견 없고 교양 있는 인간성과 그 미개하고 야만적인 뿌리가 과거에 뻗어 있는 편협하고 잔혹하며 피비린내 나는 인종 혐오 사이의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싸움의 일부이다. 이 싸움에서 인간다움이 승리해야만 한다. 인간다움의 승리는 모두가 지속적으로 용감하게 최선을 다할 때라야 분명해진다. 헌신을 다해 일하고 싸우자! 백인 테러에 맞선 싸움에서 견고부동한 국제혁명자후원회를 위해서 일하고 싸우자! 모든 인종과 민족의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단결이여 영원하라!

노사과연

 

 


 

1)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꼴론따이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조작하려고 쓴 다음 책에서 잘 나온다. B. 판스워드, “제10장 사회주의적 여성해방론”,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신민우 역, 풀빛, 1986. 이 책의 원서는 Beatrice Farnsworth, Aleksandra Kollontai: socialism, feminism, and the Bolshevik Revolution, Stanford, Calif.: Stanford University Press, 1980이고, 10장의 원제는 “socialist Feminism”이다. 8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사회주의 페미니즘 책들을 옮길 때 의도적으로 ‘페미니즘=여성 해방론’으로 번역하여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맑스주의 여성론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이 번역서에서도 보인다.

 

2) 레닌ㆍ클라라 체트킨, “레닌과 클라라 체트킨의 여성 문제에 대한 대화”,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 콜론타이, ≪콜론타이의 위대한 사랑≫, 정호영 역, 노사과연, 2013.

 

3) 한정숙,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여성문제의 사회적 기초󰡕 외 사회주의 혁명에서 여성해방을 꿈꾸다”, 한정숙 편,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 한길사, 2012, pp. 268-269.; Cathy Porter, Alexandra Kolontai―a biography, Virago Press, 1980, pp. 432-433. Cathy Porter가 이 책의 재판을 찍을 때의 책 제목은 ≪알렉산드라 꼴론따이. 레닌에게 도전한 여성의 외로운 투쟁(Alexandra Kollontai: The Lonely Struggle of the Woman who Defied Lenin)≫이었다.

 

4) 국제혁명자후원회(MOPR, Междунаро́дная организа́ция по́мощи борца́м револю́ции). 영어로는 International Red Help이기에 국제적색원조라고 옮기기도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이동휘는 레닌으로부터 혁명자금을 지원받은 것이 유명한데, 국제혁명자후원회의 원동지역 한인 책임자로 모금 활동을 하다가 죽었다. 한국사에서 MOPR을 모두 국제혁명자후원회로 표기하는 것에 맞추어서 옮긴이도 여기에 따른다.

 

5) 빌헬름 라이히, ≪성 혁명≫, 윤수종 역, 2010, p. 309. 봉건힌두국가였던 네팔에서 마오이스트 혁명이 일어나자, 총을 맨 마오이스트 여성전사들이 가정을 방문하면서 구타하는 남편이 있으면 신고하라고 한 것과 당시 쏘비에트 연방 내의 무슬림 여성들의 변화는 겹쳐서 보인다. KBS, ≪네팔―히말라야의 딸(인사이트 아시아 제5편)≫, 방송일시: 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24시.

 

6) 제사 크리스핀,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색다르고 과감한 페미니스트 선언≫, p. 105.; “‘드워킨/이스라엘의 피해자 권력 휘두르기’에서 벗어나기”, 알렉싼드라 꼴론따이, “알렉싼드라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 정호영 해제ㆍ서의윤 역, ≪정세와 노동≫ 제157호(2019년 12월), pp. 160-166.

 

7) http://www.barnorama.com/afghanistan-1970s/

 

8) https://en.wikipedia.org/wiki/Taliban_treatment_of_women

 

9) 헬렌 버제스, ≪소비에트 여성은 말한다 우리의 삶, 우리의 꿈≫, 여성한국사회연구회 역, 앎과 함, p. 17. 쏘련과 무슬림 세계, 맑시즘과 무슬림에 대해서는 다음 책들을 참조하라. Douglas Northrop, Veiled Empire―Gender and Power in Stalinist Central Asi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3.; Maxime Rodinson, Marxism and the Muslim World, Zed Books, 2016.

