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회원마당: 서평] “이론적 논쟁이 ‘학자들’의 일이라는 주장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가장 저열한 모욕이며 악의에 찬 비방이다”―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를 읽고

 

* 이 글은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노동전선)>이 발행하는 ≪전선≫ 제120호에 실린 글입니다.

 

 

1. 글을 시작하며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폴란드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6세에 이미 폴란드 혁명 운동에 가담하고, 18세에 폴란드의 ‘프롤레타리아 당’에 가입하여 활동 중 당국의 탄압을 받아 1889년에 스위스 취리히에 망명하여 취리히 대학에서 자연과학, 수학, 정치경제학을 공부하였다. 20대 초반인 1894년에 ‘폴란드왕국 사회당’을 결성하고, 박사학위 논문으로 1898년에 “폴란드의 산업 발전”으로 당 주장을 이론화하였다. 1898년에 베를린으로 와서 독일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위장 결혼을 하고, ‘독일 사회민주당’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베른쉬타인(1850-1932)의 수정주의에 반대하는 사상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갓 당에 입당한 20대 후반의 외국 여성이 독일 사회민주당의 주요한 이론가이고 베테랑 활동가이며 40대 후반의 독일인 남성인 베른쉬타인을 상대로 그렇게 당차게 활동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베른쉬타인이 1896-1898년 사이 독일 사회민주당의 주요한 이론지였던 ≪새로운 시대≫를 통해 발표한 글들을 1899년에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자, 로자 룩셈부르크가 1898년에서 1899년 사이에 ≪라이프치히 인민신문≫에 연재한 글을 출판한 것이다. 초판이 절판되자 1908년 재판이 출판되었는데, 거기에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수정한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대중 정당으로서 당시 50만 명에 육박하는 당원과 125만 명에 이르는 노동조합원에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조직이었다. 공개적인 독일 노동정치조직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863년에 라살(1825-1864)에 의해 창설된 ‘독일 노동자총연맹’은 선거를 통해 의회에 진출하고 국가의 힘을 빌려 노동자생산협동조합을 도입하는 것을 주 노선으로 하였기 때문에 당시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던 보수주의자들과 타협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에 반대하여 기존의 국가 권력에 대항하여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회주의자들은 1869년에 아이제나흐에서 ‘독일 사회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두 당은 1875년에 고타에서 합당 대회를 열고 ‘독일 사회주의노동당’으로 뭉쳤다. 이 당의 강령을 비판한 것이 유명한 맑스의 “고타강령 비판”이다. 1871년 독일 통일을 달성한 비스마르크 정권은 노동자계급을 탄압하기 위해 1878년 ‘사회주의자 탄압법’을 만들었다. 지하 활동에 돌입한 당은 ≪사회민주주의자≫라는 신문을 해외에서 만들어서 국내로 밀반입하였고, 이 신문을 통해 당 조직과 당 활동을 진행하였다. 정권의 탄압에 의해 외국에 망명한 활동가들은 맑스, 엥엘스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1890년 제국의회가 ‘사회주의자 탄압법’에 대한 연장을 거부하자 당은 다시 합법화되었고, 그해 총선에서 143만 표(19.7%)를 득표하여 35명의 의원을 당선시키게 된다. 1891년에 에르푸르트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강령도 개정했다.

 

1870년대에 이르러 주요 산업 부문에 기계제 대공업으로의 산업화가 마무리된 후발 자본주의 국가 독일은 얼마 남지 않은 식민지 쟁탈전에 뒤늦게 뛰어들게 되는데, 1873년부터 시작된 공황은 비스마르크 정권으로 하여금 ‘사회주의 탄압법’을 선택하게 했다. 이후 1880년대 후반부터 1890년에 이르는 경제적 번영은 독일 노동자계급이 우경화하는 물질적 기초가 되었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의 역사는 라살부터 출발하는데, 선거에서의 일정한 성과와 증대된 노동조합의 힘은 의회주의와 개량주의로 당을 이끌었다. 수정주의는 이론보다 실천의 영역에서 먼저 꽃피기 시작하다가 베른쉬타인에 이르러 이론화가 진행된 것이다. 아래에서는 책의 구성을 따라가며 요약해 보았다.

