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4・15 총선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문영찬 │ 연구위원장

  1. 415 총선과 자유주의의 헤게모니

 

4・15 총선의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였다. 정권 심판론을 내세웠던 미래통합당은 개헌 저지선을 간신히 넘기는 패배를 하였다. 그리고 민생당, 국민의 당 등 중간세력들이 의석을 얻지 못하거나 미미한 정도로 의석을 획득하여 그 정치적 의미가 격감되었다. 진보정당이라 규정되는 정의당은 정체, 사실은 후퇴를 하였고 민중당, 노동당 등은 의미 있는 선거 결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러한 선거 결과에 대해 부르주아 언론들은 소선거구제 하에서 양당 정치의 강화라고 분석하고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 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고 미래 통합당이 패배하였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뿐만 아니라 같은 소선구제 하에서 치러졌던 20대 총선에서 중간 세력들이 상당한 득표를 했던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번 선거는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웬만한 정치적 쟁점들이 모두 묻히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이 다른 정치적 쟁점들을 압도한 선거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이 국제적 호평을 받으면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간 것이 선거에 반영되어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은 현상은 설명하지만 4・15 총선을 둘러싼 정치적 구도와 그 결과의 정치적 함의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우연한 현상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다는 것은 우연은 설명할지언정 그러한 우연 속에 관철되는 필연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정세는 우연 속에 관철되는 필연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총선 결과를 가져오게 한 필연적 원인이 무엇인가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총선 결과를 가져온 정치적 구도는 촛불 시위와 박근혜에 대한 탄핵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압도적 다수의 민중이 반파쇼 투쟁에 나서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촛불 시위의 구도, 파시즘 세력, 반동 세력에 대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반대의 구도가 이번 총선에도 여전히 관철된 것이 더불어민주당의 승리, 미래통합당의 패배의 근본 원인이다. 반동 세력은 지난 조국 사태를 계기로 촛불 시위에서 형성된 정치적 구도를 변경시키고자 했으나 이 구도의 변경에 성공하지 못했고 반동이냐 민주주의냐의 구도가 이번 총선에서도 여전히 관철되었던 것이다. 즉, 이번 총선은 촛불 시위에서의 구도가 반영된 선거였다.

그런데 이번 총선 과정에서의 높은 투표율 그리고 수도권 등 곳곳에서 치열한 경합은 촛불 시위 이후의 구도 속에서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사실 문재인 정권은 촛불 이후 철저히 민중 배신적인 길을 걸어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는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라는 기만으로 귀결되었고,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로 머물러 있으며, 세월호의 진상규명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의 폐지 등 민주주의의 확대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한국 사회의 실질적 지배계급인 재벌들, 독점자본들은 문재인 정권 하에서 고속으로 성장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재인 정권이 조삼모사 정권이라는 것, 이미지 정치에 능숙하다는 것, 독점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정권이라는 것이 일정하게 폭로되어 왔고 그리하여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은 하강하는 추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9년 하반기를 달군 조국 사태는 진보를 내세우면서도 특권적 삶을 살아가는 자유주의 세력의 실체를 폭로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계급 모순이 주요 모순임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자유한국당, 검찰, 부르주아 언론은 이러한 쟁점을 비틀며 자유주의 세력을 탄핵함을 통해 촛불 시위에서 형성된 정치적 구도를 뒤엎고자 했다. 조국씨의 법무장관직 사퇴, 조국씨와 그 가족에 대한 검찰의 기소 등으로 반동 세력은 득의양양했으나 이번 총선의 결과는 조국 사태가 노동자와 민중들의 반파쇼 의식을 결코 바꾸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즉, 노동자와 민중들은 진보를 내세우는 자유주의자들의 특권층으로서의 삶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그를 빌미로 한 반동세력의 강화에는 반대한다는 정치적 의사를 이번에 명확히 표현한 것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우연적인 상황의 전개는 단지 이러한 정치적 결과의 형성과 표출에 있어서 촉매 작용을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은 총선 이후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처지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문재인 정권이 사실상 무시하고 기만으로 일관해왔던 민중들의 정치적 열망이 이번 총선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만적인 개혁의 제스처를 제외하면 미래통합당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민중 배신의 길을 걸어 갈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은 총선 직후부터 협치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는 포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들의 통치에 있어서 민중들에 대한 기만이 통하지 않으면, 폭력으로써 노동자와 민중을 지배하겠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국면에서 세계 경제공황이 심화되는 추세여서, 자본가계급이 위기의 극복을 위해, 이른바 ‘협치’를 통한 자본가계급의 양대 분파의 단결을 도모하여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구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비록 소선구제 하에서이지만 민생당, 국민의 당 등의 정치적 위상의 격하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및 민중의 계급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계급 대립의 심화의 결과 중간 세력의 입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정의당의 침체, 민중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들의 부진은 소부르주아 정치세력의 축소와 침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진보정당들은 민주노총과 더불어 사회민주주의적 체계를 구성해 왔는데 이들의 정치적 한계가 이번 총선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서유럽에서는 사회민주당과 산별노조가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한국의 경우 진보정당-민주노총의 체계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운동이 후퇴하고 노동자계급이 계급으로서 해체되는 길을 걸어왔는데, 노동자계급의 계급으로서의 해체의 결과 이들 진보정당들 또한 지리멸렬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특히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협조하는 길, 계급 협조의 충실한 한 축이었는데 그것은 노동운동과 노동자계급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부속물로 전락시키는 것이었다.

