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과학연구소

페미니즘에 대한 일고찰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가 아닌 남성과 여성의 투쟁의 역사로 바뀌어야 하는가?

조남수 │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1 들어가는 말

 

지금 이 사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유령이 만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어느 정도는 남녀 사이의 많은 부분에서 평등을 가져 왔지만 아직까지 여성이 이 사회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남성보다 더 착취, 억압 그리고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의 반영일 것이다. 여성은 실업, 가사, 육아의 전담, 경력 단절 및 임금과 승진에서 차별 등에서 보이듯이 자본주의가 낳는 모순에 더 심하게 고통을 받고 있다. 여성 문제는 단순히 근대 자본주의에서만 발생한 문제만이 아니라 원시공동체 사회가 붕괴되면서 계속 역사적으로 제기된 문제이다. 그리하여 푸리에는 “어떤 주어진 사회에서 여성해방의 정도는 전반적 해방의 자연적 척도”라고 여성의 사회적 해방을 강조하였다. 페미니즘 담론이 제기하는 문제는 그만큼 이 사회에서 여성이 착취와 억압에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해명에 기반한 여성해방의 침로를 정립하는 것은 변혁운동진영의 시급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하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기되는 여성문제를 변혁적, 계급적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변혁운동진영은 페미니즘이 제기하는 핵심적인 주장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검토함으로써, 변혁운동진영이 여성문제에 대한 개입하는 올바른 방향을 정립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페미니즘에도 다양한 주장이 있어서 이것을 다 검토하지 못한 점에서 이 글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밝혀 두고자 한다. 다만 페미니즘의 핵심적인 기조에 대한 평가를 위주로 한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1. 남성, 여성이란 무엇인가 ?

 

아래의 논지는 페미니즘의 핵심적이고도 대표적인 주장인 것처럼 보인다.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이론과 운동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문명사에서 어떻게 ‘지배와 종속’의 메커니즘이 작동되어왔는가에 대한 다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그 지배와 종속의 메커니즘은 인간을 우선적으로는 ‘남자와 여자’라는 두 집단으로 분리해서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교육,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남성의 여성 지배’라는 가부장제적 남성중심주의를 ‘자연적인 것’으로 만들어왔다.”(강남순, “페미니즘의 ‘불편한 진실’ 민주주의를 확장시킨다”, ≪한겨레≫, 2018. 4. 22.)

 

즉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류의 문명사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 가장 핵심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있고,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의 역사라는 것이다. 정희진 또한 이와 동일한 논리선상에서 제기하는 남성과 여성의 성별 정체성을 가장 우선시 한다. 그녀는 아래와 같이 밝히면서 그것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인간의 범위는 자연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계급 차별주의, 인종주의, 서구 중심주의, 가부장제, 비장애인 중심주의, 이성애주의 등이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는 사회적 권력 관계의 역동 속에서 결정된다. … 흔히 흑인은 인간과 동물의 중간으로, 여성은 인간과 자연의 중간 존재로 ‘다루어진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p. 153.)

 

정희진은 앞 문장에서는 인간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 즉, 계급, 인종, 서구, 장애 등에서 규정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에는 인간, 동물, 흑인, 여성, 자연 등이 그것 자체로 주요한 범주이고, 선차적인 규정성을 띤다고 주장한다. 즉 그녀는 흑인이 인간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중간적인 존재이고, 여성도 인간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중간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흑인, 여성은 인간과 다른 독자적인 규정성을 띤 선차적인 범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젠더가 결국에는 사회 문제를 구성하고 창조하는 핵심적인 동인이라고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젠더는 계급(class)처럼 사회와 인간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재료 중 하나며, 사회 문제를 재구성하고 재창조하는 가장 힘 있는 조물주다. 기존 사회는 이런 인식에 무지하고, 인식한다고 해도 최대한 그 영향력을 외면하려고 한다.”(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pp. 12-13.)

 

위의 논자는 젠더를 초역사적인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맑스가 아래와 같이 지적하듯이 여성이라는 범주 또한 일정한 사회와 역사 속에서 일정한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흑인은 흑인이다.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 그는 비로소 노예가 된다. 면방적기는 면방적을 하는 기계이다.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만 그것은 자본이 된다. 이러한 관계들로부터 떼어 내어 졌을 때 그것은 자본이 아닌데, 이는 마치 금이 그 자체로는 화폐가 아니거나 혹은 설탕이 설탕 가격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맑스, “임금 노동과 자본”,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1권, 박종철출판사. p. 555.)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부르주아 여성, 프롤레타리아 여성으로 존재한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과연 젠더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이에 대하여 맑스는 다음과 같이 인간을 규명하고자한다.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의 본질로 용해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은 각각의 개체 속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은 그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이다.” (맑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1권, 박종철출판사, p. 186.)

 

맑스는 인간은 역사와 사회에서 존재하는, 구체적인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인간은 역사와 사회 속에서 생산력 발전에 의해 규정되는 생산관계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의해서 규정된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구체적이고 역사적, 사회적 존재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고대 노예사회에서는 주요하게는 노예소유주와 노예라는 구체적이고도 역사적인 인간이 존재하였고, 중세봉건제에서는 봉건영주와 농노라는 구체적인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현실적인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를 아래와 같이 사회적 존재로서 묘사한다.

“자본가와 지주를 나는 결코 장밋빛으로 아름답게 그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계급이익의 담당자인 한에서다.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내 관점에서는 다른 관점과 달리 개인이 이런 관계들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은 주관적으로는 아무리 이런 관계들을 초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것들의 산물이다.”(맑스, ≪자본론Ⅰ≫,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pp. 6-7.)

 

“노동자는 여기에서는 노동시간의 인격화에 불과하다.” (맑스, ≪자본론Ⅰ≫,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p. 325.)

 

맑스는 이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자본이라는 범주의 인격화라는 것이고, 노동자는 노동시간의 인격화라는 것이다. 즉,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착취하여 이윤추구에만 몰두하는 인간이라는 것이고, 노동자는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경제적 범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지배적이다는 것의 의미를 보면, 자본가뿐만 아니라 소생산자 또한 존재 한다. 그리고 자본가와 노동자 각각 내부에서도 분화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남성과 여성이라는 추상적인 두 존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구체적으로 부르주아 남성, 부르주아 여성, 프롤레타리아 여성, 프롤레타리아 남성의 구별로서 존재 할 뿐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성별 정체성에 따라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부류만으로 인간을 파악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 또한 구체적인 역사적,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계급으로 갈가리 찢겨진 사회에서 그다지 유용한 개념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1. 태초부터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가 있었다?