 

 

2.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로자 룩셈부르크는 책의 서문에서 “이 글의 제목을 처음 본 순간 놀랄지도 모른다. 사회 개혁이냐 아니면 혁명이냐?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는 사회 개혁에 반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또는 사회민주주의는 사회 혁명, 즉 자신이 최종 목적으로 설정한 현존하는 질서의 전복을 사회 개혁에 대립시킬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사회 개혁을 위한, 또 기존의 기반 위에서 노동하는 대중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그리고 민주적 제도를 위한 일상적인 실천 투쟁은 사회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을 지도하며,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임금 체계를 폐지한다는 최종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 사회 개혁과 사회 혁명 사이에는 분리될 수 없는 연관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 개혁을 위한 투쟁은 수단이며, 사회 혁명은 목적이기 때문이다”라고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또한 “이론적 논쟁이 ‘학자들’의 일이라는 주장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가장 저열한 모욕이며 악의에 찬 비방이다”라는 주장으로 사상 투쟁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1) 제1부
― 베른쉬타인의 연재 논문인 “사회주의의 여러 문제”, ≪새로운 시대≫, 1896/97에 대한 논평

 

○ 베른쉬타인(기회주의)의 방법

로자는 여기에서 베른쉬타인의 자본주의 사회의 객관적 발전 경로에 관한 발언을 비판한다. 베른쉬타인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자본주의의 붕괴는 불가능한 것이 되는데 그 이유는 자본주의가 신용 제도와 기업과 조직의 발전, 그리고 광범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정보 써비스의 발전 때문에 전면적 위기가 줄어드는 더 큰 적응 능력을 보이며, 자본주의 생산 부문들의 지속적인 분화와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많은 수가 중산 계층으로 상승하고, 또 노동조합 투쟁의 성과로 프롤레타리아의 경제적, 정치적 지위가 상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로자는 사회주의의 과학적 기초는 자본주의 발전의 다음 세 가지 결과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로 몰락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경제의 증가하는 무정부성, 둘째는 미래 사회 질서의 긍정적 맹아를 창출하는 생산 과정의 사회화의 증대, 셋째로 다가올 변혁의 실천적 요소를 형성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증가하는 조직과 계급의식이다. 베른쉬타인의 이론은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 있다. 사회주의 변혁은 자본주의 질서가 발전함에 따라 깊어지는 내적 모순으로 일어나며, 자본주의 질서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붕괴할 것이다. 이 경우 적응 수단들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붕괴 이론이 옳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정설로서 베른쉬타인이 택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다. 그러나 또 다른 길에 따르면, ‘적응 수단’이 실제로 존재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상태에서 모순을 억누름으로써 자본주의를 지속하게 만든다. 이 경우 사회주의는 더 이상 역사적 필연성이 될 수 없다.

 

○ 자본주의의 적응

베른쉬타인이 자본주의 적응 능력으로 제시한 신용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력의 확장 능력을 키우고, 교환을 쉽게 만든다. 무한히 확장하려는 자본주의 생산의 내재적 경향이 자본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다는 사적 소유의 한계와 충돌할 때 신용은 이 한계를 극복하는 수단이다. 여러 사적 자본을 하나로 통합해 주는 주식회사로 만들고, 한 자본가가 다른 자본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나아가 신용은 상업신용으로서, 상품의 교환과 자본이 생산으로 이어지는 속도를 앞당김으로써 생산 과정의 전체 주기를 촉진한다. 그러나 신용이 과잉 생산을 낳으면, 위기(공황)의 시기 동안 신용은 유통의 수단으로서 신용이 스스로 창출한 생산력을 더 철저하게 파괴하고 무너져 버린다. 따라서 신용은 위기를 없애거나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히 강력한 요소다. 한마디로 신용은 자본주의 세계의 근본적 모순을 재생산하는, 자본주의의 적응 수단이 아니라 파괴 수단이다. 두 번째로 베른쉬타인이 생산을 규제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 상태를 막고 위기를 제거한다는 카르텔, 트러스트 등의 기업가 조직이라는 적응 수단을 보자. 그러나 이러한 조직은 특정 산업 부문에서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이 분야 내의 경쟁을 제거하는 것인데, 이것은 일반화될 수 없다. 이것은 신용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내적인 모순을 성숙하게 하고 결국에는 자본주의 모순을 심화시키는 특정한 발전 단계(독점)이다. 또한 사람들은 1873년 이후 장기 호황에 대해 10년 주기의 공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자본주의가 일정하게 적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맑스의 ≪자본론≫이나 엥엘스의 ≪반듀링론≫에서 제시한 맑스주의의 위기론은 단지 모든 위기의 내적 메커니즘과 근저에 놓인 일반적 원인을 밝히고 있다는 것이지, 그 주기가 10년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1907년과 1908년 심각한 위기가 날뛰었던 곳은 신용과 통신사, 트러스트가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였다.