 

10) BBC, “코로나19: 미국 흑인 공동체 피해가 유독 큰 이유는?”, 2020. 4. 8.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2203313>

 

11) 스코츠보로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는 다니엘 앤커ㆍ바릭 굿만이 감독한 2001년 다큐멘터리 ≪스코츠보로: 미국의 비극(Scottsboro: An American Tragedy)≫이 있다. 여기에는 마지막 생존자인 클라렌스 노리스도 나온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2000년 제5회 서울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김민선 자원활동가가 작성한 영화 소개는 다음의 서울인권영화제 홈페이지를 참조하라. <http://hrffseoul.org/ko/film/165>

 

12) Keisha N. Blain, “Ida B. Wells, Police Violence, and the Legacy of Lynching”, July 8, 2016. <https://www.aaihs.org/ida-b-wells-police-violence-and-the-legacy-of-lynching/> 미국 경찰의 흑인에 대한 심각한 국가폭력은 흑백인종문제로 이를 설명해서는 안 된다. 정호영, “[세계의 창] 볼티모어 민주항쟁에 대하여”, ≪울산저널≫, 2015. 5. 7. <http://www.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79513394474639&dt=>

 

13) “조작된 기억, 그리고 희생된 소년들. 인권영화제 관람기―「스코츠보로: 미국의 비극」을 보고”, ≪서울시립대 신문≫, 2000. 11. 6.

 

14) 287 U.S. 45 Powell v. Alabama, Argued: October 10, 1932, Decided: November 7, 1932, 224 Ala. 524, 531, 540, reversed. <https://www.law.cornell.edu/supremecourt/text/287/45>

 

15) “美 ‘성폭행 누명’ 흑인들, 80여 년 만에 사후 사면”, ≪연합뉴스≫, 2013. 11. 22.

 

16) Denise Lynn, “Black Woman and the Scottsboro Boys”, May 7, 2018. <https://www.aaihs.org/black-women-and-the-scottsboro-boys/>

 

17) Robin D. G. Kelley, Hammer and hoe: Alabama Communists during the Great Depression,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90, p. 23.

 

18) 본명으로 싣지 않아서 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지만 이런 설이 돈다.

 

19) Ibid., p. 90.

 

20)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은 성서, 그리고 영문학으로 범위를 좁히면 존 버니언의 기독교 소설인 ≪천로역정≫이다. 외국선교에 나서면 성서를 번역한 후 거의 예외 없이 ≪천로역정≫을 번역하여 선교에 쓴다.

 

21)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김욱동 역, 2015, p. 523.

 

22) 조디 래피얼, ≪강간은 강간이다≫, 최다인 역, 글항아리, 2016. 원제: Rape Is Rape: How Denial, Distortion, and Victim Blaming Are Fueling a Hidden Acquaintance Rape Crisis, 2013, pp. 185-186.

 

23) bell hooks, Ain’t I a Woman: Black Women and Feminism, Routledge(first published in 1981), 2015.

 

24) 벨 훅스,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 윤은진 역, 모티브북, 2010, pp. 73-74, 75.

 

25) 앨리스 에콜스, ≪나쁜 여자 전성시대≫, 유강은 역, 2017, p. 9.

 

26)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이경아 역, 문학동네, 2017, p. 260.

 

27) 같은 책, pp. 260-261.

 

28) Hester Eisenstein, “3. Rape and the Male Protection Racket”, Contemporary Feminist Theory, Twayne Publishers, 1984.

 

29) Hester Eisenstein, Feminism Seduced: How Global Elites Use Women’s Labor and Ideas to Exploit the World, Routledge, 2010, p. 97.

 

30) Anna Damon, “The Scottsboro Mothers Look To You”, Working Woman (December 1934), p. 10.

 

31) 한우리 기획ㆍ번역, “흑인페미니스트선언문(1977년)”, ≪페미니즘 선언≫, 2016, pp. 154, 157.

 

32)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pp. 61-62.

 

33) Jen Chaney, “Natalie Portman on How the Time’s Up Initiative Will Work, From the Golden Globes and Beyond”, Vulture, 2018. 1. 5. <https://www.vulture.com/2018/01/natalie-portman-times-up-golden-globes.html>

 

34) 캐서린 케첨ㆍ엘리자베스 로프터스,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거짓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 정준형 역, 도솔, 2008.

 

35) Family Therapy networker, 1993년 9/10월호,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거짓기억과 성추행 의혹의 진실≫, p. 183에서 재인용.

