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후퇴하는 민주노총의 임금정책 비판

박문석 │ 연구위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는 그동안 매년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실제 조합원의 생활실태조사를 통해 표준생계비를 산출하여 발표하였고, 이를 참고하여 임금인상 요구안을 책정해 온 바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2018년 10~11월 진행된 조합원 생활실태조사에 근거하여 표준생계비를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발표하지 않았고, 2019년 임금요구안을 책정하는 데 반영하지도 않았다. 2019년에는 2020년 표준생계비 산출을 위한 조합원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2020년 민주노총의 임금 요구안이 발표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노협 이후 줄곧 책정되어온 과학으로서의 임금의 성격이 통째로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표준생계비 산출도 없는 민주노총의 임금정책은 지속될 전망이다. 과학에 근거한 이론을 포기해서는 착취사회를 폐지할 어떠한 올바른 전망도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맑스의 임금이론에 대해 알아보고 민주노총의 임금정책 후퇴에 대한 비판을 가해보고자 한다.

 

  1. 임금이란 무엇인가?

 

맑스는 자본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물품을 생산하기 위해, 따라서 또한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규정된다. 노동력이 가치인 한, 노동력 자체는 단지 그것에 대상화된 사회적 평균노동의 일정량을 대표할 뿐이다. 노동력은 단지 살아있는 개인의 소질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노동력의 생산은 이 개인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개인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면, 노동력의 생산이란 노동자 자신의 재생산, 즉 유지이다. 살아있는 개인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생활수단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해서 필요한 노동시간은 이들 생활수단을 생산하기 위하여 필요한 노동시간으로 귀착된다. , 노동력의 가치란 그 노동력의 소유자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생활수단들의 가치이다. 그런데 노동력은 그것이 발휘됨으로써만 실현된다. 즉, 노동 속에서만 실증된다. 그러나 노동력의 실증, 즉 노동에 의해서 인간의 근육, 신경, 뇌수 등의 일정량이 지출되며, 그것은 다시 보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지출의 증가는 소득의 증가를 요구한다. 노동력의 소유자는 오늘 일을 끝마쳤더라도, 내일도 동일한 힘과 건강 조건 하에서 동일한 과정을 반복할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생활수단의 총량은, 노동하는 개인을 그의 정상적인 생활 상태에서 노동하는 개인으로서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음식물, 의복, 난방, 주거 등등과 같은 자연적 욕구들 그 자체는 한 나라의 기후적, 그리고 다른 자연적 특성들에 따라서 다양하게 다르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른바 필수적 욕구들의 범위는, 그것들을 충족시키는 양식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며, 따라서 대부분 한 나라의 문화 단계에 달려 있고, 그 중에서도 또한 본질적으로는 자유로운 노동자계급이 어떠한 조건들 하에서, 그리고 따라서 어떠한 습관과 생활상의 요구들을 가지고 형성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하여 다른 상품들과 달리, 노동력의 가치규정은 역사적도덕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일정한 나라에서 어떤 일정한 시대에 필요한 생활수단의 평균 범위는 주어져 있다.”

 

“소모와 죽음에 의해서 시장에서 퇴출된 노동력들은 최소한 같은 수의 새로운 노동력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대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하여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량은 따라서 대체인원, 다시 말하면, 노동자들의 자식들의 생활수단을 포함하며, 그리하여 이 독특한 상품소유자 ‘종족’이 상품시장에서 영구화 된다”

 

“일반적인 인간 천성을, 그것이 어떤 일정한 노동 부문의 숙련과 재능을 획득하도록, 즉 발달한 특수한 노동력이 되도록 개조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정한 양성과 교육이 필요하며, 그것은 그것 나름으로 많고 적은 양의 상품등가물들을 비용으로 필요로 한다. 노동력의 성격이 보다 많이 매개 되었느냐 보다 덜 매개되었느냐에 따라 그 양성비는 다르다. 따라서 이 습득비는, 보통의 노동력에 관해서는 극히 미미하지만,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해 지출된 가치들의 범위에 들어간다.”

 

맑스에 따르면, 가치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상품생산이라고 하는 사회적 관계의 표현이고 그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기에, 그러한 소유 관계에 기초하여 상품으로 생산되는 노동생산물만이 가치를 갖는 것이다. 상품의 가치란 그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 응고된 것이고, 그 크기는 그 노동의 지속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서의 노동자의 노동력 또한 상품으로 판매되는 것이기에 가치를 갖는다. 판매되는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따라서 또한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규정된다. 필요한 노동시간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고, 그 필요한 생활수단의 총량은 노동하는 개인을 그의 정상적인 생활 상태에서 노동하는 개인으로서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비용에는 교육과 기술의 습득비용이 포함되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소진되는 노동력을 끊임없이 대체할 자식들의 양육비도 포함된다. 다시 말해, 필요노동시간이란 노동자와 그 가족이 주어진 일정한 사회적・문화적 조건 하에서 생존을 유지하고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을 말한다.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생활수단의 생산에 해당하는 필요노동시간의 크기가 노동력 가치의 크기를 규정하며, 이것의 화폐적 표현이 곧 임금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임금은 현 시대의 문화적 욕구까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족 전체의 충분한 생활비여야 한다. 그것을 모두 등가로지불하고도 자본가들은 남아있는 잉여가치를 가져가는 것이며, 그것을 착취라고 한다.