 

○ 사회 개혁을 통한 사회주의의 도입

베른쉬타인에게 노동조합, 사회 개혁, 국가의 정치적 민주화. 이것이 사회주의를 점진적으로 도입하는 수단이다.

먼저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에게 자본주의 임금 법칙, 즉 특정 시점의 시장가격에 따른 노동력의 판매를 실현시키는 수단이다. 노동조합은 최선의 경우에라도, 특정 시점의 ‘정상적’ 한계를 자본주의적 착취에 부과할 수 있을 뿐이며, 결코 그 착취 자체를 점진적으로라도 철폐할 수는 없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활동은 무엇보다 임금 투쟁과 노동 시간 단축, 즉 각각의 시장 관계에 따라 자본주의의 착취를 규제하려는 것에 제한된다. 또한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노동조합의 투쟁은 이중적으로 어려워진다. 첫째로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현재보다 점점 더 느리게 증가하는 반면, 공급은 더 급속히 증가한다는 점에서 객관적 상황은 노동자에게 더 어려워진다. 둘째로 이윤을 늘이기 위해 임금을 제한하려고 한다.

사회 개혁을 말할 때 베른쉬타인은 공장법을 ‘사회적 통제’의 일부이며, 그 자체로 사회주의의 한 부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적 통제’라고 부르는 것들(노동자 보호법, 주식회사에 대한 감독 등)은 자본주의의 소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것의 보호를 위해 기능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말한다면 ‘사회적 통제’는 자본주의 착취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 착취 질서를 규범화하는 것이다.

 

○ 관세 정책과 군국주의

사회주의를 점진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베른쉬타인의 다른 전제는 국가가 사회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계급 국가이다. 부르주아의 정치적 승리와 함께 국가는 자본주의적 국가가 되었다. 오늘날 국가는 지배적인 자본가계급의 조직이다. 오늘날의 관세는 더 이상 발전하는 한 자본주의의 생산을 더 성숙한 다른 나라의 생산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이 아니라, 한 나라의 자본가 집단을 다른 집단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오늘날 자본가계급에게 군국주의는 세 가지 의미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첫째 다른 민족 집단과 서로 경쟁하는 민족 이해관계의 수호를 위한 투쟁 수단으로, 둘째 금융 자본뿐만 아니라 산업 자본의 가장 중요한 투자 수단으로, 셋째 국내에서 노동 계층에 적대적인 자본의 지배를 위한 도구로 군국주의는 꼭 필요하다.

사회 발전과 지배계급의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국가는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 의회에서 사회민주주의가 다수를 획득하면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를 도입할 수 있다는 주장은 국가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장이다. 민주주의라는 형식은 전체 사회의 이해관계를 국가 조직 속에 표현하는 데 기여하지만, 그러나 그 사회는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 즉 자본가의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형태에 있어서는 민주주의적 제도일지라도 내용에서는 지배계급의 도구가 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즉 민주주의가 자신의 계급적 성격을 부정하고 실질적으로 민중의 이해관계를 위한 도구로 변화되는 경향을 지니자마자, 민주주의적인 형식 자체도 부르주아와 그들의 국가 기구의 대변자들에 의해 희생된다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에 관한 이론은 자본주의 소유와 자본주의 국가의 점진적 개혁이라는 주장에 이른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생산 과정은 점점 더 사회화되고 있으며, 생산 과정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적 소유는 점점 더 폐쇄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것이 되며, 국가의 통제는 점점 더 배타적 계급 이해에 의해 침윤되고 있다.