 

36) 같은 책, p. 194.

 

37) 같은 책, p. 198.

 

38) 같은 책, p. 302.

 

39) 같은 책, p. 432.

 

40) 같은 책, p. 49.

 

41) 같은 책, pp. 372-373.

 

42) 같은 책, p. 348.

 

43) 같은 책, pp. 100-101, 163.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을 의식으로 몰아내는 ‘동기화된 망각’과 잘못된 심리치료사들이 주장하는 ‘억압’의 차이에 대해서는, 같은 책, pp. 367-368. ‘기억상실’과 ‘역행기억상실’과 ‘억압’의 차이에 대해서는 같은 책, p. 368. ‘심인성기억상실’과 ‘억압’과의 차이에 대해서는 같은 책, p. 369. 억압에 대한 확대해석에 대한 설명은 같은 책, p. 435.

 

44) 같은 책, p. 349.

 

45) 같은 책, p. 456.

 

46) 같은 책, p. 155.

 

47) 같은 책, p. 380.

 

48) 같은 책, p. 18.

 

49) 같은 책. 기억이 조작가능한 것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부분은 “7장 기억의 왜곡과 조작을 증명하다”.

 

50) 같은 책, p. 187.

 

51) 같은 책, p. 351-352. 여기에 대해서는 “11장 억압된 기억인가? 거짓기억인가?”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52) “‘드워킨/이스라엘의 피해자 권력 휘두르기’에서 벗어나기”, 알렉싼드라 꼴론따이, “알렉싼드라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 정호영 해제ㆍ서의윤 역, ≪정세와 노동≫ 제157호(2019년 12월), pp. 160-166.

 

53) 권김현영,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해”, ≪허핑턴포스트≫, 2018. 3. 15. <https://www.huffingtonpost.kr/hyunyoung-kwonkim/story_b_15352452.html>

 

54) 캐서린 케첨ㆍ엘리자베스 로프터스, 앞의 책, p. 471.

 

55) 같은 책, pp. 67, 351-354.

 

56) 같은 책, p. 376에서 재인용.

 

57) 같은 책, pp. 378-379.

 

58) 정칠성, “식민지 조선의 여성 맑스주의자 정칠성의 여성론”, 정호영 해제, ≪정세와 노동≫ 제161호(2020년 4월), pp. 84.

 

59) 이에 대한 페미니즘 내부의 비판은 권김현영의 글이 있다. 권김현영, “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의 문제”, 권김현영 편,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2018.; 권김현영,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해”, ≪허핑턴포스트≫, 2018. 3. 15. <https://www.huffingtonpost.kr/hyunyoung-kwonkim/story_b_15352452.html>

 

60) 한우리 기획ㆍ번역,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1969년)”, ≪페미니즘 선언≫, 현실문화연구회.

 

61) 조디 래피얼, ≪강간은 강간이다≫ 최다인 역, 글항아리, p. 38.

 

62)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14, pp. 171-172.

 

63) 김성주, “여성ㆍ젊은이 취업난, 수동적 자세가 문제”, ≪한겨레≫, 2012. 10. 15.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555935.html>

 

64) 정희진, “[정희진의 낯선 사이] ‘재벌 좌파’ 여성과 ‘삼포’ 남성의 연대”, ≪경향신문≫, 2012. 11. 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211222123405>

 

65) 정희진, “‘좌우’는 없고 ‘위아래’는 확실한 새로운 신분사회가 온다”, ≪한겨레≫, 2019. 10. 23.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4377.html>

 

66) 알렉싼드라 꼴론따이, “알렉싼드라 꼴론따이의 공산주의와 가족”, 정호영 해제ㆍ서의윤 역, ≪정세와 노동≫ 제157호(2019년 12월), pp. 151, 159.

 

67) 정희진, “[정희진의 낯선 사이] 피해를 공유하는 윤리”, ≪경향신문≫, 2016. 5. 2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605222100005#csidx517d13b1e86e8fabe650c1038bf8189>

 

68) 정희진, “청년허브 열린강연 정희진 강연 속기 정리”. <https://youthhub.kr/download/14518>

 

69) 정희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권김현영 등,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정희진 편, 교양인, 2017, p. 37.

 

70) 정희진, ≪낯선 시선: 메타젠더로 본 세상≫, 교양인, 2017, p. 12.