총선 결과를 논하면서 부르주아 언론들은 한국 정치의 주류의 교체, 박정희 프레임의 몰락을 이야기 한다. 자유주의 세력의 이러한 섣부른 판단은 이들이 민중 배신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감추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유주의 세력은 박정희 프레임 즉, 한국 사회의 파쇼적 질서와 싸울 의사가 없으며 이 질서와 타협하여, 협치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강화하려는 세력이다. 자유주의 세력은 국가보안법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자 탄압법으로서 국가보안법을 유지시키는 것이 민중 기만적인 자유주의의 실체에 대한 폭로를 저지시켜주고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의 발전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에서 일정한 진보적 역할을 했던 때가 있었다. 봉건제에 맞서 부르주아 혁명을 할 당시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 사상의 자유 등을 기치로 했고 실제로 혁명의 지도적 사상으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 노동자계급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고 계급투쟁이 발전하자, 자유주의는 그 진보적 성격을 상실하고 소유의 보전에 치중하게 되었으며 자유와 평등의 구호는 형식적 구호로 전락하여 빛이 바래게 되었다. 심지어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수용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되었을 때조차 자유주의세력에게 민주주의는 자본가계급의 착취의 현실을 가리는 외피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것이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의 본성인데, 한국의 자유주의는 역사적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는 전제에서 발전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고, 자유주의 세력과 군사파쇼 세력의 타협의 결과 국가보안법이 온존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반하는 국가보안법이 끈질기게 남아 있는 것은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이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제로 하는 자유주의 세력이라는 점이 커다란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총선 결과 강력한 헤게모니를 행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의 헤게모니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삶의 실질적 개선에 기초한 헤게모니가 아니라 기만에 기초한 헤게모니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진보에 대한 전망이 결여된 헤게모니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이 계급 협조의 길을 거부하고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한국 사회의 변혁의 전망을 수립해 간다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의 헤게모니에 지나지 않는다.