 

○ 수정주의의 실천적 결과와 일반적 성격

통상적 관점에 따르면, 노동조합의 투쟁과 (의회주의적) 정치 투쟁의 사회주의적 의미는, 그 투쟁이 사회주의 변혁의 주관적 요소인 프롤레타리아를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준비시킨다는 것이다. 베른쉬타인에 따르면, 노동조합의 투쟁과 (의회주의적) 정치 투쟁의 사회주의적 의미는, 그 투쟁이 자본주의의 착취 자체를 점차 제한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성격을 빼앗는 대신 사회주의 성격을 각인시킨다는 것, 즉 한마디로 말해 객관적 의미에서 사회주의적 변혁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당내 통상적인 견해에서는, 노동조합의 투쟁과 (의회주의적) 정치 투쟁을 통해서는 자신의 상태를 토대로부터 변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확신, 따라서 정치권력을 최종적으로 장악해야만 한다는 확신으로 프롤레타리아를 이끈다. 베른쉬타인의 견해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함으로써, 결국 오로지 노동조합 투쟁과 (의회주의적) 정치 투쟁을 통해서만 사회주의 질서를 이룰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실제 자본주의 발전에 비추어 볼 때, 베른쉬타인의 사고방식은 어떻게 설명되고 그 특징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적응 수단에 대한 그의 경제적 이론들은 개별 자본가의 사고방식을 이론적으로 일반화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부르주아 속류 경제학의 본질이고 특징적 표현이다. 이 학파의 모든 경제적 오류의 근거는 바로 개별 자본가의 눈을 통해 본 경쟁이라는 현상을 자본주의 경제 전체의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속류 경제학은 자본주의 현상 속에서 자본주의의 해악을 치유하는 해독제를 찾는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고찰하면 베른쉬타인의 수정주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자본주의의 퇴락에 관한 속류 경제학 이론에 기초한, 사회주의 퇴락에 관한 이론이다.

 

2) 제2부
― 베른쉬타인의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 1899에 대해 비평한 글

 

○ 경제 발전과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계급 투쟁이 발전하는 가운데 이룩한 가장 커다란 성과는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토대를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관계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는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눈앞에 아른거린 하나의 ‘이상’에서 역사적인 필연성이 되었다. 베른쉬타인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독일의 산업 통계를 비교하면서 산업이 급격하게 집중화되고 있다는 것만을 부인한다. 주식회사의 통계를 제시하면서 주식 소유자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베른쉬타인은 주식회사라는 경제 현상을 자본의 통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해체로 이해한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속류 경제학적 오류 때문이다. 베른쉬타인은 자본가를 생산 범주가 아니라 소유권 범주로, 경제 단위가 아니라 조세 정책 단위로 이해하고, 동시에 자본을 생산 총체가 아니라 화폐 자산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즉 자본가라는 개념을 생산관계에서 소유관계로 옮겨놓고, ‘기업’ 대신에 ‘인간’을 말하고, 또한 사회주의 문제를 생산 영역에서 재산관계 영역으로, 다시 말해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빈부의 관계로 옮겨놓고 있다.

베른쉬타인은 맑스의 노동가치의 법칙이 단순히 하나의 추상이며, 분명 정치경제학에서 모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맑스의 경제학적 체계를 어느 정도 신뢰하는 사람에게 분명한 것은 가치 법칙 없이는 맑스의 전체 체계가 전혀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품의 본질과 교환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본주의 경제 전체와 자본주의적 관계는 분명 비밀로 남게 된다. 맑스가 이 비밀을 풀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 경제를 역사적 현상으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특히 과거로부터 파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시에 미래의 관점에서도 파악하는 것이다.