 

71)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2017, p. 47.

 

72) Shulamith Firestone, “The Women’s Rights Movement in the U.S.A.: New View”, The New York Radical Women, 1968. <https://www.marxists.org/subject/women/authors/firestone-shulamith/womens-rights-movement.htm>

 

73) 한우리 기획ㆍ번역, “레드스타킹 선언문”, ≪페미니즘 선언≫, 2016, p. 43.

 

74) 전쟁을 찬성하고 파씨스트가 된 페미니즘 운동의 한계에 대해서 다음을 보라. 염운옥, “페미니즘은 계급, 인종의 좁은 교차로를 택할 수밖에 없다”, ≪교수신문≫, 2019. 6.

 

75) 클라라 체트킨, ≪전쟁에 맞선 임금 노동자들≫(1933), 서의윤 역, 2022(미발표 번역 원고). Klara Zetkin, The Toilers Against War, New York: Workers’ Library Publishers, 1934. (이 책은 출판사에서 Klara Zetkin으로 저자명이 발표되었다.)

 

76) 김지해 엮음, ≪세계여성운동 1―사회주의 여성운동 편≫, 동녘, 1987, p. 199.; Richard Stites, “Chapter 8-9”, The Women’s Liberation Movement in Russia: Feminism, Nihilism and Bolshevism 1860-1930,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8.

 

77) 정칠성, “식민지 조선의 여성 맑스주의자 정칠성의 여성론”, 정호영 해제, ≪정세와 노동≫ 161호(2020년 4월호), p. 118.

 

78) 캐나다 앨버타 주정부는 남성, 여성의 폭력을 나누어 통계를 내고 대처방안을 찾는다. Alberta.ca, Men abused by women, 2008.;Alberta.ca, Women abused by men, 2008.

 

79) BBC, “Pete Buttigieg: How a young, gay mayor became a Democratic star”, 2019. 4. 9. 미국에서 미국 자유주의자들의 수호성인인 푸코와 정체성 정치의 성장에 대해서 보려면 데이비드 그레이버, ≪우리만 모르는 민주주의≫, 정호영 역, 이책, 2015, pp. 143-146.

 

80)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김경희ㆍ김동규 역, 인간사랑, 2006, pp. 138-139.

 

81) 이해진, ≪청소년을 위한 양성평등 이야기≫, 파라주니어, 2016, p. 101.

 

82) “흑인이 투표한다, 백인이여 일어서라”, ≪한겨레 21≫ 제735호, 2008. 11. 12.; “미국 투표권 확대의 역사”, ≪한국일보≫, 2014. 10. 5.

 

83) C. James Trotman Ph.D., Frederick Douglass―A Biography, Greenwood, 2011, p. 69.

 

84) Ibid., p. 117.

 

85) Cherrie Moraga, “La Giiera”, Cherrie MoragaㆍGloria Anzaldua(eds.), This Bridge Called My Back: Writings by Radical Women of Color, Kitchen Table, 1984, p. 29.

 

86) Bulletin of the Fourth Congress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No. 27, Moscow, 1922, p. 10.; W. Z. 포스터, ≪세계 사회주의 운동사≫ 제2권, 편집부 역, 동녘, 1987, p. 96.; Comintern, The 1928 and 1930 Comintern Resolutions on the Black National Question in the United States(With an Introduction by Lowell Young), Revolutionary Review Press.

 

87) 클라라 체트킨, “오직 프롤레타리아 여성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사회주의는 승리할 수 있다”, 서의윤 역, 2020(미발표 번역 원고).; Clara Zetkin, “Only in Conjunction with the Proletarian Woman Will Socialism Be Victorious”, 1896.

 

88) 로자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의 여성론”, 정호영 해제ㆍ서의윤 역, ≪정세와 노동≫ 제152호(2019년 6월), pp. 86-87.

 

89) 정칠성, “식민지 조선의 여성 맑스주의자 정칠성의 여성론”, 정호영 해제, ≪정세와 노동≫ 제161호(2020년 4월), p. 96.

 

90) Karl MarxㆍJules Guesde, “The Programme of the Parti Ouvrier”, 1880.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80/05/parti-ouvrier.htm> 프랑스 사회당 성립과 이 강령에 대한 설명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소, “프랑스 노동자 정당 건설에 기여”, ≪마르크스 전기≫ 제2권, 김대웅ㆍ임경민 역, 노마드, 2018, pp. 418-428.