 

페미니즘 논자들은 태초부터 남성에 의한 여성의 종속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인류학적 고증에 의하면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 태초부터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가 있었다는 주장은 태초부터 여성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특성으로 인해 억압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이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을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 초기에 소위 원시공동체라는 사회가 엄연히 존재하였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것은 단순히 여성의 생물학적인 특성으로, 역사 속에 존재하였던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를 설명하는 것을 반박한다. 엥겔스는 루이스 모건의 책, ≪고대 사회≫(Ancient Society)에 대한 칼 맑스의 주석을 기반으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저술하였다. 엥겔스의 이 저서는 인류 초기 사회에 대한 귀중한 인류학 저술이며 가족, 사적 재산 그리고 국가가 어떻게 발생하였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엥겔스는 여기에서 가족의 최초의 형태가 군혼으로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아래와 같이 가리킨다.

 

“그러면 실제로 역사에서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고, 또 현재도 아직 이러저러한 데서 연구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원시적인 가족 형태는 어떤 것인가 ? 그것은 군혼이다. 이런 혼인 형태 하에서는 남자의 전체 집단과 여자의 집단이 서로 관계를 가지며, 질투의 여지는 거의 남지 않게 된다.”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pp. 39-40.)

 

최초의 가족 형태인 군혼에서 남자의 전체 집단과 여자의 집단이 서로 관계를 가지는 상황에서는, 페미니즘 논지에 의하면 남자 집단이 여자 집단을 집단적으로 지배하고 종속시키는 관계로 존재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엥겔스는 바흐펜의 인류학의 문헌을 가지고 아래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고증한다.

 

“형태 여하를 불문하고 군혼 가족제도 하에서는 누가 아이의 아버지인가는 알 수 없어도 누가 그의 어머니인가는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전체 가족의 ‘모든’ 자녀를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며, 또 그들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진다. 그러면서도 그 여자는 역시 자기의 친자녀들을 다른 아이들과 구별한다. 여기서 명백한 바와 같이 군혼이 존재하는 한, 혈통은 다만 ‘어머니’ 편에 따라서만 확정될 수 있으며 따라서 ‘모계’만이 인정된다. 어떤 야만인과 어떤 낮은 단계의 미개인들에게 있어서도 바로 이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발견한 것이 바로 바흐펜의 두 번째 커다란 공적이다. 이와 같이 모계 혈통만이 인정되고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기서 발전하여 나온 상속관계를 바흐펜은 모권이라고 불렀다.”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pp. 46-47.)

 

즉, 인류 초기 군혼 사회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남성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주도하는 모계 혈통 중심의 사회라는 것을 밝힌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계 혈통을 중심으로 상속이 이루어져 모권의 상속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해명한다. 엥겔스는 대우혼에서 남녀에 대한 관계를 아래와 같이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그렇지 않아도 (동일한 발전단계에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과 기타 종족들 사이에서 약혼은 흔히 혼인 당사자들이 맺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과는 전혀 의논도 없이 어머니가 맺어준다. 이리하여 전혀 알지도 못하는 두 사람이 약혼하게 되며, 혼인 날짜가 임박해서 비로소 그들은 자기들이 약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혼례 전에 신랑은 신부의 친족(즉 신부의 어머니 편 친족이지 아버지와 그의 친족이 아니다)에게 선물을 보낸다. 이 선물은 양도되는 처녀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된다. 혼인은 부부 중 각자의 의사에 따라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족, 예컨대 이로쿠이인들의 경우에 점차 이러한 이혼에 부정적으로 대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부부 사이에 분쟁이 있을 때에는 쌍방 친구들이 조정자의 역할을 맡으며, 그들의 간섭이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이혼하게 된다. 이 경우 아이들은 아내가 차지하게 된다. 이혼 후 쌍방은 다 같이 재혼할 수 있다.”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pp. 53-54.)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우혼 가족에서 이혼 후 아내가 아이들을 가지는 경우에서 보듯 여성의 지위는 남성보다 우월했다는 것을 위의 사례는 보여준다. 또한 엥겔스는 공산주의적 세대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아래와 같이 기술한다.

 

“공산주의적 세대는 가정에서의 여성의 지배를 의미한다. 이것은 친아버지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조건 하에서 친어머니만을 인정하는 것이 여성에 대한, 즉 어머니에 대한 높은 존경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발전의 초기에 여자가 남자의 노예였다고 하는 견해는 18세기 계몽사상에서 물려받은 지극히 불합리한 관념의 하나이다. 어느 야만인들에게서나 또 미개의 낮은 단계, 중간 단계 및 부분적으로는 높은 단계에 있는 어느 종족을 막론하고 여성은, 비단 자유를 향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극진한 존경을 받는 지위에 있었다. … 여자가 대부분 또는 전부 같은 한 씨족에 속하는 한편, 남자가 여러 씨족에 분속되어 있는 공산주의적 세대는 원시시대의 어디에서나 보급되어 있던 여성 지배의 현실적 기초이다. 이러한 여성 지배를 발견한 것이 바흐펜의 세 번째 공적이다. 덧붙여 말한다면, 야만인과 미개인에게 있어서 여성들이 과도한 노동을 부담하고 있다는 여행가 또는 선교사들의 보고는 상술한 바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양성 간의 분업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와는 전혀 다른 원인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여성들이 휠씬 더 많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종족들은 우리 유럽인보다 여성들에게 휠씬 더 참된 존경심을 표한다. 문명 시대의 귀부인은 외견상 대단히 존경을 받으며 실제적 노동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지만, 그 사회적 지위는 심한 노동을 하는 미개시대의 여성들보다 굉장히 낮다. 후자는 자기 종족들에게서 진정한 귀부인으로 인정되었으며, 또 바로 그 지위의 성격상 귀부인이었다.”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pp. 54-55.)