 

“임금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바로 자본의 이윤이 무엇인가, 혹은 그 원천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 뒷면이며, 따라서 곧바로 자본의 이윤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을 위시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은 임금의 본질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기에 급급하고. 그리하여 임금의 본질이나 그 정당한 크기를 둘러싼 황당한 주장, 황당한 미신이 적지 않습니다.”

“이윤은 착취된 노동입니다. 자본가들은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조직된 폭력, 곧 국가의 비호 하에,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에 기초하여 그것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생산수단의 사유, 그것이 자본가들이 이윤을 취득하는 근거인 것 입니다.”

 

자본가들은 임금의 성격을 왜곡하고 착취를 은폐하기 위하여 수많은 기만적인 이데올로기를 동원하고, 때로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해 국가폭력을 동원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이 임금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것들 때문이기도 하다.

 

 

  1. 착취란 무엇인가?

 

사회의 생산력 발전에 따라 잉여생산물이 발생하자 이를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의 계급관계가 생겨나고, 생산수단을 독점한 착취계급을 지배계급으로 하는 국가가 발생하였다. 착취 형태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단순하게 살펴보면,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의 일부였던 노예노동에 대한 직접 착취의 형태였고, 중세 봉건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을 점유한 농노들이 취한 생산물의 일부를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신분적 자유인이자 생산수단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 노동자들과 자유로운 계약(고용)을 통하여 생활수단의 양인 임금을 지불하고 잉여노동을 직접 착취해 가는 방식으로 그 형태가 교묘해졌다. 노동자들의 노동력 가치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불하고도 남는 잉여생산물을 자본가들은 이윤으로 가져가는 것이며, 그것이 곧 착취의 과정인 것이다.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은 자신의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보다도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한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하여 노동자 자신이 지불받는 임금보다 훨씬 많은 가치를 생산하게 하여 그것을 이윤으로 취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목표가 바로 이윤이며, 그것은 노동자 착취의 결과물이다.

 

그러면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좀 더 살펴보자.

상품의 가치는 ‘불변자본/가변자본/잉여가치’의 3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불변자본에 해당하는 생산수단의 가치는 생산(노동)과정을 통해 상품에 그대로 이전될 뿐이다. 새로이 부가된 가치 중, 임금 지불에 해당하는 가변자본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 잉여가치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에게 이윤으로 돌아가며, 이것이 기본적인 착취에 해당한다.

생산물(상품)의 가치

이전된 가치

증식된(부가된)가치

불변자본(생산수단)

가변자본(임금)

잉여가치(자본가의 이윤)

 

필요노동시간(지불노동)

잉여노동시간(부불노동)

현실에서의 노동력 상품의 대부분은 노동력의 가치에 못 미치는 부등가교환에 의해 판매되고 있으며, 자본가들은 임금 지급을 줄여 보다 많은 잉여가치의 착취를 일삼고 있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한 저임금은 노동자의 노동력과 그 가족을 육체적・정신적・문화적으로 위축된 형태로 재생산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1일 소정근로시간이라 표현되는 ‘노동일’은 노동자계급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결과로 확정되며, 프랑스나 독일의 주당 35시간(7시간 노동일)에 비해 한국의 노동일은 아직 주 40시간(8시간 노동일)에 머물고 있다. 가치를 부여하는 하루 8시간의 노동을 하고 다시 재충전 후 내일의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며, 재충전 비용인 생활비가 임금으로 지급되는 것이다. 노동자는 하루 8시간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이고, 그 8시간 노동 중에 노동자들의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 필요노동시간이며, 임금으로 지급되는 필요노동시간을 초과하여 진행되는 노동시간은 잉여노동시간이라고 한다. 이 잉여노동시간에 잉여가치가 생산되는 것이며 자본가가 가져가는 착취는 이곳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자본가는 착취량을 늘리려고 절대적인 노동시간을 연장(절대적 잉여가치)하고자 하며, 다른 방향으로, 생산력을 높여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줄여서(생활비의 값을 낮춰 임금을 줄이는/상대적 잉여가치) 잉여가치를 높이려 한다.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은 자본가들은 생활비보다도 더 낮은 임금을 강제하여 가혹한 노동력 착취를 일삼는 것이 현실이다. 어쨌든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생계비로서의 임금을 등가로 지불하고도, 자본가들은 잉여가치를 취득한다는 것, 곧 착취를 한다는 사실이다.

맑스는 또한 노동력의 가치인 임금이 최소한까지 떨어진다면, 노동력은 위축된 형태로밖에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노동력 상품의 정상적인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일정한 생활수단을 충족시킬 충분한 임금을 주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죽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임금을 법으로 정하는 최저임금은 노동력상품의 가치를 정상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임금이 아닌 것이다.