 

○ 경제적 민주주의(노동조합, 협동조합)와 정치적 민주주의

베른쉬타인은 노동조합을 통해 산업이윤을 억제하고, 협동조합을 통해 상업이윤을 없애는 것에 의해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제1부에서 다루었고, 여기서는 협동조합에 대해 살펴본다. 협동조합 특히 생산협동조합은, 그 본질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중간적인 존재이며, 자본주의 교환 속에 있는 사회화된 소규모 생산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교환은 생산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또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이 무자비하게 착취하도록 한다. 교환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생산 과정을 완전히 지배하도록 만든다. 실제로 이것은 가능한 한 노동 강도를 높이고, 시장 상황에 따라 노동을 줄이거나 늘이며, 또 판매 시장의 요구에 따라 노동력을 고용하거나 해고해야 하는 필연성에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자본주의 기업을 경쟁력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생산협동조합의 경우, 노동자들은 모순에 빠지게 되는데, 노동자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완전한 절대 권력으로 통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며, 자기 자신에 대립해서 자본주의 기업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생산협동조합은 자본주의 기업으로 전환되든지 해체되는 식으로 소멸한다. 생산협동조합이 소비자연맹과 연결되어 가장 유리한 경우일지라도 지역적인 소규모 판매와 직접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소수의 생산물에 의존한다. 자본주의 생산의 결정적인 영역, 섬유, 석탄, 금속, 석유, 기계, 철도, 조선 산업 등은 소비자연맹이나 협동조합에서 처음부터 배제된다. 따라서 사회주의 개혁을 위한 베른쉬타인의 두 가지 수단인 협동조합과 노동조합은 전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된다.

베른쉬타인은 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투쟁을 포기하고, 자본주의적 분배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이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생산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분배가 아니라 오로지 상품 생산 자체를 지양하는 것을 목표로 투쟁한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을 폐기함으로써 사회주의적으로 분배하고자 한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이 수정주의 이론의 경제적 토대라면, 그의 이론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전제는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진보하리라는 것이다. 베른쉬타인이 증명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 노동 운동의 폐지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생존 조건과 사회적 전제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며, 사회주의 노동 운동이 현재 사회의 내적인 발전 경향의 직접적 산물인 만큼 이러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이 발전 경향에 모순된다는 점이다. 부르주아 자유주의가 진보하는 노동 운동과 그 최종 목표에 대한 경악으로 인해 숨이 끊어졌다는 사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올 수 있을 뿐이다. 즉 사회주의 노동 운동이 바로 오늘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유일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운동의 운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민주주의 발전의 운명이 사회주의 운동에 연결되어 있다. 또한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이 해방 투쟁을 포기하는 경우가 아니라, 반대로 사회주의 운동이 세계 정책과 부르주아의 이탈이 가져오는 반동에 대항해 강력히 투쟁할수록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강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사회주의 운동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강화되기를 원해야 하며, 따라서 사회주의를 위한 노력은 포기한다는 것은 노동 운동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포기하는 것이다.

 

○ 정치권력의 장악

민주주의의 운명은 노동 운동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최선의 경우, 국가 권력의 장악 또는 정치권력의 탈취를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필요 없거나 불가능하게 되는가? 베른쉬타인은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블랑키주의적 폭력 이론이라고 비난하는데, 수백 년 이래 인류 역사의 축이며 추동력인 것을 블랑키주의적인 오산으로 여기고 있다. 계급 사회가 존재한 이후, 또 이 사회의 역사를 만드는 본질적인 내용이 계급 투쟁인 이래,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항상 상승하는 모든 계급의 목표였을 뿐만 아니라, 각 역사적 시기의 출발점이면서 종착점이었다. 베른쉬타인처럼 법률 개혁과 혁명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서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연맹에서 계피와 후추를 달아보는 식의 안이한 태도이다. 법률 개혁과 혁명은 뷔페에서 따뜻한 소시지나 차가운 소시지를 고르듯, 역사의 뷔페에서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역사 발전의 서로 다른 방법이 아니라, 계급 사회가 발전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계기들이다. 법률 개혁 작업을 단순히 넓은 의미의 혁명으로, 또 혁명을 응집된 개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완전히 비역사적인 인식이다. 사회 변혁과 법률 개혁은 시간의 지속성이라는 면에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계기다. 양적 변화가 단순히 새로운 질로 전화된다는 것, 구체적으로 역사의 한 시기, 한 사회 질서가 역사의 다른 시기, 다른 사회 질서로 이행하는 것에 바로 정치권력을 이용한 역사적인 변혁의 비밀이 모두 들어 있다. 따라서 정치권력 장악과 사회 변혁 대신, 그리고 이에 대립해서 법률 개혁의 길을 찬성하는 사람은 실제로 같은 목표에 이르는 더 조용하고 확실하고 시간이 걸리는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목표를 택한 것이다. 임금 노예제가 법률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법률 개혁으로 임금 노예제를 폐지할 수 있겠는가?