 

  1. 415 총선과 계급투쟁의 조건

 

4・15 총선은 촛불 시위의 구도가 반영된 선거였고 그 결과 자유주의의 헤게모니가 강화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것은 노동자계급이 투쟁역량은 강력하나 정치적 역량은 취약하다는 현실,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 의식은 강하나 계급으로서는 해체되어 왔다는 현실, 노동자계급이 계급으로서 단결하기 위한 사상적, 정치적 구심으로서 사회주의 전위당이 부재했다는 현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겉으로는 진보를 내세우고 있으나 진보의 실질이 결여되어 있으며, 자유주의로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통하여서는 노동자와 민중의 삶이 개선될 수 없고 오히려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자유주의의 헤게모니를 한계지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주의 세력은 반동적 세력과 이른바 협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가계급의 분파들 간의 단결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가계급의 특정 분파의 지배가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보편적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자본가계급 분파 간의 권력의 일정한 분배가 가능하고 자본가계급 공통의 이익에 대해 보편적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자유, 평등의 구호 아래 자본가계급의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하에서 자본가계급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정도는 과거에 비해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노동법의 개악은 자본의 억압의 증대의 단적인 예인데,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자를 조합원에서 배제하는 것, 노조 임원의 자격을 제한하는 것,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늘리는 것 등등 노동운동의 숨통을 죄어오는 이 모든 억압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제도로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노동법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 부르주아 국가의 모든 영역, 제도에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종속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것이 전제로 되어 있다.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로는 노동자계급의 고유한 이익, 계급적 이익이 전혀 담보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고유한 이익, 계급적 이익을 표현하는 사회주의 이론이 필요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담보하는 사회주의 전위당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계급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다. 하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용해되어, 계급으로서는 해체되어, 민주주의적 시민으로서 자본에 종속된 노동의 삶을 살 것인가, 즉, 자신의 삶의 에너지를 쏟아 부어서,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자본의 착취의 사슬을 강화시키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계급적 단결에 기초하여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삶, 계급이 철폐된 사회에서의 삶을 추구할 것인가가 그 두 갈래의 길이다. 전자는 계급으로서 해체된 삶이며, 잘 해야 계급 협조로서의 삶이다. 그리고 후자는 계급투쟁으로서의 삶이고 해방 세상을 향해, 사회주의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삶이다. 그리고 전자는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부속물로 전락하는 삶이고, 후자는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자신의 고유한 이익, 계급적 이익을 실현해 가는 삶이다. 간단히 말해 노동자계급은, 노동운동은, 자유주의 세력의 헤게모니 하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부속물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사적 소유의 철폐, 계급대립의 철폐를 목표로 계급투쟁의 길을 걸을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이와 같이 4・15 총선의 결과 형성된 정치적 지형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으로서의 해체를 완성시키고 노동자계급과 노동운동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부속물로 전락시킬 위험을 증대시키고 있다. 단적으로 총선이 끝나자마자 민주노총 위원장은 경제 위기로 인한 해고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문재인 정권과 노사정 회의를 할 것을 주장하고 있고 부르주아 언론들은 사회적 협약 운운하고 있다. 즉, 부르주아 언론과 노동운동의 지도부 상당수는 계급 협조의 길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신의 길이며, 노동자계급의 해체를 가속화하는 길이다. 만약 노동자계급이 계급 협조의 길을 지속적으로 걷는다면, 그 알량한 민주주의의 틀마저 어느새 사라지고 박근혜 정권에서 보았던 파쇼적 지배에 처하게 될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쳐, 이명박, 박근혜에 이르렀던 경과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노동자계급은 민주주의의 공기를 마시지 않고는, 민주주의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숨을 쉴 수 없고 투쟁을 전개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주의가 노동자계급만의 무기가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무기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하에서의 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놓친다면, 소위 민주적 시민으로 머무는 데 만족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외피 속에서 굴종의 삶, 노예의 삶을 사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용해되지 않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삶에 대한 전망을 갖기 위해 사회주의 이론이 필요하며,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전위당을 가져야만 한다.