 

위에서 엥겔스가 지적하는 것처럼 원시시대에 여성 대부분 또는 전부는 한 씨족에 속하는 한편, 남자가 여러 씨족에 분산되어 있으므로 여성의 지배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으로 하여금 자유를 만끽할 뿐만 아니라 극진한 존경을 받게 만들었다. 엥겔스는 여성이 더 많은 노동을 수행하는 것은 그 당시에 여성이 더욱 더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인류학의 역사가 제시하듯이 원시공동체 사회에는 여성중심의 모계 사회였다. 즉, 원시공동체 사회는 여성의 가계를 따라 사회가 작동하였고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사회였다. 그렇지만 이 사회에서도 성별 노동 분업은 존재하였다. 이는 생산력이 미약하여 여성은 주로 채집에 종사하였고, 남성은 주로 수렵을 담당하였다. 초기 사회의 성별 분업 자체가 억압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 원시공동체에서 성별분업은 생산력이 아주 미미하여 자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엥겔스는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어떻게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과 종속이 발생하게 되었는가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이리하여 재부가 증대함에 따라 그 재부는, 한편으로는 아내보다도 남편이 더 유력한 지위를 가족 내에서 차지하게 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강화된 지위를 이용하여 전통적인 상속 제도를 자기의 자녀들을 위해 폐지하려는 경향을 낳게 하였다. 그러나 모권에 의해서만 혈통을 따졌던 시기 동안은 그것이 실현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 모권은 폐지되어야 했으며 또 폐지되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실로 이 혁명―이것은 인류가 체험한 가장 근본적인 혁명 중의 하나이다―은 살아 있는 씨족 성원 중의 단 한 사람도 건드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씨족 성원들은 모두 이전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앞으로는 남자 성원의 자손이 씨족에 남아 있어야 하고, 여자 성원의 자손은 이 씨족에서 제외되어 자기 아버지 편 씨족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간단한 결정만으로 충분하였다. 이것으로써 여계에 의한 혈통의 결정과 모권적 상속은 폐지되고, 남계에 의한 혈통의 결정과 부권적 상속이 도입되었다.”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p. 62.)

 

즉, 여성억압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 말하자면, 기존의 채집경제의 낮은 생산력 단계에서 농업, 목축, 무역이 발달하면서 생산력의 발전이 초래되었다. 또한 이것은 개별 가족의 부를 급속히 증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즉 부부로 구성된 가족이 씨족으로부터 점차 자력으로 생존 가능한 독립적인 생산단위로 바뀌었다. 기존에 모계에 의한 씨족 단위의 생산에서 정주에 의한 생산양식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은 남성들이 생산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부계사회로 전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모계혈통에 의한 부의 상속과 남성주도의 부의 축적이 충돌하였다. 즉 남성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진 부(富)가 부(夫) 사망시 부(夫)의 자녀에게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부의 모계혈통으로 넘어감으로서, 부가 분산되고 가족의 재산 축적이 장애가 되었다. 사적 소유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모계가 가족의 계속적인 부의 축적을 방해하였기 때문에 부계제로 이행하였다. 부계제가 정착하면서 사유재산의 상속을 보장하기 위하여 여성의 혼외성교는 금지되었고, 가정에 감금당했다. 이리하여 여성은 사회적인 영역에서 배제되었고 남성에게 종속되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가족의 재산을 증대시키고 상속시킬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만이 여성의 유일한 내용과 의무가 되었다. 즉, 일부일처제가 정착되었다.

또한 엥겔스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가 일부일처제, 사적 소유 그리고 계급의 발생과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일부일처제는 결코 개인적 성애의 소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애와는 절대로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왜냐하면 혼인은 종전 그대로 어디까지나 타산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는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기초한, 즉, 원시적・자연발생적 공동소유에 대한 사적 소유의 승리를 기초로 한 가족형태였다. 가족 내에서의 남편의 지배와 자기의 재산을 상속해야 할 확실한 자기의 자식을 보자는 것―이것이 그리스인이 공공연히 선포한 단혼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 즉 역사에서 나타난 최초의 계급적 대립은 단혼 하에서 보게 되는 남녀 간 적대의 발전과 일치하며, 따라서 최초의 계급적 압박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압제와 일치한다. 단혼은 역사상 일대 진보이기는 하였으나, 동시에 그것은―노예제 및 사유재산과 함께―현재까지도 그렇지만, 온갖 진보가 동시에 상대적 퇴보이기도 하며, 한 사람의 행복과 발전이 다른 사람의 고난과 억압을 대가로 하여 실현되는 그러한 시대를 열어 놓는다. 단혼은 문명 사회의 세포로서, 지금은 이것을 바탕으로 문명 사회 내부에서 완전히 발전한 대립과 모순의 본질을 연구할 수 있다.”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pp. 72-73.)

 

생산력의 발전은 잉여생산물을 발생시켰고 더불어 계급이 발생하고 나아가 국가의 발생을 초래하였다. 즉 계급억압과 여성억압이 동시에 발생하였다. 일부일처제는 여성이 철저하게 남성에 종속되어서 단 한 사람의 남성에 대한 여성의 속박을 의미하게 되었다. 남성의 지배와 일부일처제는 사적 소유의 보존과 그 상속을 위하여 발생한 것이다. 엥겔스는 이러한 여성의 남성에의 종속을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로 묘사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가정주부로서 억압을 받는 것에 더불어 사회에서 노동자로서 차별과 착취에 직면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자발적 실업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설사 여성들이 사회의 경제활동에 참여하더라도 저임금과 노동조건이 열악한 비정규직과 3D 업종에 종사하게 된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부의 여성이 사회적 생산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여성에게는 동시에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엥겔스는 현대의 민주주의 공화국이 법률상 양성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현대 가정의 부부간의 사회적 평등의 단초를 마련함과 동시에 여성이 사회적 노동에 복귀함으로써 여성해방을 위한 물적인 토대를 구축하였음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민주주의 공화국이라 해서 이 두 계급의 대립이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민주주의 공화국은 이 대립의 해결을 위한 투쟁의 기초를 만들어 놓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부가 법률상 완전히 동등해졌을 때 비로소 현대 가정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지배의 특성, 그리고 부부간의 진정한 사회적 평등을 수립할 필요성과 그 방법도 역시 완전히 해명될 것이다. 그 때야말로 여성해방의 첫째 조건은 여성 전체가 사회적 노동에 복귀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개별 가족이 사회적 경제적 단위로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p. 82.)