 

“노동력의 가치의 최후의 한계, 즉 최저한계를 이루는 것은, 그것이 매일 공급되지 않으면 노동력의 담지자, 즉 인간이 자신의 생활과정을 갱신할 수 없는 어떤 상품량의 가치, 따라서 육체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생활수단들의 가치입니다. 만일 노동력의 가격이 이 최소한까지 떨어진다면, 그것은 그 가치 이하로 떨어지는 것인 바, 왜냐하면 노동력은 그렇게 되면 위축된 형태로밖에는 유지될 수도, 발전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상품이나 그 가치는 그 상품을 정상적인 품질로 공급하기 위해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입니다.”

 

자본가들은 필요에 의한 생산이 아니라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을 한다. 자본가들이 취하는 이윤은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지급되는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필요노동 시간을 넘어서는 잉여노동 시간에 대한 착취이고, 노동자들에게는 지불되지 않는 잉여가치에 대한 착취이다. 등가교환에 의해서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고도 남은 부분, 즉, 노동자들이 자기가 받을 임금의 가치를 자본가에게 만들어주고도 더 추가한 잉여가치(잉여생산물)가 고스란히 자본가의 수중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필요노동시간에 해당하는 정상적인 비용마저 지급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가혹한(초과) 착취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에 의해 낮은 질의 노동력을 가짐으로써 생명마저 단축된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한 극에서의 부의 축적은 그리하여 동시에 그 반대의 극, 다시 말하면, 그 자신의 생산물을 자본으로서 생산하는 계급의 측에서의 빈곤과 노동의 고통, 노예 상태의 무지, 야만화, 도덕적 타락의 축적이다”고 말한다. 생산력 발전이 눈부신 오늘날 가진 자들은 착취의 결과물인 사내 유보금을 1천조 원 쌓아두고 있고, 노동자 민중들은 거꾸로 기업들의 사내 유보금에 버금가는 가계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실업자는 넘쳐나며 취업자는 장시간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린다. 체제를 지키려는 지배계급의 음모는 제도권 교육을 망가뜨렸고, 미래의 희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정도 가지지 못하고, 가졌다 하더라도 파탄 나 버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한국 사회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와 장시간 노동과 산재 사망율 1위 등의 불명예스러운 기록들을 가지고 있는 현실은 맑스의 말을 구체적으로 입증한다.

 

 

  1. 정상적인 임금으로서의 (가구당)표준생계비

 

생계비에는 이론 생계비 모델과 실행 생계비 모델이 있다. 전자는 “일정한 사회적・문화적 조건 속에서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생활수단들의 종류와 양을 설정하고, 물가수준과 그 동향을 조사하여 임금의 크기를 산정하는 모델”이며, 이에 반해 후자는 “자본 측이나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부 경제학자, 그리고 사회학자 등이 노동자 가족들이 현실적으로 지출하고 있는 생활비를 품목별로 조사하여 그 합계로써 산출”하고, 그에 근거해서 임금의 크기를 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론 생계비는 전노협시절부터 확립된 과학적인 임금모델이지만, 실행생계비는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경제・문화・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고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기초한 생계비란 역시 저임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회조사’를 빙자해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계속 강요하여 자본에 봉사하는 경제학자들의 음모를 저지해야 할 것이다.

과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민주노총의 생계비 조사는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비/주류 및 담배비/의류 및 신발비/주거・수도・광열비/가정용품 및 가사서비스/보건비/교통비/통신비/오락 및 문화비/교육비/음식 및 숙박비/기타 상품 및 서비스비/조세공과금’ 등 13개 비목으로 진행되며 모두 가족 구성원의 수에 따라 산출된다. 표준 식료품비를 산출하는 데에는 영양적인 조건을 충족하면서 실제 많이 소비되는 식료품을 중심으로 현실적인 소비실태를 반영하는 동시에, 규범적 차원의 영양학적 조건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이론 생계비 모델임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력 재생산비의 산출인 만큼, 이것야말로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정상적인 임금이며, 노동력 상품의 가치인 것이다.

 

“민주노총은 1995년 출범 직후 그동안 전노협 등이 산정하던 최저생계비 대신 표준생계비를 산정해 임금요구안 작성 등 임금정책 수립의 기준으로 활용해 왔다. 표준생계비는 ‘한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문화생활을 하면서 건강하게 사는 데 드는 비용’을 의미한다. 이렇게 이론적인 방식으로 산출되는 표준생계비 모형은 경제적, 문화적 생활수준이 변화하면 생계비 비목 및 품목 구성에서의 변화 그리고 각 품목의 가격의 변동을 반영해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과거 전노협은 매년 연말이 되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임금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여러 군데의 시장에서 생계비를 조사하여 다음 해의 임금 인상 요구율(최저생계비 기준)을 산출하고 발표해 왔었다. 대기업을 포괄한 민주노총은 1995년 출범 시부터 전노협의 최저생계비요구가 내부 격차가 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매년 조합원들을 상대로 실제 생활실태조사를 진행하여 ‘가구별 표준생계비’를 산출해왔으며, ‘경제성장율과 물가인상율’을 기준으로 임금요구안을 책정하면서 이것이 대략 표준생계비의 70~80% 달성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해왔다.