부르주아 의회주의의 형태에서는 계급 대립과 계급 지배가 없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발전하고 폭로된다. 한편 노동자계급에게 민주주의가 꼭 필요한 이유는 첫째,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 사회를 변혁시키는 출발점이면서 원칙으로 사용하게 될 정치 형태들(자치, 선거권 등)은 민주주의가 창출해 내기 때문이다. 둘째, 오로지 민주주의에서만,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만, 민주적인 법의 실행을 통해서만 프롤레타리아는 자기 계급의 이해관계와 역사적 의무를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그것이 프롤레타리아가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이러한 권력 장악을 필수적이면서 동시에 유일하게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베른쉬타인은 오로지 프롤레타리아가 너무 일찍 정권을 장악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경고로 자신의 이론을 시작한다. 노동자 대중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개념 그 자체는 정치적으로 불합리한 생각이며, 이러한 생각은 사회 발전을 기계론적으로 인식할 때 발생하며 계급 투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특정 시점을 계급 투쟁의 외부에 그리고 계급 투쟁과는 독립적으로 전제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는 국가 권력을 ‘시기상조’와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장악할 수 없기 때문에, ‘시기상조의’ 권력 장악을 반대하는 것은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는 프롤레타리아의 노력 자체에 대한 반대이다.

 

○ 붕괴

베른쉬타인은 자본주의 붕괴론을 포기하면서 사회민주주의 강령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가 붕괴하는 것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초석이기 때문에 이러한 초석을 제거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사회주의에 관한 베른쉬타인의 모든 견해를 붕괴시킬 수밖에 없다. 현 사회에서 최종 목표를 규정하지 않고, 또 경제적 토대 없이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투쟁이 수행될 수는 없다. 베른쉬타인은 유물론적 역사관을 포기한다. 우리 사회에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위해서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를 포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 최종 목표가 없다면 어떤 운동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는 운동 자체도 포기하는 것으로 끝난다. 맑스의 경제 체계와 결별할 것을 맹세한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해방시키기 위한 학문적 기초를 부르주아 옹호론과 바꿔치기하는 것이다. 베른쉬타인의 사유 방식은 그가 가지고 있는 부르주아 세계관을 가장 날카롭고도 확실하게 보여 준다. 베른쉬타인은 ‘시민’이라는 말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모두를 무차별적으로, 즉 인간 그 자체로 이해하는 데, 실제로 그에게는 인간 그 자체가 부르주아로, 인간 사회가 부르주아 사회와 같은 것이 되었다.

 

○ 이론과 실천에서의 기회주의

베른쉬타인의 책은 독일 노동 운동과 국제 노동 운동에서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지녔다. 이것은 사회민주주의 내의 기회주의 조류들에게 이론의 바탕을 제공하는 최초의 시도였다. 기회주의적 조류의 외적 특징은 ‘이론’에 대한 적개심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당연한데, 왜냐하면 우리의 ‘이론’, 즉 과학적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들은 실천적 활동에서 지향하는 목표뿐만 아니라 사용되어야 할 투쟁 수단과 투쟁 방식 자체도 매우 단호하게 한정한다. 이론은 모든 실천적 시도에서 기회주의자들의 머리에 타격을 가했다. 맑스의 이론은 기회주의를 이론적으로 논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맑스의 이론만이 기회주의를 당이 발전하는 데서 나타나는 역사적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실상 승리를 향한 프롤레타리아의 세계사적 전진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역사상 최초로 대중이 스스로 모든 지배계급에 대항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야만 하며, 이 의지를 현 사회의 저편으로, 즉 현 사회를 초월해 나아가야 한다는 데 이 운동의 모든 특수성이 있다.