 

즉, 자본주의의 과학기술혁명으로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인 차별적, 억압적 성별분업이 사라질 수 있고, 노동시간을 대폭적으로 단축시켜 여성해방을 위한 물적인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여성의 지위는 구체적인 사회와 역사의 생산양식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러므로 태초부터 생물학적인 특성에 의하여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와 종속이 존재해 왔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인류 최초의 사회인 원시공동체에서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관계에서 자연적인 성별분업에 기초한 사회로서 역사적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은 주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지금의 여성의 종속을 초래하는 일부일처제가 역사의 초기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중요하다. 인류학의 성과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인류는 집단적 군혼에서 대우혼으로 발전하고, 대우혼을 거쳐 지금의 일부일처제의 형태로 가족제도가 발전했다. 즉 수천 년간의 장구한 역사발전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가족제도를 거쳐 현재의 일부일처제 가족형태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이 여성의 지위는 구체적인 사회와 역사의 생산양식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1. 가부장제

 

페미니즘 담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핵심적인 주제어가 가부장제이다. 페미니즘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여성이 여전히 가사와 육아를 전담한다는 사실을 들어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 먼저 가부장제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부권제(父權制, patriarchy) 또는 가부장제(家父長制)는 남성이 권력을 가진 남성중심주의 사회의 일종으로, 남성이 정치적 지도력, 도덕적 권위, 사회적 특혜, 재산의 통제권에 대하여 독점적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가족 단위에서는 아버지 또는 아버지에 해당하는 인물이 여성과 아동에 대한 권위를 가진다. 많은 부권제 사회는 동시에 부계제 사회이며, 즉 재산과 가문의 명의가 남성 혈통으로 계승된다. “부권제”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버지의 지배”라는 뜻이며, “씨족의 아버지”, “남성 추장”, “총대주교”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파트리아르케스”가 그 어원이다. 이는 곧 “아버지”라는 뜻의 “파테르”에서 유래한 “혈통, 후예”라는 뜻의 “파트리아”와 “내가 지배한다”라는 뜻의 “아르코”의 합성어이다. 본래 “부권제”라는 용어는 남성 수장에 의한 전제적 가정 지배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주의 등의 맥락에서는 성인 남성이 주로 권력을 행사하는 사회 체계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서 사용된다. 본래적 의미에 따른 부권제 사회의 사례로는 고대 그리스-로마, 고대 이스라엘 왕국 등이 있으며, 이러한 사회에서는 가부장을 제외한 가족 구성원들이 가부장의 소유물과 같이 취급되었다. 부권제의 대립항적 존재인 모권제의 존재가 부정되는 추세임에 따라, “부권제”라는 용어의 본래적 의미는 퇴색되고 있다.” (위키백과)

 

즉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가부장제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특정한 가족구조를 지칭하는 인류학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즉 가부장제란 남성혈통을 중심으로 확대된 친족구조에서 노예를 포함한 하나의 생산단위로서 기능하며, 공동으로 노동하며, 소유하고 결혼과 같은 사회관계와 생산물의 분배에서 가부장의 권위를 따른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사유재산과 계급의 발생과 더불어 남성에 의한 여성에 지배와 억압이 시작되었고, 남성 독재의 형태로서 가부장적 가족을 발생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 있다.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자는 가정에서도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어 여자는 자기의 존귀한 지위를 상실하고 노비로, 남자의 정욕의 노예로, 순전한 산아도구로 전락했다. 여성의 이와 같은 굴욕적인 처지는 특히 영웅시대의, 더욱이 고전시대의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노골적이었는데, 점차 경감되어 그럴듯하게 꾸며졌으며, 때로는 보다 완화된 형태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그러한 처지가 제거된 것은 아니다. 이리하여 확립된 남성 독재의 최초의 산물은 당시 발생하고 있던 가부장제 가족이라는 중간 형태이다.”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pp. 63-64.)

 

엥겔스는 이러한 가부장제 가족의 구체적인 형태를 로마시대의 가부장적 가족의 형태를 들어 아래와 같이 상술하고 있다.

“이리하여 확립된 남성 독재의 최초의 산물은 당시 발생하고 있던 가부장제 가족이라는 중간 형태이다. … 본질적인 것은 비자유민이 가족의 성원으로 된 것과 가장의 권력이다. 따라서 이런 가족형태의 완성된 유형은 로마의 가족이다. 파밀리아(familia)라는 말은 원래 감상주의와 가정불화의 혼합물인, 오늘날의 속물의 관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마인에게 있어서는 이 말이 원래는 부부나 그 자녀들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다만 노예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파물루스(famulus)는 가내 노예를 의미하였고, 파밀리아는 한 사람에게 종속되는 노예의 총체였다. 가이우스 시대에도 아직 파밀리아는 상속 재산으로서 유언을 통하여 증여되었다. 로마인들은 새로운 사회적 유기체를 표시하기 위해 이 말을 만들어 냈는데, 이 유기체의 우두머리는 처자와 일정한 수의 노예를, 이들 모두에 대한 생사여탈의 권리를 가진 로마의 부권 하에 두고 있었다.”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pp. 63-64.)

 

위에서 언급되는 로마에서의 가부장적 가족형태에서는 가부장이 우두머리로서 부권이라는 무기로 노예뿐만 아니라 처자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도 아직 세르비아인들이나 불가리아인들 사이에서 자드루가 또는 브라트스트보라는 명칭으로 존재하며, 또 변형된 형태로 동양인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가부장적 세대공동체는 군혼에서 발생한 모권적 가족으로부터 현대세계의 개별 가족으로 이행하는 과도적 단계라는 사실에 대한 논거를 얻게 된 것은 막심 코발레프스키(≪가족과 재산의 기원 및 발전 개요≫)의 덕택이다. 어째든 구세계의 문화인들, 즉 아리아인이나 셈인의 경우에는 이 문제가 이미 논증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남슬라브인의 자드루가는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이러한 가족공동체의 가장 좋은 실례이다. 자드루가는 한 명의 아버지에서 파생된 몇 세대에 걸친 자손들과 그들의 아내들을 포괄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공동으로 밭을 갈고, 공동저장물을 먹고 입으며, 여분의 수확을 공동으로 소유한다. 이 공동체는 가장의 최고 관리 하에 있다. 가장은 외부에 대해서는 공동체를 대표하고, 대수롭지 않은 물품을 처분할 권리를 가지며, 수입 지출을 관리하고, 이와 더불어 규칙적인 사업의 진행에 대해 책임을 진다. 가장은 선출되지만 반드시 연장자가 뽑히는 것은 아니다. 여자들과 그들의 노동은 주부(主婦)―보통은 가장의 아내이다―의 통제에 따른다. 주부는 또한 공동체 내 처녀들의 남편을 고르는 데 있어서 종종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최고 권력은 가족회의, 즉 성장한 남녀들의 회의가 장악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가장은 사업 보고를 한다. 이 회의는 최종적인 결정을 채택하며, 성원에 대한 재판을 집행하고, 매우 중대한 매매, 즉 토지매매에 관한 것을 결정하기도 한다.”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pp. 65-66.)