2013년부터 민주노총은 경제성장율과 물가인상율에 더해 ‘노동소득분배율 개선치’를 합산하여 임금인상안을 발표하였다. 지난 10년간의 경제성장과 물가 인상에 비해 임금 인상이 따라가지 못한 한계를 인상안에 반영하여 노동소득 분배구조의 단계적 개선을 기대한다는 것이었다.

민주노총이 전노협의 최저생계비 대신 표준생계비로 요구안의 기준을 높인 것은 이해가 간다. 또한, 표준생계비에 경제성장율과 물가인상율을 반영하여 임금요구안을 책정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표준생계비 100%가 아니라 70% 전후로 목표치를 낮추고서 경제성장율과 물가인상율을 반영하여 다시 인상효과를 높이겠다는 발상은 이해가 쉽지 않다. 애당초 표준생계비 100%를 반영하고 경제성장율과 물가인상율을 추가한다면, 굳이 ‘노동소득분배율 개선치’라는 몫을 추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받아야 할 정상적인 임금인 표준생계비 100%를 제시하고 적극 투쟁하되, 투쟁의 과정에서 조직력의 한계로 인해 성취하는 결과물이 낮아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니겠는가.

민주노총은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요구안을 따로 내지 않고 정액으로 일괄 요구안을 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인상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연대임금”의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실태조사에 근거하여 마련된 표준생계비의 쟁취를 직접적인 목표로 제시하지 않고, 표준생계비는 단지 고려의 대상일 뿐이며, ‘경제성장률+물가인상률+노동소득분배율 개선치’를 합한 수치를 전체(또는 5인 이상) 노동자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하여 인상액을 정액으로 산출해 내는 방식이며, 이것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임금’이라고 개념 규정하여 지금까지 발표해 온 것이다. 표준생계비의 조사가 정규직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절반을 넘어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높은(?) 수준의 표준생계비를 임금인상안으로 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이유로, 애써 조사한 표준생계비는 이제 ‘고려’의 대상으로써도 발표되지도 않았고, 2020년 임금요구안의 산출에 ‘참고’하기 위해 진행되었어야 할 2019년 말 조합원 실제 생활실태조사는 아예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3월 31일 현재까지 민주노총의 ‘2020년 임금요구안’은 발표되지 않고 있다.

 

  1. 민주노총의 표준생계비의 포기

 

2019년 민주노총의 임금요구안은 가장 낮은 기준인 전체노동자(1인 이상 사업장) 평균임금(3,417,630원)을 기준으로 하여, 경제성장율(2.7%), 물가상승률(1.5%), 소득분배 개선치(1.8%)를 더해 합 6%의 인상안을 발표하였다. 이것을 전체노동자 평균임금에서 환산하니 205,000원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정액 205,000원의 인상안으로 통일하니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상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임금’ 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약간의 인상율의 차이가 줄어들기는 하겠으나 임금차액은 여전히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2019년 임금요구안에는 과학적인 임금의 산출액으로써 표현되는 표준생계비와의 연관성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민주노총이 2019년 임금요구안의 기준을 변경하게 된 이유로 든 것은, 노동자 내부의 임금격차가 너무 커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1995년 민주노총 출범 시부터 ‘경제성장율+ 물가인상율’을 기준으로 임금 인상 요구를 해 왔다는 것이다. 다만, 요구안 산출을 위한 생계비 대체 대안이 없어 생계비 조사는 계속해 왔다는 것이다. 또한 생계비 산출과정의 문제점으로는 첫째, 민주노총의 생계비가 한국노총과 통계청의 생계비보다 매우 높다는 것. 둘째, 생계비와 임금수준이 비례하지 않다는 것. 셋째, 업종별・ 규모별 임금수준이 서로 다르다는 것. 넷째, 민주노총 생계비 조사 결과 임금수준이 시계열을 반영하지 못하다는 것. 다섯째, 가맹조직의 임금수준이 상이하다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런데 통계청이라는 곳이 자본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통계를 왜곡하고 조작한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고, 한국노총 또한 언제나 계급적 이해보다는 노사 협조주의적 태도와 정부 정책에 맞장구를 쳐왔던 역사를 감안한다면, 민주노총이 자체적으로 그리고 보다 ‘객관적’으로 조사하여 산출한 표준생계비가 그들 기관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노동자들의 생계비와 임금수준이 비례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빚에 의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현실적으로 한국의 가계부채는 2019년 1분기 중 1,540조 원에 달한다고 나타나 있다. 한 가족이 적어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은 어느 정도 고정적이다. 따라서 그것과 임금과의 차액은 빚으로 메꾸어질 수밖에 없다. 업종별・규모별 임금수준이 다른 것은 총자본의 노동 탄압과 분열 책동으로 노조 조직율도 낮고 투쟁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또, 독점자본이 가져가는 초과이윤(특별잉여가치이자 독점이윤)으로 인해 작은 사업장은 그만큼 손해를 보는 등 다양한 이유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임금요구안 기준 변경은, 결국 생계비론은 현실성이 낮으며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니 표준생계비를 더 이상 임금요구안의 기준이나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이고,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더 이상 생계비 산출을 위한 조사 작업도 필요가 없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민주노총의 2018년 임금요구안 자료를 보면, 표준생계비가 “2017년 표준생계비 모델을 기준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각 가구 규모별 순증하지 못한 것은 산출방식을 보다 객관적인 현실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객관적 현실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변경’하였다고 했으면서도 왜 1년 만에 전혀 상반되는 이유를 들어 표준생계비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기준을 변경했는가 하는 것이다.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 같고, 무엇보다도 과학으로서 임금이론에 대한 무지의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면 요구안 기준의 변경내용이 이같이 나타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19년 민주노총 임금정책의 변화는 과거와는 질을 달리한다. 과거에는 그 활용도가 어찌 되었건 조합원의 실제 생활실태조사에 기초하여 지금 이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임금이 어느 수준이어야 하는지를 발표했었다. 임금의 원가 공개인 셈이다. 이러한 발표의 내용을 가지고 현장에서는 임금교섭에서 요구안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자료로 활용하였고, 조합원 교육에서도 강조하였다. 이제 민주노총의 조합원 교육용 임금 교안의 내용이 그동안의 자료는 부정되고 다시 만들어져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노동자 가족구성에 따른 생계비와 사회의 생산력과 문화적 욕구의 충족을 반영하는 과학으로서의 임금이론이 부정되고, 이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과 부르주아 정부에서 발표하는 통계자료에 근거하여 시시때때로 임금이 달라지는 이상한 교안을 가지고 조합원 교육도 진행해야 할 상황이다. 맑스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 임금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하는가?