구체적인 당 실천의 경우에 기회주의적인 조류가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한에서는 여전히 이 조류의 배후에 무언가 진정한 이론적인 토대가 있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조류가 베른쉬타인의 저서에서 온전히 표현되면서, 모든 사람이 당황해서 다음과 같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 “아니, 그것이 너희가 말하려고 한 전부였단 말인가? 새로운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지 않은가! 맑스주의가 이미 수십 년 전에 짓밟아 박살내고 경멸하고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만든 생각뿐이라니.” 기회주의는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말했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이것이 베른쉬타인의 저서가 당 역사에 가지는 진정한 의미이다.

 

 

3. 글을 마치며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1899)를 통해 수정주의와 맞서 싸운 맑스ㆍ엥엘스의 계승자였다. 그리고 1905년 러시아 혁명을 경험하고 쓴 ≪대중 파업론≫(1906)에서 독일 사민당과 노동조합의 관료주의에 맞서 노동자 대중의 자발성과 역동성을 강조했다. 1906년에서 1913년까지 독일 사민당의 활동가 학교에서 정치경제학을 강의하면서, 맑스의 ≪자본론≫ 제2권을 비판하는 ≪자본축적론≫(1913)을 발표했다. “맑스는 재생산표식론에서 사회의 전체 생산을 제1 부분인 생산수단 생산 부분과 제2 부분인 소비수단 생산 부분으로 나누고 이를 통해 단순재생산과 확대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런데 로자는 맑스의 표식을 비판하면서 잉여 생산물의 판로를 스스로는 자본주의적으로 생산하지 않은 제 사회층이나 제 사회에서 구하고, 이것에 의해 제국주의 기초의 건설을 자본축적의 제 법칙에서 도출하려고 한다. 로자는 자본주의 자체 내의 적대적 계급모순을 포착하려고 하기보다는 비자본주의적 환경의 소멸로 자본주의 붕괴를 예측했다.” (백철현, “로자 룩셈부르크 사상으로부터 계승할 것과 극복할 것”, ≪로자 룩셈부르크(현대사상 제22호)≫, 현대사상연구소, 2019에서 인용.)