 

가부장제 가족은 군혼에서 발생한 모권적 가족으로부터 현대 개별 가족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가족형태라는 것이다. 이것의 예는 세르비아와 불가리아에 자드루가 또는 브라트스트보라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상에서 언급되고 있는 가부장제 가족 형태에서는 가족 단위로 공동으로 생산하고 분배한다.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남녀가 함께 참여하는 가족회의이다. 이상의 예는 로마의 가부장적 가족형태와는 조금 다르게 공동체적 가족형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이 보인다. 개별 가족 형태로 가기 전에 위의 사례에서 언급되고 있는 가부장적 가족에서는 양성이 평등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의 자본주의 생산양식 하에서 일부일처제적 가족은 기존의 가부장적 생산단위로서 성격을 탈각하여 기존의 가족의 성격과 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즉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족단위에서조차 인격적인 예속관계가 철폐되고, 경제적 예속관계를 기초로 한다. 자본주의는 이상과 같이 구래의 생산단위와 분배단위로서 가부장제를 폐지시켰다.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남성 노동자들이 물적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성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없다. 여성들도 자발적 실업을 제외하고, 사회적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물론 자본은 여성 노동을 착취하여 자본축적을 위하여 전래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유지・온존・강화시키고 있다. 즉,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 물적인 토대로서 가부장제는 폐지되었지만 아직 가부장적 의식이 남아 있어 자본이 이를 남성・여성 노동을 착취하기 위하여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1.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성억압과 계급억압을 서로 분리시키지 않고 통합하여 양자 모두에 대하여 투쟁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즉 모든 여성들이 계급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당하고 있는 차별과 억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에서 가부장제 체계와 자본주의 체계가 상호 연관되어 여성을 차별・억압하므로 ‘이중체계론’이라고 한다. 남성지배 체제=여성 종속 체제인 가부장제는 계급억압체인 자본주의와 별도의 물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억압의 근원을 자본주의와 가부장에 두고 있으므로 자본주의가 소멸하더라도 여성억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인 정희진은 위의 논지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한다.

 

“여성주의는 ‘일차적인’(우선적인) 사회 모순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다. 성별 억압을 전제하지 않은 계급 억압은 없으며, 계급 차별 없는 성차별도 있을 수 없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p. 134.)

 

가부장제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 양자가 여성문제의 근원이라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이외에도 인종, 민족 등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 교차적으로 여성문제에 작용한다는 이론을 ‘상호교차성이론’이라 한다. ‘상호 교차성’ 이론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상호 교차성 또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은 최근 약 20년 사이에 급부상한 이론이자 방법론, 또는 패러다임으로, 상호교차적인(intersecting) 또는 겹치는(overlapping) 사회 정체성 및 이와 관련된 억압, 지배구조, 차별을 연구한다. 1989년에 미국의 비판적 법 인종 이론(critical legal race) 연구자 킴벌리 윌리엄즈 크렌셔(Kimberlé Williams Crenshaw)에 의해 고안되었다. 상호 교차성 이론은 한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범주는 단일하지 않으며 젠더, 인종, 사회 계급 등 다양한 측면이 상호 교차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한 사람에게 작용하는 억압, 지배구조, 차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과 창발적 속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페미위키)

 

상호 교차성의 선구자인 흑인 여성들이 결성한 ‘컴바히 강 공동체’가 발표한 <흑인 페미니스트 선언문>은 상호 교차성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인종적 억압, 계급억압, 성적 억압이 동시에 경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계급억압이나 성적 억압으로부터 인종적 억압을 분리해내는 것이 많은 경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저 인종적인 것만도 아니고 그저 성적인 것만도 아닌, 인종적-성적 억압 같은 것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 (“흑인 페미니스트 선언문”,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 p. 136. 에서 재인용)

 

이상과 같은 진술에서 확인되듯이 상호 교차성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모순을 나열하고 있다. 물론 구체적 현실에서는 계급, 성, 환경, 인권, 인종, 민족 등 다양한 모순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모든 모순들에 개입하고, 모순의 지양을 위하여 목적의식적으로 개입하고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의 각기의 모든 모순들이 서로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있고, 어느 것을 중심으로 싸워 나갈 것인지를 해명해야 할 과제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루카치가 다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총체성이라는 방법론은 변혁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주요한 이론적 무기를 제공한다고 여겨진다.

 

“헤겔의 변증법은 마르크스에 와서야 비로소 현실적으로 게르첸이 말한 ‘혁명의 대수학’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유물론적인 전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전도 속에서, 그리고 이 전도를 통하여 헤겔 변증법의 혁명적 원리가 전면에 나올 수 있었던 까닭은 방법의 본질인 총체성의 관점이, 곧 모든 부분적인 현상들을 전체의 계기로, 사상과 역사의 통일체로 파악하는 변증법적 과정의 계기로서 고찰하는 관점이 견지되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서 변증법적 방법은 총체성으로서의 사회를 인식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부르주아 과학은, 한편으로는 연구대상의 사실상의 분리로 인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문상의 분업과 전문화로 인해 발생한 추상물들을―이것은 개별과학의 방법론으로는 불가피하고도 유용한 것이지만―소박실재론적으로 하나의 ‘현실’로 여기든가 아니면 ‘비판적으로’ 하나의 자율적인 것으로 여긴다.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바로 이러한 분리를 변증법적인 계기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눌러 내림으로써 그것을 지양한다. 물론 요소들, 곧 한 연구영역 전체 또는 한 연구영역 내부의 각각의 문제군이나 개념들과 같은 요소들을 추상화하여 고립화시키는 일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이러한 고립화가 전체를 인식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가, 다시 말하면 고립화가 전제하고 요구하는 올바른 전체적 연관에 언제나 통합되는가, 아니면 고립된 부분영역에 대한 추상적 인식이 자율성을 유지하며 자기 목적으로 되어 있는가라는 점이다. 결국 마르크스주의에는 독립적인 법학・국민경제학・역사학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총체성으로서의 사회발전에 관한 유일하고 통일적인―역사적・변증법적―과학만이 존재할 뿐이다.”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거름, p. 100.)