임금에 대한 과학성의 포기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착취 관계의 해명을 포기하고 계급투쟁의 이론을 포기하는 것이다. 전노협에서부터 진행되어 온 생계비 조사에 기초한 노동력 재생산비용의 산출과 투쟁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작년에는 조사 결과에 대한 발표를 안 하더니, 올해는 아예 조사조차 안 했다.

앞서 밝힌 바대로 임금은 노동력 재생산비용이다. 기초적인 재생산비용의 조사과정도 없이 단지 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률과 노동소득분배율만을 고려하여 임금요구안을 만들어 낸다면, 노동력 재생산비용으로서의 임금의 성격은 무시되고 사라지는 것이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 존재하는 착취의 내용은 보다 더 은폐되는 것이다.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무너뜨리고 노동해방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노동자계급 운동이 전망 자체를 상실해 버린 결과로서 나타난 현상이다.

과학적인 조사 통계에 근거한 표준생계비의 발표와,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민주노총 요구안을 책정 발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임금 원가는 정상적으로 공개하여 대중의 분노를 투쟁으로 조직해야 하는 문제인데, 투쟁은 회피하고 현실만을 강조하여 저임금에 꿰어 맞추려는 발상과 태도는, 계급투쟁을 수행할 계급 대중조직으로서의 민주노총이 가져야 할 태도는 아니다. 정권과 자본의 폭압에 압도당하여 투쟁 의지를 상실해 버리고, 또 조직되지 않는 투쟁을 핑계 삼아 교섭에 매달리며 스스로 무장해제를 해 버린다면 안 될 일이다. 작금의 이 사태는 민주노총의 임금정책 담당자들의 계급의식과 이론 역량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들의 임금이 표준생계비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과학적 사상과 이론으로 무장하지 못하고 있고, 조직력과 투쟁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자본 독재의 폭압적 탄압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노총의 사상적 전망, 조직, 투쟁노선에 더 많은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노동력 재생산비용으로서의 정상적인 임금을 투쟁으로 쟁취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은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당해 정규직 임금 양보론에 해당하는 ‘노동연대기금의 조성’과 같은 내용을 주장하다가 결국 최저임금을 갖고 싸우고 있다. 자본이 던져준 프레임에 갇혀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한참 밀린 상황이다. 정규직 임금 양보론과 연대기금 조성의 논리는 자본이 유포한 ‘임금기금설’에 기초한 것이다. 채만수 소장은 ≪노동자교양경제학≫에서 임금기금설의 망령을 언급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임금기금설이란, 어떤 기간의 어떤 사회의 임금총액, 예컨대 2006년 한 해의 한국 사회의 임금총액은 미리 정해져 있다는 이론입니다. 정말 그게 옳은 것이라면 노동자계급 중의 어떤 일부 집단, 예컨대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은 다른 집단, 즉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기간, 예컨대 2013년 한 해의 한국의 임금총액은 결코 미리 정해져 있지 않고, 따라서 노동자계급 중의 어느 집단이 고임금을 받으면 다른 집단이 저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2013년의 한국 노동자계급의 임금총액이 얼마인가는, 실제로는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얼마나 강고한 결의와 단결력으로 임금 인상 투쟁을 해내느냐에 달려 있을 뿐 입니다.”