 

91) 출처: Clara Zetkin, In The Liberated Caucasus, Berlin and Vienna, 1926, pp. 80-87.

 

92) 여기에서 동방은 쏘련 붕괴 후 대부분 독립한 중앙아시아 지역을 의미한다. 1920년대에 러시아의 여성 활동가들과 해방된 무슬림 여성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선전선동활동을 하는 것은 어려웠고 심지어 활동으로 죽기까지 했다. 쏘련의 원수(元首)인 칼리닌(kalinin)은 중앙아시아 관료들에게 새로운 여성들의 권리를 알려줄 것을 격려했지만 대부분의 무슬림 지도자들은 이에 소극적이었다. 이들은 오히려 당시 당의 사회주의 민족 개념에서 나온 민족문화부흥정책(korenizatsiia)을 구실로 낡고 썩어 빠진 문화로 여성들이 선거에 참가하거나 후보로 나서는 것을 방해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 쏘련의 여성부(Zhenotdel)는 붉은 선전열차, 도서관, 의원을 세우고 베일을 벗는 후두줌(hudjum, 터키어로 ‘돌격’이란 의미)을 조직해 나갔다. Marcelline J. Hutton, Russian and West European Women, 1860-1939: Dreams, Struggles and Nightmares, Rowman & Littlefield Publishers, 2001, p. 252. 동방에서 여성 해방은 남자 정치지도자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무슬림 남자들은 아내가 베일을 벗는 것을 금지시켰으며 모임에 참가하지도 못하게 하였다. 본문에 나온 대로 “법적 평등이 선언되었다고 해서 수 세기 동안 쌓여온 남성들의 기존 태도를 마술처럼 단번에 없애지는 못한다.” 이런저런 연유로 동방에서는 쏘련 정부에서 파견된 법 전문가들이 여성들의 권리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지원을 나가야 했다.

 

93) 티플리스(Tiblis). 현재는 트빌리시(Tbilisi)로 불리는 조지아의 수도. 조지아는 동방정교회가 80%를 차지하는 기독교 국가이다. 조지아의 이슬람은 수니 하나피파로 전 인구의 10%로 소수 종족이었다.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도시로 흘러 들어온 소수 종족인 무슬림들은 조지아의 극빈층을 이루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오랜 무슬림 내의 남성독재까지 겹쳐서 조지아 무슬림 여성들은 최악의 상황에 있었다.

 

94) 하렘은 아랍어 하람의 터키식 발음이다. 전통적으로 아랍, 터키 지역의 전통가옥에는 남성들의 구역인 셀람륵(selamlık)과 여성들의 구역인 하람륵(haramlık)이 존재하며 이 하람륵에는 외부 남성은 들어갈 수 없으며 셀람륵 또한 여성은 들어갈 수가 없다.

 

95) 이 글은 조지아를 클라라 쩨트킨이 생전에 불렀던 국명으로 표기한다. 2005년 친서방 정권이었던 그루지야 정부가 국명을 러시아 명인 그루지야(Грузия)가 아닌 영어 국명인 조지아(Georgia)으로 불러줄 것으로 대내외에 요청하여 국명의 발음이 바뀌었다.

 

96) 영어로는 트랜스코카시아(Transcaucasia)라 하고 남캅카스라고도 부르며 클라라 쩨트킨이 글을 쓸 때는 자캅카스 사회주의 연방 쏘비에트 공화국이었다. 1922년에 조지아(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은 함께 자캅카스 사회주의 연방 쏘비에트 공화국을 이루어 쏘련의 일원이 되었고, 1936년 쏘련 내에서 다시 세 개의 공화국으로 각각 분리되었고 쏘련 붕괴 후 현재 각기 독립된 국가가 되었다.

 

97) 판관의 역할을 하는 이슬람 고위 성직자.

 

98) 당시 터키와 키르기스의 여성들은 1%만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 Marcelline J. Hutton, op. cit., p. 252.

 

99)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세운 아시리아의 전설의 여왕.