 

이상의 총체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같은 사회 경제적 구조에서 분리된 두 개가 아니라 같이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즉 여성문제는 전체 자본주의 사회문제의 일부분이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차별과 계급차별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이는 또한 인종 문제, 환경 문제, 민족 문제도 지금 구체적이고도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 경제적 구조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총체성의 시각에서 이들 각 요소들의 상호 관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총체성의 방법이란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모순, 계급, 성, 환경, 인종, 민족 등을 병렬적으로 나열하여 단순한 모자이크식의 합산의 방식으로 전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관계 속에서 유기적으로 구성된 전체로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에 현상하는 제 모순에서 본질적인 모순, 즉 본질적인 관계가 무엇인가?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본질적인 관계를 아래와 같이 해명한다.

 

“개인들이 그 속에서 생산을 행하는 사회적 관계들, 즉 사회적 생산관계들은 따라서 물질적 생산수단들, 생산력들의 변화 및 발전과 더불어 변화하고 변모한다. 그 전체성 속에 있는 생산관계들은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들, 사회라고 칭하는 것을 형성하며,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일정한 역사적 발전단계에 있는 어떤 사회, 특유한,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회를 형성한다. 고대 사회, 봉건 사회, 부르주아 사회는 그러한 생산관계의 총체들이며, 이 생산관계들 각각은 동시에 인류 역사에서의 특수한 발전단계를 가리킨다.” (맑스, “임금 노동과 자본”,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 p. 556.)

 

사회를 관찰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파악한다는 의미이다. 즉 구체적으로 사회를 분석한다는 것은 사회적 제 관계에 따라 고대 사회, 봉건 사회, 자본주의 사회로 본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회적 제 관계를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 발전단계에 나타나는 생산관계이다. 따라서 지금의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관계, 임노동-자본 관계를 중심으로 이 사회를 고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자본주의 하에서는 임노동-자본관계를 중심으로 여성, 민족, 인종, 환경 등의 사회적 제 모순을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억압과 차별 또한 임노동-자본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1. 사회주의에서 여성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페미니즘이 핵심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가부장제에 따른 성별 위계질서 또한 사유재산, 계급 발생과 동시에 이루어 졌다. 그러므로 성별 계층화의 폐지는 이러한 요소들의 폐지와 더불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에서는 자본주의가 사라진다고 여성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과연 현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어떠하였는가를 실증적으로 살펴보는 것 역시 중요한다. 러시아는 10월 혁명으로 고용 평등과 동일임금, 여성들의 완전한 투표권을 보장했다.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그 당시 유일하게 노르웨이와 핀란드만이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러시아에서 여성들은 이혼 간소화, 세계 최초 낙태 합법화, 유급 출산휴가 전면 도입, 작업장에서 모유 수유 허용, 3시간마다 휴식 등을 취할 수 있었다. 또한 간통, 근친상간, 동성애 처벌 같은 억압적 법률을 폐지했다. 러시아 정부는 상속권을 폐지하였고, 1919∼20년에 페트로그라드 인구의 90퍼센트가 공공식당을 이용했고, 모스크바 인구의 40퍼센트가 공공주택에서 생활하였고, 러시아 38개 지역에 공동탁아소가 세워짐으로써 육아와 가사 노동을 사회화하는 위대한 업적을 성취하였다. 또한 볼셰비키 정부는 여성 억압적 법률을 철폐하는 새로운 법률들을 현실화하고 여성들을 정치 활동에 참여시키기 위해 제노텔(여성부)을 만들었다.

소설가 이태준이 1946년 소련을 기행하면 남긴 ≪소련기행≫은 혁명 후 소련사회가 얼마만큼 임산부를 대우하는가를 아래와 같이 구체적인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주식품이나 의류는(담배도) 직장을 통해 배급이 있고 그것으로 부족하면 백화점이나 기타 자유 상점에 가 얼마든지 사는 것인데 담배의 예를 들면 배급보다 약 4배 비싸다 한다. 의료는 각 구에 국영병원이 있어 무료이며 산부(産婦)는 임신 중에 미리 등록되었다가 임기(臨期)하여 병원에서 자진해 데려가는 제도라 한다. 다산모에게는 다섯에서부터 훈장, 열부터 <어머니 영웅> 으로 최고명예를 받으며 양육에 국가보조가 많다. 학교에도 일반 신입생에게 그 후원기관에서 학용품 일체를 담당하고 입학금이니, 수업료의 부담이 없으므로 어떤 가정이나 살다가 갑자기 큰 돈쓸 일이 생겨 낭패되는 일은 별로 없다 한다.

집은 개인소유도 할 수 있고 개인소유 집은 팔거나 그저 주거나 하되, 세놓은 것은 금한다 한다, 여자는 55, 남자는 60세까지 자기 기능대로 일하고(그것도 가족의 수입으로 생활이 넉넉하면 자유다) 이상 연령이 지나면 최종월급비례의 생활비를 매월 국가에서 준다 하며 무의(無依) 노인을 위해서는 양로원이 있다 한다.” (이태준, ≪소련기행・농토・먼지≫, 깊은샘, pp. 58-59. (밑줄은 인용자))

 

“공장 밖에는 가까운 곳에 학교가 있고 그 다음으로는 새로 지은 탁아소가 있었다. 2층 해 잘 드는 방으로 들어서니, 젖먹이만 20여 아(兒)가 누워 있었고 그 다음 방은 그 웃길, 모두 위생복 입은 간호원들이 시간을 맞추어 먹이고 놀리고 있었다. 젖먹이들은 어머니들이 작업 중에라도 젖 시간엔 나와 먹이는 것이요. 그 시간은 결근으로 치지 않는다. 공장 일이 끝나면 어머니들이 집에 가는 길에 모두 찾아가는 것이었다.

인습관계에 있어 불합리한 것은 모조리 잘라 버리었다. 완전한 자유에서 이것저것 시험해보았다. 처음에는 지나친 바도 있어, 저희도 이렇게 되면 낭패될 소수들이 지배하는 국가에서는, 그런 것을 왜곡 과장하여 악선전했다.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뺏어 가느니, 어미 애비도 모르느니, 그러나 불합리한 것이며 무엇이나 마음대로 시험해보고 고칠 수 있는 사회는 침체도 퇴보도 아니요. 오직 전진이었다. 이것은 누구나 수긍해야 될 공식이요. 진리다. 이보다 더 좋은 제도가 달리 있다면 그 또한 인류의 승리요. 후진들의 모범일 것이다. 어느 나라의 것이든 내 나라 실정에 비추어 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배울 것이다. 급진, 직역식(直譯式)도 못쓰고 허덕 경원(敬遠)도 수가 아니다.” (이태준, ≪소련기행・농토・먼지≫, 깊은샘, pp. 118-119.)