표준생계비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이유 중 하나는, 중소자본가들의 현실적인 지불능력의 한계를 고려한다는 ‘지불능력론’의 이데올로기적 영향이기도 하다. 노동력 재생산비보다 자본가들의 지불능력이 먼저 고려되어야 할 정도로 현실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자들은 그들이 받아야 할 임금과 자본가들의 이윤을 미리 만들어 준다. 임금지불이 실제로는 그 고용주에게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으며,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먼저 임금으로 줄 돈들을 상품의 형태로 자본가에게 만들어 주고 나서, 그 재원으로부터 임금을 지불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만들어준 임금을 그대로 지불하지 않고, 투기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은행 빚 때문에 많은 돈이 이자로 지불되고 부실기업으로 전락하거나,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성으로 인한 자본가 상호간의 경쟁 때문에 도태되어 실제 임금을 줄 돈이 없어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독점자본에 의한 중소자본에 대한 수탈로 이윤이 독점자본으로 대거 흡수되면서, 노동자들에게 정상적으로 지급해야 할 임금재원을 자신의 이윤으로 먼저 챙기기에 ‘지불능력’에 문제가 발생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문제는 전적으로 자본가들 자신의 부실경영과 경쟁의 결과로 인한 것이기에 노동자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불능력론’에 대한 채만수 소장의 비판을 들어보자.

 

“임금의 크기와 관련한 주장 중에 이른바 ‘지불능력론’이란 것도 있다. 회사가 아무리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주고 싶어도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또 노동자들이 열심히 싸워서 아무리 높은 임금을 합의해도 현실적으로 회사가 그만큼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회사의 현실적 지불능력을 고려해서 그에 맞게 임금을 책정해야 하고, 나아가 회사가 충분한 지불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경영에 협조해야 한다. 대강 그런 얘기입니다.

필시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본 얘기일 것입니다. 자본 측으로부터는 물론, 적지 않은 ‘노동운동가들’로부터도 말입니다. 착취와 억압으로부터의 노동자계급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합리적인 노사관계’, ‘건설적인 노사관계’, 혹은 노사동반자 관계나 이른바 노사 상생이라는 입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한 주장을 합니다. 실제로도 우리는 그러한 ‘노동운동가들’을 숱하게 보는데, 그들의 목적은 국가나 노동운동 등의 힘을 빌어서 개별자본의 근시안적이고 무자비한 축적 충동에 일정한 제약을 가함으로써 이른바 ‘노사평화’를 이루려는 것,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는 착취억압관계를 영속화 시키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그들의 목적은 자본주의적 착취・억압관계를 영속화 시키려는 것이라고 얘기하면,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은 필시 모함이라며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화를 낸다면, 그들은 ‘합리적인 노사관계’니, ‘건설적인 노사관계’니, ‘노사동반자관계’니 하는 자신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모르는, 좀 모자란 사람들이든가, 아니면 짐짓 모른 체 은폐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독점자본주의시대 수직적으로 원・하청 계열화된 자본의 종속관계는 한편으로 하청자본의 생산이 멈추면 원청 또한 멈출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부품공급에 문제가 발생하여 원청기업까지 줄줄이 공장문을 닫고 휴업을 하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안정적인 재생산도 필수이다. 평소 독점자본이 과도하게 흡수해 간 잉여가 비독점자본 노동자들의 완강한 파업으로 생산이 중단되어 원청까지 영향이 미치게 되면, 원청인 독점자본에서 문제해결의 비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독점자본 또한 경쟁과 공황으로 위기가 발생하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안정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지원방안이 나온다. 문제는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에 있다. 원하청 노동자들의 단결과,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흔들릴 정도의 강력한 투쟁을 일으킨다면 현실적인 지불능력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뿐만 아니라 임금제도, 즉 착취관계를 폐지하는 노동해방의 길로까지 성큼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유란 필연에 대한 통찰이다. 임금에 대해,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착취관계에 대해 과학적인 이해를 못한다면 노동자계급이 노동해방을 통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 저임금을 강요하며 착취 관계를 은폐하는 것들

 

자본가들은 착취 관계를 은폐하고 저임금을 강제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진영에서는 이러한 자본의 음모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본이 던져놓은 프레임에 갇혀 나아갈 방향을 못 찾고 헤매고 있는 형국이다.

먼저 최저임금제도를 보자. 최저임금법 제1조에는 “최저임금제는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저임금노동자들의 최저수준의 생계를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이 법은 1986년 12월 31일에 제정・공포하고 198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당시의 노동자계급 운동은 조직적으로, 사상적으로 급성장하던 때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여 저임금 해소책으로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달랐다. 전노협의 생계비 조사와 발표에 근거한 임금 인상 투쟁이 한 축으로, 그리고 또 다른 한 축으로는 정부와 자본 주도의 최저임금 결정을 통한 임금 인상이 시행되었지만, 민주노총이 출범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생계비 조사 발표를 중심으로 임금투쟁이 전개되기보다는 최저임금 결정을 둘러싼 임금인상에 점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노동운동의 관심 또한 그쪽으로 매몰되어 갔다. 그것은 곧 경쟁력이 약한 중소 영세 자본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시키는 과정이었으며, 귀족노조라고 칭하며 대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억제하고자 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였다. 노동력 재생산비용으로서의 임금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표준생계비를 확보하는 투쟁으로 밀고 나가야 하였으나,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물러선 결과는 임금 본연의 성격에 견주어 볼 때 참담했다. 이제 총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정규직을 대상으로 직무급제를 관철하기 위해 집중되고 있다.