 

100) In hoc signo vinces(In this sign thou shalt conquer). 첫 번째 기독교 로마 군주이자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 박해를 끝낸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반란을 일으킨 막센티우스와의 전쟁에서 나서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바라는 기도를 했다. 그는 정오의 태양에서 십자가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고, 그날 밤 그의 꿈에는 예수님이 나와 “이 표를 가지고 승리하라”고 말하였다. 이 꿈을 십자가를 군대의 표지로 사용하라는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인 콘스탄티누스는 군대의 창과 방패에 십자가를 새기고 십자 깃발을 들고 전쟁에서 이겼다. 이 전쟁의 승리로 로마 제국 서방의 정제가 되었고 이후 로마의 유일한 황제로 등극하였다.

 

101) MOPR, 국제혁명자후원회(Междунаро́дная организа́ция по́мощи борца́м револю́ции)의 약자이며 영어로는 International Red Help이기에 국제적색원조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이동휘는 레닌으로부터 혁명자금을 지원 받은 것이 유명한데, 국제혁명자후원회의 원동지역 한인 책임자로 모금 활동을 하다가 죽었다. 한국사에서는 MOPR을 모두 국제혁명사 후원회로 표기하는 것에 맞추어서 옮긴이도 여기에 따른다. 국제혁명자 후원회는 코민테른에 의해 1922년 설립되어 전 세계의 “계급전쟁”의 정치범들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원하였다. 1920년 이후 쩨트킨은 제3 인터내셔날(코민테른) 집행위원회의 멤버로 러시아와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을 벌인다. 코민테른의 서기 활동과 병마로 인해 쏘련에 머무르면서 그녀는 국제혁명자후원회를 지도하였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의해 살인혐의를 뒤집어쓰고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스코츠보로 흑인 청년들을 구하기 위해 국제적 지원을 조직했던 일은 그 대표적 활동이다.

 

102) 니콜라 사코와 바르틀로메오 반제리. 이들은 미국으로 이민 온 이탈리아인 구두 제조공과 어부로 1921년 급진적 운동에 관여한 죄로 체포되었다. 이들은 어떠한 증거도 없이 매사추세츠 주 남 브레인트리에서 강도와 살인을 했다는 억지 유죄판결을 받았다. 국제혁명자후원회에서 이들의 구명운동을 열렬하게 하는 등 국제적 저항운동이 있었지만 이들은 1927년 8월 23일 밤 처형당했다.

 

103) 무고죄를 통해 9명의 흑인청년들을 파멸시킨 두 명의 피해호소인인 루비 베이츠(Ruby Bates), 빅토리아 프라이스(Victoria Price)는 성매매 여성이었다. 이 중 루비 베이츠는 자신의 강간 이야기는 거짓이며 “경찰관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라고 남자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이후 재심에서도 강간이야기는 거짓이라고 증언했다.

 

104) 샌프란시스코의 전투적인 노동조합조직가였인 토마스 J. 무니는 그 도시 가게 고용주들의 표적이었다. 무니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1916년 7월 22일 대비 운동의 행사인 대비의 날(preparedness day)에 있었던 퍼레이드 사건에서 나왔다. 대비 운동은 1차 대전 반발 후 전쟁에 온 국민이 전쟁에서 대비하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이 대비의 날 행사에서 행진 대열에 폭탄이 던져졌고 9명이 죽고 40명이 부상당했다. 무니와 다른 젊은 노동운동 지도자인 와렌 빌링스가 죄를 뒤집어썼다. 폭발 현장에서 1마일 이상 거리가 있던 무니와 그의 부인의 사진은 증거불충분으로 배심원들이 무시하였다. 돈으로 매수된 이들의 거짓위증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무니는 사형선고를 와렌 빌링스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미국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항의 집회가 열렸다. 볼쉐비끼의 지도를 받고 성페테르스부르크에서 전개된 일련의 저항운동은 월슨 대통령으로 하여금 캘리포니아지사에게 압력을 가해 무니의 사형선고를 무기징역으로 바꾸도록 하였다.

 

105) 1931년 좌익 전국광산조합(National Miners Union)이 지도한 할란 지방에서의 석탄광산노동자의 파업은 노동자들의 퇴출, 블랙리스트화, 노동자 가택 습격, 범죄적인 생디칼리즘이라는 이유에 의한 체포와 투옥 등으로 이어졌다. 전국광산노동조합의 젊은 조직가인 하리 심즈는 회사에서 고용한 군보안관 대리 배지를 단 총잡이의 총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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