총선에서 드러난 노동자와 민중의 의식은 반파쇼 의식, 민주주의 의식은 강하지만 사회주의 의식, 계급적 의식은 희박하며, 자유주의 세력이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개선할 의지와 능력이 부재한 세력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의식적 활동이 요구되며, 사회주의자들이 자유주의를 비롯한 부르주아 정치의 본질을 폭로하고 노동자계급을 사회주의적 의식으로 이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사의 전개 자체가, 자유주의 정치의 모순을, 즉, 겉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장엄한 구호를 내세우지만 실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가장 철저히 관철하는 자유주의 정치의 모순을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드러낼 것이며, 노동자계급은 계급투쟁의 주역으로서 자신의 본질을 서서히 체현해 갈 것이다.

 

 

  1.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의 조건들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부속물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사적 소유의 폐지, 계급 대립의 철폐를 향한 해방의 길을 걸을 것인가는 현 단계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의 문제로 귀착한다. 노동자계급이 투쟁 역량은 강하지만 정치적 역량이 취약한 현실을 극복하는 것,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용해되지 않고 계급적 단결을 강화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은 현 단계에서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을 세우는 문제를 의미한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에 맞서 자신의 독자성을 가지려면 우선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독자성을 가져야 하며, 그것은 과학적 사회주의, 맑스-레닌주의를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모든 것을 노동자계급이 생산하지만, 그 생산의 결실은 자본가에게 귀속된다는 점,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익은 근본적으로 적대한다는 점, 이러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대립은 자본주의의 틀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오직 계급 대립을 철폐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극복 가능하다는 점을 노동자 대중과 전 민중에게 선전, 선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의 기치와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할 때만, 자본가계급에 대해 계급으로서 맞설 수 있으며, 조합주의적 단결을 넘어서는 계급적 단결을 실현할 수 있다. 자본가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하에서 노동자계급을, 심지어 계급투쟁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종속을 전제로 하는 인정이며,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자본주의의 틀을 넘어서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계급투쟁을 체제 내화하기 위하여 인정하는 것일 따름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은 노동자계급이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서, 사회적 영역에서 해방을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사회적 해방,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계급의 철폐가 자신의 본질적 목표라는 점을 선전, 선동해야 하며, 이를 위하여 정치 영역에서 지배계급으로 올라서는 것, 즉,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통해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해방, 계급 대립의 폐지를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 독자성을 넘어서는 정치적 독자성이 필요하다. 사상, 이데올로기의 영역을 넘어서서 현실적인 실천의 영역에서 독자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이데올로기적 독자성은 현실에 대한 개입의 가능성을 상실한, 죽은 이데올로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천, 정치의 영역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은 정치적 전략과 전술, 정치적 당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정치적 독자성은 노동자계급이 정치권력의 장악을 위한 길에 독립하여 선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를 위해서는 정치권력에 다가서기 위한 방향, 방침, 조직적 힘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주의 이론, 이데올로기적 독자성이 일정하게 정립되게 되면,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할 것은 사회주의 전위당을 건설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 전위당을 가질 때만 계급으로서 행동할 수 있게 되고 진정한 의미의 계급투쟁, 정치투쟁을 수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당을 가질 때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은 흔들림 없이 성립되게 되고 노동자계급은 해방의 길을 열어갈 수 있게 된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의 문제는 지난 촛불 시위, 그리고 4・15 총선에서 드러난 노동자 대중의 계급으로서의 해체와 사회주의 의식의 결여를 고려할 때 사활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기존에 노동운동에서 지배적이던 틀, 즉, 진보정당-민주노총이라는 틀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전혀 담보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꾸로 노동자계급의 시민으로의 해소, 노동자계급의 계급으로서의 해체를 이끌어 왔다는 점은 특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 물론 기존의 진보정당들은 사회주의적 지향을 표방했었고 부르주아 정당에 비해 진보적인 강령을 내세웠다. 그러나 사적 소유의 폐지, 계급 대립의 철폐를 분명히 하지 못하는 막연한 사회주의 지향이라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성의 정립의 측면에서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인해, 계급 대립의 현실에서 사회주의라는 말, 그러한 지향이 일정하게 나타나는 것은 필연이지만, 그러한 지향이 현실을 변혁하는 정치적 힘을 가지려면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내용을 가져야 하는데, 진보정당들의 막연한 사회주의적 지향은 오히려 자신들의 개량주의적 실천을 가리는 가림막으로 작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실천적으로는 진보정당-민주노총의 체계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사회민주주의적 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진보정당-민주노총 체계 하의 지난 20년은 노동운동의 조합주의, 경제주의로의 퇴락, 노동자계급의 계급으로서 해체의 과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계급은 이제는 과학으로서 사회주의를 자신의 내용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으로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에 대한 정확한 폭로를 수행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명확한 상을 가져야 하며, 현실 정치적으로는 과학적이고 변혁적인 정치적 전술을 가져야 한다.