직무급제는 업무의 성격과 난이도에 따라서 차별을 두고 노동자 임금을 결정한다. 따라서 직무평가를 수반한다. 평가는 전적으로 자본가들에 의해 수행된다. 자본가들의 손에 칼이 쥐어져 있다. 가족 구성이 반영되는 생계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맡은 업무에 따라 임금수준이 달라지는 것이니 노동력 재생산비로서의 정상적인 임금이라 할 수 없다. 이것도 결국은 임금 인상을 둔화시키고 하향 평준화시키기 위해 도입되는 것이다. 직무급제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노동력 상품의 정상적인 가격(임금)은 바로 노동력 재생산비인 ‘표준생계비’라는 것을 공식화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맞대응하며 투쟁을 배치해야 할 것이다.

지자체가 조례로 정하여 발표하는 ‘생활임금’도 있다. 이것도 정상적인 노동력 재생산비와는 거리가 멀다. 지자체의 생활임금을 정하는 방식은 이론 생계비가 아니라 실행 생계비이다. 실행 생계비는 현재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수준을 기준으로 하여 생계비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저임금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의 낮은 생계비를 기준으로 하여 정하는 것이니 정상적인 생활임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생활임금이라고 이름을 붙인다고 하여 다 같은 생활임금이 아닌 것이다. 상품의 가격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평균노동시간이라 하였다. 노동자들의 생활비용 또한 사회적 평균 수준을 보장해야 하며, 경제발전과 문화수준의 향상에 따라 그 비용도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반영하지 못하는 지자체 생활임금은 ‘생활임금’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자본의 기만적인 이데올로기적 공세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정부 주도의 저임금 질 낮은 일자리 만들기 사업이다. 노조 무력화 사업이기도 하다. 자동차 시장의 전기차로의 재편과정에서 상대적 고임금의 완성차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활동도 보장되지 않는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노동자들로 대체되는 총자본의 야심에 찬 공격이다. 그것도 고용 없는 성장이라 일컫는 시대에 일자리를 확보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우며 사회적(?)으로 박수를 받고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다. 각 지자체 마다 ‘OO형 일자리’ 만들기 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진영은 아직 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투쟁계획이 없어 보인다.

일부 노동조합에서는 요즘 ‘공정임금’이라는 새로운 임금요구안을 내세우고 있다. 내용은 공무원 대비 80% 임금인상, 또는 정규직 대비 80% 임금인상을 목표로 하는 요구안이다. 공정임금 요구안에서도 그 근거로써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생계비로서의 성격은 전혀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무원칙한 절충만이 숫자로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민주노총이 표준생계비를 포기함으로써 앞으로도 이와 같은 수많은 비과학적 요구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저임금을 관철하기 위해 복잡한 임금체계를 구성하는 방식도 동원되고 있다는 것을 채만수 소장은 같은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임금의 크기는 자본 측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노동자와의, 그것도 노동자 집단과의 끊임없는 대립・투쟁・길항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무언가 교묘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합리적임’을 가장하면서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 여러 임금형태이고, ‘임금체계’입니다. 말하자면, 결국 여러 임금형태나 임금체계는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임금의 총액을 줄이면서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자본가들의 고안물인 것입니다.”