로자가 이 책을 발표할 당시에 베른쉬타인의 수정주의는 당내에서 축출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10년이 되자 당 지도부는 이미 베른쉬타인의 수정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에 로자는 독일 사민당의 지도부와 결별하고 1913년부터 전쟁과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게 된다. 감옥 안에서 쓴 ≪사회민주주의의 위기(유니우스 팜플렛)≫(1915)를 통해 독일 사민당의 공식적 입장과 로자 룩셈부르크, 칼 리프크네히트, 클라라 쩨트킨 등 자신들의 입장은 다르다는 것을 해외에 알리려고 했다. 로자는 레닌의 당 조직론을 초중앙집권제라고 비판하였고, 러시아 혁명에서 민족 자결권에 반대하였고, 농업 문제에서는 즉각적인 집산화를 도입하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로자의 당 조직론에서의 대중추수주의와 민족 문제와 농업 문제에서의 좌익적 오류에 대해 반레닌주의 투쟁이라고 치켜세우는 이들이 있다. 맑스주의를 비난하는 이론적 기회주의의 흐름은 맑스와 레닌을 대립시키고 나아가 맑스와 엥엘스를 대립시키고 더 나아가 청년 맑스와 노년 맑스를 대립시킨다. 로자를 레닌과 대립시키는 것도 마찬가지 방법이다. 그러나 레닌은 로자를 이렇게 평가했다. 독수리는 때로는 닭보다 낮게 날지만, 닭은 결코 독수리의 높이에 이를 수 없다. 로자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로자는 독수리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레닌에 대한 로자의 비판과 이에 대한 레닌의 반비판은 사회주의자들의 이론적 논쟁이었으며 로자가 먼저 죽지 않았다면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었다고 본다. 실제로 50만의 합법적 대중 정당인 독일 사민당을 나와 독립사회민주당과 스파르타쿠스단을 거쳐 독일 공산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로자는 이미 실천적으로는 레닌의 당 조직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독일 공산당을 창당한 지 2주 만에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는 우파 사민주의자가 거리의 깡패들과 퇴역한 군인들을 끌어모아 조직한 우파 민병대인 ‘자유군단’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하였다. 1918년 제국주의 전쟁을 거부한 수병들의 반란에 의해 촉발된 독일 혁명은 실패하였다. 독일은 황제 빌헬름 2세를 퇴위시키고 공화국을 선포하고 혁명에 참가한 수많은 활동가들에 대해 테러를 감행하고 시민들을 폭행하고 살인을 저지르면서 혁명을 진압하였다. 이렇게 등장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1871-1925)는 당시 독일 사민당의 당수였다. 독일 사민당이 제국주의 전쟁에 찬성한 공범자로서 전쟁 범죄자를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형식적으로 훌륭한 민주주의적 헌법이라고 일컬어지는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도 불구하고 구체제의 행정 조직, 군대 조직, 사법 기구들이 그대로 남아 혁명의 적들에겐 관대한 반면, 혁명의 주역들에겐 엄혹했다. 에베르트 정부가 내건 ‘평화와 질서’라는 구호는 현재까지도 독일 사민당의 정책연구소인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으로 이어져서 2017년 한국의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에게 에베르트 인권상을 수여했다. 한국의 ‘촛불 시위’가 에베르트 재단의 ‘평화와 질서’에 너무나 부합했기 때문이다. 독일 사민당의 바이마르 공화국은 구체제를 청산하지 못하고 타협함으로써 나찌가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두 번째 대통령인 힌덴부르크는 융커 출신으로 구프로이센-신분제적 사유의 대변자였다. 그는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으로 비상명령권을 발동하여 의회를 해산하고 나찌를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찌는 1925년 패전의 책임을 등 뒤에서 꽂은 단검, 즉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등 뒤에서 칼을 찌른 탓이라는 책임론을 유포했다. 독일을 전쟁으로 몰고 간 자들이 아니라, 전쟁에서 지게 만든 자들이 국민을 고통에 빠뜨린 주범이 되었고, 그들을 향해 적의와 분노를 표출하게 했다. 나찌는 삶에 지친 대중들의 분노를 이런 방향으로 조절하는 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로자 사후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내용은, 채효정, “누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죽였는가”, ≪로자 룩셈부르크(현대사상 제22호)≫에서 발췌해서 인용.)

 

폴란드 출신의 로자 룩셈부르크가 독일 사민당에서 주요한 활동을 하고, 당의 활동가 학교의 강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클라라 쩨트킨(1857-1933)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로자가 우익 민병대에 의해 살해당한 것을 알게 된 클라라는 로자의 글들을 모아서 자료화 하고 위대한 혁명가 로자를 기억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수정주의 반대, 제국주의와 전쟁 반대만이 아니라 여성 해방의 문제에서도 그들은 특별한 동지였다.

 

오늘날에는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수정주의와 개량주의가 만개하고 있다. 혁명에 대한 과학적 사회주의의 원칙들을 로자의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나의 부족한 서평에 만족하지 말고 동지들이 더 꼼꼼하게 읽고 연구하기를 바란다.

노사과연

 

 

[참고 자료]

로자 룩셈부르크,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김경미ㆍ송병헌 역, 책세상, 2002.

홍승용ㆍ백철현ㆍ채효정 외, ≪로자 룩셈부르크(현대사상 제22호)≫, 현대사상연구소, 2019.

김성민, “로자 룩셈부르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오월의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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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옥 부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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