 

이태준의 1946년 기행문은 이상과 같이 의료무상, 임산부에 대한 국가차원의 배려, 여성의 55세 은퇴이후 생활비 지원, 무의탁 노인에 대한 양로원, 탁아소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고도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도 당시의 소련에서 취해진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배려에 비해 휠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독일 통일 이전의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하여는 베를린의 동독 출신 노동자 오마지치 씨가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단의 사실들을 접할 수 있다.

 

“동독에서는 아이가 셋 이상인 싱글맘에게 양육 지원을 더 해 줬어요. 주거비를 추가로 주고, 아이 옷값 등도 조금 더 줬지. 크리스마스에는 보너스를 주기도 했죠. 이런 지원금이 아이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나왔어요. 어린이집을 구하는데도 혜택이 있었죠. 이런 지원은 동독이 좋았어요.

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상점 판매원으로 일했어요. 동시에 공장의 기계 보조공으로서도 일했고. 이른바 투 잡을 뛰었죠. 요즘 사람 기준으로 보면 힘든데 뭐 그리 많이 낳았느냐 싶죠? 당시 사람들이 좀 순진했어. 생활이 가난하지만 그렇다고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었고, 육아 부담도 적었으니 아이를 많이 갖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좀 있었어요. 아이가 있는 집은 한 달에 하루 ‘집안일을 위한 휴가(Haushaltstag)’도 유급으로 얻었는걸.”

 

“이 일을 하면서 어려운 가정을 볼 때마다 통일이 좋았다고 마냥 웃어넘길 수 없게 돼요. 요즘 사회 안전망이 다 무너졌잖아요. 예전에는 젊은이라면 사회가 일단 받아들여줬어요. 일자리가 없으면 일자리를 구해주고, 교육을 받고 싶다면 공부하게 해 줬어요. 그런데 요즘 사회는 젊은이를 그냥 무시해요. 그러니 젊은 아이들이 자꾸만 엇나가는 거야. 동독 시절에는 아이들이 활기찼어요. 유겐트가 있으니 아이들이 어디든 소속되어 활발히 활동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할 일이 없으니 마약이나 하잖아요!” (이대희, 이재호, “베를린의 동독 출신 노동자 오마지치 씨 이야기”, ≪프레시안≫ 2018.10.10. (밑줄은 인용자))

 

독일 통일 이전 동독의 전체적인 사회 상황을 알 수는 없으나 자녀 양육과 교육에 관해서는 일단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재통일이 독일 여성에게 미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국내 한 언론이 울리케 아우가 베를린 훔볼트대학 교수와 가진 인터뷰 기사는 동독에서 여성의 지위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통일 직전인 1989년 당시 동독 여성의 취업률은 91.2%에 달했다. 세계대전의 피해가 컸던 데다, 끊임없는 인구 유출로 노동력 부족을 고민한 동독 정부가 여성을 집 안에 둘 리 만무했다. 여성을 노동 현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육아는 국가에서 책임졌다.”

 

“프레시안 : 독일 재통일로 인해 특히 구 동독 여성이 일자리를 많이 잃었다. 재통일이 구 동독 여성에게는 재앙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의하는가?

아우가 : 우선 동독 당시 여성의 노동 상황을 정리하고 싶다. 법적으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로서 권리를 갖고 있었다. 사회의 모든 일자리에 남녀가 동등하게 지원할 수 있었다. 같은 일을 하면 당연히 남녀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임금을 받았다.

따라서 동독의 여성은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점은 중요하다. 물질적 기반이 있었기에 여성이 독자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고, 해방적 사고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뒤지지 않는 경제력을 가질 수 있었기에 사회적으로 평등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서독과 달리) 구 동독에서 포르노그래피가 불법이었다는 점도 짚고 싶다. 동독 정부는 여성의 몸을 물질화, 상품화하는 것에 반대했다. 물론 동독이 특별히 여성 친화적인 국가여서가 아니다.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동독의 여성 인권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점은 임신 3개월째까지는 낙태가 합법이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서독에서는 종교적 문제로 인해 낙태가 불법이었다. 하지만, 동독에서는 아니었다. 이 같은 차이가 재통일 후 큰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졌다. 구 동독 지역에서는 여성이 ‘내 몸의 권리를 내가 가졌는데 왜 낙태를 못하게 하느냐’며 크게 반발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독일은 동독 시절과 마찬가지로 낙태를 합법화했다. …

 

이런 상황에 익숙했던 구 동독 여성들이 재통일 후 대량 실업의 여파에 휘말렸다. 이는 남녀 모두에게 공통된 사건이었지만, 여성의 실업률이 더 높았다. 여성들은 이에 더해 서독식 ‘정상가정’의 굴레에도 얽매였다. 재통일 직후 당시 구 동독 지역에는 싱글맘, 이혼 여성이 많았다. 사회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보수적 서독식 시각은 이 같은 여성을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었다.

 

재통일의 여파를 극복하고서도 한 번 시작된 차별은 구조적으로 남았다. 구 동독의 경제사회 시스템의 기본은 보육이었다. 남녀 모두 일을 해야 했기에 아이는 국가가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독에서는 이 같은 제도가 미비했다. 그나마 재통일 후 많은 여성주의자와 시민운동가들이 노력해서 제도가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 부족하다. …

 

동독 시절 특히 기독교 가정의 자녀는 아비투어(대학입학시험) 자격을 받기 어려웠다. 난 개신교 가정의 자녀였고, 아버지는 수의사였다. 동독 당시 기본적인 교육 원칙상 아비투어를 보기 힘들었다. 종교 문제에 더해 아버지의 직업도 문제였기 때문이다. 동독은 부모가 노동자일 경우 아이는 공부를 더 하게 유도했고, 부모가 엘리트라면 아이가 노동자가 되도록 했다.”