“임금체계와 관련해서는 노동자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원칙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법정노동시간에 가능한 많은 임금을 확보하여, 가능한 한 그 시간에 노동력의 재생산비, 다른 말로하면 ‘생활임금’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금체계 상 기본급의 비율을 최대한 높이고, 가족수당이나 기타 육아수당, 교육수당 등등 가족구성의 변화에 따른 수당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을 경쟁시키고 분열시켜 무력화시킴으로써 잉여노동의 착취를 증대시키려는 성과급적 요소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성과급적 요소를 강화시켜 노동자들을 경쟁시키고 분열시켜 무력화시킴으로써 잉여노동의 착취를 증대시키려는 것이 이른바 임금체계와 관련한 자본 측의 의도입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임금형태가 나타난 것은 결국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적게 지급하고자 고안해 낸 것들이라는 것이다. 실제 복잡한 임금명세서를 보고 자기의 임금이 정확히 지급되고 있는지를 계산할 줄 아는 노동자는 많지 않다. 월급제, 시급제, 최저임금, 통상임금 산입범위, 연장근로수당은 제대로 계산되었는지 알기 어렵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당들은 어느 날 생겼다가 없어지기도 한다. 감시단속직으로 가면 이제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기 시작한다. 이렇게 복잡하고 골치 아프게 뒤섞어 놓아 회계를 담당하는 사람들마저도 당황케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임금을 제대로 안 주려는 기만적인 수단들이며, 착취 관계를 은폐하는 장치들인 것이다. 임금체계가 복잡할 필요가 없다. “법정노동시간에 가능한 많은 임금을 확보하여, 가능한 한 그 시간에 노동력의 재생산비 … 생활임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은 기본급을 중심으로 최대한 반영하고, 그리고 가족 구성의 변화에 따라 수당을 덧붙이면 되는 것이다. 고용 형태별로, 직무별로 임금체계를 달리하여 차별적인 임금을 지급하고 노동자간 경쟁과 분열을 통해 효과적인 통제를 하고자 하는 자본의 의도를 간파해야 한다. 임금은 결코 자본이 정해둔 일정한 기금 내에서 배분되는 것이 아니다. 임금은 이미 노동자들이 만들어준 가치에서 나오는 것이며, 임금의 크기는 힘의 크기, 곧 노동자들의 투쟁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력 재생산비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력에 따라 보다 높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잉여의 분배와 관련이 있다.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통계의 조작과 왜곡을 통해서도 관철된다. 노동부, 통계청, 민간기업연구소 등에서 생산되는 통계가 의심 없이 이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주의’ 운운하며 계급 협조주의를 조장하고 노사정위나 경사노위에 민주노총이 들어가야 한다고 꼬드기는 소부르주아 연구진들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영향도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민주노총이 노사정위나 경사노위에 들어가니 마니 하면서 수많은 내부분열을 겪으며 투쟁 전선에서 혼란을 초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외부통계의 한계와 함정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과학성에 대한 담보가 낮아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적 대응력을 약화시킨다. 그래서 민주노총의 조사통계역량도 강화하고, 간부들이 노동자계급의 과학적인 사상으로 무장되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1. 이론의 중요성, 그리고 올바른 전망

 

임금제도는 자본주의사회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역사적이며 시대 경과적인 것이다. 국가독점자본주의이자 제국주의 시대인 지금은 생산과 재생산과정의 전면적인 자동화로 인간노동의 배제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해고와 실업이 격증하고 있다. 자본주의 모순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세계적인 공황과 장기침체 국면에서 더 이상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지속가능성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의 노동자계급 운동은 임금 인상이나 고용안정 투쟁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되고, 임금제도 폐지와 고용관계의 폐지를, 곧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폐지를 위해서 투쟁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전망에 복무할 수 있도록 임금 인상이나 고용안정 등의 구체적인 투쟁들이 조직되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도 그중 하나이다.

생산력 발전으로 인한 필요노동시간의 단축과 상대적 잉여가치의 꾸준한 확대는 노동일의 단축, 곧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정당성을 높인다. 특히나 자동화에 따른 실업의 심각성이 증대한 지금의 현실에서 해고를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투쟁이자, 필요노동시간의 단축에 따른 잉여가치의 상대적 증가(자본의 착취분)로 인한 부의 양극화를 줄일 수 있는 투쟁이기도 하다. 노동일의 단축은 또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간의 힘에 의해서 결정되어 왔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노동일은 결코 불변의 크기가 아니라 가변적인 크기이다. 그 2부분 중 하나는 분명 노동자 자신의 부단한 재생산을 위해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규정되어 있지만, 그 전체 크기는 잉여노동의 길이, 즉 지속기간에 따라 변동한다. 따라서 노동일은 규정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서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동등한 권리 대 권리 사이에서는 힘이 결정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는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들을 둘러싼 투쟁-총자본가, 즉 자본가계급 대 총노동자, 즉 노동자계급 간의 투쟁으로서 나타난다.”

 

“자본이 도입하는 첨단 자동화 설비 등, 생산력 증대에 대해서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지난하고 또 임시변통적이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하나의 방책밖에 없습니다. 노동시간, 즉 노동일을 대폭적으로 축소시키는 것뿐입니다. 노동일을 축소하기 위한 노력은 불가피 자본 및 국가와의 투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은 길을 발견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을 다시 정리해 보자.

첫째, 임금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책담당자들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의 간부들이 먼저 교육과 학습에 집중해야 한다. 그 다음엔 당연히 조합원들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다. 덧붙이건대 민주노총의 정책 투쟁노선의 오류는 임금정책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둘째, 표준생계비에 대한 조사 발표가 재개되어 임금정책의 과학성을 회복해야 한다.

셋째, 조사 통계 및 정책역량을 강화하고, 민주노총의 이데올로기적 대응력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조직력과 투쟁력이다. 표준생계비를 온전하게 제시하고 노동자들의 분노를 투쟁으로 조직해 내야 한다.

다섯째, 과잉생산 공황과 장기침체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임금투쟁은 체제 내적 투쟁으로서의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임금 인상 투쟁이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나 고용안정 투쟁 등의 생존권 투쟁은 계급사회 폐지라는 전략적 전망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수많은 현장의 투쟁 사안들이 노동해방 평등사회를 쟁취하는 거대한 흐름으로 모아지고, 그러한 투쟁의 양적 팽창이 사회혁명이라는 질적 전환으로 비약할 수 있도록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지금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계급 운동이 집중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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