 

 

  1. 현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의 과제들

 

현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의 으뜸의 과제는 문재인 정권의 계급 협조 공세를 저지하는 것이다. 지난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부결된 바가 있었던 경사노위 참가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고 또 계급 협조를 의미하는 사회적 협약을 체결하자는 공세, 유럽에서 있었던 사회민주주의적 계급 타협 체제를 형성하자는 공세가 거셀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계급 타협 체제는 당시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강대했던 것을 기초로 노동자계급을 혁명의 길에서 이탈하게 하고자 자본가계급이 양보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지금 현실에서 자본가계급의 양보가 가능할 것인가? 지금 정세에서 계급 타협은 자본가계급의 양보가 아니라, 오직 노동자계급의 굴종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과 노동운동 지도부 일부의 계급 협조 노선을 저지하고 계급적 단결의 추구에 기초한 투쟁 노선을 세우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 되었다.

둘째, 노동자계급은 국가보안법 철폐 등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이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 것은 계급적 한계는 있지만 민주주의의 후퇴의 저지, 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한 것이었다. 국가보안법은 노동자계급의 사상적, 정치적 성장을 가로막는 파쇼적 악법이라는 점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전선을 확대하고 전 민중적 쟁점으로 만드는 것을 통해 정치의 영역에서 자본가계급과 구분되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셋째, 코로나를 계기로 한 세계적 차원의 경제 공황의 상황에서 해고, 휴직, 임금 삭감 등 자본가계급의 공세에 맞선 투쟁 전선을 시급히 꾸려야 한다. 지금의 경제 공황은 코로나를 계기로 한 것이지만 자본주의의 모순, 즉, 생산의 무정부성과 과잉생산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자본주의 경제 공황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또한 일국적, 지역적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공황이라는 점에서 단기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 공황은 이른바 4차 산업 혁명, 무인화, 자동화의 추세 속에서 발발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본가계급은 공황으로 인한 위기를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업의 문제는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 가장 두드러진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넷째,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용해되지 않고 사상적, 정치적 독자성을 정립하기 위한 투쟁을 수행해야 한다.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과학적 평가를 통한 사회주의 기치의 재정립, 한국자본주의와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한 정치적인 변혁 노선의 정립,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정치의 구현체로서 사회주의 전위당 건설에 대한 전망 수립 등등, 자본가계급의 공세에 맞서 당장의 방어 전선을 꾸리는 것을 넘어 운동 전체의 전망을 확보하고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공세를 준비하는 전략적 성격을 갖는 과제들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4・15 총선의 결과, 즉, 자유주의 헤게모니의 강화, 진보정당의 정체 등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정치가 정립되고 수행될 것을 요청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의 헤게모니를 극복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적 전망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진보정당-민주노총의 사회민주주의적 체계를 넘어서는 계급투쟁의 전망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주의 정치의 모순이 폭로되고 세계적 차원의 경제 공황이 강제하는 계급투쟁이 성장하는 것에 비례하여, 노동자계급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영역에서 독자성을 확보하면서 해방의 전망, 계급 대립의 철폐의 전망을 개척해 가게 될 것이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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