(이대희, 이재호, “독일 통일 최대 피해자는 동독 여성, 그 중에서도…”, ≪프레시안≫, 2018.10.17. (밑줄은 인용자))

 

위의 인터뷰 기사는 당시 사회주의 동독은 여성들의 노동권, 동일노동 동일임금, 여성 몸의 상품화 금지, 낙태 합법, 국가의 보육 그리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소멸을 위한 노력 등을 실행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부랑인의 존재, 고실업율, 비정규직의 만연, 높은 산업재해 사망사고, 노인 빈곤의 증가, 마약, 성매매 등으로 얼룩진 ‘노동지옥 자본천국’이라고 불리어지는 현 사회와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현실 사회주의에서 실제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는가와 별개의 문제로 페미니즘에서 제기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여성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하여 먼저 ‘사회주의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가 먼저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맑스는 사회주의 사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관계하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거꾸로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난 공산주의 사회이며 그러므로 그 모태인 낡은 사회의 모반이 모든 면에서, 즉 경제적, 윤리적, 정신적으로 아직도 들러붙어 있는 공산주의 사회이다.” (맑스, “고타 강령 비판”,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4권, 박종철출판사, p. 375.)

 

맑스가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이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는 없어졌지만 사회의 모든 면에서 과거 자본주의 사회의 유습과 관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사회이다. 따라서 우리의 공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완전하고 무결점의 사회가 결코 아니다. 이는 모든 면에서 자본주의가 남긴 유제와 힘들게 투쟁하는 사회라 아니 할 수 없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고대 사회, 중세봉건, 자본주의 등의 사회구성체가 자연적으로 발전해 갔다. 물론 모든 사회가 이러한 단계를 고정적으로 거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는 이와 다르게 프롤레타리아트가 목적의식적으로 ‘건설’하는 사회이다. 레닌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목적은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되는 것을 폐지하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근로인민으로 되며, 인간에 의한 인간의 모든 착취의 기반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은 단번에 성취될 수 없다.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상당히 긴 과도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생산의 재조직은 지난한 길이기 때문이며, 생활의 모든 영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소부르주아적, 부르주아적 사업 방식의 막대한 관습적 힘은 오직 오랜 기간 강고한 투쟁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맑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전 시기를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과도기라고 말한 이유이다.” (레닌 전집 제24권 p. 314.)

 

따라서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여성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은 한편에서는 맞고 한편에서는 틀린 명제이다. 즉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겨난 남녀 차별과 억압이 존속할 수 있고, 존속했었다는 사실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하듯이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없이 사회적 생산을 목적의식적으로 생산하고 사회의 모든 부분을 목적의식적으로 재조직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그 사회에서 양성 간의 불평등을 목적의식적인 사회적인 노력을 통해 지양해가는 사회가 사회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주의 자체가 사회의 모든 불합리한 제도, 인습 등을 척결해 나가는 과도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는 남녀 간의 모순을 지양하여 양성평등을 구축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즉 건설하는 사회이므로 사회주의에서도 여성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즉 현실 사회주의에서는 양성 평등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 나가는 말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받는 억압과 착취는 단순히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한 성별 분업 때문이 아니라 자본이 노동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순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성차별의 기원이 태초부터 존재하여 왔던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산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남성보다 더 억압받고 착취받는다는 현실은 엄연히 부정될 수 없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즉, 다시 한 번 곰곰이 성찰하여 보아야 할 것은 추상적인 일반적인 여성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문제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억압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억압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이 노동력 착취를 위하여 여성억압을 온존・강화・유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벌써 모든 조건에서 평등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이 사회의 구석구석과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즉, 여성들이 임금차별, 불안정한 고용, 낮은 취업 및 승진기회, 가사노동 등에서 여전히 억압과 차별을 받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에 직면한다. 특히 저임금과 미숙련 노동을 상징하는 비정규직의 대다수가 여성노동자이다.

자본과 국가에 의한 여성들에 대한 착취, 억압, 차별에 대하여 여성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나서고 있다. 따라서 남성노동자들도 여성에 대한 동지적 우애, 배려, 존중으로 여남관계가 새롭게 평등하게 정립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성해방은 사회변혁을 통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로 여성 전체가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는 것과 가사노동의 사회화로만 성취될 수 있다. 그럴 때만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과 더불어 자본에 대한 종속이 종식될 수 있다. 이러한 세상을 쟁취하기 위하여 여성에 대하여 더욱 가혹한 착취와 억압을 불러 오는 자본주의 세상을 뒤집기 위하여 남성 프롤레타리아와 여성 프롤레타리아의 단결된 투쟁이 더욱 절실하다. 모든 남성 프롤레타리아와 여성 프롤레타리아의 일치단결된 투쟁으로 여성해방, 노동해방의 세상으로 나아가자.

 

“페미니스트들의 요구가 겉보기에 아무리 급진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계급적 입장에서 보아 페미니스트들이 현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인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여성의 해방 역시 완결되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 모든 계급의 여성들이 갖는 단기적 임무가 일치할지라도, 장기간에 걸쳐서 그 운동의 방향과 사용되는 전술을 결정짓는 최종 목표는 양 진영이 명백하게 다르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현재 자본주의 세계의 틀 안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 그 자체로 충분히 구체적인 목표인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게 있어서 현재의 동등한 권리란 단지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착취에 맞선 투쟁이 나아갈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을 주적으로 보며, 남성들이 부당하게 모든 권리와 특혜를 쥐고서 여성들에게는 속박과 임무만 남겨 놓았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승리란 이전에 남성들이 독점적으로 누렸던 특권이 “공정한 성”에게 허용될 때를 말한다.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은 다르다. 그들은 남성을 적이나 억압자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남성들을 일상의 고역을 나누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싸우는 동지로 생각한다. 여성과 여성의 남성 동지는 똑같은 사회 모순으로 인해 착취되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똑같은 혐오스러운 굴레가 그들의 의지를 억누르고 그들에게서 기쁨과 삶의 매력을 앗아 가는 것이다. 현 체제의 몇몇 특정한 면들이 여성에게 과중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용 노동의 조건들이 때로 여성 노동자들을 남성들의 경쟁자나 적대자로 만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듯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노동자계급은 잘 알고 있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콜론타이의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세계 여성의 날≫, 좁쌀한알, pp. 38-39.)

노사과연

 

 

참고자료

 

김민재, 이지완, 황정규,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 해방

  1. 쉬바르츠, ≪사적 유물론과 여성해방≫, 중원문화

아우구스트 베벨, ≪여성론≫, 까치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이승희, ≪여성운동과 정치이론≫, 녹두

콜론타이, <공산주의와 가족>, ≪정세와 노동≫ 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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